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14 회 )

 

19

 

어디라없이 풋내가 떠돈다. 꽃냄샌지 풀냄샌지 분간되지 않는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콕 찌를듯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모두 코날개를 벌름거리며 그 냄새를 량껏 들이마셨다. 5월의 다양한 해빛이 따뜻이 내리쬐여 노르끼레한 석비레의 모래가 깔린 정갈한 행군길은 포근한 맛을 자아냈다.

유격대원들은 연신 코날개를 벌름거리며 숲속을 더듬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온갖 새가 지저귄다. 숲속을 누비고 하늘을 가르며 종횡무진으로 날아다닌다. 그것들도 꽃냄샌지 풀냄샌지 모를 그 알싸하고 향긋한 풋내에 취해서 그렇게 우짖으며 돌아치는지 모르겠다.

아름답다. 이 신선하고 그윽한 향기, 싱싱한 빛갈, 조화 그리고 포근하고 살뜰한 느낌을 어떻게 말했으면 좋으랴.

유격대원들은 《야- 저 새!》《야- 저 구름!》하고 외마디소리를 지를뿐 자기들이 느끼는 그 감동을 표현하지 못했다. 모두 입은 웃고있었으나 눈들은 자꾸만 슴뻑인다.

꿈결에도 잊지 못하던 조국이 이처럼 아름다운데 대해서 새삼스럽게 경탄하였다.

벌어질가말가 망설이며 해님의 눈치라도 보듯 하얀 꽃잎이 가느다랗게 배죽이 내민 은방울꽃의 도톰한 망울이 고비, 고사리의 덤불 한옆에 줄줄이 드리워있다. 그우에서는 아가위 역시 해빛이 눈에 부셔 차마 바로 뜨지 못하겠다는듯 제 열매모양의 망울을 드리우고있다.

벼랑에는 들나리, 길에는 냉이, 길짱구- 눈에 뜨이는 모든 나무, 모든 풀이 꽃을 간직하고있다.

이제 며칠이면 만발할것이다. 아마도 조선인민혁명군의 장엄한 총소리가 이 땅에 메아리칠 때 그것들은 짝자꿍을 치며 춤을 추듯 활짝 벌어질것이다.

삼지연은 갓 짜놓은 비단필과 같이 찬란하였다.

파란 호수를 배경으로 피여오르는듯 한 이깔나무의 신록이 줄무늬를 놓았는데 연분홍빛 진달래가 기슭에도 피여나고 물속에도 어리여 눈부신 색채의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야-》

유격대원들은 휴식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호수가로 달려갔다. 이쪽 호수에서 저쪽 호수에로 줄달음치듯 돌아가는 동무가 있는가 하면 부석으로 이루어진 백사장가에 넙적 엎드려 코잔등을 적시며 뼈속까지 얼어드는듯 한 물을 숨도 안쉬고 들여마시는 동무도 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혜산과 무산방향에서 들어오는 길에 각각 한개분대의 감시조를 파견하시는 한편 《갑무경비도로》와 그 주변에 정찰을 내보내시고나서 정찰조원들이 돌아올동안 휴식하면서 간단히 점심도 치르고 또 앞으로 100리어간은 물이 없으니 이 맑은 물을 실컷 마시고 가자고 말씀하시였다.

점심요기들을 한후 모두 기껏 물을 마시였다. 그리고는 야전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넣었다. 그러나 잠시가 못되여 그 물을 쏟아버리고 또 새 물을 채운다.

박덕산은 마치 들놀이에 온 아이들처럼 물탕을 튀기고 뜀박질을 하고 모래불에 서로 그러안고 뒹구는 대원들의 모습을 한옆으로 바라보며 슬금슬금 혼자 걸었다.

누가 옆에 와서 집적거릴가봐 일부러 입을 꾹 다물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속이 근질근질한게 누구와 씨름이라도 한번 안아보고싶지만 체면상 그럴수도 없고 또 대상이 될만 한 적수도 없다. 오중흡이를 만나서 좀 이야기라도 나누고싶었으나 원체 꼼꼼한 사람이라 또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7련대주변을 몇번이나 지나며 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럴바에는 혼자 슬쩍 빠져나가서 그놈의 《갑무경비도로》를 먼저 봐두는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 지휘관회의에서 그렇게 열을 올려 론쟁을 벌리던 일이며 자기가 체험한 뼈아픈 자책감을 생각할 때 사령관동지께서 놈들이 새로 닦아놓은 《갑무경비도로》로 대낮에 행군하여 일행천리동정하자고 하시던 그 말씀이 지금도 우뢰처럼 머리를 치는것이였다.

