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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14 장편소설
석 윤 기
( 제 1 회 )
제 1 편
1
아마 날씨도 무엇인가 느껴지는게 있는 모양같다. 아침나절 내내 구질거리며 바람질을 하던 하늘이 별안간 활짝 벗겨졌다. 광막한 그리고 몹시도 아름다운 숲이 방금 지나간 비에 미역이라도 감고난듯 싱그러운 송진내를 풍기며 선명한 자태를 아낌없이 드러내놓았다. 여기는 청봉이다. 1939년 5월 18일 아침 5호물동에서 압록강을 건너 조국땅에 들어선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금시 터져나오려는 환성을 힘겹게 억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극도의 은밀성을 요하는 행군인데다 강건너와는 사정이 달랐다. 그리하여 국경을 넘어 처음 한동안 들먹이는 심장밑에 깔려서 몸부림치던 기쁨이 이 인적 드문 숲속에 이르자 폭발적으로 터져올랐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정찰조원들의 보고와 지도상에 나타난 백두산일대의 지형을 면밀히 분석해보신 다음 일단 이 청봉숲속에서 부대를 쉬우기로 결심하시였다. 휴식구령이 떨어지고 련대, 중대별로 자리를 잡고 흩어지자 유격대원들은 아이들처럼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이깔나무그루를 안고 빙빙 돌기도 하였다. 어떤 대원들은 두무릎을 꿇고앉아 조국의 땅냄새를 엎드려 들여마시기도 하고 어떤 동무는 질척한 풀밭에 그대로 쓰러져서 마구 뒹굴기도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런 전사들의 모습을 보시고 가볍게 웃음지으시였다. 웃으시기는 하지만 그이자신의 가슴도 조국땅을 그러안고 몸부림쳐보고싶은 감동에 축축히 젖어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잠시 눈을 슴뻑이며 사위를 둘러보시다가 각 구분대들이 숙영지를 꾸리는 사이 천천히 청봉정점으로 오르시였다. 재영이와 상철이가 앞에서 길을 냈지만 어찌나 숲이 무성한지 도무지 자리가 나지 않았다. 숲정수리를 스치는 가벼운 바람결에 어디선가 맹수의 체취같은것이 풍겨오는듯도 하였다. 참으로 생명이 약동하는 진짜배기 밀림이다. 《그냥두라구. 나무사이를 빠져나가면서 조국의 냄새를 맡아보는것도 좋지.》 사령관동지께서는 공연히 헛수고를 하는 두 전령병에게 말씀하시며 거미줄처럼 눈앞을 가리는 앙상한 개암나무가지를 헤치시였다. 굵직굵직한 이깔나무들만 빼곡한 밋밋한 등판이 나졌다. 《상철이.》 사령관동지께서는 후련하게 트인 산기슭에 나서시자 조용한 목소리로 나어린 전령병을 부르시였다. 숲으로 덮인 산을 오르느라고 코등에 땀방울이 보송보송해진 상철이는 발깃한 볼을 돌려 그이를 바라보았다. 《상철이는 조국땅이 처음이지?》 《예.》 《그래 조국땅에 첫발을 들여놓으니 기분이 어떤가?》 《기분말입니까?》 《무슨 느낌이 없어?》 상철이는 점직한듯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저만치 앞서가며 길을 내고있는 재영이를 흘깃 돌아보았다. 재영이가 제 말을 들을가봐 저어한다는것을 느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나어린 유격대원가까이로 바투 다가가시였다. 《그래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사령관동지.》 상철이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큰한 입김을 풍기며 속삭이였다. 《왜 그런지 이 땅이 우리 조국땅이구나, 이 땅을 찾기 위하여 우리 전우들이 목숨을 바쳤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고생하면서 행군해오던 생각이랑 떠올랐어요. 그렇게 고생스럽던 행군도 조국에 오기 위한것이였다고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자 하는데…》 상철이는 여기까지 말하다가 또 재영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때 재영이는 웬일인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웬일이요? 