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18 회 )

 

×

 

김일성장군님을 모신 신사동막바지 강로인네 귀틀집에는 툭 터지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웃간에는 강로인과 물동지기령감, 《이시가와구미》의 좌상령감같은 로인들, 혁명군의 지휘관들 그리고 신개척에서 강로인과 함께 고생하다가 놓여난 사람들과 만호가 들어앉고 정지간에는 주로 봉식이며 태호또래 젊은 패들이 서로 무릎우에 올라앉을 지경으로 모여들었다. 추녀끝에는 어디서 얻어왔는지 남포등을 매달았는데 마당과 골목은 아이들 세상이였다.

정섭이의 어머니는 부엌에 나섰다. 그는 그렇게 뺑대같이 서글퍼보이던 몸에 갑자기 젊음이 되살아난듯 장군님께 저녁을 지어올리겠다고 살궁에서 함지박을 다 내려놓고 가달박을 들고 돌아갔다. 여기에 동네 아낙네들과 유격대 녀대원들이 모여들었다. 봉식이네 아주머니, 삼수집어머니, 물동지기령감네 로친, 모두가 함지에 고사리며 도라지, 오가리따위들을 불구어들고 달려왔다. 정지간은 아낙네들로 넘쳐나고 모랭이, 함지, 토장그릇따위들이 부엌바닥에 널렸다.

《아주머니들, 이러시면 안돼요. 장군님의 식사는 우리가 지을테니 어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은 구들에 올라가서 이야기들이나 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령부의 작식도구를 들고오셨다가 놓을데가 없는 형편이라 웃음을 머금고 말씀하시였다.

《앙이, 우리가 어째 구들에 올라가겠습메. 산에서 고생하던 혁명군들이 쉬여야지. 장군님의 저녁은 우리가 짓겠으니 날래 구들에들 올라가우다.》

물동지기령감네 며느리가 이러며 김정숙동지의 작식도구를 빼앗으려들었다. 그러자 철구아주머니가 좀 엄하게 말했다.

《장군님께서 식사를 동네사람들에게 준비시킨줄 아시면 우리가 욕을 먹는답니다.》

《참, 별소리 다 하우야.》

하고 본시 좀 더퍼리인 봉식이 처가 맞받아쳤다.

《우리가 평생 한번 장군님 저녁을 대접하자는데 간이 없어서 욕먹었다면 몰라라 누구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고 욕먹겠슴메.》

도무지 막무가내였다.

하는수없이 유격대 녀대원들과 동네아낙네들이 한데 어울려 장군님의 진지를 지었다.

아낙네들은 저마끔 제집으로 뻔질나게 달려가고 달려오고 그래도 모자라서 《쌍가매야.》, 《막동아.》하고 아이들을 불러대여 고추장단지를 가져오라, 들깨가루를 가져오라 하고 소리쳤지만 이렇다하게 상에 올릴만 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새삼스럽게 자기들의 가난이 원망스러워 차츰 말수더구가 줄어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런 아낙네들을 달래며 우리 장군님께서는 기름진 음식이 아니라 깨끗하고 정성이 담긴것을 좋아하신다고 하면서 장군님께서 제일 바라시는것은 자신께서 잘 잡수시는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같은 가난한 조선사람들이 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게 될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오는것이라고 차근차근히 깨우쳐주시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배낭에서 자그마한 보자기 하나를 꺼내시였다. 동네아낙네들의 눈길은 절로 거기에 쏠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말은 비록 그렇게 하시지만 그래도 장군님께 올릴 무엇인가 색다른 음식을 마련해가지고 다니는가부다 하고 생각하는 눈치들이였다.

그런 눈치를 채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음을 머금으시고 차근차근 보자기를 헤치시였다.

파란 산나물무지가 나타났다. 연록색의 야들야들한 풀빛은 음침한 겨울과 가난의 그늘이 짙게 깔린 부엌바닥에 산뜻하고 향기로운 봄의 향취를 몰아왔다.

《앙이, 이게 청취가 아니요?》

봉식이 처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쳐 나물을 어루만졌다.

《어디서 이렇게 산나물을 벌써…》

아낙네들은 저마다 감탄의 소리를 지르며 한줄기씩 가져다 들여다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한다. 아닌게아니라 쌉쌀하고 향긋한 봄냄새가 풍겨왔다.

《청취가 옳아요. 저 대홍단벌에 많더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미 정성스럽게 다듬어놓은 나물무지를 헤치시고 한줄기한줄기 알뜰하게 손질을 하면서 말씀하시였다.

