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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20회) 김 삼 복
39
《안녕하십니까. 지배인동지, <로동신문> 기자들입니다.》 곱슬머리의 젊고 활기에 넘친 사람이 말했다. 그의 뒤에 한명이 더 있었다. 《바쁘시지 않습니까?》 《바빠두 기자들이야 만나야지.》 리웅천은 걸상들을 가리켰다. 《어서들 앉으시오.》 기자들은 앉았다. 《저희들은 수상님의 비판말씀을 받았습니다.》 곱슬머리가 책임자인지 계속하였다. 《현실속에 들어가서 참신한 글을 써내지 못하며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표현도 찾아내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리웅천은 왼쪽 무릎우에 올려놓은 오른쪽 다리를 흔들거리였다. 《그건 내가 도와줄수 있소.》 하고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런데 나도 비판을 먼저 좀 하겠소. 당신네 기자들은 내려오면 늘 계획이 얼만데 몇프로 했느냐, 예비를 어디서 찾았느냐, 이런것만 물었단말이요. 수상님께서 참으로 동무들에게 적중한 비판을 하셨소.》 《예. 그래서 이렇게 급히 온것입니다.》 《그래 어떻게 할려고 하오?》 《수상님께서는 우리 시대 인간들의 변모되여가는 사상의식상태와 도덕적풍모에 대하여 잘 알아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리웅천은 주먹을 사무탁우에 묵직하게 올려놓았다. 《얼마나 지당한 말씀이요. 사람들은 다 그 사람들인데 달라져가고있단 말이요. 새로 태여나고있소. 우리의 기적적인 현실을 알자면 거기로부터 시작해야 한단말이요. 제강직장 3호전기로 진응원작업반에 가서 취재를 하시오. 그다음 다시 만납시다.》 하고 리웅천은 송수화기를 들었다. 《제강직장에 대라.》
진응원작업반에 신입로동자가 보충되였다. 스물한살난 젊은이였다. 직장장이 된 강명준이가 먼저 만나 담화를 간단히 했는데 성진금속광산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본때있게 일해볼 푸른 꿈을 안고 멀리 이곳 강선제강소에 자원하여왔다. 자그마한 키에 어깨가 벌어지고 종다리가 굵은게 여간 당돌해보이지 않았다. 강명준은 진응원작업반이 인원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구성이 복잡해서 새세대의 청년들을 보충해줄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 그를 진응원이에게 보냈다. 진응원은 신입공 형만이가 키는 작아도 건강하고 역빠르게 생긴것이 마음에 들었다. 작업반원들은 거의다 전쟁참가자 아니면 전쟁을 이러저러하게 체험한 사람들이였다. 의용군으로 들어온 남반부출신들도 있었다. 《이걸 자르라구.》 진응원은 톱을 주며 원목을 가리켰다. 첫 작업지시였다. 그가 어디서 왔고 지금 합숙에 들었는지 친척집에서 다니는지 하는 사생활에 대해서는 일체 물어보지 않았다. 형만이는 전기로에 와서 쇠물을 다루는것이 아니라 나무를 자르는 일부터 하게 된것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시키는대로 했다. 원목을 자른 나무토막은 쇠창대에 끼워서 쇠물우에 뜬 슬라크를 긁어 내는 곰배로 쓰는것인데 한번 쓰면 다 타버리군 해서 그걸 자르는 일이 끝없었다. 그밖에도 카바이드를 깨든가 전극이 부러지는 경우 그것을 재생하기 위해 부스러뜨리든가 하는 함마질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작업반장 진응원은 신입로동자가 어떻게 일하는지 제대로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것 같았으며 한번도 그와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으나 생산을 지휘하느라 이리저리 달리며 8시간을 부지런히 로주변을 돌아치는 가운데서도 눈결에 그를 살펴보고있었다. 작업총화때 간혹 《태호동무는 형만이한테 함마질을 하는 요령을 배워주시오.》 하든가 《형만동무는 일감이 떨어지면 우두커니 서있지 말고 다른 사람을 협조해야 하겠소.》 하든가 그에 대해서 간단간단히 언급하는것을 보아서 그것을 알수 있었다. 배전공 영실이가 먼저 형만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건 작업반원이였다. 이 처녀는 웃을 때 보조개가 패우군 하는 귀엽게 생긴 처녀인데 한번은 작업반장한테서 되게 욕을 먹었다. 진응원반장은 작업시간에 헛눈을 팔거나 일감을 찾지 못해 우두커니 서있는 현상을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반장은 어디서 나타나군 하는지 나타나서는 이걸 하라 저걸 하라 하고 제때에 일을 시켰다. 그의 눈에 영실이가 깜박 졸다가 걸려든것이다. 한바탕 욕을 먹은 영실은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밖을 내다보다가 형만이와 눈길이 부딪쳤다. 《이름이 형만동무지요? 어떻게 되여 우리 작업반에 배치되여왔어요?》 처녀가 다가와 묻는데 얼굴은 언제 울었는가싶게 표정이 밝았다. 《가라구 해서 왔지요. 내가 뭐 알아요?》 형만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이, 그럼 진응원작업반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어요?》 《못들었소. 들었으면 어쨌다는거요?》 《다른 작업반을 택할수도 있지요.》 형만은 이 처녀가 반장에 대해서 의견이 단단히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형만이부터가 입직한지는 며칠 되지 않지만 이 작업반에 정이 붙지 않았다. 모두 일들은 정신없이 잘하는데 그 8시간동안 담배 피울 시간도 없이 바삐 돌아가는 작업과정을 통해서만 사람들이 서로 련결되여 있지 일이 끝나면 제뿔뿔이였다. 《진응원작업반은 앉은뱅이도 들어가면 뛴다는 작업반이예요. 그래서 로임도 많이 타고 상금도 자주 타지요. 그렇지만 일이 힘들어요. 반장은 일밖에 모르지요뭐.》 《그럼 자기가 다른 작업반에 갈것이지 어째 나한테 추동질이요?》 처녀는 호호 웃었다. 《난 여기가 좋아요.》 《흥, 방금 눈물을 짜고서도?》 《반장은 뒤가 없어요.》 《난 동무하고 말할 짬이 없소. 카바이드를 마저 깨야 해.》 형만은 작업반장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꽥 소리칠것만 같았다. 그래 부지런히 함마질을 했다. 온몸이 땀에 화락하니 젖는다. 전기로가 웅- 웅- 대며 강한 열을 뿜어대고있었다. 어느날 교대를 하고 총화를 할 때 진응원은 민수라고 하는 용해공을 비판했다. 《민수동무는 왜 슬라크 긁어내는 일을 책임적으로 하지 않고 신입공 형만이한테까지 시켰소?》 민수는 잠자코 있었다. 형만은 그가 오늘 작업할 때 몹시 더워하며 유별나게 땀을 흘리는것을 보고 자기가 좀 대신해볼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용해작업을 하나하나 익혀가야지 시키는대로만 했다가는 언제가도 용해공이 될것 같지 못해 안달아 하던 형만이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 민수에게 자기가 좀 해보겠다고 했더니 제꺽 쇠장대를 내주는것이였다. 쇠장대를 들고 곰배를 원료투입구로 들이밀며 로에 접근하던 형만은 확확 풍겨나오는 고열에 얼굴이 금시 델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가리웠다. 그때 뜨거운 바람을 마셨다. 형만은 온몸이 불길에 휩싸이는듯 했고 눈이 부시여 끓는 쇠물조차 들여다 볼수 없었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 곰배질은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나무토막이 다 타버리였고 쇠장대는 엿가락처럼 녹아서 휘여들었다. 이것을 진응원이가 보았다. 그는 형만이를 옆으로 밀쳐버리고 다른 쇠장대로 자기가 곰배질을 했다. 그러다가 그것을 민수에게 넘겨주고 말없이 돌아섰던것이다. 