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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20 회 )
필네는 길을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섰다. 마음은 급하여 막 날아가고싶은데 길에는 왜놈《토벌대》의 시체와 부상병들을 처실은 들것이 널려있고 떼를 지어 달리는 경찰, 군대들이 무시로 오르내려서 천천히 걷기도 어려웠다. 이제 총소리가 울려오는 대홍단벌은 고대다. 총소리를 대중하여 숲을 꿰질러가면 인차 유격대를 만날수 있을것 같았다. 유격대를 만나기만 하면 뒤일은 아무래도 좋다. 오빠를 만날수만 있다면 두려울것이 없었다. 게다가 정섭이도 유격대를 따라갔다고 한다. 총총히 들어찼던 이깔나무숲이 좀 성기여지는가싶더니 빠끔히 트인 림간공지는 한참을 못가서 끝나고 빽빽한 혼성림이 나졌다. 허리까지 치는 진대가 앞길을 막고있다. 곧장 타고넘자고 허리를 실어봤으나 어림이 없었다. 어찌나 오래 됐는지 겉껍질은 다 썩어 없어지고 이끼가 검푸르게 돋아난것이 함빡 물을 먹어서 발을 갖다붙이기 무섭게 미끄러졌다. 그런 진대가 총총히 가로놓여있었다. 가까스로 진대나무를 돌아나오면 칡이며 머루, 다래의 묵은 넝쿨이 잡관목가지들을 마구 휘감고 그물처럼 앞을 막아섰다. 필네는 머리며 목덜미를 휘감는 나무가지들을 두손으로 엇바꾸어 헤치며 곧장 총소리를 따라 앞으로 갔다. 봇나무의 가는 회초리가 볼을 후려쳤다. 아래종아리는 긁히고 터져서 얼얼하다. 그래도 돌아볼 경황이 없었다. 혹시 너무나 늦지 않았을가? 이런 불안이 가슴에 차서 언제 숨을 톺아볼 겨를도 없었다. 신사동쪽에서 총소리가 울린것은 한밤중이였다. 림철종점어방에서 가소린차를 타고 달려갔던 《토벌대》가 유격대의 불벼락을 맞고 도망쳐왔다는 소문은 이튿날 아침에야 농사동까지 번져왔다. 그때까지도 필네는 똑똑히 영문을 모르고 막연한 불안속에 서성거렸다. 큰길로 경찰과 군대들이 떼를 지어 몰려갔다. 가소린차를 타고 몰려가는 패들도 있고 어디선가 자동차를 타고 쓸어드는 패들도 있었다. 아침에 불시에 먼 신사동쪽에서 몰방으로 터져오른 총소리의 메아리가 아득히 울려왔다. 윤원구가 도강증때문에 주재소에 갔다가 도강증은 못찾은대신 지금 유격대의 대부대가 신사동일판에 쳐나와서 굉장한 전투가 붙었다는 소문을 듣고왔다. 필네는 그길로 달리는것이였다. 처음에는 림철종점을 끼고 달리다가 몇번이나 놈들의 단속에 걸리는 바람에 그렇게 숨가쁘게 달렸는데도 근 2시간이나 걸려서야 신사동에 들어섰다. 신사동부근에는 왜놈군대와 경찰이 씨글씨글하였다. 필네는 놈들의 눈에 뜨일가봐 나무사이를 누비며 간신히 정섭이네 집에 뛰여들었다. 놓여나온 할아버지가 그를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어머니와 경섭이가 한꺼번에 그러안았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바로 그 집까지 오셨다는것을 알았을 때 필네는 벌떡 일어났다. 너무나 뜻밖이여서 그랬던지 너무나 기뻐서 그랬던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정섭이까지 살아돌아와서 유격대의 짐을 메고 따라갔다는것을 알았을 때 필네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류를 물리치고 다시 대홍단으로 달렸다. 산에 숲에 왜놈들이 넘쳐나고 사방에서 총소리가 벼락치듯하는데 어디로 가느냐고 할아버지는 엄하게 꾸짖기까지 하였었다. 그러나 제가슴에 깊이 묻어둔 사연을 불시에 터놓을수가 없어 한번 웃어보이고는 무작정 달렸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유격대를 몸소 이끄시고 오신이상 제가 무엇때문에 머나먼 길을 에돌아 금천동까지 간단말인가. 그렇게도 그리운 유격대를 지척에서 만날수 있는데… 왜놈들이 유격대는 다 없어졌다고 떠드는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 못된놈들때문에 얼마나 속을 썩였던가. 그런데 그 원쑤놈들이 지금도 필네의 앞길을 겹겹이 막고있었다. 길로 갔으면 진작 대홍단벌에 나갔을것이다. 