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13 회 )

 

17

 

필네는 불과 한시간전에 그렇게도 마음을 다잡고 걷던 그 길을 허탈에 빠져서 걸음마다 비틀거리며 되돌아왔다. 소홍단수기슭의 좁다란 오솔길에 나서니 채양버들가지가 옷자락을 잡아채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놓기도 하였다. 그래도 손 한번 움직이고싶지 않았고 몸을 피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애초에 무엇이 자기 몸을 건드린다거나 발부리에 무엇이 걸채인다는 느낌부터 떠오르지 않았다. 하늘에는 종다리가 높이 떠서 울었다. 자유로이 내리꽂혔다가 가맣게 솟구쳐올라서는 목청껏 울어대는 그 새가 부러웠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는 필네의 눈굽에는 저도 모르는 사이 물기가 핑 하니 어리였다.

그 하늘소같은놈한테 떠밀리여 이 길을 갈 때까지는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스러웠지만 떳떳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호리모도구미》현장창고에는 면상에 반창고를 붙인 자위대 소대장도 있고 눈과 코가 퍼렇게 부어오른 리호철이도 있었다.

《네가 강정섭이때문에 삼장에서 모두 끌려온것을 알면서도 그 집에 갔단말이지?》

하고 리호철은 어금이속으로 씹어뱉듯이 사납게 웅얼거리고 자위대 장교놈은 격검채로 책상을 땅- 하고 내리쳤다.

《강정섭이 련락을 갔댔지?》

그럴즈음에 투박하게 무은 창고문이 쩡하니 열리더니 정섭이가 성큼 들어섰다. 그가 나타나자 방안에 우글거리던 모든 놈들이 마치 무서운 사람이라도 맞다들린듯이 황급해 돌아가며 쩔쩔매였다.

자기 역시 얼마나 놀랐던가. 할아버지가 잡히고 금천동으로 가던 일행이 몽땅 도강증을 떼운우에 자기까지 끌려온것이 모두 정섭이때문이였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틀림없이 놈들의 눈에 단단히 덧난것 같은 그가 잡히지 말기를 바라며 자기들의 고통을 참고있지 않는가. 그런데 본인당자가 제발로 나타나고보니 그처럼 긴장하여 뻗치고 섰던 아래다리가 매시시해나며 떡심이 풀렸다.

정섭이가 나타나자 필네는 뒤전으로 밀려났다.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쫓기다싶이 문밖에 나서고보니 허무한 생각이 났다.

정섭이는 바로 이렇게 되기를 원해서 제발로 그 무시무시한 곳에 나타났을것이다. 생각하면 그의 마음속도 알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동무들을 생각해서… 혹시는 내 생각도 해서 그렇게 제몸을 위험앞에 내댔을것이다.

그럴수록 필네는 분하였다. 그 호철이와 자위대 장교놈이 정섭이에게 복수하려고 지지고 볶을 생각을 하면 걸음이 걸려지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을 위하는 길이 그렇게 할길밖에는 없단말인가.

그 원쑤같은놈들을 쳐눕히고 사람들을 빼낼수는 없단말인가.

이제 정섭이가 붙잡혔으니 도강증을 내줄것이고 할아버지는 놓여날것이다. 그러나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도강증을 찾는다 하더라도 이 마음을 안고 그대로 이 한이 맺힌 땅을 떠날것 같지도 않았다.

힘들게 산을 넘어 신사동으로 내려오니 해가 기울어졌다. 저녁바람이 분다. 구새통들에서 꾸역꾸역 연기가 피여오르고 아이를 불러들이는 아낙네들의 목소리가 울리여온다.

검부레기가 날려다니는 정섭이네 집 마당에 들어서니 썰렁한 랭기가 떠도는것이 사람 사는 집같지 않았다.

그러나 마당에서 인기척이 나자마자 정지문이 열리였다.

《누가 왔소?》

이런 병약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이어 경섭이가 빠끔히 바라보더니 《누나다!》 하고 달려나왔다.

어머니도 맨발바람으로 허둥지둥 뛰여나왔다.