덕산은 행복하였다. 그리고 온몸에 자부심이 뿌듯하도록 넘쳐났다. 그러는 한편 도무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정찰조가 나갔고 감시조가 배치된것만큼 별일은 없겠지만 이제 곧 사령관동지를 그 길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할 때 더구나 궁금증을 누를수 없었다. 그러나 경비도로에 나간다는 눈치만 보이면 그 누구든 또 줄줄 묻어나올수 있기때문에 일부러 찌뿌드해서 걷자니 마음이 자꾸만 들떠지는게 훌 회파람이라도 불어질것 같아서 장히 참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큰길에 접어들었다.

덕산은 교차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과연 곧게는 내뻗었다. 길을 닦기도 잘 닦았다. 포장을 안했달뿐이지 바닥이 석비레판이라 저 큰 도시의 아스팔트길 못지 않다. 이러한 길이 300리나 뻗어있는것이다.

덕산은 처음 한동안 주변을 경각성있게 살펴본 다음 별다른 정황이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확인하자 아까부터 힘들게 다물고있던 입을 히죽이 벌렸다.

《네놈들이 보천보를 얻어맞고 너무 혼이 나서 이 길을 닦기 시작했다더니 그만하면 길은 괜찮게 닦았다. 헌데 이 길로 우리가 먼저 네놈들을 치러 갈줄은 몰랐겠지.》

덕산은 혼자 소리내여 말하고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저편 길가에 별로 꺼져들어간듯 한 곳이 눈에 띄여 서둘러 다가갔다. 바투 가서 보니 유난히 패운것 같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비가 오면 물이 좀 고일것 같았다.

《길도 더럽게는 닦았군.》

덕산은 두팔을 옆구리에 척 짚고 아래우를 살펴본 다음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꼼꼼히 길도 살피고 길가의 이깔나무숲속을 샅샅이 훑어보며 천천히 무산방향으로 걸어나갔다. 한참을 올라가니 강철룡이가 한개분대의 감시조를 데리고 경계근무를 서다가 놀라서 다가왔다. 그는 의례 련대정위가 순찰을 나왔거니 생각하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보고를 하였다. 덕산은 방금까지 입가에 떠돌던 웃음을 싹 거두고 근엄한 표정으로 보고를 받았다.

《무슨 정황이 없소?》

《개미새끼 한마리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좀 이상한데요. 이렇게 좋은 길에 사람그림자 하나 볼수 없으니…》

강철룡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의논조로 말했다.

《그야 그럴수밖에 있소? 어제밤회의에서 사령관동지께서 다 말씀하시지 않았소? 개통을 아직 안했으니 인민들은 다니지 못하게 하지, 그런데 왜놈들은 지금 정신이 숲속에만 쏠려있고 또 우리가 밤에 움직이려니 생각해서 지금쯤 어디서 낮잠이나 자고있을지 모른단말이요.》

《허참, 기가 막힌 일이지요.》

강철룡도 덕산이와 무슨 이야기를 좀 나누어봤으면 하는 눈치를 보이며 옆차기에서 담배쌈지를 꺼내자고들었다.

《그래도 동무네는 경각성을 늦추지 말고 잘 살피란말이요.》

덕산이는 말을 많이 했다가는 지금 자기 심중에 깊이 간직하고있는 그 어떤 소중한것이 어쩐지 그런 말속에 다 새여나갈것만 같아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짓고 감시조앞을 지나쳐갔다.

길은 여전히 곧게 열려있다. 자동차가 마주어길만큼 넓은 길이다. 굵지도 가늘지도 않는 노르스름한 모래가 차분히 깔려서 다양한 해빛에 반짝거린다.

길 좌우에 늘어선 이깔나무의 연두색 신록이 길우에까지 비치는듯하다.

