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해방후편)

 

             장 편 소 설

 

 

 

                                          천  세  봉

 

( 제 27 회 )

 

 

제 11 장

 

2

 

민주당청사로 향해가는 송신일의 마음은 불안하였다. 조만식이가 무슨 일로 자기를 부르는지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때아니게 사무에 바쁜 사람을 갑자기 불러내는걸 보면 필경 심상치 않은 일을 벌릴 잡도리 같았다.

그가 숨이 차게 조만식의 방으로 들어서는데 안에서 여러 사람이 얼굴이 불깃해서 서류가방들을 끼고 나왔다. 송신일이 온것을 보고는 마지 못해 눈인사를 하며 얄미운듯 얼굴을 돌렸다.

《송형, 우린 기다리다가 먼저 모임을 한가지 했소.》

송신일이 방안에 들어서자 조만식이 웃는 낯으로 량해를 구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산당의 지주수탈, 청산정책은 민주당의 리념과는 너무도 상극되는 일이여서 민족의 일치단결을 위해서 성명서를 내기로 하였다는것이였다.

《성명은 누구를 위해서 누구한테 낸다는건가요?》

《송형, 성명을 내자는건 우리 당이 자기 태도를 세상에 알리자는것외에 다른 아무것도 없소.》

《난 성명을 내자는 당수님의 제기에 찬성할수 없습니다.》

송신일은 어조에 힘을 넣어 거부해나섰다. 그러나 조만식은 벌써 송신일의 입에서 응당 그런 대답이 나오리라는것을 알고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높다란 의자등받이에 지그시 가져다대였다.

《왜 찬성할수 없는지 그 까닭을 알고싶구려. 송형도 분명 민주당원일텐데?》

《민주당원이기때문에 난 반대하는겁니다.》

송신일은 몸가짐을 엄하게 하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은 장군님의 건국로선을 받들기 위해서 필요한 정당입니다. 어떤 개인의 주의주장을 관철하는 사설정당으로 만들어선 안됩니다.

성명을 내는것은 통일전선을 파괴하는것외에 당의 리념관철에 아무런 리익도 주지 않습니다.》

송신일은 조만식을 돌아보며 항의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조만식은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듣고있다는 소린지 그만 하라는 소린지 알쑹달쑹한 몸짓이였다.

《옳소. 송형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 공산당과 엇서는것은 무모한 자살행위요.》

조만식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그는 입밖에 내여 말하지는 않았지만 당장 성명을 낼 형편이 못된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그러면서도 성명문제를 들고나온것은 그로서의 의도가 있었다. 당장 발표는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문제를 들고나옴으로써 여론을 류포시켜 공산세력에 자극을 가하자는것이였다. 그는 성명문제가 당장 찬성을 못받아도 좋았다.

그에게는 두번째안이 있었다.

《좋습니다. 송형의 견해가 다른만큼 성명문제를 후일의 일로 미룹시다. 그대신 우리 당의 태도를 먼저 김장군님한테 전합시다. 김장군님께서만은 알고있어야 하니까. 장군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당의 태도를 참작하실줄로 믿습니다. 송형, 이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하는가요?》

《장군님께 말씀올려 얻자는것은 무엇인가요?》

송신일은 조만식을 마주 바라보며 침착하게 질문을 던졌다.

《토지개혁을 분별없이 일으켜 민족이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하자는것이요. 말하자면 공산당의 정책을 장군님께서 좀 저지시켜 달라는것이요.》

조만식이 이렇게 말하며 송신일을 돌아보았다.

《송형이 이 일을 맡아주어야 하오. 그리고 송목사도 일이 그 방향에서 되도록 힘써야겠소. 송형이 민주당을 대표해서 림시정부에 들어가있으니… 게다가 송형은 장군의 총애를 받고있는것만큼 송형이상 더 적임자는 우리들중에 없소.》

조만식은 은근히 송신일을 구슬렸다.