그러나 대홍단벌로 나가는 길은 모조리 놈들에 의해 막혀있었다. 그래서 숲속으로 들어선 길인데 대중없이 자꾸만 숲속으로 들어가다가 문득 앞이 틔여 바라보니 두지바위와 유곡쪽으로 길이 갈라지는 세가닥 길이 앞에 가로놓여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바로 낯익은 자위대놈들이 어디서 끌어왔는지 숱한 조선사람들을 잡아놓고있었다. 필네는 흠칫하여 다시 숲속깊이로 달려들어갔다. 어쩐지 총소리가 뜸해지는것이 유격대가 인차 어딘가로 가버릴것만 같은 조바심이 가슴을 휘저어놓았다. 왜놈들이 물밀듯이 쓸어들던 생각도 났다. 허지만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축지법을 쓰시는데 무슨 일이 있을라구…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은 불안과 초조감때문에 한시도 진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숲속을 어떻게 빠졌는지 진펄이 나졌다. 처음은 무작정 곧추 나가다가 보니 어느새 발등까지 빠지는게 심상치를 않았다. 하는수없이 옆으로 돌아 민틋한 등성이를 기여올랐다. 등성이우에 겨우 고개를 내밀게 되였을 때 바로 앞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보니 길손도 있고 가까운 처서판과 동네에서 왜놈들의 눈을 피해 놈들이 녹아나는 꼴을 보려고 몰려온 사람들도 있는듯하였다. 필네는 좀 마음이 진정되여 우선 형편을 알아보자고 그 사람들틈에 가섰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마장도 안되는 등성이아래에다 왜놈들이 부상자들을 날라다놓고 치료를 한답시고 볶아치고있기때문에 더는 앞으로 나갈수 없었다. 길은 사방으로 다 막혀있었다. 마침 왜놈의 군대와 경찰이 떼를 지어 파도처럼 대홍단벌로 밀려나갔다가 증산기슭에 가서 거대한 주먹에 내질린듯 산산쪼각이 나서 구겨박히고 흩어져 달아나는 판이였다. 사람들은 너무나 신이 나서 연신 가슴을 들먹거리며 팔다리를 들썩거리고있었다. 왜놈들이 멀지 않은곳에 있었기때문에 크게 소리는 치지 못하면서도 수군수군 주고받는 감탄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아니 저놈들이 뒤로 돌아가자고 저러는것 아니야.》 《뒤로 돌아가긴 어느 뒤로 돌아간단말이요. 장군님께서 그걸 그냥 두시겠소. 또 아까처럼 거꾸로 뒤통수를 활 문질러버리실텐데 그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을 하지 말란말이요.》 웬 체소한 농민의 말에 거쿨지게 생긴 길손이 이렇게 열을 올리며 핀잔을 주었다. 《아니 이 손님은 뭘 어쨌다고 아까부터 자꾸 구박이요. 왜놈들이 원체 악착한놈들이니까 하는 소린데…》 《쉿, 조용들 하시오. 공연히 제편끼리 그러는구만. 왜놈들의 눈에 띄였다간 또 탄알받이로 끌려간단말이요.》 큰 나들이에 온듯이 두루마기까지 떨쳐입고나선 웬 로인이 길다란 담배대를 저으며 두사람을 말렸다. 필네는 어디로 뚫고나갈 길이 없을가 해서 다시 사위를 살펴보았다. 등성이아래편은 맨 왜놈들의 송장천지였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부상병들도 수없이 많았다. 그러고도 대홍단벌에서는 한패씩 달려나간 《토벌대》무리들이 한참을 못 가서 탕쳐놓은 물고기대가리모양이 되여 또 새로운 송장을 질질 끌고 몰려나오군 하였다. 왜놈들이 그렇게 무수히 쓰러지고 죽어너부러지는것을 보니 귀청이 멍멍하도록 자지러지는 총소리뒤에 가면 유격대를 만날수 있을것 같았다. 필네는 한편으로 너무나 속이 시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을 동동 구르고싶은 안타까움속에서 싸움마당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저쪽 길가에서 왜놈들의 악착한 손길에 내몰리여 탄알받이로 된 마을사람들을 보게 되였다. 유격대는 어떻게 되였는가? 조선사람들을 방패막이로 삼았기때문에 유격대가 총을 못쏜다는것을 알았을 때 갑자기 텅 비여버린 대홍단버덩과 증산기슭 그리고 그쪽으로 밀물처럼 쓸어들어가는 왜놈들을 보는것이 끔찍하였다. 