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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19 회 )
아침해살이 엷은 빛을 뿌리자 물자작가지에서 이슬이 쭈르르 미끄러져내렸다. 대로은산뒤로 불타던 아침노을이 차츰 금빛을 띠더니 어느새 수묵화같던 주위의 산발이 륜곽을 드러냈다. 숨죽은듯 고요하던 숲속에서 별안간 새들이 시끄럽게 우짖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대홍단벌은 찬란한 색조속에 온몸을 드러냈다. 어제날의 황량한 모습은 어데로 갔는가. 물자작가지에서, 묵은 새초잎에서 이슬이 무수한 금구슬처럼 빛을 뿌리고 새벽바람에 하느적거리는 진달래꽃잎들이 별무리처럼 번쩍거린다. 버덩을 넘어 저편, 7련대와의 련계를 위해 련락조를 남겨둔 찌글사한 국사당도 마치 선경의 단청무늬 령롱한 루다락같이 보인다. 어디에도 불꽃튀는 격전을 예상케 하는것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경위중대의 매복진도, 8련대와 독립대대의 매복진도 가뭇 소리없이 누워있다. 구붓한 지형에 맞게, 적들이 나타날것으로 예견되는 대홍단버덩을 향하여 매복진을 손수 펼쳐놓으신 사령관동지자신께서도 쌍안경으로 꼼꼼히 살펴보셔야 가까스로 그렇다는것을 짐작하실뿐 겉보기는 더없이 아름답고 고요한 벌판이였다. 다만 지휘처로 정하신 봇나무밑에서 좀 나가서 10m간격으로 엎드린 세명의 기관총수의 등이 보일뿐이였다. 마침내 날이 활짝 밝았다. 대홍단벌은 다양한 색조를 벗어던진 대신 생명이 약동하는 봄날 대지의 훈향을 내뿜었다. 《사령관동지, 옵니다.》 상철이가 버덩너머를 쏘아보고있다가 입안이 바싹 마른 소리로 보고를 드리였다. 《알고있소. 7련대동무들이 틀림없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며 천천히 쌍안경을 눈으로 가져가시였다. 《허허허, 로획물자들을 많이들 졌구만. 인민들도 많이 따라오는것 같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냥 쌍안경을 들여다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때 오백룡이가 소리없이 다가왔다. 《사령관동지, 적들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는 7련대가 도착하는 즉시로 다음 계선으로 이동해도 일없겠습니까?》 《그럴수가 있소? 그놈들이 안나타나고 어디로 가겠소. 가만 두고 봅시다. 이제 나타날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더 볼 필요도 없다는듯이 쌍안경을 내리시더니 오백룡의 긴장된 얼굴을 살펴보시였다. 《저걸 보오. 오중흡동무가 아마 놈들을 큼직하게 해치우고 마을에서 정치사업도 괜찮게 한것 같소. 이제 이야기도 그만큼 많을거요. 이놈들을 빨리 때려엎고 그 이야기를 푸짐히 좀 들어봅시다.》 이때 상철이가 쨍쨍한 목소리로 보고를 드리였다. 《사령관동지, 적입니다. 7련대 뒤에 적이 달렸습니다.》 《어디 좀 봅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다시 쌍안경을 눈으로 가져가시였다. 아닌게아니라 7련대의 후위가 버덩에 들어설무렵 200∼300m 떨어진 숲속에서 길다란 행군종대가 따라섰는데 아침해살에 철갑모가 번쩍하는것이 똑똑히 알렸다. 얼핏 보매도 대대규모는 되는 긴 대렬이였다. 《음- 역시 오중흡동무가 일을 빈틈없이 했소. 능숙한 몰이군에게 걸린 승냥이가 갈데라고 있소, 덫에 걸렸지. 자, 모두 시작해봅시다. 상철동무는 7련대장동무에게 가오. 그리고 봉수동무는 8련대와 독립대대로! 어- 시원한 아침이로군.》 사령관동지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신 다음 군복웃단추를 터놓으시고 싱그러운 아침바람을 량껏 마시시였다. 7련대는 여전히 서두르지 않고 대홍단 물자작밭을 건너온다. 적들도 아무런 눈치를 못채고 똑같은 간격을 두고 똑같은 속도로 따라온다. 숲도 벌판도 여전히 평온하게 누워있다.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가슴속에는 벌써부터 격전의 전국면이 하나의 화폭처럼 선히 그려져있었다. 새초밭사이를 다람쥐처럼 누벼나간 상철이가 오중흡이를 만나서 몇마디 속삭이더니 되돌아 달려온다. 그앞은 바로 7련대와 경위중대의 매복진이다. 오중흡이가 매복진을 지나자 한중간에 서서 대원들을 떠밀어보내며 엎드리라고 소리친다. 