《에그, 일없이 나왔구만. 그래 욕을 보지는 않았나?》

경섭이를 그러안고있던 필네는 어머니의 숨가쁜 물음에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욕은 무슨 욕을 보겠어요? 죄가 있어야지요.》

《죄야 그놈들이 만들면 죄지. 내가 필네를 보내놓고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더니 이제는 마음이 좀 놓이는군. 어서 들어가자구. 혹시 할아버지를 보지는 못했나?》

어머니는 먼저 방안으로 들어가다가말고 물었다.

《만나보게 하지 않아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무고하신것 같아요.》

《에그, 그만해도 다행이지.》

아직 아들이 붙들렸다는것을 모르는 녀인은 필네가 무사히 나온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상한 얼굴에 그나마 활기를 띠였다. 그는 서둘러 오지화로에 겨릅대를 찔러 불을 붙이더니 아직도 토방에서 서성거리는 필네를 어서 들어오라고 독촉했다.

필네는 잠시 망설이다가 구들에 올라섰다. 어쩐지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실컷 울고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생각할 때 그럴수도 없었다. 선채로 둘러보니 빤한 등불아래 휑뎅그렁한 방안모습이 떠올랐다. 그제는 아래웃방에 사람이 그득했고 또 영섭이 생각에다 아이들에게 볶이노라고 미처 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방안이였다. 이제 모두 죽고 잡히고 한끝에 병든 어머니와 나어린 아들 하나가 남고보니 그 오돌막같던 귀틀집이 별로 휑하고 쓸쓸해보였다.

등디에 불을 켜자 어머니는 밝은 얼굴로 돌아앉았다.

《할아버지가 잡혀가셨지, 이 애 형은 어디로 튕겨났는지 모르지, 그런데다 필네까지 끌려가니 무엇을 끓일 생각이 나더라구. 마침 앞집에서 죽 한그릇을 가져왔길래 이 애를 먹이고 그냥 한끼를 굼때자고 했더니 필네를 보니까 나도 시장하구만. 조금 기다리라구. 우리 이제 감자를 쪄먹자구.》

《어머니, 나는 아무것도 먹고싶지 않아요.》

《먹고싶어서만 먹나. 아침에 나섰다는게 여태 굶었겠지. 내가 입맛 덧난대로 하면 아마 굶어죽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모진 마음을 먹고 어떻게든 살아갈 궁리를 해야지.》

《그럼 여기 앉아계셔요. 내가 찌겠어요.》

《에그 좀 앉아있으라는데, 오늘 종일을 돌아다니고 그놈들 단련을 그만큼 받고 또 무슨 기력이 남아있겠다구…》

필네는 어머니가 서두르는것을 보니 기가 막혔다. 아들이 잡혔다는것을 알려주면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을것 같았다. 감자를 찌겠다는것도 더는 말릴 힘이 없었다.

하는수없이 둘이 나란히 아궁앞에 앉았다. 정지구석에서 싹을 도려낸 감자 한바가지를 물함지에 쏟아놓고 숟가락날로 껍질을 벗기였다.

《그때 영섭이가 구운 감자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왔더구만. 하칠소의 누나가 구워주더라구. 처음에는 제 동생녀석에게도 나누어주고 인심을 쓰더니 한참후에는 또 무슨 심술이 났는지 싸움질을 벌려놓고… 에그, 그녀석이 집에 있기만 하면 소란도 피우더니 이제는 집안이 이렇게 적적해졌구만.》

새로 살라넣은 장작이 피면서 불빛이 수척한 녀인의 얼굴에 어룽어룽 진한 음영을 지어놓았다.

《어머니, 편치 않은 몸으로 이 고생을 어떻게 겪겠어요?》

필네는 시름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별수 있나, 할아버지만 무사히 놓여나면 감자나 묻어놓고 그럭저럭 싹트기를 기다려야지. 그녀석은 지금쯤 어디에 가있는지…》

어머니가 불시에 숟가락 놀리던 손을 멈추고 정지문밖으로 어두운 밤하늘을 내다보는바람에 필네는 무슨 죄나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어머니는 인차 생각을 돌리고 우선우선하며 말했다.

《그녀석이야 동무도 많겠다, 젊은 나이에 어디 가선들 못배길라구. 그저 불쌍한것이 내인들이라니까. 자, 대수해서 안치자구.》

한바가지 되나마나한 감자는 인차 김이 올랐다. 그것을 바가지에 담아서 또 대단한 손님이라도 치를듯이 개다리소반에까지 받쳐왔으나 어머니도 필네도 한개를 다 못먹었다. 경섭이만이 필네의 무릎에 앉아 두어개 주어먹더니 그 애도 중병끝에 또 죽까지 먹은 뒤라 인차 물러나앉고말았다.