저도 모르게 살이 떨려났다. 과연 유격대는 어디에 갔으며 어떻게 되였을가. 왜놈들은 연방 총질을 해대며 증산기슭의 새초밭속으로 희뜩희뜩하다가 사라졌다. 그러자 더 좀 높은 기슭의 숲속에서 다른 대렬이 쏜살같이 왜놈들의 뒤로 달려나와 삥 둘러싸버렸다. 《아니, 저게 유격대가 아닌가?》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필네의 손을 더듬어잡으며 말했다. 필네는 로인의 손을 꼭 잡아드렸을뿐 가슴이 활랑거려 아무런 말도 못했다. 지내 거리가 멀어 똑똑치는 않으나 륙감적으로 유격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잠시 즘즛했던 총소리가 다시금 벼락치듯 하였다. 삽시에 총소리는 또다시 하늘땅에 꽉 들어찼다. 탄알이 멀지 않은 새초밭을 쓸어눕혔다. 《모두 엎드리시오. 상하겠소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사람들은 저마다 질겁해서 나무등걸뒤며 새초밭둔덕에 머리를 감추고 엎드렸다. 필네만이 몸을 감출 생각을 잊어버리고 싸움판을 바라보았다. 웨침소리, 아우성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총소리는 그냥 자지러지는데 아득히 먼곳에서 나팔소리가 울리여왔다. 왜놈들은 그 산기슭에서 아예 요정이 나는것 같았다. 필네는 달려가고싶었다. 죽더라도 달려가서 유격대를 보고싶었다. 그는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증산기슭을 향하여 내달렸다. 뒤에서 아까 말을 걸던 할아버지와 웬 아낙네가 뭐라고 소리쳤지만 전혀 가려들을수 없었다. 좀 두드럭한 언덕우에 올라섰을 때 필네의 눈앞에는 엄청난 장관이 벌어지고있었다. 방금전 그리도 기승을 부리며 온갖 떨거지들을 다 긁어모아 달려가던 놈들이 사방에서 죄여드는 유격대에 의해 칼탕질을 당하듯 얻어맞고있었다. 필네의 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슴새여나왔다. 그는 유격대를 보았다. 비록 한사람한사람의 형상을 가려낼수 없었으나 총창을 번쩍거리며 왜놈들을 찔러눕히는 무수한 유격대원들의 용맹한 모습을 보았다. 한순간에 평생소원이 다 풀린듯하였다. 유격대는 살아있으며 원쑤들을 저렇게 가슴시원하도록 잡아족치고있다. 그러나 그 격전장으로 누구를 찾으러 갈 형편이 못된다는것은 첫눈에도 환히 알려졌다. 여전히 총소리가 벼락치듯하는데 칼이 번쩍거리고 날창이 불꽃을 튕긴다. 원쑤들의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피와 살이 터져 새초밭이 벌겋게 물들고있다. 어떻게 저 싸움판뒤로 돌아갈수는 없을가? 그러는데 싸움판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왜놈들의 패잔병무리들이 피투성이가 되여 걸레쪽같은 부상병들과 시체들을 질질 끌고 앞길을 막아섰다. 필네는 눈을 딱 감고 이를 악물었다. 유격대를 만날 길이 막혔으나 이제는 서럽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나는 기어이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거야. 나는 꼭 오빠와 만나게 될거야.)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이며 동네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26
무연한 새초등판에 5월의 훈풍이 설레인다. 이따금 행군길옆에 몇그루씩 나타나군 하는 버드나무며 사시나무잎사귀들이 정오의 해빛을 받아 번쩍거리며 살랑거리며 이기고 돌아오는 혁명군을 손벽쳐 맞아주는것만 같다. 하늘은 높이 개였다. 산등은 방금 말라 지은 연두색 나들이옷을 산뜻이 갈아입고 이 뜻깊은 날 뜻깊은 사변에 참가하기 위하여 나선듯 그리도 아름답고 청신해보였다. 아직 총소리의 메아리가 하늘땅에 차넘쳐있다. 그러나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력사적인 승리가 조국청사에 수놓아진 이날 5월 23일 한낮의 이 나라 산천은 그리도 다채롭고 령롱하였다. 