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4 회 )

 

6

 

윤원구네는 신작로까지 다가가지 못하고 안개비가 락수물이 되여 뚤렁뚤렁 떨어지는 커다란 봇나무밑에 엉거주춤 서성거리고있었다.

윤원구는 고리멜빵을 아예 벗어붙이고 척척한 나무밑둥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고있다. 그래도 진호 어머니는 울지도 않는 진철이를 다독거리며 당장 떠날것처럼 임보퉁이가 지지누르는 목을 뽑아 신작로의 동정을 살피고있고 대선아바이와 춘길이는 책상다리를 하고 마주앉아 무엇인가 수군거리고있다. 김인수는 좀 떨어진 이깔나무줄기에 비스듬히 기대여서서 신작로를 쏘아보고있는데 그 여윈 볼이 가볍게 떨고있다.

《어떻게 된거예요?》

필네는 진호 어머니곁으로 다가가 입안의 소리로 물었으나 까맣게 탄데다 추위에 얼어들기까지 하여 더욱 앙상하게 보이는 그 녀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신작로를 눈길로 가리킬뿐 말을 안했다.

정섭이는 진호를 어머니곁에 내려놓더니 휘적휘적 신작로쪽으로 걸어간다.

《이사람아.》

대선아바이가 놀라 소리쳤다. 날카롭게 소리를 치면서도 그것이 신작로의 왜놈들과 경관들에게 들리지 않게 씹어삼키는 소리여서 높지 않은 대신 긴장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해주었다.

정섭이는 울상이 되여 어서 돌아서라고 다급하게 손짓하는 대선아바이와 춘길이를 돌아보며 알수 없다는듯이 고개를 기웃하더니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버렸다.

그가 선 곳에서 신작로까지는 불과 10m도 되나마나한 거리였다.

신작로를 내느라고 지난해가을에 찍어넘긴 크고작은 이깔나무들이 한절반 황이 든채 얼기설기 가려져있고 그것을 지나면 두어자폭으로 도랑을 쳐올린 석비레땅이 누렇게 드러나있다. 거기서 퍼올린 석비레자갈과 모래가 고르롭게 깔린 신작로-《갑무경비도로》는 방금 지나간 비에 축축히 젖어서 차분하게 뻗어있는데 그우에서 지금 한개 소대의 북선제지자위대와 자전거를 뻗친 경부보 그리고 그를 수행해온 순사사이에 옥신각신이 벌어지고있었다.

자위대대렬은 도로한복판에 멈추어서서 헤여지지도 못한채 저희들끼리 웅성거린다.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는 한편 백두산기슭의 산림자원을 략탈하기 위하여 1937년에 조직한 이 북선제지자위대는 회사경비로 유지한다는것이 다를뿐 사실상 편제나 무장, 장비에 있어서 정식군대와 꼭같을뿐아니라 태반이 라남사단의 제대병들로 꾸려져있어서 전투능력이나 실전경험은 오히려 정규군보다 더 나은 능구렝이들의 무리였다.

《여보, 기무라상, 당신네 정 이러기요?》

자위대 소대장 스즈끼중위가 흰 장갑을 한손에 움켜쥐고 내흔들며 소리쳤다.

《소용없어, 소용없어. 정식군대도 통과시키지 말라는거야. 돌아가라구.》

경부보는 오만하게 팔을 내저으며 대렬을 짓고있는 자위대를 보고 소리쳤다.

《바쁘면 돌아가라는 속담도 모르는가.》

《아니 여보.》

하고 스즈끼는 경관의 팔을 잡아채며 주의를 자기쪽으로 끌었다.

《그래 당신은 유격대가 당장 강을 건늘 태세라는 통보도 못들었는가?》

《못듣기는 왜 못들어. 그 통보는 바로 내가 받아서 내가 자네네 중대장한테 전해준거야. 자네네 중대장이 지금 우리한테 와있단말이야.》

《혜산경찰서에?》

《그렇지 않구. 거기에 지금 도경찰부장각하도 나와계시구 75련대장각하도 나와계신단말야. 잔소리 말구 돌아가라구. 천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는가. 총독부에서 총독각하가 아니면 경무국장각하가 오늘래일 도착한다는거야. 뭘 알기나 하구 이래.》

스즈끼는 기무라의 입에서 연방 쏟아져나오는 어마어마한 직함들을 무표정하게 듣고있었다. 그 눈길은 《촌놈이란 할수 없군.》하는 조소를 띠고있었다.

말이 자위대 소대장이지 실상 헌병대의 끄나불인 스즈끼는 기무라가 요란하게 떠벌이지 않아도 오늘의 이 사태가 얼마나 중대한가 하는것을 짐작하고있었다. 가뜩이나 사방에 펼쳐놓은 전쟁형편이 어려운판에 조선인민혁명군이 기다리고있었던듯이 대거 춘기반타격으로 나와서 언제 강을 건너설지 모르는 형세이고보면 그 모든 어마어마한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드는것은 너무나 응당한 일일것이다. 다만 일반장교들과 경찰들에게는 아직도 이런 내막까지는 알려주지 않고있다. 그러니 얼뜨기같은놈들이 유격대가 37년 초여름처럼 쳐나온다 하고 떠들어대고있어도 그 사태의 중대성을 아직 다 알자면 아득히 멀었다. 아무리 경비도로라 하지만 한개 군과 군을 련결하는 도로를 개통하는데 총독이 나온다는것만 봐도 오늘날 조선인민혁명군의 움직임이 얼마나 큰 문제로 된다는것을 짐작할수 있겠는데… 촌놈들같이…

그러나 어쨌든 자기네 자위대소대가 개통을 앞두고 깨끗하게 손질해놓은 경비도로로 경찰과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그 모든 《각하》들을 앞질러 통과한다는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적당치 못할것 같았다.