어머니는 의례 필네가 자고갈것으로 알고 자리차비를 하였다. 밤도 깊었다.

필네도 어머니와 나란히 하루밤을 실컷 이야기나 하면서 자고싶었다. 그러면 외로운 마음도 답답한 속도 풀릴것 같았다. 그러나 객주집에서 눈이 까매서 기다릴 일행을 생각할 때 그럴수 없었다. 밤이 열둘이라도 돌아가야 한다.

《어머니, 암만해도 가야겠어요. 내가 어머니곁에서 자고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모두 너무 기다릴거예요. 래일 길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암만해도 가야겠어요. 갔다가 래일 못떠날 형편이면 다시 오겠어요.》

몇번이나 일어났다가 도로 앉았다가 한 끝에 필네는 결정적으로 문밖에 나섰다. 어머니도 더는 말리지 못하고 마당끝까지 따라나왔다.

《그저 마음이 다심해서 그런당이. 이 밤중에 누가 기다리겠다구 험한 산길로 혼자 갈고.》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캄캄한 숲속을 두려움에 차서 바라보았다.

필네는 종시 정섭이의 소식을 알려주는것이 옳은지 알리지 않는것이 옳은지 판단을 못내린채 캄캄한 밤길에 나섰다. 처음에는 길을 꽤 찾아내겠는지 조마조마하였다. 그저께 한번 가본적이 있을뿐이다. 그러나 정작 동네를 벗어나서 산길에 홀로 접어들자 차라리 마음이 가라앉았다. 차가수물동다리에서 정섭이를 만나던 지난해 여름밤은 밤길을 걷는것이 무서웠다. 짐승도 무서웠고 귀신도 무서웠다.

그러나 한해가 못됐는데 이제는 낯선 밤길을 가도 무서운 생각은 없었다. 그저 가슴이 터져나갈듯이 답답하고 서러웠다.

륙십로인인 할아버지와 친한 사람들을 구원하자고 정섭이는 제발로 그 무도한놈들앞에 나타났을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깨끗한 마음인가. 그러나 그때문에 그는 지금도 죽도록 매를 맞을것이다. 그놈들이 제 밸풀이까지 하자고들테니 때리면 얼마나 악착하게 때릴것인가.

두서없는 생각에 잠겨 걷다나니 길을 잘못들어 한참 허둥거렸다. 어느 구새먹은 나무우에서 부엉이가 귀신같이 소리를 지르며 깃을 치고 날아갔다.

그래도 무섭지 않았다.

그래 정섭이가 그 깨끗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구할길이 그 길밖에 없단말인가.

《오빠, 오빠는 지금 어디 있어요?》

필네는 안타까운 나머지 마침내 앞에 와 막아서는 나무그루에 머리를 쓸어박고 목메여 부르짖었다.

 

18

 

1939년 5월 20일 백두산기슭은 자욱한 안개속에 뒤덮여있었다. 이 일대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러다가도 불시에 새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하는 일이 하루에도 몇번씩 되풀이되였지만 이렇게 진득진득하도록 진한 안개가 덮이는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백두산은 그 분화구를 통하여 몇백년동안 내뿜지 못한 울화를 한꺼번에 토하듯 마치 화염이 그가운데 뭉쳐서 타래치는듯 한 안개를 마구 내뿜었다.

안개는 하늘로 번지다못해 산을 삼켜버린듯 하였다. 나무도, 길도, 지어 바로 옆에서 걷는 사람의 형체도 모두 안개속에 녹아없어지듯 희미해지고 마감에는 제몸조차 가려보기 어렵게 되였다. 안개가 온몸을 감싸고 굼실굼실 기여다니는것이 감각으로 느껴졌다.

《아이쿠!》

누가 나무뿌리에 걸채여 넘어졌다.

《조심하라구.》

옆에서 비칠거리는것을 부축해주며 기관총수 박인섭이가 하는 말이다.

《지독하군, 한밤중이야.》

넘어진 사람은 가까스로 나무그루를 쓸어안고 몸을 바로잡으며 중얼거렸다.