《말씀을 삼가하시오. 그렇소. 장군님께서는 허물많은 나를 믿고 사랑하시오. 그러하기에 나는 장군님께 충실할 생각뿐이요. 설사 내가 그릇되게도 조위원장의 온당치 않은 의견을 올린다 해도 국사와 개인친분관계를 혼돈하실 장군님이 아니시오. 장군님은 언제나 만백성의 권익을 첫자리에 놓는분이시니 두번다시 나에게 그런 청을 하지 마시오.》

송신일은 큰소리로 말했다. 그는 진심을 터놓았다. 돌이켜보면 18년전 겨울 길림에서부터 해외를 표랑하던 그 긴긴세월 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온 송신일이였다. 나라없는 그 세월 몸은 비록 상해림시정부요, 로스안젤스의 공립협회요 하는 민족주의정치운동의 깨진 지붕밑을 찾아 여러곳으로 전전하였지만 장군님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문에 온 아시아대륙의 황토가 묻은 일제의 군화밑에 짓밟혀 살면서도 민족의 지조를 지켜낼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 해방된 조국에 와서 장군님의 뜻과 사랑을 더 깊이 알게 된 송신일이기에 죽는 날까지 장군님곁에서 장군님을 모시다가 눈을 감을 결심은 변할수가 없었다.

송신일이 문을 열고 나설 때 밖에서는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졌다. 하늘에선 매지구름이 밀려다니였다.

 

 

3

 

당청사의 2층회의실에서 당4차확대집행위원회가 끝나자 오기섭은 자기 숙소로 가지 않고 곧장 함남대표들이 들어있는 려관으로 찾아갔다. 회의장을 나설 때 그는 아주 서리맞은상이 되여 어깨를 쳐뜨리고있었다. 회의에서 녹초가 되도록 얻어맞았기때문이였다. 사실 어제밤만 하여도 그는 기고만장해서 잡소리를 치며 돌아갔다. 심지어 그는 자기 동료들에게 최근에 장군님께서 이때까지 해오던 정책에 대하여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고 했다.

쏘미공동위원회가 열리고 남북의 정치적세력들이 통일정부수립문제로 해서 물끓듯 하는 때에 민주개혁을 실시하는것은 오히려 당의 공고화에 불리할수 있다, 때문에 장군님께서는 토지혁명에 대한 공식표명이 없이 계속 농촌지역에 대한 시찰만 진행하시였다. 이런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번 회의에서 문제를 공론에 붙이고 장군님께서 한걸음 물러서 그 무슨 조치를 취할것 같은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다. 만약 회의가 그런 방향으로 나가기만 하면 우리가 더 바짝 죄여서 제반 개혁들이 시기적으로 불가능하기때문에 일정한 시간적여유를 얻은 다음 즉각 사회주의적구호를 내걸고 투쟁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력설했다.

그러나 사태는 역전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보고에서 함남도당조직의 분파주의적행위에 대하여 심각한 지적을 하시였다. 3차확대집행위원회의 정당한 결정을 접수하지 않고 그 집행을 의식적으로 태공하였을뿐아니라 심지어 그 결정을 하부당단체에 전달조차 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반당적인 행위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시였다. 처음 회의가 시작될 무렵에 오기섭은 장군님께서 언제나와 같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자기를 맞아주시기에 옳지, 장군님께서 이번에는 립장을 한발자국 드티시려는가부다 하고 느물거리며 앉아있다가 벼락을 맞고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는 장군님께서 보고를 하시는동안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보고에 이어 격분한 회의참가자들이 다투어 일어나서 오기섭이들에게 호된 추궁과 날카로운 질문들을 들이대였다. 구변이 좋은 오기섭이도 이번 회의에서는 말 한마디 변변히 하지 못했다. 특히 김책의 비판이 그를 아주 녹초로 만들었다.

오기섭이한테 제일 싫은 사람은 늘 김책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비판을 주어도 언제나 웃는 표정으로 유하게 주시는데 김책은 도끼를 메고 달려드는것 같은 무서운 기상으로 해냈다. 해주에 나가 민청개편에 관한 잘못된 연설을 하여 문제가 섰을 때에도 장군님께서는 웃으며 고치라고 하시였지만 김책은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무섭게 소리를 질렀다. 오기섭은 속에서 밸이 꿈틀거렸지만 김책의 정당한 론리를 굽혀버릴수가 없었다.

