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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16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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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섭이의 사건은 처음에 이 사건을 턱없이 과장한 리호철이와 스즈끼의 말이 삼장경찰서를 통하여 그대로 올라갔기때문에 복잡해졌다. 조선인민혁명군이 무산지구로 진출한듯 한 눈치를 뒤늦게 채고 유곡방향으로 이동해온 기무라경부보는 강정섭이가 붙잡힌 그날로 당장 자기에게 넘기라고 전화를 해댔다. 그것을 거절하자 다음날은 사까이경시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고 자위대 중대장은 경찰이 해야 할 일에 쓸데없이 나서지 말라고 스즈끼를 추궁하였다. 중대장은 포태리근방까지 나갔다가 부랴부랴 돌아와서 붉은바위, 농사동일대에 중대를 전개시키고있었다. 어쩔수없이 강정섭이를 경찰의 손에 넘기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이제는 밸풀이도 그만큼 하였으니 그것들을 데려가서 삶아먹든 데쳐먹든 띠끔할것이 없었다. 그러나 윤원구네 일행은 이제는 사건과 관계가 없으니 한시바삐 국경을 넘겨보내야겠는데 경찰에서 압수한 도강증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강정섭이를 넘겨주고 이 문제를 아퀴지어야겠다고 호철은 생각하였다. 지금 영창에는 정섭이와 할아버지, 그리고 신사동 《이시가와구미》의 만호외에 《호리모도구미》에서 역시 만호처럼 검척때 감독놈과 맞선것때문에 붙잡혀온 벌목부가 두사람, 자위대식량을 싣고가던 말파리를 진창에 굴려서 쌀이랑 밀가루를 못먹게 만들었다는 말파리군령감이 한사람 해서 도합 여섯사람이 갇혀있었다. 영창이래야 말만 요란했지 실상 그것은 가마니, 새끼퉁구리, 바줄따위를 넣어두던 자그마한 헛간같은 현장창고였다. 자위대에서 쓰게 되면서 대충 걷어내가느라고는 하였으나 지금도 헌 가마니짝들과 북데기, 새끼타래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바닥은 맨땅이고 벽, 천장 할것없이 몽땅 나무로 무은 귀틀이다. 창문이라는것은 하나도 없고 여느 집보다는 좀 클가말가한 문조차 연목감나무로 무었다. 해빛이라고는 귀틀틈새기로 새여들어오는것뿐이였다. 흐린 날은 그나마 없어져서 해가 뜨고지는것도 료량할수 없었다. 정섭이는 그래도 몸이 든든한 만호가 옆에 붙어있어서 한결 의지가 되였다. 더구나 만호는 밥집에서 했다는 유격대소식을 꽤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반절구에서 건너온 친구를 만났는데 장군님께서 유격대를 이끄시고 반절구로 쳐들어오시자 대낮같이 환하던 보름달이 갑자기 캄캄해졌다는것이였다. 적들은 장군님의 신출귀몰한 전법에 우들우들 떨기만 하다가 맞아죽고 찔려죽고 하였다. 장군님께서 떠나시자 또다시 보름달이 환하게 비치였다. 이렇게 천지조화를 임의로 하시는 우리 장군님이시니 저 악독한 왜놈들을 언젠가는 시원히 쳐눕혀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주실것이다. 이러한 만호의 말은 영창안사람들에게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을 더 북돋아주었다. 그는 지금도 강로인의 팔을 말없이 주무르고있었다. 정섭이는 가랑가랑 담이 끓는 할아버지의 숨소리를 지켜보며 입을 다물고있었다. 자기가 붙잡히면 할아버지는 놓아줄줄 알았는데 벌써 이틀째 내보내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여기서 숨을 거둔다면 어떻게 하는가? 자기의 고통은 충분히 각오하고 왔지만 눈앞에서 자기때문에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본다는것은 참을수 없는 고통이였다. 정섭이는 자기의 무력이 분하고 원통하였다. 《할아버지, 물이라도 좀 마시지 않겠소다?》 