《아직 유격대원이 되려면 멀었군. 캄캄한 밤중에도 소리 하나 없이 걸을수 있게 돼야 한단말이야.》

《밤중이라도 이런 한밤중이 어디 있겠나? 헌데 이거 우리가 바로 가기는 하는가?》

《걱정 말게, 맨앞에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네.》

《그래?》

김일성동지께서는 안개의 장막을 헤치시며 대렬선두에서 걸어가시였다.

그이의 한손에는 지도가 접힌채로 쥐여져있었고 다른 손에는 라침판이 있었다.

그저께부터 이 일대를 드나든 정찰조가 한둘이 아니였지만 이렇게 짙은 안개속에서는 밀림속의 오솔길을 찾아내기가 어려울것이였다.

이동은 불가피하였다. 간밤에는 청봉에서 떠나 멀리 가는척하고 10리안팎의 건창에서 숙영하였지만 남북포태산일대로 넘쳐나는 적의 세력이 차츰 청봉가까이로 접근하는데다 밤이면 숲속에 우등불을 피워놓고 이 백두산일대를 다 뒤질것처럼 돌아친다는것이였다.

그러고볼 때 이 안개는 이동에는 더없이 좋은 위장물이였다. 백두산이 오래간만에 조국에 돌아온 아들들을 이렇듯 포근한 안개로 감싸주는것인가.

건창을 떠난 대오는 서두르지 않고 동북방향으로 나갔다. 자욱한 안개속에서도 차츰 지대가 높아진다는것이 느껴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가끔 지도를 들여다보시며 라침판 하나로 대오를 이끌어나가시였다.

눈앞에 하나하나의 나무, 하나하나의 길은 떠오르지 않지만 명백한 구상을 안으시고 일직선으로 숲속을 꿰고나가시는 이러한 길이 오히려 그이의 사색을 심화시키는데는 유리한듯싶었다.

지난밤에 종합된 정찰자료를 보면 적들은 분명 혼란에 빠진듯하다. 18일에 포태리를 얻어맞은 놈들은 예상한대로 유격대가 3호물동으로 해서 도로 24도구쪽으로 건너갔다고 떠들어댄다는것이다.

그래서 모든 무력들이 서남쪽으로 움직여갔다. 그러나 다른 징조도 없지 않다.

우선 건창부근에 낚시군으로 가장한 적의 밀정이 나타났다.

그중 한놈은 처단되였지만 한놈은 내뛰였다. 그놈이 도망가서 유격대의 정찰원들한테 걸렸다는것을 다 고해바쳤을것은 틀림없다. 하기는 그놈이 직접 부대를 본것은 아니니 그것자체를 그리 크게 생각할것은 없다. 그러나 적들가운데 그러한 밀정을 그러한 곳에 박아넣을 필요성을 느낀놈들이 있다는것이 문제이다. 다른 하나의 징조는 어제밤부터 《토벌》부대의 발작적인 이동이 즘즛해지고 그대신 수색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손길이 차츰 청봉, 건창 부근으로 뻗어온다는것이다.

하나의 검부레기가 날린것이 미구한 태풍을 예고하듯이 얼핏 보매 보잘것 없는것 같은 이 조짐들이 다 심상치 않은 뜻을 풍기고있었다. 첫째로 혁명군이 건창부근의 밀림속에 있다는것을 눈치챈 적들이 있다는것이고 다음으로 그 혁명군을 포위하기 위하여 긁어모을수 있는 무력은 얼추 다 끌어왔다는것이다.

정황은 급속한 이동을, 그것도 적들이 전혀 눈치를 못채게 은밀히 무산지구로 진출할것을 요구하고있다.

단숨에, 은밀히- 유격대의 대부대를 기동시키는데 이 모순되는 두 요구를 어떻게 결합시킬것인가.

사령관동지의 사색속에서는 무수한 대답이 떠올랐다. 그러나 정세의 요구를 원만히 충족시킬만 한 대답은 없었다. 아니 대답이 있기는 하였다. 그것은 항용 이런 전술문제를 생각하실 때 자료에 대한 과학적분석을 심화해들어가시는 사이 자주 섬광처럼 떠오르군 하는 그런 생각이였다.

