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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11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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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구네 일행은 점심참이 좀 지나서 삼장읍거리에 들어섰다. 이런 벽지에 이런 거리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만큼 번창하는 거리였다. 두만강기슭을 따라 양철지붕을 이은 건물들이 주런이 늘어섰다. 경찰서, 면소, 세관하는따위 관청들뿐아니라 들쭉회사며 제지회사출장소도 여기에 있고 증산일판의 숲을 갉아먹는 청부업자들도 큰놈들은 대개 이리로 모여든다. 두만강으로 흘러드는 서두수와 소홍단수의 하구도 아래우로 열려져있어서 떼군들을 위한 객주집들이 추녀를 늘여세웠고 잡화상, 포목상, 리발소, 양복점에 색주가집까지 촌스러운 화장을 하듯 커다란 간판으로 초라한 몰골을 가리우고 어깨를 비비대며 서있다. 국경다리라는것은 생각과는 달리 산골에 흔히 있는 좁다란 나무다리에 지나지 않았다. 좀 색다른것은 그 한가운데 문짝을 매달고 밤이면 자물쇠를 채우게 되여있는것이였다. 그 다리문앞에 총대를 멘 수비대의 보초놈이 서있고 이쪽과 저쪽기슭에는 각각 경관과 세관관리가 서서 통행인들을 단속하고있었다. 일행은 그 어떤 행운의 나루배라도 기다리고있을듯이 땀을 발발 흘리며 길을 다우쳤지만 정작 넘어서야 할 국경에 이르자 모두 떡심이 풀려 강기슭에 풀떡풀떡 주저앉아버렸다. 필네도 강기슭에 비뚤서하게 서있는 백양나무에 등을 대고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았다. 봄시위에 불어난데다 소홍단수와 서두수의 물을 받아안은 두만강은 어느덧 장강을 이루어 도도히 흘러간다. 무엇때문에 모두 그렇게도 서둘렀던가. 과연 저 강을 넘어가면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잠잘수 있는 생활이 있을것인가. 모든 사람이 그렇게도 못 잊어하는 고향에 돌아갈 그 길을 저 음침한 산발너머로 가면 찾을수 있단말인가. 필네는 땀발에 젖은 귀밑머리를 쓸어넘기며 볼에 와닿은 강바람의 슴슴한 물비린내를 가슴껏 들이마셨다. 그것은 다 빈말이다. 거기에 가면 무슨 수가 날듯이 안해를 설복하던 윤원구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간다. 장대선아바이며 김인수며 세상풍파 다 겪었다는 저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서 갈가. 하지만 가지 않으면 또 어떻게 할것인가. 그저 죽지 못해 허우적이는 몸부림이다. 자기에게는 그래도 강을 건너가서 유격대소식을 듣고 오빠를 찾아보겠다는 희망이 있다. 그런 자기의 가슴도 이처럼 젖어드는데 아무런 기약없이 이 기슭에 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피눈물을 뿌릴것인가. 눈물이 그렁해서 새삼스럽게 떠나온 길, 아득히 멀어진 정든 산발들을 돌아보던 필네는 옆에서 들려오는 너무나 심상한 목소리에 오히려 놀라서 귀를 기울였다. 《내가 이자 상점에서 마꼬 한갑을 샀는데 한대 피워보오.》 장대선아바이가 김인수에게 하는 말이다. 《아바이는 그냥 우는소리하더니 돈푼이나 있는 모양이요그려.》 김인수는 시답지 않게 중얼거리며 담배 한대를 뽑아물었다. 《임자들도 한대씩 태우라구. 