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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14회) 김 삼 복
승용차들은 빠른 속도로 달리고있었다. 마치 땅우로 떠가는것 같았다. 수령님자신의 심정이 바로 그러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강영창을 돌아보시였다. 강영창은 손으로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그이의 부드러운 시선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였다. 《어떻소. 상동무? 기분이 어떤가 말이요?》 저으기 흥분된 어조로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예. 막 날아가는것 같은 기분입니다.》 《동무도 그렇소? 나도 지금 날고있는듯한 기분이요.》 강재때문에 근심에 잠겨있던 강영창의 밝아진 얼굴을 보시니 그이께서는 더욱 기쁘시였다. 《강영창동무.》 그이께서 한동안이 지나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남조선에서 나를 찾아 북으로 왔지. 북에 와서 인민의 나라를 건설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간난신고를 겪으면서도 변심없이 자기가 택한 정의의 길을 걷고있지. 동무는 쓴맛을 많이 보았고 좌절감도 느꼈을거요. 그리고 지금도 가슴에 비애를 안고있지. 우리가 동무의 처자들을 데려오긴 했지만 맏아들은 앓고있어서 할아버지에게 맡겨두지 않을수 없었지.…》 순간 강영창은 눈굽이 확 달아오르며 가슴이 뻐근해났다. 데려오지 못한 맏아들때문만이 아니였다. 물론 그 사정도 그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힌 아픈 상처였다. 그가 대구의 고향집에 떨구어두고온 가족들, 안해와 아들딸들이 북으로 들어온것은 1947년 봄이였다. ㅇㅇ제강소에서 특수강생산에 분주하던 강영창은 가족들이 왔다는 통지를 받고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갔다. 그가 살고있는 집은 정원이 달리고 양철지붕을 씌운 양옥인데 왜놈기사가 쓰던것이였다. 강영창은 처음 당조직원에게 내가 이런 집을 해서 무엇하겠는가고 사양했었다. 조직원은 당에서 지시가 있어 배정된것이니 받아야 한다며 장군님께서 북에 들어와 일하는 일군들과 지식인들의 가족들을 전부 데려올 조치를 취하시였으니 기사장동무도 가족들과 만나게 될것이라는 암시를 하였다. 그래 빈집에서 때식을 끓여먹으며 가족들을 기다렸던것이다. 강영창이 집마당에 들어서자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아버지…》 하고 부르며 달려와 매달렸다. 연약한 안해는 부엌문앞에 서서 2년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 딸들의 상봉을 지켜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고있었다. 안해 류기철은 강영창이 대구에서 중학을 나오고 려순으로 가서 공과대학을 다닐 때 사귄 1년선배인 학우의 녀동생이였다. 강영창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면서 학사칭호를 받아가지고 일본에 가서 미쯔비시주식회사의 연구소에서 기사로 일하였다. 그때 서울녀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에 와서 공부를 계속하던 류기철이를 그 녀자의 오빠의 소개로 알게 되였으며 거기서 결혼하였다. 류기철은 박천이 고향인데 대구의 몰락한 량반가문으로 학교에서 글을 가르치며 근근히 살아가고있던 시집에 들어가 고생스러운 시집살이를 했다. 해방되기 댓달전에 남편 강영창이 귀국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일본놈들이 조선사람인 그에게 위험한 시험을 도맡아시키군 하여 병을 얻어가지고왔었다. 안해의 극진한 보살핌과 간호가 있어(그 녀자는 약제사였다.) 몸이 추서자 나라가 해방이 되였다. 왜놈들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품고있는 강영창은 해방된 내 나라를 우리 손으로 본때있게 건설할 욕망으로 가슴을 불태우며 경상북도건국준비위원회에 망라되여 동분서주했다. 그러던중 평양에 개선하신 김일성장군님의 연설을 듣게 되였다. 그는 려순공과대학을 다닐 때 몇명 되지 않는 조선인학우들과 함께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흥분하여 밤가는줄 모르고 조선의 빨찌산의 신출귀몰한 전투이야기를 나누군 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학우들중의 한사람이였던 정운모는 공대의 비밀공청소조책임자였고 김일성장군님과도 련계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었다. 