어디 다쳤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근심이 되시여 서둘러 다가가시였다. 《아닙니다. 여기 괴상하게 생긴 꽃이…》 그러면서 재영이는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띠고 돌아보았다. 그 청청하게 맑은 두눈에 그렁하니 물기가 어린것을 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문득 가슴에 하나가득 차오르는 눈물겨운 감동을 이기기 힘드시여 외면하시였다. 상철이는 그제야 조국땅을 밟고 막 울고싶어지는것이 저혼자만의 일이 아니요, 또 자기가 특별히 어리거나 마음이 약해서만 그런것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청봉정점이라고 짐작되는 밋밋한 등성이에 다 올랐으나 어찌나 나무가 울창한지 눈앞을 가려버려서 전망은 좋지 않았다. 다만 발아래 멀지 않은 곳에서 물소리가 울려오는것이 느껴졌다. 《리명수물이 아주 가까이 흐르는 모양이군. 그러니 인가가 멀지 않겠소.》 잠시후에는 물소리너머로 아득히 개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산기슭에 앉은 오붓한 동네가 눈앞에 그려졌다. 재영이와 상철이는 시원히 제눈으로 바라보겠다고 높은 나무를 골라 타고올라서는 또 키돋움을 한다. 그래도 별로 보이는것은 없는지 나무가지만 이리저리 헤친다. 《내려들오시오. 떨어지겠소.》 이렇게 말씀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중 전망이 좋은 나무그루들사이에 나서시여 쌍안경을 쳐드시였다. 여전히 안겨오는것은 굵고 가는 나무가지들과 쌉쌀한 냄새를 풍기는 애리애리한 이깔나무의 신록들뿐이였다. 멀지 않은 벼랑밑에서는 비릿한 물냄새도 풍겨왔다. 갖가지 새소리도 들린다. 촘촘한 잎새들과 나무가지들사이를 뚫고 강한 색조를 띤 해빛의 길고 짧고 혹은 넓고 좁은 쪼박들이 숲속깊이 스며들어 무수한 거울쪽처럼 번쩍거린다. 아름답다. 무척도 아름답다. 애타게 기다리던 아들들이 돌아온것을 조국은 아는것인가. 사령관동지의 눈앞에는 뭇꽃이 다투어 피여나는 삼천리조국의 전모가 떠오르시였다. 그 품에 안기기 위하여 전사들이 헤쳐온 길이 피에 젖었다면 그들을 기다리는 조국의 품도 슬픔에 터갈리지 않았는가. 잊을수 없는 사연들이 너무나 많이 얽혀있는 품이였다. 16년전 열두살 잡히던 겨울에 홀로 압록강을 넘고 천리길을 걸어 만경대까지 가셨을 때 할아버님, 할머님께서 달려나와 하시던 말씀이 잊혀지지 않으시였다. 열둘에 잡힌 너를 두 나라지경 천리길에 홀로 보낸 너의 아버지도 범같은 사람이지만 사나이가 다르기는 다르다고 감탄하셨을 때 사령관동지자신께서도 기쁘시였다. 그렇게 이 세상을 꿋꿋이 걸어가느라면 할아버님, 할머님들과 부모님들이 그렇게도 바라시는 조국의 광복도 이룩되리라고 믿으시였다. 그러나 이태가 못되여 또다시 엄동설한에 그 천리길을 되짚어 압록강을 건느지 않으면 안되시였고 그 길우에서 아버님의 최후를 보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조국의 품은, 그 품에 이르는 길은 실로 피눈물에 얼룩져있다. 그 길우에 갈대 설렁거리는 소사하 뒤산에는 어머님의 봉분이 생겨나고 철주의 순직한 넋은 황막한 광야에 뿌려졌다. 삼촌도 철창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하여 만경대고향집에는 할아버님, 할머님만이 굽으신 허리로 다가오는 이 봄에 씨붙임을 하시며 아득히 이곳-국경의 숲까지 뻗은 우불구불한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실것이다. 언제면 우리 증손이가 아버지, 어머니와 온 조선의 한을 풀고 돌아올것인가고… 하기는 할머님께서도 어떻게 되셨는지 딱히 알길이 없으시였다. 저 지난해부터 리경락이네 패거리들이 할머님을 눈덮인 밀림속으로 강제련행해다니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을 굴복시킬 한 방편으로 삼아왔으니 그놈들의 손에서 무사히 놓여나셨는지, 그 무도하고 비렬한 무리들로부터 무슨 봉변이나 겪지 않으셨는지 모를 일이였다. 다만 믿으신것은 만경대고향집을 뻗치고있는 애국의 기상, 불굴의 혁명정신이였다.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나라 찾는 한길에 바치시고서도 우리 증손이가 기어이 대사를 이룩하리라고, 원쑤를 향해서는 우리 장군이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을것이라고 당당히 맞서 싸우신다는, 이제는 늙어 허리굽으신 조부모님들의 그 굽힘 없는 절개였다. 