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11회)

김  삼  복            

 

21

 

강선에서 어머니가 왔다간후 박채운의 건강상태는 급속히 회복되여갔다. 대동강물에 빠져죽지 못한것을 후회하면서 자기를 살려낸 청년(병원에서 제대군인청년이라고 알려주었었다.)을 원망하기도 했던 채운이였다. 어머니가 눈물을 쏟으며 들려준 이야기는 채운이의 좁은 가슴에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벅차고 충격적이고 뜨거운것이였다.

며칠을 두고 생각하며 울고울다가는 다시 곱씹어 생각하면서 채운이는 그 깊은 의미를 음미해보았다. 음미해볼수록 꿈만 같았다. 어떻게 자기같은 죄많은 녀자가 용서를 받을수 있으며 어떻게 작은 하나의 먼지같은 존재인 한 인간이 온나라를 보살피시는 수령님의 직접적인 은정을 받을수 있겠는가.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나자 불시에 머리속이 거뿐해졌고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날수 있었다.

(살아야 한다. 살아서 이 은덕에 보답해야 한다. 압연공의 딸답게 재생의 길을 개척해가자.) 이런 결심이 불쑥불쑥 치밀었다.

그러고보면 대동강물에 빠진 자기를 살려준 그 청년은 생명의 은인이였다.

구슬픈 음영이 비꼈던 처녀의 검은 눈에 생의 환희가 반짝이기 시작했고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던 얼굴에 발그레한 빛이 돌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채운이는 저녁밥을 짓고 탄불을 보고 찬거리를 사오는 일을 맡아하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학교다니는 이모의 딸과 함께 시내로 나가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뻐스를 타보기도 했다. 재미나게 놀고 적당하게 로동을 한 날은 처녀의 기분이 명랑해졌고 잠도 잘 잤다.

눈만 커지고 뺨이 훌쭉하게 여위고 목이 가늘어졌댔는데 차츰 살도 보동보동 오르게 되였다. 날씨는 추웠으나 사촌동생과 함께 모란봉에 올라 을밀대와 부벽루를 구경했고 대동강의 흐름을 따라 걸으며 련광정과 대동문, 평양종을 돌아보았다. 식당에 들려 대동강숭어국밥을 먹었으며 시내중심부를 직선으로 뻗어간 거리를 걸어가며 한창 건설되고있는 아빠트들과 민족보위성청사, 종합청사들을 구경했다. 새 평양은 자기의 모습을 뚜렷이 나타내며 솟아오르고있었다. 채운이는 건설로 들끓는 수도의 새 모습을 자기의 미래와 련결시켰다. 압연공의 딸답게 개척해야 할 재생의 길이 로동의 땀을 흠뻑 흘리며 새 생활을 창조해나가는속에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채운이의 생활이 변모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치욕스러운 과거와의 결별이란 쉽게 되는것이 아니였다.

그 과거가 너무도 무서운것이였고 또 몇달전에 있은 너무도 생생한 추억이였다. 그래서 가끔 꿈속에까지 찾아와 처녀를 괴롭히는것이였다.

채운이는 모든 남자를 믿지 않고 경계했으며 자기를 황홀해서 쳐다볼 때면 머리카락이 일어섰고 증오가 끓어올랐다. 이럭저럭 사귀게 되는 녀인들에게도 자기에 대한 뛰뛰한 추문이 알려질가봐 항상 경계했고 새침해서 침묵속에 잠겨있었다.

건강이 회복되자 채운이는 직장에 다니겠다고 이모에게 말했다. 아침식사시간이였다.

《생각해보자.

이모의 대답이였다.

《거기에 뭐 생각을 해볼게 있소?》 하고 이모부가 가장으로서 권위가 있게 그들의 대화에 끼여들어 말했다. 《일을 해야 해. 채운이의 말이 옳아, 당신이 이 애의 직업을 구해주지 못하겠으면 내가 적당한곳을 물색하겠소. 중앙기관에 들어가서 서기나 타자수를 하면 좋을거요. 건강에도 알맞고.