너무 숨이 가빠하는것 같아 우그러든 양은그릇에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는 물을 숟가락에 떠들며 말하였다. 할아버지는 힘겹게 눈을 뜨고 천천히 도리질을 하였다. 《물을 드시우다, 물이 아직 많수다.》 만호도 옆에서 권했다. 물이 몹시 귀하다. 매를 맞고 들어와서는 갈증이 나서 여섯사람앞에 우그러든 양은그릇으로 하나밖에 안주는 그 물을 약마시듯한다. 《나는 괜찮당이…》 강로인은 힘겹게 입을 떼더니 정섭이쪽을 돌아보며 한숨처럼 이었다. 《내 걱정은 마오. 이 못난놈을 두고는 내가 쉬 죽을수도 없소, 에끼! 못난놈같이…》 강의한 로인은 정섭이가 잡혀들어온 때부터 벌써 몇번이나 되풀이한 그 욕설을 퍼부었다. 숨이 간간한 지금에도 로인의 기상은 엄하였다. 그러면서도 정섭의 이마에 난 험한 상처를 보고는 한참씩 뚫어지게 살펴보다가 가벼운 한숨과 함께 외면하군 하였다. 어둑시그레한 창고안인데다 눈빛이 흐리여진 로인에게는 그 상처가 가슴만 긁어줄뿐 똑똑히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정섭이는 할아버지의 화들화들 떨리는 손을 붙잡고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 잘못했소다. 할아버지, 기운을 차리시오다. 이제는 다시는 이런 일 저지르지 않겠소다.》 《못난놈! 제발로 찾아오다니…》 로인은 중얼거리듯 한마디 하고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정에 끌리지 않자는것이였다. 자물쇠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리였다. 문이 열려서도 별로 밝아지지 않는것을 보아서는 날이 이미 저문 모양이다. 《강정섭이 나와!》 전날 필네를 잡아오던 하늘소같이 생긴 스키모가 소리쳤다. 《우리 아이는 어째 찾는거요?》 하고 강로인이 방금전과는 딴 사람같이 기상이 꿋꿋해서 먼저 일어나앉았다. 당나귀는 아무 소리도 못듣는척하고 곧장 강정섭이에게로 뚜벅뚜벅 다가가 어깨를 잡아일으켰다. 그리고는 옆구리에서 포승줄을 꺼냈다. 여느날과는 벌써 잡도리가 달랐다. 《어쩌자는거요? 어디로 데려가오?》 만호가 함께 묻어일어나며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일어났다. 《이것들이 왜 이래? 죽고싶은가?》 능란한 솜씨로 정섭이에게 오라를 지운 하늘소는 창고안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네 이놈 정섭아!》 강로인은 거적우에 단정하게 일어나앉더니 엄한 소리로 불렀다. 《암만해도 네 걸음이 보통걸음이 아니다. 아무데 가서나 사람구실을 똑똑히 해라. 할애비나 에미보다 사람의 도리가 중하니라.》 하늘소는 스키모를 밀어제끼더니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사람의 도리가 중해? 령감이 엄살을 피우더니 말은 잘하는군. 교수대에 매달려서 꼿꼿이 뻗는게 사람의 도린가? 가자!》 정섭이는 영창문으로 떠밀려나가면서 웨쳤다. 《할아버지, 몸조심하시우다. 우리 할아버지를 부탁하오다…》 하늘소가 걷어차는바람에 정섭이의 말은 중단되였다. 만호가 왁살스럽게 닫기는 문짬으로 입을 내대고 소리쳤다. 《걱정 말라구, 할아버지는 우리가 돌볼테니…》 막막한 어둠이 좁은 영창안에 숨가쁘게 들어찼다. 남은 사람들은 문가에 선채로 움직일념을 못했다. 거적우에 단정히 틀고 앉았던 강로인이 별안간 캄캄한 천장을 우러러 채머리를 떨며 울부짖었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김일성장군님, 내 손자를 살려주십시오.》 서있던 네사람도 모두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바깥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김일성장군님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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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낱같은 초생달이 두텁게 깔린 구름짬을 누벼나갔다. 