《좋게 보면 신입공에게 기능을 배워주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할수 있겠는데 그렇다면 배워줄바에는 잘 배워줘야지. 옆에서 가르쳐주어야 한단말이요. 그저 쇠장대를 쥐여주고 하라 하면 해내겠소?》 《…》 민수는 여전히 잠자코 있었다. 형만은 자기때문에 민수가 비판받는것 같아 일어서서 사실은 자기가 요구했었다고 변명하고싶었으나 참았다. 태호가 제기했다. 《반장동무, 한 댓새 시간을 받자고 하는데…》 《무슨 일로?》 《처를 데려오자고 그러오. 일전에 얘기했었지요.》 반장은 생각에 잠겼다. 형만은 의용군출신인 태호가 농촌녀자를 색시로 얻었는데 집이 없어서 데려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래서 그에게 은근히 동정을 품고있었다. 《태호동무.》 하고 반장이 말했다. 《지금 월말전투를 긴장하게 하고있는데 다른때 시간을 받으면 안되겠소?》 《월말이 지나면 월초고 그러면 월초는 월초대로 바쁘지 않소? 내 생각에는 우리가 언제 한번 한가해본적이 없는것 같은데?》 태호도 이제는 참을대로 참은것 같다. 《집은 있소?》 반장이 물었다. 《남의 집 웃방살이라도 해야지요.》 《사실 우리 작업반이 언제 한번 한가해본적이 없고 한kg의 강철이라도 더 뽑아내려고 매일같이 뛰고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3호로가 직장적으로 가장 앞서고있고 우리 작업반이 생산실적에서 언제나 첫 손가락에 꼽히고있지요. 그렇지만 자만할 근거는 없습니다.》 진응원이 작업반원들을 향해 말했다. 《다른 작업반들과 로들이 우리를 바싹 뒤따르고있고 자칫하면 우리를 앞설수도 있습니다. 우리만이 혁신하고있는것이 아니며 우리만이 달리고있는것이 아닙니다. 또 올해계획을 하자면 지금처럼 해서는 힘들것 같습니다. 사실 나는 요새 우리 작업반이 답보하고있는것만 같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반장은 형만이가 보건대 일욕심이 끝없을상 싶었다. 태호는 시간을 달라는 말을 더 못했다. 그는 어질고 무던한 사람이였다. 한번은 퇴근하는 길에서 민수가 형만이에게 말을 붙이였다. 《형만이는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기수자격을 가지고있다지?》 《예. 기수자격을 받았습니다.》 《부럽구만. 그런데 형만이는 기수가 왜 로에 와서 일하나? 기술부에 가앉아있어야지. 로에서 일해가지고는 공부를 더 못하고 발전도 못해. 그저 밤낮 쇠를 녹이는 일에 부대끼며 세월을 보내지.》 형만은 글쎄 모르긴 하겠지만 기술부에 자리가 없던가 현장단련을 거친 다음 데려가려하는것 같다고 대답했다. 《내야 그저 하란대로 했지요. 난 전기로에서 일하고싶었습니다. 그러니 반대할 근거가 없지요.》 《그래 전기로에 오니 어때?》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어서 용해공이 되고싶습니다. 톱으로 나무토막이나 자르려고 전기로에 오지는 않았으니까요.》 《처음에는 그런것부터 해야 해. 일에 재미를 붙이라구. 로동자야 그것밖에 있나?》 그는 어쩐지 쓸쓸해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후에 민수는 결근을 했으며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라 한주일간 계속했다. 반장이 합숙생들에게 알아보니 집이 있는 룡강으로 갔다는것이다. 반장은 이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안했다. 이날은 반장이 더 일에만 전심하며 땀에 흠뻑 젖어가지고 돌아쳤다. 얼굴빛이 컴컴한게 좋지 않았다. 그날 오후였다. 반장이 천개를 들고 파철을 집어넣기 위해서 기중기를 찾았다. 기중기는 4호로우에 머물러있었다. 《형만이, 가서 기중기를 가져오라.》 그가 소리쳤다. 형만은 대답하고 기중기를 끌어오려 4호로쪽으로 뛰여갔다. 그리고 아래에 드리워져있는 기중기고리를 잡으려는데 거기 서있던 4호로 로장이 형만의 손목을 잡으며 사정을 했다. 《꼬마, 저걸 봐라. 전극이 부러졌다. 당장 교체해야 한다.》 형만은 바로 그 일때문에 기중기가 4호로에 가 서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극을 빨리 교체해야지 지체했다가는 생산에 큰 지장을 준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예. 그럼 전극을 교체한 다음에 우리가 씁시다.》 진응원은 헐떡이며 수건으로 목에 질벅한 땀을 씻으면서 형만의 설명을 듣더니 《이거 야단났군!》 하고 실망하는것이였다. 전기로 호상간에 기중기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매일 있었다. 기중기를 제때에 끌어다 쓰는것이 생산을 많이 내는데서 중요했기때문이다. 여기서 진응원은 절대로 남한테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군. 내가 있어야 하는건데.》 중얼거리던 진응원이 형만에게 질책했다. 《이악해야 해! 남한테 선심쓰다가 원료투입이 지체되지 않았나?》 형만은 변명하려 했다. 《그렇지만…》 《교훈을 찾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겠어!》 순간 형만은 울컥 치미는 울분을 걷잡지 못했다. 자기가 이악하지 못하거나 자기 작업반의 리익을 생각하지 못한탓에 기중기를 양보한것은 아니지 않는가. 외아들로 태여나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마음껏 배짱을 길러온 형만이였고 밖에 나가 싸움을 해서 진적이라고는 없는, 자신에 대한 긍지가 높은 형만이였다. 신입로동자로 진응원작업반에 배치되여와서 제일 하찮은 일과 별별 심부름을 다하면서도 작업반에서 그중 어리고 기능도 없으니 어쩔수 없는것으로 인정하면서 속히 기능을 배우기 위해 기능공들의 《천대》와 모욕을 이겨가며 이악하게 애쓰고있는 형만은 지금 그 모든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나는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남의 어려운것을 도와주라고 배웠지 내가 먼저 하겠다고 남의걸 빼앗으라고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반장동무는 너무합니다.》 하고 그는 격해서 소리쳤다. 진응원은 이 신입공의 뜻밖의 항변에 아연해서 눈을 껌벅이며 그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섰다. 그의 말이 옳았던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한 말이 가슴을 파고들면서 진응원은 심각히 그것을 음미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이후로 두사람사이는 어성버성해진것 같았다. 반장은 형만이에 대해서 작업지시외에는 다른 말을 안했고 형만은 총화때 못했다는 소리를 듣지 말며 남한테 뒤지지 않으려고 더 극성스럽게 일에 달라붙었다. 8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수 없게 땀에 푹 젖어 달려다녔다. 집에 갔던 민수가 불쑥 나타나서 일에 붙었는데 반장은 그 사람에 대해서도 따져묻거나 추궁하지를 않고 형만이를 대하듯이 방임상태에 두는것이였다. 한번은 형만이가 큰 사고를 저질렀다. 민수와 함께 로밑에 내려가서 슬라크남비에 슬라크를 받아 밖으로 내가는 작업을 하게 되였는데 이 일도 고열을 내뿜는 슬라크를 다루는 일이라 헐치 않았다. 도대체 전기로에서 하는 일은 어느것이나 다 헐한것이 없었다. 기중기가 고리를 내려보냈다. 민수와 형만은 량쪽에 갈라서서 고리들을 잡아 남비의 네귀에 걸어주었다. 그런데 너무 뜨거워서 형만은 고리 하나를 채 걸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남비가 뜨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내뛰라!》 민수가 벼락같이 소리치며 먼저 내뛰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민수는 남비허리에 금이 간것을 그때 발견했던것이다. (그 금은 이 순간에 갑자기 간것이 아니였다.) 