그러나 이모부는 당자인 채운으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아니예요. 이모부, 나는 그런 서기나 타자수는 싫어요. 나는 로동을 하고싶어요. 땅파는 일처럼 험한 로동을…》

채운이는 《땅파는 일》을 험한 로동이라는 상징적인 뜻에서 입에 올렸다. 실지 무슨 일을 했으면 좋을지 구체적인 직업에 대한 선택은 아직 없었다. 이모부가 밥먹던 숟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엄하게 말했다.

《너 무슨 소릴 하니? 너처럼 연약한 애가 곡괭이로 땅을 파는 일을 해? 하루도 못견딜게다. 너한테는 조용하고 깨끗한 사무실이 알맞는다.

이모부는 채운이의 건강도 건강이거니와 이처럼 얼굴도 몸매도 고운 처녀가 땅을 파는 험한 일을 한다는것이 너무도 아깝고 가엾는 처사로 느껴졌다. 그건 안될 말이다. 아름다운 꽃송이를 진흙탕속에서 피라고 던지는것과 같다.

하지만 채운이는 조용하고 안온한 사무실이 오히려 싫었다. 그런데 앉아서 간부들에게 인사나 하고 미소나 던지는 일이 전부인것같은 그런 생활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부탁이예요. 이모부! 내 일에 더 참견말아주세요.》 하고 채운이는 콕 쏘듯이 잘라말했다.

《오, 너는 고집쟁이로 유명하지, 그러마, 그러마, 참견 안하마!

이렇게 하여 박채운은 평천리에 있는 제사공장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런데 만약 자기가 대동강에 몸을 던졌던 그 사건으로 하여 한때 제사공장에서 그 공장의 조사공처녀가 자살하려 했다는 소문이 돌아 웅성거리였다는것을 알았더라면 결코 그 공장에 취직하지 않았을것이다. 다행하게도 그러한 내용을 채운이는 듣지 못했고 또 후에 제사공장처녀가 아니라는것이 밝혀져 이제는 모두가 그 일을 잊어버리다싶이 해서 채운이에게 새삼스럽게 말해줄 사람도 없었다.

새 공장건물은 한창 짓는중이고 조사공들은 림시건물안에서 명주실을 생산하고있었다. 림시공장건물은 조건이 불비했다. 천정이 낮고 어둑침침했으며 공기가 습했다. 그속에서 조사공들은 조사기들을 하나씩 맡아가지고 등을 굽히고서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가마에서 더운 물에 뜬 누에고치들을 손으로 다루고있었다. 작업장안은 김이 뽀얗고 덥고 답답했다. 흰머리수건을 삼각으로 쓰고 앞치마를 두른 조사공들은 누에고치에서 실머리를 찾아 빙글빙글 돌아가는 얼레에 걸어준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명주실을 다루는 이 일은 처녀들의 신경을 예민하게 했다.

채운이는 견습기간에 자기가 직업을 잘못 택했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한 자기에게 가느다란 명주실을 다루는 일이 마땅할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이상 어쩔수 없다고, 이제 또 옮기고 어쩌고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릴수 있다고 보며 명주실 다루는 일에 익숙되기 위해 노력했다. 채운이는 남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것이 제일 싫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남자들은 물론이고 녀자들도 누구나 그를 친절하게 대했고 말을 붙이려 했고 무엇이든 도와주려 했다. 채운이는 자기가 남달리 얼굴이 환하고 몸매도 늘씬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것이라고 짐작했다.

