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5 회 )

 

8

 

리룡철은 차가수물동가에 쭈그리고앉아 자기 팔자를 저주하고있었다.

낚시대는 제갈데로 가라고 내버려둔채 큰저고리소매속에 두팔을 잔뜩 지르끼고 우들우들 턱을 떨었다.

이렇게 으시시할 때는 따끈한 매운탕에 소주 한잔만 들이키면 온갖 잡병이 다 떨어지고 심화도 가라앉는 법인데… 그러나 지금은 요지부동이다. 팔자에 없는 끄나불노릇을 하자니 술조차 먹고싶을 때 마음대로 먹게 되지를 않는다.

끄나불이라도 어디 내놓고 말할만 한 버젓한 끄나불이 아니라 제 동생놈의 끄나불이다. 맏이라는게 애비의 재산도 저는 푼전한잎 손대보지 못하고 동생놈의 금광바람에 다 처넣었지 용돈을 얻어쓰는것도 매번 동생놈의 지청구를 들으며 몇잎씩 동냥얻듯한다. 그런끝에 이제는 동생의 끄나불이 되여 벌써 며칠째 낚시대를 들고 리명수물가를 오르내리며 행인을 살피고있다. 호철의 말인즉 자기는 동생의 끄나불이 아니라 관동군의 특수선무공작반장 시마끼소좌의 정보요원이며 머지 않아 정식증명서도 받게 된다고 한다.

(흥, 개떡같다. 내가 증명서는 해서 뭘해? 돈이면 그만이지.)

룡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돈때문에 동생한테 매여사는 몸이 됐는데 이제 동생의 수족이라는것을 더 뚜렷이 확증해줄 그따위 증명서가 무엇에 필요하단말인가.

하기는 생각해보면 자기가 형이면서도 동생의 괄세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것은 이미 팔자에 찍혀져있는 일이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형제가 차례를 헛갈려나왔다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이제는 20여년전 일이지만 룡철이와 호철이형제는 함께 마마를 앓았다. 얼굴에 손만 대면 곰보가 된다고 아버지 리덕선은 엄하게 단속하였다. 당시 룡철은 열살이 넘은 나이였고 호철은 겨우 여섯살이였다. 룡철은 장차 곰보가 되는 한이 있어도 당장 살고봐야겠다고 얼굴을 긁어서 결국 살짝곰보가 되였다. 호철은 얼굴에 여드름자국 하나 없었다. 그것을 보고 부모들은 말할것 없고 이웃사람들까지 벌써 형이 동생에게 눌려살게 될 오늘을 내다보았다.

룡철이가 고진동에 나들면서 덕대질을 할 때까지만 해도 맏아들이고 그러다 혹 돈을 걷어쥘지도 모르기때문에 집안에서나 친지간에 그렇게까지 돌리우지는 않았다. 그러던게 투전판에 휘말려다니다가 로동자들의 임금을 잘라먹고 뛴것이 빌미가 되여 종당에는 류치장출입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의 운명과 처지는 결정되였다. 당시 군산림주사이던 동생은 두루 힘을 써서 일을 무사히 수습해주었으며 호리모도목재판에 십장자리 하나를 얻어주었다. 그러나 거기서 또 한해가 못가서 검척때 협잡을 해먹다가 싸움이 붙어 둔장대로 회계원을 병신이 되도록 패준것때문에 혜산까지 끌려가 재판을 받았다. 그것 역시 동생의 힘으로 집행유예가 되여 풀려나왔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아버지의 재산상속자자리도, 형으로서의 위신도 다 들짱이 난 뒤였다.

《형님, 이거 자리라도 좀 옮겨봅시다.》

짝패인 하늘소가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사정하였다. 이놈은 호철이가 직접 달고다니는 진짜 끄나불인데 새벽부터 궂은비를 맞으며 강가에서 떨자니 정 급한 모양이다.

《자네 정신있나? 유격대가 나들 길목을 지킨다는걸 잊어버렸나? 자리를 옮길바에야 무산옥이나 리명수 개장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할판이지.》

《흥, 너무 그러지 마시우. 유격대가 무슨 유격대란말이요. 유격대가 조선에 나왔다면 하필 갈데가 없어서 형님이나 내앞을 지나가겠소. 공연한 소리지. 헌데말이요.》

하늘소는 바싹 다가붙으며 수군거렸다.