그래도 적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7련대를 놓치지 않겠다는 한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꼿꼿이 따라온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천천히 권총을 쳐드시였다. 그이의 신호권총이 울리는 순간 하늘을 두동강이 내는듯 한 일제사격의 무시무시한 메아리가 고즈넉하던 벌판과 광막한 숲을 뒤덮어버렸다. 7련대는 허리를 낮추고 제꺽 매복권을 벗어났다. 적들은 거대한 낫가락이 휩쓸어간 풀밭처럼 선자리에서 풀떡풀떡 엎어졌다. 산놈이고 죽은놈이고 모조리 나가 엎어졌다. 진펄이든 둔덕이든 가릴 경황이 없었다. 지휘관이 산개하라고 소리소리 질렀지만 듣고도 뜻을 모르는지 여름철 양떼처럼 한곳으로 몰려들어 비비적거린다. 성림은 자기의 사격솜씨가 결코 서툴지 않다는것을 이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사실 여태까지 전투에 몇번 참가하기는 했지만 모두 번개처럼 치고 바람처럼 달려나가는 전투여서 언제 자기의 사격에 대해 생각해볼 짬이 없었다. 오늘은 전투의 성격자체가 매복했다가 사격권에 들어온 적을 하나하나 묘준해서 쏘는것이니 충분히 사격솜씨를 검열해볼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철갑모를 정면으로 내대고 깊숙이 풀밭에 들어박힌놈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옆으로 기기 시작한다. 총소리가 콩닦듯하니 아무래도 한자리에 들어박혀있을수가 없는 모양이다. 옆으로 나가봐야 그 이상 좋은 은페지는 있을것 같지 않는데 놈은 필사적으로 팔굽을 세워 상반신을 먼저 한옆으로 비스듬히 가로눕히고는 엉뎅이를 끌어붙이군 한다. 한번씩 그런 동작을 반복할 때마다 엉뎅이가 한순간씩 올려솟군하였다. 그놈은 그런것을 전혀 못느끼는 모양이다. 대가리만 깊숙이 틀어박고있으면 엉뎅이쯤 맞아도 일이 없겠다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디 한대 맞아봐라. 성림은 다음에 엉뎅이가 솟아오를만 한 높이에 묘준을 하고있다가 발끝에 긴장이 오는 순간 지그시 방아쇠를 당겼다. 탄알은 풀대를 쓸어눕히며 면바로 솟아오른 엉뎅이에 가 맞았다. 발사소리며 비명소리가 온 벌판에 차고넘쳐 소리는 가려들을수 없었으나 그놈은 그렇게도 소중히 감추고있던 대가리를 번쩍 들고 무릎을 꿇고앉았다. 손을 엉뎅이에 가져가는가싶더니 이번에는 또 어디서 날아오는 누구의 탄알을 받았는지 철갑모가 쟁그랑하고 벗겨져 달아났다. 그놈은 엉뎅이를 쓸어보려던 손을 허리우에 드리운채 천천히 모로 쓰러졌다. 적들은 대홍단벌 복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거의 앉은자리에서 몰살된듯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총소리는 그냥 자지러지고 적탄은 더욱 비발치듯 날아온다. 해가 이깔나무숲우에 솟아올랐다. 눈앞이 확 열리였다. 너울을 벗은듯 한 대홍단벌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성림은 눈을 부릅떴다. 여태 어둠속에서 싸우던 적은 다 죽고 뿔뿔이 흩어진듯한데 진펄너머 저쪽 숲변두리로 길다랗게 산개진을 친 적의 새로운 공격서렬이 보였다. 성림은 무의식중에 뒤를 돌아보았다. 사령부는 아까 위치해있던 두드럭한 등성이우에 그냥 자리잡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불뿜는 기관총옆에서 쌍안경으로 적진을 살피고계신다. 적들이 주목하는 기관총옆에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것이 마음에 걸리였다. 그러고보니 자기는 너무나 몸을 깊이 감추고있는것만 같았다. 적들도 눈을 밝히고 이쪽을 살필텐데 유독 사령부위치만 적들에게 두드러진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성림은 무의식중에 몸을 일으켰다. 풀대들이 앞을 가려 전망이 좋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기 몸을 더 많이 드러내는것이 사령관동지께 미치는 위험을 다소라도 덜어드릴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무릎을 꿇고 일어서니 한결 눈앞이 시원하게 열리였다. 굵다란 이깔나무밑둥에 내뻗친 기관총의 총신이 보인다. 그 총구에서 예광탄이 번쩍번쩍 불을 뿜는다. 그러나 사수놈은 골을 나무뒤에 틀어박고있기때문에 좀체로 조성우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놈의 총구는 분명 사령부를 겨누고있는듯하다. 