스즈끼는 흔연히 웃었다. 그는 장갑 쥔 손을 귀옆까지 슬쩍 들어올려 기무라에게 다 알아들었다는 뜻을 표시하고 돌아서는참 호기있게 구령을 쳤다.

《소대 차렷! 날따라 앞으롯!》

그리고는 다시한번 기무라에게 고개를 끄덕거려보인 다음 용감하게 물탕을 차며 삼장방향을 향해 숲속길로 들어섰다.

기무라는 흡족한 표정으로 자전거뻗치개의 용수철을 호기있게 걷어찼다. 너무 기세를 올리는바람에 우둔한 군화가 바퀴살까지 울려서 지르릉하고 소리를 내였다. 그 소리 역시 기무라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주어서 그는 다시한번 흡족한 웃음을 입가에 짓고 막 자전거안장에 몸을 실으려다가 문득 앞길을 내다보고 이마살을 찌프렸다.

《요시다, 이리 좀 오너라!》

기무라는 그 우둔한 편상화로 자전거를 다시 뻗치고 장갑낀 두손을 절도있게 뒤로 가져다가 허리어방에서 정확하게 맞쥔 다음 길을 따라 아래우로 서성거리며 앞뒤의 전망을 살폈다.

막 자전거를 따라 달려가려고 모자턱걸이를 내리던 농사동주재소 순사 요시다는 두손을 맞비비며 상관의 곁으로 다가갔다.

《참, 여기 주재소놈들 일을 망탕 한단말이다. 저기 길이 구부러진데를 좀 보아라.》

기무라는 창대로 찌르듯이 손을 쳐들어 무포쪽으로 구붓하게 휘여돌아간 길목을 가리켰다.

《예…》

요시다는 아무리 봐야 미끈하게 잘 정리된 길이 보일뿐이라 표표한 기무라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이리 오너라!》

기무라는 요시다의 어깨죽지를 끌어다 자기앞에 내세우고 다시 문제의 그 굽인돌이를 가리켰다.

《너도 유격대가 무시로 출몰하는 일선지대의 경찰관으로서 유격대가 가장 잘 쓰는 전술이 뭣이라는것쯤 알테지?》

요시다는 이때 제꺽 대답을 해야 기무라가 좋아하겠는지 우물쭈물해야 좋아하겠는지 몰라 잠시 망설이는데 성급한 기무라는 제김에 내리엮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매복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전술이다. 그런데 바로 유격대를 소멸하자고 몇해째 공사를 해온 이 경비도로에 저런 으슥한데를 남겨놓다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저 길가의 나무들을 더 쳐내야 하겠다.》

《예, 그런데 지시는…》

요시다는 잘못하다가는 자기가 관할구역도 아닌데서 애매한 봉변을 당할수 있다는것을 깨닫고 서둘러 변명하였다.

《물론 지시에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직선상에서는 좌우 5m만 나무를 치면 되는것으로 되여있다. 그러나 여기는 곡선이란말이다. 도대체 이런 곡선을 낸것부터가 잘못이다. 설계한놈들을 잡아족쳐야겠다.》

요시다는 할말을 찾지 못하고 흐릿한 하늘을 쳐다보며 내심 오늘 신수를 저주하였다. 항일유격대의 국경진출과 관련하여 대대적인 경비증강대책을 세우는 가운데 함남도, 함북도의 경찰, 군대가 모두 통일적인 지휘체계하에 들어가게 되여 어제 왕청같은 혜산경찰서의 기무라경부보가 개통을 앞둔 갑무경비도로상태를 검열하러 삼장까지 왔었다. 삼장읍내에서 하루밤을 묵은 기무라는 아침나절에 농사동을 지나게 되였는데 그를 도, 군의 경계까지 배웅하러 나온 사법주임이 호의를 보이느라고 요시다를 딸려보낸것이다. 《특설토벌대》본부가 혜산경찰서에 들어앉아있고 총독이나 경무국장이 온다 해도 거기에 우선 들릴것이기때문에 아무쪼록 자기 관할구역에 대해 좋은 보고를 해달라는 소리였다. 요시다는 속으로 딱 싫었으나 재간이 없었다. 사실은 오늘 옥암동구장 리덕선이와 청결검사를 나가게 되여있었다. 그것 역시 총독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의 하나였다. 어쨌든 리덕선이와 같이 나서면 오래간만에 배불리 먹고 클클증을 풀만큼 충분히 마실수도 있는것이다. 그런데 구질거리는 비속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놈을 따라가자니 우선 숨이 가빠 못견디겠다. 그러나저러나 여기는 혜산서 관할구역이 아닌가. 그렇게 똑똑한 소리 하고싶으면 미리미리 할것이지 이제와서 왜 이 야단인가.

《요시다!》

기무라는 촌순사의 속이 환히 들여다뵈는 말상을 당장 집어삼킬듯이 노려보며 또박또박 잘라서 말했다.

《지금 어째서 도와 군의 경계를 무시하고 이런 초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는가 하는것을 경찰관으로서 명심해야 한다. 관할구역을 따질 때가 아니다.》

《예!》

요시다는 제 속을 다 꿰뚫어보고 하는 기무라의 말에 흠칫하여 덜컥하고 발뒤축을 모아붙이며 차렷자세를 취했다.

