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해방후편)

 

             장 편 소 설

 

 

 

                                          천  세  봉

 

( 제 36 회 )

 

 

제 15 장

 

3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이따금 강진건의 칼날같은 질문이 팽팽한 공기를 째며 방안을 즈릉즈릉 울렸다. 자기자리를 강진건에게 내주고 창밑 가죽쏘파에 몸을 파묻은 유사천은 한손을 이마에 고인채 마루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누가 법령을 제마음대로 해석하라는 권한을 주었소? 왜 얼토당토않은 새끼법령을 만들어 이 혼란을 일으키는가? 엉!》

강진건은 시종 선자리에서 유사천의 비법행위를 꾸짖었다. 그의 눈빛이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비로 쓸듯이 훑었다.

《어디 솔직히 이 자리에서 말해보시오. 유사천동문 어째서 부유 중농까지 청산이주시키지 못해 안달이 났댔는가? 그걸 좀 말해보오.》

강진건의 웅글은 목소리에 유사천은 몸을 흠칫 떨었다. 강진건이 어서 대답하라고 독촉하였다.

유사천은 겨우 얼굴을 들었다.

《제가 너무 극단을 부렸습니다. 그것은 착취계급에 대한… 증오심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결국 그런 좌경적인 행동을 하게 됐습니다.》

류창하게 열변을 토하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유사천의 목소리는 몇끼굶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맥이 빠지고 토막토막 끊어졌다.

《뭐? 착취계급에 대한 증오심때문에?》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성미인 강진건은 솟구치는 격분을 이기지 못해 움켜쥔 주먹을 공중에서 떨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앉은 유사천의 이마에서 진땀이 뿌질뿌질 내돋혀 수염이 더부룩한 얼굴이 시뻘겋게 익어버렸다.

《내 당신의 정첼 모르구 온줄 아는가? 동무들, 모두 알아두시오. 이사람은 해방이 되자 중앙기관에 들어앉은 종파놈들의 바지가랭이에 붙어서 출세를 꿈꾸어온 사람이요. 그래서 토지법령을 고의적으로 비뚤어놓는 악행을 했습니다. 토지법령을 비뚤어놓으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강진건은 목이 타들어 책상우에 놓인 주전자물을 따르어마시고 계속하였다.

《목적은 공산당을 따르는 우리 인민의 마음의 기둥을 뽑아버리고 제놈들이 모든 권력을 다 쥐여보려는 그 더러운 야욕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무도한놈들인가!

우리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토지법령을 네놈들이 감히 비뚤어놓을수 있다구 생각했는가?》

강진건의 말을 듣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저마끔 벌떡벌떡 일어나서 유사천을 당장 들어내라고 소리쳤다. 방안을 울리는 분노의 함성에 기가 질려 호랑이앞에 나앉은 강아지처럼 유사천의 사지가 바들바들 떨리였다.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라는 방안사람들의 고함소리에 못이겨 유사천은 끝내 두다리를 후들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걸음을 하며 문쪽으로 걸어가다가 피뜩 돌아섰다. 인생의 림종을 직감한 그는 무엇인가를 애원하고싶고 말하고싶었다.

그러나 그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선명하지 못하고 막연하여 맥없이 다시 돌아섰다.

김창규도 그때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방 한쪽구석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유사천이때문에 받은 재령벌농민들의 고통과 당에 끼친 손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고 죄스러웠다.

《동무들!》

창규는 강진건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쳐들었다.

《우리는 이곳 군당비서자리에 틀고앉았던 유사천의 죄행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얻게 됩니까? 그가 어떤 사람이든 장군님의 뜻과 어긋나는 지시를 할 때에는 받아물지 말고 날카로운 사상투쟁을 해야 된다는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조직부장 김창규동무와 신당리농촌위원회 위원장 조순근동무는 아주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동무들이 있기때문에 안팎의 원쑤들이 아무리 준동을 하여도 우리는 장군님의 토지정책을 잘 지켜내고있는것입니다.》

강진건이 이렇게 말하자 모인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듯 방구석에 앉아있는 창규에게 일제히 시선을 모았다.

고개를 수굿하고 앉아있는 김창규의 눈에서는 이슬기가 번쩍이였다.

(김일성장군님을 위해, 당을 위해, 인민을 위해 충실하리라!)

김창규는 얼음이 풀리는 재령강기슭에서 만나뵈웠던 그리운 장군님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을 하였다.

회의를 끝내면서 강진건은 김일성장군님의 신임에 의해 김창규가 이곳 군당비서로 사업하게 되였다는것을 전하였다.

바로 이 시각에 신당리 서만호의 집에서는 불개미둥지를 쑤셔놓은것 같은 은밀한 소동이 일어났다. 《호신병》들이 서강의 지휘밑에 달구지를 련못가쪽에 세워놓고 창고의 무기를 내다실었다. 서강은 집안의 머슴들조차 방에서 못나오게 단속을 하면서 총을 나르는 《호신병》과 마름을 주시하였다. 지주놈의 심복들은 기침도 크게 못깇고 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총을 한아름씩 가마니짝에 싸서 날라내갔는데 긴장한 그들의 얼굴에는 강한 흥분이 비껴있었다. 서강은 장총과 탄약통들을 모두 내가게 하고는 제가 직접 삽을 들고 창고에 들어가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그는 다부지게 삽질을 했다. 얼마 안있어 삽끝에 궤짝 맞찧는 소리가 났다.

《음, 있군 》

그는 삽을 던지고 끙끙 힘을 쓰며 상자를 안아올렸다. 그 상자 곁에 탄약통이 둘 있었다.

《이걸 빨리 내다실어!》

서강이 소리쳤다. 마름들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총들어간 궤짝과 탄약상자를 받아서 안아내갔다.

얼마후 무기실은 달구지는 딩겅딩겅 방울소리를 울리며 어둠이 내린 련못가를 에돌아 읍을 향해 떠났다.

《가만, 그 방울을 떼라.》

서강이 달구지를 세우며 말했다.

《예?》

마름이 무슨 소린지 몰라 서강을 돌아보았다.

《방울을 떼란말이다.》

서강이 단장으로 소의 턱주가리밑을 가리켰다. 그제야 마름은 머리를 끄덕이며 방울을 풀어서 련못에 내던졌다. 마름이 소잔등에 채찍을 얹자 방울을 떼운 황소는 머리를 주억거리며 달구지를 내끌었다.

