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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7회) 김 삼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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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밤 강영창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에 출근해서도 일에 정신을 집중할수가 없었다. 하긴 정황이 달라졌으니 지금까지 추진해오던 많은 사업이 무의미해졌던것이다. 강재생산계획의 증대에 따르는 다른 지표들도 재조정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강재 2만t의 예비를 찾아내야 하는것이다. 부상들, 국장들과의 회의를 소집했으나 빈소리와 걱정만을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였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가까와오고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있었다. 이때 전화종이 울리였다. 송수화기를 드니 뜻밖에도 수령님의 책임부관이 말하는것이였다. 《상동지, 수상님께서 저택으로 부르십니다. 지금 곧 저택에 도착하셔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고 송수화기를 놓았다. 그 다음에야 책임부관의 말에 담긴 뜻을 음미했다. 그러니까 곧장 저택으로… 무슨 긴급한 용건일가? 그는 서둘러 옷차림을 바로 하고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금속공업부문의 래년도계획수자를 타자친 문서를 서류가방안에 넣어들고 방을 나섰다. 저택에 도착하니 기다리고있던 책임부관이 그를 맞이하며 수령님께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시려고 부르시였다는것을 알려주었다. 강영창은 저으기 놀랐다. 그는 수령님을 모시고 현지에도 많이 다녔고 식사도 여러차례 같이했다. 때로는 길가의 농가에서 그이와 함께 검소한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저택에서 식사를 한적은 없었다. 그는 당황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가시였다. 식탁에는 아직 점심식사를 차려놓지 않은 상태였다. 수저와 양념그릇들만이 놓여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그를 맞은편 자리에 앉게 하셨다. 《개천군 농민들이 나한테 올해에 농사지은 강냉이를 보내왔는데 찰강냉이도 있었소. 찰강냉이로 지짐을 지져먹으면 참 별맛이요. 그래 그 얘기를 오늘 아침에 했더니 점심에 준비한것 같소. 같이 먹어봅시다. 찰강냉이지짐을 먹어본적이 있소?》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고맙습니다. 전에 중국 려순공과대학시절에 사먹어본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전일이여서…》 강영창의 너부죽한 얼굴에서는 성실한 사람에게서 보게 되는 인간미가 풍기고있었다. 사실 그는 고지식하고 진실하며 외교할줄 몰랐다. 그러나 지금 그는 수령님께서 찰강냉이지짐이나 같이 하자고 부르지 않으셨다는것은 충분히 짐작하고있었다. 강재, 그렇다. 강재때문일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는 바늘방석에 앉은것같은 심정이였다. 《강동무도 알고있겠지만 나는 올해에 다수확작물인 강냉이를 많이 심을데 대한 과업을 주고 이른봄에 개천군에 직접 나가 농민들과 의논해보았소. 처음에는 일부 늙은이들이 완고하게 나왔지만 리보부녀성의 시아버지와 젊은 관리위원장이 적극 지지해서 강냉이를 많이 심게 되였소. 가을에 흐뭇하게 잘된 강냉이를 보면서 농민들은 아직 춥던 2월달에 찾아왔던 수상을 생각하게 되였다면서 자기들이 수확한 강냉이를 우리 집에 짊어지고 왔소. 나는 래년에는 랭상모를 널리 받아들이게 해서 논농사에서도 전변을 일으키려 하오. 지금 농촌에서 일이 잘되고있소.》 이렇게 말씀하시는 사이에 방금 지져낸 지짐이 들어왔다. 