넨장, 아무리 따라지목숨이기로서니 내가 조상의 땅을 마지막으로 하직하면서 담배 한갑을 못사피운단말인가.》 《거 로자를 아껴써야지, 이게 다 문어 제다리 잘라먹긴데…》 윤원구가 담배를 뽑아물며 핀잔비슷하게 말했다. 《아낄만 한 로자도 없네. 허 여기 물부리도 하나 있군. 그러나 저러나 담배맛이 괜찮네. 좀 슴슴한것 같긴 해도 역시 량반들 담배가 다르긴 다르군.》 하고 장대선아바이는 여태 피워보지 못한 권연의 중둥을 어색하게 쥐고 마치 처음 담배를 배우는 사람처럼 후-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히죽이 웃었다. 《여보시오, 가수선생.》 그는 침울한 눈매로 물결을 바라보는 김인수에게 별로 다사하게 말을 건다. 《그 댁은 세상 안가본데가 없다지만 이 장대선이로 말해도 열다섯에 구성군 관서면 향교리를 나서서 서른해나마를 안다녀본데가 없소. 그러다나니 고향에 대해서 남은것이라고는 구성군 관서면 향교리 16번지 하는것밖에 머리에 새겨진게 없는데 그래도 그 땅이 그냥 잊혀지지 않는것은 무슨 까닭인가? 가수선생은 손에 먹물깨나 묻혔으니 이런 리치를 알갔지?》 《그게 다 사람이 똑똑하지 못해서 그런것이지요. 잘먹고 잘사는놈들을 보시오. 그것들이 어디 고향이요, 인정이요 하는것들때문에 눈물을 짭디까?》 김인수는 그 어떤 모멸감에 불타는듯 격렬한 어조로 말했다. 장대선이도 그렇고 다른 일행도 그의 너무나 세찬 반응에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들었다. 《앞으로라도 잘살 생각이 있으면 그런것을 싹 머리속에서 걷어내야 해요.》 《허지만 선생.》 하고 장대선이는 당황하여 말하였다. 《그걸 어떻게 마음대로 하나? 사람이 고향이나 인정을 버리고야 어떻게 산단말인가?》 《그럼 별수 없지요. 한평생 따라지목숨으로 살아가야지요.》
《하기는 가수선생의 말이 옳은지도 모르겠소. 가령 이 춘길이를 봐도 그렇지. 나는 그래도 고향의 번지수나 알고있지만 이사람은 철이
들어 세상을 둘러보니 자기는 고향도 부모도 없는 어린
《에이, 아바이도 그만두라구요. 내가 언제 울었다고…》 방금까지 풀을 쥐여뜯으며 두만강물결을 눈물이 그렁해서 바라보던 춘길이가 질색해서 소리쳤다. 《허, 이사람 눈등이 또 불깃해졌군. 그러니 임자도 이 가수선생 말마따나 한평생 신수가 궁할밖에… 헌데 가수선생, 그러고보면 또 모를 일이 한가지 있는데… 그 댁은 봐하니 세상리치도 그만치 알고 또 사괴보면 마음씨가 착한 사람같은데 어찌자고 매번 우리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해주는가말이요. 그렇게 눈물을 쥐여짜면 따라지신세를 면할수 없다고 하면서말이요.》 《그야 나도 모르지요.》 김인수는 장대선아바이의 소박한 질문에 가슴이 찔린듯 잠시 허둥거리더니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참 별소리를 다 하시오. 내가 뭐 아바이들 보고 울라고 노래를 했겠소. 내가 아는 노래란 다 그런게지요. 세상이 만들어낸 노래란 다 그런 노래밖에 없단말입니다.》 《허- 세상엔 맨 슬픈 노래라… 그러니 정말 별수없군.》 장대선아바이는 기가 찬듯이 중얼거렸다. 우스개처럼 시작된 말이 까닭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만들어주었다. 춘길이는 무엇인가 해명을 바라듯 김인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으나 그는 어쩐지 모욕당한 인간처럼 얼굴이 살핏해서 물결만 쏘아보고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침울한 그늘이 비꼈다. 