《아니, 저것들이 어딜 가는가?》

달구지에 무기를 싣고 떠나가는것을 문구멍으로 내다보고앉아있던 장서방은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섰다. 자기는 오늘저녁 서만호가 마을에 내려가 달성서씨네 동향을 살피고 올라오라고 하기에 여적 내려가있다가 돌아왔는데 집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있을줄은 몰랐다. 그는 바깥대문밖에서 《호신병》들이 무언지 달구지에 절칵절칵 내다 싣는걸 보고는 심상치 않아서 여태 방안에 숨어앉아 문구멍으로 내다보았었다. 서강의 지휘밑에 총과 탄약상자를 들어내다 달구지에 싣는다는것을 알게 되자 가슴이 널뛰듯 하였다. 그런데 벌써 무기실은 달구지가 떠난것이다.

장서방은 어찌할바를 모르고 방안을 왔다갔다 하였다. 하는짓을 보면 틀림없이 서강이놈이 무슨 란동을 벌리려는것 같은데 이 일을 누구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궁리가 나지 않았다.

《게 장서방이 있나?》

사랑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만호의 목소리만 나면 녜예-하고 즉각에 대답하는것이 하나의 타성으로 된 장서방이였지만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서있었다.

《아니, 이 소죽은 귀신같은게 마을에 내려보낸지가 언젠데 아직도 오질 않았나?》

사랑문이 벌컥 열리는것 같았다. 금시 서만호가 단장을 휘두르며 자기방으로 찾아올것만 같아 간이 콩알처럼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문밖이 조용했다. 이때 장서방은 서만호에게서 된 꾸중을 받는 한이 있어도 당장 조순근을 찾아가서 지금 벌어진 일을 알려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마을에 무슨 변고가 생길지 모를 위태로운 시각에 자기같은 늙은게 꾸중을 받은들 어떻고 설사 죽은들 어떠하랴 하는 비장한 생각이 그를 문밖으로 떠밀었다.

장서방은 어둠속을 더듬어 조용히 대문밖을 나섰다. 머슴살이 수십년에 서만호의 눈을 그렇게 속여보기는 처음이여서 장서방은 자기의 그 발걸음이 어쩐지 기이하게 생각되였다.

 

 

4

 

조순근은 터밭머리에서 개바자말뚝을 하나 뽑았다. 옹지가 우둘투둘한 참나무 말뚝이였다. 그는 말뚝이 짧아서 지팽이처럼 짚지는 못하고 말뚝중간을 거머쥐고 비발치듯 걸었다. 그는 마을앞 야산비탈을 단숨에 넘었다. 눈섭같은 달이 벌써 오봉산너머로 떨어져서 사방이 그믐밤처럼 캄캄하였다. 그는 장서방에게서 들은 말을 리자위대에 알리고 읍으로 가는 길이였다. 마침 장춘하는 면토지개혁실행위원회에 올라가서 조순근이 혼자서 빈 농조사무실을 지키고있다가 끔찍한 소리를 전해들었던것이다. 그의 예감에는 놈들이 꼭 읍으로 갔을것만 같았다.

그는 이날 처음으로 장서방을 통해서 서만호의 아들놈이 왔다는것을 알았다. 말을 들어보니 서강이가 집에 나타난 그밤에 아들이 없어졌었다. 서분이도 서강이가 오자 어디론가 심부름을 갔다고 하는데 여직까지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조순근은 어쩐지 대복이와 서분이가 서강의 검은 손에 붙잡혀 이미 잘못됐거나 아니면 형언할수 없는 고초를 겪고있는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그 애들이 없는 이 세상을 생각하면 금시 까무라쳐 쓰러질것 같았다. 사실 서만호의 아들이 기여들었다면 그게 만만치 않은놈의 새끼다. 그놈이 해방직후부터 미국놈의 자동차를 타고 거들먹거렸는데 이번엔 이렇게 소문도 없이 기여들어 흉계를 꾸미는걸 보면 제애비 살릴 무슨 큰 꿍꿍이를 벌리자는 잡도리가 분명했다. 그가 야산굽이를 내려 벌판길로 들어서는데 앞에서 술취한 사람의 건드러진 타령이 들려왔다.

 

하 하늘은 밤괭이 눈처럼 청청한데

겨 겪은 신고 흘린 눈물

땅이 알랴 하 하늘이 알랴

 

고요한 밤길이여서 흥타령이지만 목소리가 챙챙했다. 조순근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거머쥐였던 말뚝을 내리였다.

(허, 또 술을 먹었군 )

흥묵이였다. 오늘아침 딸이 읍에 온다고 내려가더니 한밤 자지도 않고 올라오는것이다. 발바리가 앞서 뛰여오며 왈왈 짖어대였다.

《허허, 곰같은 사람이 마주온다 했더니 서 성님이유?》

흥묵은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짖어대는 발바리를 밀어던졌다.

《달구지 끌고 내려가는놈들 못봤나?》

조순근은 참나무말뚝을 짚으며 한참 서서 숨을 돌렸다. 급한 걸음에 수건 쓴 머리밑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개미 한마리 어 얼씬하지 않았어유. 서 성님, 술 먹었다구 나무라지 마시우. 난 죽어두 이젠 원이 없어유. 춘하성님이 나한텐 장구배미 차례질거라구 하지 않어유. 그거 내가 가져두 일없갔시꺄?》

《일은 무슨 일, 집난이가 왔나?》

조순근은 초조하고 급한속에서도 물어보았다.

《와 왔어유. 제길, 떡돌같은 외손주녀석 내 목마타구 타령하라구 하지 않시꺄. 허허, 그놈 끼고 엉덩판 두드려주구 올라오다가 장구배미에 누워서 노 논두렁 베구 한잠 자다가 깨났어유… 서 성님, 한대 태워유. 집난이가 줍디다.》

흥묵은 두루마기자락을 제끼고 조끼주머니에서 권연갑을 꺼내 조순근에게 내밀었다.