산촌은 으스레 밝아졌다가는 갑자기 캄캄해지군 하였다. 편벌장에서 호리모도며 《이시가와구미》의 도감독과 마주서서 무슨 이야긴가 나누고있던 리호철이가 피우던 담배를 그대로 휙 내던졌다. 담배불은 어둠속에 빨간 포물선을 긋더니 물동다리밑에서 꺼져버렸다. 그놈은 자전거를 뻗치고 정섭이를 기다리고있는중이였다. 《리상, 수고하겠소.》 호리모도가 한잔 걸쳤는지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그놈 아예 천당에 보내주라니까.》 도감독이란놈은 딱따구리지팽이로 정섭이의 등을 쿡 지르고는 껄껄 웃었다. 그놈들은 《호리모도구미》사무실쪽으로 멀어져갔다. 리호철이가 자전거를 돌려세우며 하늘소에게 말했다. 《내 한걸음 먼저 갈테니 토벌대로 곧장 가지 말고 유곡작업소 사무실에 먼저 들리라구. 사무실에 없으면 무산옥에 있을테니…》 하늘소는 포승줄을 쥔 손을 바지주머니에 지른채 고개를 끄덕해보였다. 수라에 넘치도록 물이 그득 고인 물동가에서 정섭이는 걸음을 멈추었다. 물속에서 별들이 마치 영섭이의 눈처럼 해죽해죽 웃는다. 편벌장에는 새벽에 띄울 모양인 떼들이 조용히 흐느적거리고있다. 수라짬으로 새여나가는 물소리가 주절주절하는것이 꼭 뜻있는 속삭임소리 같다. 정섭이는 본능적으로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편벌장에는 사람그림자 하나 없고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봉식이는 어데 갔는가? 이밤에는 물동지기령감도 자리를 뜬 모양 막막한 숲만 물속에 어리여있다. 정섭이는 묵묵히 물동다리를 건넜다. 차라리 누구의 눈에도 띄우지 않는것이 좋을는지 모른다. 이꼴을 하고 묶여가는것을 누가 보았다면 그길로 집에 알려지겠는데 가뜩이나 편치 않으신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실것인가. 정섭이는 고개를 떨구고 걸었다. 《이사람.》 오돌오돌 떨리는 목소리가 물동막에서 울려온다. 물동지기령감이다. 역시 사람이 영 없지는 않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까닭없이 눈굽이 찡해졌다. 로인은 허둥거리며 스키모를 쓴놈의 눈치를 살폈다. 《이게 이사람 옷일세. 전날 여기다 벗어두고 간건데… 입혀보내도 일없겠지?》 하늘소는 로인이 펼쳐든 처서군 큰저고리자락을 아래우로 훑어본다. 정섭이가 보니 봉식이가 입고가라던 그 큰저고리다. 《안돼, 손을 묶었는데 어떻게 입힌단말야.》 《걸치구라도 가게 해주오.》 《안된다는데…》 하늘소는 로인을 밀쳐버렸다. 《할아버지, 일없소다. 봉식이에게 내 인사나 전해주오다.》 《그럼 이거라도…》 로인은 덤비며 큰저고리주머니를 더듬더니 감자 두개를 꺼냈다. 《그게 뭐야?》 《감자요, 삶은 감잔데…》 《저리 비켜! 시간이 없다는데…》 하늘소는 이번에는 정섭이를 밀쳤다. 《이사람아, 입을 벌리게, 한개라도…》 로인은 옆에 붙어서서 정섭이의 입에 감자 한알을 밀어넣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정섭이가 비칠거리는바람에 감자는 데그르르 굴러나서 수라밑에 떨어지고말았다. 가는 파문이 일고 물속에 어리였던 쪼각달이 이지러졌다. 《죽일놈같으니…》 이렇게 중얼거리며 큰저고리를 한손에 드리운채 물동가에 맥을 놓고 서버린 로인의 모습은 오히려 묶여가는 정섭이보다 더 외롭고 더 서글퍼보였다. 정섭이는 끝없이 주절거리는 소홍단수를 따라 그냥 머리를 푹 숙이고 걸었다. 두지바위동네가 나타났다. 동네를 지나 얼마를 못 가서 흡사 뒤주와 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그 바위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있었다. 저우로 올라가면 영섭이에게 돌배를 따주던 그 돌배나무도 있다. 하늘소는 포승줄을 잡아챈다. 사람눈에 뜨이는것을 그놈도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정섭이 역시 이제는 그 누구가 봐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빨리 걸을 생각도 없어서 여전한 걸음으로 10여호 되는 동네를 한번 돌아보지 않고 지나쳤다. 