처음 전투를 시작할 때 북쪽에 바라보이던 증산이 지금은 동쪽에 놓여있다. 한창 격전을 치를 때는 느낄 사이도 없었지만 무리로 쓸어든 적들을 그때마다 사등뼈가 부러지게 요정내고 승리의 개가도 드높이 철수하는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정황이 급변할 때마다 변화무쌍한 전술로 부대를 령활하게 이동우회시키신 사령관동지의 명령에 따라 진지를 자주 옮긴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철수대렬은 지금 보초대가 나와있던 까치봉기슭을 끼고돌자 증산을 바른편으로 바라보며 삼수평방향으로 나가고있는것이였다. 새벽부터 벌어졌던 전투를 일단 결속짓고 철수를 시작한것은 11시가 넘어서였는데 창평방향과 대홍단쪽에서는 총소리가 그냥 자지러지게 울려온다. 창평방향의 총소리는 전초대가 나가있고 8련대가 또 그쪽방향으로 먼저 나갔으니 별로 이상할것도 없었지만 전투가 끝난 대홍단에서 웬 총소린가싶어 마을사람들은 좀 불안한 눈길로 뒤를 돌아보군 하였다. 아직 밑둥이 트지도 않은 사시나무 한그루를 정답게 바라보다가 그옆에 한무데기 피여있는 진달래를 발견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리로 달려가 한참 어루만지다가 차마 꺾지는 못하고 그냥 대렬로 돌아오시였다. 로획물자를 지고 따라나선 인민들이 200명가량이나 되여 지금 독립대대의 일부와 사령부직속구분대성원들로 이루어진 이 대렬은 군복보다 사복이 더 많아 희뜩희뜩해보였다. 총소리에 불안한 눈길을 짓고있던 한 아주머니가 머리에 인 천퉁구리를 추스르며 미소를 지었다. 《에그, 꽃이 고바서 저러쟁이요. 우리두 처녀때는 저랬건만…》 《꽃이 고와서만 그러겠소.》 만호가 생각깊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라를 찾자고 만주벌판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온분들이니 아무것이나 무심히 보이지 않을거외다.》 《실루 아주바이 말을 듣고보이 그렇겠당이. 에그, 저 나이에 저렇게 애바른 심정을 가지고 그 고생을 어찌 겪겠슴등.》 아낙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김정숙동지의 발깃하게 상기된 얼굴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이때 뒤쪽에서 또 총소리가 자지러졌다. 아까보다 훨씬 맹렬한 사격소리였다. 일행의 걸음걸이는 주춤거렸다. 《일없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뒤뚝거리는 아낙네의 임을 부축하며 말씀하시였다. 《저건말이예요. 우리 김일성장군님께서 왜놈들끼리 싸움을 붙여놓으신거랍니다. 저쪽 철길을 타고오던 놈들과 이쪽에서 달려온 놈들이 서로 이마받이를 하느라고 저렇게 야단들이예요. 조금도 걱정을 말아요.》 김정숙동지의 소박하고 다정한 목소리는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대렬 앞뒤에 선 사람들의 귀에 차분히 안겨들었다. 《옳소다. 내 아까 장군님께서 말씀하시는것을 들었소다.》 등뒤에서 누군가가 한손을 쳐들고 웨치다싶이 높은 소리로 말했다. 정섭이였다. 리호철의 권총손잡이에 깨웠다는 뒤통수에는 아직 호떡같은 혹이 불거져올랐는데 그끝에 뻗두룩하게 총이 센 머리카락이 일어선것이 장난군같은 인상을 주었다. 리성림이가 대홍단벌에서 철수할 때 윤원구네 일행과 같이 가던 청년임을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었더니 한참 눈을 더부럭거리다가 야, 이 형님도 혁명군이구나 하고 펄쩍 뛰며 좋아하였다. 그는 아직도 부위가 내리지 않아서 좀 비뚤사한 입사이로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희떱게 말을 이었다. 《이제 유격대누님의 말을 듣고보니 문세가 환하우다. 장군님께서는 아직 싸움이 한창일 때 벌써 저놈들을 저희들끼리 맞붙여놓아야 되겠다고 말씀하셨소다. 그걸 내 이 귀로 똑똑히 들었단말이우다. 그런데 참… 그걸 깜빡 까먹고 이제 유격대누님이 말해주기까지는 나도 저게 무슨 총소릴가, 저게 혹시 우리를 쫓아오는 소리가 아닐가 하고 은근히 켕겨서 조마조마했댔소다.》 