이것이 그에게는 딱 질색이였다. 더구나 그 억울하고 창피스러운 추문이 알려진다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채운이는 낯모를 사람을 피하는 한편 얼굴을 아는 사람을 만날가봐 두려워했다. 가령 자기를 강물에서 건져낸 청년이나 그때 옆에 있었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는 고맙게 생각되나 만일 그들중 누구라도 이 채운이를 알아본다면 그 부끄러움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다행하게도 평양은 넓었고 사람들이 많았다. 매일 봐도 매번 다른 얼굴들이다. 이러한 사정은 채운이를 어느 정도 안정시켰다

견습기간이 끝나감에 따라 공장에서는 견습공들을 유능한 조사공들에게 개별적으로 붙여주어 기능을 직접 배우도록 하였다.

채운이는 조사 1직장 4작업반에 배속되였다. 작업반장이 그를 데리고 작업장으로 가더니 키가 자그마하고 오동통한 처녀조사공에게 소개했다.

《옥실동무, 이 견습공동무를 한주일간 데리고 일하면서 배워줘야 하겠어. 이름은 박채운이라 해요.》 반장은 이번에는 채운이에게 말했다. 《길옥실이라고 하는데 이 동무한테서 잘 배워요.

《네.》 채운이는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한것은 길옥실이라고 하는 조사공이 자기를 놀랍게 바라보았기때문이였다. 채운이는 자기와 처음 대상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놀라움과 동정이 어린 눈길을 자주 받군했다.

길옥실이는 열아홉살난 처녀조사공인데 뺨이 붉고 눈이 별처럼 빛났으며 손동작이 기계처럼 정확하고 빨랐다. 다시말하여 건강하고 활력에 넘쳐있었으며 기능이 높았다.

《한번 해봐요.》 하고 조사공은 친절하게 말했다.

채운이는 누에고치에서 실머리를 찾아내여 얼레에 걸어주려다가 실패했다. 기능공앞에서 처음 해보다나니 당황했던것이다.

길옥실이는 웃으며 일없다고, 자기도 처음에는 실수가 많았다고 하며 채운이를 고무해주었다. 채운이는 붉어진 얼굴로 서있기만 했다. 채운이는 공장에 들어와서 아직 웃어본 일도 없고 늘 새침해서 사람들을 대했으며 늘 입을 다물고있었는데 길옥실이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옥실은 채운이 보고 다시 해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잘되였다. 누에고치에서 실머리를 찾아내는것을 삭서한다고 하는데 삭서를 표준대로 잘하여야 생산도 높일수 있고 제품의 질도 보장하고 실랑비도 적고 실수률이 올라간다. 누에고치 한알에서 명주실을 얼마나 뽑는가 하는것이 실수률이다. 그렇게 뽑은것을 검사해서 량과 질에 대한 평가를 한다. l등품과 3등품사이의 돈차이가 곱이다. 그러니 조사공들은 질을 높이려 하고 그러자니까 기능을 높여야 한다. 채운이는 견습과정에 이 원리를 깨달았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욕망만으로 되는것은 아니였다.

길옥실이가 잘한다고 칭찬해주었다. 하지만 채운이는 여전히 새침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어요. 나는 농촌에서 일하다 평양에 올라오게 돼서 이 공장에 입직했는데 등짐으로 두엄을 져나르고 호미로 땅을 긁는 농촌일에 대면 이 일이 얼마나 쉽고 재미나겠어요? 너무 재미나서 하루 8시간이 어떻게 지나가군 하는지 몰랐어요. 기능도 빨리 늘구요.

길옥실이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조사공은 눈이 팽팽 돌고 손동작이 빠르고 부지런해야 해요. 그런데 일에 재미를 붙이니 자연히 해결되더군요.

채운이 보건대 이 몸매 작은 처녀는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손동작이 빨라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굴에 근심걱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생에 대한 애착과 희열이 넘쳐나고있었다. 부러웠다. 얼마나 깨끗한 처녀인가.

후에 안 일이지만 옥실이는 입직한지 겨우 한해반밖에 안됐으나 부지런히 일하며 기능을 높여서 벌써 4급공이 되였고 상반년 총화때 상금까지 탔다고 한다.