《너는 즉시에 저 벌목구역을 적어도 5m이상 더 넓혀서 차후 군대와 경찰의 이동에 사소한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겠다.》

《그런데 여기는 무인지경이 돼서…》

《왜 무인지경이란말이냐? 저기 수상한자들이 있지 않느냐?》

기무라는 또다시 손을 창대처럼 뻗쳐 봇나무가에 옹송그리고 앉은 윤원구네 일행을 가리켰다.

《저자들을 다 단속해라! 앞으로 이 어방에 나타나는 통행인들은 모두 단속해야 한다. 그것들을 공사에 내몰면 된다.》

《그래도 무슨 연장같은것이 있어야겠는데…》

요시다는 나무를 쳐내라는 길목을 돌아보며 엄청난 일감에 기가 차서 중얼거렸다.

《밥통같은놈!》

기무라는 빽하고 소리쳤다.

《여기 나다니는것들은 대개가 벌목부이다. 연장은 가지고있을것이다. 모자라면 <이와이구미>에 사람을 보내서 빌려오면 된다. 보아라, 저놈들도 다 도끼와 톱을 가지고있지 않느냐!》

기무라가 가리키는쪽을 돌아보니 아닌게아니라 이사짐보따리나 멍구럭같은데 도끼자루며 톱자루가 비죽이 솟아있다.

요시다는 할말을 못찾고 멍청히 서버렸다.

《오늘 오전중으로 일을 끝내야 한다. 내가 저녁에 다시 알아보겠다.》

기무라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엉치를 잔뜩 내밀고 서서 경례를 오래도록 붙이고있던 요시다의 말상은 기무라의 모습이 나무에 가리워 보이지 않게 되자 별안간 흉맹스럽게 이그러졌다.

오늘은 신수에 옴이 붙어도 단단히 붙었다. 리덕선의 술을 놓친것은 그만두고라도 이런 어수선한 날씨에 벌목공사를 벌려야 하다니 경찰관이 처서판의 십장인가, 게다가 인부라도 똑똑하다면 모르겠다, 저것들을 데리고 어떻게 오전중으로 일을 끝낸단말인가.

그러나 기무라의 말을 생각하니 사태가 중한것은 사실이다. 설사 그것이 공연히 사람을 골탕먹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기무라가 한번 말한 이상 안하고는 못배기겠는데 항차 저 으슥한 숲속에 유격대가 숨어있다가 불쑥 달려나온다면 그 총알이 자기 가슴인들 뚫지 못할것인가.

요시다는 빠질 구멍이 없다는것을 통감하였다. 그러자 까닭도 없이 자기의 손탁에 걸려든 뜨내기들에 대한 증오가 부걱부걱 괴여올랐다.

그는 봇나무밑을 가로쏘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봇나무가로 돌아서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한곳에 모여들었다.

요시다는 칼을 한손으로 거머잡고 달려드는참 소리쳤다.

《오이, 오이, 이리 오너라. 증명서 있는가? 모두 어디를 가는가?》

요시다는 물어보나마나 뻔한 뜨내기들이였지만 어떻게 하나 언치를 걸어야겠기때문에 처음부터 사납게 굴었다.

《각자 보따리를 들고 한줄로 서서 증명서를 꺼내라. 너는 뭐야? 한줄로 못서겠는가?》

요시다는 주린 승냥이처럼 봇나무밑을 오락가락하며 소리치다가 한옆에 따로 떨어져서 어정거리는 정섭이를 보고 사납게 으르릉거렸다.

《나는 이 사람들하고 다르오다.》

정섭이는 별소리 다한다는듯이 코김을 내불며 저쪽으로 외면하였다.

《이놈아, 다르기는 뭐가 달라. 여기 와 서란말이다.》

요시다는 단숨에 거기까지 달려가서 정섭이의 어깨죽지를 잡아끌었다.

《이거 놓라요, 넨장.》

정섭이는 송충이라도 털어버리듯이 그놈의 손을 쥐여뿌리고 제발로 성큼 필네뒤에 다가섰다. 필네의 커다란 눈이 원망스럽게 정섭이를 지켜보고있었다.

《쳇!》

정섭이는 이런데서까지 공연한 화를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느냐는 필네의 말없는 책망에 대해서도 거칠게 코김을 내불며 먼 하늘로 눈길을 돌려버렸다.

《망할놈의 자식! 너 신사동 있는놈이지?》

하고 요시다는 당장 잡아먹을듯이 쏘아보다가 단단히 속치부를 해두었다는듯 턱을 한번 끄떡하고는 모두에게 소리쳤다.

《증명서는 반대로, 이렇게 내가 보기 좋게 들고있어야 한다. 글자가 반대쪽으로 되게말이다.》

요시다는 맨앞에 서있는 윤원구의 려행증명서를 들고 보란듯이 내흔들며 설명을 하다가 대선아바이와 춘길이가 증명서를 가지고 서로 쑥덕거리는것을 보았다.

《뭔가, 이자식들이!》

요시다는 다짜고짜로 그리로 달려가 춘길이의 면상을 후려갈겼다.

《아이쿠!》

춘길이가 증명서와 함께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풀썩 주저앉자 대선아바이가 그앞을 막아서며 우들우들 떨리는 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증명서를 어느쪽으로 내대라고 했느냐고 물어서 그렇게 됐습네다. 이 사람한테는 잘못이 없습네다.》

《증명서를 이렇게 내대라고 했는데 그것도 모르겠는가? 멍텅구리같이…》

한참 무시무시한 분위기속에서 증명서를 검열했지만 도경찰부의 시뻘건 공인이 찍힌 도강증명서까지 가지고있는판이라 트집을 잡을데라고 별로 없었고 그중 증명서가 부실한 정섭이조차 그 자신이 서뿔리 신사동에 있다는것을 여러 사람 면전에서 미리 확인한셈이니 더 시비를 걸어볼데가 없었다.

