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36 회 )

 

2

 

음침한 현성거리에 금광브로카들이 드나들면서 각종 새 업자들이 성안의 헌집들을 사가지고 제나름으로 개축을 하기 시작하더니 《행화촌》이요 《제일옥》이요 하는 내주점, 선술집, 려인숙, 목노집들이 주런이 추녀를 늘여세우게 되였다. 그중에서도 봄과 함께 제일 호경기를 만난것이 카페 《락천》이였다. 초저녁부터 번쩍거리기 시작하는 《락천》의 네온은 다 샐녘이 되여야 꺼졌다.

어디서 새 금맥이 터졌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고 누구네 광굴이 망했다고도 하였다. 그런 소문이 나돌 때마다 《락천》에는 그러루한 거간군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였다. 거간군들뿐아니라 《토벌대》의 장교들, 《신선대》의 포수들, 금점판의 덕대들, 지방토호들, 관리들 별의별것들이 다 쓸어들었다.

헐어빠진 전축이 쉭쉭거리며 눅거리 류행가들을 밤새도록 불러댔다. 이제는 하도 돌려서 레코드판에 홈이 패일 지경이 됐을 때 어디서 뜨내기패와 함께 흘러든 방랑가수가 나타났다. 그는 낮이면 화룡장거리에서 조고약을 팔고 저녁때면 유흥가에 나타나서 바이올린을 켜며 노래를 팔았다.

무더운 여름밤이였다. 먼 지평선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연분홍빛 창보를 들치고 주토빛으로 취한 볼들을 어루만졌지만 익숙지 못한 양주에 화끈 달아오른 얼굴에는 여전히 개기름과 땀얼룩이 범벅이 되여 번들거렸다.

 

타향살이 몇해런가

손꼽아 세여보니

 

방랑가수의 노래는 언제나 성취할길 없는 꿈을 호소하는 절망적인 비애를 담고있었다. 그래서 황금에 눈이 어두워 미친듯이 돌아치던 인간들도 흐리멍텅한 취기속에서 무엇인가 자기의 슬픔과 불행을 련상하고 제나름의 비애에 잠겨보는것이였다. 방금 몇푼의 구전을 위하여 돼지도 낯을 붉힐 뻔뻔스런 거짓말을 늘어놓던 화상들이 별안간에 술얼룩이 진 상우에 머리를 깊이 수그리고 침통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쥐여뜯었다.

《아, 고향.》

무엇에 얻어맞았는지 코마루가 넙적하게 주저앉아버런 덕대같이 생긴 사나이가 신음소리처럼 울부짖었다.

《이년아, 왜 달아나? 나는 사람같아뵈질 않아서 그래?》

협화복단추를 다 끌러놓은 중년의 사나이가 술쟁반을 들고나오는 녀급에게 시비를 걸었다.

 

고향 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어

 

바이올린의 반주가 최저음선상에서 목메여 흐느끼자 술보다도 독한 비애가 찌르르 하고 명치끝을 훑어내렸다.

《잘한다, 하나 더 부르게.》

유청백은 천근같이 무겁게 드리웠던 고개를 가까스로 쳐들며 개개 풀린 눈으로 가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술잔을 매만지며 마주앉은 경무에게 시비조로 말을 이었다.

《형님, 어떠시오? 흥, 수련이의 노래보다는 월등하지요? 넨장, 산따루찌야- 산따루찌야- 그게 다 뭐야. 이사람, 깽깽이를 하나 더 타게, 돈은 낸단말야. 내 돈을 혼자 다 내지 않으리.》

《좋아, 좋아.》

청백이가 돈을 꺼낸답시고 주머니에 손을 몇번이나 헛지르는것을 바라보며 경무는 비웃듯이 웨쳤다.

또다시 약간 쉰듯한 드레몰로가 울려나왔다.

가수는 활을 창처럼 허공에 뽑아들고 명상에 잠긴듯한 표정으로 또다시 구슬픈 노래를 뽑아넘겼다.

《어이, 풍각쟁이, 이리 좀 오라구.》

담배연기와 술냄새만 탁하게 떠도는 가운데 높이 떨리던 노래는 뚝 끊어지고 제식구령같은 소리가 사람들의 머리를 번쩍 쳐들게 했다.

《뭐야, 응? 뭐냐말이야?》

청백이가 게슴츠레한 눈을 지릅뜨자 견장도 없는 군복을 걸친 안경쟁이가 마주 쏘아보았다. 그러면서 가수의 팔죽지를 저쪽으로 끌었다.

《어떤놈이야?》

청백은 벌떡 일어나며 다짜고짜 소리쳤다.

《뭐 어떤놈? 이자식이 매라는것은 말만 들었지 맞아는 못보았군. 너 죽어보겠니?》

군복을 입은 사나이가 류행가수를 밀쳐던지고 팔소매를 걷어붙이며 다가왔다.

《어랍쇼, 이게 어디서 굴러먹던놈이야?》

청백이도 비틀거리며 걸상을 밀치고나섰다.

