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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해방후편)
장 편 소 설
천 세 봉
( 제 29 회 )
제 12 장
1
캄캄한 밤이였다. 먹물을 풀어놓은듯 주위는 온통 어둠뿐이였다. 조만식은 앞에서 전지를 번뜩거리며 왁새걸음을 하는 서강을 따라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옮기였다. 뒤에서 두사람이 뒤따르며 그의 신변을 살피였다. 조만식은 요즘 자주 깊은 밤에 브라운의 초청을 받았고 그때마다 서강의 안내를 받아 미군련락기관청사로 가군 했다. 그곳은 일체 사민과의 접촉이 엄금되여있었으므로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데는 이 시간이 제일 좋았던것이다. 지금 브라운의 초청을 받고 그를 찾아가는 조만식은 기분이 자못 흡족했다. 그것은 자기네의 일이 미국사람들의 의도대로 되여가고있기때문이였다. 물론 송신일을 저승길로 보내지 못한 사실을 두고는 그도 분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너무 서운해할것도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진척되고있는가. 3.1운동기념일에 따로 가지게 될 민주당원들의 모임을 준비하는 사업만 해도 그렇다. 조만식은 이 사업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했다. 의의가 크다고 하는것은 이날에 비로소 민주당이 세계앞에서 제 할일을 할수 있기때문이였다. 이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토지개혁법령을 발포할수 있다. 이에 대처하여 민주당에서는 토지개혁에 대한 뽀이코트성명을 낼것이다. 그러면 공산당은 틀림없이 강권을 발동하여 민주당을 제압하는 길에 들어설것이며 민주당은 때를 놓치지 않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는 민주주의정권이 아니라는것을 세상에 공포하면서 미국에 구원을 바라는 두번째 성명을 낼것이다. 미국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있다. 그런만큼 미국사람들이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것이다. 하다 못해 조선문제를 국제회의에라도 상정시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비법적인 정권으로 선포할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는 조선땅에 공산정권의 존재가 허용되지 않을것이다. 조만식은 량수겸장을 부르는것 같은 통쾌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조만식은 두개의 성명을 준비하는 작전을 은밀히 벌리였다. 공산당이 눈치 못채게 벌리는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어려운 일이였지만 조만식은 용의주도하게 그 일들을 해냈다. 그러지 않아도 브라운을 만나 자기네 당이 단행할 거사의 뒤받침을 요청하려던참인데 마침 일이 제대로 되여 조만식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있었다. 앞서 걷던 서강이 주위를 살펴보고나서 그를 으슥한 방으로 안내했다. 바닥에 양탄자가 깔리고 창문들에 두텁고 묵직한 카텐이 드리워있어 낮에도 이 방에서는 불을 켜야 한다. 이 방에서 미군정청의 지령이 조만식이와 같은 반역자들에게 전달되고 모략이 꾸며지고 각종 정보자료들이 종합되여 미군정청으로 날아가군 하였다. 