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3 회 )

 

4

 

이무렵 사령관동지께서는 각지로 내보내신 정찰조들가운데서 일부 먼저 돌아온 정찰조들과 숙영지에서 나무찍는 소리를 듣고 찾아온 부근 목재판의 로동자들을 만나보시고 막 사령부 장풍에서 나오시는길이였다.

정찰조원들의 보고에 의하면 5호물동을 건너오기 전에 적들의 이목을 딴데로 돌리기 위하여 진행한 24도구목재소와 횡산목재소로 가는 위만군 말파리떼에 대한 습격전투는 적들에게 큰 충격을 준듯 하였다. 지난 4월초 해동과 함께 련속 구가점, 15도구, 반절구 등 압록강기슭을 얻어맞은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이번에 틀림없이 압록강기슭에서 무슨 큰일을 치자고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관동군에서는 1군관구의 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여 《련합토벌사령부》관하에 넘겼으며 경찰《토벌대》들을 증설하여 내보냈다. 이에 발맞추어 조선총독부와 조선주둔군쪽에서도 호인, 신갈파, 혜산 방향에 철통같은 방위진을 구축하느라고 지금도 병력들이 그냥 압록강기슭쪽으로 쏠리고있다는것이였다.

그것은 다 사령관동지께서 이번 춘기반타격전으로 넘어가면서 국내진공작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포치하신 전투들이였고 전술적조치들이였다.

모든 징후는 사령관동지께서 타산하신것이 어김없이 꼭 들어맞았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뒤를 따라오는 지휘관들을 향하여 뜻밖의 과업을 제기하시는것이였다.

《동무들, 습격조를 두개만 조직합시다.》

이처럼 심상하게 하시는 그이의 말씀을 듣고 7, 8련대 두 련대장을 비롯한 지휘관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아까 말씀하신 서쪽에서 총소리를 울릴 습격조입니까?》

8련대 정치위원 박덕산이 성큼 그이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얼마만 한 규모로 언제쯤 하면 좋겠는지 구체적인 안을 세워야겠습니다.》

《그런데 정찰조의 보고를 들어보면 저놈들이 몹시 덤비는것 같은데 총소리를 울려도 일없겠습니까?》

경위중대장 오백룡이 난색을 짓고 말씀드리였다.

《총소리를 내면 저놈들이 우리가 강을 건너왔다는것을 눈치챈다는것입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용히 되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지금 그러지 않아도 삼엄한 경계망을 펼쳐놓았다는데 어디서 총소리가 나기만 하면 우르르 쓸어들것 같습니다.》

하고 오백룡이 몹시 가빠하며 뒤를 잇대였다.

《제 생각에는 무산쪽으로 좀더 나가서 조직하는것이 사령관동지의 구상을 실현하는데도 좋고 또…》

《또 사령부의 안전도 담보된단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오백룡은 처음에는 좀 우물쭈물하였으나 이 문제에서만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립장이 확고해야 한다고 믿고있었으므로 잘라서 말씀드리였다.

《7련대장동무 생각은 어떻습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심각해진 오백룡의 표정을 웃음짓고 바라보시다가 생각에 잠겨있는 오중흡을 돌아보시였다.

《우리가 무산쪽으로 재빨리 나가서 백두산동쪽을 차지하자면 지금 그쪽에 있는 적들을 이리로 끌어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들을 어디서 타격하겠는지 하는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투를 안한다면 몰라도 전투를 한다면 여기서 맞다드는것이 불리하지 않을가 생각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천천히 숙영지를 거니시며 미끈하게 자란 이깔나무줄기를 쓰다듬어보시고 두드려도 보시였다. 그러시다가 새순이 피여오르는 우듬지쪽으로 눈길을 보내시였다. 푸른 하늘도 연두빛의 새 순도 무엇인가 속삭여주는것만 같으시였다.