수령님께서는 어서 들자고 하시며 지짐은 따끈할 때 먹어야 맛이 난다고 하시였다. 강영창은 식탁에 수저와 양념감만 놓여있던 리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옛날에 먹어보긴 했으나 찰강냉이 지짐이 이렇게 맛있는줄 처음 느끼였다. 곁들여온 연자주빛 갓김치가 맛을 더 돋구었다. 그렇지만 그는 조심스러운 면도 있었거니와 보다는 농업은 잘되여가고있는데 금속공업은 지금 난관에 직면해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지짐을 제대로 먹을수 없었다. 《왜 맛이 없소?》 저가락을 조심스럽게 놀리는 그에게 수령님께서는 물으시였다. 《아닙니다. 지짐이 참 맛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양말고 많이 자시오.》 《예, 먹겠습니다.》 그렇지만 강영창은 여전히 목이 메이는 심정이였다. 이제 불피코 강재증수얘기가 나오겠는데 그는 지금 앞이 전혀 내다보이지 않았던것이다.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가을작황이 좋으니 나도 입맛이 도는것 같소. 그래 오늘 지짐을 지지라 했소. 농촌에서 일이 잘 펴나간다고 볼수 있지만 그러나 현대적인 농업을 건설하자면 아직 멀었소. 우리가 발전된 나라로 되자면 중공업뿐아니라 농촌도 현대적기술로 장비해야 하는거요. 그래서 그 목표를 하루라도 앞당겨 달성하려고 경제장성속도를 높이자는것인데 이걸 놓고 안에서도 밖에서도 말이 많소. 우리가 5개년계획을 수행하는것이 매우 어렵다는것을 모르고 달라붙은건 아니요. 락후와 빈궁에서 속히 벗어나 선진국대렬에 들어서기 위해 스스로가 택한 어려운 길이고 스스로가 걸머진 무거운 짐이 아니겠소? 나는 유럽에 갔다올 때면 언제 우리 나라가 공업국이 되고 언제면 우리 인민들이 유족하고 문명하게 살게 될가 하는 비분강개한 심정을 금할수 없었소.》 자기 조국과 자기 민족의 운명을 두고 하시는 수령님의 간곡한 말씀에서 강영창은 그 운명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그이의 숭엄한 정신세계와 우리 인민의 빛나는 장래를 내다보시며 그것을 앞당겨오기 위해 정열을 기울이시는 그이의 의지력을 볼수 있었다. 그이의 말씀은 의기가 저상되여있는 강영창의 심장에 뜨거운 불을 지펴주었다. 어찌하여 자기를 부르시여 오찬을 같이 하시고 그러한 간곡한 말씀을 하시는지 강영창이 깨닫지 못할수 없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였다. 오찬을 끝내신 수령님께서는 강영창을 데리시고 저택의 후원으로 나가시였다. 11월중순경에 흔히 보게 되는 흐릿하고 쌀쌀한 날씨였다. 눈이 내릴것 같았다. 바람이 불면서 락엽이 날리였다. 넓은잎나무들은 거의다 락엽이 지고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푸르싱싱했다. 타는듯 붉게 물들었던 단풍나무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은 이미 지나갔다. 수령님께서는 누렇게 된 잔디밭사이에 난 오솔길을 천천히 걸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강영창이와 함께 걸으시며 바로 그에 대해 생각하시는것이였다. 김책은 그를 중요한 병기강생산에 인입시키려 한다면서 그가 일본의 어느 전기주식회사에서 일한것을 가지고 일부사람들이 좋지 않게 보는데 자기는 생각을 달리 한다고 하였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왜정때 반일투쟁을 좀 했다는 일부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기 위해 왜놈들밑에서 일한 지식인들을 한몽둥이로 친일파로 치는것을 비판하시고 더우기 강영창은 미군이 강점한 남조선으로부터 인민적시책이 실시되고있는 북조선으로 찾아왔다는 그자체가 그의 사상적경향성을 말해주는것이라고 하시며 김책을 지지해주시였었다. 그뒤 ㅇㅇ제강소를 현지지도하실 때 강영창을 처음 만나보시였는데 이야기를 해보니 마음에 드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애국적열의와 건국사업에 바친 노력적위훈을 높이 평가해주시였으며 최일이 그를 계속 의심하며 기사장자리에서 떼자고 제기하는것을 엄하게 비판하시였었다. 