앙상하신 어깨들에 그 모든 시련과 슬픔의 짐을 감당하시려니 터갈라진 가슴들에 무엇이 남아있을것인가, 봄을 맞이하여 조국산천은 이렇게 새움이 돋고 향기로운 풋내가 떠돌며 신록으로 단장해가는데 할아버님, 할머님께서 힘겹게 밀고가시는 가대기날아래서는 남리의 척박한 먼지발이 매운재가 되여 그 슬픔과 분노에 터갈린 가슴들에 또다시 뿌려질것이 아닌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으스러지게 주먹을 부르쥐시였다. 《증손아, 증손아.》 하고 안타까이 부르시는 할머님의 다정하신 목소리가 귀전을 울리는것만 같으시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 장군이 이제 네놈들을 그냥 둘줄 아느냐!》 하고 원쑤들을 향하여 웨치시는 그 목소리가 가슴을 두드리는듯하시였다. 우리 인민들에게 힘을 주어야 한다. 조선은 억세게 살아있으며 원쑤를 쳐부시고 한걸음한걸음 최후승리의 그날에로 드팀없이 다가가고있다는 이 엄숙한 진실을 온 천하에 알려야 한다. 적들은 지난 겨울에 조선혁명을 압살하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일시 국경지대를 떠난 틈을 타서 혁명조직을 깡그리 파괴했으며 혁명군은 숲속에서 다 굶어죽고 얼어죽어버렸다는 요언을 대대적으로 퍼뜨렸다. 그러는 한편 실지 조선인민혁명군을 《소멸》하겠다고 몽강, 림강, 장백 일대에 10여만대병을 풀어 악착한 《비류식토벌》을 감행하였으며 나중에는 진드기처럼 물고늘어져서 《장추작전》을 들이댔다. 조선의 숨결은 폭풍앞에 놓인 초불처럼 위태로왔다. 만일 그때 그 폭풍앞에 우리 혁명군전사들이 억센 가슴을 들이대지 않았더라면 저 푸른 하늘, 저 아름다운 땅은 다시는 조선의것이 될수 없을것이였고 오매에도 그리운 우리 겨레를 그러안아보지도 못할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손끝에 잡히는 이깔나무의 새잎을 어루만지시였다. 피여오를듯이 아름다운 연두빛 신록은 콕 찌르는듯한 송진내를 풍겼다. 볼을 갖다대여도 찌르지 않고 부등깃처럼 부드러운 그 촉감을 느끼실 때 불시에 눈굽이 화끈해지시였다. 이것이 아니였던가? 뒤에 적을 달고 숨가쁘게 달릴 때 더 큰 《토벌》무력이 맞받아 달려오던 가재수부근의 눈길우에서, 많은 동무들이 독소금을 먹고 쓰러졌던 눈덮인 골짜기에서, 한홉의 미시가루를 나누어먹으며 허기를 에우던 간고한 행군길에서 모든 동무들이 피눈물을 뿌리며 가슴치고 사자처럼 울부짖으며 원쑤를 맞받아 달려나간것은 바로 이렇게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내 조국, 우리 겨레를 한가슴에 안아보기 위해서가 아니였던가. 적들가운데는 이미 조선의 숨통을 다 눌러죽인것처럼 생각하는 놈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겨레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조선의 해방과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있다는 사실이다. 간교한 적들은 바로 그것을 위하여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았으며 제놈들딴에는 할수 있는 노력을 다하였다. 만일에 이 사태를 방임해둔다면 그야말로 조선의 숨결은 초불과 같이 꺼지고마는것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조국땅에 진출하여 원쑤들을 종횡무진으로 무찌를 때에만 조선의 숨결은 다시 억세게 이어질것이다. 조선혁명의 새로운 일대 앙양을 마련하려고, 간간해진 조선의 숨결을 억세게 뻗치자고 김주현이며 리동학이와 같은 조선인민혁명군의 기둥감들이 목숨을 바치였고 태혁이를 비롯한 수많은 전사들이 혁명을 가슴으로 보위하다가 희생되였다. 그리고 전군이 무수한 시련을 헤치며 《고난의 행군》을 단행하였다. 일제 10만대군을 장백의 눈구뎅이에 처박고 조국땅에 안기기 위하여 우리 혁명군전사들이 헤쳐온 시련의 길이 그렇게 험난했지만 오늘은 조국땅의 흙냄새를 맡아보고 이처럼 얘리얘리한 나무잎과 꽃망울을 쓰다듬어보는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린다. 