김책은 오기섭을 좌경에서 우경으로, 우경에서 좌경으로 줄넘기를 하는 극단한 교조주의자로, 맑스주의를 부르짖으면서 맑스주의를 외곡하는 무식한 말공부쟁이로 규탄하였다. 당내에서 맑스주의대가로 자처하며 우쭐대던 오기섭은 코가 납작해지고말았다. 그는 그것이 너무도 분해서 려관방에 들어서는 길로 동료들을 둘러보며 미친 사람처럼 부르짖었다.

《허허, 내 살아가다 무식하단 소릴 들어보긴 처음이요. 아무래도 이 회의를 고쳐하자고 문제를 제기해야 될가봐!》

사각형얼굴에 주의자머리를 하고 메기입같이 큰 입둘레로 수염이 더부룩한 그는 빈 파이프를 문채 진정하지 못하고 려관방을 왔다갔다 하였다.

《회의를 고쳐하다니? 그건 뭐 정신있는 소리요?》

양기렬이 실성한 모양으로 돌아가는 오기섭을 어이없이 지켜보았다. 유난스레 코등이 높은 그는 함남도당에서 오기섭의 지시를 집행해온 사람이다.

《그럼 이대로 물러서고만단말이요? 난 맑스주의자요. 뭐 날 교조주의자라고? 본 풍월, 들은 풍월로 남의것을 그대로 옮겨놓는 교조주의자라고, 또 좌경에서 우경으로 줄넘기를 한다고? 아니 그럼 우리 조선이 자본발달을 못했던 나라이기때문에 그 단계를 거쳐서야 사회주의로 간다는건가, 그래서 산업부흥도 한다는거요?》

오기섭은 식탁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한사람은 빙긋 웃는 표정으로 맞은편 의자에 가서 조용히 앉았다. 그도 함남에서 함께 온 오기섭의 동료였다. 그러자 오기섭은 매부리코의 양기렬을 쳐다보며 당신은 뭐냐고 소리쳤다.

《아니 이건 종로에서 뺨맞고 뒤골목에 가서 눈 흘긴다더니 회의장에선 꼼짝을 못하고 여기 와서 누구와 화풀이를 하오?》

《그게 글쎄 뭐요? 분파주의를 했다고 왜 인정을 하는가말요? 연단에 나가섰으면 뻣뻣이 배를 내밀고 제 주장을 말해야지 죽어넘어가는 소릴 하면서…》

《그럼 빤히 꿰들구 내리치는걸 어찌겠소. 이제 회의를 고쳐한들 무슨 용빼는수가 있을것 같소.》

《있소. 있단말이요!》

오기섭은 발광적으로 부르짖었다.

《나의 말은 모두가 진리요. 진리는 언제나 이단의 운명을 지니고있기에 진리인거요.》

오기섭의 소리에 앉은 사람들은 허허 소리를 내여 웃었다.

《오기섭동무, 당내의 로선상 분쟁이라는거야 어디 하루이틀에 끝나는 일이요. 우린 중앙의 로선과 정책을 좀더 두고 관망할 필요가 있소. 그 로선과 정책이 잘못되였다면 일정한 시기에 가서는 좌왕우왕하며 뒤걸음치질 않겠소. 그런 때 우리가 소리치며 들고 일어나는것이 현명한줄 아오? 진리는 언제나 자기의 광명한 빛을 잃지 않는 법이니까.》

그는 오기섭을 얼렸다.

《흥, 맑스주의진리도 실천을 가지고 검증하겠단말이군. 그러느라면 우리가 그만치 시간을 잃는건 어떻게 한다?》

《시간을 잃어도 우리에겐 그 방법밖엔 없소. 수인사대천명이라 운수를 기다리는수밖에 없소.》

양기렬이 어딘가 서글픈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다음은 누구도 응대를 안했다. 오기섭은 실눈을 짓고 마드로스파이프에 담배를 피워물었다.

얼마후 저녁을 치른 그들은 거리로 나가 한시간 좋이 소풍을 하고나서 려관으로 돌아왔다.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두루마기를 입고 수건을 쓴 늙은이가 오기섭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네였다.

《누굽니까?》

오기섭은 그가 누구인줄 알면서도 일부러 거만하게 물었다.

《난 이런 사람이요.》

마주선 사람이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명함엔 《고당 조만식, 평안남도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 민주당위원장》이라고 씌여있는데 집주소와 전화번호도 밝혀있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습니까?》

명함을 든 오기섭의 귀밑으로 피줄이 일어섰다.