만일 7톤이나 나가는 남비가 버그러지면서 거기에 담은 5톤이나 되는 슬라크가 쏟아져내리는 날이면 그들은 참혹한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그런 무서운 일이 실지로 벌어졌다. 남비가 버그러지면서 슬라크가 로밑에 고여있는 랭각수우에 쏟아져내렸다. 굉장한 폭발이 일어났다. 사고가 일어난 조괴장은 말할것없고 온 직장안이 구름처럼 솟아오른 먼지와 재와 증기로 꽉 차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폭발순간의 굉음은 온 제강소의 구내에서 다 들었다. 사무실에서 지배인이하 모두가 주먹을 부르쥐고 달려왔다. 첫순간이 지나가자 폭풍에 밀리워 넘어졌던 민수가 뛰쳐 일어나 로상으로 달려올라오다가 진응원이와 부딪쳤다. 《저기 형만이가!…》 민수가 재와 증기가 그냥 뭉쳐 돌아가는 조괴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뭐야. 슬라크에 깔렸어?》 《그런것 같소!》 온몸에 재가 들씌워져 얼굴을 알아볼수 없게 된 민수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며 초점 잃은 두눈을 허둥거리였다. 진응원은 번개처럼 쇠장대를 찾아쥐고 작업반원들에게 형만이를 구출해내자고 웨치며 아래로 달려내려갔다. 아직도 물속에서 부글부글 끓고있는 슬라크를 파제끼기 시작했다. 작업반원들이 합세했다. 모두 제정신들이 아니였다. 형만이가 슬라크밑에 살아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 그의 시체를 찾아내는 작업이였다. 진응원의 머리속에는 오만가지 후회가 감돌고있었다. 그한테 왜 이런 위험한 일을 시켰던가. 다른 손이 없었고 또 쇠고리만 걸어주면 되는 일이라고 간단히 여기였었다. 옆에서 민수가 자기 불찰이라고 했다. 남비가 뜰 때 금이 간것을 보고 기중기에 먼저 신호해야 하는건데 다급해져서 내뛰여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때렸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모두 비애에 잠겨 슬라크를 헤치고있었다. 진응원은 꼬마가 자기에게 항의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진응원은 신음소리를 냈다. 확실히 자기에게는 자기 교대만을 생각하는 교대본위주의가 있다. 형만이가 옳게 비판했다. 때묻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본 결함이였다. 형만이! 그런데 나는 아직 그애가 어디 출신이고 부모는 있는지, 강선에 와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았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한적이 없지 않는가. 형만이! 일밖에 모르고 자기 교대밖에 모르는 이 진응원이를 원망하라구!… 옆에서 영실이가 소리를 죽여가며 훌쩍거리고있었다. 누구도 영실이를 탓하지 않았다. 어느덧 재와 먼지와 증기가 많이 가셔지고 주위가 밝아졌다. 이러한 때 그들의 등뒤로 꼬마 형만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재와 물이 범벅이 된 얼굴이며 작업복이며가 누구도 그를 형만이로 알아볼수 없게 했다. 《반장동지, 내가 잘못해서… 저를 처벌하십시오.》 형만이가 말했다. 그는 폭풍에 날려갔다가 정신을 차리자 자기가 쇠고리를 하나 마저 걸지 못했기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자책감으로 몸부림치며 로상으로 달려올라갔었다. 증기에 덴 얼굴과 손의 쓰림, 공중으로 휘뿌리여졌다떨어지며 상한 상처의 아픔은 생각할 틈이 없었다. 엄청난 사고를 저질렀으니 작업반장이 무섭게 성을 낼것이다, 빨리 가서 보고해야 한다 하는 자각뿐이였다. 형만의 목소리도 뜻밖이였지만 영실이가 와- 소리치며 울음을 새로 터치는 바람에 모두 깜짝 놀랐다. 영실이가 형만을 붙잡고 울고있었다. 진응원이와 그의 반원들이 손에 쥐고있던 쇠장대며 삽들을 내던지고 달려가 형만이를 부둥켜 안았다. 그때에야 긴장이 풀린 형만이가 정신을 잃고 재차 쓰러졌다. 진응원은 형만이를 찬물이 고인 웅뎅이에 들어다 잠그게 하고 작업복상의를 벗기고 얼굴을 씻어주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폭발소리를 듣고 뛰여온 지배인 리웅천이 이때에 현장에 당도했다. 《인명피해는 없소?》 그의 첫 물음이였다. 《예. 이 애가 좀…》 《이 애는 누구요?》 《신입공입니다.》 그러는데 형만이가 눈을 떴다. 리웅천은 빨리 제강소 진료소로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일없습니다. 일할수 있습니다.》 형만이가 작업복을 찾으며 말했다. 진응원이 자기의 작업복을 벗어 입혀주며 태호더러 진료소에 데리고가라고 했다. 태호가 형만이를 업으려 하자 형만은 안업히겠다고 떼질을 썼다. 《조꼬만게 고집이 보통 아니구만! 어서 진료소에 가지 못해?》 리웅천이가 꽥 소리쳤다. 태호의 부축을 받으며 형만이가 떠나는데 영실이도 따라갔다. 형만은 《일없다는데 쳇! 막 강제로 이러는구만.》 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두덜댔다. 《영실이, 넌 왜 따라오는거야?》 형만은 조괴장을 나서며 이번에는 처녀에게 화풀이를 했다. 《이건 뭐 내가 어린앤줄 아는 모양이지? 쳇, 정 그러면 내 혼자 간대두. 너 그냥 징징 울며 따라오겠어?》 태호도 영실이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해서 처녀는 원망어린 눈으로 형만이를 바라보고는 돌아서고말았다. 형만이에 대해 이야기들을 했다. 《반장동무.》 당분조장이 어딘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목숨을 겨우 건진 형만이가 살아났다는 기쁨에 앞서 사고를 저지른 죄스러움에 몸이 달아서 반장동무앞에서 처벌해달라고 했을 때 생각이 많았습니다. 내 언젠가 말했지만 반장동무가 일욕심을 내고 반원들을 세차게 다루는것이 리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반장을 무서워해서야 되겠습니까.》 진응원은 당분조장이 정통을 찔렀다고 인정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잠자코있었다. 무슨 일에서나 가볍게 반응하는 진응원이 아니였다. 리웅천지배인은 사건의 전말을 다 듣고나서 사고자체에 대해서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당분조장이 한 충고를 지지했다. 《반장동무의 잘못을 당분조장동무가 바로 지적했소. 동무는 일밖에 몰라. 글쎄 그게 중요하지. 일을 많이 하는게 기본이지. 일에 투신하고 창의고안과 합리화안을 내놓아 생산을 높이는것이 중요하오. 진응원동무가 내놓은 용해시간단축과 로의 수명연장을 위한 기술혁신운동이 야금부문에서 일반화되고있고 생산혁신자들이 동무의 뒤를 이어 속출되고있는것이 얼마나 자랑스럽소. 혁신운동의 앞장에 서있는 진응원동무를 우린 자랑하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다른 용해공들과 작업반들이 진응원동무를 따라서고있는 반면에 동무네 작업반은 더 전진을 못하고 있단말이요. 그래서 동무도 안타까와하며 반원들을 더욱 세차게 다몰아댄다는데, 반원들이 스스로 혁신을 일으키도록 해야 하지 않겠소? 반장의 눈치를 보며 일하게 해서는 안되오. 수상님께서 우리 제강소에 오시여 간곡히 당부하신 말씀을 명심해야 하겠소. 수상님께서는 로동계급의 심장에 불을 지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소. 심장이 뜨거워야 한다고 하시였소. 그렇게 해서 집단적인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시였소. 수상님께서 각이한 경로를 거쳐온 사람들을 다 믿어주시고 강철과 강재생산에 궐기하도록 호소하신 참뜻이 바로 그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그는 숨을 몰아쉬고나서 계속했다. 