아무도 자기들이 겪은 고생, 뼈아픈 희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직 이 조국땅에 다시금 혁명의 일대 앙양을 불러올 크나큰 포부에 가슴이 부풀어있다. 사실 조선인민혁명군의 춘기반타격에 의하여 국경일대에서 허리가 끊어진 셈이 된 적들은 어지간히 당황망조하여 미쳐날뛰고있다. 겨우내 혁명군《토벌》을 지휘하던놈의 목을 떼고 지난 겨울 오중흡이에게 끌려다니다가 졸경을 치른 혼마라는놈에게 중장견장을 달아 그자리에 앉혔다고 한다. 그놈이 지휘하는 《련합토벌사령부》관하 무력들이 지금 림강, 장백 일대에 밀집대형을 짓고 조선인민혁명군의 퇴로를 막아보겠다고 미쳐날뛴다는것이다. 대붕이 푸른 하늘을 향해 깃을 칠 때 참새, 제비의 무리가 어찌 그 뜻을 알겠는가. 조선인민혁명군의 퇴로를 차단하다니… 조선인민혁명군이 물러날 생각이 있었다면 무엇때문에 지난 겨울의 그 어려운 행군길을 헤쳐왔을것인가, 우리는 이해에 국경지대에서 떠나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이미 조국에 들어왔다. 네놈들이 압록강 여울목에서 목을 길게 늘이고있는 사이 우리는 국내에서 큼직하게 전투의 불길을 지펴올릴것이며 이 불길을 그대로 두만강줄기로 옮겨갈것이다. 안도, 화룡을 중심으로 국내를 넘나들면서 적들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혁명조직을 복구하여 인민들을 묶어세울것이며 다시금 조선혁명의 일대 앙양을 마련할것이다. 일제와의 군사적대결뿐아니라 각종 기회주의와의 원칙적인 투쟁속에서 보낸 지난 한해에 조선혁명은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억세게 자라났다. 조선혁명은 이해 여름에 찬란한 개화기를 맞이할것이다. 그 봉화를 이 조국땅에 큼직하게 지펴올려야 한다. 그 불꽃이 튀여 3천리조국강토 방방곡곡에 혁명의 불길이 번져가게 해야 한다. 사령관동지의 가슴에는 이번 조국진군작전의 커다란 전략적지향이 새삼스럽게 밀물처럼 그득히 차오르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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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숙영지일판은 온통 웃음소리, 노래소리로 들썽들썽하였다. 격정에 사로잡혀 무슨 뜻인지도 모를 소리로 마구 웨치는가 하면 손나팔을 해대고 하늘을 향해 《우리가 왔다, 김일성장군님의 전사들이 왔다-》 하고 소리치는 동무도 있다. 껑충껑충 뛰는가 하면 끝없이 바람을 안고 달리기도 한다. 모든 노래를 밀몰아 수심가조로 불러제끼는 공인된 《명창》 강철룡소대장이 《자유가》를 부르며 손벽춤을 들고나오고 흥에 이기지 못하여 인섭이와 최병규가 씨름을 안고 돌아가자 숲속은 마침내 화끈 단 열정의 도가니로 변해버렸다. 《좋다-》 점잖은 7련대의 박태진중대장이 무릎을 철썩 내리치더니 어깨를 으쓱거리며 강철룡과 짝을 뭇고 돌아갔다. 그 모든 메아리가 하나의 화음을 이루어 가슴마다에 혁명하는 참된 보람을 뻐근하도록 안겨주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쁨에 몸부림치는 동무들을 보고있느라니 자꾸만 눈굽이 젖어들어서 홀로 깊은 숲속에 들어가시였다. 실컷 달려도 보고싶고 말없는 산천이나마 마음껏 쓰다듬고 안아도 보고싶으시였다. 얼마나 그립던 조국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저쯤 서있는 이깔나무를 향하여 달리시였다. 달려가던 기운으로 나무줄기에 팔을 휘감으니 그대로 나무를 안고 한바퀴 핑그르르 몸이 내둘리시였다. 그다음 고개를 번쩍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신다. 손바닥만한 파란 하늘에 반짝반짝 유리가루를 뿌리는것과 같은 해빛이 쏟아져내렸다. 눈을 쪼프리니 눈귀로 소리없이 눈물이 주르르 슴새여흘렀다. 고향 오산덕마루에 백살구꽃이 활짝 피여 그 꽃속에서 어머니며 오빠며 동생이 이제야 왔느냐고 손저어 부르는것만 같으시였다. 철도 들기 전에 하직한 조국, 그 조국으로 군복을 입고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이렇게 왔구나 생각하니 뭉클하는 감회가 가슴가득 차오르시였다. 공작임무를 띠고 신갈파와 도천리어간을 무수히 넘나들기도 하였지만 그때는 언제한번 마음놓고 울어볼수도 웃어볼수도 없으시였다. 장군님을 모시고 온 이날에야 고향땅에 찍혀진 자신의 작은 발자국을 되밟는듯, 참으로 부드럽고 포근한 어머니품에 안긴듯 싸움의 나날에 모질게도 억눌려오셨던 온갖 감회가 한꺼번에 되살아나 가슴을 두드리였다. 