《꼭 상담할 일이 있어 걸음을 했으니 너무 밤늦게 찾아왔다고 나무라진 마오.》

《그럼 올라갑시다.》

오기섭은 앞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양기렬은 무슨 희한한 일이 벌어질것이라고 생각하며 조만식을 앞세우고 오기섭을 따라 올라갔다. 오기섭은 2층에 올라오자바람으로 수달피털을 댄 외투를 벗어서 긴 쏘파 한쪽에 훌 집어던졌다,

《그래 상담할 일이란 무엇입니까? 마음놓고 말씀하시오. 이 사람들은 다 내 동지요.》

오기섭은 조만식이와 마주앉자 다짜고짜 말을 하라고 들이댔다. 벌써 그의 낯가죽은 댕댕해져서 바늘이 안들어갈 지경이 되였다.

《다른게 아니고 우리 당은 토지혁명에서…》

《토지혁명에서 어쨌단말이요? 토지혁명을 반대하는 성명을 낸다더니 그래 찾아왔소?》

《아니 왜 그렇게 우들우들 성부터 내오? 우리 민주당도 농민본위의 토지개혁을 기본정책으로 내세운다는걸 당신들도 알지 않소.》

《허허.》

오기섭은 몸을 제끼며 웃었다.

《지지하는데는 당분간 통일정부가 설 때까지 기다렸다 하자는것이요. 그래서 나는 오기섭씨의 주장이 우리와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고 보고 합세할 의도를 가지고 왔소.》

《그럼 어떻게 합세를 하겠소?》

오기섭은 기분을 늦추며 정색하여 물었다.

《우리 당이 자기 태도를 표명하는 성명을 내고 떠들테니 공산당안에서도 오기섭씨가 함께 박자를 치면 되지 않겠소.》

《거 그런데 한가지 좀 물읍시다. 민주당이란 소부르죠아당인데 당신네 민주당원들이 사유재산을 내놓으라면 군말없이 내놓을것 같소.》

《아니, 그럼 립장이 달라졌소?》

조만식은 눈이 둥그래져서 오기섭을 마주보았다.

《달라진것은 조금도 없소. 우린 토지뿐아니라 일체 소부르죠아적인 제도자체를 증오하오. 그래서 민주당이라는것도 인정하지 않소. 그런 거치장스러운 집단은 우리 프로레타리아에게 필요가 없소. 그건 다 타도대상이요.》

오기섭이 자리에서 훌 일어서며 부르짖었다.

《아니, 뭐 뭐라구? 우리가 거치장스럽다구?》

《그렇소. 당신이 과거 친일파였다는것도 다 알고있소.》

《뭐뭐 친일파? 도민의 추앙을 받는 날보구 친일파라구. 에익 이 무지한놈아!》

조만식이 자리에서 떨쳐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런 소릴 안듣겠거든 날 찾아다니지 마시오. 우리 맑스주의자들의 명예가 어지럽혀지오.》

오기섭은 마주보기가 싫다는 뜻으로 창가로 몸을 삐뚤구며 마드로스파이프를 꺼내물었다. 양기렬이 조만식의 곁으로 다가가 그만하고 나가는게 좋겠다고 얼리였다.

《가겠소, 가겠소. 그러나 똑똑히 알아두시오. 서울에 중앙정부가 선 다음 내 오늘 받은 대접을 봉창할테요.》

조만식은 격노해서 부르짖었다.

《허허, 해방이 되니까 별게 다 놀아나는군.》

조만식이 쾅하고 문을 열고 나가자 오기섭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뚜걱거리며 계단을 내려간 조만식은 짚고왔던 단장도 내버리고 차에 올랐다.

오기섭은 방안에서 사라져가는 조만식의 자동차를 내다보며 이마전이 댕댕해서 부르짖었다.