《독불장군이란 말이 있지. 작업반원들을 따뜻이 이끌어주어 모두가 심장이 뛰게 하는데서 작업반장이 중요하지. 교양사업은 당분조장이나 하는것으로 생각해선 안돼.》 진응원은 깊은 자책에 잠겨있었다. 교대가 끝나자 그는 형만이가 있는 로동자합숙으로 향했다. 걸어가며 그는 생각했다. 수령님의 믿음과 당부에 대해 되새기였다. 수령님께서는 귀환병인 자기를 작업반장으로 내세워주시였고 혁신자로 키워주시였다. 수령님의 신임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진응원이가 어떻게 오늘처럼 혁신운동의 앞자리에 설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자기는 자기 혼자만 애쓰려 했지 작업반장으로서 반원들을 보살펴주고 따뜻이 이끌지 못했다.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일하지 못했다. 수령님께서는 강철로동계급은 심장이 커야 하고 뜨거워야 한다고 하시며 우리모두가 천리마를 타고 달려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지금처럼 해가지고는 우리 교대가 천리마를 탈수 없다. 새롭게 시작하자!) 결심이 새롭게 서자 그는 흥분하였다. 심장이 활활 달아올랐다.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여 어느덧 합숙에 당도했다. 합숙에는 지금 형만이가 누워있을것이다. 태호가 진료소에서 응급처치를 한후 형만이를 합숙에까지 데려다주고 왔다고 했었다. (이 합숙에 우리 작업반원들인 민수와 형만이가 기숙하고 있는데 나는 한번도 와보지 못했지. 민수가 한주일동안 제 집에 갔다왔는데도 그와 이야기조차 나누어보지 못했다. 제발로 다시 나타났으니 됐다 하고 그냥 일을 시켰다.) 형만이에게도 용서빌것이 있었다. 그가 기중기를 끌어오지 못했다는 반장의 질책에 항의를 한후에 어떻게 하든 잘해서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며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확연히 알리였었다. 누구보다도 반장에게 자기는 결코 건달군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주려하는것 같았다. 진응원은 자기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을뿐아니라 깨끗한 마음에도 아픔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진응원이 호실을 물어 찾아들어가자 누워있던 형만이가 황황히 일어섰다. 진응원이 앉으며 말했다. 《형만이, 여기 앉으라구. 좀 어떻나?》 형만이는 쾌활하게 대답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난 어려서부터 장난이 심해서 이보다 더한 고비도 여러번 넘겼습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반장동지한테 미안합니다. 사고를 저지르고 일에 지장을 주고… 오늘 출강을 제대로 했습니까?》 진응원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난 작업장에 나타나면 또 고집 부린다고 욕할것 같아서 그냥 누워있었습니다.》 《형만이!》 하고 진응원이 그의 이름을 애정에 넘친 어조로 불렀다. 《내가 지내 작업반원들을 몰아대지? 칭찬은 안하고 욕만 하지?》 형만이가 벌쭉 웃었다. 《영실이가 그러는데 반장동지는 뒤가 없답니다.》 진응원은 허허 웃었다. 《형만이는 내가 한톤의 강철이라도 더 뽑아내려고 그러는것이지 사리사욕이나 채우자고 그러지 않는다는걸 리해하겠지? 응?》 《그거야 더 말할것 있습니까. 나도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너무 내몬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존심이 발동되면서 이 작업반에서는 어물거리거나 남의 뒤에 서면 안되겠다, 이를 악물고서라도 따라서야 하겠다, 머저리가 아니라는걸 보여주어야 하겠다. 이렇게 채심하게 됐습니다. 이게 좋은게 아닙니까. 일을 많이 하자고 하는건데… 작업반장의 손탁은 그렇게 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형만이! 반장은 손탁만 세서는 안된다는걸 난 최근에 느끼게 됐어. 오늘 지배인동지한테서도 내가 비판을 받았어.》 진응원은 형만이와 흉금을 터놓고 한동안 이야기하였다. 형만은 고향도시 김책에서 일할수 있었지만 전국에 소문이 난 강선제강소에 가서 청춘의 꿈을 실현해보려고 먼 길을 떠나온 희망이 큰 청년이였다. 그 청년의 꿈이란 격동하는 시대에 자기도 한몫 하는것이였고 혁신자로, 로력영웅으로 이름을 떨치자는 열망이였다. 그러한 시야로 볼 때 자기 교대, 자기 전기로만 생각하는 작업반장이 왜소하게 느껴질수밖에 없는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 교대에 출강을 하며 그것도 남보다 많이 하려는 욕심에서 뒤교대와 다른 전기로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으며 교대에서 출강을 하고 시간이 남는 경우에도 뒤교대를 위해 유리한 조건을 지어줄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채 인계하군 했다. 《형만이, 우리 교대본위주의를 없애자구.》 하고 진응원이 말했다. 물론 교대본위주의를 없앤다는것이 쉽게 될 일이 아니다. 그에 앞서 우선 자기 교대가 뚜렷하게 일을 많이 해야 하며 작업반원들의 사상의식이 높아져야 하고 합심이 되여야 하는것이다. 형만이와 헤여져 집으로 온 진응원은 저녁상을 차려들여온 안해 은옥에게 지금 당장 자기가 밥먹는 사이에 제강소 합숙 몇층 몇호에 가서 형만의 작업복과 내의들을 가져오라고, 그래서 빨아서 말리워 아침에 가져다주라고 했다. 은옥은 갔다가 빈손으로 왔다. 벌써 배전공 영실이가 와서 다 걷어갔다는것이다. 은옥은 웃으면서 합숙사람들이 하던 말을 전했다. 영실이가 나타나자 형만이가 이거 정말 창피스럽게 노는구만 하며 처녀를 쫓아버리려 했다. 그러나 영실은 기어이 빨래감을 빼앗아가지고갔다는것이다. 은옥이가 나타나자 형만은 얼굴이 빨개져가지고 《아, 그게 글쎄, 창피스럽게. 처녀라는게 남자합숙에까지 와서!》 하고 두덜댔다. 그후 하루는 형만이가 로간부에 불리워갔다가 왔는데 진응원반장에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 보고 이제는 자기 자리, 말하자면 기술과지요. 거기 가서 일하지 않겠는가구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기수자격증을 주면서 가지시오 하고는 돌아서구 말았습니다. 난 여기서 절대 다른데로 안가겠습니다.》 《고맙다, 형만이!》 진응원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진응원은 은옥이와 토론하고 태호의 처를 데려다 자기 집 웃방에 거처시키기로 했다. 태호가 마침내 시간을 얻어 농촌에 있는 안해를 데려왔다. 태호와 그의 처는 몹시 미안해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번 했다. 진응원은 태호의 처가 집에서 그저 놀것이 아니라 국가에 유익한 일을 하면서 생활도 보장하도록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새끼꼬는 기계를 구해다 주었다. 그후부터 태호는 가정에 대한 근심이 없이 오직 일에만 전념할수 있었다. 일 잘하고 무던한 태호가 황소처럼 힘을 쓰며 쉬지 않고 일을 하니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더 열성을 내였다. 그런데 민수만은 좀처럼 진응원에게 속을 주지 않았고 여전히 드문드문 작업장을 뜨군했다. 순진한 형만이와는 달라서 고급중학교까지 다녔다는 로총각인데 그의 속을 들여다보기는 과연 힘이 들었다. 반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일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였다.