《이사람아, 그 낚시를 보라구. 이건 왜 마구 엉클어놓으며 이 야단인가. 이제 고기가 달렸는가 했는데…》

《헤헤헤, 형님 고기는 무슨 고기… 그러지 말고 이와이구미에라도 잠시 들려서 몸 좀 녹이자구요. 이게야 살이 떨려서 견디겠나요.》

《이젠 날이 개였으니 몸이 떨리는것은 좀 나아지겠지. 헌대 임잔 옛날에 경찰물이랑 먹었다는 사람이 왜 그모양인가?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는걸 몰라서 이러는가?》

룡철은 제법 의젓하게 나왔다. 그러나 하늘소는 차츰 더 기막히다는 상을 지었다.

《아니 형님, 그럼 여기서 진짜 유격대라도 한둘 잡을 작정을 하시우?》

《맞다들리면 잡아야지.》

《아이구 맙시사. 이건 진짜 맹물단지로군. 형님, 그런 소리는 동생이나 저 시마끼소좌앞에 가서 하시오. 오늘날 김일성유격대를 잡겠다고 나선 사람이 수만, 수십만이 되지만 진짜 유격대하고 맞다들리고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보기에 관동군사령관도 그렇고 조선총독도 그렇단말이요. 될수만 있으면 유격대가 강건너쪽으로 건너가주었으면, 제발 이쪽으로는 건너오지 말았으면 해서 조선에서도 만주에서도 압록강을 철통같이 지키고있단말이요. 맞다들리면 제가 죽겠는데 그걸 누가 바라겠소. 내 호철씨의 형님이기때문에 다 터놓고 하는 이야긴데 이다음에라도 유격대와 맞다들리면 피하는게 좋아요. 어디서 유격대를 보았다고 찔러바치기만 해도 돈이 생기겠는데 공연히 앞장에 나서서 돌아치다가 여벌이 없는 모가지나 잘리우게요.》

《뭣이 어째 이놈, 네놈이 가만보니 천하 건달이가 아니면 나를 중떠보자는 수작이구나.》

룡철은 하늘소의 말이 가슴에 띠끔하였으나 겉으로는 드센척하며 눈을 지릅떠보였다. 그러나 하늘소도 사람을 능갈쳐먹는데 이골이 난 위인이라 룡철이따위의 위협에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쉿, 허튼수작 말고 정신 바싹 차리우. 다리목에 수상한자들이 나타났소.》

하늘소가 저쪽으로 떨어져가며 튕기는 말에 찔끔해서 뒤를 돌아본 룡철은 긴장되였다. 다리목으로 다가가던 두 행인이 곧장 낚시터로 다가오는것이였다.

룡철은 허둥지둥 낚시대를 쳐들어서 미끈거리는 미끼를 한참 신고해서야 겨우 꿰였다. 벌써 발자국소리가 다가온다. 저놈들이 무엇때문에 이쪽으로 오는가? 이쪽으로는 길도 없고 인가도 없는데… 낚시를 다시 치며 얼핏 스쳐보니 웬 까닭인지 벌써 여느 길손과는 다르다는 그 어떤 직감이 머리속을 인두처럼 지지였다. 그 순간부터 룡철은 벌써 제정신이 아니였다. 여느 길손과 다르다면 무엇인가? 호철이가 어느때 유격대가 쳐나올지 모르는 형편인데 유격대가 쳐나온다면 그 길잡이들이 먼저 들어와서 정찰을 한다고 했지. 이게 혹시 바로 그 유격대정찰병이나 아닌가…

《이런 날씨에 고기가 물립니까?》

어느새 바로 등뒤까지 다가온 행인이 이렇게 물었다. 잔뜩 마음의 탕개를 죄였던것이 맹랑하게 느껴질만큼 부드럽고 쾌활한 목소리였다. 그런 기분을 타고 룡철은 뒤를 힐끔 돌아보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고기가 물릴게 뭐요?》

《그럼 다른 낚시질을 하는게 아니요?》

《뭐요? 이 량반이 장히 오지랖이 넓다. 여보, 남이야 무슨 낚시질을 하든 웬 상관이요?》

룡철은 마음이 좀 놓이자 어느새 불량배의 본바탕을 드러내며 시비를 걸고들었다.

《여보, 리룡철씨, 초면도 아닌데 그만한게야 못묻겠소.》

룡철은 홱 고개를 돌렸다. 과연 낯익은 얼굴이 웃고있다. 오늘 고진동 남사갱에 있던 패거리들이 금천동으로 갔는데 그 패거리는 아닌가? 아니다!

순간 룡철의 마마자국마다에서 혈기가 가셔졌다. 야학선생이다. 파업을 선동하던 사회운동자다.

《유격대다! 하늘소, 뛰여라!》

룡철은 낚시대를 성림의 면상에다 활 쥐여뿌리는참 냅다뛰였다.

그러나 하늘소는 그보다 먼저 수를 썼다. 워낙 이런 일에 문리가 트인 하늘소는 두사람이 다가오는 그 순간부터 뛸 차비를 하고있었던것이다.