《이보라구, 이러고있을새 없어. 왕벌의 아들놈이 지금 총을 걷어싣구 어디로 갔네. 읍으루 내려간것 같네.》

《읍으루? 그럼 그놈새끼가 집에 와 있었시꺄?》

흥묵은 담배갑을 걷어넣으며 놀라서 소리질렀다. 대번에 술이 깨여난것처럼 풀어졌던 눈알이 말똥말똥해졌다.

《그런가보네. 이놈들이 무슨 란을 일구려나봐.》

《옳수다. 창규두 무슨 심상찮은 일이 있다구 술은 조금 마시구 올라가라구 하면서 또 군당으로 나갔어유. 읍으루 도루 가자유.》

《임잔 올라가 쉬게. 밤두 깊었는데.》

《아, 아니. 성님은 내가 술밖에 생각이 없는놈인줄 알았시꺄.》

흥묵은 조순근의 팔을 끼고 제쪽에서 먼저 걸음을 재촉하였다. 발바리도 낑낑거리며 곁묻어 따라갔다. 그들이 손을 맞잡고 읍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언덕에 올라섰을 때였다. 앞에서 덜컹거리는 달구지소리가 들려왔다. 조순근은 그 소리에 불현듯 어떤 예감을 받고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정말 어둠속으로 굴러오는것은 빈 달구지였다. 키가 꺽실한 사나이가 캡을 삐뚤서하게 쓴채 소멍에를 붙들고 지척지척 걸어왔다.

《이랴, 낄낄.》

앞에서 무슨 기척을 느끼자 그 사람은 일부러스럽게 소모는 소리를 내였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틀림없이 서만호네 흑호놈이였다. 그 불량배 싸움군이 밤중에 달구지를 몰고다닌다는 사실이 모든것을 능히 짐작하게 하였다.

(만났구나!)

조순근은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발이 우드득 갈렸다. 조순근은 말뚝을 때리기 좋게 거머쥐였다.

《영길 애비, 저게 흑호놈일세. 총을 싣고 갔던게 분명해.》

《어 어쩔가유? 저게 힘이 장산데.》

《장사문 어때. 저놈한테서 총실어다 부린델 알아내야 해. 이 개지 붙잡게. 이건 왜 그림자처럼 달구다니나.》

《놔둬유. 그래두 그게 날 제일 따르는데… 외손주한테 가지구 놀라구 떼버리구 올가 하는데두 자꾸 따라와서 데리구 왔어유.》

흥묵은 발바리를 끌어안아 두루마기자락에 감싸며 투덜거렸다.

그들은 마음을 다잡으며 달구지 올라오는 앞으로 마주 걸어내려갔다.

《아, 아니 이게 누군가? 흑호로구만… 어디 갔다와?》

흥묵이가 우뚝 서며 먼저 놀란체를 했다.

《그런데 이밤중에 당신들은 어딜 가우?》

흑호는 앞에 마주오는 조순근이를 보자 눈을 부라리였다.

《나? 나 읍에 볼일이 있어서 가네. 그런데 달구지를 끌고 어데 갔다와?》

흥묵이 입으로 일부러 술내를 풍기며 말했다.

《예, 나도 읍에 좀 볼일이 있어서 갔댔수.》

《볼일? 무슨 볼일이 있었댔나?》

《챠, 이거 왜 이렇게 갈개. 아무 볼일이면 어떻단말이야. 비키우. 달구지길을 막지 말구.》

흑호는 주먹으로 소대가리를 치며 달구지를 내몰았다.

《못간다. 너 총 싣구 읍에 갔댔지? 그걸 어데다 부려놓고 오니? 그걸 대라! 대지 않구는 못가.》

조순근이 말뚝을 거머쥐고 흥묵을 비켜세웠다.

《허허 이게? 당신이 그걸 알아선 뭘할테요. 당신 쏘아죽이자고 하는건 아니니 길을 내우.》

흑호는 조순근이 떡 버티고서서 길을 내주려 하지 않자 얼리려들었다.

《그걸 안대군 여길 지나가지 못한다.》

조순근은 다가들어 소의 멍에를 잡았다.

《이게 제 정신이야? 물본 미친개처럼 왜 지랄이야?》

흑호는 말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손에 들었던 소고삐를 들어 후려쳤다. 그바람에 고삐가 조순근의 목덜미를 때렸다. 목에서 지끈 소리가 났다. 그러자 조순근은 말뚝을 추켜들어 흑호의 머리통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평생 치고 받기를 해온 직업적인 싸움군인 흑호놈은 내려치는 조순근의 몽둥이를 날쌔게 피하였다. 그바람에 조순근은 달구지 앞채를 헛때리고 비칠거렸다. 순간 흑호는 소고삐를 내던지고 조순근의 멱을 틀어쥐며 번개처럼 들이받았다. 조순근은 벌써 말뚝을 놓쳐버리고 멱살을 들리운채 흑호놈의 이마와 주먹에 여러번 면상을 얻어맞았다. 턱뼈가 부서져나가는것 같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잘못하다간 비밀이고 뭐고 흑호놈한테 숨주머니가 결단날것 같았다. 흥묵은 싸움이 붙자 허둥거리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자기힘으로 두사람의 싸움에 끼여들어야 아무 맥도 쓸것 같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순근이 흑호에게 깔려넘어가는것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순근을 타고앉으려는 흑호의 목을 그러안고 뒤로 제꼈다. 그러나 흑호의 옆손질에 가슴을 얻어맞고 숨을 못쉬였다. 어느새 달구지가 밑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달구지가 있던 자리에 조순근이 쥐고 온 말뚝이 눈에 띄였다. 흥묵은 그 말뚝을 움켜쥐고 조순근의 배에 올라탄 흑호를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 한 서너대끝에 흑호는 뒤통수를 얻어맞고 《아이쿠!》 소리를 질렀다. 조순근이 머리를 감싸쥐는 흑호를 밀어던지며 일어나 깔고앉았다.

《죽여라, 이놈의 새낄 죽여라! 왕벌한테 붙어서 갖은 악행을 다하며 살던놈의 새끼! 네놈두 사람새끼냐!》

그러나 흑호는 만만치 않았다. 그도 정신을 차리자 조순근의 밑에서 자꾸 주먹질을 했다. 조순근은 관자노리가 얼얼하게 몇개 주어맞았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거리기도 했다. 순간 조순근은 있는 힘을 다해서 그의 면상을 두어개 후려쳤다.