지배인은 다시 찾아온 《로동신문》기자들을 로동자정양소에 데리고가서 국수대접을 시켰다. 《우리 제강소에 왔던 손님치고 이 유명한 메밀국수를 들지 않고 간 사람은 거의 없었소. 만일 그냥 간다면 두고두고 후회할수 있소.》 리웅천이 자랑하였다. 《그렇습니까?》 기자들은 국수를 기다리며 이야기했다. 《수상님께서 12월전원회의가 있은후 이곳에 오시여 강재 9만톤의 예비를 찾아주시며 천리마를 탄 기세로 내달리자고 호소하셨다지요?》 곱슬머리 기자가 물었다. 《그렇소. 바로 그거요. 천리마! 내가 기자동무들을 도와주겠다고 장담했는데 그건 내가 무슨 뛰여난 표현을 찾아냈기때문이 아니였소. 그때 수상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은 현실화되고 있소. 우리는 천리마를 타고 달리고있소.》 리웅천이 말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국수가 들어왔다. 《천리마!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전설의 천리마는 수상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조상때부터 써온 빨리 달린다는 상징적술어입니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면모를 가장 적중하고 독특하게 우리 인민의 민족적감정과 구미에 맞게 표현한것입니다.》 《중요한건 그 내용이요. 자, 국수들을 드시오.》 리웅천이 국수를 권했다. 《예, 사람은 그 사람들인데 달라졌다고 했지요? 옳습니다. 복잡한 경력의 대표적인물인 진응원반장이 전국적으로 이름난 혁신자가 되였고 이어 그가 제뿔뿔이였던 각이한 인간들인 작업반원들을 단합시키고 이끌어 집단적혁신을 일으키는 이 사실 하나를 가지고도 천리마를 타고 내달리자는 구호의 생활력을 잘 알수 있습니다.》 곱슬머리기자는 국수먹을 생각도 잊은듯 흥분되여 말했다. 《이것이 내용입니다. 새 인간들이 태여나고있습니다.》 《국수가 풀린다니까.》 《예, 먹겠습니다. 지배인동지, 나는 벌써 우리들이 신문에 써내야 할 글의 사상과 기본 틀거리를 다 구상했습니다. 오늘 밤중으로 쓰겠습니다.》 《그것도 천리마속도군.》 《예, 하하, 그렇군요.》 모두들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덧국수까지 깨끗이 먹어치웠다. 《로동신문》에 곧 《천리마》라는 제목의 글이 나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글은 천리마시대인간들의 사상정신상태와 도덕적풍모에 대하여 썼다. 《…우리의 생활이야말로 나래돋힌 천리마처럼 내닫는가싶었다.… 당이여! 조국이여! 나래돋힌 우리의 생활이여! 짙풍처럼 내달리자.》 독자들의 입에 천리마라는 말이 오르기 시작했다. 선전물의 힘은 큰것이였다. 두사람이 또 리웅천지배인을 찾아 평양에서 왔다. 체소하고 턱이 뾰족한 사람이 자기 소개를 했는데 시인 박세영이라 했다. 《아.<애국가>를 쓰신?…》 리웅천이 반기는데 시인은 같이 온 작곡가를 소개하며 노래를 지으러 현실에 왔다고 말했다. 후에 곡이 잘 안되자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작곡한 김원균이 또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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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왔다. 강기룡이한테서.》 길옥실이 저녁에 퇴근해가니 어머니가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아, 강기룡동무! 서평양철도공장에 다니는 그는 해주-하성사이 광궤철도부설공사장에 자원진출하였다. 제대되여 갈 곳이 없어 공장합숙생활을 하던 그는 전우가 사는 옥실이네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있었다. 어머니가 그리고 때때로 옥실이도 그의 옷을 빨아주었고 그를 자기 집안사람처럼 극진히 대해주었다. 그는 옥실이와 함께 시내구경도 했고 식당에 들어가 회국수도 먹었다. 키가 큰 기룡은 몸매 작은 옥실이가 하자는대로 하였다. 옥실의 투정도 허허 웃으며 받아주었다. 기룡은 옥실이가 마음에 들어 그의 요구라면 다 들어주었고 요구하지 않는것도 스스로 생각해서 해주었다. 화장품통을 사다주었다. 길옥실이 의아해하자 《선물이요. 동무는 나한테 털장갑을 사주었는데 보답이 있어야지.》 하며 점직해하였다. 《해주-하성》으로 떠나기 전날 찾아온 강기룡은 밤교대를 끝내고 집에 있던 옥실이를 데리고 시내로 나갔다. 대동강의 흐름을 거슬러 강안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사진관이 눈에 띄우자 기룡이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찍자요.》 옥실이가 좋아하며 찬성했다. 사진관에 들어간 그들은 단풍이 물든 금강산경치를 배경으로 한 긴 걸상에 앉았다. 《약혼사진입니까?》 사진사가 물었다. 길옥실이가 얼굴이 빨개지며 내쏘았다. 《아니예요, 우리 오빠예요.》 《아, 그래요?》 사진사는 시커먼 천을 뒤집어썼다. 《어깨를 바싹 붙이시오.》 강기룡은 시물시물 웃으며 옥실이쪽으로 몸을 기울이였다. 