낮이면 정원이 넓은 뜨락에서 흰 운동복을 입은 신사들이 정구를 치고 밤이면 늦도록 서양무도곡이 은은히 흘러나오는 이 단층집을 사람들은 그저 쏘미량군의 련락사업을 위하여 평양에 와있는 미군련락대표들의 집으로만 알았다. 또 그렇게만 믿고있었던것이다. 얼마후 머리가 벗어진 브라운과 조만식은 원탁을 사이에 놓고 마주앉았다. 브라운은 새노란 눈알을 굴리며 서강에게 한참이나 영어로 씨벌여대였다. 조만식은 영어에 문외한이 아니였다. 그에게는 2년간 일본에서 영어학교를 다닌 경력이 있다. 그는 자존심때문에 브라운과 직접 영어로 이야기하는것을 삼가하였다. 그는 서강의 통역을 요구했다. 《브라운각하는 송신일의 테로미수사건에 유감을 표시한답니다.》 서강은 브라운이 하는 말을 정확히 조선말로 받아외웠다. 조만식이 브라운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 생각하였다. 《나역시 같은 심정이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저승으로 보낸것 못지 않게 값을 받아냈다고 할수 있네. 그러니 우리가 크게 손해본건 없네.》 서강이 영어로 번지자 브라운은 입에 물었던 파이프를 뽑아들고 고개를 들었다. 그는 조만식과 견해를 달리했다. 작전의 목적은 송신일을 사살하는것이였다. 송신일을 살려둔이상 얻은것이란 없다. 코마루가 날카롭고 우묵 들어간 눈확속에서 노란 눈알이 뱅글거리는 브라운의 얼굴인상은 무뚝뚝했다. 브라운은 그 문제에 대하여 더 언급하지 않고 민주당에서 따로 준비하는 3.1기념식에 대하여 질문했다. 조만식은 신심에 넘쳐 자기가 준비한 성명의 내용이며 기념식장소며 인원수, 연설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거기에 바쳐진 자기와 자기 민주당의 숨은 노력에 대하여 죄다 이야기했다. 그런데 브라운은 조만식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도중에 말을 꺾었다. 서강의 통역에 의하면 기념식을 따로 가질 필요가 없게 되였다는것이였다. 《바로 그때문에 오늘밤 조선생님을 초청했답니다. 미군정청의 의견이라고 합니다.》 조만식은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브라운과 서강의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다시 말하게. 무슨 소린가?》 조만식은 서강을 쳐다보며 물었다. 《3.1기념식을 공산당과 함께 하라고 합니다.》 서강은 브라운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며 대꾸했다. 《?!…》 조만식은 서강의 말에 입을 벌리며 놀란 표정을 했다. 《난 리해할수 없네. 우리가 기념식을 포기한다는것은 지금까지 우리 당이 지켜온 자기의 지조를 줴버리는것과 같은거네. 나도 리해되지 않거니와 우리 당원들도 말을 듣지 않을거네. 내말을 그대로 통역하게.》 서강은 조만식의 이 말을 통역하지 않았다. 《조선생님, 미군정청에서도 다 생각이 있어 그러는것입니다.》 《난 그것이 미군정청의 생각이라는걸 알아야겠네. 여러말 말고 자넨 내말이나 통역하게.》 서강은 브라운과 몇마디 영어로 주고받았다. 조만식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서강이 조선생이 납득이 안가하는데 사실대로 말해주면 어떤가고 브라운에게 묻는것 같았다. 브라운은 노란 눈알을 굴리며 서강을 쏘아보았다. 당신은 일을 망치고싶어서 그러는가고 했다. 서강은 할수 없다는듯 조만식을 돌아보며 약간 어색한 웃음을 웃었다. 《그건 말할수 없답니다. 어쨌든 민주당원들도 모두 공산당에서 조직하는 3.1기념식에 참가하랍니다.》 조만식은 갑작스레 모욕감이 치밀었다. 그는 온몸에 닭의 살이 돋아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뽑아물었다. 이런 모욕을 당해보는것이 처음인듯싶었다. 