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해방후편)

 

             장 편 소 설

 

 

 

                                          천  세  봉

 

( 제 34 회 )

 

 

제 14 장

 

3

 

서만호는 요새 내내 불안속에서 전전긍긍한 날을 보내고있었다. 고택이 평양에서 피신해 내려와 재령벌의 토지개혁을 파탄시키겠다고 하기에 박기동이와 손을 잡게 해주었는데 그게 어떤 수를 쓰자는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고택이에게 싸움을 어떻게 할 작정인가고 물으면 《참의나리께서는 그저 가만히 앉아있다가 남의 팔매에 밤이나 주으면 된다.》는 희떠운 소리를 했다. 서만호는 모든게 불안스러웠다. 평양에 있는 조만식을 크게 믿어댔는데 그도 이젠 정계에서 종적을 감춘것 같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물우에 뜬 기름방울처럼 민주당 상층에 앉아 독판치기를 하던 조만식은 턱밑에서 들고일어나 당내 투쟁이 벌어지는통에 하루아침에 파직되고 지금 민주당도 공산당과 발맞추어 토지개혁을 적극 지지해나선다는것이였다.

그런데도 서만호의 집으로는 군내의 지주들이 뻗닿게 모여들었다. 군내의 지주들뿐만아니라 곁군의 지주들도 서만호한테 가야 앞이 틔여질 소리를 듣는다고 자꾸 모여들었다.

바깥대문기둥에 내다맨 개들은 쉴짬이 없이 짖어댔다. 아무놈이고 다가오는놈이 있으면 악악하며 덤벼들었다. 그래서 어떤 땐 마름이 달려나가 몰아주기도 했다.

서만호의 집에 왔다가 경을 치고 돌아간 다리부러진 송상환이도 바로 그 잃어버렸던 나귀를 타고 또 찾아왔다. 이번엔 마름이 견마를 들고왔다. 그는 마름한테 업혀서 서만호의 방으로 들어섰다.

《참의나리, 난 인젠 망했습니다. 저 빨갱이 소작인새끼들이 달려들어서 내 토지문서를 죄다 빼앗아내다 마을가운데 쌓아놓고 불을 써댔습니다. 땅문서를 잃어버렸으니 인제 땅을 어데 가서 찾겠습니까. 참의나리는 아직도 아흔아홉간짜리 대가가 그대로 덩실하게 남아있는데 내 우물정자기와집은 벌써 녹았습니다. 아, 안되는놈은 뒤로 자빠져두 코만 깨지는구나.》

송상환은 부목을 댄 한쪽 다리갱이를 방바닥에 뻗치고 앉아서 주먹을 치며 엉엉 소리를 내여 울었다.

《아니, 그래 거긴 벌써 지주의 땅을 빼앗아내기 시작했단말이요?》

서만호가 거뭇하게 질린 얼굴을 송상환에게 바싹 가져다대고 물었다.

《땅 빼앗아낼놈들은 인제 군과 면에서 내려온다고 하는데 우리 동네놈들은 그걸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다리부러진 나를 습격해 들어와 땅문서를 빼앗아냈지요. 금고를 다 털리웠습니다. 인제야 서울에 중앙정부가 선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땅문서를 다 잃어버렸는데 무얼 내대며 땅을 도루 찾겠습니까. 아이구, 아이구 송상환이 망했다.》

절망에 빠진 송상환은 체면도 모르고 더 큰소리로 울었다. 그가 구들바닥을 치며 통곡하는 소리에 서만호네 아흔아홉간 대가가 들썩했다. 서만호는 멸망의 운명이 검은 그림자를 이끌고 각일각 자기집 솟을대문안으로 다가오는것 같았다.

(무슨 망할 징조인가. 초상난 집 같군.)

바깥마당에서 장작을 나르던 장서방은 사랑방에서 대성통곡하는 송상환이 바로 다름아닌 서만호같은 생각이 들어 가슴이 후련해졌다. 대복이가 나가게 되자 장작을 패고 열두아궁에 불을 때는 일이 다 장서방에게 넘어왔다. 대복이는 거의 매일밤 개구멍밑에 와서 서분이와 속닥거리였다. 대복은 이따금 자기를 만나서도 가슴이 열리는 시원한 소리를 한마디씩 해주군 하였다.

《아바이, 토지개혁법령이 내렸어요. 이제 왕벌이 땅내놓구 쫓겨가면 아바이두 땅타가지구 잘살게 된대요.》

《왕벌이 쉬이 쫓겨갈가?》

《제놈이 쫓겨안가구 견뎌요. 아바이, 그런데 서강이 오지 않나 잘 살펴요. 오기만 하면 인차 알리라요.》

《그건 왜?》

《그럴 일이 있어요.》

대복이의 말대로 서만호네 집안이 망해가는게 틀림이 없었다. 서울 작은댁이 자기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서만호의 금고열쇠 감춘곳을 대달라고 조르는것을 보면 그것도 들고 뛸 심산인것 같았다. 서울서 왔다는 고택이 읍에서 올라만 오면 월미와 구석에서 소근닥질을 했다. 더러운 룡마루가 무너지려니 그 밑에선 별의별 침뱉을 추잡한 생활이 딩굴었다. 장서방은 도끼모태가 놓여있는 곳으로 나왔다.

한참 대성통곡을 하고난 송상환은 별로 앞이 열릴 신통한 말을 못들었는지 어깨가 처져가지고 사랑마루로 나섰다. 견마를 들고 온 마름이 대돌로 뛰여올라가 등을 돌려대고 송상환을 업었다. 마름은 비척비척하면서 대돌로 내려와 바깥대문으로 나갔다.

해가 훨씬 기울어졌을 때 대문밖 기둥에 매놓은 개들이 으악으악 소리를 내며 짖어댔다.

《또 오는군.》

장작을 패던 장서방은 중얼거리며 도끼를 쥔채 허리를 폈다. 그런데 짖어대던 개들은 가뭇 소리가 없고 바깥대문으로 검은색안경에 코트를 걸친 신사가 쑥 들어섰다.

그렇게 그악스레 짖어대던 개들이 꼬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신사를 따라 대문문턱안으로 들어왔다. 개는 꼬리를 젓다 말고 신사의 코트자락을 물어당기며 낑낑 우는 소리를 냈다.

(아니 저게 서강이 아니야?!)

