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 제 36 회 )

 

제 3 편

 

11

 

이해의 장마는 끈질기고 변덕스럽기도 했다. 며칠동안 된비를 내리퍼붓다가도 갑작스레 멎어버리고 하늘 한귀퉁이가 빠끔히 열리고 그러다가는 또 한주일이고 열흘이고 질끔질끔 내리군 하여 건조한 공기와 해빛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지쳐버리게 했다. 그러다가 파아란 하늘이 조금씩 보이여 아, 이제야 건조기가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하면 사람들의 그 생각을 조롱이라도 하는듯 먹장같은 구름을 날라다 폭우를 쏟아놓군 했다.

서길산은 거대한 수채에서 쏟아져내리는듯 한 폭우에 놀라서 깨여났다. 그는 순식간에 온몸이 물참봉이 되였다.

자기가 얼마나 잤는지 알수 없었다. 도대체 저녁인지 아침인지조차도 알수 없었다. 사위는 어둑컴컴했다.

(제길! 이런 비속에서 잠을 자다니! 그런데 이 친군 어디로 갔는가?)

비를 그을데도 없었다. 굴안에 들어가면 되겠는데 그러기는 싫었다. 하긴 다 젖어버리였는데 비를 그어선 뭣하랴. 차라리 비를 맞는게 좋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려 댓m앞도 내다볼수가 없었다. 주변은 비소리, 탕수가 흘러내리는 소리로 소란했다.

정철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장약굴안으로 탕수가 흘러들가봐 걱정되였다. 그래서 정대를 가지고 도랑을 쨌다. 산에서 내려오는 탕수가 도랑을 통해 아래로 흘러내리게 했다. 그래놓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굴앞에 뚝을 쌓았다. 버럭무지에서 돌들을 날라다놓고 물이 새여들어가지 않게 흙으로 덧쌓았다.

그가 그 일을 다 끝내도록 정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폭약을 날라오는 사람들을 마중갔을가? 그랬을수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흐릿해지는 하늘을 보며 둘이 다같이 폭약이 비를 맞으면 안되겠는데 하는 소리들을 한것이였다. 정말로 비가 오려고 하자 잠자는 친구를 자라고 내버려두고 혼자 마중을 갔을것이였다.

서길산은 왜서인지 마음이 불안했다. 비가 불안을 키질하는것이였다. 금년 장마철치고도 볼수 없었던 폭우였다. 한시간이나 두시간만 이렇게 쏟아져도 홍수가 날것이였다. 그런데 《우리 로반》은 아직까지 배수체계가 잘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이 비가 꼭 무슨 일을 칠것만 같았다. 눈앞에는 물속에 잠기는 《우리 로반》이 떠올랐다. 그러지 않아도 전번 폭우에 《우리 로반》이 사태져내릴것을 김성순이 한몸을 내대여 지켜내지 않았는가.

(모두들 비속에서 로반을 지켜내려고 붐비고있겠구나. 일없어야겠는데.) 서길산은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불안하여 마음을 다잡을수가 없었다.

그는 굴안으로 물이 새여들 우려는 없는가 다시한번 확인해보고나서 아래로 내려갔다. 산아래가까이에는 새 채석장으로 들어오는 길을 닦고있는 한개 분대의 소대원들이 있는것이였다.

그가 탕수에 빠져들기도 하며 내려가보니 그때까지도 대원들이 작업을 하고있었다. 남자들은 아예 웃옷들을 벗어버리고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곡괭이질과 삽질을 했다. 산자락을 헐어내여 길을 내는 작업이였다.

《누구 정철수동무를 못봤소?》

길산이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누군가 대답대신 일손을 놓고 서길산에게로 다가왔다. 길닦는 작업을 책임지고 나와있는 2분대장이였다.

《정철수동진 폭약운반조를 마중간다고 하면서 저아래로 조금전에 내려갔습니다. 소대장동지, 작업을 계속해야 할가요? 〈우리 로반〉이 일없겠습니까?》

그는 몸을 덜덜 떨며 큰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길을 닦으면서도 《우리 로반》을 걱정하고있은것이였다.

《안되겠소, 분대장. 작업을 중지하고 〈우리 로반〉에 가봐야겠소. 모이시오.》

작업중지구령이 내리였다.