채운이는 자기는 도저히 길옥실이 같은 기능공이 될것 같지 못했다. 교대를 끝내고 헤여질 때 채운이는 이렇게 자기의 심정을 내비치였다.

《나는 조사공이 어울리지 않을것 같애요.

《아니 왜요?

《나는 원래 손이 떠요.》 신경이 예민해졌다는데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건 글쎄 시간이 가면서 해결된다니까. 채운동무한테는 장점이 있어요. 침착해요. 조사공은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것이 중요해요. 조사공을 못하겠다면서 가버리군 하는 애들을 보면 주의집중력이 없고 신경이 예민한 애들이예요.

옥실은 이렇게 견습공을 고무해주는것이였다.

헤여지면서 그가 채운이에게 《집이 어디예요?》 하고 물었다. 처음 사귀는 동무에게 응당 묻게 되는 그런 물음이였다. 하지만 채운이는 눈을 내리깔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쩐지 자기로서도 불안스러웠으나 채운이는 어쩌는수 없었다. 채운이는 될수록이면 모든 면에서 자기를 감추려 했던것이다.

만일 채운이가 길옥실이라고 하는 기능공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 제사공장을 포기했을런지도 모른다. 채운이는 날이 갈수록 그 기능공에게 마음이 끌리였다. 다정다감하고 친절했으며 성을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일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컸다. 한주일동안에 채운이는 길옥실이에게서 그러한것들을 볼수 있었다.

길옥실의 옆기대는 명옥이라는 조사공의것인데 명옥이는 련 이틀째 결근을 했다. 그래서 그 조사기가 돌아가지 않고 서있었다. 한번은 반장이 등뒤로 지나가는것을 옥실이가 멈추어세웠다.

《반장언니, 내가 여기 명옥언니의 기대까지 같이 돌리면 안될가요?

반장은 입을 삐쭉거렸다.

《그건 왜?

《한번 해보고싶어서요. 두대를 동시에…》

반장은 잠간 생각하고나서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러면 오작품이 날수 있어!

《오작품을 내지 않게 하겠어요.

《글쎄 그만 두래두.》 반장이 짜증을 냈다.

《그러면 작업반의 실적도 올라가겠는데…》

옥실이가 아수한듯 중얼거리였다.

《옥실이의 실적도 올라가지. 상금도 타고…》

옆에서 듣고있는 채운이로서도 반장이 무슨 심술을 부리는것 같이 느껴졌다. 채운이는 옥실이가 손동작이 빠르고 기능이 높기때문에 능히 두대를 동시에 돌릴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장은 옥실이가 실적도 올리고 상금도 타먹기 위해 그런 제기를 하는것으로 리해하는것 같다.

《반장언니.》 옥실이가 말했다. 《내가 돈이나 더 벌자고 제기하는줄로 생각하는것 같은데, 그러면 명옥언니의 기대에서 뽑은 실적을 명옥언니것으로 계산해주자요.

《흥, 그건 무엇때문에? 그럼 명옥이는 결근하구두 돈을 타게? 넌 참 치마자락이 넓구나. 그런 행동은 건달군만 만들어내, 난 정말 명옥이를 어쨌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쩍하면 지각, 결근 흥…》

《무슨 사정이 있겠지요. 어렵게 산다구 해요. 도와줘서 나쁠게 있을가요?

《안돼, 버릇 궂혀!

반장은 이렇게 차겁게 내뱉고는 돌아섰다. 길옥실은 실망해서 그의 뒤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채운이는 옥실의 인정이 무참히 짓밟히는것 같아 자기가 다 분했다. 반장은 무슨 녀자가 저렇듯 차거울가?

일이 끝났을 때 채운이는 《왜 반장이 옥실언니의 제기를 반대했을가요?》 하고 물었다.