지금까지 미국을 진심으로 받들고 미국인들에게 성실해온 자기였다. 그리고 이러나저러나 자기는 한개 정당의 유력한 당수였다. 그런데 련락장교인 브라운이나 그의 통역인 서강이조차도 분명 알고있는듯 한 미군정청의 사업내막을 비밀에 붙여놓고 불철주야 성심성의로 준비해오던 당의 전략적인 거사를 덮어놓고 중지시키니 될말인가. 그로서는 전혀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단독기념식은 미군정청의 동의밑에 발기되고 추진되여온 일이다. 더구나 참을수 없는것은 민주당원들도 공산당에서 하는 행사에 모두 참가해야 한다는 말이였다. 모욕이면 이런 모욕이 어데 있단말인가. 《유감이라고 전하게, 난 돌아가겠네. 돌아가 위원들과 의논해보고 당의 결심을 알리겠네.》 조만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앉아있고싶지도 않았고 그 문제를 놓고 더 이야기를 나누고싶지도 않았다. 조만식이 훌 일어서는 바람에 놀란것은 브라운이였다. 그는 서강을 마주보며 무슨 일인가고 물었다. 서강이 영어로 한참 주어섬겨서야 영문을 알았는지 일어서 조만식에게 다가오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조만식의 어깨를 눌러 자리에 도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조만식은 두루마기자락을 여미며 당장 나오려고 하다가 못이기는척 하고 자리에 도로 앉았다. 조만식이 자리에 앉자 브라운은 방안구석에 있는 벽장문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샴팡주 한병을 들고 돌아왔다. 유리잔 두개에 따르어 하나는 조만식에게 권하고 한개는 자기손에 잡았다. 어서 들자고 턱짓을 했으나 조만식은 자기는 술을 안마신다고 했다. 《선생님, 이건 녀자들도 마시는 청량음료나 한가집니다.》 《나두 모르지 않아.》 조만식은 잔을 들어 입에 약간 대였다 뗐다. 그가 잔을 드는것을 보고 브라운은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강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조선생님, 각하께서는 조선엔 산이 많아 그런지 사람들의 성미가 급하다고 하십니다.》 《성미가 급해서가 아니라 공산당과 어울리는것이 싫어 그래.》 조만식은 서강에게 이러며 브라운의 얼굴을 살폈다. 서강이 조만식의 말을 브라운에게 통역하였지만 브라운은 술잔을 들고 웃기만 했다. 얼마후 조만식은 브라운과 악수를 하고 일어서 나오고말았다. 서강이 뒤따라 나오며 조만식을 위로했다. 《선생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그게 다 조선생과 민주당을 위해서입니다. 3.1운동기념식날로 공산당정권은 끝장이 납니다.》 《뭐?!》 조만식은 걸음을 멈추고 서강을 돌아보았다. 《더 묻지 말고 그쯤 알아두십시오. 아무렴 미국사람들이 선생님과 민주당편에 손해되는 일을 할가봐 걱정이십니까. 안심하십시오. 드디여 기다리던 날이 옵니다. 조직은 공산당이 했지만 3.1운동기념식은 이제 민주당의 기념식으로 될것입니다. 그러니 연설문이랑, 성명서랑 다 가지고 참석해야 합니다.》 《응!…》 조만식은 그제야 귀가 솔깃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고대하던 그 어떤 거대한 사변이 눈앞에 박두한 듯하여 가슴이 설레였다. 그러자 노여움을 샀던 방금전의 자신이 후회되였다. 《그런데 자네는 왜 진작 나한테 그 암시를 주지 않았나?》 《극비에 속하는 문젠데 함부로 입을 놀리면 되겠나요.》 《하긴 그렇지, 그 량반들이 우리에게 손해되는 일이야 하지 않겠지. 비밀이라니 구태여 캐여묻질 않겠네.》 노염과 수치감이 말끔히 사라져버린 조만식은 가슴설레이는 흥분을 안고 힘있게 뜨락을 나섰다.