《아이구!》

그는 얼굴을 싸쥐며 길바닥에 늘어지고말았다. 조순근은 두손으로 허우적거리는 놈의 목을 눌렀다.

《이놈의 새끼, 총을 어데다 실어갔는냐? 대라, 그걸 대면 살려주고 대지 않으면 아주 죽여버리겠어.》

《가만, 나 숨…》

흑호는 숨을 할딱할딱하며 애원을 했다.

《그럼 실어다 부리운델 대겠어?》

《대, 대마…》

그런데 공손히 응하는척하던놈이 별안간 용을 쓰며 조순근을 메치려고 밑에서 몸을 비틀었다. 그 서슬에 조순근은 그자의 배우에서 튕겨나 저발쯤 나동그라졌다. 그렇게 되여 위험이 다시 조성되였으나 흥묵이가 흑호놈의 면상을 말뚝으로 내리갈겨서 그놈은 일어서지 못하고 얼굴을 싸쥐며 곱드러졌다. 그러자 조순근이 엎어진놈을 올라타고 꺾쇠같은 손으로 목덜미를 내리눌렀다. 흥묵은 그놈의 장딴지를 사정없이 연방 내리쳤다. 아무리 싸움에 이골이 난 놈이라도 면상과 뒤통수를 여러번 얻어맞고 목을 눌리우게 되자 입을 벌리며 늘어졌다.

《이 쌍놈의 새끼!… 똑똑히 대라! 총을 둔데가 어디냐? 헷딴데를 댔다간 아주 꾹 눌러죽인다.》

《대… 대주마…》

흑호놈은 밑에서 꿈트럭거리며 신음소리로 응했다.

《어데냐?》

《우… 우시장.》

《우시장 어디냐?》

《유… 육고집.》

흑호는 땅바닥에 코를 박은채 계속 몸을 꿈트럭거렸으나 이제는 맥을 추지 못하였다. 그래서 조순근은 흑호의 목덜미를 쥐여 들어 일구었다. 흥묵은 그래도 미타해서 말뚝으로 그놈의 오금뼈를 몇개 더 들이쳤다.

《아이쿠… 제발… 이젠…》

흑호는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서 손을 비비였다. 코피가 터져서 흑호의 얼굴은 피와 모래로 매닥질되였다.

《그래 육고집에 가져다부리웠단말이지?》

《예… 나한테서 들었단 말은 어데 가서 옮기지 마시우. 방금 거기다 부리워놓구 오는길이우.》

《그 걱정은 말아라. 그리구 그 총으루 어쩐다더냐?》

조순근은 바른대로 대답을 하지 않으면 몽둥이로 대가리를 부셔버리겠다고 을러멨다.

《예, 그건 별루 들은 소리가 없는데 뭐 군당조직부장이랑 몇사람 없애버린다구 도련님이 벼룹디다.》

《뭐뭐? 내 사우를 죽여? 똑똑히 말해.》

흥묵은 몸을 흠칫 떨며 흑호의 멱살을 쥐였다.

《아 아니, 하는 소리겠죠. 죽이기야 누굴 죽이겠수.》

흑호는 사납게 덤벼드는 그가 또 몽둥이질을 할가봐 겁을 먹고 말을 돌렸다.

《그놈을 이젠 놔두게. 우린 이러구 있을새가 없어… 넌 어서 네 갈데로 가!》

조순근은 흑호의 잔등을 걷어차고 흥묵의 손을 잡아끌었다.

《대복이 아버지. 나 좀 봅시다.》

흑호는 일어나서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자는 다리가 부러졌는지 한쪽다리를 질질 끌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뭐냐? 어서 말해!》

《제발 부탁인데 나한테 들었다는 말을 옮기지 말아주시우. 그걸 주인집 도련님이 알면 난 죽수. 날 앞으로도 살려주기만 하겠다면 비밀 하나를 더 알려주겠수.》

흑호는 팔소매로 코피를 닦으면서 울먹거리였다.

《네놈이 지난날 잘못을 빌구 서만호의 개짓을 안하겠다구만 한다면 왜 용설 못하겠느냐? 용서를 받구 못받구 하는건 네게 달렸어. 그래 비밀이란게 뭐냐?》

《그 집 서분이가 어찌됐는지 아슈?》

《뭐?!… 우리 서분이?》

조순근은 눈을 치뜨며 흑호에게 다가들었다.

《서분이가 심부름을 갔다는건 거짓말이우. 주인나으리집에서 하는 말을 몰래 엿듣는 눈치가 생겨서 도련님이…》

《그래 그놈이 서분일 어쨌느냐?》

조순근은 불길한 예감으로 마음이 다급해져서 저도모르게 흑호의 멱살을 틀어쥐였다.

《너무 놀랄건 없수다. 집안에 갇혀서 못나올뿐이웨다.》

《그래 대복이는? 그 애두 그놈들이 어쨌지?》

조순근은 흑호의 멱살을 더 힘껏 틀어쥐고 따지였다. 흑호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목을 건덩거리며 겁먹은 소리를 했다.

《대복인 모르겠소. 정말 그 애는 모르겠수.》

《엑끼, 악착스러운놈들!》

조순근은 흑호의 멱살을 틀어쥐였던 손을 내뿌리고 돌아섰다.

《흥묵이 이사람, 어서 읍으로 가자우.》

이렇게 재촉하는 조순근의 눈에서는 퍼런 불이 이글거렸다. 그는 달리다싶이 급하게 앞서걸었다.

《서… 성님 좀 서유!… 서분이가 갇혔다는데 어딜 간다는거유.》

《어찌겠어. 이쪽 일이 더 급하지 않어. 빨리 알려야지 숱한 사람이 죽게 된단말야.》

《읍엔 내가 알릴테니 성님은 어서 되짚어가서 서분일 내와유. 왕벌이 혼자 있을 때… 대복이두 그놈들한테 붙들리운것 같아유. 알고보니 대복이가 서분이하고 내통하면서 왕벌네 비밀을 알아냈더군요. 그러다 붙들리운것 같기두 해유.》

흥묵은 조순근의 팔을 끌며 기어이 돌려세우려고 하였다. 조순근은 흥묵에게 팔을 붙들린채 잠시 서있었다. 캄캄한 방안에 매맞고 늘어진 서분이의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서만호의 심복들이 금시 서분이를 죽이려고 시퍼런 단검을 빼들고 다가드는것만 같았다. 하나밖에 없는 살붙이인 대복이, 생각만 해도 애처로운 서분이. 그러나 조순근은 물러설수가 없었다. 그는 흥묵의 손을 붙잡고 울음이 섞인 말을 하였다.