정섭이의 말이 어찌나 소박하고 솔직하든지 모두 껄껄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일행을 따라 웃으시였다. 그리고는 웃음이 가라앉자 맑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난 정숙이예요. 모두 정숙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런데 이제 이 동무가 말한것처럼 이건 모두 우리 장군님께서 미리 앞을 내다보시고 작정하신 일이기때문에 우리는 아무 걱정 없어요. 그래도 좀 걸음을 다그치자요. 이런 번번한 등판은 빨리 걸어야 해요.》 김정숙동지의 말씀은 살틀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이께서는 일행중 그 누구보다도 많은 짐을 졌지만 마치 바람에 실려가는것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앞장서나가시였다. 《산에서 단련된 몸이 과연 다르긴 다르네.》 진중한 성미인 만호도 감탄해서 정섭이에게 속삭였다. 백양나무가 듬성듬성 서있고 묵은 떡잎이 검불처럼 바람에 날려다니는 연록색의 새초등판은 거지반 끝이 났다. 왼편으로 우묵하게 꺼져들어간 골바닥에 이깔나무숲이 나타나고 그너머로 《갑무경비도로》한끝이 바라보였다. 지금 형편같아서는 역시 그 대도로를 가로지르는것이 문제일것 같았다. 성림이가 좌우의 지형을 바라보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섰는데 김정숙동지께서 긴장된 낯빛으로 다가오시였다. 《봤어요?》 《뭘말입니까?》 성림은 떨떨해서 되물었다. 《저쪽 반대쪽 둔덕밑을 보세요. 먼지가 일어나는것이 보이지요?》 《어느것말입니까? 아 저것말입니까? 보입니다. 아니 저게 적이 아닙니까?》 성림은 놀라서 눈을 흡떴다. 《그래요. 소리치지 말아요. 인민들이 알면 놀랄수 있어요. 아마 저아래 있는 달구지길이 그리로 통한것 같아요. 그러니 저놈들은 10분안으로 여기에 나타날거예요. 사령부는 앞에 나가있고 7련대는 삼수평방향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여기서 우리 힘으로 인민들을 구해야겠어요.》 《알겠습니다. 결사적으로 싸우겠습니다.》 성림은 아무것도 모르고 흥성거리며 걸어가는 동네사람들을 돌아보며 비장한 심정으로 말하였다. 《지금은 결사적으로 싸우고 안싸우는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사령관동지를 따라나선 인민들인데 한사람이라도 상해서야 되겠어요.》 그러면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앞뒤에 널려있는 유격대원들을 눈으로 헤여보시였다. 열한명이였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가 우리 동무들을 데리고 저쪽 버드나무밑으로 가겠어요. 거기에 도착하기 전에 적들에게 발견될수도 있어요. 그러나 성림동무네는 절대로 불질을 하지 말아야 해요. 그대신 인민들을 데리고 이쪽 낮은 골바닥으로 해서 재빨리 숲속으로 가세요. 인민들이 완전히 은페한 다음쯤 하면 적들이 이 근방에 나타날거예요. 그때는 적들을 마주 끼워놓고 치자요.》 《좋습니다. 그러나 저쪽으로 가는것은 내가, 우리가 가겠습니다.》 《그건 안될 말이예요. 그러자면 또 딴동무와 의논해야 하지 않아요. 시간이 급해요. 어서 가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을 마치자 바람처럼 소리없이 달리시였다. 어느새 세명의 녀대원과 두명의 남대원이 그이의 뒤를 따라 500m남짓 떨어져있는 둔덕을 향해 달려갔다. 세그루의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껑충하니 서서 우듬지만 설레이고있었다. 《아니 저 체네혁명군네들이 어디메로 가오다?》 천퉁구리를 인 아낙네가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여러분, 적이 나타났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림시 피해야겠습니다.》 