그러나 요시다는 그런것쯤에 동요를 느낄 위인이 아니였다.

《에- 너희들은 민간인으로서 엄격히 통행이 금지된 경비도로를 함부로 통과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아니 여보시오.》

아까 큰길우에서 경관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대충 엿들은 김인수가 한팔을 쳐들고 말했다.

《우리는 경비도로로 가려고 하지 않았소. 길이란 천하의 공유물인데 다녔다해봐야 그게 무슨 잘못이겠소. 항차 우리는 여태 근방에 가지도 않았단말이요.》

《아, 아, 무슨 소리까? 내가 네놈들의 마음속을 다 안다. 너희가 이 길로 가려고 오지 않았는가?》

《왔다는데는 어떻단말이요?》

윤원구가 씹어삼키듯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너희들이 이 경비도로를 위해서 일을 좀 해야겠다. 이것은 제국의 안녕을 지키는 경비도로인것만큼 국민은 누구나 다 여기에 동원될 의무가 있다. 에- 그래서 이제부터 저 굽인돌이의 안쪽에 있는 나무를 깨끗이 쳐버려야겠다.》

《여보시오, 나리님.》

장대선아바이가 쳐버려야 되겠다는 길가의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너무나 어이가 없어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먹고살 길이 없어 고향땅을 버리고 강을 건너가자는 사람들인데 여기서 나무를 찍느라고 지체를 하게 되면 입에 풀칠은 어떻게 하라는것인가요? 품삯은 주는가요?》

《이놈의 두상이나!》

요시다는 고리눈을 부릅떴다.

《아직 매나 적게 맞아서 품삯이나 달라는가? 애국로동에 무슨 품삯이 있는가? 두상이 매를 좀더 맞아봐야 알겠는가?》

《아이구, 나리, 내인들이랑 앓는 아이들까지 있는데… 사정 좀 봐주시오. 이 무인지경에서 날이 저물면 어떻게 하갔나요?》

대선아바이는 통사정을 들이댔다.

그러나 요시다가 눈을 딱 부릅뜨고 《뭐야!》하고 악을 쓰는바람에 대선아바이는 미처 마무리지 못한 말을 입안에서 중얼중얼하며 삼키고말았다.

《순사나리!》

정섭이가 성큼 나섰다.

《나 혼자 이 나무를 다 치겠소.》

《호- 너나 용감한 청년이다. 그래 네가 다 베겠는가?》

《그렇소, 그러니 이 사람들은 보내주시오. 강을 건너갈 사람들인데 숲속에서 날이 저물면 어떻게 하겠소. 보시오, 이 아이는 진짜 앓는단말이요.》

《너나 다른 사람 걱정 안해도 좋다. 아이는 내려놓고 녀자도 일이나 해라.》

요시다는 진호 어머니를 향해 돌아서더니 다짜고짜 띠개에 손을 가져갔다.

《여보, 나는 그러면 일 못하겠소.》

정섭이가 소리치자 요시다는 잠시 손을 멈추고 노려보았다.

《일이나 못하겠는가? 좋다. 일이나 안하면 죽여버리겠다.》

요시다는 사납게 울부짖더니 진호 어머니에게서 억지로 아이를 풀어냈다.

《나리님, 나리님, 살려주시오. 일하겠소다. 아이를 업고 일하면 되지 않소다.》

진호 어머니는 울음섞인 소리로 애원했으나 요시다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무밑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인 진철이는 발버둥치며 울었다. 그옆에 정섭이의 큰저고리를 쓰고 쪼크리고앉았던 진호도 울음을 터뜨렸다.

《네놈이나 일 안하겠는가?》

요시다는 정섭이의 어깨죽지를 잡고 길가로 내끌었다.

《가자구. 이사람들, 가서 얼른 해버려야지 이 날벼락을 피하는수가 어디 있나.》

대선아바이가 주섬주섬 보짐속에 찔러둔 도끼를 들고 나섰다.

 

7

 

이무렵 삼지연쪽에서 두사람의 행인이 신작로를 따라 걸어오다가 굽인돌이어방에서 벌어진 참경을 먼발치서 띠여보고 얼른 길가의 덤불속에 숨어서 동정을 엿보고있었다.

둘 다 후리후리한 키에 날파람이 있게 생겼는데 나이 좀 들어보이는쪽이 더 검실검실하고 가로찢어진 눈이 유난히 빛을 뿌렸다. 척 보는 인상에 벌써 갖은 풍상을 다 겪어서 웬만한 일에는 눈섭도 까딱 안할 그런 느낌이였다. 몸을 봐도 굵직굵직한 골격이 늘씬늘씬한게 탄력에 넘쳐서 마치 살과 뼈로 되여있는것이 아니라 강철로 빚어놓은것 같았다.

《에익! 내 저놈을 쏘아버리겠습니다.》

젊은쪽이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서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손을 괴춤으로 가져갔다.

《성림동무, 정신이 있소?》

눈이 가로찢어진 사나이가 얼른 성림의 후들거리는 손을 꽉 움켜잡고 낮게 속삭였다.

《임무를 잊어버렸소? 또 무슨 재구를 치자고 이러오. 손을 싹 거두오.》

이처럼 엄하게 상대를 눌러놓은 사나이는 비분에 글썽거리는 성림의 눈을 이윽히 들여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참아야 하오. 더 큰 복수를 해야 할게 아니요. 그런데 왜 그렇게 흥분했소? 동무야 왜놈들의 행패를 처음 보는것도 아니지 않소? 저기 누가 아는 사람이 있는게 아니요?》

성림은 잠시 고개를 수굿하고있더니 정찰조를 책임진 김준삼을 바라보며 애원조로 말했다.