빨리 가자면 가장 가까운 길을 가야 하는것이고 가장 가까운 길은 가장 곧은 길이다.

그러나 유격대가 가장 가까운 길을 간적이 있으며 갈수가 있는가. 더구나 삼엄한 국경지대의 적 경계속에서…

얼핏 보매 이것은 현실성도 없고 상식을 가지고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문제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가슴속에서는 강력한 의지와 패기가 용솟음쳤다.

필요하다면 길을 내기도 해야 한다. 항차 있는 길이야 왜 못 간단말인가. 상식으로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는 바로 거기에 우리의 가장 큰 가능성이 있다고 볼수는 없는가.

(경비도로의 개통을 앞두고 왜놈의 우두머리가 내려온다고 했지? 하여간 이제 토의에 붙여보자. 아마 우리가 이러한 길을 가리라고는 적들은 상상도 못할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아직도 시간적여유가 있지 않는가. 그 시간을 리용하여 적들을 한놈이라도 더 많이 이 일대로 끌어붙이는것이 필요하다. 곧은 길을 간다면 출발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며 건창을 떠나 20리도 오나마나한 베개봉에서 숙영할것을 명령하시고 곧 지휘관들의 회의를 부르시였다.

그런데 무산지구로 단숨에 빠져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어느 길로 어떻게 행군할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셨을 때 지휘관들사이에서는 실로 분분한 론쟁이 벌어졌다. 백두산밑에 무연히 펼쳐진 고원을 횡단하여 단숨에 무산지구로 나가자는 동무도 있고 유격대가 숲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내우기는 동무들도 있었다. 박덕산은 사령관동지께서 제시하신 문제에 원만한 대답을 올릴만큼 준비되여있지 못한데 대해 심각한 자기비판을 하면서 밤중으로 다시 정찰을 나가 무산지구로 재빨리 빠지면서도 은밀성을 충분히 보장할수 있는 안전한 지름길을 찾아보고 그런것이 정 없으면 길을 내놓고 오겠다고까지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문제를 생각하시면서 이미 열려있는 곧은 길로 우리 인민혁명군대오가 나간다는것을 누구나 쉽게 생각할수 없고 또 누구나 쉽게 생각할수 없다는 바로 그 점이 이 이동의 성과를 담보하고있다고 타산하시였기때문에 거듭 암시를 하시고 계발을 해보셨지만 종시 아무의 입에서도 《갑무경비도로》라는 말조차 울려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시간도 많이 흘렀고 자기생각을 다 말해버린 지휘관들은 한사람두사람 입을 다물었다.

토론과정에 문제의 초점은 더욱 뚜렷해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확신을 가지시고 일어서시였다.

《그럼 회의를 결속합시다.》

하고 결론을 시작하신 그이께서는 회의에서 론의된 의견들에 대해 하나하나 옳고 그른 점을 지적해주신 다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동무들!

우리는 북대정자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간부회의의 방침에 따라 일제침략자들에게 련속적인 타격을 주고 국내인민들에게 혁명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기 위하여 또다시 조국땅에 진출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있는 조국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하고 그이께서는 그지간에 이미 료해장악된 자료에 기초하시여 강도 일제의 전고미문의 략탈과 탄압이 지배하는 조국의 암담한 현실과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펼쳐보이시면서 조국에 진출한 조선인민혁명군의 목적과 과업을 다시금 상기시키시였다.

계속하여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산지구로 진출할 필요성과 무산지구에서 수행해야 할 군사정치활동에 대해 강조하시면서 일제의 두가지 약점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시였다.

《장악된 적정자료에 의하면 일제는 함남, 함북 국경지역의 국경수비대와 경찰대들을 총동원하여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는 압록강과 두만강 상류지대에 경비력량을 증원배치하고 장백현 24도구계선에 일제관동군 오니시부대와 위만군 장조부대를 비롯한 수많은 병력을 내몰아 포위태세를 갖추고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 인민혁명군부대들이 마천령산맥을 따라 백두산동남방향으로 진출하리라고 판단하고 우리를 포태산계선에서 저지시켜보려 하고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와 같은 모든 움직임으로 보아 놈들은 산지 특히 백두산동남부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큰길에는 주의를 적게 돌리고있는데 이것이 적의 약점의 하나이며 다른 하나의 약점은 놈들이 주간보다 야간에 주의를 더 많이 돌리고있는것이라고 지적하시였다.