바로 이러한 연고로 하여 강영창은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흠모심이 남달리 강했다. 그는 안해에게 장군님을 찾아 북으로 가겠다고 했다. 《내 자리잡거든 당신과 아이들을 데리러 오겠소.》 이렇게 말하고 그는 11월에 북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헤여진지 어언 2년이 흘렀다. 그는 장군님을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으나 그이의 부강조국건설로선을 받들고 낮과 밤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일에 매달려있느라 가족들을 데려올 생각을 미처 못하고있었다. 사실 고향이 북인 안해는 향수의 짙은 감정이 있어 남편이 북으로 들어가는것을 찬성하였을수 있었다. 그렇지만 강영창은 건국사업에 분주하여 언제 개인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김일성장군님께서 안해와 아이들을 데려오도록 해주시여 오늘의 상봉이 마련되였다.… 아이들을 그러안고 볼을 비벼대던 강영창이 맏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왜 그 애가 보이지 않는가고 안해에게 물었다. 류기철은 그 애가 앓고있어서 할아버지에게 맡기고왔다고 대답했다. 《따라오겠다고 하지 않았소?》 《울면서 몹시 떼를 썼어요. 그런걸 인차 통일이 되니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고 설복해서 겨우 떼놓았어요.》 하며 안해는 다시 손수건을 눈으로 가져갔다. 《인차 만나게 되겠지.》 그는 쓰려오는 가슴을 이런 말로 위안했다. 그리고 세 아이ㅡ 두 아들과 어린 딸을 다시 그러안았다. 그날 밤 부부간에 긴긴 이야기가 있었다. 안해가 물었다. 《그간 돈을 많이 번게지요?》 《그건 무슨?…》 《이렇게 좋은 집을 사지 않았어요?》 《허…》 강영창은 이 집은 김일성장군님께서 배려해주신 집이라는것을 설명해주었다. 그해 9월 장군님께서 제강소를 찾아주시였다. 이때 강영창은 처음으로 그이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녔다. 그이께서도 김책동무를 통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시며 가족들이 무사히 도착했는가고 물으시였다.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포항에서 배를 타고 흥남항에 먼저 내렸는데 제가 그곳에 있는줄로 알았답니다.》 그이께서 안색을 흐리시였다. 《맏아들이 못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앓고있었으니 어찌겠습니까. 통일이 되면 만나겠는데 일없습니다.》 강영창이 일부러 락관적인 대답을 드리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생각이 깊으신 표정이였다. 통일이 빨리 될수도 있고 늦어질수도 있다. 그건 어떻든 어린것이 부모와 갈라졌으니 그 어린 아이도 부모들도 얼마나 가슴이 아프랴! 《우리 통일될 그날을 위해서 일을 더 많이 합시다.》 그이께서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으로 강영창에 대한 위로를 대신하시였다. 《예,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반드시 수행하겠습니다.》 강영창이 뜨거운것을 삼키며 말씀드리였다.… 그렇다. 지금 수령님께서 남녘에 두고 온 아들을 생각해주시며 추억의 말씀을 하실 때 강영창이 눈굽이 젖어오는것은 그 아들에 대한 비애의 감정때문이 아니라 자기자신과 자기 가족들에게 돌려주시는 그이의 뜨거운 인간애에 다시 접했기때문이였다.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그 애가 이제는 몇살이나 됐소?》 《열여덟살되였습니다.》 강영창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머리를 숙이였다. 《전쟁통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또 아버님이 지금 생존해계시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통일이 되여 서로 만날 희망을 하루도 버리지 않고 해마다 아이들에게 새옷을 해입힐 때면 맏아들의 옷도 지어 트렁크속에 건사하고있고 그 애 생일날이면 꼭꼭 선물도 마련해서 역시 트렁크안에 넣군한다지. 그때마다 강동무는 눈물을 삼키군 했을거요. 나는 강동무가 어린애들을 특별히 귀애한다는 말을 듣고 그 사유를 알아보는중에 이 모든 사연을 알게 되였소. 나는 여기서 강영창동무의 인간미를 보았소. 