성림의 말이 떨어지자 행군대렬은 주춤거리면서 웅성웅성하였다. 《그래서 저 숲속으로 몸을 빨리 피해야겠습니다.》 《앙이, 저 군대는 저쪽으로 가는데 우리가 이쪽으로 가두 일없겠슴둥?》 천퉁구리 인 아낙네가 먼저 말을 받았다. 뒤를 이어 웅성거림이 더 크게 번져갔다. 《우리가 여기 서있으면 안됩니다. 저놈들이 둔덕에 올라서기만 하면 드러납니다. 그러니 어서 빨리 숲속으로 들어갑시다.》 《빨리 혁명군의 뒤를 따라갑시다.》 만호가 이렇게 말하며 앞장에 섰다. 성림은 강정섭이에게 앞서라고 눈짓을 하였다. 처음에는 주저주저하며 재빠르지 못하던 그 움직임도 저쪽 버드나무 선 둔덕을 물어뜯는 적의 앙칼진 총소리가 터져오르자 절로 활기가 생겼다. 숲의 초입은 불과 200m 남짓하였다. 성림은 손짓을 하며 인민들을 숲속으로 이끌어들이면서도 눈만은 김정숙동지께서 달려가시는 둔덕쪽에서 떼지 못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미 적에게 발견되였지만 몸을 굽히지도 않고 달리신다. 군모밑으로 머리카락이 날린다. 동네사람들은 안전한 숲속에 들어가 유격대원들이 시키는대로 지형지물에 의지하여 엎드리자 비로소 사태의 엄중성을 알아차렸다. 조선인민혁명군의 기본대렬이 앞뒤로 늘어서서 철수하는 그 틈사이로 적의 무력이 불쑥 나타났는데 그것이 우연히 십여명의 유격대원밖에는 무장성원이라고 없는 이 로획물자 운반대렬과 맞다들린것이다. 필경 적들은 어느 산속에서 헤매다가 창평방향에서 울려오는 총소리를 듣고 허둥지둥 달려가는놈들일것이다. 보매 한개 소대가량 되는 경찰무력이였다. 일부러 자기를 로출시키며 달려가시는 김정숙동지와 그 일행을 보자 그놈들은 어지간히 당황했던 모양으로 덮어놓고 총질을 하며 달려들었다. 어느새 김정숙동지일행은 버드나무뒤로 사라지더니 나무밑둥에 의지하여 불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앙이 저 체네군대가…》 말이 많은 아낙네가 총소리에 움츠렸던 고개를 들더니 놀라서 부르짖었다. 김정숙동지의 총구에서 날아나는 총알에 달려오던 적들이 연신 나가번져지는것이 헨둥하게 알린다. 《그렇게 얌전하더이 워쩐거 우리 동네 포수아바이보다 불질을 더 잘하우야.》 김정숙동지의 사격솜씨에 놀란것은 그 아낙네뿐이 아니였다. 어느새 겁을 잊어버리고 숨어 엎드렸던 사람들이 나무밑에서 고개들을 길게 뽑으며 연신 혀들을 내둘렀다. 《저것 보우다. 또 한놈 넘어졌소다. 혼자서 벌써 여섯놈이나 제꼈소다.》 성림은 인민들을 한사람한사람 찾아다니며 나무뒤에 은페하도록 당부한 다음 이미 봐둔 숲기슭의 사격좌지로 나가며 말하였다. 《김정숙동무는 원래 명사수입니다. 아까 자위대 장교놈을 단번에 쏘아눕힌것도 김정숙동뭅니다.》 성림의 목소리는 자랑스럽게 울리였다. 동네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김정숙동지에 대해 더 좀 말을 듣고싶어하였으나 이미 그럴 겨를이 없었다. 이제는 적들이 이쪽 진지의 사격권내에 거의 들어서고있었다. 이쪽에서 마주 불질을 해주어야 저쪽 동무들에게 쏠리는 부담을 덜어줄수 있는것이다. 성림은 인민들을 다 은페시킨 지금 두려울것이 없었다. 침착하게 풀밭에 총을 올려놓고 편안히 엎드리니 둔덕에 대고 사격을 퍼붓는 적의 등이 정면으로 돌아선다. 한 쉰명 잘되였다. 지휘관이라고 짐작되는놈이 맨 뒤에 무릎을 꿇고앉아서 부하들에게 권총을 휘두르며 연신 나가라고 다몰아치는것을 보면 분명 겁에 질린 놈들이였다. 성림은 자신이 있었다. 《동무들, 인민을 지키기 위해 잘 싸웁시다.》 나란히 엎드린 동무들에게 조용히 말한 그는 지그시 방아쇠를 당겼다. 련달아 사격소리가 터져올랐다. 마지막 사격의 메아리가 멎기 전에 성림은 벌써 장탄을 하고 두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뒤에도 유격대다!》 그중 가까이 있는놈들가운데서 이런 악다구니소리가 나더니 다음순간 히유-히유- 하고 총알이 날아와서 풀밭을 파헤치고 나무아지를 잘라눕히기도 하였다. 성림의 가슴은 여전히 평온하였다. 