《네놈들이 우리를 잡겠다고 만들어낸 바로 그 총을 빼앗아서 네놈들을 치라고 우리 장군님께서 근 10년전에 말씀하셨지. 그래 지금도 네놈들은 네놈들이 만들어낸 총으로 얻어맞고있는데 아직도 그 맛을 몰라서 오늘은 또 이렇게 우리가 갈 길까지 닦아놓았군. 에- 너절한놈들, 그러다가는 밥 빌어서 죽도 못쒀먹겠다.》

성미가 어진 덕산이로서는 상당히 모진 욕이나 한것 같이 생각되여 기분이 후련해서 활개짓을 하며 척척 길한복판을 걸어가는데 구붓하게 휘여들어간 저끝에서 웬 사람그림자가 얼씬하였다.

덕산은 얼른 몸을 숨기려다가 멎어섰다. 찬찬히 보니 오중흡이다. 어디까지 갔다오는지 소풍이나 나온듯 몸가짐이 여간 흥그럽지 않다.

박덕산은 《으흠-》하고 턱을 한번 끄떡거린다음 길가에 소리없이 퍼더앉아 오중흡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특별히 몸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될수록 눈에 잘 뜨이지 않게 숨을 죽이고 앉아서 오중흡의 거동을 살폈다.

과연 그것은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였다. 그렇게 무게있고 빈틈이 없으며 언제나 대오의 앞장에 서서 자신의 모범으로 사령관동지의 뜻을 받들어나가는 7련대장 오중흡이가 저렇게 10대소년처럼 놀아날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오중흡은 혼자 나지막하게 코노래를 흥얼흥얼하다가 돌멩이를 하나 발견하더니 아이들 망돌차기하듯 한발을 쳐들고 툭 걷어찼다. 그것이 아마 견준 방향으로 제대로 안갔는지 재빨리 따라가서 이번에는 반대쪽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슬쩍 찬다. 이번에는 너무 조심을 해서 그런지 거의나 나가지 않았다. 오중흡은 한쪽 다리를 들고 한참 겨냥을 하여 좀 세게 툭 찼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돌은 발딱 일어서며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그르르 돌다가 길옆으로 굴러떨어져버렸다. 오중흡은 집요하게 돌멩이를 쫓아갔다. 그러다가 주의력이 분산되기 쉬운 소년들처럼 주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머리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정신이 팔려버린것이다. 오중흡은 불시에 새를 잡을 생각을 한 모양으로 한참 빤빤한 길우를 더듬다가 집어들만 한것이 없으니 방금 쫓아가던 돌을 찾아쥐고 멋지게 돌팔매질을 한번 하자고 하는데 새 두마리가 먼저 눈치를 채고 포르릉 날아나버렸다.

오중흡은 돌멩이를 겨누어든채 날아가는 새를 분한듯이 바라보며 고개를 돌린다.

박덕산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하여 고개를 숙였다. 무릎옆으로 살펴보니 할일없이 손에 쥐인 돌을 멀리 날아간 새쪽으로 집어던진 오중흡은 문득 길우에서 삭정이토막을 발견하고 그것을 길밖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또 무엇이 없는가 해서 주위를 살핀다. 아마 가며오며 길에 무엇이 널린것이라도 있으면 그렇게 깨끗이 거둔 모양 덕산이가 새삼스럽게 자기 주변을 돌아보아도 검부레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덕산은 어쩐지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오중흡이라 하면 조선인민혁명군의 주력부대 지휘관으로서 적들치고 벌벌 떨지 않는놈이 없다. 사실 사령관동지의 비범하고 신출귀몰한 전략전술을 몸으로 받들어나가는 그가 겪어보지 않은 위험이 없고 당해보지 않은 고생이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사령관동지의 새로운 전법이 나올 때마다 그 의도를 제일 깊이 리해하고 그것을 온몸에 끓어넘치는 환희로써 받들어나가는것이다. 《갑무경비도로》로 백주대낮에 일행천리하라는 사령관동지의 명령이 내렸을 때 너무나 뜻밖이면서도 너무나 기묘한 그 전술적타산에 경탄한 나머지 기쁨에 겨운 자기 마음을 묵새길길이 없어 저렇게 홀로 즐기고있다는것을 자신의 마음을 통하여 거울처럼 비쳐볼수 있는 덕산이였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오중흡이가 어디서 주어들은 막대기를 휘휘 내저으며 다가오자 오히려 마주 일어서기가 난감한것을 느꼈다.