제애비 비슷하게 약간 고불거리고 넘어간 머리에 모자도 쓰지 않고 민머리로 들어서니 색안경을 걸었어도 쉽게 알려졌다. 사랑마루앞으로 올라간 서강은 퇴마루구석에 단장을 세우고 조용히 미닫이를 밀어제끼며 발을 넘겨놓았다. 서만호는 찾아드는 손님이 많아 인제야 점심을 먹은다음 밥상을 돌려놓고 앉아서 무슨 장부책을 펼쳐놓고 들여다보고있었다. 그는 두눈이 덩둘해서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을 쳐다보았다. 서강은 색안경을 벗으며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서만호는 팔을 벌리며 일어섰다.

《네가 어떻게 나타났느냐?》

서만호는 아들의 두손목을 꽉 그러잡으며 바깥대문에 매여놓은 개가 반가운 정으로 우는 소리를 하는것만큼이나 울음소리를 내였다.

《아버지, 복잡한때에 여기 앉아서 얼마나 마음을 썩이고있습니까?》

《고맙다. 난 너를 다시 못보구 이 풍파속에 말려들어 죽는가 했다. 그런데 자동차두 없이 걸어왔느냐? 차림이 왜 그러냐?》

《녜, 그저 그렇게 되였어요. 더 묻지 마십시오. 공산당과 하는 싸움이 그렇게 쉽지만 않아요.》

서강은 행색이 초라했다. 함흥에서 여기까지 숨어오느라고 기차도 온전히 못타고 평양까지 겨우 와서는 내처 걸어왔다. 그래서 옷이라는게 구겨질대로 구겨지고 둥글던 볼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관지뼈가 두드러졌다.

《이젠 죽어야지 별수가 없는가부다. 저 땅 빼앗기구 살아선 뭘하겠니?》

서만호는 아들의 초라한 몰골을 보자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내가 왜 여길 온줄 알아요. 우리가 공산당한테 져요? 아버지, 내가 보낸 보약은 받으셨어요?》

《그 자유의 신이란 상표를 붙인 보약말이냐? 받았다.》

《그 약을 쓰십시오. 그게 미국에서 새로 조제된 보약인데 지금 군정청고관들도 그 약을 쓰고있습니다. 그 약을 쓰면 백년장수는 문제없어요.》

《쓰마.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서만호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주근주근 눌렀다.

《그래 어디서 오는 길이냐?》

《예, 얼마간 서울에 나가있다가 또 들어왔습니다.》

서강은 거짓말을 했다. 함흥쪽을 돌아온다는 말은 일체 입밖에 내여선 안되였던것이다.

《보약을 가지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어떻게 됐다는것도 모르고 들어왔니?》

《예, 다 알고있어요. 아버지한테만 말씀드리지만 전 지금…》

《가만…》

서만호가 갑자기 무슨 기척을 느꼈는지 아들의 말을 제지시키며 미닫이를 한쪽옆으로 주르르 밀어놓고 덧문을 열어제꼈다. 서분이가 약물사발을 들고 서있다가 한걸음 물러섰다. 그는 서만호가 마시는 약을 짜서 들고왔다가 방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와서 잠시 엿듣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요즘 서만호는 어찌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내는지 귀신처럼 그 기미를 알아차린것이다.

《이년! 무슨 말을 엿들었지?》

《엿들은게 없세요.》

서분이는 약사발을 문안에 들여놓으며 공손히 대꾸하였다.

《엿들은게 없어? 요즘 네년의 눈치가 수상하다구 모두들 말하는데 엿들은게 없어? 약을 달여왔으면 왜 제꺽 들어오지 못하구 밖에서 얼음물을 만들고있어? 엉.》

서만호는 약그릇을 입에 대보다가 싸늘한 기운을 느끼고 사발채로 내던지였다. 사발이 대돌밑에 떨어지며 깨졌다. 그러자 안마당에서 월미의 호추알같은 소리가 들리였다.

《야 요년! 엿듣지 않았다는게 뭐냐. 문앞에 서서 한참 귀를 기울이고있는걸 보았는데 엿듣지 않았어. 요 죽일년!》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안채에서 나와 중대문을 넘어서던 월미가 사랑방문앞에 귀를 기울이고 서있는 서분이를 띠여보았던것이다. 지금 고택이와 함께 도주계획을 하며 서만호의 금고열쇠를 노리고있는 월미는 남편의 토라진 심정을 바로잡아세우려고 애쓰던 판인데 그의 편을 들어 기를 올리기 안성맞춤으로 되였다. 서분이는 아무 대꾸를 못하고 돌아서 내려오며 깨진 사금파리를 주어모았다.

《요년이 밤마다 대복이새끼하구 소근닥거린다오. 요전번날도 내가 변소에 갔다오는데 개구멍밖에 둘이 붙어앉아서 이 집안얘길 했어요. 내가 죄다 들었어요.》

월미는 그들이 만나는걸 한번 피끗 띠여본것밖에 없는데 부쩍 열이 올라 종알대였다.

《저년을 그저.》

노기가 오른 서만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님, 그까짓거 놔두십시오.》

서강이 사나운 눈매로 서분을 피끗 스쳐보고는 애비의 팔목을 끌어 자리에 앉혔다.

서분이가 물러나자 서만호는 긴 한숨을 내쉬였다.

《이젠 이렇게 종년까지 믿을수 없을만치 세상이 흉흉해졌다. 보아하니 이 마을놈들도 내 땅을 뺏아 노나가질 차비를 하는것 같다.》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산당이 아무리 악착스러워두 제마음대루는 못해요.》

《그래두 저것들이 오늘밤이라두 달려드는날엔 난 손털고 나앉아 알거지가 되고만다. 무슨 죄를 만나 내 대에 와서 집안이 이 꼴이 되는지.》

《아버지, 그래서 내가 오지 않았어요.》

《고맙다. 자식이 아니고야 이 난국에 그 먼길을 왔다갔다 하겠니.》

서만호는 얼마간 마음이 놓이는지 장서방더러 술상을 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서강은 일어서서 이때까지 입고 앉아있던 코트를 벗어걸었다. 그리고는 사랑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고향집마당안에 무어라고 딱히 말할수 없는 처량하고 어수선한 공기가 떠돌고있었다. 환락의 웃음이 젊은 가슴을 부풀게 하던 집, 그 집에서 향유하던 모든 권리와 즐거움이 하나둘 바람에 흩어져나가는것 같은 상실감에 서강은 저도모르게 치를 떨었다. 그는 괴로운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머리를 저으면서 양복웃저고리를 벗어제꼈다. 식모들이 주안상을 차려들고 들어왔다. 서만호는 구리주전자에 들어있는 약주를 한잔 부어서 서강이앞에 내밀었다.