《우리가 원쑤를 치자고 조국에 왔는데 어떻게 전투를 안할수 있겠소? 전투를 해도 큼직하게 해서 놈들의 등심뼈가 부서지도록 쳐야겠습니다. 이러한 전투를 우리는 무산지구에다 적을 끌어다놓고 크게 벌려야 합니다. 그래서 숨죽이고 사는 우리 인민들에게 신심을 안겨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 인민들과 혁명조직을 놈들의 야수적탄압에 내맡길수 없습니다. 그러자면 국내에서 총소리를 한번 울리는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여름에 우리는 두만강기슭을 넘나들면서 적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제압해놓고 정치공작을 강화해야 합니다. 경위중대장동무는 저놈들이 아직 우리가 강을 건너선것도 모를줄 알고있지만 적들도 그렇게까지 장님들은 아닐것입니다. 오늘 정찰조동무들의 보고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수 있는가? 놈들이 우리가 국경지대로 나오는것을 알고있으며 또 대단히 급해한다는것입니다. 무엇때문에 그렇게 급해하는가? 물론 놈들의 통치체계전반에 타격을 주기때문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도 아닌것 같습니다. 저놈들에게 무슨 일인가 생긴것 같습니다. 무엇이 생겼는가 하는것은 차츰 밝혀질것이지만 놈들은 우리의 이번 국내진출에 대해 대단히 큰 반응을 보이고있으며 우리를 막아보겠다고 발악적으로 날뛰고있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전략적구상을 실현하는데 오히려 유리한 국면을 열어준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놈들은 지금 우리를 막아보겠다고 국경을 따라 길게 늘어져있습니다. 적들이 정신없이 돌아치는 조건에서 저놈들을 몽땅 한곳으로, 즉 이 압록강기슭으로 불러와야겠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슬쩍 몸을 날려 두만강기슭으로 옮아앉으면 적들은 미친듯이 그쪽으로 다시 쓸어들것입니다. 그때 든든히 준비를 하고있다가 들이쳐야 합니다. 그래야 단꺼번에 적의 기본집체를 허물어뜨릴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총소리를 가볍게 울리면 무산지구의 적들을 끌어올수 있을뿐아니라 다시 압록강쪽으로 건너간듯이 만들어놓으면 저 관동군놈들도 압록강여울만 뒤지고 돌아갈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국내에서 적을 치고 그달음으로 두만강을 건너가서 든든히 차비를 하고있으면 뒤늦게 백두산줄기를 타고넘어오는 관동군놈들을 다시 호되게 족칠수 있을것입니다.》

《사령관동지.》

하고 박덕산이 흥분한 어조로 물었다.

《습격조를 두개 조직하는 까닭은 하나는 유격대가 조선으로 건너왔다는것을 보여주고 또 하나는 유격대가 다시 압록강쪽으로 넘어갔다는것을 보여주자는것입니까?》

《대체로는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사령관동지.》

하고 오중흡이 심중한 낯빛으로 한참 손가락을 꼽으며 생각하더니 그로서는 드물게 웃음을 짓고 말씀드리였다.

《제 생각에는 그놈들이 상당히 급해할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일상 고정한 성미인 오중흡이라 다른 지휘관들도 좀 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제가 이제 사령관동지의 구상을 듣고 간단히 회계를 해보니 그놈들이 이 며칠사이에 수백리씩 헐떡거리며 뛰여다녀야 할것 같습니다. 얼마나 숨이 가쁘겠습니까. 자 혜산가까이에서 총소리를 울려주면 이 어방에 있는 놈들은 말할것 없고 무산지방에 있는 놈들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와야 할것 아닙니까. 그게 아마 200리는 넘을것입니다.》

하고 오중흡은 다시 손가락을 꼽으며 전에없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습격조가 또 압록강기슭을 쳐놓으면 이놈들은 혁명군이 장백으로 건너갔는가 했는데 그쪽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넘어온것이 없대, 그러니까 이 숲속을 샅샅이 뒤지겠지요. 그럴 때 무산쪽으로 쭉 빠져서 총소리를 또 울려놓으면 이번에는 여기서 어스벙거리던놈들이 또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가야 할것 아닙니까. 혁명군의 총구가 바로 그렇게 헐떡거리는 가슴을 겨누고있다는것도 모르고… 참 숨이 가쁘겠습니다.》

오중흡은 심중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허허허, 오중흡동무가 이제 보니 회계가 여간만 밝지 않습니다. 나는 그놈들이 달릴 리수까지는 계산해보지 않았는데… 그래 경위중대장동무 생각에는 어떻소?》

오백룡은 더수기를 긁적거리며 시무룩이 웃다가 정색하고 말씀드리였다.

《제 생각에는 이런 숲속에서 적을 기다리는것이 아니라면 될수록 그 습격전투를 빨리 조직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놓이는군.》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 경위중대장동무가 국내에 들어오더니 더 엄격해졌습니다. 오백룡동무를 설복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경위중대장동무도 찬성했으니 마음놓고 적들의 코에 낚시를 걸어봅시다. 이 습격전투는 박덕산동무가 책임지고 조직해야겠습니다.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다시 토론합시다.》

《알았습니다.》

《그럼 동무들은 가보십시오. 나는 장경수동무를 만나보고 곧 가겠습니다.》

막 지휘관들이 숲속으로 달려갈무렵 장경수가 금숙이와 재영이를 데리고 와서 보고를 드리였다. 상철이도 함께 달려왔다. 장경수는 어느모로 보나 뜨내기품팔이군처럼 차리고있었으나 그가 일상 그런 모양으로 정찰도 나다니고 통신원공작도 하기때문에 이제는 모두 버릇이 붙어 군복을 입은 그를 보는것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긴장된 표정으로 서있는 금숙이의 얼굴을 잠시 뜯어보시다가 인차 실무적인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금숙동무는 13도구에 공작나갔을 때 입고 갔던 옷을 어떻게 했습니까?》