해빛이 설핏해지면서 강물에 어수선한 멀기가 일었다. 《그 객적은 소리들 그만하고 이제는 건너갑시다. 강 하나 건넜다고 설마 산천이 그렇게야 변하겠소.》 윤원구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릴양으로 푸접없이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때 행길쪽에서 자전거종소리가 나더니 낯익은 왜놈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려왔다. 《오, 여기들 있었는가? 왜 그렇게 빨리들 걷는가? 도망치자고 하는가? 따라오느라고 혼이나 났다.》 돌아보니 농사동주재소 순사 요시다였다. 그놈뒤에 또 한놈의 순사가 달려있다. 일행은 까닭없이 가슴이 덜컥하여 일어났다. 무포어방에서 그놈때문에 어지간히 경난을 치른 일행은 그놈의 말상을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였다. 《자, 빨리빨리 돌아서라. 해가 떨어지기 전에 가야겠다.》 《가기는 어디로 간단말이요?》 윤원구가 맞받아 소리쳤다. 국경에 다 온 이상 무서울것이 없다는 생각이였다. 그러나 요시다는 자전거를 돌려세우더니 태연히 턱질을 하였다. 《농사동주재소로 가자. 네놈들을 취조해야겠다.》 《무엇을 취조한단말이요?》 《그런것은 가보면 안다.》 《우리는 못가겠소.》 윤원구는 단호한 태도로 뻗쳤다. 《못가겠다? 너나 죽고싶은가?》 요시다는 자전거를 뻗치고 다가왔다. 결국 또 한놈의 순사까지 접어들어서 윤원구와 장대선아바이 그리고 춘길이는 허위단심 걸어온 길을 50리나 되돌아가 농사동주재소에 잡혀들어갔다. 나머지 일행도 그들의 뒤를 따를수밖에 없었다. 방금 조국을 떠나는 리별을 한탄하던 생각을 하면 기가 막혔다. 조국에서 쫓겨나기도 헐한 일이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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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구네 일행은 농사동주재소에 와서 취조를 당하면서야 비로소 일이 정섭이때문에 벌어졌다는것을 알았다. 그것도 정섭이가 무슨 일을 치고 어디로 내뺐다는것을 어렴풋이 짐작할뿐 다른것은 통 알길이 없었다. 놈들은 덮어놓고 사람을 치고 박으며 정섭이 간곳을 대라는것이였다. 아무리 다그쳐도 이쪽에서 댈것이 없고 또 사실자체가 너무나 명백했기때문에 한밤중에 사람들은 내놓았다. 그러나 도강증을 압수한채 내주지 않았다. 보매 정섭이의 사건이 락착되기 전에 훌 강을 건너가버리면 후에 다시 취조할 일이 생길수도 있는데 그런 때 랑패를 볼가봐 그러는 모양이였다. 이튿날 남정들이 번갈아 주재소에 찾아갔으나 막무가내였다. 놈들이 심술을 부리는 까닭이 차츰 밝혀지자 필네는 답답하게 객주집에 남아있을 재미도 없거니와 첫째 이 일이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또 정섭이가 어디로 내뛰였다면 그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신사동에서 어떤 젊은이가 왜놈장교를 패주고 산으로 뛰였다는 소문이 주막집에도 번져왔다. 그러던게 다음날에는 왜놈장교를 패준것은 젊은이가 아니라 늙은이라는 말이 돌아가더니 한편에서는 역시 왜놈장교를 패준것은 젊은이인데 그 젊은이가 달아났기때문에 할아버지를 대신으로 잡아갔다는 말도 돌아갔다. 여러 사람이 나가서 두루 수소문한 결과 정섭이대신 할아버지를 신개척에 있는 자위대영창에 잡아가둔것은 거의 확실한듯하였다. 