《이게 바로 통일전선로선이 낳은 희극이요. 계급투쟁에서 우산 하나를 받쳐들고 거기에 일체의 정치세력이 들어가 비를 막게 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요. 우산이란 본래 1인용으로 만든것이요. 불가피해서 지나가던 사람이 한사람 끼여들수는 있지만 그도 내 집까지 갈 사람은 아니고 자기 집 근처에 오면 다시 우산밖으로 뛰여나갈 사람이요. 민주당이란 우리의 프로레타리아 우산밑에 들어와서 저들의 소부르죠아국가, 즉 지주나 자본가들에게서 약간의 양보를 얻어낸 그런 타락한 제도를 세울걸 꿈꾸고있소. 때문에 빨리 그들을 우리의 우산밖으로 몰아내야 하오. 프로레타리아에게는 자기 존엄과 긍지감이 빵보다 더 소중하오.》

오기섭은 그럴듯 한 비유로 당장 민주당을 하나 박살내기라도 한것 같은 쾌감을 느끼며 실내를 자꾸 돌았다.

집으로 돌아온 조만식은 불이 없는 교회당안으로 들어갔다. 교회당도 요새는 례배를 하는 사람이 적어져 한산했다. 조만식은 교도들이 앉는 자리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그리고는 정중한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오, 주여,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지하신 하느님이시여, 간절히 기도드리오니 저 붉은 마귀들을 건국성전에서 제거해주옵소서. 주님께서 성운의 빛발을 내리비쳐 저 붉은 마귀들이 하루아침 이슬과도 같이 사라지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교도들은 내 나라를 하느님의 나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만들자고 합니다. 삼천리강토에 교회당이 수풀처럼 일어서고 온 나라 온 민족이 주님께 기도드리려고 모여드는 그런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기여든 사탄의 후예와 다름없는 저 붉은 마귀들이 그걸 막습니다. 저의 걸음걸음에 쟁기를 놓고 저의 길을 막습니다. 하느님이시여, 이것은 오직 신의 나라, 자유의 나라의 군정이 서울로부터 이북으로 넘어와야 성취될수 있을것입니다. 하루빨리 신의 사도들인 미국어른들이 십자가와 대포를 메고 고통받는 이북동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넘어와야 합니다. 주님이시여, 살펴주시옵소서 아멘.》

기도를 마치고 일어선 조만식은 여러번 합장배례를 했다.

 

 

4

 

전국도처에서 농민집회와 시위들이 벌어졌다. 도시와 산간, 거리와 마을마다에 농민들이 운집하여 땅을 달라는 구호를 웨치며 지주들을 전률케 했다. 이것은 농민대중이 지주를 계급으로서 청산할것을 선언하는 공개적이며 대중적인 운동이였다. 군중대회와 집회들에서는 토지개혁을 봄갈이전으로 실시할것을 요망하는 편지, 결의문, 청원서 등을 채택했다. 그것을 품은 농민대표들이 장군님을 찾아 매일과 같이 평양으로 올라왔다. 1946년 2월 하순경까지 장군님을 찾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로 올라온 농민대표들만도 수백명을 헤아렸다. 이때에 이르러 장군님께서는 북조선농민대표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를 통하여 토지개혁에 대한 농민들의 청원운동을 결속하는 한편 그들의 결의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정식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자는것이 장군님의 결심이였다.

회의가 결속되기 전날저녁에는 조만식의 심복으로서 평남인민정치위원회 농림부장을 하는 안경쟁이 한사람이 휴계실에 앉아있는 강진건에게 찾아와서 트집을 걸었다.

《농맹위원장선생, 우리 조만식위원장께선 그동안의 회의상황을 보고받고 아주 불안스럽게 생각하고있습니다. 만약 농맹이 공산당을 따라 토지개혁을 단행하려들면 조만식선생께선 민주당원들을 정권기관에서 전부 해직소환하는 단호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언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민주당은 공산당이 하는 지주숙청에 말려들 생각이 없다는것입니다.》

농림부장은 선자리에서 빨간 혀끝으로 종이장같이 얇은 입술을 감빨며 강진건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안경쟁이가 바로 회의과정에 제일 말썽을 일군 사람이였다. 통일정부가 설 때까지 토지문제를 그대로 두자는 주장도 그가 내놓은것이였다. 강진건은 주석단에서 그자의 거동을 주의깊이 보아온터여서 분기가 치밀었다.