사진관에서 나오며 옥실이는 기룡에게 이건 기념사진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자기는 다른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기룡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구말구요.》 해주-하성간철도공사장에 간 강기룡은 길옥실이한테 여러번 편지를 보내여왔다. 물론 옥실이도 회답을 매번 했다. 《얼마나 방대한 공사인가.》 첫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토량만 해도 신의주-부산사이 거리에 1메터 높이와 폭을 가진 뚝을 쌓을만한 량이고 수백개의 로반구조물을 새로 건설해야 하오. 왜정때 같으면 3∼4년 걸려야 한다는데 우리 건설자들은 1년동안에 해제끼자고 궐기했소.》 《벌써 한달이 지났소. 어떻게 한달이 지났는지? 그간 일도 많이 하고 모습도 무척 변했소. 아마 옥실동무는 지금 나를 만나면 누군지 몰라볼거요. 모두들 새까맣게 타고 이발들만 번뜩이오. 우리는 목도를 메고 걸어가는것이 아니라 달리고있소. 로동생산능률 하루 평균 300프로, 착공해서 한달어간에 100리구간에 로반성토작업을 진행했소. 우리는 신심을 가지고 래년 5.1절이 아니라 올해 8.15까지 이 공사를 끝내기로 다시 결의했소.》 《옥실동무, 그간 잘 있었소? 동무가 보낸 편지를 잘 받았소. 아, 얼마나 기쁘던지! 하지만 시간이 없어 오늘에야 회답을 쓰오. 용서해주오. 내 마음은 언제나 옥실동무에게로 가있소. 나는 진정으로 동무를 사랑하오. 8.15지나 공사를 끝내고는 지체없이 달려가겠소.》 오늘 편지의 내용이였다. 《지금 밤이 깊었소. 피곤하오. 모두 잠에 빠졌소. 이건 사실 말하자면 <강제취침>인데 보초까지 섰소. <도적작업>이 심해서 단속하는거요. 나는 소대장의 명분으로 보초의 <승인>을 얻어 식당칸에서 이 편지를 쓰오. 이 밤중으로 쓰지 않고는 견딜수 없기때문이요. 이 소식을 옥실이한테 전하는것을 지체하는것은 용서받을수 없소. 옥실동무, 나를 축하해주오. 나는 우리 공사장을 찾아주신 김일성수상님을 만나뵈왔고 수고한다는 치하의 말씀을 받았소. 우리는 학현-신주막사이에서 로반성토작업을 하고있었소. 이때 누군가 수상님께서 오셨다고 소리쳤소. 과연 공화국기발과 민청기발, 돌격대기발들이 바람에 날리고있는 공사장으로 수상님께서 간부들과 함께 걸어오고계시였소. 수상님께서 황해남도를 현지지도하고계신다는 말을 듣고 혹시 우리 공사장에도 들리시지 않을가 모두 이런 희망을 품고있었는데 그 희망이 현실로 된거요. 그때 우리는 웃통을 벗어제끼고 잔등들에 내돋는 땀을 해볕에 번뜩이며 따찌까를 몰고 달리기도 하고 목도를 메고 뛰기도 하고 함마질도 하던중이였는데 일시에 일손을 놓고 만세의 함성을 웨치였소. 그러면서 다급히 작업복저고리를 껴입고 철도제모를 쓰기에 분주했소. 그러는 사이에 수상님께서 가까이에 오시였소. 우리는 수상님을 향해 마주 달려갔소. 수상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였소. <동무들! 수고합니다.> 그러시면서 썩살이 박이고 터진 우리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였소. 너도나도 손을 내미는통에 두손을 다 우리들한테 맡기시였소. <수상님, 건강하십니까?>, <수상님, 먼길에 수고로이 오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마끔 인사를 드리는데 나도 눈물속에서 인사를 올리였소. 수상님께서는 웃으시며 머리를 끄덕이시며 인사들을 받아주시다가 <8.15전으로 다 해제끼기로 결의다졌다지?> 하고 통쾌한 어조로 물으시는것이였소. <8.15전에 꼭 완성하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힘차게 대답드렸는데 그것은 나 혼자의 대답이 아닌 모두의 합창소리였소. 수상님께서는 동무들이 한달사이에 해놓은것을 돌아보니 8.15전으로 할수 있겠다는 신심이 든다, 동무들은 우리 나라 력사에 없는 빠른 속도로 철도건설을 하고있다, 세계에 없는 기적을 창조하고있다, 나는 우리 청년들을 자랑한다, 이렇게 치하를 하시였소. 그리고 우리들과 친근하게 담화를 하시였소. 일이 힘들지 않는가. 배는 고프지 않는가 물으시다가 <신발이랑 제대로 공급되오?> 하고 해진 작업신발을 신은 청년을 보시며 물으시였소. <잘 공급됩니다. 저는 원래 신발을 험하게 신습니다.> 그 친구가 이렇게 말씀드려 모두 웃었소. 수상님께서도 같이 웃으시였소. 정말 수상님께서는 어찌도 소탈하신지 모두 어려움을 잊고 속에 있는 말들을 다하였소. 후에 들었는데 수상님께서는 우리들과 담화를 마치시고 곧바로 우리들의 숙소인 천막들을 찾아보시였고 식당에 들리시여 우리가 먹는 그대로의 밥과 국, 반찬을 친히 맛보시였다오. 급식량을 높이고 팥밥도 해주라, 고기, 기름, 물고기를 더 공급해주라, 무엇을 아끼겠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였소. 건설지휘부 일군이 자랑삼아 청년건설자들이 하루 4시간 자기운동을 한다고 말씀드리자 수상님께서 그를 책망하시였소. <4시간 자는 운동은 좋은 운동이 아니요. 잠자는 시간을 7∼8시간으로 하고 일할 때에 능률을 높이도록 해야 하오. 4시간 자는 운동은 그만두시오.> 그랬지만 수상님께서 다녀가신후 우리들의 기세는 더 높아져 아예 잠을 잊은듯 했소. 그래 지휘부에서는 하루 무조건 7∼8시간 자도록 엄격히 통제할데 대한 지시를 떨구었소. 그래도 잘 집행되지 않고 <도적작업>이 생기자 보초까지 세우게 된거요. 우리는 한번의 발파로 9만산을 들어내는 통쾌한 전투도 했소. 우리 건설자들이 지어 읊은 시가 있소.