믿음은 충신을 낳는 법이다… 이런 추억이 있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수령님께서는 산업성 금속관리국 기사장을 하던 강영창에게 파괴된 제철, 제강소들의 전망적인 복구안을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강영창은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제철소들과 제강소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한번은 성진제강소로 떠나야 하겠는데 그쪽으로 가는 자동차가 당장 없었다. 그런데 성강은 방금 폭격을 맞은 상태여서 더 지체할 형편이 못되였다. 그는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옆에서 차편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제강소가 폭격당했는데 자동차타발을 하게 되였습니까. 가느라면 자동차를 만날수 있을게고 못만나면 걸어서라도 가야 하겠습니다. 수상님께서 실태보고를 기다리고계십니다.》 하며 배낭을 지고 떠났다. 한달후에 그는 평양으로 돌아왔는데 다리를 몹시 절었다. 수령님께서 그가 왔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직접 그를 부르시였다. 강영창은 훌쭉하게 여위고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수령님을 뵈옵자 너무 반가와서 어쩔줄 몰라하는것이였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눈굽이 뜨거워나시여 그의 어깨를 어루만져주실뿐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였다. 강영창은 지금도 변함없이 일을 책임적으로 하고있다. 리웅천을 비롯한 기사장, 지배인들이 현장에서 수령님을 받들어 강철과 강재생산기지들을 하나씩 맡아 지휘하고있다면 강영창은 금속공업의 참모부에서 수령님을 보좌해드리는 지휘성원이다. 수령님께서는 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시기에 강영창이 당의 로선과 정책에 의심을 가지거나 동요할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고계시였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난국을 타개해나가겠는지 그것이 걱정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정일룡부수상으로부터 강영창이 뜻밖의 정황앞에서 얼굴이 시커매가지고 말을 못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으시였었다. 물론 그가 성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토의할것이고 2만t증산 과제를 제강소들에 풍겨서 내리먹일수 있을것이다. 예비를 더 찾아내라고… 그러나 그것은 해결책이 못되며 또 강영창은 그렇게 어려운 과제를 밑에 되받아넘기는 식으로 가볍게 처리할 사람이 아니다. 그가 부수상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다는 그자체가 그것을 말해준다. 지식인인 그는 담벽도 문이라고 하며 내밀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다. 내미는 힘이 강한 일군들은 무슨 과업이 제기되면 우선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다음 드센 손탁으로 아래사람들을 몰아대는데 강영창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 하겠다는 대답을 심중하게 하는 사람이다. 현재로서는 그의 입에서 《해내겠습니다.》 하는 대답이 나온다해도 그것은 한갖 겉치레에 불과할것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해내군했다. 이것이 마음에 드는 그의 성격이였다. 그는 종파분자들처럼 앞뒤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 없었다. 올해 4월 15일, 탄생 44돐을 맞이하는 날 수령님께서는 나라사정이 어렵고 인민생활이 풀리지 않았는데 보통날처럼 지내자고 하시면서 손님들을 접대하지 말도록 책임부관에게 지시하시였었다. 그래서 저택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수령님께서는 조용히 잡지 《아동문학》을 읽고계시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김일이 찾아와 축하의 인사를 드렸고 뒤이어 정일룡이, 조금 지나서 최창익과 박창옥이 찾아왔다. 