《한잔 마셔라!》

마치 싸움터로 나가는 아들을 고무하는듯 한 페부를 찌르는 비장한 목소리였다.

《원 아버님두…》

서강은 구리주전자를 빼앗아 애비의 잔에다 술을 부었다. 서강이 이러는 바람에 서만호는 눈물이 글썽해지며 한잔의 술을 무겁에 쳐들고 천천히 들이마시였다.

 

 

4

 

밤이 이슥하도록 서만호는 아들과 마주앉아 쑥덕공론을 하며 술을 마시였다. 기생에게 권주가를 불리우며 호화롭게 술을 마시던 옛생활이 언제 있었던가싶어 서만호는 술을 들이킬적마다 이를 갈고 한숨을 쉬였다. 그는 취기가 오를수록 아들에게 《내세상을 다시 찾아야 한다! 공산당을 뒤집어엎어야 한다!》 하며 악을 썼다.

그러면서도 밖에서 바람소리만 일어도 경풍을 만난 아이처럼 깜짝깜짝 놀랐다.

문풍지를 울리며 스산한 밤바람이 지나간 뒤끝에 마루밑에서 성배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저 참의나리, 누가 바깥대문을 두드리기에 나가보니 읍에 내려갔던 고택씨가 와서 들여놔달라고 합니다. 대문을 열어주랍니까?》

《뭐 고택이가?》

서강이 놀라며 먼저 물었다. 평양에서 일을 실패한후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고택이 여기와서 돌아가는줄은 몰랐었다.

《녜, 고택씨가 왔소이다.》

《어서 열어주어!》

마루앞에 왔던 성배는 바삐 바깥대문쪽으로 걸어나가 빗장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키가 꺽실한 고택이 급히 대문문턱안으로 장화다리를 넘겨짚었다. 그는 평양에 올라가 테로를 하려다가 실패하고 내려올 때 가죽장화까지 한컬레 얻어신었다.

《참의나리가 있소?》

대문안으로 넘어선 고택은 성배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예, 있소이다.》

《작은 아씨마님도 있소?》

《누구라구요?》

《월미를 몰라?》

《흐흐흐, 난 또, 아 있지 않구요.》

《망해가는 집이라고 도망치지 않았는가 해서 그러오.》

《도망을 치다니요.》

고택이는 가슴이 후련했다. 무슨 사달이 나지 않았다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사실 여기 내려와 월미와 정분이 난 고택은 재령벌에서 무슨 일을 하고 돌아가 서강에게 잘 보이겠다던 생각도 다 집어던졌다. 그는 월미의 미모에도 어지간히 반했지만 그보다도 서만호의 금고에서 수십만원이 될지 혹은 수백만원이 될지 알수 없는 큰 돈을 한보따리 들고나와 자기 품에 안기겠다는 그 녀자의 철석같은 언약에 환장을 하다싶이 되였다.

정작 그렇게만 되면 서강의 꽁무니를 붙들고 다닐게 뭐야.

인천, 대구, 부산, 남해바다가 어데 가서든 다리펴고 고운 녀편네 끼고 잘 살수 있지.

이렇게 마음이 동뜬 고택은 그 사이 월미가 무슨 일을 잘못 저지르지나 않았는가싶은 궁금증에 못이겨 달려올라온것이였다. 그는 대돌로 급하게 올라와 사랑문을 열었다. 그 순간 고택은 깜짝 놀라며 부지중 외마디소리를 냈다.

《아니?!》

《수고를 했다.》

서강이 고택의 손을 잡아 끌어들였다. 고택은 서강을 보자 가슴이 철렁했다. 이미 마음속으로부터 배척해버린 서강이 이렇게 눈앞에 나타날줄은 꿈에도 몰랐던것이다.

《언제 오셨습니까?》

고택은 주눅이 든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음, 얼마 안돼. 그새 내려와서 수고를 했어.》

서강은 고택을 어린아이 다루듯 하며 반말질을 했다.

두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서만호는 역시 자기의 아들이 고택이보다는 월등하게 높은 상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뿌듯해졌다.

《저는 평양에서 실패하구…》

《아, 평양이야긴 그만두어. 서울에서두 그 일을 따지진 않아.》

《아니 그럼 서울에 나가셨다가…》

《그렇게 됐어. 난 너희들을 거기서 기다리고있었다.》

고택은 더욱 시리죽은상이 되였다. 그는 자기가 서가의 손에서 빠진다는게 조련치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기 와선 일을 시작했어? 인제 얼마 안있으면 북조선의 토지혁명이 완전히 끝장을 볼 잡도리인데 그래 그걸 막아낼 싸움준비를 하고있어?》

《예, 준비는 합니다. 이 재령벌의 토지개혁바람은 잠재울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건 좋아. 한개 지역을 잠재우면 다른 린접지역들두 따라세울수 있으니까. 그래 어떻게 재령벌을 눌러놓을수 있게 만들었어?》

《역시 테로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 방법이 아니고는 지금 당장 번거롭게 무슨 싸움을 준비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몇놈 죽일 계획을 세웠댔는데 어제 오늘 함께 손잡은 박기동씨가 돈을 뿌려가며 읍내에 있는 불량배들을 긁어모으고있습니다.》

고택은 《신뢰단》이라고 하는 일제시대부터 이 읍내에서 돌아가는 싸움패집단의 우두머리를 박기동이 거머쥐였다고 했다.

《신뢰단》에는 별의별 싸움군이 다 있는데 옛날 노가다패, 권투쟁이, 이름난 씨름군, 심지어는 소매치기, 극장의 나팔수까지 있다는것이다. 고택은 그것들에게 칼만 쥐여주면 한두명이 아니라 수십명이라도 단숨에 녹여낼수 있기에 참의어른께 그 사실을 어서 알려주자고 부랴부랴 밤에 달려왔노라고 거짓말을 둘러쳤다.

《음.》

서강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고를 했네.》

서만호도 담배연기를 뿜으며 치하를 했다. 그도 왜정때의 《신뢰단》에 대해서는 잘 알고있는것이였다.