《저 치마저고리말씀입니까? 그것은 김정숙동무가 공작다닐 때 입던 옷이기때문에…》

《그럼 김정숙동무에게 그런 옷이 아직 있습니까?》

《예.》

《그러면 됐습니다. 동무들은 우리가 북대정자회의결정을 관철하기 위하여 조국에 진출하여 적들에게 군사적으로 타격을 주는 한편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 인민에게 신심을 주기 위한 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리며 혁명조직을 많이 꾸려야 한다는것을 압니까?》

《예.》

하고 세사람이 한꺼번에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우리는 이제 두만강기슭으로 나갑니다. 그쪽에 가서 아마 전투를 큼직하게 하고 계속 적들을 달고다니며 족쳐서 두만강일대를 군사적으로 완전히 장악하자고 합니다.》

재영이와 금숙이는 말할것 없고 미리 무슨 분분가를 들은듯 한 장경수도 그러한 말씀을 하시는 까닭을 짐작할수 없어 그이의 안색을 우러러 살펴보았다.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안색은 언제나 다름없이 부드럽기도 하시고 엄숙하기도 하시였다.

《그러나.》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먼곳으로 눈길을 옮기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러한 전투를 아무리 크게 벌린다 해도 한두번의 전투로써 우리 혁명을 끝낼수는 없고 우리의 한을 다 풀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착실하게 우리 혁명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동무들중 몇사람을 지방조직에 공작을 보내자고 합니다.》

장경수는 비로소 사령관동지께서 전투에 대한 말씀을 하신 까닭을 짐작한듯하였으나 재영이와 금숙이는 좀 어리둥절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한참이나 동안이 지나서야 말씀을 이으시였다.

《장경수동무는 본시 경험이 많고 또 금숙동무도 이번에 조국으로 나오면서 13도구지방에 들리여 공작을 잘한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해에 국내에서 파괴된 조직을 복구하고 그에 의거해서 새로운 혁명가들을 대대적으로 길러내며 전체 인민을 혁명의 편에 묶어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장경수동무와 금숙동무, 재영동무가 셋이서 조를 무어 풍산으로 나가야겠습니다. 혜산 괘궁정앞에 가면 홍아목재상이라는 목재상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풍산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라는것을 알려줄것입니다. 풍산에 가서 수행해야 할 과업은 우선 그곳 파괴된 조직의 성원들과 련계를 짓고 조직을 복구할 대책을 세우는것입니다. 그 방법도 혜산련락소에서 잘 토론해가지고 가시오. 기일은 5일간입니다. 공작이 끝난다음 삼수평부근에서 두만강을 건너 큰골로 찾아와야 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위장대책에 대해서와 련락소와 통하는 암호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주시고나서 정세가 정세인만큼 장경수동무와 김재영동무는 든든히 무장을 갖추고 뒤에서 금숙동무를 호위하며 공작을 하는것은 주로 금숙동무가 앞에 나서서 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것으로 임무는 다 주신듯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곧 그이앞에서 물러나려 하였다. 그러나 그이의 안색에는 아직도 더 하실 말씀이 계실듯하였다. 그들이 쭈밋거리는데 아니나다를가 사령관동지께서는 석쉼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닷새동안이면 련계를 짓는데 기일이 그리 촉박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한가지 사사로운 부탁을 하자고 하는데… 이제 동무들이 가게 될 그 부락에서 갑산쪽으로 넘어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신양광산이라는 광산이 있습니다. 그곳에 아직도 그런 광산이 있기나 한지… 그게 바로 한태혁동무가 4년전에 누이동생을 두고왔다는 광산입니다.》

《예?》

네사람은 한꺼번에 고개를 버쩍 들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전혀 못 느끼시는듯 백두산쪽을 바라보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가망은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찾아보시오. 한필네라고… 그때 열일곱살이라고 했으니 이제는 스물이 넘은 다 자란 처녀일것입니다. 가서 찾아보시오. 혹시 찾거든… 데려오시오.》

《사령관동지.》

장경수는 눈물이 글썽해서 부르짖었다. 금숙이는 소리없이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그들은 사령관동지께서 자기들을 함께 부르시여 풍산지구로 공작을 떠나보내시려는 깊은 의도를 비로소 짐작한것이였다.

희생된 전사들을 제일 못 잊어하시는분은 사령관동지자신이시였다. 그러면서도 전사들의 가슴에 깃들인 그늘을 가시여주려고 조국진군작전의 웅대한 구상을 실현해나가시는 거창한 투쟁속에서도 이처럼 전사들의 사사로운 념원까지 헤아리시여 사업조직을 하신것이였다.