저택에서는 부랴부랴 있는것으로 점심식사를 차렸다. 술잔을 들 때가 되자 박창옥이 제일 먼저 일어나 우리 시대의 탁월한 맑스-레닌주의자이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건강을 축원하여 이 축배를 들것을 제기합니다라고 하였다. 뒤질세라 그 다음 최창익이 일어나 현명한 령도자이신 김일성동지께서 우리 혁명을 령도하시는 한 조선혁명은 반드시 승리할것입니다, 때문에 경애하는 수상동지의 건강을 축원하여 이 잔을 들것을 제기합니다라고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소박한 식탁에서 요란한 연설을 하는 그들이 뒤에서 당정책을 시비하며 어떤 소리들을 하고있는지 다 알고계시였지만 당내 통일단결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인것만큼 속으로 묵새기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알아야 할것은 혁명은 혼자서 할수 없다는것이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도 혁명동지들이 우리를 받들고 같이 싸웠기때문에 장기간 왜놈들과 싸워이길수 있었다, 오늘도 동무들이 다같이 서로 받들면서 조선혁명을 위하여 진심으로 일할 때 승리를 앞당길수 있다, 동무들의 건강과 우리의 단결을 위하여 잔을 들자!… 그렇게 겉으로 요란한 언사를 쓰던 최창익과 박창옥은 수령님께서 외국방문을 떠나신 기회에 내각수상직과 당중앙위원회 위원장직까지 내정해놓고 반변을 일으키려했으며 그것이 실패하자 8월전원회의에서 당과 수령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그들이 일본놈에게 복무한 지식인들이라고 하면서 정준택, 리종옥, 강영창 등을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거하고 국가요직에 등용한것에 대해 그렇게도 반대하며 시비하였으나 그 《인테리겐챠》들은 요란한 언사를 쓰지 않았지만 앞뒤가 다른 소리를 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수령님을 받들고 진심으로 일했다. 바로 강영창이 진심으로 강재문제를 걱정하기때문에 쉽게 대답하지 않는것이요, 심사숙고하는것이라고 수령님께서는 인정하시였다. 이러한 때 그에게 힘을 주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것이 필요한것이다. 금속공업상인 그의 위치, 그의 각오와 결심, 그의 관점과 립장이 중요했다. 그래서 오늘 점심시간에 그를 불러주신것이다.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강영창이를 향해 말씀하시였다. 《상동무가 부수상동무한테서 다 들어 알고있겠지.》 문득 하시는 말씀이였으나 강영창은 무엇을 념두에 두셨는지 즉시 알수 있었다. 《예.》 그는 꺼져드는 목소리로 대답올렸다. 《알고있습니다.》 《그래 상동무생각에는 해결책을 어떻게 찾아야 할것 같소?》 그이께서 강영창이 어제밤과 오늘 오전 줄곧 가슴에 안고 모대기던 문제를 물으시는것이였다. 강영창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몰라 머리를 숙이고 안경만 추켜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대답 못하는 그의 심정이 리해되시였다. 쉽게 대답할수 없을것이다. 《머리가 무거울테지.》 수령님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머리가 번잡할 때면 공장이나 농촌에 나가군 하오. 책상머리에 앉아서 머리를 쥐여짜야 더 무거워질뿐이지 신통한 방도는 나오지 않는단말이요.》 강영창은 수령님을 향해 머리를 들었다.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인민대중이 박사요. 오늘처럼 정세가 복잡하고 혁명앞에 난국이 조성된 정황에서 우리에게서 믿을것이란 오직 자기 나라 인민, 자기 나라 로동계급밖에 없소.》 그이께서는 저으기 격해지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종파분자들은 큰 나라들을 등에 업고 나왔소. 우리는 누구를 등에 업겠는가. 우리 인민밖에 등에 업을것이 없소. 이것 보오, 강동무. 