호철은 얼굴이 해쓱하게 질리면서 중간에 나섰다.

《이거 왜들 이러시우. 재미없단말이요, 참으시오. 모두 점잖은 사람들이 체면없이 이러면 되겠소.》

《이건 또 어떤 자식이야?》

군복쟁이는 매끈하게 차려입은 호철을 보고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도 호철은 낮추 붙어 두사람사이를 뜯어말리느라고 손짓으로 연신 앉으라는 시늉을 하면서 청백의 귀전에 대고 속삭였다.

《<신선대>요, <신선대>.》

《뭐 <신선대>? <신선대>면 어쨌단말이야.》

유청백은 호기를 뽐내면서 웨쳤지만 벌써 적잖게 기가 꺾인 소리였다.

《이자식아, <신선대>가 뭔지 모르겠니? 너같은 자식을 혼내주는게 <신선대>다.》

군복쟁이 《신선대》의 망나니는 호철을 끌어다 밀치고 청백의 어깨죽지를 틀어잡았다. 이러한 때 《락천》문앞에 유경문의 마차가 들이닿았다.

경문이가 정복차림으로 카페에 들어서자 그래도 현경찰국장이 나왔다고 어지간한 축들은 가볍게 허리를 일으켜 경의를 표했고 수비대의 장교들은 못본체 외면이라도 하였다. 그러나 《신선대》의 주정뱅이는 현경찰국장이 왔다는것을 알자 일부러 더 갈개기 시작하였다.

주정뱅이가 유청백이를 잡아끌고 통로로 나서자 청백이는 손을 탁 뿌리쳤다.

《이자식, 이리 나와!》

군복쟁이는 바싹 청백이에게 다가붙으며 소리쳤다.

《너 이자식, 유경문의 동생이라지? 현경찰국장이 네 형이라고 카페에 와서 깽깽이까지 독차지할셈이야?》

《어, 이게 무슨 소란들인가?》

유경문은 틀스럽게 한마디 호령을 하였다.

《옳지, 호랑이 제소리하면 온다더니 바로 경찰국장나으리로군. 어디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볼가요. 나요, 내가 소란을 피웠소. 어쩔테야!》

주정뱅이는 옆의 술상에서 잡히는대로 술병모가지를 틀어귀고 당상 들이칠것처럼 유경문이앞으로 다가갔다.

《저 저런 고약한…》

유경문은 마주오는 주정뱅이를 어떻게 잡도리할수가 없으니 하는수없이 말을 더듬으며 뒤로 쫓기였다.

온 카페안이 수라장이 되였다. 사복입은 사람들은 겁에 질려있고 수비대장교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히야히야 하며 원숭이소리를 질러댔다.

유경문이가 봉변을 당해서보다 술자리를 소란하게 만드는 이 개고기를 잡아꺾고싶은 사람들은 상대가 《신선대》라는바람에 감히 아무도 손을 못대였다.

《여보시오, 선생.》

통로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한손을 뻗쳐 옆을 지나가는 주정뱅이의 술병 쥔 팔목을 틀어쥐였다.

《이거 어디 소란해서 견디겠소. 술동무가 없으면 나하고 술이나 마십시다그려.》

보매 신사복을 차려입은 그 손님은 후리후리한 몸매에 별로 힘도 쓸것 같아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했는지 주정뱅이가 비틀하더니 바로 그 손님의 맞은편자리에 구겨박히다싶이 털썩 주저앉았다.

《여름밤이란 길지도 않은데 이렇게 헛되이 보내겠소? 자, 술이나 한잔 드오.》

《너, 너, 이자식 무슨 새끼야?》

주정뱅이는 불시에 눈알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벌떡 일어나며 벼락같이 소리쳤다.

《말버릇이 나쁘군, 술을 권하는데 고작 인사가 그게야.》

젊은 손님은 길게 가로찢어진 서늘한 눈으로 조용히 올려다보더니 목을 움켜쥐러 오는 상대의 손을 슬그머니 틀어잡았다. 그리고는 앉은채 담배를 두어모금 빨더니

《정신을 못차리는데 바람이나 좀 쏘이는게 어떤가?》 하고 주정뱅이를 끌고 슬슬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아, 아, 아…》

팔목을 어떻게 비틀어잡았는지 주정뱅이는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며 끄는대로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깽깽이소리나 실컷 듣게.》

청년은 문전 멀리까지 주정뱅이를 끌고가서 으름장을 두어마디 놓고는 두손을 탁탁 털며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주정뱅이는 얼이 빠진것처럼 어둠속에 멍청하니 서있더니 손목을 어루만지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실로 눈깜빡할 사이의 일이였다. 그 한순간에 자리마다 가득가득 들어앉았던 술군들과 주인, 녀급들 모두가 눈이 둥그래졌다. 오직 태연한것은 아까 붙인 담배를 뻐끔뻐끔 빨고있는 그 청년 한사람뿐이였다.