《중대장동무, 내가 흥분한것은 아는 사람이 봉변을 당하기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저기 저 고리멜빵을 지고있던 사람은 윤원구라고 전에 내가 고진동광산에 있을 때 잘 아는 사람입니다. 가족들 걱정때문에 운동에는 관계하지 않았지만 사상동향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고진동에서도 살길이 막혀 허우적거리더니 종시 어디로 또 흘러가는 모양이군요. 그런데…》

하고 성림은 준삼에게 잡힌 손을 슬그머니 뽑아내며 짧게 한숨짓고나서 이었다.

《이제 말하는걸 듣지 못했습니까. 저까짓 왜놈순사 한놈이 무엇이길래 저런놈에게 저 숱한 사람들이 코를 꿰여 끌려다닌단말입니까. 저 발버둥치는 아이를 보십시오. 내가, 내가 조국의 이런 현실을 물론 처음 보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 겨울에 바로 이런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의무와 신념을 똑바로 새기지 못해서 과오를 범한 내가 아닙니까. 이제 정신을 차리고 짓밟히는 조국의 현실을 보니 참을수 없습니다. 총을 차고있는 나까지 무엇때문에 참는단말입니까. 중대장동무, 저놈을 제낍시다. 총소리를 내지 않고도 감쪽같이 해치울수 있습니다.》

《성림동무, 거 참 야단났구만.》

하고 준삼은 이제는 별로 말릴 생각도 없다는듯이 돌아앉아 길가를 살폈다. 신작로 굽인돌이에서는 이미 나무치는 작업이 벌어져서 밸풀이겸해하는 도끼질소리와 신세타령처럼 쓰르릉거리는 톱질소리가 울려오고있었다. 요시다는 때마침 유곡쪽에서 나타난 로인 두사람을 또 억지다짐으로 나무찍는데 끌어넣느라고 게사니청을 돋구고있었다.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야 준삼은 말을 이었다.

《성림동무, 제 밸이나 풀고 기분이 나는대로 돌아치는것이 혁명이 아니요. 지난 겨울의 행군을 생각해보오. 사령관동지께서 바로 우리 조국의 이런 참상을 구원하시려고 그 험한 길을 헤쳐오시지 않았소. 그래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면서 그 시련을 이겨냈소? 동무는 참을성이 없는게 야단이야.》

성림이는 고개를 푹 떨구고앉아 숨을 몰아쉬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그건 사실입니다. 나는 지난 겨울을 끝내 견디여내지 못했지요. 절벽으로 둘러막힌 후방밀영에서 그 엄광호라는놈의 독설과 고문만 겪다나니 이제는 우리 혁명의 앞길이 정말 막혔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 아무것도 귀중한것이 없고… 그래서 그놈이 요구하는대로 자백서라는것도 써냈습니다. 이런 더러운 행동을 한 내가 분노에 대해 말한다는것부터가 주제넘습니다.》

《동무가 왜 주제넘는단말이요? 이 동무가 점점 한심한 소리 하는구만. 내 이담에 말하자고 했는데 안되겠소. 저리로 좀더 깊이 들어가기요. 내 동무에게 할 말이 있소.》

김준삼은 성림의 소매를 툭 건드리더니 나무사이로 소리없이 몸을 빼여 숲속 깊이로 들어갔다. 성림이는 잠시 주저하다가 뒤를 따랐다. 신작로와 오솔길에서 퍽 떨어진 으슥한 나무그늘에 들어가서야 김준삼은 성림을 진대통우에 앉히고 저는 서서 서성거리더니 짐짓 엄하게 말을 꺼냈다.

《내 솔직히 말해서 사령관동지로부터 동무가 이 일대 지형에 밝으니 정찰에 데리고가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다른 사람과 바꿔달라고 제기했댔소. 내 동무를 잘 모르기는 해도 짐작에 꼭 이러루한 일이 있을것 같더란말이요.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오? 그 동무가 한번 과오를 범했다고 그러는가? 나는 그 동무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개조하려고 애쓴다는것을 믿는다. 반절구전투때도, 구가점전투때도 그 동무는 잘 싸웠다, 그 동무가 바탕이 나쁜 사람이 아니다, 과거에도 잘 싸웠고 또 지난 행군때 과오도 범했지만 전우들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말씀하셨소. 참 성림동무, 7도구 못미쳐서 눈구뎅이에 쓰러진적이 있소?》

준삼은 갑자기 활기를 띠며 성림의 옆에 나란히 앉아 물었다.

《있지요. 아주 눈구뎅이에 묻혀서 얼어죽을번했습니다. 그런걸 김정숙동무가 까맣게 멀어진 행군대렬에서 되돌아와서 나를 구해주었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사령관동지께서 아신단말입니까?》

성림은 놀라서 준삼이에게로 마주 돌아앉아 다급하게 물었다.