2
태양은 아직 지평선 저 뒤쪽에 깊이 가라앉아있는듯 대지의 어둠은 벗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가에는 푸르무레하게 려명이 찾아들기 시작하여 봄날이 시작되는 3월 초하루의 상서로운 기운이 온 평양시가에 퍼지고있었다. 3.1봉기 27주년 기념대회 주석단이 가설된 광장과 그 주변에는 벌써 수만명군중이 꽉 들어차있었다. 기념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어뜩새벽부터 밀려온 그들은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격세하여 마음껏 부르게 된 3.1만세, 처지와 운명이 달라진 새조선의 평양거리에서 부르게 된 3.1만세를 생각하며 줄곧 설레이고 들끓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동녘하늘에 붉은 해가 떠오르더니 인산인해를 이룬 광장에서 별안간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울리였다. 기다리고기다리던 장군님께서 양복에 넥타이를 날리며 사다리같이 만들어놓은 나무계단을 걸어 주석단에 오르시였다. 그 뒤로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수십명 오르는데 그중에는 27년전 3.1만세에 참가했던 수염이 하얀 은발의 로인들도 있었다. 기념식 주석단에는 조만식도 나오게 되였으나 그는 몸이 아프다는 구실로 다른 사람을 보내였다. 이윽고 주석단에서 개회선언을 알리는 취주악이 우렁차게 울리고 련이어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나서서 기념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연설이 다 끝난 다음에 장군님께서 연설대앞으로 나서시였다. 《김일성장군 만세!》 《우리 민족의 영웅 김일성장군 만세!》 광장에는 또다시 환호의 폭풍이 일면서 높이 추켜든 구호판과 표어기들이 수풀처럼 설레였다. 연탁앞에 서신 장군님께서는 자주 손짓을 하며 진정하라는 신호를 하시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만세환호소리가 잦아들고 온 광장이 정숙해졌다. 장군님께서는 량손으로 연탁가위손을 쥐며 연설을 시작하시였다. 《친애하는 동포들! 오늘 우리 3천만 동포는 자유와 해방의 기쁨속에서 조선민족의 해방투쟁력사에 길이 빛날 3.1운동 27주년을 기념하게 됩니다.》 장군님께서는 삼천리강토우에서 온 겨레가 한데 뭉쳐 일어났던 거대한 력사적사변의 날을 오늘 해방된 이 땅에서 처음으로 맘놓고 맞이하게 된것은 참으로 한량없는 기쁨이며 감격이 아닐수 없다고 하시였다. 그리고나서 3.1만세의 영웅성을 한참 말씀하시였다. 확성기소리는 광장뿐아니라 거리와 골목들에서도 울렸다. 온 평양시내가 우렁우렁하신 장군님의 음성으로 가득찼다. 박수를 치는 소리, 환호를 올리는 소리, 대동교 다리우에 모여선 군중들도 감격에 넘쳐서 손들을 휘저었다. 장군님께서는 3.1의 이 영웅적인 투쟁이 어째서 좌절을 면치 못했는지 그 쓰라린 력사의 교훈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였다. 3.1운동의 실패원인을 분석하시는 장군님의 눈앞에는 일제의 기마경찰에 짓밟히며 피투성이가 되여 원쑤를 절규하던 농민들의 모습이 펼쳐지시였다. 일제의 총창과 군도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군중들의 머리우에서 번뜩이던 살륙의 참극, 말발굽에 채워 가슴을 안고 딩굴던 사람들의 모습, 짚신을 그러안고 맨발바람으로 달아나던 꼬마동무들의 모습이 가슴저릿하게 그려지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시였다. 《3.1운동은 령도적정당이 없었기때문에 투쟁강령과 투쟁계획이 없이 진행되였습니다. 당시 조선혁명의 성격으로 보아 일제를 반대하는 민족해방투쟁은 반봉건투쟁과 밀접히 결합되여야 하겠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절실한 문제인 토지문제를 제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농민들의 혁명성을 최대한으로 발양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3.1운동의 실패의 원인을 말씀하고나서 광장을 한눈에 둘러보시였다. 바다같이 모인 군중은 숨소리도 없는것 같았다. 바람에 수풀같은 기폭들이 펄럭이였다. 피의 교훈이 그들의 가슴에 쓰라린 추억을 불러일으킨것 같았다. 《여러분! 