《지금 모두 없는 살림에 먹을것이 뭐 있겠어요. 그런데 산에 가면 양지쪽에는 벌써 산나물이 이렇게 좋아졌어요. 이 취로 나물을 무친다든가 쌈을 싸면 얼마나 맛이 있는지 몰라요. 이런 맛은 돈있는 부자놈들도 맛볼수 없는거예요.》

《그러채이쿠. 나물이사 여북 맛있는 나물이게. 헌데 혁명군새애기.》

하고 물동지기령감의 로친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장군님께서도 이런 산나물을 좋아하시나?》

《그럼요. 장군님께서는 이런 신선한 나물은 다 좋아하신답니다. 그저께도 베개봉에서 무수해를 무쳐드렸더니 얼마나 달게 드셨는지 몰라요. 아마 오늘 저녁도 여러 어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이런 구수한 토장에다 이렇게 파릇파릇한 산나물을 무쳐드리면 기뻐하실거예요.》

《하기는 정성이 여북해야지…》

아낙네들은 김이 서리는 컴컴한 부엌바닥에 파랗게 떠오르는 산나물과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장군님을 모시는 혁명군녀전사의 그윽한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였다.

《우리도 변변한 찬은 없지만 장군님을 받드는 우리 마음을 정성스럽게 괴여보자구요.》

정섭이의 어머니가 새힘을 얻은듯 이렇게 말하며 새물을 길어오겠다고 항아리를 이고 나섰다.

한편 웃방에서는 장군님께서 상한 사람들을 골고루 돌보시고나서 만호의 으깨여진 무릎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씀하시였다.

《모두 어혈이 졌습니다. 겉으로 난 상처는 곧 아물겠지만 어혈이 진것은 좀 오래갈수 있습니다. 어혈이 진데는 두부가 약인데… 참 군수관동무, 그놈들의 창고에 콩은 없었소?》

《있습니다. 그놈들의 창고에 별의별것이 다 있습니다.》

조진범은 신명이 나서 대답을 올렸다.

《그러면 그 콩을 이 집에 좀 나누어주시오. 그리고 외상에 쓸 약도 좀 구해보시오.》

《알았습니다.》

장군님께서 눈길을 돌리시니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찬 토방가에 경섭이가 맨발로 나와서서 장군님을 바라보며 입을 비죽거리고있다. 장군님께 안기고싶은데 너무 사람이 들어차서 발을 옮겨놓을수가 없으니 그러는 모양이였다.

《경섭이로구나. 자, 이리 오너라.》

장군님께서는 일부러 몸을 일으키시며 경섭이를 안아다 자신의 무릎우에 앉히시였다.

《장군님, 옷 마추겠습니다. 저런놈이…》

강로인이 당황하여 손자를 떼내려 하자 경섭이는 장군님의 가죽띠를 꼭 잡고 다리질을 하였다.

《허허허, 일없습니다. 두어두십시오. 아이들을 안아보는것이 내 소원입니다.》

그러시면서 옆에 앉은 만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딴데로 말씀을 돌리시였다.

《참 악착한놈들입니다. 바른 말을 한마디 했다고 이렇게 사람을 때리니 분해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장군님, 저는…》

만호는 더듬더듬 갑자르다가 겨우 말씀드리였다.

《저는 매를 좀 맞았지만 장군님을 뵙게 되여 더 좋습니다.》

《허허, 나도 동무를 만나니 반갑소. 그러나 앞으로는 매를 맞을것이 아니라 그놈들과 싸워야 합니다.》

《장군님.》

하고 강로인이 벽에 기대였던 몸을 일으키며 정중히 말씀드리였다.

《이 사람이 말은 좀 투박하게 했지만 그것이 모두 우리 조선사람들의 마음이올시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의 파리한 손등을 쓸어주시며 잠시 생각하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우리 조선사람들의 힘이 결코 작은것이 아닙니다. 뭉치기만 하면 오히려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을만큼 큰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모두 한탄만 하고 억압받고 천대받는것을 타고난 팔자처럼 생각하면서 맥을 놓고 앉아있을것이 아니라 일어나 원쑤들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 조선인민이 힘을 합하여 싸우면 반드시 해방과 독립을 찾을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무릎우에 앉아서 군모를 가지고 장난질에 정신이 팔려버린 경섭이를 이윽히 내려다보시다가 옆에 단정히 앉아있는 상철이를 돌아보시였다.

《여러분들뿐아니라 여러분들의 자녀들도 잘 교양하고 열심히 가르쳐서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하고 장군님께서는 상철이를 가리키시면서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이 소년은 부모도 없고 어린 나이지만 유격대에 들어와서 글도 한자두자 배우고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을 배워서 지금은 글도 잘 읽게 되였고 이처럼 나라를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고있습니다.