그런 인간은 준엄한 시련이 닥쳐와도 신념을 버리지 않고 변절하지 않소. 우리 혁명은 간고하고 조국통일은 장기성을 띠게 될것이고 헤여진 가족들이 언제 만날지 기약할수 없소. 이런 때 과거에 공부한 지식인인 강영창동무가 나를 믿고 변함없이 혁명의 험한 길을 걷는것이 나에게는 큰 고무로 되고있소. <적기가>에도 있지.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그렇소. 우리는 끝까지 붉은기를 고수해야 하오. 시련과 난관이 앞을 막을 때에도 주저없이 앞으로만 전진해야 하오. 내가 산에서 싸울 때인데 우리가 고난의 행군이라고 한 가장 어려운 시기였소. 그때 왜놈들은 우리를 눈덮인 산속에 완전포위해 놓고 끈질긴 추격전을 벌리였소. 무릎까지 빠지는 눈, 얼굴을 얼구는 추위 (내 얼굴에 난 이 거밋거밋한 동상흔적은 그때 생긴거요.) 그리고 배고픔, 못견디게 괴롭히는 졸음, 이 모든것보다 더 위험한 왜놈대부대의 끈질긴 추격전, 적들도 지쳐서 우리가 낸 길을 따라 기계적으로 따라오며 무작정 쏘아대고있었소. 이런 때 불시에 우리앞에 새로운 위험이 나타났소. 적의 새 부대였소. 아차하는 순간에 우리 혁명군이 괴멸될수 있었소. 너무도 갑자기 들이닥친 순간의 위험앞에서 경위중대장 오백룡이조차 내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소. 나는 몇초사이에 결심을 채택했소. 앞에 나타난 적은 우리를 모르는 새로운 놈들이다, 뒤에서 우리를 추격하는 놈들과는 다른 생둥이다, 이놈들은 지금 당황해하고있을것이다, 그렇다, 놈들이 정신을 수습하기전에 먼저 답새겨야 한다, 오직 앞으로 뚫고나가는 길밖에 없다, 내가 필생의 신조로 간직하고있는 오직 전진이 있을뿐이라는 사상이 나를 이끌었소. 나는 웨쳤소. <오백룡이, 앞의 놈들을 답새기며 뚫고나가자!> 우리는 몹시 지쳐있었으나 그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성난 사자처럼 앞으로 환성을 지르며 내달려 적들을 순간에 소멸해치우고 포위를 벗어났소. 지금이 그때 고난의 행군을 하던 때와 비슷하오. 우리는 국제반동들, 계급적원쑤들, 민족반역자들, 사대주의와 대국주의자들, 패배주의자들의 포위속에 들었다고 말할수 있소. 이런 때 바로 고난의 행군시기처럼 오직 앞으로 나가야 하오. 1957년도 계획과 1차5개년계획수행을 위해 시련을 헤치고 전진해야 하오. 이것이 12월전원회의정신이요. 벌써 돌파구가 열리였소. 강선로동계급이 돌파구를 열었소.》 인간미넘치는 후더분한 강영창의 안경이 흐릿해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울고있었다. 《수상님.》 그가 눈물속에서 말씀드렸다. 《수상님께서 돌파구를 여시였습니다. 저는 수상님과 함께 강선제강소를 두번 다녀가는 과정에 공격정신을 체현하고계시는 강철의 의지와 저같이 변변치 못한 사람들도 뜨거운 넓은 품에 안아 이 나라 모든 인민들을 참된 삶의 길로 이끌어가시는 고결한 인간미를 보았습니다. 수상님께서는 오늘의 난국을 타파하시고 반드시 승리자로 되실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는 수건으로 눈물을 씻고나서 계속했다. 《왜냐하면 인민이 수상님을 받들고 따르기때문입니다. 오늘 강선제강소에 나가시여 찾아쥔 증산계획을 수행할수 있는 예비수자가 그것을 증명해줍니다. 수상님께서 나는 동무들을 믿고 동무들은 나를 믿고 우리 함께 조성된 혁명의 난국을 뚫고 나갑시다라고 호소하셨을 때 눈물속에 박수갈채를 보내며 만세의 환호로 호응하던 로동계급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그때도 저는 예비수자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아 여전히 걱정이였습니다. 감동과 결의만으로야 예비수자가 안나오지 않겠습니까.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 결의대로 하였습니다. 수령앞에 다진 맹세를 지켰습니다. 저는 오늘 혁명의 철리를 깨달았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강영창의 손을 꽉 잡으시였다. 《이것을 알 필요가 있소.》 그이께서 격동적으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언제나 락관주의정신을 가지고 혁명투쟁을 벌려왔소. 그 어떤 경우에도 비관하지 않았소. 비관하여본적은 한번도 없었단말이요. 이것이 지난날 혁명투쟁에서 우리가 언제나 승리할수 있었던 기본요인이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요. 해방후 우리 당 력사에서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볼수 있소. 그러나 나는 비관하지 않소. 자 강영창이, 우리 같이 <적기가>를 부르자구.》 그이께서는 강영창의 손을 잡으신채 같이 흔드시며 《적기가》를 먼저 부르시였다.