성림은 옆으로 몇걸음 자리를 옮겼다. 좀 비켜앉으면 적기관총수의 몸체가 사격권안에 들어올것 같았다. 《엎드렷! 성림동무! 엎드리시오!》 뒤에서 사령관동지의 웅글은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성림은 엎드리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누구를 보고 하시는 말씀인가? 설마 이 불꽃튀는 싸움판에서 자기를 지켜보실수야 있는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사령관동지께서는 한팔을 드시여 엎드리라는 손짓을 하시였다. 그이의 얼굴에는 분명 따뜻한 웃음이 어리여있었다. 순간 성림은 눈굽이 지지는듯 확 달아났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적들을 살피고계실뿐아니라 우리 전사 한사람한사람을 그렇듯 세심하게 살피고계신다. 그이의 그 눈길속에 자신도 한자리를 차지하고있다는것을 의식하니 걷잡을수 없는 감동이 다시금 가슴을 꽉 채웠다. 성림은 납작 엎드려 적을 겨누었다. 눈앞이 부옇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것이다. 총소리가 귀청을 찢고 피와 살점이 흩어져 달아나는판에 눈물이라니… 싸움판에서는 응당 용감해야 하지만 이렇게 죽음을 초월해버려서는 안된다. 용감한 전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의무에 충실한데 있다. 나는 사령부를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은페하여 적을 효과적으로 소멸하여야 한다. 성림은 소매로 눈앞을 뻑 훔치고 아까 그 기관총을 겨누었다. 이번에도 철갑모만 보였다. 저놈을 정통으로 내갈기리라 결심한 그는 인내성있게 묘준을 하였다. 그제야 귀청을 멍멍하게 하는 총소리, 풀대와 진흙을 파헤치는 적탄이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것을 느끼였다. 성림은 입술을 앙다물고 다시한번 적기관총수의 철갑모를 조성우에 올려놓았다. 자칫하면 또 벗어날수 있다. 초조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숨을 천천히 내보내다가 딱 멈추었다. 그리고도 조성우에 놓인 적의 철갑모를 다시한번 확인한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철갑모는 정통을 맞고 팽그르르 돌더니 옆으로 굴러났다. 성림은 총을 내리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고 앞을 살폈다. 그런데 이깔나무뒤에서 기관총은 여전히 불을 뿜는다. 《동무들, 허위목표에 속지 마시오. 적들은 철갑모를 내세워놓고 그옆에 숨어있소.》 이런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사령관동지이시였다. 해는 차츰 높이 솟아올랐다. 밤이슬이 번쩍거리던 풀대들이 목대가 부러져서 진흙탕우에 너저분하게 널렸다. 성림은 다시 서너걸음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나무뒤에 엎드린 기관총수와 부사수 두놈의 몸집이 똑똑히 보인다. 그는 자기 탄알이 날아갈 탄도를 곰곰히 머리속에 그려보며 이번에는 퍽 수월하게 겨냥하여 연거퍼 두발을 쏘았다. 적기관총은 아가리를 다물고말았다. 성림이가 기관총을 소멸하느라고 옮겨다니는 사이 적의 대렬은 눈에 알리게 설피여졌다. 이제 돌격해나가면 놈들을 일격에 물리칠수 있을것 같았다. 성림은 신바람이 나서 돌격구령을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고있는데 왕청같이 서북쪽 릉선쪽에서 적의 큰 무리가 나타나서 불질을 해댔다. 성림은 머리속이 아찔하였다. 적들은 교활하게도 허위목표뒤에 얼마 안되는 력량만 남겨두고 은밀히 측면으로 우회하여 포위를 형성하려고 하는것이였다. 성림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령부 좌우에 그쯘히 늘어져있던 아군의 서렬은 보이지 않고 직접 사령부를 보위하던 석정의 기관총도 한자루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성림은 온몸의 피가 머리로 확 몰리는것을 느끼였다. 사령부를 지켜야 한다. 그는 중대장이 뭐라고 구령을 치는것을 느꼈으나 그것을 미처 가려들을 사이도 없이 적의 화력이 집중되는 곳을 향하여 제 온몸으로 사령부를 지킬듯이 달려갔다. 적탄이 비발치듯하였으나 웬일인지 터럭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였다. 