그래도 제눈으로 본것만 같지 못하고 또 정작 그렇게 됐다면 그 집 형편이 어떨것인가 생각하니 필네는 한시도 가만있을수 없었다. 일행가운데는 자기네도 그 사건에 련결되여있는셈이고 또 친분으로 보아도 찾아가는게 도리가 옳다는 사람도 있고 공연히 찾아가서 그놈들의 눈에 뜨이면 재미가 없다는 공론도 있었으나 필네는 큰 마음먹고 길을 떠났다. 전날 할아버지와 헤여지던 그 고개마루에서 내려다보니 벌써 동네꼴부터가 무슨 재화를 입은것 같은 랭기를 풍기였다. 정섭이네 집은 초상 치르고난 뒤끝처럼 어수선한 풍경에다 괴괴한 침묵으로써 필네를 맞이하였다. 필네가 저도 모르는사이 두려움에 차서 발소리를 죽이고 집안팎을 살펴보는데 느닷없이 떨어진 웃방문을 넘겨뜨리며 경섭이가 달려나와 매달렸다. 아이의 얼굴에는 쥐마당을 그려놓은 눈물자국과 함께 아직도 공포의 그림자가 가셔지지 않고있었다. 한순간에 떠도는 소문이 모두 사실이였구나 하는것을 깨달은 필네는 말없이 경섭이를 와락 그러안았다. 깨여진 옹배기쪼박이 한마당 널려있고 재털이가 토방에 떨어져있었다. 문의 돌쩌귀가 빠져나간것만 보아도 로인이 순순히 잡혀가지 않았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아이구, 필네가 아직도 안갔구만.》 정섭이의 어머니 역시 울어서 뗑뗑 부은 얼굴을 내밀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된거예요?》 필네는 경섭이를 끼고 그 까칠한 머리를 쓸며 앓는 녀인쪽으로 다가갔다. 정섭이의 어머니는 인차 대답을 하지 않고 필네를 이윽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필네도 더 물어볼 말이 없었다. 이제는 물어보나마나 뻔한 일이였다. 《내 정신 좀 보지. 이렇게 앉아있을 사이 없네. 어서 떠나라구, 여기 있다가 큰일나겠어. 그놈들이 무시로 찾아든다네.》 《찾아오겠으면 오라지요. 우리도 도강증을 빼앗기고 잡혀있어요.》 《그래?》 정섭이의 어머니는 기가 막힌듯 서둘러대던 팔을 맥없이 놓고 주저앉아버렸다. 《어머니.》 필네는 병든 녀인의 살이 쑥 빠진 앙상한 손을 제 손바닥우에 올려놓고 쓸었다. 《할아버지가 상하지는 않았어요?》 《왜 안상했겠니, 밤중에 느닷없이 달려들어 묶자고드니 그러지 않아도 기가 성한 로인이 고분고분 끌려가자고 하시겠니. 바라지가 저 지경이 되였으니 늙은이가 어떻게 성하기를 바라겠니? 그런데 도강증은 왜 빼앗았더냐?》 《모르지요. 경섭이 형하고 가까운 사람들이니까 행여나 해서 그러겠지요.》 《에그, 덩치가 커다란것이 무슨 재구를 이렇게 저질러놓았단말이냐.》 녀인은 치마끈을 눈굽으로 가져가며 넉두리를 하였다. 잠시후 필네는 사건의 경위를 대충 듣고는 정섭이의 어머니가 떠미는바람에 그 집 문전을 나섰다. 불쌍한 아낙네는 필네를 떠밀어내면서도 혹시 정섭이를 만나거던 행여 집에 얼씬 않도록 귀띔을 해달라고 신신부탁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것 같았다. 산턱에 외따로 떨어진 정섭이네 집을 나와 《이시가와구미》밥집앞을 돌아서는데 스키모를 제껴쓴 사나이가 뒤를 따라왔다. 주먹코에 하늘소처럼 귀가 벌쭉한것이 보기부터 을씨년스러웠다. 동네를 벗어나자 그자는 옆에 붙어섰다. 《그 집에 누구를 만나러 왔는가?》 《할아버지랑 어머니랑 만나러 왔어요.》 《마침 잘됐다. 령감을 만나게 해줄테니 같이 가자.》 필네는 말없이 걸음만 다우쳤다.
될대로 되라지, 하는 생각이 옹골차게 맺혀들자 겁도 사라졌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쳐들고 꼿꼿이 걸어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