《그런데 참의아버님께 한가지 방조를 받을 일이 있습니다.》

《어서 말하게.》

서만호는 침을 삼키면서 한무릎 다가앉았다. 사실 고택의 말이 전부 빈소리는 아니였다. 《다홍치마》네 뒤골방에서 계책했던 싸움준비가 박기동의 주선으로 불량배집단이 몰려들어오면서 예상외로 판이 커진것도 사실이였다. 그러나 《신뢰단》의 우두머리인 쇠돌이라는 작자는 거사계획을 다 듣더니 자기네 아이들이 그런 위험한 일에 나서겠다고 하겠는지 모르겠다고 심드렁한 소리를 하였다. 워낙 《신뢰단》은 왜정때 천도교종리원을 하던 한 유지가 만들어낸것이였다.

왜놈불량배들이 읍에서 너무 갈개며 돌아치는것이 눈꼴사나와 주위에 힘꼴이나 쓰는 젊은패들을 규합한 다음 《신뢰단》(귀신우뢰)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까지 달아서 자기네 천도교인들을 보호하는데 써먹었다. 그러나 해방후엔 누구도 거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주 불량배집단으로 되고말았는데 정작 사람잡이를 하는 일을 의탁받게 되자 선뜻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는것이였다. 물론 돈을 더 받아먹겠다는 수작이였다.

《그래 그것들이 총은 쏠줄 알아?》

《그건 아직… 그러나 총보다는 칼이 낫습니다. 총성을 피하며 칼로 해치워야 합니다. 무데기로 잡아내는것도 칼이 좋습니다.》

《아니야, 총소리를 내야 해. 이건 그저 테로나 해치울 싸움이 아니라 총소리를 내여서 온 재령벌과 북조선전역이 떠들썩하게 해야 해. 총성일발이 우리의 정치성을 천하에 시위할수 있어.》

《네가 옳은 말을 한다. 숨어다니며 죽일내기를 하지 말고 하늘이 무너지게 총을 쏴야 한다. 그리고 내 돈을 줄테니 그 신뢰단애들을 단단히 틀어쥐게.》

서만호도 흥분해서 수염을 쓸며 끼여들었다. 정말 당장 하늘을 무너뜨릴것 같은 흥분이 온것이였다.

《그러니 총이 어데 그렇게 있습니까?》

고택이 물었다.

《총이야 있지. 왜군이 패망할 때 우리집에 들어서 하루밤 자고갔는데 그때 돈을 주고 장총두 넘겨받구 기관총인지 하는것두 한자루 얻어서 묻어두었다. 다 이런 날이 있을것 같아서…》

《그래요? 아버님, 참 잘했어요.》

고택이 무릎을 쳤다.

《이젠 됐다. 총두없이 망나니들만 데리고는 거사를 못해.》

서강은 싸움준비를 크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택을 바라보았다. 그는 함흥에서 실패한 봉창을 이 재령벌에서 해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서강의 눈앞에는 그날 새벽 온 함흥시가를 메우며 행진하던 학생들의 바다같은 떼가 펼쳐졌다.

처음엔 기세가 올라서 도인민위원회며 도당학교 등을 둘러싸고 구호를 부르고 기와장을 깨여던지며 만세를 불렀다. 토지개혁을 위해 강습을 하던 파견원들의 숙소도 둘러싸고 돌벼락을 안겼다. 그럴즈음이면 공산당에서 무장대를 풀어 폭력을 사용할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총소리만 나면 아주 피투성이싸움이 벌어질판이였다. 그런데 문득 바다같은 학생들의 떼를 가르며 김일성장군의 부하라는 사람이 경호도 없이 단신으로 나타났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이제 곧 토지개혁법령이 방송되니 그것을 듣고 담판을 해보자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몇분후에 거리의 요소요소에 은밀히 설치되였던 대형확성기들에서 북조선토지개혁법령을 발포하는 방송소리가 터져나왔다. 토지개혁법령의 구절구절은 토지를 국유화한다는 소리에 속아넘어갔던 정의롭고 순박한 학생들의 기분을 일조에 변화시켰다.

《우리가 속았다! 잘못 생각했다! 국유화가 아니다!》

곳곳에서 이러한 함성이 터져나오더니 반동시위가 역전되여 토지개혁을 지지하는 환영시위로 되고말았다.

서강은 그 일을 생각하며 어금이를 꽉 깨물었다. 결국 맥도 못쓰는 갈가마귀떼같은 학생들을 일궈가지고 랑패를 본것처럼 여기서도 잘못 하다간 그 꼴이 될수 있었다.

《그리구 여기선 땅가진 사람은 크건작건 다 빼앗는다고 고아댄다는데 사실인가?》

서강이 고택에게 물었다.

《녜. 선전차가 매일 시내를 돌며 그따위 수작을 줴치지요. 군당비서라는 작자가 그렇게 시키는가 봅니다. 죽일놈들.》

《음, 알겠다. 이젠 북조선에서 토지개혁을 아주 못하게 한다는건 어림두 없는 일이다. 중요한건 민심을 틀어쥐고 소동을 일구는거야.》

서강은 이렇게 말하며 앞에 놓인 술상을 고택에게 물려주고 일어섰다.

《아니 서강씨가 아버님하고 마주앉으실 자리에 제가 어떻게…》

《일없어. 우리 아버지는 우리의 싸움마당에 나선 사람들을 다 제자식같이 여겨. 자기 아버지앞에서 술을 받는다구 생각하구 마음놓고 마시라구.》

서강은 코트를 걸치고 앞마루로 나왔다. 자정이 넘은 하늘에서는 별이 깜빡이며 졸고있었다. 모두 잠이 들었는지 집안팎이 괴괴하였다.

서강은 잠간 무슨 생각을 하는듯 어둠속 한점을 응시하고있다가 자기집의 충견인 흑호를 불러내였다.

《그 계집종이 어디서 자?》

《서분이 말씀이신가요?》

《응.》

《식모로친하구 부엌뒤칸에서…》

《가자!》

서강은 코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중대문을 넘어 유유히 걸어갔다. 흑호는 웬일인가싶어 머리를 기웃거리며 따라갔다.

《여기야?》

부엌마당에 오자 서강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녜.》

《데려내와.》

서강은 멍청히 서있는 흑호에게 턱짓을 했다. 흑호는 문앞에 다가가 문고리를 당기였다. 문이 안으로 걸려있었다.