성림은 무엇인가 복잡하게 엉켜들던 자기의 머리속이 비발치는 적탄속을 달려가는 100m도 못되는 그사이에 시원히 정돈되고 개여오르는것을 느끼였다. 사령부를 지켜야 한다! 머리속에 남아있는것은 오직 이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어느새 중대의 서렬이 모두 익측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향하여 돌아섰다. 그러고보니 아까 중대장의 구령은 바로 이것을 요구한것이였다. 성림은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를 한번 당기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여전히 침착하게 쌍안경으로 적진을 살펴보고계신다. 그런데 그앞에 있던 동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럴 때 누군가가 사령관동지를 좀더 안전한 곳으로 모셔갔으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앞을 살펴보니 적들의 력량은 상당히 우세한듯하였다. 탄막은 점점 조밀해지고 놈들은 한걸음한걸음 죄여든다. 비록 아군의 방어진이 좀 설피여지기는 했으나 그만큼 매 전사가 더 정확히 쏘고 몇갑절 더 용감하게 싸워서 저놈들을 소멸해야 한다. 성림은 배밀이로 몇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앞에 찍어넘긴 이깔나무의 등걸이 솟아있었다. 그렇게 홀로 삐여져나가도 두렵지 않았다. 얼마나 좋은 은페지인가. 다문 얼마라도 거리가 밭으니 명중률도 더 좋을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탄알이 안나간다. 고장이 났는가? 새 총인데… 다시 방아쇠를 당기니 빈 격침소리가 찰칵한다. 그제야 혼자 욕설을 퍼부으며 탄띠에서 알쌈을 더듬었다. 앞가슴에 가득 채워넣었던 알쌈을 언제 다 빼냈는지 탄띠가 주글주글하다. 성림은 잠시 탄알 재울 생각을 잊어버리고 메뚜기처럼 껑충껑충 뛰며 새까맣게 덮쳐드는 적진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후두두하고 손발이 절로 가드라들었다.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성림은 자신을 향하여 소리쳤다. 《정신을 차렷!》 자기 마음이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뭘 그렇게 소리치는가? 나는 나의 의무를 다 알고있다.》 성림은 전선을 좀더 넓게 바라보며 후둑거리는 심장이 가라앉기를 침착하게 기다렸다. 자신에게 믿음이 갔다. 그는 아직도 좀 후들거리는 손으로 천천히 탄띠를 더듬었다. 그것을 조급하게 빼내기전에 나머지 탄알을 다 만져보았다. 새 알쌈이 열두개 남았다. 그러니 60발의 탄알이 있다. 하나도 헛방을 쏘지 않는다면, 우리모두가 침착하게 사격을 한다면 이 탄알을 절반쯤 쓰고도 적을 소멸할수 있을것이다. 성림은 한알의 탄알로 한놈의 적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알한알 탄알을 세면서 사격을 하였다. 그러나 적은 줄어들지 않았다. 어쩐지 점점 더 불어나면서 차츰 더 가까와지기만 하는것 같았다. 이제는 사령부가 있는 둔덕으로 날아가는 적탄의 탄도를 환히 가려볼수 있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는가! 성림은 너무나 안타까와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 순간 맹렬한 사격소리가 적의 배후에서 자지러졌다. 앞으로 죄여들던 적의 서렬이 벼락을 들쓴듯 뭉청 허물어져나갔다. 적들은 등뒤로 사격을 받고 둥지를 털리운 개미새끼들처럼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성림은 너무나 기뻐 아주 허리를 일으키고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그랬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벌써 적들의 잔꾀를 꿰뚫어보시고 사령부를 지키던 동무들을 적들의 뒤로 내보내셨구나.》 그러면서 그는 싸움판한복판에 서서 어린애처럼 순진한 마음으로 껄껄 웃었다. 