그는 대홍단에서 쓰고남은 탄알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적을 한놈한놈 골라서 겨누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탄알을 정량보다 많이 쓸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바로 지척에서 흙먼지가 풀썩하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성림은 눈을 꼭 감고 머리를 천천히 흔들며 먼지를 털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가는 야단이다. 《고난의 행군》때 엄광호란놈의 과격한 언사와 위협공갈에 넘어가 혁명동지들을 배반한것은 바로 내 사상에 먼지가 끼고 눈이 청맹과니가 되였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눈을 떴다. 이제 다시는 이 눈을 어지럽히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혁명에서 내가 서야 할 위치, 내가 해야 할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다해야 할 의무, 의리… 이런것을 다 하기 전에는 죽을수 없다.) 성림은 다시 총의 기관부에 덮씌워진 흙먼지를 차근차근 훔쳐낸 다음 그에 소모한 시간의 벌충이라도 댈듯이 맹렬한 속도로 사격을 들이댔다. 유격대의 한중간에 끼여들어 어쩔바를 모르던 적들도 마침내 자리들을 잡고 불질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격대가 량쪽으로 갈라져서 불을 퍼붓는데다 량쪽 다 든든히 은페해있기때문에 얼마나한 력량인지 알수가 없으니 결정적인 공세로 나오지는 못하고 그러는 사이 한놈두놈 나가넘어졌다. 그런차에 별안간 대도로쪽으로부터 귀청을 잡아째는것 같은 기관총의 일제사격소리가 울리여왔다. 기관총의 탄막은 적들이 엎드린 새초등판을 휩쓸어버렸다. 사령관동지께서 행군도중에 울려오는 총소리를 들으시고 세명의 기관총수를 보내주신것이였다. 미구에 적들은 수십개의 주검을 내던진채 삼수평방향으로 꽁무니를 빼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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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가에서 짐을 지고온 일부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모두 강건너까지 가겠다고 하였지만 그럴 형편이 못되였다. 아낙네들도 있었고 어떻게 운반대렬에 끼여들었는지 나이 많은 로인들도 있었다. 8련대는 아직 창평쪽에서 싸움을 하고있었고 7련대 역시 하삼수평방향으로 진출했기때문에 경위중대와 독립대대만 이 지점에서 사령부를 보위하면서 강을 건느게 되였다. 성림은 돌아가는 마을사람들을 배웅해주느라고 맨마감에야 강기슭에 나섰다. 멀어져가는 동네사람일행을 향하여 손을 흔들던 그는 문득 채양버들에 가리워 잘 보이지 않는 둔덕밑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굳어져 서버렸다. 한 녀대원이 땅을 그러안고 엎드려있었다. 검은 흑토가 가까스로 애풀에 가리워질가말가한 맨땅에 두무릎을 꿇고 엎드려 그 땅을 모두 한가슴에 그러안을듯 두팔을 벌리고 풀밭을 어루더듬고있었다. 볼을 이쪽저쪽 번갈아가며 그 땅에 대고 얼굴을 비빈다. 마침내 어깨가 물결치기 시작하였다. 얼굴이 이쪽으로 돌아설 때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해빛에 번쩍하였다. 누가 볼가봐 후미진 곳에 홀로 숨어서 사랑하는 조국땅과 리별을 나누는 녀전사의 모습을 볼 때 성림은 숨을 쉬기도 가쁠만큼 숭엄한것을 느꼈다. 녀전사의 한손에 쥐여진 진달래꽃포기만이 웃고있었다. 성림은 김정숙동지의 모습에서 가슴을 뜨겁게 지지는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그자신이 이미 알고있는 말들을 다 그러모아도 그것을 표현할수 없을것처럼 생각되였다.
그러한 말을 배우리라, 혁명의 진정한 리념을 배우리라는 웅심깊은 생각이 온몸을 후덥게 덥혀주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