《서분아. 서방님이 널 찾으신다.》 흑호가 문을 탕탕 두드렸다. 그러자 한참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리고 불이 켜졌다.

《녜. 나가겠세요.》

서분이의 잠에 취한듯 한 목소리가 울리고 문고리 벗겨지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어리둥절해진 서분이가 저고리고름을 쓰다듬으며 나타났다.

《날 따라오너라!》

서강은 토방으로 내려서는 서분을 보자 얼음덩이를 내뱉듯이 한마디하고는 돌아섰다. 서분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안고 서강의 뒤를 따랐다.

(웬일일가? 무슨일로 한밤중에 날 찾아왔을가? 어디로 데려가는걸가?)

그러지 않아도 서분이는 아까 서만호의 방에서 뜻밖에 서강을 보게 된 때부터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있었다. 불을 끄고 자는척했으나 실상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바깥동정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언제부터 대복의 부탁을 받고 찾고있던 서강이 불쑥 나타났으니 어찌 잠들수 있겠는가. 한편 이 집에서 무슨 눈치를 알아차린것 같아 불안스러워서도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비밀련락장소》인 개구멍밖에서 신호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는데 먼저 서강이 찾아온것이다.

서분이는 중대문을 넘어서면서부터 더욱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서강은 중대문을 넘어서자 행랑방들이 있는 담장밑으로 갔다. 거기에 고간이 있었다.

《이걸 열어라!》

서강은 눈에서 시퍼런 불찌를 날리며 흑호에게 지시하였다. 흑호는 붕어자물쇠를 절컥거리며 열었다. 그러자 서강은 그의 손에서 자물쇠를 빼앗듯이 왁살스럽게 거머쥐였다.

《됐네. 이젠 자네는 가게!》

《네-》

흑호는 서강의 살기띤 눈빛을 보고 뒤걸음질을 쳤다. 그의 눈에도 서강이 하는 잡도리가 심상치 않게 보였던것이다.

빈 고간에서 찬 바람이 씽 불어나오는 순간 서분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홱 몸을 돌리였다.

《쌍년! 어딜가?》

서강의 억센 손이 섬약한 처녀의 머리태를 와락 거머쥐고 잡아 휘둘렀다. 서분이의 몸이 팽이돌듯 한바퀴 핑그르르 돌아서 벽에 태질을 했다. 너무도 순간의 일이여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서강은 자물쇠를 쥔 손으로 이마를 지끈 들이쳤던것이다. 이렇게 찍소리 못내게 서분이를 쓰러뜨린 서강은 뒤짐을 지고 서서 한참 매서운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서분이는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뒤틀었다.

《대복이…》

실신한 서분이의 입속에서 신음소리같은것이 흘러나왔다.

《뭐 대복이?》

서강은 씽 달려들어 또다시 처녀의 머리태를 감아쥐고 세멘트바닥에 두어번 짓쪼았다. 옴지락거리던 서분이는 가냘픈 신음소리를 내며 늘어졌다. 악에 치받쳐 실성한놈처럼 돼버린 서강은 그 순간 앞에 쓰러져있는 조그마한 종계집이 바로 자기집에 망조를 들게 한 요물로 보였다. 대를 두고 번성해오던 서씨가문을 하루아침에 망하게 만든 공산당에 대한 미칠것같은 증오심이 그리고 평양과 함흥에서 연방 참패를 당한 절통스러운 생각들이 모두 어린 종계집에게로 쏠리였다.

이 발칙한 어린 계집이 매일과 같이 자기집 일을 몰래 내탐한다고 종알대던 월미의 말이 떠오르자 그는 더욱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요 빨갱이년! 요마같은년!》

그는 미친듯이 부르짖으며 구두발을 턱밑까지 쳐들었다가 팔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구두발밑에서 뚝하고 뼈 끊어지는 아츠러운 소리가 일어났다.

《아 악!-》

죽은듯이 누워있던 처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한바퀴 뒤틀었다. 그다음은 잠잠해졌다.

서강은 그제야 속이 좀 풀렸는지 씩 숨을 들이그으며 늘어진 서분이를 개끌듯 끌어다가 고간 구석에 던졌다.

얼마후 고간문을 닫고 나온 서강은 손에 쥐였던 자물쇠를 채웠다. 손가락끝으로 코트자락을 털며 퇴지를 내려서는데 인기척이 났다.

《누구야?》

《나다. 거 그러다가 아주 죽지 않겠니?》 흑호의 소리를 듣고 달려온 서만호가 물었다.

그도 아들이 하는짓이 너무 끔찍스러워 몸을 으쓸뜨리였다.

《죽게까진 안했어요.》

서강은 땀이 질벅한 두손을 수건으로 문대면서 태연히 대답하였다. 그가 중대문으로 나서려고 할 때 문득 저쪽 담모퉁이에서 딱딱 돌쫏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강은 그 소리에 무슨 예감을 느낀듯 주춤하고 돌아섰다. 돌쫏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저건 무슨 소리야?》

서강은 애비의 뒤에 웅크리고 서있는 흑호에게 물었다.

《저게 분명 대복이 녀석이 하는짓 같습니다. 서분이를 불러내는 소리같습니다. 고것들이 벌써 련애질을 한다니까요.》

《대복이?》

서강은 권총이 든 주머니에 한손을 찌르며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반문하였다. 그리고는 발을 저겨디디며 담장밑 어둠속을 걸어갔다.

《원, 이젠 종년놈들까지 앨 먹이니 쯔쯔…》

서만호는 담장을 돌아가는 아들의 검은 그림자를 보며 혀를 찼다. 서분이에게 어떤 불행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담모퉁이에서는 돌쫏는 소리가 괴괴한 밤의 정적을 그냥 울리고있었다.

 

 

5

 

서무과에서 쫓겨난 박종관은 동흥리 웅망산기슭에 있는 양천사의 어두운 암자에 누워 온종일 인생의 허무와 절망을 한탄하였다.

그 옛날 학생시절 방학때가 되면 식민지노예생활의 고민을 안고 잠시라도 속세와 인연을 끊고싶은 심정에서 찾아오군 하던 절간이다. 나라가 해방되였으나 슬픈 운명은 그에게 또다시 속세를 체념하고싶은 마음에서 이 적막한 인생의 은신처를 찾아오게 하였다.