사실 금숙이는 태혁이생각을 늘 하고있었지만 그의 누이동생이 있다는 광산으로 가볼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고 그 광산이 어데쯤 있는지 잘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 풍산지구에서의 공작임무에 이어 필네를 찾을데 대한 과업을 주셨을 때 금숙이는 자기가 바친 희생에 비하여 그이의 사랑은 너무나 크다는것을 뜨거운 눈물속에 깨달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뒤전에 서서 소매로 눈굽을 훔치는 상철이의 머리를 쓸며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재영이의 총을 건사하라구. 그리고 우리는 저 무산쪽에 나가 원쑤를 갚자구.》

상철이는 그이의 옷자락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이윽고 사령관동지의 뜻을 가슴깊이 새긴 세사람은 흐트러진 옷매무시며 얼굴들을 바로잡고 그이앞에 단정히 서서 임무를 어김없이 수행할데 대해 보고를 드리였다.

 

5

 

구질거리는 비안개속에 차가수물동이 저만치 바라보이자 필네의 발걸음은 절로 떠졌다. 찌르르 하고 무엇인가 아픈 정이 명치끝을 훑어내리는것 같았다.

일행은 는개비에 축축히 젖어서 부지런히 걸음을 다우친다. 맨앞에 나란히 걸어가는 장대선아바이와 춘길이는 곁눈 한번 팔지 않고 오솔길굽인돌이로 사라지고 큼직한 고리멜빵을 멘 윤원구는 아이를 업고 임보퉁이를 인 안해에게 무엇인가 또 지청구를 대다가 성이라도 났는지 와락와락 물탕을 튕기며 멀어져갔다. 류랑가수 김인수만이 물동다리우에서 어수선한 정경을 잠시 굽어보다가 부러진듯이 목대를 떨구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놓는다. 나들나들 해여진 춘추외투우에 색날은 중절모를 쓰고 큼직한 등산배낭과 바이올린통을 둘러멘 그는 노래를 팔러 팔도강산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으로서 어찌어찌해 산판에 들렸다가 우연히 일행에 끼여들었다.

본시 광산에서 굴러온 윤원구네 일행이 하칠소토장을 털게 되니 다시 광산으로 밥벌이를 찾아가는것이나 요즘 노다지바람이 불어 인총이 물밀듯이 쓸어든다는 그곳 금천동으로 가서 노래를 팔아보겠다는 김인수의 생각이나 생의 막다른 몸부림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것이였다.

아무도 물동다리의 서글픈 정경같은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정섭이와 필네만이 비안개속에 떠오르는 그 어수선한 모습을 무심히 볼수 없었다.

말끔히 찍어넘긴 이깔나무의 등걸들이 마치 무덤앞의 표말처럼 는개비에 번들거리고 물동가에 앙상하게 서있는 잡관목가지들은 지나가는 바람결에 우수수 설레이며 비말을 휘뿌린다. 겨우내 실어낸 통나무들이 하얗게 눈을 쓰고있더니 이제는 첫떼를 띄울 때라 모두 헐리여 편벌장에 이리저리 헤쳐진채로 비를 맞고있는것이 불타다 남은 집터같이 허무한 생각을 자아냈다.

길가에 바투 나붙은 강기슭에 웬 낚시군 둘이 우장을 쓰고 앉아있는것이 보였으나 그것 역시 황페한 자연을 강조해주는 고목같은 인상을 자아냈다.

낚시질을 할만 한 철도 아니고 그럴만 한 장소도 아니건만 그런 생각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두사람의 잊을수 없는 추억이 깃들어있는 곳이였다.

그 추억마저 궂은비를 들쓰고 황페화돼버린듯하여 떠나는 마음이 저리도록 가슴을 비틀어준다. 정든 땅을 떠나는것이 그리고 정든 사람들과 헤여지는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가 하는것을 수라에 넘치는 물소리, 앙상한 개버들가지를 울리는 바람소리가 가슴을 두드리며 하소하는듯하다.

필네는 비풍이 치는 임밑으로 정섭이를 돌아보았다. 정섭이의 모습도 말이 아니였다. 등에 업힌 윤원구의 아들애에게 큰저고리마저 씌워주어서 홑잠뱅이에 토스레적삼을 걸쳤을뿐인 그는 퍼렇게 언 허리가 드러나서 비물에 번들거리지만 추운것도 느끼지 못하는지 침울한 눈매로 차가수의 흐름만 바라보고있다. 그렇게 비를 맞고도 길들지 않는 정수리의 총이 센 머리카락만이 뻗두룩하게 일어서있는것이 고집스러우면서도 우습강스럽고 서글서글한 성미를 엿보게 할뿐이였다.

이제 한 10리 더 가서 무포어방의 갈림길에 이르면 그는 자기 집이 있는 신사동쪽으로 갈라져갈것이다.