어쩐지 자기가 엿본것을 눈치채면 오중흡이가 면구해할것도 같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어지럽혀서는 안될 곳에 발을 들이민듯 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오중흡이 먼저 이쪽을 발견하고 곧 평소의 그 고정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무슨 정황이 있습데?》

덕산은 오중흡이 그렇게 멀리까지 홀로 걸어갔다온것은 의례 적정을 살펴보기 위한 순찰이라는것을 자기는 다 안다는듯이 심상한 어조로 물었다.

《없습데.》

오중흡은 더 좀 그럴듯한 대답을 찾아낼만 한 여유가 없는지 단마디로 받아외웠다. 그러자 이쪽도 좀 멋적게 되여 다시 그 말을 받아외웠다.

《없습데?》

《없습데.》

《아무것도?》

《아무것도.》

그제야 덕산의 눈에 오중흡이가 쥐고있는 막대기가 띄였다.

《그 막대기는 어디서 났소?》

《이 막대기말이요?》

한동안 무슨 말인가 해서 얼떠름해있던 오중흡은 자기가 쥐고있는 막대기를 쳐들어보더니 별것을 다 묻는다는듯이 심드렁해서 대답했다.

《저기서 주었소. 왜 그러오?》

《사람두,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줄 아오.》

박덕산은 오중흡의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동무의 심정을 모를것 같아서 그러오.》

두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것을 확인하자 별안간 와락 그러안고 어깨를 두드리다가 서로 마주보고 눈을 슴뻑거리며 껄껄 웃었다.

위대한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그이의 품에서 함께 자라며 살아도 죽어도 오직 혁명의 한길에 충성을 바쳐나가는 기쁨과 자랑이 사선을 수없이 헤쳐온 두사람의 무쇠같은 가슴을 감동의 눈물로 젖게 하는것이였다.

 

×

 

삼지연못가에서는 아직도 짝짜그르르 떠드는 녀대원들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물가에 앉아 무엇인가 씻고 빨고 하더니 서로 머리를 빗어주고 꽃을 꽂아주고 하면서 호수에서 떠나기를 아수해한다. 방금 세수들을 하였는데 잠시후에는 또 소매를 걷어올린 손끝에서 맑은 물을 연신 털며 귀밑머리를 쓸어넘기고 턱밑을 문지르고 한다.

마침내 녀대원들도 물가에서 떠났다. 진달래가 무더기로 피여난 꽃그늘속에서 그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홀로 꽃그늘에 앉아서 방금 채운 야전물통의 물을 기슭에 쏟아버리고 새 물을 다시 채우시였다. 콜록콜록하고 수통아가리에서 소용돌며 들어가던 물이 꼴깍 하고 넘쳐나자 잠시 쳐들었다가 다시 물속에 잠그시였다. 장군님께 조금이라도 더 맑은 물을 올리기 위하여 출발직전까지 물속에 채워두고싶으시였다.

물통을 잡고계시는 손이 짜릿하도록 차고 생신한 기운이 번져왔다. 그것은 삼지연의 덞지 않은 기품같이도 느껴지셨다.

김정숙동지의 눈길은 어느사이에 백두산봉우리를 더듬고계시였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어서시였다.

장군님께서 천천히 삼지연기슭을 거닐고계시였다. 장군님의 뒤로 백두산은 흰 메부리를 구름속에 절반쯤 감추고 장엄하게 솟았는데 지금 장군봉아래 천지에서는 한창 바람이 뒤설레이고 안개가 피여오르는듯 서리발같은 흰 띠구름이 하늘높이 타래치며 솟구쳐오르고있었다.

그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시였다.