초저녁인데도 불 켠 집 하나 없이 캄캄하다는것만은 어쩐지 가슴아프게 느껴졌다. 도룡봉마루가 저만치 바라보이는 버덩에 나섰을 때 앞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리였다. 하늘소는 본능적으로 정섭이를 나무그늘에 밀어넣고 저는 권총을 뽑아들었다. 가까이 오는것을 보니 리호철이였다. 자전거는 어디다 쥐여뿌렸는지 맨몸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온다. 달려오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는 꼴이 무엇에 쫓겨온 모양이다. 《웬일이시오?》 하늘소가 길로 나서며 물었다. 리호철은 흠칫하고 멎어서더니 우선 《국민복》단추를 다 끄르고 숨을 태웠다. 가슴이 골풀무처럼 씩씩거리며 오르내린다. 그 짬짬으로 토막토막 찢어던지는것 같은 말마디들이 새여나왔다. 《유격대다!… 대부대다! 산으로… 소리를… 소리를 내지 말고…》 《뭐요?》 하늘소는 유곡방향을 피끗 돌아보고나서 대들듯이 물었다. 《벌써 왔단말이요?》 《왔다, 왔단말이다. 내가 뭐라던가…》 호철은 벌써 풀밭을 헤치고 산턱으로 들어가며 술주정뱅이처럼 말했다. 《그럼 자위대로 가야 할것 아니요?》 《자위대쪽으로 가면 죽는다. 유격대가 지금 그리로 가는것이 틀림없다. 이리 와!》 하늘소는 정섭이의 포승줄을 끌고 자신없는 걸음으로 몇걸음 따라갔다. 리호철은 정신없이 한참 산으로 올라가다가 무엇을 보았는지 다시 흠칫 멎어섰다. 도룡봉마루가 벌써 기울어지려는 초생달빛아래 우렷이 떠올랐다. 그우에 총을 든 사람들이 서있었다. 저 아래쪽 길도 보이는데 껑충하게 선 전주대에 웬 사람이 올라가는것이 훤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호리모도구미》목재판으로 통하는 전화줄이다. 《야- 쫙 덮였구나.》 《경찰이 아닐가요?》 하늘소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미타한 소리로 말하였다. 《정신빠진 소리 하지 말아라. 네놈은 공산당을 그렇게 겪고도 몰라? 저것 봐라! 전화줄이 끊어진 모양이다.》 하늘소는 어둠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건만 리호철이가 륙감으로 느끼는 그 모든것이 의심할나위가 없다는것을 깨닫고 우들우들 떨기 시작하였다. 리호철의 눈길은 정섭을 지켜본다. 도적고양이처럼 빛을 뿌리는 그 눈은 살기를 뿜고있었다. 정섭은 본능적으로 몸을 가드라뜨리고 숨을 죽였다. 리호철은 잠시 생각하더니 하늘소를 눈짓으로 불렀다. 무엇을 수군거린다. 《…총소리를 내면… 소리도 못치게…》 이런 말마디들만 가까스로 들려온다. 정섭은 막다른 골목이라는것을 깨닫고 아래우를 살펴보았다. 나무라도 빽빽하면 좋겠는데 여기는 전날 화전을 일구다가 산불이 나서 앙상한 강대만 듬성듬성 남아있을뿐이다. 하늘소가 별안간 포승줄을 힘껏 잡아채더니 한손을 쳐들었다. 비칠하고 앞으로 어푸러지는 순간 그놈의 손에서 비수가 번쩍하는것이 보이였다. 《악-》 면바로 목을 겨누었던 칼은 정섭이가 넘어지는바람에 빗나가서 어깨를 찔렀다. 정섭이는 꼬꾸라지려는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옆으로 돌아섰다. 두손을 다 결박당했으니 이놈들에게 꼼짝 못하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맥하게 칼을 받고있을수는 없었다. 하늘소가 재차 달려드는 순간 정섭이는 몸을 날려 그놈의 아래배를 걷어찼다. 칼은 넙적다리 어방을 째고 허공에 날아났다. 그놈은 벼랑에 뒹굴었다. 호철이가 권총손잡이로 정섭이의 정수리를 힘껏 내리쳤다. 정섭이는 다시한번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뒤로 번져졌다. 하늘소가 일어나서 칼을 찾았다. 《야! 저것 봐라! 저쪽에서도 온다, 뛰여라!》 두놈은 쓰러진 정섭이를 한번씩 힘껏 걷어차고 산으로 올리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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