《어- 용감한 청년이로군. 어디서 온 사람인가?》

유경문이가 하마트면 개망신을 당할번한 자기 체면을 보호해준 호협한 청년에게 인사삼아 말을 건넸다.

《뭘요. 난 금천동에 볼일이 있어 온 사람입니다.》

청년은 스스럼없이 가볍게 허리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제야 보니 육중하지는 못해도 미끈하게 잘 발달한 몸매에다 훤칠한 이마며 길게 가로찢어진 눈이 인상적인 호남아였다. 외형뿐아니라 말투며 행동거지가 모두 세련되여있었다.

《금천동이라면 금광관계로 왔는가? 난 바로 경찰국장일세. 알고지내자구.》

유경문은 동생들이 내놓은 자리에 갈 생각을 잠시 잊고 청년의 맞은편에 앉았다.

《알고있습니다. 선성은 들은지 오래인데 곧 떠날것 같아 찾아뵈올 생각을 못했습니다. 실은 금광일때문에 오기는 했지만 그저 가친의 심부름으로 경기나 봐두자고 온길이기때문에 요로의 점잖은분들과 교제를 할 마련도 없습니다. 량해를 하십시오.》

하고 혜산에 있는 홍아목재상주인이 바로 자기 아버지라고 말하였다.

《음- 아버님의 심부름으로 금광경기를 보러 왔다면 장차 그 부면으로 기업을 벌릴 생각이 있는게로군. 군이 그럴 생각만 있다면 내가 이것저것 협조를 해줄수도 있지. 참, 이리 오게. 내 동생이 마침 금광일을 보고있고 또 저 리호철이라는 사람도 금광을 경영하고있으니 말벗이 될걸세.》

홍아목재상의 아들이라는 그 청년은 길게 찢어진 특징있는 눈을 쪼프리고 웃으며 별로 사양하지도 않고 유경문이네 술자리로 옮겨앉았다. 또다시 바이올린소리가 흐느끼며 떨리며 울리여나왔다.

이구석 저구석에서 화룡거리에 새로 나타난 부자집아들을 두고 수군거리던 소리도 차츰 자기들끼리의 속삭임과 쑥덕거림과 웨침으로 변하였다. 녀급은 굽높은 구두를 데깍거리며 분주히 통로로 오가는가 하면 손님들곁에 붙어앉아 술잔을 홀깍거리며 이 손님 저 손님에게 추파를 보내였다. 그중에도 유경문의 술자리에 오래 붙어앉아서 홍아목재상의 아들이라는 청년의 얼굴에 뜻있는 웃음을 던지군하였다.

 

3

 

《고향은 북청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서울에 있는것 같습니다. 자기에 대해서는 말을 잘하지 않기때문에 구체적인것은 알아내기가 간단치 않습니다. 인차 눈치를 챌것 같고 해서…》

호철은 말끝을 얼버무렸다. 시마끼는 여전히 말 한마디 없이 종이장에 무엇을 쓰고있다. 호철의 말을 적고있는지 아니면 호철이에게 말을 시켜놓고 저는 딴생각을 하고있는지 짐작할수가 없다.

《돈을 물쓰듯하는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꼭 금광을 해볼 결심이 있는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저 노름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방탕한 부자집 자식입니다.》

호철은 시마끼가 듣든말든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시마끼는 무엇인가 가득 적어넣은 종이를 들여다보며 몇개의 선을 그었다. 그리고는 다시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동아물산출장소》의 간판이 붙어있는 이 음침한 집가운데서도 뒤울안에 면한 이 방은 채광이 좋지 못해서 낮에도 불을 켜야 하였다. 창문에 바투 다가붙은 재빛 토피담장은 감옥의 담장처럼 높아서 아무리 내다보아야 보이는것이 없었지만 시마끼는 하루의 태반의 시간을 그 창문을 바라보는데 바쳤다.

《내가 금광일의 어려운 점을 두루 이야기했더니 이런 때 돈벌이를 하겠다는것은 청년의 수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륙에서 뭘 좀 해볼만한것이 없겠는가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호철은 이제는 말할 건덕지도 떨어져서 별수없이 입을 다물었다.

시마끼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고있다. 재빛담벽에서 가물가물 아지랑이가 피여오른다.

바깥쪽에는 무던히 해빛이 내리쬐는 모양이다.

《공산당줄은 쥐였는가?》

시마끼는 돌아선채로 밑도끝도없이 물었다.

《네?》

호철은 엉겁결에 되물었다. 그러나 시마끼는 다시는 입을 벌리려 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한 말은 하나도 값에 쳐주지 않는다는것이다.

호철은 눈앞이 아뜩하였다. 실은 자기 수족과 같은 끄나불을 금광이며 사금판이며 처서판에 내돌리다못해 외삼촌마저 덕대노릇은 변변히 못해도 좋으니 공산당줄을 잡아쥐여보라고 하였으나 그것이 밥먹듯 쉽게 될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연히 날아든 홍아목재상아들을 리용해보자고 며칠 품을 들여 그에 대한 료해자료를 만들어가지고왔는데 이제 묵은 빚을 채근하듯 불시에 이런 질문을 하니 사람이 환장을 할것 같았다.