《네까짓것들이 감히 조선인민혁명군을 어째보겠다고… 가소롭기란…》 성림은 침착하게 이깔나무등걸뒤에 꿇어앉아 뿔뿔이 흩어지는 놈들을 한놈한놈 겨누어 쏘아제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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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가 동네를 떠날 때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병든 몸을 무릅쓰고 동구까지 따라나왔고 경섭이는 막대기총을 어깨에 메고 대렬에 섞여들기까지 하였다. 정섭이가 로획품밀가루포대 하나를 메고 앞에 섰을 때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몸들 편히 계시우다.》 정섭이는 아예 먼길 떠나는 인사를 하였다. 《오냐, 이제 유격대를 따라가면 장군님을 만나뵈올 때도 있을것이다. 그러니 그때 주눅이 들어 어물거리지 말고 꼭 인사를 드려라. 네가 돌아왔다는것을 말씀올렸더니 장군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이제 모든 시름을 놓고 신사동을 떠나신다고까지 말씀하시더라. 너도 이제는 철이 좀 들어라.》 할아버지는 벌써 몇번이나 한 당부를 또 곱씹었다. 그것을 또 어머니가 받았다. 《에그, 네가 꽤 혁명군이 되겠는지. 우리 집에 온 혁명군을 보니 영섭이보다 좀 큰 나어린 혁명군도 어찌 의젓하던지…》 《나도 이제 그렇게 되지오다.》 정섭이는 모든 말이 다 좋게 들려 벌쭉 하고 웃었다. 어느새 행군대오는 동구밖을 저만치 벗어져나갔다. 정섭이는 자꾸만 뒤로 끌리는 마음따라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뒤돌아보며 총총히 유격대의 뒤를 따랐다. 멀리까지 따라나온 경섭이의 까칠한 머리를 쓸어주고 돌려보낸 다음에야 명주수건에 매놓은 돈생각이 나서 되돌아가 경섭이의 손에 돈을 쥐여주었다. 그것이 정든 집과의 리별이였다. 대홍단벌을 가로질러 진펄을 건너뛰며 국사당방향으로 걸어갈 때까지도 집생각이 발꿈치에 매달린듯 자꾸만 걸음발을 잡아챘다. 그래서 언제 물자작버덩을 다 지나쳤는지 그리고 언제 어디서 총소리가 터져올랐는지 미처 가늠할수 없었다. 그는 풀덤불속에 태질을 당하듯 나뒹굴어서는 골을 쳐들지 못했다. 《움쩍 말고 여기 가만히 엎드려들 있소. 이제 조금만 참으면 왜놈들을 다 쓸어버릴테니…》 걸걸하게 생긴 유격대 지휘관이 기관총을 들고 저쪽으로 달려나가며 소리쳤다. 누가 움쩍하라고 해도 움쩍할 형편이 못되였다. 별안간 터져오른 총소리는 점점 더 세차게 번져가더니 눈앞에 자욱하게 덮여있던 풀대들이며 나무가지들이 회오리바람에 휘말려든 검부레기처럼 날아가버리고 어느덧 눈앞이 훤해졌다. 귀를 꼭 틀어막았지만 총소리는 바로 제 정수리우에서 울리는것처럼 물어뜯는 소리를 질렀다. 전투는 정섭이 생각에 하루종일 끄는듯하였다. 암만 봐야 어느쪽이 이기는지 판세를 가려낼수 없다. 판세고 뭐고 애초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부터 않았다. 그도 유격대에 들어가면 의례 총을 쏘게 되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그가 상상한 전투라는것은 권총같은것을 차고 몇사람이 밤에 몰래 스며들어가서 느닷없이 쏘아눕히고 나오는것과 같은 전투이지 이렇게 큰 벌판에서 수백명이 마주대고 여러시간 싸움을 하는것과 같은 전투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처음에는 너무 얼이 빠져서 골을 땅바닥에 박고만 있었으나 하도 오랜 시간을 끄니 어느정도 마음이 가라앉아서 차츰 머리를 쳐들고 앞을 내다보게 되였다. 내다보아야 뭐가 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그러나 한참을 내다보고있느라니 그에게도 차츰 적들이 나가넘어지고 쓰러지는것이 하나 둘 눈에 띄였다. 그리고 점점 왜놈들의 수가 늘어나고 유격대가 엎드린 둔덕쪽으로 조금씩조금씩 좁혀들어오는것도 알려졌다. 《왜놈들을 한놈도 살려보내지 말라!》 퍽 가까운 곳에서 이런 구호소리가 비교적 뚜렷이 들려왔다. 아까부터 총소리속에 형형색색의 웨침이 엇갈려 들려왔으나 정섭이에게는 분간되지 않았었다. 《쏘아라! 쏘아라!》 아까 움쩍하지 말라던 지휘관이 스무나문걸음 잘되는 이깔나무밑에 엎드려서 기관총을 쏘아대며 웨치고있다. 그러지 않아도 그 주변에 엎드린 유격대원들은 정신없이 총을 쏘아대고있었다. 총소리가 눈에 알리게 높아졌다. 바싹 좁혀들었던 왜놈들이 풀떡풀떡 나가넘어진다. 허리를 더 좀 솟구고보니 대홍단 넓은 버덩에 온통 송장이 한벌 덮였다. 《야!-》 정섭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 환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어쩌자는것인지 그자신도 알수 없었다. 