서길산은 작업도구들을 지키기 위한 인원 한명을 떨구어놓고 나머지사람들을 데리고 《우리 로반》으로 향했다. 논뚝으로 가로질러 가다가 방향을 헛갈렸다. 뽀얀 비속이라 어디가 어딘지 똑똑히 분간할수 없는것이였다. 뒤따라 오던 대원들까지 이쪽이라거니 저쪽이라거니 하며 똑똑치 않은 주장들을 하는 가운데 서길산은 어림짐작으로 방향을 잡아 벼가 한창 자라는 논판으로 들어섰다.

논판 몇개를 지나가다가 그는 물속에 풍덩 빠져들어갔다.

그는 하마트면 큰일날번 했다. 그가 빠져들어간 곳은 논판의 물웅뎅이가 아니였다. 그곳은 물이 불어날대로 불어난 농도천이였다. 하천정리를 하면서 제방에 장석을 입혔는데 서길산이 그 장석에 미끄러져 들어간것이였다.

동무들의 구원의 손길이 뻗치여 서길산은 물속에서 나왔다. 그는 뼈짬으로 스며드는 추위에 와들와들 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슴이 섬찍했다. 농도천물은 한껏 불어나 뚝을 넘어설 지경에 이른것이였다. 게다가 논판의 벼들까지 물에 잠기여 어디나 물천지였다.

원래 농도천은 물량이 적었다. 강폭은 어지간히 넓어도 물은 그 한가운데로 실오리같은 시내를 이루며 흐르던것인데 장마철에 접어들면서부터 조금 불어났다. 그러던것이 한시간도 못되는 사이에 이렇게 범람하는것이였다.

서길산은 새로운 걱정이 생기였다. 물이 여기서 더 불어나면 지금 한창 상판콩크리트치기에 들어간 농도다리가 위험할수 있다는데 생각이 미친것이였다. 수백t의 귀중한 세멘트와 숱한 강재를 써서 건설하는 다리가 아닌가. 우리 동무들이 힘겨워 쓰러지면서 일떠세우는 다리가 아닌가. 그게 잘못되면 대통로를 당창건기념일까지 끝낼수 없게 된다. 신암대대 하나때문에 파렬구가 생길수 있다. 그럴수 없다! 그럴수 없어! 다리가… 파렬구가… 파렬구가… 서길산은 대원들을 이끌고 강뚝을 따라 달려가며 속으로 정신없이 부르짖었다. 불안한 예감이 가슴을 압박했다. 그 순간에 서길산은 거기 다리공사장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질수 있는지 그리고 위험에 처한 다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가 무슨 일을 할수 있는지에 대하여 전혀 생각해보지 못하였다. 다만 무슨 일이 있을것 같은 불길한 예감과 함께 만약 파렬구가 생긴다면 그 파렬구를 자기 한몸으로 막아나서서라도 집단의 꿈을, 그리고 대통로건설에 동원된 수만명 청춘들의 가슴속에 간직되여있는 가장 소중한것을, 이 나라 수백만 청춘들의 삶의 전부이기도 한 귀중한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는 비장한 의식뿐이였다.

드디여 그들은 다리공사장에 이르렀다. 뜻밖에도 전투원들로 붐빌줄 알았던 공사장은 텅 비여있었다. 3중대에서 본적이 있는 어린 대원 하나가 어디에 있다가 서길산이네를 발견하고 마주 달려왔다.

비에 홀딱 젖어 꾀죄죄해진 모습으로 서서 턱을 덜덜 떨기만 할뿐 말을 못했다. 얼굴은 사색이 되여버렸다.

서길산이 화를 내며 모두들 어디에 갔는가고 물어서야 《우리 로반》을 구원하러 갔다고 떠듬거리였다. 그리고나서 《어쩌면 좋습니까? 휘틀이… 다리가… 막… 막… 》하고 알수 없는 소리를 황급히 했다. 공포에 질린 그의 눈길이 아직 상판콩크리트치기가 채 끝나지 않은 다리아래를 가리켰다.

서길산은 그의 눈길을 따르다가 아연해졌다. 그가 지금껏 가슴을 조이던 그 불안한 예감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위험은 바로 그가 강뚝을 따라 내려오면서 본 홍수에 떠내려오는 부러진 나무가지들과 검불들과 벼짚나래퉁구리들에서 오는것이였다.