길옥실은 반장이 자기를 잘못 리해하고있는것 같다고 대답했다. 돈을 더 벌려는 욕심에서 두대를 동시에 맡아보려는것으로 아는것 같다고 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며칠전에 교대를 끝낸 옥실이는 다음 교대에서 결근자가 생겨 기대가 하나 선것을 보고 그 기대를 맡아 일한적이 있었다. 16시간을 꼬박 일했다. 그래도 처녀는 힘든줄 몰랐다. 농촌에서 단련됐고 건강하고 무엇보다도 명주실뽑는 일이 재미났던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반장은 이튿날 입을 삐쭉거리며 너 시집갈 례장감을 장만하려구 그렇게 벌이에 열성이야? 하였다. 아이참, 나는 그저 일이 재미나고 기대가 서있기때문에 계속한건데? 옥실이는 어이없어 그 이상 더 말을 못했다. 그러나 반장은 교대후의 사회동원에 옥실이가 빠졌다고 트집걸며 오히려 비판을 했다. 교대후의 사회동원이란 공장건설을 돕는 일이였다.

채운이는 길옥실의 이야기를 듣으며 반장은 속이 좁은 녀자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대면 길옥실은 몸집은 작지만 생각은 얼마나 넓은가. 마음씨가 얼마나 고운가?

견습기간이 끝나고 직장에 배치될 때 채운이는 조사1직장 4작업반에 보내달라고 제기했다. 옥실이와 같이 일하고싶어서였다. 그는 자기소원대로 옥실이와 같은 작업반에서 일하게 되였다.

옥실이가 반가와 손을 잡고 방실거리자 채운이의 얼굴에도 마침내 웃음이 연하게 비끼였다.

채운이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작업반장의 눈에 나기 시작하였다. 반장은 처음에는 한숨을 쉬고 며칠 지나서는 눈알을 찌프리였고 또 며칠 지나서는 《우리 작업반에 하필 저렇게 손이 굼뜬 애가 차례질건 뭐람. 얼굴은 밴밴한데 랭기만 풍기면서 영 열성이 없다니까.》 하고 뒤소리를 했다. 그 뒤로는 총화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채운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옥실이는 왜 그런지 그의 그러한 모습에 아픔을 느꼈다.

 

22

 

채운이가 새로운 결심을 품고 제사공장에 다니며 일에 파묻혀 만사를 잊으려함으로써 정신적으로뿐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건전해지고 건강해졌지만 한번 받은 정신적타격이 너무 강해 그 흔적이 쉽게 가셔지지는 않았다. 어쨌든 자기는 종파놈에게 봉사했다. 수령님께서 오명을 벗겨주시였지만 량심은 괴로왔다. 또 자기를 두고 돌아가고있는 소문은 상처로 가슴에 박혀있었다.

자기가 결백함을 어떻게 증명해 보이겠는가? 무엇보다도 순결한 처녀로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참을수 없었다. 잊어버리고 마음을 굳게 먹자. 내 스스로가 결백함을 간직하고있으면 되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결심했어도 길옥실이 같이 생신한 로동처녀들의 생기에 넘치는 모습을 대할 때면 저도모르게 눈빛이 흐려지는것이였다. 건강도 쉽게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런것으로 해서 컴컴한 큰 눈에는 때때로 수심이 비꼈고 보동보동하게 살이 오르고있었으나 강선에서의 관리원시절의 옛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채운이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애처로운 인상을 주며 그것은 처녀의 미모에 이상하게도 매력을 더해주는것이였다. 누구나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쳐다보게 되는것이 그때문이며 말을 걸어보고싶어하고 무언가 도와주고싶어하는것도 그때문이였다. 그 매혹적이고 자극적인 인상이 길옥실이로 하여금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었다.

채운이가 말을 안하고 웃지도 않고 새침해있었건만 옥실이는 어쩐지 마음이 끌리고 이상하게 동정이 갔다. 그 처녀에게는 애교라든가 남을 깔본다든가 깜찍하다든가 속여넘긴다든가 하는 얼굴이 고운 처녀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경망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도 고와보이는데 왜 새침한 표정이고 집이 어디 있는지도 말하지 않을가? 옥실이는 채운이가 페병같은것을 앓고있지나 않는지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여튼 무슨 말 못할 사정의 수수께끼를 안고있는 처녀였다.