《중대장동무, 이놈은 내가 맡겠습니다.》

성림은 멍구럭멜빵을 죄여서 틀어쥐며 내달았다.

《총질은 하지 마오.》

김준삼은 숲속으로 여우새끼처럼 빠져달아나는 하늘소를 뒤쫓으며 귀뜀하였다.

룡철이는 숲속 오솔길을 한참 달리다가 갑자기 큰길쪽으로 빠졌다.

술독에 파묻혀 살다싶이 하다보니 사지가 비탈린 몸이지만 정작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 마당에는 돌개바람을 일구며 어찌나 빨리 달아나는지 성림의 달리기솜씨로도 따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이 아근의 지형을 샅샅이 꿰고있는놈이라 급하면 으슥한 숲속으로 몸을 감추군 하여 첫참에 놓쳐버린 성림이로서는 차츰 따라잡기가 어렵게 되였다. 더구나 그놈이 큰길로 빠진것도 목재판과 림산마을이 가까운쪽으로 달아나는것도 다 꿍꿍이수가 있는것이였다. 총질을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한정 따라가다가 행인이라도 나타난다면 문제이다.

다행히 곧장 열린 큰길이 아득히 뻗었는데 사람그림자라고는 얼씬하지 않았을뿐아니라 좌우로 숨어들어갈만한데도 없었다.

룡철이란놈도 이 모퉁이에서 자기 명줄이 끊어지든 이어지든 결판이 난다고 느꼈는지 숨가쁘게 달리면서 연신 좌우를 살피다 못해 하늘까지 쳐다보았다.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부르는 모양이다.

밋밋한 고개가 나타났다. 허항령초입이다. 룡철은 더는 숨을 쉬여내지 못하겠는지 두팔을 물레바퀴 돌리듯 휘저으며 마치 취한놈처럼 비틀비틀 그 고개를 톺아올랐다. 이때라고 생각한 성림은 마지막 기력을 모아 고개를 냅다 올리뛰였다.

룡철은 뒤따르는 발자국소리가 바투 다가오자 뒤다리로 흙을 걷어차며 대가리만 앞으로 내밀고 허우적거렸다.

《리룡철씨, 이제는 그만하고 말 좀 해보지 않겠소?》

성림은 그의 뒤덜미로 손을 뻗치며 침착하게 말했다.

《으흐흐, 살려주, 정말 살려주. 나, 나는 잘못한것 없소.》

토막토막 찢어진 비명을 내지르던 룡철은 마침내 고개길에 어푸러졌다. 땅바닥에 가슴을 대고도 그는 필사적으로 기였다. 그러나 성림의 모습이 허리어방에 얼찐하자 방금 죽어가던놈답지 않게 화닥닥 몸을 뒤채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손을 괴춤에 가져갔다.

그놈의 손에서 시퍼런 비수가 번쩍 하고 묻어나오는 순간 성림은 몸을 날려 놈의 정갱이를 걷어찼다.

룡철은 2~3m 비칠거리더니 땅바닥에 태질을 당했다.

성림이가 서둘지 않고 그놈의 뒤덜미를 잡아일으키자고 하는데 고개마루에 인기척이 났다. 성림은 주춤해서 손을 괴춤으로 가져갔다. 만일 적이라면 별수없이 쏘아제껴야 할것이였다.

다행히 고개마루에 나타난것은 내외간인듯 한 젊은 남녀와 숙성한 총각인데 어느모로 보나 수수한 나들이군들이였다.

방금 죽어가던 룡철이도 인기척을 느끼자 필사적으로 발악하였다.

《사람 살리오. 강도요. 사람, 사람 살리오-》

놈은 살수가 났다고 화끈 단 목청을 내뽑으며 행인들에게로 뒹굴어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벌벌 기여오는 룡철이와 우뚝 선 성림을 번갈아 바라보던 행인들은 짧게 몇마디 수군거리더니 그중 건장해보이는 남정이 리룡철을 맞받아내려왔다.

《강도가 어느게요? 어서 이리 피하시오. 그 칼은 나 주고…》

그 사람은 성큼 리룡철을 안아일으키더니 듬직한 가슴에 리룡철을 바싹 다가끼고 그의 손에서 비수를 비틀어빼였다.

《성림동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특무요. 조심하오. 그런데 장동무는 웬일이요?》

성림은 이런 로상에서 장경수를 만난것이 기쁘기도 하고 뜻밖이기도 하여서 부르짖었다.

《내 성림동무가 이 모퉁이에서 이러루한 고생을 할줄 알고 목을 지키는길 아니요. 허허허.》

성림이와 장경수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고 리룡철은 봄볕에 눈사람녹듯 제풀에 허물어져 주저앉아버렸다.