우리 조선인민이 모두 한마음한뜻으로 뭉치여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며 우리 자제들을 모두 이렇게 가르쳐서 훌륭한 투사로 만든다면 일본강도놈들이 제아무리 강한들 배겨내지 못할것입니다.》

마당에서도, 방안에서도 감격의 파도가 걷잡을수 없이 설레였다. 이때 목재판로동자들이 골목을 메우며 다시 쓸어들었다.

장군님께서는 경섭이를 강로인에게 넘겨주시고 옆에 있는 밥집으로 가시였다. 사람들은 더욱더 죄여들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신사동사람들이 다 모여든듯 마당과 골목에 넘쳐나는 군중들의 환호에 손을 높이 들어 화답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힘있는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하시였다.

《여러분!

우리는 또다시 조국에 진군하여 그립던 동포들과 이처럼 상봉하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렁찬 박수가 터져올랐다.

장군님께서는 다시 손을 높이 드시여 설레이는 군중들에게 화답하신 다음 조선인민혁명군과 인민들의 끓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적인 련계에 대하여 격조높이 말씀하시면서 혁명군을 지지성원하여준 인민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내시였다.

계속하여 일제의 악랄한 탄압과 략탈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전변된 조국의 현실을 펼쳐보이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과연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민족문화와 풍만한 자원을 가진 슬기롭고 용감한 우리 인민이 일제의 영원한 식민지노예로 되여야 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어이 침략자 일제를 내쫓고 조국의 광복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성스러운 혁명위업을 성취할수 있는 힘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선인민의 진정한 혁명무력인 조선인민혁명군을 가지고있는데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시면서 앞으로 일제침략자들은 조선인민혁명군에 의하여 기어이 소멸되고말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해설하시면서 그 강령이 실현될 앞날의 휘황한 전망을 펼쳐보이시였다.

《우리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서 밝힌대로 조국땅에 살기 좋은 인민의 나라를 수립하기 위하여 강도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조국의 광복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위업을 성취하기 위하여서는 전민족이 하나와 같이 반일전선에 굳게 결속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전민족이 반일전선에 하나로 뭉치자면 로동계급이 선봉이 되여 투쟁하여야 합니다. 로동계급은 조선민족의 가장 선진적인 부대입니다. 무산대중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반일전선의 선두에는 바로 당신들, 로동계급이 서야 합니다.》

장군님앞으로 부채살 모이듯 죄여들었던 처서판로동자들이 와- 하고 환호를 올리며 박수를 쳤다.

장군님께서 연설을 마치시자 마당끝에서 누군가가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반일혁명투쟁마당에 떨쳐나서자!》하고 구호를 웨쳤다. 그러자 온 집이 떠나가도록, 신사동과 온 산판이 들썩하도록 김일성장군님 만세의 환호성이 메아리쳤다. 장군님께서는 강로인의 권에 못이기시여 다시 정섭이네 집으로 오시였다.

 

×

 

정섭이는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간할수 없었다.

하늘에는 별빛이 총총하다. 또글또글하던 별빛들은 흐릿해지더니 엄청나게 커지면서 뿌옇게 흐려들었다.

다른 때 같으면 이렇게 서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다리고기다리던 유격대가 와서 그놈들이 꽁지가 빳빳해서 달아나는판에 이 꼴이 된것이 원통하였다. 이제 할아버지, 어머니, 동생은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갈것인가…

정섭이의 생각은 호철의 권총손잡이에 머리를 단단히 얻어맞아서인지 맥락이 닿지 않고 섞갈려있었지만 그자신은 그런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옆구리며 머리가 깨여져나가는것처럼 쑤셨다.

사지가 안아픈데라고 하나 없이 돌아가며 다 쏘고 쑤셨다. 그래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메아리와 같은 함성이 울려온다. 처음에는 그것도 무슨 소린지 짐작할수 없었다. 그러나 차츰 그 소리가 만세소리와 환호소리라는것이 뚜렷해지고 그것이 바로 신사동과 신개척에서 울려온다는것을 깨달았을 때 문득 아까 리호철이가 하던 말이 다시 생각나고 그 뜻이 뚜렷이 떠올랐다.

정섭이는 허둥지둥 일어나앉았다. 사방 쑤시고 아픈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움직일수는 있을것 같았다. 포승줄을 바위에 쓸고 팔목을 비틀고 해서 풀어던진 그는 벌떡 일어났다.