밤사이에 산 간데 없다 솟는 해야 놀라지 말라 너 잘동안 우리 중대 큰 산, 긴 강 들어옮겨 십리 철길 닦았노라
옥실동무, 오늘 편지가 좀 길어졌는데 어쩔수 없소. 정말 동무에게 전할 소식이 많소. 하지만 그건 후에 만나서 말합시다.》 편지를 다 읽고난 길옥실은 강기룡에 대한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야, 나도 언제면 일을 잘해서 수상님을 만나뵙게 될가. 아니, 꿈이야 꿈! 영웅이 되기전에는 안될거야. 영웅! 그것도 꿈이지.) 옥실이는 공상에 잠겨 밤가는줄 몰랐다. 기룡이는 공사장으로 떠날 때 역에 배웅나온 옥실이에게 《우리가 찍은 사진을 약혼사진으로 치자구.》 하고 용기를 내여 말했다. 옥실이는 깔깔 웃으며 《약혼은 해서 뭘하고 결혼은 해서 뭘해요. 할 일이 많은데. 나는 그런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어요.》 하고 대답했었다. 그때 실망하던 강기룡의 모습. 어쩐지 지금 그 모습에 동정이 갔다. 부모형제가 전쟁때 다 희생된 사람이 아닌가. 조국을 지켜싸운 병사이며 조국의 아들이 아닌가. 홀몸이니 색시를 얻고싶겠지. 공사가 끝나면 나를 찾아와 편지에다가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데 옥실이는 또 거절할테요? 하면 어쩐다? 나는 그 동무가 마음에 들어.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고 일에 투신하고 거짓말을 모르는 사람이야. 그러나 아니야. 결혼은 안해!… 결혼을 하면 아이가 생기고 그러면 아이를 업고 다녀야 하는데 난 일을 더 하고싶어. 우리 작업반을 1등으로 만들테야…
김일성동지께서 해주-하성간 광궤철도부설공사에서 로력적위훈을 세운 모범일군들에게 표창장과 선물을 보내주시였다. 황남도국립예술극장에서 전달식이 있었다. 청년건설자들은 200여리구간에 달하는 철도부설공사를 예정기일보다 9개월 앞당겨 75일만에 끝내는 기적을 세웠다. 8월 12일 개통식이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집단적혁신운동의 새로운 모범을 창조한 청년철도건설자들을 열렬히 축하한다》라는 격려의 연설을 하시였다. 이 공사야말로 오늘 전국을 휩쓸고있는 혁명적대고조와 집단적혁신운동의 가장 뚜렷한 모범이다. (《로동신문》에서)
신문을 읽은 길옥실이는 그 많은 수훈자들속에 강기룡이도 들어있으리라는데 대하여 믿어마지 않았다. 그는 편지들에서 자기 자랑은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자기의 소대와 중대가 떨친 위훈에 대해서는 자랑했었다. 소대가 일을 잘했다면 첫째로 소대장의 공로를 꼽아야 할것이다. 옥실이는 공사를 끝낸 강기룡이가 본 직장으로 돌아오면 훈장이나 메달을 달고 찾아올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다리였다. 편지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몇번 한 강기룡은 평양에 가족과 친척이 없으니 맨먼저 옥실이한테 올것은 명백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강기룡이한테서는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한 조업식의 감동적인 소식도 수훈을 받았고 선물을 받았다는 편지도 오지 않았다. 혹시 바쁠수 있었고 인차 만나겠는데 그때 말로 하면 되는것이지 구태여 서둘러 편지를 하겠느냐는 생각을 했을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후 옥실이를 찾아왔어야 할것이 아닌가. 아무리 기다려도 강기룡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가? 마음이 변해 공사장에서 다른 처녀와 눈이 맞은것이 아닐가?… 옥실이의 초조해하는 심정을 눈치챈 오빠가 서평양철도공장에 찾아갔다. 길옥실이가 교대를 끝내고 집에 오니 오빠가 컴컴해진 얼굴로 앉아있었다. 방안에는 불안한 기운이 떠돌고있었다. 《거기 앉아라.》 오빠가 말했다. 옥실이는 가슴이 옥죄여들었다. 말없이 오빠앞에 앉았다. 오빠는 주머니에서 종이에 싼것을 꺼냈다. 그리고 말없이 펼치였다. 훈장이 번쩍! 빛났다. 강기룡은 어디 가고 훈장만 왔는가? 옥실이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국기훈장 2급이다.》 오빠가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강기룡의 위훈에 대한 표창이다.》 그리고 그는 목이 메여 더 말을 못했다. 《부상당해 입원했어요?》 옥실이가 참지 못해 조급히 물었다. 처녀는 강기룡이가 팔이 하나 떨어졌거나 눈이 상했거나 하여튼 그러루한 부상때문에 자기앞에 나타나지 못했을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래도 자기는 그를 사랑하고 그를 끝까지 돌보아주리라고 짧은 순간에 비장한 각오를 했다. 온 나라가 떠들썩하는 영웅적철도건설공사에서 불구의 몸이 되였다면 자랑스러운 일이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큰 공사이니 사고가 없을수 없다. 《우리가 하는 사회주의건설은 계급적원쑤들과의 투쟁속에서 진행되고있다.》 오빠가 옥실이의 물음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의미심장한 말을 시작했다. 《조국은 통일되지 못했고 나라는 허리가 두동강이 났지. 원쑤들은 우리의 사회주의건설을 방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해주-하성사이 철도부설공사도 청년건설자들의 영웅적투쟁으로 75일만에 완공되였지만 그 건설전투가 순조롭게 진행된건 아니야.》 당일군인 오빠의 말과 그 말을 하는 표정이 너무 엄엄해서 옥실이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숨소리마저 죽이고 들었다. 《공사가 자연과의 엄혹한 투쟁이였으니 간고했던것은 더 말할것 없고 간첩파괴분자들과 계급적원쑤들이 준동해서 난관을 겪었고 사고도 있었다고 하더라. 공사가 거의 끝나갈무렵에 이런 일이 있었단다. 강기룡이네 소대는 철교공사를 다 끝내고 이동준비에 바빴다. 그러다가 강기룡이 마지막으로 철다리를 돌아보려고 교각밑으로 가보았지. 산골물이 세차게 흘러내리는 교각밑에서 무심히 우를 쳐다보던 강기룡은 웬 검은 그림자들이 철교우에서 급급히 사라지는걸 보았다. 밤이였으니 어떤 놈들인지 알수 없으나 분명 반동놈이겠지하고 생각하는 동시에 쉭-하고 타들어가는 폭약심지를 보았다. 만일 폭발물이 튀는 날이면 철교는 파괴되고 8.15에 준공식을 할수 없게 되지. 원쑤들은 이걸 노린거야. <동무들, 철교가 폭파된다.> 기룡은 이렇게 웨치며 동뚝을 달려올라갔지. 그때 도망치던 놈들이 단도를 던져서 기룡이는 쓰러졌다!》 《엄마!》 옥실이가 비명을 올리였다. 오빠는 창백해진 옥실이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중단했다. 《마저해요. 어떻게 됐어요?》 옥실이의 공포에 질린 눈, 덜덜 떠는 턱을 보며 오빠는 그러나 기룡은 다시 일어나 폭발물을 제거했다고 말했다. 소대동무들이 달려왔을 때 그는 피에 잠겨있었다. 《아!》 한마디 짧게 웨치며 옥실이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오빠가 한쪽으로 넘어지는 동생을 급히 안았다. 동생을 눕히고 인공호흡을 시키는 한편 머리를 찬물로 씻어주었다. 어머니와 젊은 올케가 덤벼치며 거들어주었다. 얼마후 옥실이가 눈을 떴다. 해쓱해진 얼굴은 보기조차 측은하였다. 《그러니… 사망했군요.》 조용히 하는 말이였다. 오빠는 아무 대답도 안했다. 그때에야 길옥실이의 두눈에서 눈물이 솟았다. 눈물은 귀쪽으로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끝내 나한테서 대답을 못듣고 갔구나. 얼마나 그 소리를 듣고싶어했을가.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편지에 나는 동무를 사랑해요. 이렇게 써보낼것을… 그랬더라면 숨이 지는 순간에 쓸쓸하지는 않았을거야. 아, 나는 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가.) 별 후회가 다 들었다. 옥실이는 강기룡이에게 사후에 나온 훈장을 자기의 가슴에 가져다가 꼭 눌러대였다. 눈물은 그냥 솟구쳤다.