어떤 사람은 나더러 쏘련에 다시 들어가서 머리숙이고 구걸하기를 바라는데… 아니요. 나는 우리 로동계급을 찾아가겠소. 해결방도는 로동계급속에서 나오는 법이요. 강동무, 래일 나하고 같이 강선제강소에 갑시다.》 그이께서는 강영창에게 제강소에 내려가 로동계급속에서 내부예비를 찾아내라고 권고하시며 떠밀어보낼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께서 직접 강선에 가기로 결심하시였고 강영창이도 함께 데리고 가서 로동계급과 의논해보기로 작정하시였다. 금속공업이 해야 할 무거운 과제를 자신께서 몸소 풀어주시려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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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은 시간을 내여 밤에 박기환부수상을 찾아갔다. 박기환이가 쏘련에 가는 최일에게 개별적인 부탁을 한것이 있었다. 조국에 나올 때 쏘련에 두고 온 자식들중 모스크바에서 대학을 다니고있는 딸이라도 만나봐주었으면 하는 부탁이였다. 전화번호까지 대주어서 최일은 겨우 틈을 내여 대사관으로 딸을 불러 만나보았고 아버지의 안부도 전했다. 딸의 소식을 들으며 박기환은 연신 머리를 끄덕이였다. 딸자식에 대한 애정을 속깊이 간직하고있는지 얼굴표정은 덤덤했다. 술잔만을 기울이였다. 《고맙소. 수고했소.》 심부름을 한 최일에 대한 인사도 이것이 전부였다. 딸이 보낸 편지는 대충 훑어보고 잠자리에 들기전에 다시 구체적으로 볼 심산에서인지 안주머니에 쑥 집어넣었다. 두사람 다 술을 많이 마셨다. 최일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또 잘할줄도 모르며 표정이 돌덩이같고 차거운 박기환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같이 쏘련에서 나온것으로 하여 만나면 감정의 공통성으로 인해 과거를 추억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것이였다. 조선말에 서툰 박기환이는 최일같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로어로 말했다. 지금도 그들은 로어로 말하고있었다. 다혈질인 최일이가 주로 말하였다. 리종옥을 따라가서 한 사업이야기는 그자신이 성과를 거두지 못해 흥미없는데다가 박기환이가 자기도 잘알고있다며 피해버리는바람에 더하지 않고 오래간만에 쏘련에 가본 인상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의 거무죽죽한 넓은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있어 마치 검은빛은 없어지고 황금빛으로 물든듯해보였다. 그는 환희에 넘쳐 쏘련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박기환이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최일은 원래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도 했고 내각부수상도 한 박창옥같은 큰 인물들과 상종해온 박기환은 최일을 아득히 내려다보며 무시하고있었다. 때문에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동급으로 대하지 않는것이였다. 만일 찾아온 사람이 박창옥이라면 다르다. 온밤 이야기를 할것이다. 그러나 박창옥이는 지금 떨어져서 별장에 붙박혀 낚시질이나 하는 신세이다. 쏘련에서 구원의 손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있다. 그러므로 그가 여기 오긴 틀린것이고 찾아왔다는것이 최일, 작은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 박기환이가 손님을 대상하는데 흥미를 잃고 얼굴이 퍼래서 말을 적게 하고 술만 축내고있는데는 다른 근본적인 원인이 작용하고있었다. 우선 그는 부수상협의회에서 자기딴으로는 중요하며 획기적이라고 본 제안을 내놓았다가 수령님과 김일이로부터 여지없이 묵살당하였다. 강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일성동지께서 쏘련으로 다시 들어가 최고위급에서 협상해야 한다는 그의 의견에 대해 굴종이요 굴복이요 하는 평가가 내려졌다. 그는 무시당하고 따돌림을 당했다. (리해할수 없단 말이야. 