리조중엽 효종 2년에 증축되여 불도를 정성껏 펴왔다는 이 양천사는 곰처럼 웅크리고앉은 웅망산기슭에 고삭은 기둥을 박고 추녀를 높이 든채 아직도 울긋불긋한 단청이 은은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지금은 시주하는 사람도 적고 주지도 없어 주인없는 정각처럼 되였지만 단청에 새겨진 련꽃이며 기둥사이마다 새겨진 구름무늬들이 퇴락한 색조나마 절의 이채를 그대로 간직하고있었다.

마당은 쓸어본지 오랜듯 락엽이 마루밑에 거름무지처럼 쌓여있고 불상을 모신 법당에까지 해묵은 락엽이 굴러다니고있다.

불상밑에 비죽이 내민 벼짚오리들도 여며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가슴에 손을 얹고 주르르 앉아있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암자에 누워있는 종관은 해넘어가는 바위벼랑우를 올려다보고 긴 한숨을 쉬였다. 모든것을 잊으려고 하나 아픈 생각이 자꾸만 갈마들었다.

눈을 감으면 말할 때마다 입주변의 검은 수염이 부르르 떨리면서 그속에서 흰 이발이 유난스레 번뜩이는 군당비서의 얼굴이 나타났다.

《당신은 철직이요! 당신은 서만호의 아들과 가까운 사이라고 하는데 그와의 관계에서 자백할것이 있으면 솔직히 자백하기를 바라오. 며칠동안 생각할 시간을 줄테니 그리 알고 돌아가시오.》

종관은 이런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고 서무과 사무실을 나와 곧장 이리로 찾아왔다.

이제는 모든것이 끝장난것 같았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부지중 창규의 서글서글하게 웃고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종관이, 이젠 그런 어정쩡한 머리로는 살수 없네. 정신을 차리구 건국에 뛰여들라구.》

하지만 그의 말대로는 안되였다. 자기가 찾던 정신적안정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말았다.

보다 더 우의를 가지고 대하던쪽에서 이글거리는 화로불을 자기의 얼굴에 뒤집어 씌웠다.

자기가 걷던 평탄한 길은 그 어데도 보이지 않는다. 종관은 눈물이 얼른거려 목을 꼬았다. 옛중학시절에 외우던 그 누군가의 시조 한수가 떠올랐다.

 

   하나 둘 세 기러기 서남북 나뉘여서

   주야로 울어예니 무리잃은 소리로다

   언제면 상림추풍에 일행귀를 하리오

 

왜놈학생들에게서 모욕을 받고 얼음장같은 하숙방에 누워서 읊조리던 시조였다. 그때에는 모욕적인 식민지학창생활에 눈물을 흘리면서 그 시조를 노래처럼 읊었다. 그런데 해방된 오늘에 와서도 무리잃은 외기러기신세가 되였으니 결국 자기는 숙명적으로 그렇게밖에는 달리 될수 없는 존재인것만 같았다.

종관이 이런 슬픈 생각으로 밖을 내다보는데 어둠속에서 발자국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왔다.

허리가 굽은 늙은 중이였다. 산속에서 나물을 캐며 살아간다는 싸리발같은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한 로승은 목탁을 두드리며 《수리수리마 수리수리사바하 관세음보살 나미아미타불-》 하고 념불을 외우더니 종관에게 다가왔다.

《내가 방금 마을에 내려갔다왔는데 종관씨의 댁에서 무슨 변고가 난것 같소이다. 댁의 춘부장이 공산당의 성화에 못이겨 논밭을 한평도 남기지 않고 내놓았다는 소리가 있수다. 어서 내려가 보시오이다.》

박종관은 벌떡 일어섰다. 설상가상이라더니 이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얼마후 그는 길가에서부터 뻗어들어간 두거지우로 맥을 잃고 걸어들어갔다. 자를 대고 그은듯 곧추 뻗은 논두렁은 파르스름한 달빛을 받아 작은 오솔길같이 보였다. 갈구랑달이 나무가지우에 높다랗게 걸려있었다.

그는 긴숨을 내쉬며 논두렁을 따라 걸었다. 박종관은 양아버지가 살붙이처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던 자기 소유의 논밭들을 한평도 남기지 않고 몽땅 내놓았다니?…

너무도 놀라운 일이였다. 아버지는 이 금덩이같은 땅을 다 내놓고 어떻게 하겠다는것인가? 양아버지는 땅문서를 바치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것인가?

《숙청》이다, 《타도》다 하는 때에 자기스스로 그 풍파속에 몸을 던지고 어데로 밀려가겠다는걸가.

박종관은 상서롭지 못한 소식을 듣고 자기네 논을 걸어가려니 양아버지슬하에서 자라나던 어릴 때 생각이 났다. 그는 여섯살때부터 양부앞에 앉아 한문공부를 했다. 마을에 서당이 있긴 했지만 가르쳐주는 훈장이 괘가 센 사람이여서 쩍하면 아이들의 종아리를 친다고 양부는 아들이 종아리를 맞을가봐 서당에 보내지 않았다. 그는 양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천자, 무제시, 당시 그리고는 훌쩍 수준을 높여 사략, 주역을 읽었다. 그걸 열한살때까지 읽다가 학교로 들어갔는데 그 한문을 읽으면서 양아버지한테서 단 한번 종아리를 맞았다. 사략 초권의 첫줄에 《천황씨는 이 목덕으로 왕하여》라는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읽을 때 목덕이라는 말을 목데기라고도 읽고 목침이라고도 읽자 아버지는 글자를 안보고 허망글을 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놈! 글을 읽는게 글자를 들여다보며 정신을 들여 읽지 않고 이말저말 허튼소리를 해. 나무목자 큰덕자인데 뭐 뭐 목데기야? 목침이야? 그게 나무를 덕삼아가지고 왕이 됐다는 소린데 베고자는 목침이야, 목데기야?》

아버지는 대노해서 구석에 다듬어다 세운 싸리몽치를 들었다.

《이놈! 일어서 다리 걷어라!》

종관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일어서 다리를 걷어올렸다.

양아버지는 싸리매채로 종아리를 한 댓개 후려갈겼다.

《애고고…》

종관은 주저앉으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날밤이였다. 종관은 그래도 아버지곁을 떠나서는 잠들수가 없어서 그의 이불아래에 기여들어갔다. 매를 맞은 일이 아니꼬와 한동안 잠못들고 부시럭대는데 아버지는 슬그머니 손을 뻗쳐 자기의 장딴지를 만져보았다. 그러자 종관은 종주먹을 부르쥐고 아버지의 가슴팍을 쾅쾅 내질렀다.