《뭐 조령감이 어쩌겠대? 좋소. 어서 해직소환하시오. 그래 당신들이 물러나면 누가 무서워할줄 아오. 우리가 토지개혁을 못해낼것 같은가? 썩 사라지시오!》

강진건이 주먹을 들어올리며 버럭 소러질렀다. 그바람에 안경쟁이는 더 수작을 걸지 못하고 나가버렸다. 강진건은 그자가 열어던지고 달아난 문을 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저놈들을 그저…》

분을 이기지 못해 문손잡이를 쥔 손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얼마후 흥분이 가라앉게 되자 강진건은 은근히 마음이 쓰이며 불안해졌다.

(정권기관에서 민주당원들을 몽땅 소환해가?)

사실이 그렇다면 그것도 문제였다. 평남도인민정치위원회만 보더라도 공산당출신 간부가 대여섯명 되나마나하고 나머지 전부가 민주당출신이였다. 토지개혁을 하자고 한창 들끓으며 일이 사태가 난 때에 조만식의 지시를 받고 그 사람들이 전부 사무를 집어치우고 방들을 비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작년가을에도 조만식이 반동세칙을 내려보내서 3.7제 실시가 도내에선 애를 먹었는데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알겠는가?

강진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자의 말이 심상치 않아서 곧장 장군님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장군님께서는 전화를 받고계시였다. 강진건은 장군님께서 손짓으로 권하시는 쏘파에 앉아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전화로 주고받으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상대편이 안길인데 조만식이가 장군님께 무슨 접견을 요구해나선다는것 같았다.

《…조위원장이 요구한다면 만나줍시다. 아니 그래선 안됩니다. 만나줘야 합니다. 일없소. 아무리 바빠도 만나줍시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전화를 마치고 탁상앞으로 나와 강진건이와 마주앉으시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래 회의가 잘됩니까?》

《예, 그럭저럭… 그런데 거 조만식이때문에 감옥에서 세지 않았던 제 머리가 지금 세는것 같습니다.》

강진건은 개탄을 하면서 방금 안경쟁이 농림부장이 줴치고간 말을 옮기였다.

《장군님, 조만식이 이젠 드러내놓고 반동을 합니다. 우리가 토지개혁을 하면 자기네 민주당원들을 정권의 자리에서 전부 소환하겠다고 하니 어디 참을수 있습니까.》

《허허허… 강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가 그런다고 민주당원들이 다 그러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오히려 우선우선한 표정을 지으며 강진건을 위로하시였다.

《장군님, 어떤 사람들은 조만식이가 애국자의 탈을 쓴 친일파, 민족반역자라고 하는데 전 그 말이 옳은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방해하여나선단말입니까?》

《강선생님,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애국자의 탈을 쓴 친일파라?》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고 땅거미 짙어가는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조만식은 그자신이 부농의 아들로서 한평생을 자산계급출신의 민족주의자들과 인연을 맺고 그들속에 에워싸여 살아온 사람이였다. 그는 비록 수수한 농민처럼 말총모자에 두루마기를 입고다녔으나 실지로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땡볕에 비지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어보지 못했고 굶어본적도 없었다. 그때문에 그는 로동자, 농민을 불쌍히 여긴다며 크게 부르짖어왔지만 실지로는 로동자, 농민보다도 자산계급, 착취계급에게 더 정이 들어있는것이다. 그것은 결코 변명할수 없는 사실이였다. 실지로 지금 그는 착취계급의 리익에,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황해도의 서만호와 같은 지주들의 리익에 외면하지 못하면서 이 땅에 부르죠아제도를 세우려고 한다. 그 모양대로 나가면 민족반역자로 굴러떨어질수밖에 딴 길이 없다. 창밖에서는 황혼이 더욱 짙어가고있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조용히 방안을 거닐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조위원장이 어느것이 진정한 애국의 길이고 민주주의의 길인가 하는것을 깨닫게 하려고 그가 이런저런 반인민적행위를 할 때도 참고 타일렀습니다. 그런데 그는 점점 민족반역의 길로 접근해가고있습니다. 마침 그가 접견을 요구한다는 련락이 왔으니 만나봐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탁상앞으로 돌아오시였다. 강진건은 가슴이 뭉클하여 덤덤히 앉아있었다. 드러내놓고 반동을 하는놈마저도 마지막까지 어떻게 돌려세울 길이 없겠는가 마음쓰시는 그이의 너그러움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아, 그전에 김형직선생님께서 바루 저러하셨지.)