슬픔이 아무리 크다 해도 생활은 생활대로 흘러가기마련이다. 개인적슬픔을 이겨내고 집단생활의 궤도에 들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길옥실의 경우에는 작업반장으로 사업하고있었기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조사기 한대를 맡아가지고 일하는 평범한 조사공의 시절은 지나갔다. 길옥실은 작업반장이 되자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고 철이 드는것 같았다. 작업반장이 되기전에는 자기 한사람의 몫을 책임지면 되였다. 그는 그 몫을 훌륭히 감당해냈다. 그리하여 그는 작업반은 물론 직장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조사공이 되였다. 기능급수가 급속히 높아져 제일 높은 급수에 이르렀고 결근한 동무의 몫까지 두 기대를 동시에 맡아할 때도 적지 않아 로임도 제일 많이 받았다. 로임이 많고 상금도 자주 타군해서 옥실이는 그 돈으로 새옷 해입고 새 구두 사신고 그리고도 남아서 차곡차곡 저금을 했다. 건강하고 일잘하고 생활이 윤택해지고 재미가 났다. 휴식일이면 영화관과 극장에 다녔다. 처녀는 근심걱정이 없었고 입에서는 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작업반장이 되자 그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혼자서 자기 맡은 일만 잘하면 되던 시기는 지나갔다. 작업반전체가 일을 잘하도록 이끌어야 했다. 작업반원모두가 합심이 되고 손발을 맞추고 무엇보다 일을 잘하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길옥실은 뒤떨어진 반원의 기대에 붙어서서 배워주고 도와주기도 했으며 결근한 반원의 몫은 자기가 맡아 수행했다. 하지만 모든것이 욕망처럼 되지 않았다. 작업반원들이 하나같이 움직이지 못했고 결근자, 지각자, 기대를 리탈하는 현상, 사고, 하루계획미달, 오작품, 서로 싸우고 울고 뒤에서 시비질하고… 하여튼 매일 무엇이든 상서롭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전에는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으나 작업반장은 참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전에는 심상치 않게 여겼던 현상도 반장의 눈으로 보니 그저 스쳐보낼 일이 아니였다. 이제야 그는 이전 반장이 잔소리를 하고 반원들과 싸우고 하던 일들이 그럴수 있겠다고 인정하였다. 일을 잘 나오던것 같던 명옥이가 다시 결근을 하기 시작했다. 옥실이는 속이 탔다. 짜증도 났다. 아마 그래서 반장이 명옥이를 미워했을것이다. 그런데 옥실이는 명옥이에게 무슨 곡절이 있을거라고 동정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반장이 되였다해서 그러한 동정심을 줴버리면 안된다. 강기룡이를 잃은 불행을 겪고난후 옥실이는 반원들 매 사람을 그저 무심히 대하게 되지 않았다. 명옥이는 사연이 있는 녀자다. 누군가 장마당에서 그를 보았다고 했는데 결근하며 장사를 하고있지 않는지?… 옥실이는 명옥이네 집에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로동과에 들려 등메동에 산다는것을 알아냈다. 어느날 퇴근후 그는 동평양을 향해 떠났다. 그곳까지는 멀었다. 옥실이는 걷기도 하고 팔동교-송신행 뻐스를 타기도 하면서 토굴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있는 등메동에 저녁녘에야 도착했다. 명옥이네 집도 물론 토굴집이였다.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던 명옥이가 옥실이의 찾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내가 바루 찾아왔군요.》 명옥이를 보는 순간 피로가 다 풀리는듯싶었고 반갑기 이를데 없었다. 《아니, 반장동무가!》 명옥이는 반기면서도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명옥이네는 방금 저녁을 먹고 난 뒤였다. 길옥실이는 그때에야 배고픔을 느끼였는데, 하지만 방안에 들어선 그는 배고픔 같은것은 생각할 형편이 못되였다. 어둑시근하고 무슨 냄새가 불쾌하게 배여있는 방안의 한 구석에는 다리가 하나 없는 불구의 아버지가 앉아있고 아래목에는 세 어린것들이 잠을 자려고 헌 담요를 덮고 누워있었다. 옥실이는 명옥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방바닥에 앉았다. 부친은 명옥의 반장이 왔다고 반기면서도 몹시 면구스러워 하였다. 이 집은 전쟁의 상처가 깊이 남아있는 세대였다. 명옥의 어머니는 미군비행기의 기관총탄에 맞아 희생되였고 아버지는 마차를 끌고 인민군부대에 포탄상자를 나르다가 폭격에 다리를 하나 잃었다. 그리고 시외에서 석탄과 진흙을 실어다 팔아 살아가던 이 집의 기본생산수단이였던 말도 잃었다. 명옥이는 아버지와 세 동생을 먹여살리고있는 가장이였다. 그는 어려운 살림살이의 중하를 가냘픈 어깨에 걸머지고 이 먼곳에서 제사공장에 출근하고있었다. 로임으로는 부족해 장사도 한다. 불구의 아버지는 싸리바구니를 엮어서 팔아 살림살이를 보탠다. 길옥실이는 집형편을 이야기하면서 제 무릎을 어루만지고있는 명옥이의 손을 꽉 잡았다. 《명옥언니, 용서해요! 난 어런줄 몰랐어요.》 집에까지 찾아온 반장의 마음에 감심된 명옥이가 미안해서 어쩔줄 몰랐다. 《아니예요. 반장동무, 집사정이 어렵다해서 공장에 자주 결근하고 동무들이 비판한다고 신경질부리며 싸움질까지 한 내가 나빴어요. 나이도 있는것이… 옥실동무가 반장이 된 다음부터는 결근을 안하자 했는데 또!… 참 볼낯이 없어요. 래일 꼭 일나가겠어요.》 길옥실은 생활이 어렵기때문에 일을 더 많이 해서 수입을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일한것마큼 차례지는것이 우리 세상인데 결근을 자주하니 기능도 높아지지 않고 수입도 떨어지는것이라고 좋게 타일렀다. 그리고 돈을 얼마간 내놓았다. 《아니, 이러면 안돼.》 명옥이가 펄쩍 뛰며 물리쳤다. 옥실이는 웃으며 《이게 명옥언니가 번 돈이예요.》 하였다. 《나는 내가 일한것만큼 로임을 탔는데.》 《그런데 명옥언니가 결근한 날에도 기대는 돌았어요. 기대는 일했고 명주실을 생산했어요.》 명옥이는 옥실이를 이윽히 쳐다보았다. 《옥실이가 맡아 돌렸지?》 《누가 돌렸든 수입이 생겼는데 몇달을 모으니 이렇게 되는군요. 받아써요.》 옥실이는 돈을 억지로 떠맡기고 일어섰다. 멀리 뻐스정류소까지 명옥이가 따라나와 바래주었다. 밤은 깊었으나 집으로 돌아가는 옥실이는 명옥이네 집에서 받은 충격이 커서 시간가는줄도 무서운줄도 몰랐다. 48명의 작업반원들, 그 매 사람에게는 명옥이처럼 곡절도 있고 슬픔도 있으리라. 아니면 남다른 꿈과 포부를 안고있는 처녀도 있으리라. 과연 그들 매 사람들에게는 어떤 생활이 있으며 무엇을 생각하고있을가. 무슨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을가. 반장으로서 반원들을 단합시키고 생산실적을 높이자면 이것부터 알아야 할것이다. 그런데 나는 결근하면 기대를 대신 맡아돌리고 일이 서툴면 옆에서 도와주는것으로 반장일을 다 한다고 생각했었지. 그보다 먼저 반원들의 마음을 열어보아야 할것이다. 자기가 어디에 살며 집안형편은 어떤지 하는것을 전혀 입밖에 내여 말하지 않는 박채운이, 이 아름답고 어딘가 동정이 가는 처녀에게도 무엇인가 곡절이 있는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 아름다운 얼굴에 웃음이 떠돌지 않겠는가. 혹시 자기와 같은 불행과 슬픔을 가슴에 안고있지 않는지?… 그리고 순희는?… 옥실이는 반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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