그는 말미를 얻어 부모동기가 있는 제집에 다니러 가는것이니 다른 사람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러나 정섭이의 낯색은 그 누구보다도 어두웠다.

필네는 그 역시 이 리별을 괴로와한다는것을 몸으로 느끼였다. 그것이 고맙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섭이의 낯빛이 어두운것은 그것때문만은 아닐것이다. 그에게는 남다른 근심도 있다. 얼마전에 신사동으로 이와실이를 갔던 삼수사람이 돌아가는 길에 정섭이네 집 기별을 가지고왔었다. 두 동생이 모두 홍역을 중하게 앓는데다 동네에서 경비도로 부역이 심하여 돌볼 손이 없으니 벌구를 옮기는 기회에 며칠이라도 다녀가라는 할아버지의 전갈을 받았을 때 필네 역시 가슴이 덜컥하였다. 그 귀여운 영섭이가 홍역을 앓는다니 자기아래로 동생 셋이나 홍역마마에 떼웠다는 정섭이의 말이 생각났다. 필네는 제가 등이 달아나 한시바삐 다녀오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하칠소토장이 아주 산판을 옮기는판이라 마지막 회계를 보느라고 차일피일 며칠을 끌다가 결국 화룡땅 금천동으로 가는 일행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된것이였다. 동생들이 앓는것도 문제지만 3년전에 아버지가 죽고 60로인인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화전을 뚜져 근근 연명해가는 그 집의 살림살이 또한 말이 아니였다.

《홍역은 어려서 앓아야 쉽게 넘긴다는데…》

필네는 한걸음 떨어져서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는 작은놈들이 더 잘 죽더구만…》

정섭은 흥심없는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홍역을 앓지 않고 넘길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흥, 무덤속에 들어가서도 한번은 앓고야 배긴다는걸.》

《그래서 모두 어릴 때 겪는게 좋다지 않아요. 작년에는 참 쉽게들 치렀다는데…》

이렇게 근심에 싸여 말하는 필네의 눈앞에 저 물동다리를 까치걸음을 치며 달려오던 영섭이의 모습이 선히 떠올랐다.

그때는 겨울이였지만 물동다리가 지금처럼 어수선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겨울보다도 더 밝게, 더 희망에 넘쳐서 물동다리를 건너서던 그런 때도 있었다.

그것은 언제였던가?

정섭이와 함께 즐거운 침묵속에 가쁜숨을 몰아쉬며 저 물동다리를 천천히, 천천히 될수록 오래 끌며 건너서던 지난해의 그 여름밤은 달이 밝았다. 여울에 흐트러지는 물속에서 절반쯤 이지러진 반달이 나란히 걸어가는 두사람을 마주 올려다보며 웃어줄 때 필네는 금시까지 밤길을 혼자 걸어온 무섬증도, 험한 숲속으로 혼자 가라고 내몬 밥집주인 김장로에 대한 원망도 다 잊어버렸었다.

그때만 해도 토장이 옮아가기 전이라 차가수를 따라 채벌장들이 널려있었다. 현장창고도 그 어름에 있었다. 밥집주인인 김장로와 함께 량식을 타러 갔던 필네는 밤이 깊어서야 두자루나 되는 호좁쌀을 이워주며 혼자 돌아가라는 그 늙은것의 말을 듣고 주저앉을번하였다. 지금은 뭇청부업자들이 송충이처럼 달라붙어 갉아대는바람에 한해사이에 홀랑 벗기우다싶이했지만 그때는 아름드리 이깔나무가 빼곡이 들어찬 원시림속이였다. 그런 숲속오솔길로 아직 달도 떠오르기 전에 어린 처녀를 혼자 보내다니… 제가 술추렴을 하겠으면 저물기 전에 가라는 소리는 왜 못한단말인가.

못가겠다고 발버둥이라도 치고싶었다. 그러나 필네는 입을 감쳐물고 군소리 한마디 없이 길을 떠났다. 더러운놈, 어차피 돈있는놈들이란 그런것이다. 오빠 태혁이가 유격대로 떠나가면서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울지 말라고 당부했다. 더구나 돈푼 있는놈에게서는 절대로 동정이나 인심을 바라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마음을 모질게 도사려먹고 떠났다. 그러나 정작 숲속에 홀로 나서고보니 새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조막만큼 죄여들고 식은땀이 발발 내솟아 어느새 적삼이 화락하니 젖었다. 한참 깊은 숲속에 들어서니 달이 솟아올랐다. 달빛은 깊은 숲속에 더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던져주었다.

너무나 겁이 나서 한절반 얼이 빠져 차가수물동다리에 접어들었을 때 귀에 익은 휘파람소리가 울리여왔다.