《아버지 미워 씨.-》

《흐흐, 그래서는 못써.》

아버지는 이렇게 한마디하며 엉뎅이를 두드려주었다. 그리고는 오늘까지 자기의 귀중한 양아들에게 욕한마디 안하고 매 한대 안때리고 살아왔다. 자기가 집을 떠나 도시에 나가 중학공부를 할 때는 아버지가 망태속에 과실을 따서 지고 오기도 했다.

《돈이나 보내줄가 하다가 그래도 내가 가꾼 실과인데 맛보라구 가져왔다.》

이러며 망태채로 내밀어주었다. 종관은 그때 땀을 철철 흘리며 망태를 지고 찾아오던 양아버지의 텁수룩한 얼굴이 그려지기도 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는 말이 이래서 생겨난것은 아닐가. 그러나 양아버지의 사랑에 비하면 자기는 여태 너무 매정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저리였다. 엊그제도 서만호의 땅을 샀다는 말을 듣고 양아버지에게 얼마나 아픈 말을 했던지 모른다. 그것이 명치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었다.

종관은 소유토지의 전부를 내다바친 양아버지와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아버지의 그것은 애국적인 소행인가 반발인가? 아니면 이 세상의 모든것을 체념하고 살아가려는 새로운 정신변화가 일어났는가? 도무지 가늠할수 없는 비정상적인 사태였다.

아버지의 생각은 어쨌든간에 그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객관이 아버지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것이였다. 실지로 토지소유증서와 서만호에게서 사기로 한 그 매매계약서의 토지까지 합치면 5정보이상의 땅을 가진 청산지주로 된다.

양아버지는 《숙청》의 올가미에 스스로 목을 들이밀었다.

(흥, 그러고보면 계급이라는것도 하루아침에 우습게 변하는군.)

박종관은 눈앞에 다가오는 불길한 운명의 그림자를 예감하면서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그는 꿈속을 헤매는것 같은 정신으로 늙은 배나무 한그루가 마주보이는 집쪽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내짚었다. 집앞에 오니 방마다 불이 환히 켜지고 두런두런 하는 말소리가 울려나왔다. 누구인지 울음을 우는 소리도 들렸다.

박종관은 대문을 넘어서며 가슴이 철렁했다. 누군지 부엌문밖에 나와 서서 쿨적거리고있었다. 안해였다.

《왜 그래? 청승맞게.》

안해의 우는 꼴에 화가 나고 불안스러워 욕부터 나갔다. 안해는 부은 눈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말을 못하고 끅끅 흐느끼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요. 아버진 계시오?》

《아버님은… 저.》

《아, 말을 해야 알지. 범한테 쫓기는것처럼 떨지만 말구.》 종관은 답답한듯 꽥 소리쳤다.

《저 아버님은…》

안해는 말끝을 여물구지 못한채 얼굴을 싸고 부엌으로 달려들어갔다. 종관은 불에 덴 사람처럼 흠칫 놀라며 문을 열어제끼였다.

《음, 애아버지가 오는군.》

방안에 앉았던 사람들이 종관이 들어서자 우실우실 일어서며 자리를 내주었다. 종관은 그들과 인사도 나눌새 없이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양부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 옆에 한씨가 앉아서 눈물을 씻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배추속같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은게 산사람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종관이 양어머니를 돌아보자 한씨는 대답대신 코물을 들이키며 곡성을 터뜨렸다. 옆에 앉은 한 농민이 한숨처럼 중얼거리였다.

《령감이 무슨 억울한 일이 있었는지 저 배나무에… 소름이 끼쳐서 말을 할수가 없구만. 거 이불깃을 내리구 목을 보게.》

종관은 급히 이불깃을 제끼고 양아버지의 턱밑을 살펴보았다.

《이런…》

종관은 손을 멈추고 눈을 흡떴다. 울대뼈 좌우로 퍼렇게 멍이 지고 살껍질이 벗겨졌는데 피가 내배였다. 바줄로 목을 졸라매였던 자리다.

《누가 이랬습니까? 누가?》

《누군 누구겠나. 제가 독을 먹고 그랬지.》

마을농민 하나가 이불깃을 도로 덮어주며 대답했다.

종관은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서 양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한씨가 울음을 진정하고 양아버지의 신상에 벌어졌던 자초지종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불행은 이날 아침에 별안간 찾아왔었다. 방금 박병칠로인이 조반을 먹고 돌아앉았을 때 군당비서라는 사람이 대문안으로 들어왔다. 턱수염이 부르르한 그 사람은 처음에 인사를 깍듯이 하고 로인이 권하는 담배도 무랍없이 한대 받아 피웠다. 그러던 사람이 불시에 낯빛을 변하더니 이 집에서 과거에 군당조직부장 김창규를 머슴으로 부려먹은 사실이 있는가고 따지였다. 그리고 왜 그를 내쫓았는가, 어린것을 실컷 부려먹고 그의 삼촌에게서 밥값은 왜 또 받았는가고 하면서 얼굴이 수수떡처럼 되여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서만호의 땅을 사게 됐다는 매매계약서를 내놓으라고 하더니 《당신은 이미 청산대상으로 결정되였소. 당신은 서만호와 결탁을 한 사람이니 우리와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소. 당신의 양아들 박종관이와도 우리는 함께 혁명을 할수 없기때문에 서무과에서 내보냈소.》 하고 뇌까리고는 인사도 없이 표연히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군당사람이 돌아가자 박병칠은 기절하듯 구들에 나가 군드러졌다.

《이젠 망했구나! 땅 내놓고 쫓겨가서 어떻게 산단말인고!》

그는 두주먹이 터져서 피가 나도록 구들바닥을 두드렸다.

그렇게 한참 울고난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 앉아 방안이 뽀얗게 담배질을 해댔다. 그리고는 농짝을 열고 밑에서 토지소유증서를 꺼내더니 계약서와 함께 구들바닥에 나란히 펴놓았다. 그것들을 한줄한줄 읽어보고난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분연히 일어섰다. 옻칠을 한 나무곽에 문서들을 차곡차곡 넣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의복도 깨끗한것을 차려입고 동구밖을 향해 허리를 꼿꼿이 세운채 유유히 걸어갔다.