대국에 엇서다니! 아무래도 쏘련에 머리를 숙이게 될걸. 어차피 쏘련의 원조를 받아야 할것이고 쎄브에 들어야 할걸. 그러지 않고서는 5개년계획은커녕 당장 살아가기도 힘들어질것이다. 첨예화되고있으며 악화되고있는 대내외정세는 조선에 결정적으로 불리하다. 이러한 때 쏘련에 머리숙이고 가붙지 않고서는 가난하고 파괴당한 작은 나라가 어떻게 견디여내며 살아나가겠는가. 쓰딸린때건 흐루쑈브때건 쏘련은 쏘련이란 말이야.) 그의 불만이였다. 또 하나의 큰 불만은 평양시건설문제와 관련된것이였다. 그는 자기가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이므로 건설에서는 자기의 주장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조선을 쏘련식으로 건설해나가려는 사상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평양시도시설계가들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양이 수도이고 북조선에서 제일 큰 도시니까 웅장하고 화려하고 현대적인 건축물들을 우뚝우뚝 일떠세워 아시아적촌티와 왜놈식의 낡은 때를 싹 벗겨버려야 하겠소. 모스크바처럼은 건설할수 없는것이고, 그러자면 몇세기를 두고 건설해도 안될테니까. 그래도 울라지워스또크만큼이라도 되게 건설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평양은 다 파괴되여 반반해졌으니 완전히 새로 건설하는것이나 같으니까 출발을 잘해야 하겠소. 당신들은 이 개건기에 자기들의 대표작을 내놓아 후세에 전하려는 야심에 불타야 하오》 그런데 사실은 그자신이 평양시건설에서 자기의 이름을 남기려 했다. 《주택들의 설계는 내가 쏘련에서 표본을 들여왔으니까 그대로 지으면 되오. 현대적인 아빠트들을 대동강을 따라 내려가며 쭉 일떠세워야 하겠소.》 그는 이어 역사, 극장, 영화관, 학교 등 공공건물들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력설했다. 한푼의 돈도 쪼개써야 하는 형편인 때여서 설계가들은 그의 《기념비적작품창작열》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평양시에서 살림집을 빨리, 많이 지어야 할 절박한 과제로부터 조립식건설로 이행할데 대한 당의 방침이 제기되였다. 그러자 건설상이 조립식건설은 나라의 공업적토대가 있어야 한다며 반대했고 박기환이는 조립식으로 지으면 건물이 단조로워지고 거리가 볼 모양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 경공업성에서 《조립식으로 지으면 속도가 빠르고 원가도 적게 든다는데 우리가 해보겠다》하며 동평양에 첫 조립식주택건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하는것이여서 손발이 맞지 않고 부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건설상이 한번 피뜩 나가보고 와서 박기환에게 아이들 장난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박기환은 애당초 나가보지도 않았다. 당의 의도는 벽돌을 등짐으로 져올려다가 한장씩 쌓아 쏘련식의 층이높고 쓸데 없는 장식이 많은 주택을 축조식으로 세월없이 지을것이 아니라 공업적방법으로 즉 조립식으로 많이 짓자는것이였다. 그래야 지금 초미의 문제로 나서고있는 수도시민들과 제대군인들의 살림집을 속히 해결할수 있다고 수령님께서는 여러차례 말씀하시였으나 박기환은 기중기타발, 부재공장타발, 별 타발을 다 내대며 건설상을 뒤에서 부추기였다. 결국 건설상이 그 자리에서 밀려났다. 새 건설상이 아직 임명되지 않았지만 조립식건설을 집행하려들것은 뻔하다. 이러한 때 수령님께서 동평양에 조립식으로 짓고있는 주택건설장을 찾으시였다.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이 동행하지 않을수 없었다. 박기환이는 수령님께서 시내건설장들을 돌아보신다고 하기에 대동강을 따라가며 짓고있는 현대적인 아빠트건설장을 찾아가실것으로 짐작했었다. 그것말고 주택건설장이라고 할만한 대상이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그의 짐작은 뒤집혔다. 수령님께서는 아직 시작에 불과해 건설장의 풍경도 볼것 없는 자그마한 주택건설장을 찾으시였던것이다. 처음으로 짓는 조립식주택건설장이여서 그 싹을 귀중히 여기시는것이였다. 