세상이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가, 사람마다 다 나름의 숙제를 안고있다. 채운이도 명옥이도…

교대를 마치고 공장재건을 사회적운동으로 돕는 건설로동까지 끝냈을 때는 어두운 밤이였다. 저으기 지치고 배고픔을 느낀 길옥실이는 가게방에 들려 《말누깔사탕》 한알을 사서 입에 넣고 혀로 굴리면서 집으로 향했다. 옥당목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입고 외태머리를 드리웠다. 걸음걸이에 따라 외태머리끝에 매단 빨간 리봉이 춤을 춘다. 제사공장앞은 대동강뚝이 막혀있는데 그 뚝을 넘어 맵짠 강바람이 불어왔다.

옥실이네 집은 공장에서 멀지 않는 대동강가의 단층집마을에 있었다.

집마당에 들어서니 불이 환한 안방에서 두런두런하는 남자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빠가 동무를 데려온것일가.

옥실이네는 비단고장인 녕변에서 농사를 짓다가 중앙기관에 배치된 오빠를 따라 2년전에 평양으로 왔었다. 살림집이 귀한 때여서 웃방에서는 오빠내외가 살고 아래방에서는 옥실이와 어머니가 살고있는데 폭격에 허물어진것을 개축한 보잘나위없는 단층집이긴 해도 이만한 집도 쉽지 않았다. 마당에는 수동펌프수도까지 있었다.

옥실이는 부엌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엇을 볶는지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부엌에서 어머니가 얼굴을 돌리며 반기였다.

《늦었구나.

《누가 왔어요?

《반가운 손님이다. 어서 들어가봐라.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나?

《그렇잖구, 전쟁이 끝난 해에 오빠와 함께 왔던 군대가 생각나니?

그해 오빠는 표창휴가를 받고 한 부대에 있는 강기룡이라 하는 하사와 함께 녕변의 고향집을 찾아왔었다.

《어머니, 전선에서 같이 싸운 전우입니다. 집은 함남도인데 후퇴시기에 온 가족이 놈들에게 몰살당했습니다. 그래 휴가를 받고 어디로 갈지 몰라 망설이는걸 제가 우리 집으로 같이 가자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오빠가 그를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소개했다. 《나와 같은 친오빠로 대해라.》 하고 오빠는 옥실이 보고 특별히 찍어 말했다.

온가족이 놈들에게 학살당한 고아라는 점에서 특히 기룡이는 옥실이네의 동정을 샀고 모두 그를 따뜻이 대해주었다. 옥실이는 그를 오빠라고 부르며 일나갔다 와서는 그의 군복을 빨아주고 목달개에 빨간실로 장식을 해주었다. 볼이 능금처럼 빨간 열여섯살의 처녀는 티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그를 진정 친오빠처럼 대해주었다.

혜여질 때 기차정거장까지 따라나온 옥실이에게 강기룡이는 《옥실이, 내 편지할게 회답해줘야 해.》 하고 부탁했다. 옥실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기룡오빠, 잘 가요. 건강하세요.》 기룡이는 오빠와 함께 기차를 타고 다시 부대로 돌아갔다.

인차 편지가 왔다. 《나는 옥실이가 벌판에서 일 끝내고 돌아오며 노래부르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구나. 나는 <아무도 몰라>를 좋아하는데 이 노래를 모른다면 꼭 배우라구. 참 좋은 노래야. 다음번 만날 때 옥실이한테서 그 노래를 들었으면 한다.》 기룡이는 이렇게 썼다.

옥실이는 즉시에 회답편지를 쓰려했지만 종이만 랑비했을뿐 끝내 쓰지 못했다. 아직 편지라는것을 한번도 써본적이 없는 그에게서 그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대충 알고있던 노래 <아무도 몰라>는 정식으로 배웠다. 노래는 참으로 그의 마음에 들었다.