《그의 애비는 서울에 있지 않고 지금은 혜산에 있다.》 하고 시마끼는 문득 실무적인 어조로 종이장을 들여다보며 말하였다.

《정귀하가 금광을 하겠다고 아들을 이곳에 보냈다는것은 거짓말이다. 그는 소화4년경까지 북청 남대천가에 논밭 합쳐서 5,2OO평에 현금, 채권 등 동산이 3,000원정도의 소지주였으나 그후 가산이 령락하여 다 팔아먹고 고향을 떠났으며 지금은 혜산에서 목재상을 하고있으나 그 규모는 그리 대단한것이 못된다. 어느모로 보나 금광을 경영할만한 실력이 있을것 같지 않다. 그 아들은 일본대학에 가서 류학중 사상운동에 참가한적이 있으며 현재는 행방을 알길이 없고 그의 사위는 총독부 경무국의 비밀정보원으로 일하다가 희생되였다고 한다. 이것이 혜산에서 보내온 조회자료이다. 이곳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가 유도 3단이라는것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 강도관기준으로 엄격히 치면 초단을 좀 벗어질가말가하는 정도라고 한다. 어쨌든 더 똑똑히 규명해야 한다. 정체가 분명해지기전에는 쓸수 없다.》

시마끼는 그 종이장을 책상우에 훌 집어던지더니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호철은 내심 입을 짝 벌렸다. 불과 1주일사이에 이런 조회자료를 만들어낸것이 놀라왔다.

《저 유경문은 그를 상당히 신임하는것 같은 눈치던데요…》

《유경문은 별문제이다. 현경찰이 그를 밀정으로 쓰든말든 우리는 관계할 필요가 없다. 그자가 무엇때문에 감옥을 살았는가 하는것을 본인자신에게 알아보라. 그러나 우리가 무슨 자료를 쥐고있다는 눈치를 채여서는 절대로 안된다. <신선대>에서 그자를 노리고있다. 가능하면 현성에 자주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것이 좋겠다. 그리고 카페에 자주 나타나는 가수에 대해 캐여보라. 그런자들이 현성주변에 얼씬거리는것이 심상치 않다. 그 가수라는놈은 너희네 밥집에도 자주 드나든다는데 알고있는가? 너의 말을 통해서는 분명치 않은 점이 많다. 그런자들가운데 공산당스파이가 있을수 있다.》

호철은 《동아물산》의 정문밖에 나서서야 땀을 훔쳤다. 시마끼앞에 가면 언제나 체중이 줄어드는듯한 느낌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네거리에 나서자 잠시 망설였다. 김인수가 의심스럽다는 시마끼의 말을 생각하면 당장 그놈을 잡아족치고싶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공산당-지하공작원이라면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다섯자남짓한 인간에게 대체 무슨 비밀이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하여간 지금은 홍아목재상의 아들문제를 밝히는것이 급선무였다.

호철은 어디로 가면 그를 만날수 있을가 하고 궁리하였다. 유경문이네 집이 아니면 요즘 주경무가 새로 상점을 벌리기 위하여 드나드는 청지동에 가있기가 쉽다. 요즘 해란강의 상류에 사금광이 터져서 금광브로카들이 청지동으로 쓸어들고있다. 호철이도 달포전까지 청지동에 사흘돌이로 드나들었고 홍아목재상의 아들을 사귄후에는 그와 함께 땅임자들을 만나보기도 하였다.

우선 가까운 유경문의 집부터 찾아보리라 마음먹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누가 어깨를 툭 친다.

《호철형 아니요? 왜 뙤약빛아래 멍청히 서있소?》

놀라서 돌아보니 바로 찾는 그 사람이다.

《이거 반갑군. 그러지 않아 만나자던 참인데…》

《나를? 왜, 대낮부터 술생각이 나서?》

그는 눈살을 찡긋하고 밝게 웃으며 돌아보았다. 밤빛 홈스판 골프바지에 같은 감으로 된 캡을 쓰고 등산용지팽이를 짚었는데 양복깃우에 제쳐놓은 새하얀 속샤쯔의 깃이 더욱 신선한 느낌을 자아낸다.

《좋은 밭이 나졌소. 시세보다 평당 1할은 떨어질것 같단말이요.》

《평당 1할? 땅값이 문제가 아니라 전망이 문제지요. 까짓 금만 나온다면 땅값이야 곱을 줘도 아까울것 없단말이요.》

그는 어딘지 미타해하는 표정으로 호철의 눈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호철은 다짜고짜 그의 손목을 잡고 끌었다.