 

×

 

특무를 처단해버린 다음 네사람은 길가에서 숲속으로 좀 들어가앉았다.

성림이가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장경수는 심상해서 지방공작을 간다고 대답하는데 금숙이의 표정은 굳어지더니 별안간 눈물이 글썽해졌다. 성림이의 질문이 어딘가 그의 가슴의 여린 부분을 건드린것 같았다.

무엇인가 곡절이 있는 모양이다. 재영이의 표정도 그러고보면 평범한것 같지를 않았다.

그들이 장군님으로부터 어떤 과업을 받고 떠난다는것을 알리 없는 성림은 아무래도 새길수가 없어 다시 말했다.

《아니 그렇게 낯빛이 굳어가지고야 어떻게 공작을 하겠소? 참 금숙동무가 이럴줄 몰랐구만.》

《그런게 아니요.》

하고 장경수가 방금 리룡철이에게서 빼앗은 비수랑, 증명서따위 소지품을 성림에게 넘겨주며 그답지 않게 심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지방조직에 가서 공작할 임무만 받은게 아니라 사실은 장군님의 부탁도 받고 간단말이요.》

《부탁이라니? 아니 장군님께서 하시는 일에 무슨 과업이 따로 있고 부탁이 따로 있단말이요? 장군님의 말씀이면 그게 그대로 우리의 혁명임무이지.》

《그러게말이요.》

하고 장경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사사로운 부탁이라고 하시면서 신양광산에 가서 한태혁의 누이동생을 찾아오라고 하셨단말이요.》

《뭐 한태혁의 누이동생!》

성림은 외마디소리로 되묻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신양광산이라면 자기가 있던 남사갱에서 10리안쪽에 있던 광산이다. 태혁이가 살아있을 때 그가 은근히 신양광산 이야기를 물은적도 있고 거기에 누이동생을 두고 왔다는 말을 한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리운 조국땅에 와서 왜 그 생각을 못했는가.

《그래서 금숙동무를?…》

성림이가 떨리는 소리로 말하자 금숙이는 마침내 무릎우에 놓인 자그마한 보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달비를 들이고 쪽진 머리가 흔들리면서 피마주기름냄새를 풍겼다.

성림은 깊숙이 고개를 떨구었다. 조선혁명이 사령관동지의 인간에 대한 위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였다는 생각이 다시는 드놀지 않을 확신에로 승화되는것을 스스로 느낄 때 성림의 눈귀에도 가는 이슬이 배여나왔다.

성림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기는 신양광산 바로 옆굴에서 일했지만 한태혁이의 누이동생 생각을 못했다고 허심하게 말하자 금숙이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난… 사실 태혁동무때문에 내가 동정을 받는다는것이 부끄럽고 송구해서 견딜수가 없어요. 나는 남몰래 우느라고 했지만 내 얼굴은 얼룩져보였던거예요. 그런 꼴을 장군님께서 보시고 걱정하시던것을 생각하면 장군님의 그 큰사랑앞에 너무나 송구해서 얼굴을 들수가 없어요.》

재영이도 심란한 얼굴로 앉아서 이제는 퍼그나 멀어진 청봉의 하늘을 바라보며 어른같이 석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이제는 그치라요. 이제 성림동무가 가서 우리를 만났다고 보고를 드리면 꼭 어떻게 하고들 가던가고 물으시겠는데 찔찔 짜면서 가더라고 하면 장군님께서 좋아하시겠어요.》

《이녀석 말버릇 봐라!》

장경수가 재영의 무릎을 철썩 치며 말했다.

《그만두라요. 자꾸들 그러니까 나두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래요. 녀자 혼자 울어도 모르겠는데 나까지 울상을 짓고 다니면 우리 공작은 영낙없이 실패란말이요.》

《하기는 재영이 말이 옳아. 금숙동무, 이제는 눈물을 거두라구. 그리고 친정나들이 갔다오는 새각시답게 한번 아장아장 걸어보라구, 자 성림동무, 이런걸 가서 보고드려주게.》

장경수의 너스레에 네사람의 얼굴은 비로소 활짝 개였다.

금숙이는 치마말기에서 수은이 좀 벗겨진 동그란 손거울을 꺼내여 들여다보며 머리를 다듬었다. 단발한 머리라 아무래도 머리단장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성림이는 새끼손가락을 까부리고 귀밑머리를 달비밑으로 정성스레 찔러넣는 금숙의 모습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형수님, 그럼 잘 다녀오시우.》

성림은 오래간만에 이런 롱담을 하며 풍산으로 떠나는 일행과 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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