오빠는 강기룡의 이야기를 종종했으나 이제 와서는 지나간 추억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문득 나타난것이다.

…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자 길옥실이는 지나간 추억이 생생히 떠오르며 기쁨으로 가슴이 활랑거리였다.

부엌과 통한 방문이 열리며 오빠가 얼굴을 내밀었다. 모녀의 말소리를 들은것 같다.

《옥실이가 왔니? 어서 올라오너라. 기룡오빠가 왔다.

옥실이는 신을 벗고 날듯이 아래방으로 들어갔다. 키가 쭉 빠지고 얼굴이 잘 생긴 청년이 일어섰다.

《기룡오빠, 아이참 키가 더 컸구만요.》 몸매 작은 옥실이는 그를 쳐다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허… 옥실이는 몰라보게 번졌는걸.》 기룡이가 웃으며 반기였다. 《볕에 새까맣게 타가지고 종일 들판에서 일만 하더니.…》

《지금도 이 애는 일밖에 모른다네. 공장에만 박혀있지. 그래 볕을 쬐지 못해 얼굴이 이렇게 희멀겋게 된거야.》 오빠가 말했다.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길옥실이는 명주실 뽑는 일이 처음에는 힘겨웠으며 농사일로 하여 썩살이 박히였던 손을 더운물에 종일 담그고있으니 희멀쑥하게 물크러지고 부풀어 통퉁해졌고 마치 가마치가 이는것처럼 손바닥의 피부가 몇껍질 벗겨져 쓰리고 아팠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사를 지을 때처럼 부지런하고 이악하게 일했다. 일에 재미를 붙이니 기능이 빨리 늘었고 로임도 높아져갔다. 평양와서 평양 처녀들이 옷 잘 입고 다니는것이 제일 부러웠댔는데 자기가 번 돈으로 옷을 해입을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일을 그냥 하고싶었다.

강기룡이는 제대되여 서평양철도공장에 배치되였다고 말했다. 그는 늦도록 놀다가 후날 다시 오겠다며 공장합숙으로 돌아갔다.

옥실이가 이튿날 출근하니 명옥이가 눈에 뜨이였다.

《명옥언니 나왔어요?

그가 일나온것이 반가와 옥실이는 탈의실에서 만나자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응.》 명옥이는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반장은 명옥이를 본척도 안했다. 인상을 찌프리고있을뿐이였다.

일이 끝난 다음 총화시간에 반장이 말했다.

《명옥동무, 벌써 며칠 결근이예요? 이달이 절반밖에 안갔는데 3일씩이나 결근하고도 미안해하는 표정이 전혀 없군요. 동무때문에 우리 4작업반의 실적이 계속 떨어지고있어요. 차라리 작업반을 옮기든가 공장을 그만두는게 좋지 않을가요?

그러자 명옥이가 반발했다.

《반장동무가 뭐길래 공장을 그만두라 어쩌라 하는거예요? 남의 사정을 알기나 해요?

《사정은 누구나 있어요. 누구나 어렵게 살아요. 그런데 명옥동무만 특별히 보아달라는거나요? 뻔뻔스럽군요.

《아니, 뭐라구요?

《뻔뻔스럽다구 했어요. 나이 어린 동무들앞에서 창피를 느끼라요.

명옥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흐느껴울었다.

옥실이는 막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왜 서로 오손도손하지 못하고 이렇게 서로 앙심을 품고 증오하며 싸우는것일가? 명옥이네 집에 무슨 사정이 있는지 알아보면 못쓰는가? 글쎄 누구나 다 사정이 있지. 그래도 다 같지야 않을테지.

이래가지고는 작업반이 화목할수 없고 결국 생산이 떨어질것은 뻔하다고 옥실이는 안타깝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다 로동을 즐기고 남을 동정하고 서로 돕는다면 이 세상은 화목해지고 살아가기도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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