《가봅시다. 바로 그옆이 신가네 금점이라말이요. 실오리같은 지경너머에서는 금이 나오는데 거기라고 안나오겠소. 게다가 바로 옆에 강이 흐른단말이요. 청지동치고는 상지상으로 치는데요. 지금 숱한 업자들이 모여들어 야단이요.》

《그런데 왜 락찰이 되지 못했소?》

《허 끈끈도 하다. 그 땅임자가 유통사네 채권에 눌리워 하는수 없이 땅을 내놓았지요. 그러니 주경무가 거기 나가서 롱간을 부리구 있단말이요. 게다가 지금 당장 현금을 내놓으라는 판이니 누가 그런 실력이 있소. 가부간 빨리 가봅시다.》

그러나 그렇게 시원시원한 사람이 일단 돈거래에 들어서자 역시 홍아목재상의 아들답게 몸을 사린다.

그는 의심쩍은 표정으로 호철을 뜯어보며 중얼거렀다.

《우리 조인식군한테서는 그런 말 못들었는데…》

《그 뭐 아버지의 서사라는 그 청년말이요? 그런 사람이 이런 내막이야 어떻게 알겠소. 다 당국의 실권자들을 끼고있으니 알게 되는것이지. 교제비를 달래 쓰는줄 아시오, 그래서 쓰는것이지.》

《모를 소리다. 우리 조인식군이 금광물계는 환한 사람이오. 그러나 호철형의 말이니 속는셈치고 한번 가보기는 합시다. 그런데 걸어서야 가겠소, 경찰국에 들리여 마차 좀 빌려타고 갑시다.》

유경문은 선선히 마차를 빌려주었다.

두사람은 호피탄자우에 나란히 앉아 청지동길을 떠났다.

《참, 사람의 운명이란 알수 없군. 종시 내가 금광업자가 되고말 모양이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겠소. 허허허.》

홍아목재상의 아들은 말없이 길가의 풍경을 바라보고있다가 느닷없이 웃었다.

《왜 금광업자가 해볼만한 일이 못된단말이요?》

《흥, 저것 보시오.》

하고 그는 마차가 피워올리는 황토먼지를 뒤집어쓰고 걷는 수비대의 행군대렬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지금 야심있는 청년들은 모두 저렇게 총을 메고 공을 세워보겠다고 비지땀을 흘리고있는데 돈벌이라니 어디 될말이요. 실은 나도 학생시절에는 큰 학자가 돼보겠다고 생각한적도 있었다오.》

《참 학교는 왜 그만두었소?》

호철은 기회가 좋다고 생각하면서 슬쩍 물었다.

《왜 그만두었는가말이요?》

그는 힐끔 돌아보았다. 호철은 어쩐지 목멀미가 서늘한것을 느꼈다. 그러나 목재상의 아들은 인차 외면하더니 시들한 어조로 말하였다.

《학교라고 어디 다니겠습디까? 우리 아버지가 구두쇠지요. 게다가 그때는 좀 바람이 났댔단말이요.》

《술이야 누가 안마시겠소. 헌데 아버지가 장성한 아들에게 그만한 돈도 못댈 형편이던가요?》

《우리 아버지가 그때는 지금만한 실력도 없었지요. 그런데다 내가 바람이 난것이 술난봉이 난것이 아니라 사상난봉이 났단말이요.》

《저런, 그럼 무슨 독서회같은데도 관계해봤겠구만.》

《관계해보지 않구, 그때는 철이 없으니 맑스주의가 참 그럴듯하게 생각됩디다. 그래 한바탕 떠들어봤더니 제꺽 잡혔지요. 두어달 매를 맞았는데 다행히 우리 매부가 그러한 부면에 실력이 있어서 역은 지지 않았지요. 내가 겨우 바람이 자서 나오니까 우리 아버지가 또 미두에 손을 뻗쳐서 아주 망했더란말이요. 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우리 집에서는 나때문에 모두 망했다고 원망이 대단했지요.》

호철은 웃으며 듣고있었으나 속으로는 긴장되였다. 어떻게 하면 눈치 안채이고 속을 뽑아볼것인가 하고 궁리하던것이 뜻밖에도 제먼저 슬슬 게워놓는바람에 앉은상을 받은셈이 되였다.

그러나 시치미를 뻑 따고앉아서 재미도 없다는듯이 졸음기어린 목소리로 한마디 툭 던졌다.

《그렇게 한번 패가를 했다가 다시 추선다는것이 헐한 일이 아니지요. 그래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신가요?》

《왜 그러시오? 내가 땅값을 물지 못할가봐 걱정이 돼서 그러시오?》

《원 천만에, 만일 안할 말로 형에게 실력이 좀 부쳐서 나한테 융자를 해달라고 청해온다면 나는 그것이 더없이 고맙겠단말이요. 전날 유경문씨도 나더러 그런 말을 비칩디다. 우리 피차 평생의 지기로 사귀였으니 집안을 알고 지내자는것이지요.》

호철은 좀 당황하여 황급히 말하였다.

좁다랗고 창백한 그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굵은 목소리가 어쩐지 속궁근 느낌을 주었으나 상대는 그의 말에 쉽게 감동되였다.