사령관동지의 정연하신 분석은 중중첩첩한 밀림속에서 마구 뒤얽혀돌아가는 적의 움직임과 앞으로 변화될 적정에 대해서까지 선명한 화폭을 그려볼수 있게 하였다.

지휘관들의 얼굴에서 충분히 납득된 표정을 읽으시자 그이께서는 자신의 결심을 요약하여 말씀하시였다.

《이와 같은 적정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험한 산발을 탈것이 아니라 놈들의  새 국경경비도로인 <갑무경비도로>를 따라 행군하며 야간행군을 할것이 아니라 주간행군을 단행하고 대담한 군사활동을 전개하는것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천막안은 술렁거리였다. 오백룡은 놀라서 한쪽 무릎을 일으켜세우고 절반쯤 몸을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밀림지대를 벗어나서 버덩으로 나간다는것만 해도 께름직해서 선뜻 응해나서지 못하는데 항차 놈들의 경비도로로 그것도 대낮에 행군하자고 하시니 그로서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놀란것은 오백룡이뿐이 아니였다. 박덕산이나 오중흡은 말할것 없고 바로 백두산동쪽고원으로 단숨에 빠져야 한다고 주장한 동무들도 눈이 커다래져서 웅성거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고 가볍게 한손을 드시여 그들을 진정시킨 다음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언제나 조성된 정황에 따르는 림기응변의 전술을 취할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위력의 원천의 하나이며 승리의 요인입니다.

적들이 산속에서 우물거리고있을 때 우리는 국경경비도로를 따라 일행천리동정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적들로 하여금 우리 인민혁명군을 찾아헤매다가 허탕을 치게 하며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불의타격을 받고 전률케 할수 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계속하여 일행천리전술이 결코 그저 쭉 빠져나가는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림기응변의 기동전술을 잘 배합하며 특히 이번에 전개하게 되는 군사행동에서는 민첩성과 기동성을 요구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장내는 사령관동지의 대담하시고도 과학적인 타산을 리해하게 되면서 차츰 경탄의 목소리가 입밖으로 새여나와 또다시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이 백일행군을 발기하시면서 단순히 적의 약점을 찔러 행군의 신속성을 보장하자는 전술적타산만 앞세우신것이 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온 세상에 시위하며 나아가서 적에게는 공포를 주고 우리 인민에게는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자는데 목적이 있다는것을 강조하셨을 때 모든 지휘관들은 새삼스럽게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모든 지휘관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기쁨과 신심을 읽자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재치있는 씨름군이 상대방의 약점을 교묘하게 리용하여 선손을 써서 이기는것과 같이 적들이 생각조차 못하고있는 곳으로 빠져나가 놈들의 약한 모퉁이를 들이쳐야 합니다.

조국에 진출한 우리의 심정이 감개무량한것처럼 우리의 당당한 모습을 보는 인민들의 심정도 무한히 격동될것입니다.》

계속하여 사령관동지께서는 모든 인민혁명군전사들이 정치적군대로서의 사명을 자각하고 군사활동과 함께 인민들속에서 정치사업을 강력히 벌릴데 대해서와 행군준비를 빈틈없이 갖출데 대해 강조하시고나서 말씀을 맺으시였다.

《일행천리로 동정한다는 의미에서 래일의 군호는 <동정>이라고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불타는 조국애와 끓어넘치는 전투적열의를 안고 이번 조국진군의 길에 오른 우리의 모든 지휘원들과 대원들이 자기에게 부과된 임무를 원만히 수행함으로써 우리의 조국진군목적을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는것을 확신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모든 지휘관들이 와- 들고일어나서 손벽이 부서져라고 열렬한 박수를 쳤다.

회의는 그것으로 끝났다.

《야- 사령관동지께서 그렇게 자꾸 튕겨주셨는데… 이거야 너무나 뜻밖이니 알아맞힐수가 있어야지.》

《<동정>이라, 멋이 있는데…》

《경무국장놈이 개통식을 하러 오기를 기다린다지? 우리가 개통하기 전에는 그 어떤놈도 개통 못한다는것을 알아야지.》

지휘관들은 동무들끼리 툭툭 건드리면서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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