《흥묵이, 난 그 애들이 없으면 살지 못할 사람이야. 그러나 저놈들을 그냥 두고 내가 돌아서면 대복이같은 숱한 젊은이들이, 창규같은 끌끌한 공산당원들이 죽게 돼. 결국 그렇게 되면 그 애들두 못살아. 육고집에두 가구 창규한테두 알리구 사방에 손을 써야겠는데 내가 가면 임자 혼자서 어찌겠다는건가.》

조순근은 더 의논할 필요도 없다는듯 흥묵의 팔을 끼고 읍으로 내달렸다. 그는 어둠속을 내달리면서 자기는 육고집에 먼저 가서 망을 볼테니 흥묵이더러 창규에게 빨리 알리라고 말하였다.

《서 성님, 육고집엔 내가 갈테니 걸음이 빠른 성님이 보안설 거쳐 창규한테 가시유.》

《그럴가?》

조순근은 보안서며 창규네 집이 육고집보다 훨씬 먼곳에 있기때문에 자기가 가는것이 옳을상싶었다. 얼마후 읍거리 초입에서 두사람은 갈라졌다.

흥묵은 육고집으로 들어가는 으슥한 골목길을 달리였다. 술기운이 가셔지면서 추위가 스며들어서인지 몸이 우들우들 떨리였다. 어둠속을 급히 밟아가는 그의 발자국소리가 유난스레 정적을 흔들었다. 흥묵은 어쩌면 그 발자국소리가 놈들의 귀에 미칠것만 같아 자주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새 따라온 발바리가 앞에서 타박거리며 뛰여갔다. 흥묵은 개가 가는길을 따라 어림짐작으로 육고집가는 길로 들어섰다. 골목이 거의 끝나는곳에 들어서자 널바자로 둘러쌓인 육고집마당이 보였다. 방안의 불빛이 뙤창으로 뿌옇게 비치였다. 마당에 사람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흥묵은 길옆으로 비켜서 발소리를 죽이며 뛰여갔다. 목이 넘는 널바자밑에 다가가기 바쁘게 마당에서 얼른거리던 서너놈이 우실거리며 걸어나왔다.

대문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놈들이 손수레를 끌어내오고있었다. 손수레가 대문턱을 넘지 못해 놈들이 모두 달라붙어 낑낑 힘을 썼다. 가마니에 싼 각자목같은것을 잔뜩 올려쌓아서 좀처럼 들어내지 못했다.

(아차, 한발 늦었구나.)

흥묵은 불빛이 없는 서켠쪽 널바자밑에 앉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이거 달구진 왜 돌려보내서 고생스럽게 옮겨싣고 옮겨가구 해.》

한놈이 기운이 진한듯 투덜거리였다.

《정신빠진소리, 달구지에 총을 싣구 시내복판으로 나 잡아가시오 하고 들어가? 힘들어두 손수레에 싣구 소리없이 새여들어가야지.》

《어디에 실어가게?》

《쓸데없는 수작들을 말아, 날이 밝겠다.》

한놈이 손수레바퀴를 들어올리며 누구에겐가 욱박질렀다. 흥묵은 그만 손맥이 풀렸다. 이젠 조순근이 아무리 빨리 가서 사람들을 데려와도 저놈들보다 늦어지기 마련인것이다. 저놈들이 분명 저기에 총을 싣고 시내복판에 들어가 사람잡이를 시작할텐데 이걸 막아내는 수가 있는가. 그는 두리두리한 창규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며 오싹 몸을 떨었다. 저것들이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저 총만 여길 빠지지 못하면 우리 창규는 무사해진다. 오직 사위를 살려야 한다는 그 하나의 일념은 흥묵에게 어떤 다른 타산을 할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흥묵은 어둠속에서 주먹을 부르쥐며 일어섰다.

놈들이 주고받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다홍치만지 검정치만지 술집은 왜 시내 한가운데다 차려놔가지구.》

《허허, 술이야 그런데가 잘 팔리지 이런 뒤골목이 좋을가. 오히려 좋게 됐지. 〈등하불명〉이라구 시내복판 보안서 코밑이 더 안전해!》

갑자기 덜커덕 하는 소리에 흥묵은 흠칫 놀랐다.

손수레바퀴가 대문턱을 넘어선것이다. 손수레군들이 대문밖을 지나 골목으로 나서려고 할 때 흥묵이 불쑥 다가서며 헛기침을 하였다.

《누구요?!》

맨앞에서 끌고나오던놈이 허리를 펴며 놀란 소리를 내질렀다.

《여기가 육고집이 옳시꺄?》

흥묵이가 마주 걸어가며 말을 걸었다.

《그렇소.》

손수레옆에 섰던놈이 불빛을 등에 지고 나오며 송곳같은 눈길로 쏘아보았다. 서강이였다. 그의 손은 벌써 겨드랑이밑에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권총이 뽑기 좋게 걸려있었다.

《나 괴기 살라구 왔어유.》

《괴기?》

《녜예. 제사에 쓸라구.》

한놈이 서강의 옆에 다가와 그의 귀에다 뭐라고 소곤거렸다.

순간 서강의 눈빛이 번쩍했다.

《당신이 신당리에 사오?》

서강이 입술을 감빨며 다가섰다.

《그 그렇시다. 가만 이게 참의어른네 도련님이 아니웨꺄?》

《그렇소. 고길 사겠으면 들어가보우. 우리두 고길 가져가는 길이요.》

서강은 뒤놈들에게 어서 가자고 눈짓을 했다. 앞채를 배에 건 놈이 힘을 쓰자 손수레가 굴러나왔다.

《가 가만 도련님은 신당리로 올라가셔유?》

흥묵이가 슬며시 골목길을 막아나서며 또 말을 걸었다.