《호철형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옹졸한 인간이라는것이 스스로 느껴지는군요. 호철형네 고향과는 그리 멀지도 않으니 이다음에 고향 가거든 한번 우리 집에도 들리시오. 혜산 괘궁정앞에 가서 홍아목재상을 찾으면 다 알지요.》

길우에 행인은 별로 없고 현성을 벗어나서 인차 시작된 수비대의 행군대렬이 그냥 잇달려있었다.

《저건 어디로 저렇게 가는가요? 혹 청지동이나 금천동에 수비대를 늘구는가요?》

목재상의 아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욕설을 퍼붓는 땀투성이 화상들을 차겁게 내려다보며 넌지시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늘구기야 뭘 늘구겠소. 어디 군대가 있소?》

《하기는 금천동이나 청지동에서 기업을 벌리자면 저쯤한 군대가 있어주었으면 좋긴 하겠는데…》

《뭐 교제비를 따지면 유격대를 꺾는것이나 비슷이 맞먹을거요.》

《그래도 유격대야 목숨이 위태롭지 않소. 기업주들은 영낙없이 잡아간다더군.》

《정형답지도 않은 소리…잡아가라고 가만있겠소.》

호철은 코웃음을 탁 치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귀전에 대고 수근거렸다.

《저게 다 관동군의 모모한 사람들의 꾀란말이요. 이번에 련합토벌사령관으로 새로 나온 혼마라는자가 여간내기가 아니랍디다. 저렇게 빙글빙글 위험지구를 돌아다니며 며칠씩 묵이지요. 그러면 공산당 지하공작원들이 그걸 보고 여기는 대부대가 있다고 보고할거란말이요. 알겠소?》

호철은 한턱 쓴다는식으로 눈을 끔쩍해보이고나서 이것은 극비에 속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하여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눈까지 감아버렸다.

마차길옆에 줄곧 잇달려오던 수비대행군대렬의 선두는 청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서 휴식으로 들어갔다. 금천동갈림길을 지나자 한옆으로는 해란강상류의 누런 물이 잡초와 수수가 절반가량 엇섞인 넓은 초원의 변두리를 누비며 흘러가고 맞은편 밋밋한 구릉쪽으로는 잡관목림이 한참 뻗어가다가 별안간 시꺼멓게 보이는 원시림에 이어져있었다. 숨가쁘고 적막하고 붙임성없는 자연이였다. 페허를 걸어가듯 괴나리보짐을 멘 뜨내기들이 청지동쪽으로 느릿느릿 걸어가고있었다. 그들 역시 청지동의 금광경기를 바라고 찾아가는것이다.

《정형.》

한참 조는듯이 눈을 감고있던 호철이가 정색하고 불렀다. 상대는 말없이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정형을 그렇게 보지 않소.》

《그건 무슨 말이요?》

《아니 그저 그렇단말이요. 그런데 내 한가지 조용히 물어볼 말이 있소. 좀 기탄없이 말하자면 정형의 결심을 말해주오. 정형의 매부가 그런 부면에서 일하고있었다지요?》

《그런 부면이라니 무슨 부면말이요?》

《알면서 뭘 그러오? 경찰계통말이요.》

《아, 그 말이로군. 난 똑똑히는 모르지요. 매부라는 사람이 간단치 않은 사람이였소. 절대 공무에 대해서는 입밖에 내지를 않았소. 그러나 이래저래 추측해보면 괜찮은 자리에 있었던것 같소. 나도 한때 정탐에 대해 흥미가 있어서 두루 알아보았는데 나같은것은 상대도 안하더군.》

《그래 그 매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말이요?》

《어떻게 생각하다니? 국사를 위해 전력하다가 순직한 사람인데 어떻게 생각하고말고 할게 있소? 하지만 역시 유격대에 잡혀죽었다니 허무한 생각이 들지요.》

《허무한 생각뿐이요? 원쑤갚을 생각은 없소? 나도 우리 형이 유격대에 잡혀죽었으니 말이지만 그래 정형의 생각이 고작 돈이나 벌자는 생각밖에 없는가말이요?》

호철이가 흥분해서 웨쳐대는바람에 상대는 뗑 해서 바라보더니 한숨을 후- 내쉬였다.

《나를 건드리지 마오. 내가 지금 돈벌이 이상의것을 생각하게 됐소. 나는 장난삼아 해본것이지만 어쨌든 전과자나 다름없는 인간이 아니요.》

《전과자나 다름없다? 허허허, 경찰에 들어가서 두어달 매맞은걸 가지고 뭘 그러오. 그런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오.》

《말마시오. 누가 그걸 좋아하겠소. 그런 객적은 소리 다 그만둡시다.》

목재상의 아들은 성이라도 난듯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호철이로서도 그가 이 대화에서 넘을수 있는 계선은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하였다.

그다음 10리가까운 길을 두사람은 내리퍼붓는 한낮의 폭양을 이마우에 받으며 말없이 마차에 흔들리였다.