《아시오. 그것뿐만아니라 성림동무가 거의 의식을 잃게 되여가지고도 적탄이 날아오자 김정숙동무를 막아주었다고 하시더군.》

《내가요?》

성림은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런 일 없습니다. 다만 적탄이 날아오는데 김정숙동무가 나때문에 거기 서있기에…》

《아마 김정숙동무가 사령관동지께 다 말씀드린것 같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정말 자기를 부끄럽게 생각했소. 나야 입으로는 전우들을 사랑한다고 떠들지만 실지 동무들에 대해 깊이 알고있는것이 없단말이요.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소. 이렇게 바탕이 좋은 동무도 혁명투쟁속에서 부단히 단련하여 우리 혁명에 대한 신념으로 튼튼히 무장하지 못하면 과오를 범하게 된다, 그런것만큼 이런 동무들을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 힘을 믿고 혁명을 더잘 해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단련할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어야 한다, 조국에 와서 조국인민들이 살아가는 형편도 보고 그속에서 억척만번 죽더라도 끝까지 혁명을 하겠다는 각오도 다지고 또 자기 힘에 대한 신심도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 사령관동지의 이런 말씀을 듣고 나는 진심으로 자기비판을 했소. 그래 성림동무, 동무가 사령관동지의 이렇게 큰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소?》

성림은 말을 못하고 어깨만 들먹거렸다.

김준삼은 머리를 가슴에 묻고 깊은 회오에 잠긴 성림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진대통에 걸터앉은채 석쉼하게 갈린 목소리로 뜨직뜨직 말했다.

《우리는 그이의 사랑을 다 헤아릴수도 없고 그이의 구상을 다 짐작할수도 없소. 그러니 우리는 무슨 일이든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신대로 꼭 그대로 집행해야 한단말이요.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촌순사 한놈때문에 소동을 일구어서야 되겠소.》

성림은 여전히 말을 못하고 서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이지도 않는 서남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미 사령관동지께서 도착하시여 자기들을 기다리실지도 모르는 청봉이 그쪽에 있었다.

《사령관동지!》

성림은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부르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그를 지켜보던 준삼은 본시가 쾌활한 사람이라 금시까지 엄숙하던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띠우고 성림의 어깨를 툭 쳤다.

《자, 알아들었으면 임무수행에 달라붙어야지. 사령관동지께서는 동무의 참회를 바라시는것이 아니라 진정한 혁명가가 되기를 바라신단 말이요.》

《알겠습니다.》

성림은 삑 돌아서서 갈린 목소리지만 힘차게 대답했다.

《우리도 도로에 나가잡니까?》

《그렇소. 기회가 마침 좋지 않소? 경비도로때문에 나온 순사놈도 있겠다, 아는 사람도 있겠다, 뭘 알아내는데는 안성맞춤이요. 보오, 저놈들이 놀아나는것만 봐도 뭐가 든든히 있기는 있는 모양이요.》

두사람은 일부러 신작로로 해서 벌목현장으로 코노래를 슬슬 부르며 다가갔다.

요시다는 한참 악을 쓰며 사람들을 강제로 일에 붙여놓고보니 이제는 어지간히 맥이 나는지 찍어넘긴 통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담배를 끄스르고있었다.

등뒤로 다가간 두사람은 일부러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나리님, 문안드립니다.》

《누구얏?》

요시다는 화닥닥 놀라 뛰여일어났다.

《수고를 하시는군요. 저희들은 품팔이군인데 어디 일자리가 없을가 해서 돌아다니는판이올시다. 여기서 오늘 밥값이나 좀 벌게 해주십사고 해서 이렇게…》

《일공군인가?》

요시다는 두사람을 아래우로 훑어보며 물었다. 보매 둘 다 힘꼴이나 씀직한게 이런판에 부려먹기는 제격일것 같다. 그러나 일부러 거드름을 부리며 제빠두해서 물었다.

《예, 일공군입지요.》

하고 김준삼은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일공군노릇을 하고파서 하나요. 실은 우리들도 저 히가시목재판에서 똑똑한 일자리를 가지고있었습지요. 그런데 대차를 타고 가다가 내림받이에서 가 먹지 않아 두어차판 굴려팽개쳤소다. 이거야 신수놀음이지 나나 이 사람이 제 죽고싶어서 그노릇을 했겠나요. 그래도 구미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습디다. 손해배상을 시켜도 어찌 톡톡히 시키는지, 10년동안 고향 가서 장가들겠다고…》

김준삼의 이야기가 길게 늘어지자 요시다는

《아, 아 알겠다. 무슨 말이 그리 긴가?》 하고 손을 내저었다.

리성림이도 놀랐다. 생판 있지도 않는 이야기를 앉은 자리에서 꾸며대는데 그러고보면 실지 그러루한 이야기가 준삼의 지난날에 있었던게 아닐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수룩한 촌순사놈은 세마디안팎에 김준삼의 줌안에 들고말았다.

《좋아, 좋아, 그럼 오늘 여기서 나무나 찍어봐라. 일이나 잘하면 내가 이시가와구미나 호리모도구미에 넣어주겠다. 거기 십장, 감독 다 나하고 형님 동생하는 사이다.》

그러면서 요시다는 지금 진행하고있는 벌목공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아울러 여기에 동원된 사람들이 다 《불온분자》이기때문에 잘 감시하라고까지 하였다.

김준삼은 어느새 십장격이 되였다. 그는 공작에 필요할가 해서 주머니에 넣고나온 로획품 《미도리》담배를 요시다에게 권하면서 지금 혜산경찰서에 《특설토벌본부》가 들어앉고 래일이나 모레쯤 총독이 아니면 경무국장이 경비도로개통 겸 국경경비상태를 순찰하러 내려온다는것까지 알아냈다.

그러는 과정에 김준삼은 윤원구네 일행을 비롯한 강제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자, 바싹 다궂자구요. 갈길이 급하다고만 말고 일을 빨리 끝낼 궁리를 하잔말이요.》

김준삼이 이처럼 열을 올리며 베여넘긴 통나무를 둔장질해서 숲속으로 굴리는데 별안간 찌륵찌륵하고 가죽포대 찢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다음순간 솨- 하고 바람소리를 일구며 통나무가 면바로 준삼의 정수리를 향하여 넘어왔다. 준삼은 둔장대고 뭐고 집어팽개치고 몸을 날렸다. 이깔나무가지가 잔등을 후려치더니 질쩍한 땅바닥에 태질을 하며 넘어졌다.