퍼그나 시간이 걸려 저녁녘에야 집으로 돌아온 로인은 사랑방에 홀로 앉아 또다시 담배를 피웠다. 로인의 얼굴에는 그전에 항용 떠돌던 초조와 번민의 어두운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무엇인가 이 세상에 대해 방심하는듯 한 평온한 표정이 지어져있었다. 그는 날이 어슬어슬해오는 때에야 저녁상을 받았다.

《얘, 인동이도 좀 안아내오구 술이 있으면 두어보께 내다다구.》

박병칠은 밥상을 들고 들어온 며느리에게 일렀다.

《아버님, 저녁을 잡수셔야죠. 인동인 왜 안아내오겠어요.》

《한번 안아보고싶어서 그런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별스럽게 구는것 같아서 씨죽이 웃으며 돌아서 들어갔다. 얼마 안있어 며느리는 술주전자와 함께 박종관의 아들 인동이를 안아들고 나왔다.

《어이구, 이놈 저녁을 먹었느냐?》

박병칠은 아이를 안아다가 엉뎅이를 뚝덕뚝덕 두드려주었다.

《응.》

아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무르팍우에서 발을 구르면서 할아버지의 검은 턱수염을 쥐여당겼다.

《이놈, 버르장머리가 없이, 이 수염 시꺼먼 얼굴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해해.》

애가 캐득거렸다. 며느리도 상곁에 서서 입을 가리우며 웃었다. 왜 저렇게 시아버지가 오늘저녁엔 별스럽게 구는지 알지 못했다.

《아버님, 어서 진지 드세요 》

며느리는 아들을 받아들고 나왔다. 며느리가 나가자 박병칠은 큰 놋바리보깨를 열었다. 보깨에 꼭지가 달린 큰 놋바리인데 밥을 덩그렇게 담았다. 그는 밥은 먹지 않고 주전자를 가져다 보깨에 술을 넘치게 따르었다. 그걸 입에 대기바쁘게 꿀덕꿀덕 단숨에 마시였다. 그리고는 또 한보깨 따르었다. 그것도 입을 떼지 않고 다 마셔버렸다. 그다음에야 저가락으로 짠지쪽 한쪽을 들어서 입에 넣어 깨물었다. 저가락을 놓고 밥바리보깨를 덮은 그는 상내가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그자리에서 움쑥 일어섰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사랑마루로 나섰다. 날이 코를 베여가도 모르게 새까맣게 어두웠다. 그는 발자욱소리를 죽이며 대문간쪽으로 들어가 소외양간쪽벽을 어루쓸었다.

거기에 소를 밭에 내다매군하는 긴 바줄타래가 걸려있었다. 그 바줄타래를 걸머메고 바깥마당으로 걸어나온 그는 또 담장쪽으로 가서 긴 장대 하나를 들고나왔다. 그는 배나무의 웃초리를 한참 올려다보았다.

《휘- 이젠 되였다 》

그는 이런 순간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독심으로 모태우에 올라서 바줄끝의 올가미를 자기 목에 걸었다. 그는 기와집을 한번 휘둘러보고 자기 땅이 있는쪽도 내다보았다. 어두움이 내려 벌은 캄캄한데 그 어두움우에 또 안개가 서려있다. 두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종관아, 용서해라. 죄는 죄대로 가는가보다. 난 왕벌이 땅을 주면서 너를 내세워 자길 애국지사로 소문을 내달라는 말에 속아 그 땅을 사구 보증서에 지장두 찍어주었다. 그놈이 날 이렇게 제놈 망하는 날 같이 망하게 하려는줄을 모르구… 그리구 창규야, 너두 날 용서해라.

난… 난… 정말 네앞에 죽을 죄를 졌다. 그래서 내 죄를 이렇게 씻으려고 한다.》

그는 밟고 서있던 도끼모태를 발길질로 밀어던졌다. 몸이 허궁 들려서 디룽디룽 돌아갔다.

(이젠 가는구나.)

사지가 쭉 뻗어내렸다. 바줄이 걸린 늙은 배나무가지는 육중한 무게를 느끼는지 어둠속에서 몸부림을 치듯 앙상한 가지들을 서로 부딪치며 세차게 흔들었다. 바로 이때 박병칠의 집을 찾아오던 김창규가 그 놀라운 광경을 발견하고 로인을 구원하게 되였다.

《그래두 하늘이 도왔지… 재경아주버니네 조카가 아니였더면… 어어이구 기가 막혀라.》

한씨가 무릎을 두드리며 넉두리를 하였다.

박종관은 벌떡 일어서서 고개를 쳐들고 방안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창규 그 사람은 어디 갔습니까?》

해쓱하게 질린 종관의 두눈에서 무서운 불꽃이 튕기고있었다.

《의원을 데리러 갔어요 》

안해가 울먹이며 대꾸하였다.

《의원… 무엇때문에?… 그러자고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안긴단말인가?》

박종관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마을 늙은이가 종관을 진정시키였다.

《여보게, 그런게 아니네. 창규 그 사람은 임자네를 청산이주시키지 않는다고 했네. 임자 아버지한테도 부치던 땅을 그대로 주고 농사를 짓게 한다는거네. 그게 바루 장군님의 뜻이라는걸 알려주자구 임자네 집을 찾아오다가 아버지를 살려낸걸세. 저걸 보라구. 임자 아버지가 면인민위원회에 내다바쳤던 문서들두 그 사람이 저렇게 도루 다 가지고 왔네.》

옻칠을 한 나무곽이 누워있는 박병칠의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모두들 그러는데 창규 그 사람이 임자 아버지를 다치지 않게 하려구 군당비서하구두 여러번 대두리싸움을 했다구 그러데. 임자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사람으로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임자네 온 일가는 그 사람한테 엎드려 절을 해야 되네.》

누구인가 늙은이의 말에 동을 달며 하는 소리였다. 박종관은 비칠거리다가 바람벽에 손을 짚고 눈을 지리감았다. 그의 눈앞으로 김창규와 유사천의 얼굴이 엇갈리며 지나갔다. 같은 두 공산당원의 모양이 왜 이렇게도 다른것인가.

박종관은 갑자기 설음이 북받쳐올라 조용히 누워있는 아버지의 이불옆에 엎드리였다.

그 순간 숨이 진것 같던 박병칠로인의 피기없는 량볼로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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