세상에서 김일성장군님을 백두산장수라고 부르는것은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바람사나운 민족수난의 력사우에 조선혁명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어리신 나이에 홀로 싸움길에 나서시여 오늘은 마침내 일제 100만대군과 온갖 사대망국풍조를 발아래 굽어보시며 천하를 호령하시는 장군님의 기상이 그대로 백두산의 그 장엄하고 숭고한 모습에 어리여있는듯하였다.

그래서 이 땅은 삼지연못가에 이렇게도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피우고 거울같이 아름다운 풍치를 수놓아서 백두산이 주인을 맞이한 이 뜻깊은 날을 기념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조국인민들의 죽지 못해 살아가는 참담한 처지를 생각할 때 장군님을 민족재생의 태양으로 모시게 된 행복감이 가슴가득히 차올라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새 눈시울이 축축히 젖어드시였다.

장군님을 모시지 못했다면 조선사람들의 앞날에 언제 번할 날이 있을것이며 무슨 희망을 가지고 오늘의 이 고생을 참고 견디여나갈것인가.

장군님께서는 어느새 가까이로 모여드는 대원들에게 둘러싸이시였다. 호탕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그이의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일구월심 장군님을 기다리는 우리 인민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이께 아름다운 꽃다발을 엮어 올리고싶으시였다. 그래서 탐스럽게 피여난 가지들을 골라 진달래꽃을 꺾으시였다.

가지가지 추억이 떠오르시였다. 올케와 함께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터로 달려가던 생각, 나물하러 갔다가 호젓한 산기슭에 피여난 진달래를 꺾어 어머니 몰래 등뒤에 감추어 다가가서 고생속에 세여버린 흰머리가 가리우게 꽂아드리던 일, 동생 기송이가 배고픔에 못이겨 철쭉꽃을 뜯어먹고 배를 앓던 일- 지나간 세월 피맺힌 한과 뼈아픈 설음이 갈피갈피 스며있는 그 어둠침침한 생활속에서도 꽃은 피여있었다.

물통을 호수에 채워놓은채 추억에 잠기여 한가지 두가지 진달래를 꺾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숨가쁘게 달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드시였다.

순간 그이께서는 심장이 뚝 멎는듯한 충격을 받으시였다. 방금 가슴을 후벼주던 기송이가 나팔을 메고 달려오는것이다.

한손을 쳐들고 《누나-》 하고 소리쳐부르는 그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옥죄였던 마음을 스르르 늦추시였다. 그것은 상철이였다. 신호수가 어디로 갔는지 나팔까지 척 메고보니 신통히 기송이를 련상시키는데가 있었다.

《누나 여기 있는걸 수태 찾았네.》

《장군님 모시지 않고 왜 왔어요?》

《장군님께서 정찰나간 동무들의 점심을 준비해두었다가 돌아오면 인차 식사를 시키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요? 다 준비해놓았다고 장군님께 말씀드려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도톰하게 부풀어오른 봉오리가 방금 벌어질것 같은 꽃가지 하나를 골라 상철이의 군복웃주머니에 꽂아주며 웃으시였다.

《나도 다 해놓았을줄 알았어요. 그런데 누나.》

하고 상철이는 돌아서려다 걸음을 멈추고 눈을 반짝거렸다.

《휴양소라는거 어떻게 하는건지 알아요?》

《그건 무슨 말이예요?》

《아까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이담에 혁명이 승리한 다음 여기다 휴양소를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그런데 휴양소라는거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그래요.》

《나도 잘은 모르겠어요.》

하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께서 휴양소를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던 푸른 물결 남실거리는 못가를 굽어보시였다.

《그걸 지금이야 장군님 아니시고 누가 똑똑히 알 사람이 있겠어요. 우리 나라에 언제 휴양소라는게 있어봤어야 그게 어떤것인지 짐작이라도 할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는 그런것이 다 들어가있어요. 언젠가 장군님께서 10대강령 제9조를 해설하시면서…》

김정숙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진달래꽃덤불 저쪽에서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터지더니 녀대원들이 몰려왔다.

《여기 있었구나.》

《정말 오누이같네.》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며 덮칠듯이 달려드는 녀대원들을 보고 상철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입을 비쭉 내밀며 두덜거렸다.