조선민족은 일본제국주의식민지통치기반에서 해방되였으나 민족적독립을 달성하려는 우리 민족의 숙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조선인민앞에는 국제국내의 온갖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우리의 민족적력량을 강화함으로써 자유롭고 독립된 민주주의적 새조선을 건설할 력사적인 과업이 나서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친일분자와 반동분자들을 철저히 숙청하고 민주주의적민족통일전선을 튼튼히 꾸리며 생산시설이 빨리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로력있는 사람은 로력을 내여 증산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실업을 퇴치하고 인민생활의 안정을 도모하자고 힘있게 호소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여기 모인 수만명농민이 절절히 갈망하는 문제를 제기하시였다. 《셋째로, 토지문제를 해결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두손을 높이 쳐드시였다. 그러자 침묵하고있던 군중들이 또다시 목청껏 환호를 올리였다. 《옳습니다. 장군님, 그 말씀이 옳습니다.》 농민들은 저마끔 호미와 낫을 머리우로 추켜올리며 함성을 질렀다. 감격의 환호성이 절정에 이르렀다. 해일이 일어난 바다처럼 온 광장이 뒤번지며 들끓는 바로 그 시각에 별안간 주먹덩이만 한 새까만 물체 하나가 포물선을 그으며 살같이 날아서 주석단과 연탁사이에 떨어져내렸다. 악마가 날려보낸 검은 날새마냥 예고도 없이 번개처럼 주석단에 날아떨어진 물체! 그때 수십만 군중들속에서 그 괴이한 물체를 본 사람은 불과 몇십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그들은 주석단에 날아든 물건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고작해서 어느 저주스러운 불한당놈이 주석단에 돌덩이를 집어던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물체는 장군님께서 서계시는 지척에서 흰 연기를 내뿜으며 폭발직전의 아츠러운 소리를 내고있었다. 그제서야 어디에선가 《폭탄이다!》 하는 경악한 웨침소리가 일어났다. 뒤이어 누구인가 《수류탄이다!》 하고 소리쳤다. 그것은 수류탄이였다. 주석단에 떨어진 고드래돌만 한 수류탄에서는 물김을 뽑는것 같은 쉭쉭소리가 들려왔다. 《피하시오, 피하시오! 주석단에서도 피하시오!》 맨 앞줄에 섰던 농민대표들이 이쪽저쪽으로 피해 달아나며 소리를 질렀다. 폭발물이라는 순간적인 의식은 거의 본능적으로 광장에서도 주석단에서도 소요를 일으키며 자리를 피하게 하였다. 모두가 허둥거리며 움직이였다. 그때 군중속에 서있던 강진건이 《장군님! 피하십시오. 장군님!》 하고 부르짖으며 자기의 육신으로 수류탄을 덮어버리려고 주석단을 향해 내달리는데 혼잡이 일어난 사람떼가 그를 마구 밀치며 밀려갔다. 로쇠한 강진건은 옆구리에 심한 타박을 받고 넘어졌다. 그는 사람들속에 포위되여 아무것도 볼수가 없고 일어날수도 없었다. 《아, 이를 어찌는가 장군님!》 그는 자기의 몸을 짓밟으며 밀려가는 사람들의 발밑에서 주먹으로 땅을 두드리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쾅! 하는 폭음이 울리며 강진건을 가로막은 군중들의 머리너머로 검은 연기와 흙모래들이 타래쳐올랐다. 강진건은 벌떡 일어섰다. 연기속에 가리워 주석단은 보이지 않았다. 《장군님!》 강진건은 아래도리로 붉은 피가 새여나가는것 같은 이상한 허탈감을 느끼며 또다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주석단 저쪽옆을 구름처럼 삼켜버렸던 연기와 흙모래들이 서서히 흩어지며 연탁앞에 서계시는 장군님의 거룩한 영상이 강진건의 눈에 비치였다. 장군님의 모습은 마치 설레이는 망망대해에 뿌리를 박은 거대한 산악과도 같았다. 《아, 장군님! 무사했군요. 장군님!… 아무렴, 어느놈이 감히…》 강진건은 땅바닥에 손을 짚은채 목청껏 장군님을 불렀다. 장군님께서는 강진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승용차들이 서있는 주석단 저쪽옆을 돌아보시였다. 수류탄은 바로 거기서 터진 모양이였다. 물론 강진건은 주석단에 떨어졌던 수류탄이 어떻게 그쪽에서 터지게 되였는지 알수 없었으며 또 알아볼 경황도 없었다. 