…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밑에서 굳게 맹세해…
강영창이도 눈물속에서 따라불렀다. 며칠후 수령님께서는 김책제철소에 내려갔다 온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인 부위원장으로부터 그곳에서의 예비탐구정형에 대한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으시였다. 《저는 로동자, 기술자들에게 우리 나라의 형편을 그대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 형편이 지금 곤난하다, 선철이 없이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없다, 선철이 없으면 강재도 못나오고 강재를 생산하지 못하면 집도 지을수 없고 공장도 세울수 없고 기계도 만들수 없다, 모든것이 선철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당중앙위원회와 수령님의 위임에 의하여 선철을 더 많이 낼수 있는가 없는가를 토론해보기 위하여 이렇게 동무들을 찾아왔다, 지배인동무는 23만t과제를 힘들어하는것 같은데 동무들의 생각은 어떤가, 이렇게 그들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자 로동자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상론도 하지 않고 전원회의에서 23만t이 힘들다고 토론한 지배인과 기사장을 옳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예비를 적극 탐구해서 25만t을 하겠다고 결의해나섰습니다.》 《25만t을!》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정신을 로동계급이 심장에 받아들이였다는것을 확신하시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건설에서 대고조가 일어나기마련이다.
28
채운이는 길을 걸을 때 항상 머리를 숙이고 다녔다. 아는 사람을 만날가봐 그랬고 모르는 사람들도 자꾸 쳐다보아서 그랬고 특히는 수치스러운 자살사건과 자기에게 붙어다니는 추문때문에 창피하고 괴로와서 그랬다. 그런데 어느날, 어떤 사람이 그의 앞길을 떡 막아섰다. 해질녘의 퇴근길이였다. 깜짝 놀라 눈길을 드니 색날은 군복을 입은 키가 후리후리한 청년이 서있었다. 《아, 내가 바루 봤군. 그 처녀군.》 서쪽하늘에서 스러져가는 저녁노을이 비낀 청년의 얼굴이 마치도 금빛으로 화장을 한듯 빛나고있었다. 채운이는 공포에 질리였다. 다행이라면 락조의 금빛이 어려 별로 환해보이는 청년의 표정이 신중한것이였다. 물론 채운이는 그가 누군지 알수 없었다. 그러나 전혀 모를 사람같지 않았다. 저쪽에서 먼저 《그 처녀군》 하는것을 보아서는 자기의 자살사건을 알고있는 사람같다. 《건강이 회복된것 같군. 일다닙니까?》 청년이 물었다. 채운이는 부끄러움과 창피스러움에 몸을 떨며 그를 피해 길을 계속 가려 했다. 《아, 잠간!》 청년이 다급히 소리쳤다. 《나를 다르게 생각하지 마시오. 내가 기이한 인연으로 동무를 알게 되였다 해서 인사나 나누자는건 아니요. 나는 전쟁시기 미국놈들과 싸우며 별의별 일을 다 겪은 사람이요. 나와 함께 후퇴하며 나를 간호하여주던 간호원처녀가 열일곱살의 어린 동무였소. 그 동무가 발이 부르터 마지막에는 오히려 내 신세를 지기까지 하면서도 우린 같이 끝내 기본부대를 찾아간 일이 있소. 그뒤 그 처녀는 부상병들을 나르다가 포탄파편을 맞고 희생되였소. 내곁에서 아까운 전우들이, 이 나라의 청춘들이 얼마나 많이 피흘리며 쓰러졌겠소. 사람이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고비들을 겪고나면 웬만한 일에는 심장이 놀라지 않소. 동무의 일도 하나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소. 단지 동무가 건강이 회복되고 일을 다니는것이 기뻐 우연히 만난김에 한마디 하려 했을뿐이요. 일을 하는것이 기본이요. 그럼 잘 가오.》 청년은 길을 비켜주었다. 황혼이 깃들고있었다. 남자답게 체격이 그쯘하고 잘 생긴 청년이다. 