강진건은 무중 가슴속에 사무쳐오는 뜨거운 생각에 눈을 슴벅이였다. 민족을 사랑하고 인간을 아끼시는 장군님의 마음이 그처럼 지극하시기에 조만식이 거듭 야지랑을 부리며 훼방을 놀고 못된짓을 하여도 백번 천번 참으며 타이르고 언제이건 개심할 날을 기다려주시는것이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괴로움에 이그러진 강진건의 얼굴을 일별하고 기분을 돌려주려는듯 벽에 걸린 달력을 가리키며 화제를 바꾸시였다.

《강선생님, 이제 며칠 있으면 3월에 들어갑니다. 3월은 봄이지요.》

강진건은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장군님, 정말 밭갈이철이 다가오고있습니다.》

강진건은 불현듯 봄이라는 말씀에 가슴을 울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젠 일판을 벌렸으면 합니다. 이젠 농민들의 기세가 오를대로 올라서 토지개혁법령만 내리면 될것 같습니다.》

《허허… 그러니 이젠 강선생의 눈으로 개명되는 조선농민을 보고있다는 말씀이군요.》

장군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시였다.

그이께서는 의미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3월이라… 3월이란말이지.》 하고 되뇌이더니 강진건을 돌아보시였다.

《선생님은 그전에 3.l봉기를 어디서 맞았었습니까?》

《예?!… 아, 기미년 만세시위말입니까?》

강진건은 미간을 쪼프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다섯이였는데 장백에서 독립군을 하면서 조국땅에서 터지는 만세소리를 들었습니다.》

《옳습니다. 지금 선생의 나이가 60돐, 올해가 병술년이니까 그때 선생의 나이가 서른다섯이였겠습니다. 그런데 강선생, 나라가 광복된 다음 우리가 처음으로 그 3.l만세기념일을 맞이하게 되는데 어떻습니까. 무슨 기념식을 해야 하지 않을가요? 금년이 스물일곱해되는 해입니다.》

《스물일곱해라. 어제일같은데 벌써 그렇게!》

강진건은 감회가 깊은듯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날 기념식을 좀 뜻깊게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그걸 좀 강선생과 토론하자는것입니다.》

《장군님, 제게 무슨 좋은 안이 따루 있겠습니까. 그저 제 소견으로는 이번 토지개혁법령이 공포되면 그 옛날 만세시위를 할 때만치나 온 강토가 끓어번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회의를 빨리 끝내고 대표들을 인차 내려보낼 생각입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토지개혁은 왜놈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것 못지 않게 큰 사변입니다. 그런데 강선생, 난 이런 생각이 있는데… 말하자면 법령을 공포하기전에 또 한번 천지를 들었다놓을수 없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법령을 공포해서 천지가 아주 들썽들썽하게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이번 3.l기념식을 계기로 하자는것입니다.》

《녜에.》

강진건은 자기도 짚이는 생각이 있는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27년전 3.l시위는 왜놈들의 총칼에 조국땅이 피로 물들었지만 이번에는 전국의 로동자, 농민이 다 들고일어나서 한번 우리 힘을 크게 시위해보자는것입니다. 그래서 반동들이 기를 못펴게 만들고 갈팡질팡할 때 토지개혁법령을 가지고 재차 뢰성을 울리자는것입니다. 그러면 오는 봄을 막지 못하듯이 토지개혁을 막을수 없다는것을 그들도 똑똑히 보게 될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장군님, 옳은 말씀입니다.》

강진건은 환희에 휩싸여 저도모르게 큰소리로 부르짖듯이 대답을 올렸다. 3.l봉기기념시위를 토지개혁준비의 봉우리로 만드시려는 장군님의 의도를 간파한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창문가로 걸어가서 미구에 수천명의 로동자, 농민의 대렬이 흘러갈 평양거리를 내다보시였다. 하늘에서는 선명한 별빛이 내리비치고있었다. 강진건은 그 빛을 바라보며 장군님의 예언을 확신하고있었다.

오, 3.l아, 피를 뿌리며 잃어버린 조선을 부르던 기미년아! 스물일곱해 긴긴 세월이 지나 드디여 장군님을 모시고 너를 기념해 만세를 부르게 됐구나.

강진건의 눈에 갑자기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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