청지동에 닿아서 중개업자네 사무실에 들리니 홍아목재상의 서사로서 그 집 아들을 따라온 조인식이라는 청년이 마침 거기에 와있었다. 새하얀 와이샤쯔에 수수한 양복바지지만 깨꿋이 손질해입은 그 청년은 어딘가 슬픔을 머금은듯하고 그런가하면 항상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듯도 한 책상물림같은 청년이였다.

그는 두사람에게 골고루 공손하게 인사를 하더니 주인아들이 신가네 땅에 대해 묻자 호철이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또박또박 잘라서 대답했다. 조인식이가 그 땅의 내막에 대해서 잘 모르리라는 호철의 추측은 얼토당토 않는것이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새로 내놓았다는 땅은 소문뿐이지 지금 한창 캐내고있는 사금판과는 거리가 근 5마장이나 벌어져있는데다 땅값이 시세보다 1할이 낮기는커녕 평당 단가로 쳐도 정작 금맥이 나진 땅과 어상반할정도였다. 게다가 땅임자인 과부가 어떤 측량쟁이의 꼬임에 넘어가서 제절로 금점을 차려보겠다고 사처에 줄을 놓아 물주를 구하는판인데 그따위 채마전에도 쓰지 못할 땅에 누가 돈을 들이밀겠는가고 하였다.

조인식의 말은 군소리 한마디없이 자료적으로 섬겨지는것이여서 호철은 한마디 반박도 할수 없었다. 좀 싱겁게 된 그는 매번 소문이 이렇게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혀를 차면서 그 누군가를 욕하더니 주경무에게 들려 놀다가 저녁이나 먹자고 끌었다.

목재상의 아들은 모처럼 기대를 걸고 온 땅이 그 모양이니 맥이 빠진다고 하면서 쉬 아버지에게 다녀와야겠으니 그지간에 밀린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거절하였다.

호철은 제 광굴이 있는 금천동으로 마차를 타고가버렸다. 그가 사라지자 목재상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그 청년은 퉤-하고 침을 내뱉었다.

《우리도 가기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앞서 걸었다. 거리쪽이 아니라 촌으로 나가는 길이였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는데 아지트로 가는것은 좋지 않습니다.》

조인식이 뒤따라오며 속삭였다.

《아지트로 갈 필요는 없소. 좀 걸으며 이야기합시다.》

그들은 산보객처럼 거리유축으로 빠져나와서 한산한 들길로 접어들었다.

《성림동무, 사령부의 새로운 지시요.》하고 목재상의 아들은 마음속의 흥분을 억지로 누르며 지나는 사람이 보면 마치 한담이나 나누듯이 말하였다. 그는 다름아닌 김준삼이였다.

《누가 왔습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건강하십니까?》

성림은 방금까지 무겁게 옮겨놓던 걸음을 다그치며 준삼의 표정을 살폈다.

《장경수가 왔다갔소. 행상리발쟁이가 자꾸 머리를 깎으라고 조르길래 시끄러워 내쫓았더니, 참 기가 막혀서…그게 장경수였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건강하실뿐아니라 요즘 새로운 로작의 집필을 시작하셔서 거의 밤마다 새우신다오. 그러시면서 한쪽으로는 커다란 작전을 준비하시는것 같다고 하오. 어떻게 하면 사령관동지의 부담을 덜어드리겠는지…전투나 행군때는 언제나 앞장에 서시지 다른 대원들이 휴식을 할 때조차 늘 그렇게 잠드시지 못하시니…이렇게 나와있는 우리라도 일을 잘해서 근심걱정을 끼쳐드리지 말아야겠는데 우리라는게 수준이 어리니 매번 그이의 기대대로는 안된단말이요.》

준삼은 안타까운 어조로 이렇게 말하더니 입을 다물어버렸다.

성림이도 무엇인가 말할듯말할듯하다가 묵묵히 걸었다. 심려를 끼쳐드린것으로 말하면 자기만큼 심려를 끼쳐드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난날은 말할것도 없고 이번 화룡현성부근에 강력한 공작조를 편성하여 내보내실 때도 그 누구보다 심려를 끼쳐드린것이 성림이자신이였다.

이제 먼 적후에서 사령관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을 그려보니 그때 흘리지 못한 눈물이 여직껏 남아있었던듯 삽시에 눈굽이 젖어들었다.

《사령관동지의 수에 걸려든 적들이 대부대를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요. 고동하일대와 길회선, 빈돈선 철도연선은 지금 몹시 소란한것 같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고동하쪽에 나가있는 소부대에 들려 새로운 지시를 전달하고 사령부에 오라고 말씀하시였소.》

잠시후 김준삼은 심호흡을 두어번 하고 기분을 돌리더니 좀 실무적인 어조로 말하였다.