그는 오직 장군님께서 무사하셨다는 기쁨의 현훈증으로 비칠거리며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강진건은 주석단에 수류탄이 떨어진 때로부터 폭발이 일어난 그 시각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되였던지도 알수 없었다. 시간은 한순간처럼 짧아보이기도 하고 영원처럼 길어보이기도 했다. 강진건은 《반동이다!》《반동 잡아라!》 하는 군중들의 고함소리를 듣고야 새 정신을 가다듬었다. 《반동놈, 잡아라!》 군중속에 끼여있는 고택이도 눈에 피발이 서서 부르짖었다. 수류탄을 내던진 고택은 붙들릴가봐 미친듯이 돌아치며 반동놈을 죽이라고 고함쳤다. 재령벌에서 올라오는길로 고택은 먼저 들어와있는놈들과 손을 잡고 서강의 지령을 받으며 려관뒤방에서 쑥덕공론을 벌리다가 드디여 일을 시작했는데 이꼴이 되고만것이였다. 온 광장에 분노의 함성이 터져올랐다. 《반동놈들을 모조리 잡아내자!》 고택은 군중의 기세에 겁을 먹고 슬그머니 대렬에서 내뺐다. 그때 김책과 안길이 장군님곁에 뛰여왔다. 《장군님, 이 위험한곳에 홀로 서계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연설을 그만하고 내려가십시다.》 그들은 장군님의 량팔을 부여잡았다. 《일없소, 저걸 보오. 우린 혼자가 아니요, 저렇게 믿음직한 로동자, 농민을 우리가 가지고있는데 뭐가 무서워서 그러오.》 장군님께서는 반동들을 잡아낸 군중들을 가리키고나서 연설문을 들고 연탁에 대고 그루를 박으시였다. 《김책동무, 안길동무, 걱정 말구 제자리에 서있소. 나는 연설을 계속하겠소.》 장군님께서는 군중들에게 손을 들어 연설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시였다. 김책과 안길은 장군님의 그 담력에 가슴을 들먹이며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돌발적인 소동에 넋을 잃고 저도모르게 자리를 피했던 주석단성원들이 한명두명 올라와서 자기자리를 차지했다. 어느정도 장내가 진정되자 장군님께서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연설을 계속하시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의 정당한 위업은 폭탄으로써도 막아내지 못합니다.》 장군님의 음성은 더욱 격렬하게 울리였다. 그때문인지 장내는 소동이 일어나기전보다 더욱 엄숙해졌다. 《봉건적소작제도를 철페하고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땅을 주는 원칙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손을 머리우로 쳐들어올리시였다. 《기뻐하십시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는 며칠전에 있은 북조선 6도농민대표대회의 요청서를 받고 토지개혁법령을 공포할 준비를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다 내놓고 까밝혀 선언하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아직 그때까지는 며칠 시간을 두어야 했다. 그래도 폭풍같은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군중의 머리우에 농쟁기들이 올라가고 온 광장이 파도를 안은 바다처럼 움씰거렸다. 《땅, 땅이 생긴다.》 어떤 농민들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춤을 추었다. 이런 군중들과 함께 송신일은 연탁쪽을 바라보며 못박힌듯 서있었다. 장군님께서 량쪽 모서리를 꽉 잡고계시는 연탁앞으로는 아직도 연기가 가볍게 뒤틀며 날아지나가고있었다. 《장군님!… 폭탄앞에서도 끄떡하시지 않는 장군님! 그 담력은 어디서 생겨난것입니까? 장군님이 아니시였다면 오늘의 3.1기념식은 일진광풍에 흩어진 27년전의 3.1봉기처럼 속절없이 흩어져 실패를 면치 못할번했습니다.》 이렇게 뇌이는 송신일의 머리속에는 가장 자비롭고 가장 거룩한 우리의 하늘, 조선의 하늘이 다름아닌 장군님이시라는 생각이 번개쳤다. 송신일은 이 준엄한 상황에서 그것을 더 명백하게 그리고 사무치게 느끼고있었다. 얼마후 연설을 끝내신 장군님께서는 군중속으로 내려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로동계급속에 들어서서 로동자들과 발맞춰 행진하자고 하시였다. 장군님을 옹위하며 김책과 안길이도 량옆에 우둑우둑 들어섰다. 온 군중이 눈물이 그렁해서 장군님 만세를 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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