볕에 탄 검실검실한 얼굴에서 가식의 빛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었다. 채운이는 그가 해준 말이 고마왔다. 아마 그가 자기를 대동강에서 건져준 청년일수 있다. 그렇지만 채운이는 청년에게 새침한 얼굴을 약간 숙여 알릴듯말듯 례의를 표시하고는 부리나케 그를 지나쳐 사람들속으로 뛰여들었다. 행길에는 퇴근하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마 그 청년은 같은 평천리에 살고있는지 한달쯤 지나 그들은 다시 행길에서 만났다. 청년이 웃고있었다. 황혼이 깃들무렵 웃음소리에 놀라 머리를 드니 그 청년이다. 《또 만났구려. 안녕하오?》 채운이는 새침해서 머리를 숙일뿐 응대하지 않았다. 《초면도 아닌데 이름이나 알고 지냅시다. 나는 주택건설사업소에서 일하는 장일남이요. 동무는?…》 《…》 채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무례했나보군. 아마 동무도 평천에 사는가보지요? 나도 여기 삽니다. 그러니 자주 만나는것 같은데 앞으로는 될수록 만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 말은 어째서인지 채운의 마음을 산란하게 했다. 그는 청년이 무례한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나치게 무례했다고 느꼈다. 채운이는 눈을 들어 청년을 쳐다보았다. 날이 어슬어슬 어두워오는 때여서인지 얼을 뽑아갈듯한 검은 광택으로 번쩍이는 처녀의 눈은 애처로운 매력을 내뿜고있었다. 그 순간 정신이 아뜩해졌는지 청년은 입만 약간 벌린채 어쩔줄 모르고 서있었다. 《저를 용서하세요.》 채운이의 구슬픈 목소리가 울리였다. 《저를 나쁘게 생각마세요. 그리고 이자 한 말대로 다시 만나지 말았으면 더없이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동무는 좋은 동무예요.》 처녀는 눈물이 글썽해져서 가던 길을 계속했다. 청년은 이윽토록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는 메고있던 점심밥곽이 든 가방을 벗어 풀밭에 던지고 자기도 거기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그리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오고가는 행인들이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악의 지옥에서 벗어난 한 처녀, 생활이 들끓는 현실에서 생을 개척해가고있는 로동처녀에 대한 동정, 기쁜 마음 그리고 자신이 부정하려 했지만 어쩔수없이 끌리는 마음, 이런것으로 하여 늦도록 앉아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일남이는 그 처녀에 대한 생각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왜 자살하려 했을가? 하는 의혹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는 여태 그처럼 매력있고 아름다운 처녀를 보지 못했다. 처녀에게서는 랭기가 풍기고있었으나 미인들은 보통 그러는 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처녀에게서는 랭기만 풍기는것이 아니였다. 어딘가 모르게 서글퍼보이는 연약한 체취가 몸매와 얼굴에서 느껴졌다. 이것은 일남이의 가슴에 쿡 쑤시는 동정을 불러일으켰고 처녀에 대한 맹렬한 사랑으로 온몸이 불타게 하였다. 장일남이는 제대된후 어머니가 하도 성화같이 독촉해서 사진업을 하는 사람의 딸을 선보았다. 그 집은 밥술이나 먹는 집인데 전후에 총각들이 부족한 때인데다 일남이가 남자답게 잘 생기고 당원이고 제대군인이여서 비록 가난한 집의 자식이였지만 욕심을 냈다. 그래 선을 보았는데 제대군인총각값이 금값인 때라 녀자쪽에서는 좋아했다. 일남이는 별로 마음에 없었지만 어머니가 하자는대로 하려는 립장이였다. 그래 혼사가 성사되여가고있었는데 녀자쪽에서 일남이네 집에 와보더니 한칸짜리 토굴집에 딸을 어떻게 시집보내겠는가, 자기네 집에는 방이 한칸 있으니 일남이를 데릴사위로 들이겠다고 제기했다. 어머니는 동요했다. 