박기환이는 이곳에 나와본적도 없거니와 조립식건설은 연구한것도 없어 손님격으로 서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건설사업소일군들, 로동자들, 시의 건설책임일군들을 대상하여 말씀을 하시는것이였다. 박기환이는 무시당하고있었다. 이러한 쓰디쓴 배척당한감, 고독감, 조립식건설의 비중을 높일데 대한 문제의 압박감, 점점 식어가는 사업의욕 등등이 원인이 되여 그는 울적해있는것이였고 손님과 이야기할 흥미도 잃고있는것이였다. 최일은 쏘련에 가본 이야기를 환희에 넘쳐 늘어놓다가 《그런데…》 하며 우리 나라의 형편에로 화제를 옮기였는데 황금빛으로 빛나는것 같던 얼굴에 금시 짙은 먹장구름이 낀듯 표정이 침침해졌다. 《아직도 포연에 그슬린 내가 풍기는 이 땅에 공업화의 기초를 닦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데 여기서 요진통은 강재지요. 이걸 쏘련이 자른것입니다. 2만t이나… 이런 조건에서 래년도 계획은 어차피 조절하지 않을수 없을것입니다.》 최일의 말에 박기환이는 응대하지 않았다. 그는 최일에게 속을 막 줄수 없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박창옥이와도 일체 관계를 단절하고있는 박기환이였다. 《기본건설계획도 조절해야 하겠지요?》 박기환이는 이 물음에 《흥》 하고 코소리를 냈다. 우선 부수상협의회에서 래년도계획을 그대로 밀고나갈데 대해 결정한것을 모르고 하는 최일의 말에 코웃음을 치는것이였고 다음은 그 결정이 절대로 집행될수 없다고 생각하며 코웃음을 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불쑥 한마디했다. 《강재가 없이 무얼 해? 욕망만 앞세우면 되는가? 조립식건설, 이것은 강재고 공업화야. 내가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인데 그런것을 누구보다 잘 알게 아닌가.》 박기환이가 갑자기 울분을 토하는바람에 최일은 얼떨떨해졌다. 그는 박기환의 폭발이 최일이 자기를 대상으로 해서 터친것이 아님을 알수 있었다. 최일은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박기환이도 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최일은 자기가 무슨 이야기든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재도 강재지만 우리 로동자들의 형편에 대해 나는 몹시 우려됩니다. 아무리 아시아라 해도 로동계급이면 자기의 체모가 있어야지요.》 《그래도 말은 잘들어. 유럽같으면 벌써…》 박기환이가 뒤말을 삼키였지만 최일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짐작할수 있었다. 최일이 얼른 받았다. 《그건 옳은 말씀입니다. 소박하고 단순하지요. 그러니까 말을 잘 듣습니다. 그렇지만 반동들이 마쟈르에서처럼 행동할수 있습니다. 그때면 전쟁시기처럼 서로 죽일내기를 할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쏘련에서처럼 숙청사업을 벌려야 합니다. 적대세력은 그 맹아단계에서 짓뭉개버려야 합니다. 나는 쏘련에서 부농을 계급으로 청산하는 투쟁에 참가해본 사람으로서 적대분자들의 본심과 책동이 어떠한것인지 잘알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지금 농업협동화를 하면서 부농들을 제한, 개조하는 방향이라고 하는데 부농이 어떻게 개조됩니까? 쓰딸린이 한것처럼 무자비하게 쳐갈겨야 합니다. 로동계급속에 섞여있는 온갖 불순요소들을 제때에 제거해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우리가 더 전진할수 없습니다. 쏘련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는 흥분하여 주먹을 틀어쥐기까지 했다. 그가 흥분하여 떠들어댔지만 박기환이는 반대로 랭랭해졌으며 그와 더 이야기하고싶지 않은지 손을 들어보이였다. 《밤이 깊었는데 그만하기요. 술을 많이 마시면 말도 많아지는 법이요.》 최일이는 모자를 찾아쥐고 일어섰다. 술도 많이 마셨고 말도 적지 않게 했다. 그런데 기분은 좋지 못했다. 박기환이한테 속을 뽑히운것 같은감이 났던것이다. 그는 씩씩거리며 박기환의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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