그저 무작정 내달리고싶었다. 《동무, 정신있소! 엎드렷!》 누군가 발목을 잡아채는바람에 나가넘어졌다. 나이 지숙한 대원이 총을 겨누다가 엄한 눈매로 쏘아본다. 《왜놈들이 막 쓰러지오다.》 정섭이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잡았소. 그런데 동무는 저쪽에 가 숨어있으란말요.》 유격대원은 곁을 주지 않고 여전히 엄하게 말했다. 《저놈들 막 도망치는데 뭘 그러오다? 난 여기서 좀 구경하겠소다.》 《이 동무 셈평좋군. 그럼 이 배낭을 저 박인섭동무에게 가져다주오. 저 기관총말이요.》 그 대원이 내미는것을 어망결에 받아들고보니 어방없이 무겁다. 《고맙수다.》 정섭이는 뜻도 없이 이런 인사말을 하고 엉거주춤 허리를 굽힌채 기관총 있는데로 갔다. 《배낭 가져왔수다.》 《배낭? 응, 탄알이요? 고맙소.》 모자채양이 뒤로 가게 제껴쓰고 기관총을 휘둘러대던 박인섭은 나이 지숙한 대원을 돌아보고 히쭉 웃으며 소리쳤다. 《군수관동무, 고맙소다.》 《인사할새 있소? 풍산에 간 장경수몫이요. 제꺽 쏘아제끼오.》 박인섭은 익숙한 솜씨로 배낭을 풀더니 탄띠에 탄알을 서둘러 끼워넣었다. 《동무, 제꺽제꺽 좀 섬기랑이. 가만, 내 이것 가지고 우선 쏠테니 그동안 이 탄띠에다 이렇게 좀 끼워놓소.》 정섭이에게는 그럴듯한 일거리가 생겼다. 따따따- 기관총은 신나게 불을 뿜었다. 명중률은 더없이 좋았다. 《또 새로운 패가 나타났소. 개자식들! 얼마든지 디밀어봐라. 오는족족 천당에 보내줄테니…》 박인섭이가 중얼거리는바람에 일손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니 아닌게아니라 바싹 다가붙었던 적들은 얼추 죽고 나머지 얼마 안되는놈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가는데 숲속에서 옆으로 길다랗게 늘어선 새로운 서렬이 숲으로 돌아섰다. 이번에는 군대복장도 경찰복장도 아닌 괴상하게 희끗희끗한 옷을 입은 대렬이였다. 《사격 그만! 쏘지 마시오. 인민들이요.》 몸집이 우람찬 지휘관이 이런 소리를 치며 저쪽으로 뛰여갔다. 삽시에 유격대진지에서는 사격이 멎어버렸다. 적들만이 멀리서 눈먼 총질을 해대며 다가왔다. 구불구불하게 천천히 접근해오는 그 서렬을 보자 정섭이는 눈을 한껏 부릅떴다. 자위대놈들과 경찰이 엇섞여있었다. 동네사람들과 처서판로동자들을 방패막이로 앞장에 세운놈들은 그뒤에 숨어서 어서 나가라고 인민들을 밀치고 총탁판으로 내지르고 발길질을 하면서 바싹바싹 좁혀들고있었다. 《스즈끼로구나!》 정섭이는 긴칼을 휘두르며 그중에도 악착하게 인민들을 내보는 적 지휘관놈을 보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저놈을 그저…》 그는 주먹으로 땅을 쳤다. 유격대가 사격을 멈추자 적들은 수가 났다고 공격속도를 높였다. 총창으로 인민들을 빨리 나가라고 떠미는것이 뚜렷이 바라보인다. 정섭이는 안타깝고 분하여 사격을 멈춘 유격대원들을 번갈아 돌아보며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서둘러댔다. 《이거 야단났군.》 옆에서 조진범이 정섭이의 어깨를 잡아눌러놓고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정말 야단이우다.》 박인섭이도 격분에 치를 떨며 중얼거렸다. 그 다음 침묵이 흐른다. 정섭이는 더는 참을수가 없어 벌떡 일어났다. 누구에겐가 안타까이 호소를 하고싶은 심정이였다. 그의 이런 심정에 대한 대답인듯 뒤쪽 풀밭너머에서 호탕하게 웃으시는 사령관동지의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정섭이는 깜짝 놀라 도로 주저앉았다. 사격을 멈춘 유격대원들이 모두 사령관동지만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아무 특별한 일도 없다는듯이 지도만 들여다보신다. 적의 총소리가 높아졌다. 꽥꽥 고아치는놈들의 호령소리도 들려왔다. 인민들을 빨리 나가라고 내모는것이다. 이윽고 눈길을 드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엇을 보셨는지 서둘러 쌍안경을 눈으로 가져가시였다. 그이께서 초점을 맞추시는 곳을 어방짐작으로 바라보던 정섭이는 거기서 또다시 스즈끼를 발견하였다. 그놈은 칼끝을 한 아낙네의 등에 대고 내밀면서 다른 손을 휘둘러 졸병들을 내몰고있었다. 《저놈을 그저!》 정섭이는 다시 허리를 솟구려 하였다. 그러는것을 박인섭이가 적삼자락을 잡아당겨 눌러앉혔다. 《악착한놈이요. 누가 쏘아버리시오.》 