너무나 벅찬 생각이 뒤범벅이 되여 자신께서도 웃는것인지 우는것인지 종잡을수 없었고 그런것을 느껴볼 겨를도 없으시였다. 《어머니, 전 장군님을 모시고 어머니가 그렇게도 보고싶어하던 조국에 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가 누워계시는 아득한 부암의 하늘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속삭이시였다. 눈에는 함빡 눈물이 어리였고 떨리는 입귀에는 웃음이 피여있었다. 평생소원이 이룩된듯 한 벅찬 감동이였다. 동시에 가슴 에이는듯 한 충격이기도 하였다. 가슴속에 부푸는 감회때문인지 몸은 잠시도 한자리에 머물러있을수 없으시였다. 어딘가로 훨훨 날아가고싶으시였다.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해빛이 그이의 눈길을 다른데로 이끌어갔다. 엄청나게 큰 이깔나무 저쪽에 진달래가 여기저기 피여 흐트러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방금까지 입귀를 떨며 외우던 혼자말을 문득 그치고 한달음에 달려가시였다. 길손 하나 없는 이 깊은 숲속에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도 곱게 피여났는가. 진달래는 한물이 져서 연분홍 꽃물이 만첩으로 드리운 꽃잎끝에서 뚝뚝 흐를것만 같다. 저쪽에도 꽃이 있다. 아니 꽃만이 아니였다. 묵은 잡초의 떡잎을 헤치고 파란 새풀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청취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옆에 무수해도 있고 찟개나물도 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이 빛나시였다. 그것은 산나물밭이나 같았다. 그중에도 청취가 많다. 꺼멓게 퇴색하여 얼기설기 뒤엉킨 떡잎을 뚫고 파랗게 돋아난 청취의 새잎에서는 봄내가 확 풍겨오는듯하였다. 한참 그 만만한 연록색의 잎을 쓰다듬으며 그윽한 눈길로 사위를 둘러보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옆차기에서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작은 치도를 꺼내여 나물밑을 우비시였다. 뿌리쪽에 묻어난 흙을 털어내시니 젖먹이의 살결같이 새하얗고 부드러운 밑줄기에 발깃한 혈색이 물들어있다. 코가 알싸하도록 봄내, 조국의 향취를 풍겨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제는 이 생각, 저 생각 다 버리고 나물을 캐는데 열중해버리시였다. 한잎한잎 우벼서는 부드러운 흙을 털어내고 곁묻어 일어난 떡잎을 다 골라내여 한쪽손에 쥐고 앞으로 나가시였다. 어느새 줌이 벌어져 어디다 건사할것인가 망설이는데 저만치 모록하게 우거진 관목덤불그늘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시였다. 씹어삼키는 흐느낌소리도 들리는듯하시였다. 누굴가? 조국의 품에 안기여 눈물을 흘리는것은 유난스러운것이 아니였다. 장군님 모시고 10년세월 간고한 혈전의 길을 헤쳐온 지숙한 로대원도 듬직한 정치일군이나 지휘관들도 땅을 그러안고 눈을 슴뻑거리였다. 꽃포기를 그러안고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어린 대원들도 있고 진달래를 꺾어들고 흐느끼는 녀대원도 있었다. 자기가 운다는것을 감추려고 어색한 웃음을 짓는 전우들을 서로 바라보며 새로운 감동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누가 이런 으슥한 그늘에 혼자 와서 우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덜컥하는것을 느끼시였다. 《금숙이.》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다가가시였다. 금숙이는 소리없이 돌아보았다. 역시 눈에는 함빡 눈물이 괴여있다가 서둘러 가져가는 손등을 적시였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얼굴은 밝았다. 《언니예요? 아이, 무슨 나물을?》 금숙이는 입귀를 바르르 떨며 웃었다. 