정섭이였다. 정섭이도 사무실에 회계를 보러 왔고 창고앞에서도 어슬렁거리다가 한발먼저 돌아갔었다. 그가 어떻게 이 물동가에서 혼자 기다리고있었을가? 실은 토장이나 밥집에서 제일 만나기 두려운것이 정섭이였다. 총이 센 머리카락이 뻗두룩하게 일어서가지고 아무에게나 덥적덥적 우스개소리를 던지고 싱글싱글 웃기 잘하는 그를 누구나 사랑하였다.

화전농의 집에서 태여난 그는 열대여섯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겨울이면 이와실이를 다니다가 아버지가 세상떠난 다음은 아예 벌목부가 되여 리명수, 압록강 줄기의 목재판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덩치가 크고 힘꼴이나 쓰는 정섭이는 남들이 손붙이기 싫어하는 일거리를 말없이 찾아가서 도끼를 휘둘러대기도 하고 둔장대를 어깨에 들이대고 힘을 쓰기도 하였다. 밥집에 돌아와서도 어려운 일손을 거들어주는것은 정섭이였다. 그런가 하면 지금도 업고가는 윤원구네 아들형제를 끔찍이도 귀여워했다. 멀지 않은 신사동 자기 집에도 동생들이 있다고 하면서 진철이의 오줌을 잠뱅이에 몇번이나 받아냈는지 모른다.

그런 그가 한번은 군산림주사 리호철이와 대판으로 싸움을 하고 주재소에 잡혀가서 매를 맞은 일이 있다. 쉬쉬하고 돌아가는 소린즉 정섭이가 토장에서 쉴참에 전년 봄처럼 유격대가 쳐나와서 이놈의 세상 활딱 뒤집어놓았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했는데 그것이 마침 지나가던 리호철의 귀에 들어가서 크게 동티가 생긴것이라고 하였다.

필네는 자기 마음이 은근히 그에게 끌린다는것을 문득 깨달은 어느날 너무나 부끄러워 부엌에서 한동안이나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싸쥐고 쩔쩔맸으며 그날은 종일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고 그 누구와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날부터 정섭이와는 일부러 푸접없이 굴었다.

오빠가 유격대로 떠나가서 고생하시는데… 왜놈들이 돌리는 말을 들어보면 유격대가 숲속에서 몽땅 굶어죽고 얼어죽었다고 떠드는데… 그것이 설마 사실은 아닐테지만 깨끗한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오빠를 기다려야 할 자기가 흉흉한 소문이 들려오는 이런 때 마음이 들떠있다는것은 부정스러운 행실이라고 생각되였다.

하지만 그 사람도 유격대를 기다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였으나 모진 마음을 먹고 그런 생각을 눌러버렸다.

자기가 푸접없이 굴어주면 정섭이는 어이가 없는지 멍하니 바라보다가 흥 하고 코방귀를 내불고 휘적휘적 걸어가며 휘파람을 불어대군하였다. 그 거동이 우스워서 때로는 모질게 먹었던 마음을 비집고 저도 모르는 사이 따뜻한 미소가 피여오르군 하였다.

그 정섭이가 그중 후미진 차가수물동가에서 기다리고있는것이였다. 거기서 하칠소토장의 밥집까지는 댓마장 잘되였다. 놀러나올만 한 길도 아니였고 그럴만 한 곳도 못되였다. 차가수가 굽이돌아가는 바위벼랑에는 언젠가 시라소니가 나타나서 사람을 해쳤다는 말도 돌아갔다.

필네는 정섭이라는것을 알자 금시 소리치며 달려가고싶도록 반가왔다. 그러나 정작 다가가서는 어떻게 알고 기다렸느냐는 말도 하게 되지 않았다.

《두자루씩 포개이고… 무슨 목대가 그렇게 든든한가.》

정섭이 역시 이런 소리를 하며 이고가던 낟알자루를 닁큼 빼앗아멨을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또아리를 탈아쥐고 꼬깃거리며 자루 하나는 도로 내라고 말하고싶었지만 인두로 지지는것처럼 입안이 말라들어서 한마디 말도 번질수 없었다. 결국 물동다리를 건너서도 5리나 되는 밤길을 두 사람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걸었다. 밥집의 불빛이 바라보이는데 와서야 정섭이는 자루를 도로 이워주며 《에- 잠만 밑졌군.》 하고 싱거운 소리 한마디를 남기고 휘적휘적 먼저 사라져버렸다.

웬일인지 그날부터 두사람사이는 가까와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버성겨진듯싶었다.

그무렵부터 벌써 하칠소토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하였다. 산판이 다 파먹은 김치독같이 되여 채벌장을 더 깊이 옮기는데 이 봄에는 어디에 가서 밥탁에 얻어걸릴것인가 하는 골치아픈 공론들을 밤마다 벌리고있었다.