《그건 왜?》

《좀 있다 괴기사고 나두 함께 갑시다유. 어두워서 어디 혼자 가기가…》

흥묵은 손수레앞채를 잡으며 사정하듯 말했다. 손수레를 끌던 놈이 그를 밀쳤으나 그는 꾹 버티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그는 손수레에 달려들어 덮어놓은 가마니를 벗겨보았다. 불빛에 총신들이 번쩍거렸다. 그 순간 서강이 흥묵의 팔을 잡아 나꾸채였다.

흥묵은 몇걸음 비틀거렸다.

(애빈 작인들 피땀을 뽑아내더니 네놈은 사람잡이를 하는구나.)

흥묵은 눈에서 불이 일기 시작했다.

《이 이걸 끌구 못간다. 내 사우는 못죽여!》

흥묵은 손수레앞채를 당기며 고함을 질렀다. 서강이 뒤에 선 놈에게 눈을 껌벅했다. 그러자 몸이 다부진놈이 씽 달려나오며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놈은 권총손잡이로 흥묵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어 어억…》

흥묵이가 손수레 앞채를 배에 걸고 어푸러졌다.

《야, 빨리 가자.》

서강이 흥묵의 뒤덜미를 잡아일으키며 손짓했다. 이때였다. 머리를 드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 흥묵이가 손수레바퀴를 잡고 뒤로 몸을 번쩍 제꼈다. 초인간적인 힘이였다. 바퀴에서 뚝하고 쇠못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젊은놈이 또 달려들어 구두발로 흥묵의 바퀴잡은 손을 내려찍었다. 눈을 감은 흥묵은 더욱 으스러지게 바퀴를 거머쥐였다. 손수레가 흥묵의쪽으로 쏠리며 총들이 흘러내렸다. 그놈은 한손으로 흥묵의 머리를 움켜쥐고 권총손잡이로 지끈지끈 족쳤다. 그의 권총잡은 손에 피와 머리칼이 묻어올라왔다.

《모 못죽인다아!》

흥묵의 입에서 피섞인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바퀴를 쥐였던 손은 벌써 처져내렸다. 흥묵이가 몸을 비틀며 늘어지자 젊은놈은 피묻은 손을 가마니에 대고 문대였다.

 

 

5

 

조순근은 숨이 턱에 닿아 뛰였다. 총을 꼬나들고 앞서 달리는 보안서원들의 발걸음을 미처 따라가기가 급했다. 목갑총을 멘 보안서장이 앞서 뛰며 대원들더러 빨리 따르라고 했다. 20여명의 대원들이 그를 따라 뛰다가 육고집골목으로 들어서는 길에서부터 두갈래로 갈라졌다. 한패는 뒤로 우회해서 포위를 하려는것이였다. 조순근은 그냥 골목길을 따라 두주먹을 부르쥐고 뛰였다. 목에서 겨불내가 났다. 육고집앞에 거의 다달았을 때였다. 강아지가 맞받아 달려나오며 왈왈 짖어대였다. 골목길옆에 있는 집들에서 발구름소리와 개짖는 소리에 놀라 하나둘 불을 켜고 밖을 내다보았다.

《집을 포위하고 들어가시오!》

보안서장이 권총을 뽑아들고 지휘를 했다. 서원들이 대문을 박차고 육고집안으로 뛰여들었다. 그러나 방안엔 다른 징조가 없었다. 텅 비여있었다. 조순근이 뒤따라 대문가로 들어서려는데 발바리가 낑낑거리며 바지가랭이를 물어당겼다.

《가만 이게 발바리가 아니냐.》

조순근은 물었던 바지가랭이를 놓고 달려가는 발바리를 쳐다보았다. 개는 골목길 도랑창으로 내려가 낑낑 우는 소리를 내였다. 조순근은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어 개가 우는쪽을 다가갔다.

《아니?》

물이 없는 도랑창에 사람이 머리를 늘어뜨리고 앉아있었다. 발바리가 그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팔에 머리를 틀어박으며 낑낑 울었다. 머리에 진흙이 흠뻑 묻어있었다. 방문을 여닫는 불빛에 이그러진 얼굴이 언뜻 비쳤다.

《아니, 이사람, 흥묵이!-》

조순근은 흥묵을 끌어안으며 소리질렀다.

《정신 차리라구, 정신차려.》

조순근은 힘을 주어 흔들어대였으나 기척을 안했다. 보안서원들이 달려내려왔다.

《방안으로 들여갑시다.》

군보안서장 강성덕이 말했다. 조순근은 팔과 다리가 늘어져내리는 흥묵을 안아들고 비척비척 육고집안마당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눕혀놓은 흥묵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얼굴과 두루마기에 흙과 피가 한벌 덮이고 버선도 없는 맨발바람이였다. 조순근은 울먹거리며 두루마기를 벗기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흥묵이, 눈 좀 뜨라구. 어쩌자구 이래 엉?》

조순근이 한참 흔들어대였으나 숨소리조차 안들리였다. 한 보안서원이 소랭이에 수건을 담아가지고 올라왔다. 조순근은 물묻힌 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아주었다.

《여보게 흥묵이, 이러지 말구 눈을 좀 뜨게 응.》

흥묵이가 입술을 파들거리며 눈을 떴다.

《가… 가… 갔어유…》

《누가?》

《서… 서강이… 다… 다홍치마…》

《음, 그놈새끼가 이렇게 하구 달아났구나. 서장어른, 그놈들이 다홍치마네 술집에 갔다는 소린가봐요.》

《녜, 정동무, 달려가서 적정을 알리구 창규동지를 빨리 데리고 오우.》

강성덕이 보안서원을 불러 소곤소곤 지시를 주었다. 지시를 받은 서원이 급하게 뛰여나갔다.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강성덕이 옆에 선 한 대원에게 새 물을 떠오라고 소랭이를 내보내였다. 소랭이에 뻘건 피물이 담겨있었다. 그리고는 일어서 회대에 걸린 옷가지들을 걷어내려 둘둘 말았다.

그걸 흥묵이가 베고 누운 목침을 빼고 베개삼아 밀어넣어주었다. 머리가 움직이자 흥묵이가 눈을 떴다.

《서… 성님… 나… 이… 이젠…》

흥묵은 이 말 한마디를 힘겹게 했다.

그 다음엔 또 잠에 취한 사람처럼 눈을 소릇이 감았다.