《왜 이런데 혼자 와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진달래꽃포기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앉으며 말씀하시였다. 《언니도… 내가 울고있는줄 알아요?》 《울었다 해도 나쁠게야 있어요. 강철룡소대장동무도 눈이 벌개서 주먹으로 나무를 탕탕 두드리던데… 허지만.》 《허지만 이 금숙이는 사정이 다르다는것이지요?》 하고 금숙이는 다잡아묻더니 대답할 사이도 없이 제절로 뒤를 이었다. 《나는 물론 그 동무 생각도 했어요. 이렇게 조국의 품에 안기니 멀지도 않은 곳까지 다 와서… 글쎄 여기서 간삼봉이 얼마 되기나 해요. 그렇게 조국을 지척에 두고 쓰러진 그 동무의 일이 가슴을 허비기도 했어요. 그러나 한태혁동무가 바란게 뭐겠어요? 우리 조국땅에 장군님을 모시기 위하여 그 동무도 목숨을 바친게 아니겠어요. 네, 언니… 난 여기 혼자 가만히 앉아 그런걸 생각하니 정말 그때 북대정자에서 장군님께 맹세한것처럼 그 동무몫까지 더 잘 싸워야겠다는 결의가 굳어지기도 했어요.》 《정말 금숙이는 어쩌면 이렇게 용할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진심으로 감동되시여 금숙이의 손을 어루만지며 길다란 살눈섭이 슴뻑거리는 처녀의 생동한 얼굴을 살펴보시였다. 《아이, 언니도… 어린애처럼 그러네.》 금숙이는 날쌔게 몸을 날려 그이의 무릎에 부끄러운듯 얼굴을 묻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숙이의 어깨를 쓸어주며 숲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 북대정자의 하늘쪽을 바라보시였다. 지난 겨울 갖은 시련을 겪고 후방밀영에서 나왔을 때 금숙이를 기다리고있은것은 태혁이가 가재수 백바위골의 혁명조직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는 소식이였다. 전부대의 사랑을 받던 유명한 기관총수이며 유명한 익살쟁이기도 했던 한태혁의 희생은 유격대원들의 무쇠같은 가슴에 오래동안 피얼룩진 상처를 남겼었다. 그중에도 한태혁이를 남달리 사랑하고 심혈을 기울여 키워오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얼마나 큰 아픔을 겪으셨는가 하는것은 그를 장례지내던 날 천지를 메우며 퍼붓는 함박눈속에 밤이 지새도록 서계셨다는 이야기만 듣고도 짐작할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북대정자로 가다가 양지바른 들판에서 냉이밭을 발견했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금숙이는 아이들처럼 고개를 쳐들고 그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으슬막에 둘이서 나물을 캐러 갔을 때 사령관동지께서 오시지 않았어.》 《정말 언니, 난 어찌면 좋아요? 왜놈들때문에 슬픔을 안은게 나뿐이예요? 언니는 부모형제 다 잃지 않았어요? 우리 동무들가운데 누가 원한이 없는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유난히 나때문에 그렇게 마음을 못 놓아하시니 난 어떻게 하면 좋아요?》 《장군님께서야 모든 사람의 슬픔을 다 한가슴에 안고계시지, 그런중에도 금숙이때문에 늘 마음을 못 놓으시는것은… 그것은 아마 장군님께서도 한태혁동무를 잊지 못하시기때문일거야.》 금숙이는 부러지듯이 목을 꺾고 다시 김정숙동지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갑자기 어깨가 세차게 물결치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그리워하던 땅일가. 우리 조국은 얼마나 좋아! 그래서 이 땅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고도 우리는 이 땅에 안기니 이렇게… 이렇게 눈물이 나도록 기쁜게 아니겠어.》 김정숙동지께서는 감동에 흐느끼는 금숙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눈귀에서도 가는 이슬방울이 맺히여 주르르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총총한 나무가지사이를 뚫고나온 해빛이 그 눈물줄기에 아롱져 유리가루같이 반짝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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