《무슨짓이야? 사람을 못봐!》

김준삼이 소리치자 나무를 떠넘긴 정섭이가 도끼를 찾아들고 수건으로 목덜미를 문지르며 곱지 않게 눈을 치떴다.

《여기 나무는 눈깔이 없어서 그렇소다.》

사람이 상하는가싶어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던 윤원구며 여러 부역군들도 정섭의 비뚤어진 대답이 우스워서 소리내여 웃었다. 준삼이도 웃고말았다. 그러면서 심술을 피우는 그 청년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얼마후 담배들을 한대씩 피우자고 한곳에 몰켜앉았을 때였다. 사람들은 준삼이가 꺼림직해서 일부러 멀찍이 돌려놓고 피해앉았는데 그는 청하지도 않는 곳에 일부러 찾아와서 한가운데를 쩍 가르고 나앉았다.

《그래 임자가 나를 왜놈앞잡인가 해서 편포짝을 만들자고 한것같은데.》

하고 준삼은 정섭이의 무릎을 철썩 치며 꺼리낌없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같은 조선사람끼리 그럴것이 아니라 해볼테면 저런 왜놈하고 해봐야 할게 아닌가.》

《왜놈하고는 못해볼줄 알고 그러오!》

정섭이도 만만치 않게 맞받아쳤다.

《왜놈하고 해본다는게 그따위 밸풀이나 해서 소용이 있는가, 해볼테면 전년에 김일성장군님의 혁명군이 보천보를 들이치듯 그렇게 본때있게 해야지 소용이 없단말이야.》

사람들은 그 한마디에 눈이 둥그래졌다. 모두 10여m 떨어진 곳에 두다리를 뻗치고앉아 건들건들 졸고있는 요시다쪽을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사람이 그렇게 비위를 돋구어주더니 이제는 또 이모양으로 조심성이 없는가 하는 눈치들이였다.

준삼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야 어떻든 제 할말은 하고싶은대로 다했다.

《지금이 꼭 그때 비슷한 땐데… 그때도 왜놈들이 조선사람들을 다 제놈들의 노예로 만들고 조선의 명줄을 아주 끊어놓자고 할 때 김일성장군님께서 강을 건너오시지 않았소. 지금이 꼭 그때 비슷하단말이요. 지금이야 그때보다 더 하지요. 지금 조선사람치고 어디 사람 사는것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있소. 죽지 못해 살아가지. 조선은 아주 망하게 된판이란 말이요. 이런 때 조선의 혁명군이 쳐나온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래 어디서 김일성장군님의 유격대에 대한 소식을 더러 들어본게 없소?》

《우리는 그런 소리 들은게 없소.》

윤원구가 아직 준삼에 대한 의심을 풀지 못하고 단마디로 잘라매였다.

《허, 이 형님이 아직 나를 믿지 못하시는 모양이군. 그런게 아니라 나도 세상 살아가는 일이 하도 답답해서 여러분네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좀 해보자고 일부러 저놈을 얼려넘긴거요. 내가 저놈의 앞잡이는 아니란말이요.》

준삼이가 소탈한 목소리로 이처럼 솔직하게 말을 하니 어쩐지 사람들의 생각에도 앞잡이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느껴졌다. 림시 발뺌으로 순사를 업어넘긴것이라면 그의 말을 들어볼만도 하다. 어쨌든 그의 입에서 김일성장군님의 이야기가 나왔다는것은 희한한 일이 아닌가.

이래서 준삼이가 사람들의 가슴에 맺혀놓았던 불신의 매듭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풀어놓았을 때는 리성림이 이미 구면지기들과 인사를 나눈 뒤였다.

성림이가 광산을 떠난 뒤에 온 필네와 김인수를 내놓고는 윤원구네 일행이 모두 성림이를 잘 아는 처지였으나 요시다의 눈길이 따르고있었기때문에 마음놓고 회포를 나눌길도 없었다. 같이 톱질을 하면서, 혹은 베여넘긴 나무를 둔장질하면서 몇마디 인사를 주고받았을뿐이였다. 윤원구의 안해만은 준삼이의 롱간질에 넘어간 요시다가 아이를 보도록 내버려두었기때문에 그 어방의 나무에 도끼질을 슬렁슬렁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그런데 곱단이랑은 다 어떻게 하고 아이가 둘밖에 없소? 그 젖먹이는 내가 못보던 아인데…》

성림의 말에 아낙네는 쿨쩍거리기부터 하였다.

《야학선생이 간뒤로 아이를 둘씩이나 떼웠다우. 하나는 곱밸을 앓아서 떼우고 큰놈은 광차에 깔려죽었다우.》

《아니 진수가 광차에 깔렸단말이요? 그놈이 장난이 세차더니 종내…》

《장난이나 치다가 죽었다면 이 에미 가슴이 덜 아프겠소다. 겨우 열셋에 난걸 푼전이라도 벌어보자고 이 미련한게 광차 미는데 데리고 나갔지요. 허기가 져서 배들배들하는걸 끌고다녔더니 하루는 그 남사갱 올리굴에서 광차가 아래로 짐이 쏠리는바람에 같이 뿌리웠는데 이 죄많은것은 피여나고 그 애는 종시 숨을 거두었소다.》

성림은 힘껏 도끼를 내리쳤다. 손바닥같은 도끼밥이 찍혀나갔다.