《그게 무슨 끔찍한 소리야. 눈을 뜨게. 어서 눈을!…》

조순근은 겁이 난 소리로 흥묵의 손을 쥐고 흔들었다. 흥묵은 힘겨웁게 숨을 몰아쉬고있었다. 한참만에 눈을 다시 뜬 그는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서… 성님, 우리 차… 창규?》

창규가 무사한가고 묻는 소리였다.

《엉. 아무일 없어. 그런데 이사람은 왜 아직 안나타나?》

《이제 올겝니다. 아저씨,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강성덕이 눈물을 머금으며 흥묵의 늘어져있는 한손을 힘있게 잡았다. 흥묵은 또 눈을 감았다. 이때 밖에서 발바리 짖는 소리가 나고 이마에 땀이 번들거리는 창규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뒤에 한 서원이 따라들어왔다.

《어떻소?》

《방금 눈을 떴댔는데 또 혼수상태입니다.》

창규는 장인의 이마전에 들어앉으며 이마를 짚어보고 손을 쥐여보고했다.

《아버님, 제가 왔습니다. 눈을 좀 뜨십시오.》

차거운 손길이 이마에 닿자 아주 감겨버린것 같던 흥묵의 눈섭이 천천히 올라갔다. 흥묵은 안개낀것 같은 눈으로 창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를 알아보았는지 창규의 손을 가슴에 끌어다놓고 쓸었다. 두눈구석에서 물기가 미음돌았다.

《서… 성님… 성님이 내대신 저 창규… 잔치를…》

《무슨 말인지 똑똑히 하라구… 창규 잔치를?》

《다시… 내대신… 성님이…》

《아버님, 정신을 차리십시오.》

창규는 잔치소리가 나오자 울컥 설음이 북받쳤다.

《서… 성님…》

흥묵은 또 조순근을 부르며 잔치라는 말을 되뇌이였다. 조순근은 힘들게 숨을 톺아올리는 흥묵의 어깨를 좀 높여주었다.

《아버니임, 이렇게 그냥 가면 안됩니다.》

창규의 소리에 흥묵은 실눈을 지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다 알겠다. 잔치를 해주겠어. 그래 이렇게 헤여지자니? 응, 흥묵이.》

흥묵을 내려다보며 목메여 떠듬거리는 조순근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비방울처럼 떨어져내렸다. 무슨 의미에서인지 흥묵은 눈을 끔뻑이며 입귀를 자주 실룩거렸다. 한참만에 그의 입에서 분명치 못한 음절들이 흘러나왔다.

《애들… 서 서분일 … 꼭… 이… 이젠… 마… 말이…》

이제는 말이 안된다는 안타까운 표정이였다. 혀가 굳어져 마디마디 힘겹게 짜내는 그 소리에서 서분이를 꼭 살려내라는 간절한 부탁을 알게 되자 조순근은 더욱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벌써 죽음의 그림자가 흥묵의 얼굴에 내려덮이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흥묵은 창규를 보자 갑자기 눈빛이 또렷해지며 두팔을 허우적거리였다. 창규는 장인의 눈에서 마지막으로 내뿜는 생명의 빛을 일별하고 피에 젖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허우적거리던 흥묵의 팔이 창규의 목을 휘감아다가 그의 얼굴을 자기 볼에 대였다. 두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미끄러져내렸다. 창규는 자기 목을 조이던 팔이 늘어져내리는바람에 얼굴을 들었다. 흥묵은 이미 머리를 옆으로 늘어뜨리고 숨을 거두었던것이다.

《자알 가게-》

조순근은 한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흥묵의 눈을 감겨주었다.

《아버니임!-》

창규가 오열을 터뜨리며 후들거리는 손으로 장인의 얼굴을 어루만지였다.

방안에 들어와 서있던 보안서원들이 천천히 모자를 벗고 시신을 향해 고개들을 숙이였다.

흥묵을 지켜보는 조순근은 슬픔을 참을수가 없었다. 결국 흥묵이도 그전날의 아버지들처럼 한창 살수 있는 나이에 비명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그전날의 선친들보다는 비할수 없이 값있고 장하게 죽었지만 토지개혁으로 이제 곧 땅을 받게 되는 크나큰 기쁨을 눈앞에 두고 간것이 더욱 원통하였다. 저세상으로 가면서도 유언으로 외운 잔치! 그것은 땅없는 흥묵의 가슴에 고랑처럼 패웠던 마음의 상처였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더욱 땅에 대한 갈망이 컸던 흥묵이였다. 아, 한번 가면 다시 올수 없는것이 여기 이승의 땅이란것을 알면서도 어찌하여 저 흥묵이가 원쑤의 총부리앞에 스스로 가슴을 내댔던가.

조순근은 어쩐지 그전날 자기가 돌려주었던 바로 그 총으로 놈들이 흥묵이를 죽인것만 같아 더욱 뼈가 저려났다. 어리석었던 지난 일들이 자꾸만 떠오르며 슬픔보다도 자기에 대한 원망과 후회가 더 절절하였다.

얼마후 달구지가 오고 뒤따라서 강진건이 달려왔다. 조순근이 흥묵의 시신을 안아 달구지우에 조심히 눕히였다.

《창규동무두 따라가야 하지 않겠소?》

강진건이 어깨가 처져내린 창규의 등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말했다.

《일없습니다. 일을 끝내고 내려가렵니다.》

창규는 이러며 달구지우에 누운 시신앞에 가서 다시 장인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장인의 얼굴은 편안히 잠든것 같은 표정이였다. 뭔가 일생의 시름을 푼것 같은 회심어린 미소가 그려져있었다. 그런 얼굴을 보니 더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아무리 못된 세월에 있었던 일이라도 자기가 장인에게 너무도 큰 죄를 지었다는 가슴아픈 생각에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장인은 자기가 모르고있던 너무도 많은 좋은 점을 가지고있었고 자기에 대한 깊은 사랑을 지니고있었다.

《아버님, 용서하십시오.》

창규는 저도모르게 부르짖었다.

달구지는 떠나갔다. 창규는 강진건이와 함께 읍거리 벗어나는 곳까지 따라갔다. 달구지뒤로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강아지 한마리가 뒤묻어갔다.