《나는 살아있다. 유격대가 왔다! 나는 살아났다!》

한순간에 온 천지를 다 그러안을것처럼 팔을 쳐든 정섭이는 이렇게 웨쳤다.

봉식이가 하던 말, 영창에서 만호가 들려주던 소문- 그것이 다 빈말이 아니였다.

《유격대가 왔다!》

왜놈들이 바로 이때문에 그렇게 미쳐서 돌아쳤던것이다.

그는 무작정 만세소리나는쪽을 향하여 산을 탔다. 걸음을 옮겨놓으면서 다시 살펴보니 어깨와 아래다리가 휘주근히 젖었다. 칼맞은 자리였다. 토스레우로 손더듬을 해보니 상처가 그리 깊은것같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피는 멈추어야 할것이였다.

정섭이는 풀밭에 주저앉아 잠뱅이자락을 찢어냈다. 마음이 급하여 대충 한바퀴 동이고 걸었더니 다섯걸음도 못가서 풀어져버렸다. 하는수없이 다시 주저앉아 이번에는 아예 푼푼히 한쪽가랭이를 다 찢어가지고 상처를 동이고나서야 절뚝절뚝 걸음을 옮겨놓았다.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이르러 그는 우뚝 멈추어섰다.

저게 신사동이 옳기는 옳은가? 온통 불이 환히 켜져 동네는 숲우에 둥실 떠있는듯하다. 그속에서 노래소리, 북소리가 두리둥둥 바람타고 날아온다. 명절날도 이렇지를 못하였다. 이 궁벽한 화전촌, 처서판에 명절이라는것이 있기나 했던가. 사실 유격대가 왜놈들을 물리치고 온 이날처럼 큰 명절이 어데 있겠는가.

정섭이는 상처의 아픔도 잊어버리고 허망에 빠져 딩굴고 나무에 걸채여 넘어지면서 단숨에 동네까지 달렸다.

불이 환한 골목에 들어서서야 제 주제가 사람들앞에 나설 형편이 못된다는것을 깨달았다. 한쪽가랭이는 아주 발가벗다싶이 된데다 불빛에 비쳐보니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있었다.

《이시가와구미》창고앞에서 녀대원들이 치마자락을 날리며 춤을 추는것을 잠시 서서 넋없이 바라보다가 어서 옷을 갈아입고 저판에 나가봐야지 하고 으슥한 뒤골목으로 돌아 동네끝에 있는 자기 집 문전으로 다가갔다.

《이건 또 어떻게 된거야?》

정섭이는 집 못미쳐서 다시 멎어섰다.

집집마다 불을 내걸었지만 그런중에서도 제일 밝고 제일 휘황한데가 바로 자기 집이였다.

어둠속에 숨어 기웃이 고개를 뽑아보니 활짝 문을 열어젖힌 웃간에 사람들이 앉아있다. 동네사람도 있고 유격대도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앉아있지 않는가. 만호형님도 있고 자위대영창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다 있다. 모두 풀려나왔구나. 아까 신개척에서도 만세소리가 울려오더니 그쪽에도 유격대가 간것이다.

정섭이는 같이 고생하던 사람들이 풀려나온것을 보니 불시에 눈굽이 뜨거워올랐다.

그는 기왕 이렇게 된바에는 이대로 유격대앞에 나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문앞으로 다가갔다.

《장군님, 그런 걱정은 말아주십시오. 그놈이 설마 죽기야 했겠습니까?》

할아버지의 말이였다. 정섭이는 또다시 가래나무 그늘아래 걸음을 멈추었다. 장군님이시라니… 그럼 할아버지와 마주앉아계시는 저분께서 바로 장군님이시란말인가.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바라보니 그분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나는 갇힌 사람들이 다 놓여났다니 그런줄로만 알았습니다. 손자 이름을 정섭이라고 했지요? 우리가 찾아보겠습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하시고 토방에 나서시였다. 할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이 우르르 따라 일어섰다.

정섭이는 그만 옆에 선 가래나무줄기를 안고 그 터실터실한 줄기에 이마를 비비며 어깨를 떨었다.

장군님께서 우리 집에까지 오시여 매를 쳐도 시원치 않을 이 말썽군의 이름을 외우시며 걱정을 하시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수 있는가.

(아, 장군님, 장군님.)

그는 마음속으로 장군님을 부르고 또 부를뿐 자기가 느끼는 이 크나큰 감동, 끝없이 샘솟는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똑똑히 분간할수 없었다.