《야, 과연 드살도 세구나.》

《아니 뭐 어쨌어요? 아이구 요렇게 깜찍한게 벌써 어른흉내를 내네.》

채옥이가 손벽을 딱 치며 눈을 흘기더니 다짜고짜로 상철이의 귀를 비틀어올렸다.

《자, 바른대로 대요. 여기서 무슨 이야기했어요?》

《아야, 이거 놓지 못할테야! 야- 귀 떨어지네.》

상철이가 엄살을 피우며 채옥이의 팔을 비틀었다.

《안댈테야,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혼자 들었어요?》

《이야기하게나 하구선 이 야단이야, 막 재미있는 이야기하자는데 접어들구선…》

두사람이 이러고있는데 옥금이랑 철구아주머니랑 벌써 김정숙동지를 둘러싸고 앉았다.

《자, 부산을 피우지 말아요. 그래 장군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옥금이가 정색해서 묻는바람에 상철이와 채옥이도 서로 마지막으로 눈을 한번씩 흘기고 싱갱이를 그치였다.

《흥, 우리도 다 들었다나.》

채옥이는 상철이를 향하여 이렇게 한마디 약을 올려주고는 김정숙동지의 무릎앞에 바싹 다가앉으며 말했다.

《언니, 우리도 거기서 휴양소라는게 어떻게 하는델가 하고 이야기들을 하다가 언니를 찾았댔어요. 글쎄 장군님께서 여기다 휴양소를 짓자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게 어떤겐지도 모르니 한심하지 않아요. 철구아주머니는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휴양소라는데는 혁명투쟁이랑 일이랑 많이 한 사람들이 늙어서 자식들이 없을 때 이렇게 조용하고 경치좋은데다 집을 짓고 푹 쉬우면서 거두어주는델거라고 했어요. 언니, 그게 옳아요?》

《쳇, 락후한 소리만 하네.》

꽃나무뒤에 서있던 상철이가 말같지도 않다는듯이 퉁을 놓았다.

모두 손벽을 치며 까르르 하고 바스러지는 소리를 내였다. 철구아주머니당자도 허리를 잡고 꺼이꺼이 갑자르며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웃음이 북받치여 견딜수 없으시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가슴이 징하니 젖어드시였다. 세상에 녀자의 몸으로 태여났지만 언제한번 녀자답게 아늑한 집안이나 구들에서 살아보지 못하고 오직 혁명을 위하여, 로동자, 농민이 주인된 새 사회를 세우기 위하여 청춘시절을 다 보내고있는 동무들이였다. 눈속에 딩굴고 숲속에 굶으면서 총을 그러안고 한지잠을 잘 때 이네들이 그려본 미래의 내 나라는 그렇게도 아름답고 훌륭하였지만 그 사회는 오늘의 참담한 현실과는 너무나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때문에 휴양이란 말자체의 뜻을 딱히 가늠하기 어려워하는것이다.

《정말 철구아주머니가 말하는 그런데도 장군님께서 꼭 세워주실거예요. 허지만 휴양소란 그런데가 아닐것 같아요. 장군님 말씀을 들어보면…》

김정숙동지께서는 겨우 웃음이 가라앉자 철구아주머니의 터갈라진 손을 끌어당겨 다정히 쓰다듬으며 꿈꾸듯 말씀하시였다.

《앞으로 우리가 세우게 될 나라에서 주인은 로동자, 농민인데 그러니까 우리모두가 주인이 아니겠어요. 그때는 모든 권리가 로동자, 농민에게 있단말이예요. 그런데 그 권리가운데는 선거하고 선거받을 권리라든가 정치활동이나 사회활동을 한다든가, 언론, 출판, 집회를 하는 권리뿐아니라 누구나 다 배울 권리, 치료받을 권리, 일할 권리가 있고 또 누구나 쉴 권리가 있다는거예요.》