《나는 어차피 저놈들속에 계속 붙박혀있을수 없는 형편이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금광경기를 보러왔다고 했으나까말이요. 그렇지 않으면 형세가 아무데건 금광을 하나 사들여야 할판이 아니요. 게다가 또 저놈들이 나를 어떻게 보았는지 저희네 밀정으로 써먹을 생각이 있는것 같소. 이것도 사령관동지께 보고를 드리고 결론을 받아야겠소. 그래서 내가 최병규동무를 데리고 고동하쪽을 에돌아서 사령부를 다녀오겠소.》

《다녀오시는것은 좋은데 만일 적들이 조장동무를 리용하자는 생각이 있으면 뒤를 심하게 캐겠는데요.》

성림은 좀 미타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게야 일이 있소. 사령관동지께서 정해주신 신분이니까 뒤는 든든할거요. 내가 정지성이노릇을 본인만큼은 몰라도 저놈들 업어넘길만큼은 할수 있소. 그러니 동무는 마음놓고 홍아목재상의 대리인으로 여기 남아서 그놈들과 계속 금광흥정을 하면서 직접 주경무를 통해 현경찰국장과 접촉하시오.》

《알겠습니다.》

성림은 짤막하게 대답하고 다음말을 기다렸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공작조는 박인섭동무가 지휘하게 되오. 장경수동무가 어랑촌모퉁이까지 갔다가 돌아갈 때 다시 들릴거요. 그때 그지간에 변화된 정찰자료를 보내시오. 그동안…사령관동지께서 금천동광산지구에 윤원구를 책임자로 하는 광복회조직을 내오고 그것을 친목계형식으로 위장하여 합법화할데 대하여 비준해주시였소. 장대선아바이는 아무래도 광산에서 일하지 못할바에는 박인섭동무의 의견대로 농촌에 침투시키는게 좋을것 같소. 그 아바이를 잘 설복하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목재판과 사금판은 아직 공작을 더 계속해서 든든한 핵심이 생긴 다음에 조직을 내오도록 하고 그동안 로동자들속에서 꾸준히 선전교양사업을 하라고 하시였소. 그러니 최병규가 없는 사이 인섭동무는 목재판일과 함께 사금판로동자들과도 접촉해야 할것 같소.》

《그럼 윤원구네는…》

《그렇소. 성림동무가 맨처음과 같이 금천동조직을 꾸리는 사업을 보면서 적정정찰사업도 맡아해야 하오. 어떻소, 해낼것 같소?》

《뭘말입니까?》

성림은 의아쩍은 표정으로 준삼을 돌아보았다.

《두가지 공작을 한꺼번에 해낼것 같은가말이요?》

《해내고말고가 있습니까. 해야지요.》

《고맙소.》

김준삼은 비로소 숨을 테우며 측은한 목소러로 말하였다.

《어려울게요. 저놈들속에 얼마동안 돌아다녀보니 사사건건이 구역질이 나고 밸이 뒤틀리는데 그속에서 진종일 긴장해서 연극을 놀아야 하니 아닌게아니라 총을 내대고 전투를 하는것과는 판 다르오. 나도 지방공작은 남만큼 해봤지만 이렇게 적의 한복판에서 부자집자식으로 놀아보기는 처음이요. 그런데다 동무는 또 로동자들의 조직을 직접 꾸려주어야 하니 우선 시간만 해도 조절해내기가 헐치 않을게요.》

《조장동지가 인차 돌아오겠는데 며칠이나 가겠다구요. 저 조장동지.》

사금판의 정경이 저만치 바라보이자 리성림은 초조감을 느끼는듯 앞뒤를 돌아보며 조급하게 불렀다.

《뭐요?》

《저 사령관동지를 만나뵙거든말입니다.》

《…》

김준삼은 말없이 뒤를 기다렸다.

성림은 별안간 수집어하며 잠시 더듬더니 가까스로 입을 벌렸다.

《제가 이제는 자신을 가지고 일한다고 그렇게 말씀 좀 드려주십시오. 사령관동지께서 저에 대해 제일 걱정하시는것이 그 점입니다. 저는 사실… 적후에 들어오니 신심이 굳어집니다.》

《알만하오. 사실이 그런걸 그렇다고 말씀드려야지. 자 인젠 돌아갑시다. 사금판의 사람들이 띄여보면 또 어디에 금맥이 터졌다 하고 소문을 낼수 있소. 내 박인섭동무는 만나서 다 이야기했소.》

《그럼 이길로 곧장 떠나게 됩니까?》

《어디 그럴수가 있소. 저녁에 아지트에 가거든 최병규동무를 삼선봉 그 페갱앞에 와서 기다리라고 하오. 새벽 5시부터 30분간… 나는 이제 현성에 들어가서 그놈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여져야지. 개같은 자식들, 면상에 가래침이라도 뱉어주었으면 좋으련만…》

두사람은 다시 청지동거리를 향해 걸어갔다. 따갑게 내리쬐던 폭양이 훨씬 누그러졌다. 그러나 바람 한점없이 무시무시할만큼 가라앉은 정적이 몸부림을 치고싶도록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부대의 동무들이 그립습니다.》

《아닌게아니다 더러운놈들속에 있으니 더 그립소.》

김준삼은 깁부채를 꺼내여 제법 신사답게 훨훨 부치며 맞장구를 쳤다.

두사람은 무표정하게 뻗어있는 황토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리운 사령부의 정경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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