노하신 사령관동지의 명령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성큼 앞으로 나서시였다. 《제가 쏘겠습니다.》 《좋소, 정확하게 단발로 갈기시오.》 《알았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앞을 가리는 풀대를 헤치고 엎드리시였다. 언덕우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묘준은 오랜 시간을 끄는듯하였다. 칼끝에 등을 찔리여 비틀비틀 걸어오는 방패막이 아낙네뒤에서 어찌다가 몸을 드러내군하는 놈을 한순간에 쏘아눕혀야 하는 어렵고도 복잡한 사격이기때문에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되는 일이고 바로 그래서 보는 사람들의 가슴은 더 타는것이였다. 마침내 침묵에 잠기였던 언덕우의 무거운 공기를 뒤흔들며 한발의 총소리가 울렸다. 유격대진지가 잠잠해있으니 마음을 놓고 옆에서 꾸물거리는 졸병놈을 발로 걷어차려던 스즈끼는 그대로 하늘을 걷어차며 뒤로 번져졌다. 《야-》 정섭이는 저도 모르게 환성을 질렀다. 《허허허, 정숙동무가 역시 사격을 잘합니다. 자, 그럼 우리는 다음 행동으로 넘어갑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미 그 일은 잊어버리신듯 드넓은 전장을 굽어보시며 통쾌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보시오. 저게 아마 저놈들의 마지막 공격력량인것 같습니다. 이제 다른곳에서 또 황급히 긁어모아가지고 달려오겠지만 그것은 벌써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본력량은 이미 소멸되였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손을 들어 가리키시는 대홍단 넓은 버덩에는 각색 《토벌대》들이 한데 어울려 죄여드는 적의 공격서렬이 바라보이고 그뒤로 어수선하게 파헤쳐진 진펄에 왜놈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구겨박혀있었다. 증산기슭의 나무들도 란도질을 당한듯 마구 헤쳐지고 부러져 널렸는데 그밑에도 적의 시체들이 한벌 덮여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여느때와 같이 지휘관들과 전사들에게 전투의 국면들을 리해시키시려고 차근차근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처음에 7련대 뒤를 따라오던놈들이 아마 이 일대에 제일 먼저 진출한놈들 같습니다. 그놈들은 얕은 꾀를 써서 우리의 진지를 돌파해보려다가 오히려 매복에 걸려 완전히 소멸되였습니다. 그 뒤로 달려든놈들이 혜산방향에 나갔던 적들의 기본력량인것 같습니다. 놈들은 우리 정면에다가 허위목표를 세워놓고 소수력량으로 아군을 견제하면서 주력을 우회시켜 우리를 포위하려고 하는것부터가 만만치 않은놈들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의 기도를 미리 간파하고 오히려 적들을 역포위하여 소멸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저렇게 인민들을 탄알받이로 삼고 아군의 방어선을 돌파해보려고 악착하게 날뛰고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군대라는것이 저 지경으로 타락하여가지고는 그 어떤 전투도 진행할수가 없습니다. 저놈들은 이제 종국적으로 소멸되고말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까마귀무리처럼 소란스럽게 떠들며 죄여드는 적들을 눈아래 굽어보시며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가 엄숙한 어조로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크게 이겼습니다. 무산지구전투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불패의 위력을 보여주었을뿐아니라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총화한 뜻깊은 전투입니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이 묵중하게 울리자 지휘관들과 유격대원들은 자기들이 방금 치른 격렬한 전투의 국면들을 다시한번 되새겨보면서 그 모든 국면들에서 자신들이 체험한 정신적흥분과 전투행동들이 사령관동지의 령활한 전법에 의하여 커다란 위훈으로 빛나게 되였다는것을 새삼스러운 감동속에 느끼는것이였다. 스즈끼가 얻어맞는바람에 잠시 주춤했던 적들은 유격대방어진에서 더는 사격을 하지 않으니 또다시 덤벼치며 달려왔다. 