《아니 쉴 권리도 있다나? 쉬는것도 권리가 되나?》

철구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쉬는것이 왜 권리가 아니겠어요.》

하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측은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보세요. 철구아주머니가 이렇게 험하게 손이 터갈라지도록 우리 혁명을 위해 싸웠는데 이것은 우리가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는것이 우리 나라와 우리 인민의 자유를 위한 떳떳한 길이고 또 누구도 막을수 없는 권리라는것을 깨달았기때문에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숱한 방해가 있었지만 다 물리치고 싸움의 길에 나서지 않았어요. 이 다음에 우리 조국이 해방되면 우리는 또 새 사회를 위하여 누구나 힘껏 일하고싶어질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학습에서 배웠지만 로동자, 농민에게 일할 권리가 없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아무리 일을 하고싶어도 일할데가 없어서 실업자가 우글거리고있어요. 그대신 겨우 일자리에 붙어있는 사람들은 하루에 열다섯시간, 열여섯시간, 어떤데서는 스무시간이상 고역에 시달리다가 죽어간다지 않아요. 얼마나 쉬고싶겠어요. 허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쉴 권리가 없기때문에 죽기 전에는 쉴수가 없는거예요. 장군님께서는 로동자, 농민이 행복하게 잘살 참된 인민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벌써 10대강령에다 8시간로동제를 실시한다는것을 밝히시고 로동조건을 잘 지어주며 임금도 많이 줄뿐아니라 로동자의 여러가지 보험법을 실시한다고 규정하시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더 많이 일을 하고 오래 살자면 알맞춤하게 일할뿐아니라 푹 쉬기도 해야 할것이 아니겠어요. 생각해보아요. 만일에 우리가 하루에 8시간씩만 딱딱 일하게 되면 나머지시간에 공부도 하고 얼마든지 푹 쉬기도 할것 아니예요.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그렇게 쉴뿐아니라 1년에 한두번씩 나라에서 돈을 대주면서 학교아이들이 방학하듯 목으로 쉬우기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정말 실컷 일하고나서 그렇게 쉬게 되면 얼마나 즐겁겠어요. 그건 정말 꿈같은 세상일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여러날을 한꺼번에 쉬게 되면 밤낮 자기가 살던 고장에만 있고싶지는 않을거예요. 아이들이랑 데리고 나들이도 가고싶고 또 금강산이나 한나산같은데도 가고싶고 경치가 좋다는 곳마다 찾아가보고싶지 않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가보고싶어하고 놀기도 좋은, 경치좋은 곳마다 우리 로동자, 농민들이 모여서 푹 쉴수 있는 곳을 짓게 되는데 그런것을 휴양소라고 한대요.》

《아이구 황송해라. 그냥 쉬는것만도 모자라서 경치좋은 곳마다 찾아다니겠구만…》

철구아주머니가 너무 기가 차서 한숨처럼 중얼거렸으나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채옥이도 상철이도 눈을 슴뻑거리며 어딘가 먼곳을 바라보고있었다. 저마다 머리속에 무엇인가를 그리고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그 황홀한 새 세상을 세우기 위하여 장군님을 모시고 헤쳐온 피어린 싸움의 길일수도 있었다. 혹은 장군님께서 구상하고계시는 그 꿈과 같이 아름다운 새 사회에로 뻗어있는 간고하고도 영광스러운 혁명의 길일수도 있다.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조국땅에 와보니 우리가 장군님을 모시고 그렇게 훌륭한 조국을 건설할 그때가 바로 눈앞에 닥친 일같지 않아요. 그날을 생각하면…》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수집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뒤를 이으시였다.

《우리가 바친 희생도, 겪은 고생도 하나 아깝지 않고 앞으로 닥칠 어떤 시련도 두렵지 않아요.》

《정말 그래요. 장군님의 그런 훌륭한 뜻을 받들고 싸우다가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어요.》

옥금이가 맞받아 부르짖었다.

《우리모두 더 잘 싸우자요. 불쌍하게 살아가는 우리 조선사람들이 이런데 와서 휴양을 하게 되다니… 나는 그런 앞날이 있다는것만 생각해도 힘이 솟는구만.》

철구아주머니는 눈을 슴뻑슴뻑하며 남자들처럼 석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름할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가슴마다에 차고넘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진달래꽃포기에 볼을 대이고 조용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시였다.

 

이십세기 용감한 녀성투사들

문명한 활무대에 나서 싸우자

 

모두다 눈물이 글썽해서 그 노래를 따라불렀다.

 

로동자와 농민의 자유해방은

무산자의 굳고굳은 단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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