필네와 함께 이태째 김장로밥집에서 거접하고있는 윤원구며 대선아바이, 춘길이 같은 사람들은 본시가 벌목부가 아니라 멀지 않은 고진동에서 광산이 망하는바람에 쫓겨난 광부들이였다.

하칠소토장이 파장이 됐다면 백두산기슭에 숲이 없겠는가. 지금 왜놈들이 《북선개척》이라 해서 남도치들을 《보국대》로 기수없이 끌어오는판에 걱정이 무슨 걱정이냐고 모두 말은 태평스럽게 했으나 속들은 다 편안치 않았다. 윤원구는 안해가 기다리다못해 아이들을 업고 찾아왔으니 별문제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돈을 벌어서 돌아가리라 다짐을 두고 떠나온 고향이 있고 식솔이 있는것이다.

그런판에 군산림주사 리호철이가 최근에 군청일을 그만두고 화룡땅 금천동에 금광을 벌렸다는 소문이 돌아가더니 김장로밥집에 오랜 굴쟁이들이 거접한다는것을 알고 밥집식솔을 통채로 끌어갈 꿍궁이를 꾸몄다.

그 흥정이 근 한달가까이나 끌다가 마침내 오늘 이 길을 떠나게 된것이였다.

고진동에서 윤원구네와 함께 있으면서 밥집의 식모살이를 해온 필네는 강을 건너갔대야 식모살이하기는 매일반이였다. 그러나 필네도 윤원구네와 함께 김장로밥집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빠가 유격대로 떠나갈 때는 유격대가 장백땅을 완전히 깔고앉아있을 때라 만날 날이 그리 오래지 않다고 오빠도 타일렀고 어린 필네도 그 말을 믿었었다. 유격대가 보천보를 들이칠 때 필네는 자기도 이제는 오빠를 만나 더는 외롭게 살지 않아도 될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게 지난해부터 차츰 흉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겨울에 접어들면서 왜놈들은 이제는 유격대를 완전히 없애버렸다고 떠들어댔다.

필네는 더는 앉아서 오빠를 기다릴수 없었다. 그래도 강을 건너가면 무슨 확실한 소식을 알수 있을것이였다. 잘하면 유격대를 찾아갈수도 있을것 같았다.

필네가 금천동으로 가겠다고 나섰을 때 정섭이는 기를 쓰고 말렸다. 말려도 듣지 않으니 성을 내고 돌아앉아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말렸다. 어린 처녀가 거칠은 남의 나라 땅에 홀몸으로 가서 어떻게 살겠느냐는것이였다. 아무에게도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 그럴만도 한 일이였다.

정섭이는 이 며칠째 통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도 무거울것이다. 한겨울 기를 쓰고 일했지만 정작 회계를 보니 밥값, 빚값 두루 제하고 남은것이 한달 품삯도 되나마나하였다.

그런데 집에는 어려운 살림이 기다리고 또 두 동생이 앓아누워있다. 동생을 셋이나 홍역에 떼운 그 집에서는 벌벌 떠는 눈치였다. 그나마 경비도로부역때문에 돌볼 손까지 없다니 그의 마음이 개운할리 없었다.

영섭이가 홍역을 앓는다는것을 알았을 때부터 필네 역시 까닭모를 불안에 시달렸다.

필네도 영섭이를 잘 안다. 할아버지가 보천장을 보러 가고오면서 큰손자 있는데 들려가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영섭이가 놀러왔다. 한번은 형이 보고싶다고 추우나추운 겨울날 제혼자 달려온적도 있었다. 사납게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날 말파리꽁무니에 매달려 100리길을 와서 언 돌배를 내놓던 그 애의 수글수글하고 정다운 모습이 눈앞에 사물사물하였다.

영섭이가 앓는다는 말을 들은 그날로 필네는 진개에 사는 포수에게 달려가서 노루피 말린것을 얻어왔다. 홍역에는 그것이 제일 좋은 약이라니 이제 갈라질 때 정섭이에게 주어보내리라 마음먹고있었다. 정말 그 애가 그 노루피를 우려먹고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기는 벌써 털고 일어나서 또 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며 온 산판을 돌아다닐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을가…

그렇게 걸음을 늦잡았지만 어느새 물동다리는 눈앞에 있었다.

두사람은 나란히 물동다리를 건넜다. 지난해의 그 달밝은 여름밤처럼 말없이 걸었다. 그날처럼 정섭이는 숨을 씩씩거린다. 필네의 가슴도 그때처럼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러나 그 밤의 그 따뜻한 느낌은 어디로 갔는가. 그 열정, 그 희망, 그 행복감은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터놓지 못한 리별의 애달픔, 그 리별을 강요한 세상에 대한 원한 그리고 장차 두 사람의 운명앞에 닥쳐올 불행에 대한 막연한 예감이 있을뿐이였다.