《그래 만주에 가면 살길이 열린답디까?》

울분에 못이겨 한참 숨을 씩씩거리며 도끼질을 하던 성림은 몇참 못가서 나무가 넘어지게 된것을 보고 허리를 폈다. 이처럼 세차게 도끼질을 해서 나무가 넘어져버리면 일자리를 옮겨야 되고 따라서 이 아낙네와 이야기를 더 나눌수 없게 될것이였다.

《금천동에 노다지바람이 불었다우다.》

《금천동에 노다지바람이 불면 아주머니한테 금덩어리를 나누어 주겠답디까?》

《그래도 리호철이는 거기에 가기만 하면 한밑천 잡기는 어렵지 않다는데요. 우리 진호 아버지는 이제는 술, 담배 다 끊었소다.》

《허허허.》

성림은 너무 기가 차서 한참 속궁근 소리로 웃다가 물었다.

《대체 그 리호철이란 작자가 누구요?》

《여기 군산림주사 하다가 화룡의 광주가 됐다는데 권세가 뜨르르하답디다. 륙혈포도 차고다닌다오다. 참 그 남사갱의 살짝곰보덕대 모르겠소다? 그 살짝곰보의 동생이라구 해요.》

《남사갱의 살짝곰보? 리룡철이말이요?》

《옳소다. 그 살짝곰보가 돈 떼먹고 달아났다가 붙잡혀서 징역을 산다더니 웬걸 이제 오면서 보니까 차가수물동가에서 한가스레 낚시질만 합디다. 동생이 권세가 있고 돈이 있으니 그 살짝곰보도 이제는 신수가 훤했습디다.》

《개같은놈들, 이제는 기왕 강을 건느게 됐으니 할수는 없지만 그놈들 덕에 조금이라도 신수가 펴지려니 생각지 마시우. 그저 어디 가서든 제 주먹 하나를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조선사람 못사는게 다 나라가 없는탓이란말입니다.》

《글쎄 전에도 야학선생이사 늘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다? 허지만 우리 조선이 언제 독립을 하겠다구 그날만 기다리고있겠수.》

《그렇게 기약 없는 일이 아닙니다. 아주머니, 맥을 놓지 마시오. 이제 머지 않아 좋은 소식을 듣게 될거우다.》

성림이가 진호 어머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동안 준삼이는 남정네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푸짐하게 벌려놓았다. 그는 일도 걸싸게 하였다. 도끼질을 해도 온 산판이 쩡쩡 울리게 해제꼈고 톱질을 할라치면 구수하게 흥부의 박타령을 불러넘기며 힘도 들이는것 같지 않게 쓰렁쓰렁 잘도 당겼다.

이제는 윤원구도 정섭이도 지어 김인수까지 그와 짝패가 되여 일하자고 들었다.

《세상이란 보기에 따라서 바로 뵈기도 하고 꺼꾸로 뵈기도 한단말입니다. 진펄에 살던 개구리가 금강산에 가서 허리를 쭉 펴고 일만이천봉을 바라보니 이게 웬일인가, 절승경개 이름높던 금강산이 자기네 진펄과 똑같더라는 이야기도 그게 다 눈알이 어디에 박혔는가 하는 문제란말입니다. 눈알이 바로 박히지 않으면 세상을 똑바로 볼수가 없지요. 지금 세상으로 말해도 자, 사방에 왜놈의 군대, 왜놈의 경찰, 왜놈의 말, 왜놈의 신문, 왜놈의 권세, 이런것만 보이고 조선사람 싸우는것은 보이지 않고 조선사람 힘도 보이지 않고 나중에는 제 몸에 붙어있는 이렇게 큼직하고 든든한 두주먹도 보이지 않거던요. 그래서 저따위 얼간같은놈앞에서도 벌벌 기게 된단말입니다.》

《그래 당신은 그 조선사람이 싸우는것을 어디서 봤기다 그런 소리 하우?》

윤원구는 철색도는 얼굴에 심각한 그늘을 짓고 김준삼에게서 어떤 진실을 파내보려고 끈덕지게 캐고들었다.

《참, 이 나그네가 말도 그럴듯하게는 하누만. 그러니 이 장대선이도 이 소라같은 제 주먹을 못보고 살아가는 셈이야. 허허허.》

장대선이는 아직도 준삼의 말뜻을 깊이는 새기지 못했지만 그 구수한 입담에 끌려들어 연신 턱을 끄덕거렸다.

《내가 조선사람 싸우는것 봤느냐구요?》

준삼은 윤원구의 소매자락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그래, 윤형은 저 15도구랑 반절구에서 왜놈들이 김일성장군님 부대에 되게 얻어맞았다는 소문을 못들었소?》

《아니, 그럼 그게 사실이요? 일전에 우리 토장에 다니는 말파리령감이 쉬쉬하며 그 비슷한 소리를 하더니…》

윤원구는 감질이 나서 바싹 다가들었다.

《이제 두고보시오. 김일성장군님 부대가 머지 않아 조선으로 쳐나오지 않나.》

준삼은 이렇게 사람들과 친해져서 그들의 어두운 가슴에 희망을 안겨주기도 하고 또 그들로부터 적지 않은 적정자료를 알아내기도 하였다.

요시다 역시 김준삼에 대해 대만족이였다. 그리하여 5m이상 치라는 벌목구역을 가까운곳만 적당히 치고 좀 떨어진데는 3m도 치나마나했지만 준삼이가 너스레를 떠는바람에 넘어가서 일을 아주 잘했다고 치하까지 하고 작업을 마감지었다. 김준삼과 성림이에게는 래일 농사동주재소에 찾아오면 자기가 꼭 일자리를 알선해주겠다고 거듭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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