넓은 대홍단벌에 보이느니 적들이요, 들리느니 총소리였다. 적의 서렬은 꼬리를 물고 련달아 내달아와서 벌판에 차고넘치다못해 숲속에서도 비비적거리였다. 《허허허, 이제 보시오. 우리가 여기서 슬쩍 몸을 빼면 빈 버덩만 차지한놈들이 어지간히 놀랄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일부 력량이 이 증산기슭에서 가볍게 총소리를 울려주면 놈들은 불가피하게 인민들과 분리되여 그쪽으로 쏠릴것입니다. 그 순간을 리용하여 7련대는 인민들을 뒤로 빼고 적을 배후로 타격하시오. 8련대와 경위중대, 독립대대는 매복진을 치고있다가 7련대의 배후타격과 때를 같이하여 일제히 공격하시오. 그러면 저놈들을 여기서 포위섬멸할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갑시다. 혹 뒤늦게 달려오는 놈들이 있을수 있지만 그놈들은 아마 제놈들끼리 골받이를 할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전투만 잘 결속지으면 무산지구로 기여든 놈들을 거의다 소멸하게 됩니다. 그만하면 우리 속도 좀 풀리고 인민들도 시원해할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두만강을 넘어가서 다시 총소리를 높이 울리면 인민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포위섬멸전을 잘 결속해야겠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죄여드는 적진을 굽어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지휘관들에게 각 구분대들이 차지할 계선과 철수지점, 로정들을 짚어가시며 하나하나 설명하시였다. 《마지막으로 떠날 유인조는 될수 있는대로 적들이 바싹 다가온 다음에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적들의 혼란이 더 커질수 있습니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이 끝나자 각 부대들은 여태 차지하고있던 계선을 강철룡이가 지휘하는 유인조에 내주고 재빨리 이동하였다. 별안간 유인조의 기관총들이 세차게 불을 내뿜었다. 그것은 적들의 넋을 빼놓기 위한 위협사격이였다. 그때문에 적들은 유격대진지에서 일어난 변화를 눈치챌 겨를이 없었다. 놈들은 잠잠하던 둔덕에서 갑자기 기관총소리가 울려오니 인민들을 앞장에 내세우고 빨리 나가라고만 다그쳤다. 그러다가 둔덕계선에 거의 이르자 그 기관총소리마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마침내 유격대가 전투를 단념했는가? 적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공격속도를 높이였다. 놈들은 유격대진지를 제먼저 돌파해보겠다고 제법 용감하게 접어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돌격선에 이르자 너무나 조용한 물자작버덩이 오히려 무시무시하게 느껴져서 한동안 망설였다. 공격서렬의 밀도는 엄청나게 조밀해졌다. 탄알받이로 내세운 인민들도 마구 죄여드는 각색 《토벌대》서렬속에 휘말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유격대가 자기들때문에 사격을 안한다는것을 진작 깨닫고있었기때문에 혼란이 일어난 틈을 타서 뒤로 빠졌다. 적들도 이제는 유격대진지까지 다 왔기때문에 될수록 앞에 나서려고 비벼댔다. 마침내 한놈이 만용을 부려 돌격함성을 지르며 등성이로 치달아올랐다. 그러자 공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른 서렬도 일제히 유격대방어진을 향하여 치달아올랐다. 동쪽에서 공격하던놈들은 서쪽으로 꿰고나가고 서쪽에서 공격하던놈들은 동쪽으로 꿰고나가 마주오던놈들이 서로 엇갈려돌아가며 총질을 하고 칼부림을 하였다. 그러나 유격대는 한사람도 없었다. 놈들이 휴지장 하나 남아있지 않는 빈 버덩을 보고 너무나 기가 막혀 펄쩍펄쩍 주저앉는데 별안간 증산기슭에서 총소리가 자지러졌다. 《유격대다!》 주저앉으려던놈들은 불에 덴것처럼 벌떡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총소리 울리는쪽으로 앞을 다투어 달려나갔다.
탄알받이로 끌려나온 인민들은 어쩔수 없이 따로 떨어져 대홍단벌기슭의 숲속에 몸을 숨기고 마치 수많은 물줄기가 동이 터진 곳으로 쏠리듯
엄청난 수효가 되여 멀어져가는 왜놈들의 모양을 살을 떨며 바라보고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