이때 장일남이 단호하게 나왔다. 전쟁기간 어머니가 이 아들을 기다려왔고 또 자기에게는 어머니밖에 혈육이 없는데 어머니를 버리고 데릴사위로 갈수 없다, 그만두겠다 해서 혼사는 파탄되였다. 일남이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그러나 장가는 가야 했기에 토굴집에 잇달아 한칸을 더 지으려고 페허로 된 벽돌집에서 벽돌을 뜯어모으기 시작했다. 사진관집 딸은 단념했으나 아무튼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 장가를 가자면 집이 있어야 했던것이다. 짬짬이 하는 일이니 방 한칸 늘구는 일이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방 한칸이 생기면 안해를 떳떳하게 맞아들일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휴식일과 퇴근후 시간을 바쳐 꾸준히 노력하고있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평양시에 아빠트들을 빨리 많이 짓는것이다. 그런데 장일남이가 다니는 주택건설사업소가 맡아 짓고있는 대동강안의 서양식아빠트는 어떤가? 방이 서너칸씩 되고 층고가 높고 덩지가 큰데 어느 세월에 그 큰 아빠트를 다 건설할지 알수 없게 속도가 뜨고 또 그런 요란한 아빠트가 장일남이 같은 로동자에게 차례지지도 않을것이다. 문화인아빠트라는 말이 있다. 이 아빠트는 기초를 팔 때와 상하수도관을 묻을 땅을 팔 때 한바탕 말썽이 있었다. 쏘련의 아빠트치고도 씨비리의 아빠트설계를 가져다 그대로 하다 보니 땅을 상당히 깊이 파지 않으면 안되였는데 전쟁전부터 집짓는 일을 한 작업반장이 지배인이 시찰나온 기회에 그것에 대해 의견을 제기했다. 이거 너무 깊이 파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깊이 파지 않아도 평양날씨에는 얼지 않습니다하고. 지배인은 대뜸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해지며 뭘 안다구 그래? 이건 현대적아빠트야, 무식한것들, 설계대로 하란말이야! 하고 꾸짖었다. 장일남이네 작업반장은 얼굴이 벌개져 잠자코 있다가 지배인이 사라진 다음에야 두덜댔다. 흥 누가 무식한지 모르겠다. 로동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동평양에 경공업성에서 아빠트를 조립식으로 짓고있다는데 구조가 간편하고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일남이네 작업반사람들은 그 조립식으로 짓는 살림집을 부러워했다. 긴장한 살림집을 풀자면 우리한테 맞는 간편한 구조로 빨리 지어주면 좋겠다는것이 수도시민들, 제대군인들뿐아니라 주택건설자들 자신들의 요구였다. 장일남 개인으로 보아도 절실하다. 장가를 들래도 집이 없다. 집이 없어 데릴사위로 들어오라는 모욕적인 요구조건까지 녀자쪽에서 제기하지 않았는가. 가끔 그가 자리에 누워서도 잠못들며 그려보는 두번이나 만났던 《그 처녀》에 대한 불타는 사랑의 감정도 집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물론 집이 있다해도 그처럼 매력있는 처녀가 일남이의 욕망대로 사랑에 응해주겠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림의 떡일수 있다. 그래도 같은 평천리에 있으니 혹시 또 만날수 있지 않을가. 이번에 만나면 꽉 붙잡고 절대로 놓지 않을것이다. 이런 애타는 소원과 굳은 결심을 품고있었으나 그후 처녀를 길에서 좀처럼 만날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봄이 지나고 여름도 지나가고있었다. 대동강가에 록음이 우거지고 매미들이 정열적으로 울어댔다. 장일남이는 꾸준히 평천리에서부터 대동강반에 있는 살림집건설장까지 걸어 출근했고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깊이 박인 그 처녀에 대한 희망은 좀처럼 버릴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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