《위원장동지, 이젠 돌아가십시다.》

멀리 사라지는 달구지를 말없이 바라보던 창규가 돌아서며 말했다.

강진건은 걸음을 멈추고 창규의 어깨우에 손을 얹었다. 거리는 인적하나 찾아볼수 없게 괴괴하였다. 서켠 하늘에 찌불써하게 걸린 쪼각달이 차거운 빛을 땅우에 던지고있었다.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열리며 밤새 덮어놓았던 검은 장막을 밀어내고있었다. 아직 새벽바람은 코끝이 짜릿하게 차거웠다. 거리옆으로 촘촘히 늘어선 추녀낮은 집들에서는 어느새 반디불같은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창규동무,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말이요.》

김창규는 강진건의 말소리에 자기 생각에서 깨여났다. 강진건이 아직도 자기의 어깨우에 손을 얹고있었다. 강진건은 멀리 산마루에 걸린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였다. 별들도 산마루에 국자처럼 가로걸려 창백한 빛을 눈물처럼 흘리고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오. 군농맹회의에 참가했는데 농민들이 지주하고 사이를 좋게 하겠다고 개를 잡아간다 소를 잡아다 바친다 하구 눈이 딱 감기는 짓들을 했소. 그래 난 속으로 언제 바지저고리같은 우리 농민이 각성을 해서 혁명을 해낼가 하고 개탄을 했소. 내가 이런 한심한 생각을 장군님께까지 비쳤댔다오. 그때 내가 무엇을 몰랐는가. 명장에는 약졸이 없고 근실한 농군에겐 나쁜 땅이 없듯이 위대한 령수에겐 부실한 백성이 없다는걸 몰랐소. 나를 포함해서 지난날 제노라 하는 사람들이 다 이 민족의 렬등성과 백성의 무지를 개탄하였고 그래서 나라를 광복할수 없는것처럼 말하였는데 그건 결국 서툰 무당 마당 나무리는 격이였소.

보시오. 우리 농민들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애국렬사가 뭐 따로 있겠소. 동무의 장인이 바로 애국렬사요. 이런 농민들이 수천수만으로 생겨났으니 우리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소. 창규동무, 장인이 돌아갔다구 너무 슬퍼하지 마오. 그는 재령벌 농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살아있을거요.》

《위원장동지!…》

김창규는 가슴이 후더워났다. 강진건의 말은 마디마디에 새로운 뜻이 담겨진 처음 듣는 말이면서도 낯설음이 없이 진실하고 친근하고 그리고 뜨겁게 안겨왔다.

강진건은 몇발자국 걸음을 옮기다가 웬일인지 비척거리더니 길가에 서있는 백양나무등허리에 손을 짚었다.

《위원장동지, 왜 그러십니까?》

《아까운 농군을 하나 잃었소. 이 사실을 장군님께 말씀드릴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오. 동문 장군님께서 우리 농군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게요… 토지분배를 앞두고 농민 한사람이 희생됐다고 하면 그이께선 잠을 못이루실게요. 우리 장군님은 그런분이요.》

강진건의 목소리는 오열에 떨리였다. 그는 나무등허리를 어루만지며 멀리 평양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방금전에 창규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했건만 오히려 자신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있었다.

강진건은 일찌기 한 농민을 이렇게 사랑해본적이 없었다. 흥묵이란 농군을 평시에 인상깊게 기억해둔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자기 살붙이를 잃어버린것처럼 가슴이 아프고 괴로와지는것은 무엇때문인가. 문득 강진건은 《사랑하십시오. 혁명은 사랑입니다.》 라고 하시던 장군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신비롭구나! 인간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이 나무껍질같이 터실터실한 내 가슴에도 이젠 심어졌단말인가.)

강진건은 비칠거리며 걸음을 옮기였다. 달구지에 실려간 농군의 시신이 자꾸만 눈앞에서 얼른거려 발을 헛디디였다.

(내 오늘은 독립군대장의 본때를 보이겠다. 이 반동놈들을 내손으로 요정을 낼테다.)

강진건의 슬픔은 격분으로 번지였다. 그러자 그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빠르게 옮겨지였다. 그는 창규와 함께 《다홍치마》네 술집으로 달려갔다. 술집주변에는 새벽소동에 깨여난 주민들이 모여있을뿐 보안서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술집을 감시하는 한 자위대원의 말을 들으니 반동놈들이 보안서원들의 기습이 있기전에 무기를 하나씩 나눠가지고 뿔뿔이 흩어져버렸다는것이다.

강진건은 좀더 구체적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창규와 군당청사로 찾아갔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수직을 서던 젊은 사람이 달려나와 강진건에게 급한 소리를 하였다.

《위원장동지! 방금 김일성장군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뭐요? 장군님께서…》

《녜, 장군님께서는 위원장동지의 건강상태를 물어보셨습니다.… 그다음에 이곳 형편을 물어보시기에 방금전에 반동놈들과 싸우다가 신당리농민 하나가 희생되였다고 말씀올렸더니…》

젊은이는 울먹거리며 고개를 수그리였다. 강진건은 인두로 지지우는듯 가슴이 따갑고 쓰라려서 한참이나 손을 주물며 서있었다.

《다른 말씀은 더 없었소?》

《예, 장군님께선 이제 또 시간을 타서 전화를 거시겠다고 하시며 흥묵농민의 가족들을 잘 위로해주고 다시는 인명피해가 없도록 주의하라고 거듭거듭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진건선생은 나이도 많고 감옥살이 할 때 몸에 상처도 많이 받은분이니 무리하지 않도록 옆에서들 잘 돌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강진건은 오래도록 못박힌듯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이슬이 내리는지 누기에 찬 쌀쌀한 바람이 쉼없이 불어왔다. 그러나 강진건의 온몸은 화로불곁에 서있는듯 후덥기만 하였다.

그는 한참만에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벌써 동녘에서 희멀겋게 어둠이 벗겨지고있었다.

《비서동무, 참으로 생각이 깊어지는 새벽이요… 우리 빨리 반동무장단을 일망타진하구 장군님께 보고를 올립시다.》

그때 희멀건 동녘하늘에서 장검의 일격처럼 한가닥의 섬광이 번쩍 눈을 부시더니 꾸르릉 꾸르릉 머리우에서 거대한 쇠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이 해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봄우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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