물동다리를 그때처럼 천천히, 천천히 걸었으나 종시 아무런 일도 없이 마지막 가름대를 짚고 저쪽 기슭에 한발을 내려놓자 필네는 저도모르게 눈시울이 화끈해지는것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지난날과 완전히 갈라진것이다.

이제 십리나마 더 가면 새로 닦은 신작로가 나질것이다. 그 길을 따라 삼수평, 붉은바위를 거쳐 오늘중으로 무산지경까지 가대야 한다. 들리는 말에는 그 길이 경비도로인데다 아직 개통이 되지 않아서 여느 사람은 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포에서 유곡쪽으로 꺾어져 대홍단, 신사동으로 해서 농사동으로 돌아갈수밖에 없다. 그래봐야 한 20∼30리 돌뿐이라고 하지만 워낙 인적 드문 산골리수라는것이 대중이 없는것이다. 길을 물을 때 《한 십리 되오다》하고 턱을 쳐들어 가리키면 30리는 되는것이고 팔을 쳐들어 가리키면 줄잡아 50리는 되는것으로 봐야 한다. 어쨌거나 길을 좀 돌더라도 오늘중으로 삼장지경까지 나가기만 하면 래일은 국경다리를 건늘수 있을것이다.

필네는 적삼말기를 더듬어 노루피 말린 솜뭉치를 꼭 그러쥐였다.

이제 곧 신작로가 나지겠으니 이 굽이를 놓치면 단둘이 말을 나누게 되지도 않을것이였다.

필네가 줌을 폈다오무렸다 하며 망설이는데 정섭이의 갈린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자리잡거든 인차 편지하라구. 나도 집형편이 웬만해지면 이놈의 고장 뜨고말겠어.》

무슨 소릴가? 금천동으로 오겠다는 소리는 아닐가?

필네의 가슴은 활랑거리기 시작하였다. 무슨 말인가 해야 할것 같았으나 인차 대척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발 리호철이와 엇서지 말아요.》

쭈밋거리다가 한다는 소리가 왕청같은 말이 돼버렸다. 하기는 그것이 은근히 가슴깊이 숨어있던 불안이기도 하였다.

《흥, 그자식하고 말썽없이 지낸 사람이 이 처서판에 어디 있어.》

정섭이는 코방귀를 내불며 희떱게 말했다. 필네는 안타깝게 덧붙였다.

《그래도 딴 사람과 같아요? 집에서도 리호철이네 빚을 많이 졌다지 않아요. 누가 말하는데 그 사람이 륙혈포를 차고있더래요.》

《나도 다 알아. 그자식이 제 애비랑 같이 혁명자들을 고발해넣은 값으로 만주에 가게 됐다는거야. 광산도 그래서 벌어들이고…》

《그런줄 알면서 왜 자꾸 엇설가…》

필네는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그자식한테 무엇을 잘못했다고 벌벌 긴단말이야. 더럽게시리 쳇!》

침을 탁 뱉더니 모처럼 부드러워졌던 성미가 살아나서 와락와락 걸음을 다우친다.

필네가 원망스럽게 한참이나 뒤모습을 바라보며 말없이 따라가자 정섭이는 얼마 못가서 다시 걸음발을 늦추었다. 저로서도 제 마음을 어떻게 주체할수가 없는것이다.

또다시 무거운 침묵속에 철떡철떡 진창을 밟는 발걸음소리만 오래동안 끌었다.

가까스로 비가 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시원히 개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거…》

어수선한 생각에 잠겨 말없이 걸어가는 필네의 손끝에 무엇이 와닿는다. 돌아보니 정섭이는 무엇을 움켜쥔 주먹을 엎은채로 내밀며 얼굴이 벌개서 말을 갑자른다.

《별스럽게 생각지 말구 받으라구.》

엉겁결에 손바닥을 펼친 필네는 그 순간에 그것이 돈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손에 와닿는 느낌이 적잖은 액수였다.

낯선 땅, 거친 생활속으로 홀로 떠나가는 자기에게 다만 얼마라도 로자를 보태줄 생각을 했다는것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겁도록 고마왔다. 일상 셈평좋게 휘적휘적 돌아가는 그에게 이처럼 깊은 속이 숨어있다는것은 놀라운 일이였다.

그러나 그것이 구리반지나 분곽따위가 아니라 적잖은 액수의 돈이기때문에 그대로 받을수 없었다. 지금은 자기보다 그 집 사정이 더 절박하다.

필네는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돈을 어떻게 돌려줄것인가 궁리하다가 아무래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저도 무작정 손을 내밀리라 생각하고 그것을 노루피약과 함께 감싸쥐였다.

그러나 필네가 손을 내뻗치려는 순간 곧게 열린 길이 툭 트이면서 바로 그 굽인돌이에 일행이 몰켜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무봉 《이와이구미》토장을 지난지는 5리나 되였다. 그러니 새로 닦은 신작로에 접어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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