다만 죽을번하다가 장군님 덕분에 살아났을뿐아니라 세상에 태여나서 단 한번도 느껴본적 없는 통쾌감속에서 하염없이 흘려보는 이 눈물이 곧 장군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뜯기고 짓밟히고 억눌리다가 마침내는 짹소리 한마디 지르지 못하고 원쑤의 손에 죽을수밖에 없는 가련한 조선사람들이 그렇게도 목마르게 기다리던 김일성장군님의 넓고 억세고 따사로운 품에 안긴 그 감동이라는것만은 똑똑히 깨달았다.

그는 두손을 벌리고 온 누리를 향하여 웨치고싶었다.

《보아라. 우리 조선사람들에게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신다. 우리 조선사람들을 수모하던놈들은 다 여기 나서라! 어디 한번 맞서보자!》

정섭이는 실지 장군님앞으로 나서려고 하였다. 한쪽다리를 발가벗었다고 꾸중을 하시면 곧 옷을 갈아입겠다고 사과를 드리면 될것이 아닌가. 그런데 피칠갑을 한것을 보시면 어떻게 한다? 머리를 만져보니 큼직한 혹까지 불거졌다.

정섭이가 잠시 가래나무 그늘에서 망설이는데 웬 지휘관이 달려들어온다. 경위중대장 오백룡이였다.

《사령관동지, 적들이 림철종점까지 다가왔습니다. 얼마전에 전초대동무들에게 얻어맞고 달아났다는놈들이 다시 대부대를 끌고 온것 같습니다.》

《이제야 나타났소?》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군님의 얼굴에는 방금까지 그리도 부드럽고 인자하게 느껴지던 모습우에 실로 한번 노하시면 산천초목도 땅바닥에 엎드린다는 기상이 내풍기였다.

그러나 이어 적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다 잊어버리신듯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시고 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몸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신 다음 경섭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 거듭 동네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골목으로 나오시자 유격대지휘관들이 그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장군님께서는 조용조용하면서도 우렁우렁하게 잘 울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타산한것보다 놈들의 기동속도가 좀 굼뜬것 같습니다. 아마 그놈들은 우리가 이렇게 빨리 신사동에 나타났다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아서 좀 꾸물댄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가 파놓은 함정으로밖에 찾아갈데가 없는놈들입니다. 저놈들을 계획대로 대홍단벌로 끌어내시오. 이 새벽에 우리 조선사람들의 한을 풀어야겠습니다. 우리가 그립던 동포들을 만나 반갑게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웃기도 하였지만 억울하게 짓밟히고 매를 맞아 험하게 갈라진 그 상처를 볼 때 치가 떨려 견딜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조선인민혁명군이 총을 들고있는 한 그 어떤놈도 우리 조선사람들을 건드리지 못한다는것을 놈들에게 똑똑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장군님의 말씀은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처럼 부드럽게 웃으시던 장군님께서 가슴깊이 품고계시던 서리발찬 분노의 분출이고보니 삽시에 사위가 얼어드는듯 숭엄해졌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인민들과의 사업을 잘 결속지어야겠습니다. 적들은 이미 우리 낚시에 걸려들었으니 우리가 끄는대로 끌려올것입니다. 그러니 은밀하게 신사동을 출발하여 예정된 계선을 차지하고있다가 적을 무리로 섬멸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얼마후 노래와 춤도 멎었다.

사령관동지의 명령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은 바람과 같이 어둠을 누비며 대렬을 지었다. 어느새 로획물자들은 다 꾸려져서 대오마다에 배정되였다.

한오리 흐트러지지 않는 이 정연한 군사행동에 약간한 혼란을 준것은 어떻게나 장군님을 돕고 혁명군을 돕겠다고 로획문자를 빼앗아지고 따라나선 인민들과 작별이 아쉬워 멀리까지 따라나온 동네 늙은이들, 아낙네들때문에 인사를 두번, 세번 거듭 나누지 않으면 안된것이였다.

정섭이는 비로소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것을 깨닫고 집으로 달려들어갔다.

《어머니, 나 잠뱅이 하나 주오다.》

혁명군을 배웅하러 나가던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놀라서 정섭이의 어깨며 머리를 어루만지며 무엇인가 물었으나 그는 외마디소리를 몇마디 내던지고 제절로 어머니의 웃보퉁이를 와락와락 잡아헤쳤다.

《원, 저런 덜퉁한놈이 어데 있나. 장군님께서 제놈때문에 그렇게 걱정하시는것도 모르고… 어서 옷을 갈아입혀서 내보내라. 떠나시기 전에 내가 장군님께 저놈이 돌아왔다고 말씀올려야겠다.》

할아버지는 지팽이를 질질 끌며 유격대가 지나가는 골목길로 허둥지둥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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