다리아래의 휘틀지지목들에 상류에서 떠내려온 뿌리채 뽑히운 뽀뿌라나무 하나가 가로 걸려있는데 그때문에 나무토막들과 벼짚이영같은 나래퉁구리들이 떠내려가지 못하고 물길을 막아버린것이였다. 그때문에 물은 순조롭게 빠져나가지 못하여 다리웃쪽은 삽시에 호수처럼 되여버린것이였다.

《넨장! 동문 뭘하고있었어?! 휘틀이 위험하게 되였는데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구.》

서길산은 턱을 덜덜 떨기만 하는 애숭이전투원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공연히 화를 내고있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한테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모두들 《우리 로반》을 구원하러 갔다고 하지 않았는가. 저기 뽀얀 비발속에서 뛰여다니는 사람들의 형체가 보이였다. 아마도 물에 사태져내리는 《우리 로반》을 지켜내기 위하여 온 대대가 치렬한 전투를 벌릴것이다. 저들은 다리공사장이 위험하다는것을 생각하지 못할것이다. 지금의 위험은 저들이 마음놓고 《우리 로반》을 구원하러 간 사이에 닥쳤을것이다.

《어떻게 합니까? 저기선 모두 사태를 막느라고 정신없는데… 여기선… 다리가… 어떻게 합니까?》

애숭이대원은 울상이 되였다.

《여, 동문 지금 몇살이야?》

서길산은 자기도 모르게 당치 않은 질문을 했다.

《열여덟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다리가…》

《열여덟이라… 그런데 왜 울상이 되여 그러는거야, 넨장!》

《…》

서길산은 짚검불들이 떠서 돌아가는 다리아래를 노려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뽀뿌라나무에 걸려 덧쌓인 나래퉁구리들이 흉물스럽게 보이였다. 그것은 봄에 랭상모판바람막이울바자로 썼던 나래일것이다. 어느 농장에서 나래를 철수하여 강기슭에 쌓아놓았던것이 홍수에 떠내려왔을것이다.

서길산은 나래들때문에 물목이 막혀 불어난 물이 다리아래에 촘촘히 세워놓은 휘틀지지목들을 밀고나갈것이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뜩해왔다. 휘틀지지목들이 떠내려가면 휘틀들이 떨어져나가고 그러면 방금 콩크리트타입을 한 다리상판이 무너져내릴게 아닌가!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서길산은 깊이를 가늠할수 없는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막혀있는 물이여서 물살은 세지 않았다. 그래도 한순간만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할수 있었다. 뒤에서 대원들이 뭐라고 소리치며 물속으로 뛰여드는 소리가 들리였다.

서길산은 따라오지 말라고 소리치며 안으로 헤염쳐들어갔다. 가까스로 헤염쳐들어가 뽀뿌라나무의 한끝을 붙잡았다. 물우에 떠있는 상태에서 나무를 끌고나가자니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나무는 나래퉁구리들이 실려있는데다가 물의 압력을 받고있는것이였다. 차라리 나래퉁구리들을 하나씩 떼내여 물밖으로 끌어내가든가 뽀뿌라나무너머로 던져서 떠내려보냈으면 어떨가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그렇게 하는게 더 헐치 않을것 같았다. 나래퉁구리들이 물에 젖어 무거워진데다가 물은 키를 넘고 물살도 센것이였다.

그가 다시 뽀뿌라나무를 끌어내보려고 달라붙어 안타까이 모지름을 쓰고있는데 뒤에서 허광식이 이발을 떡떡 맞쪼으며 기겁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ㅡ 차다! 어ㅡ 어ㅡ ! 얼음물 가… 같구나야! 그… 그게… 쫄아들어 고… 고추알만… 해… 해지겠군.》

《장마철 무… 물은 차다구. 그… 그래서… 장마철에 무… 물에 빠지면 어… 얼어죽는데… 어ㅡ》

《야… 찬호 너 주… 죽는 소린 왜 해? 어ㅡ 어ㅡ 넨장, 새… 생명은 물에서 기… 기원됐다고 했지. 그… 그런데 무… 물이… 무… 문젠… 문제로구나!》

《물이… 어… 어쨌다구?》

《여느땐 물이 바… 발라서 문제더니 이… 이건 물이 지내 나… 나서 거…걱정 아니야.》

《주의하라구! 여… 염라국이… 코… 코앞이야!》

《여… 염라국이라구? 히히…》

《부… 분대장동무두… 여… 염라국이라구?》

서길산은 온몸이 얼어드는것 같은 찬기운에 덜덜 떨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소대원들이 누가 시키지 않았건만 물속에 뛰여들어 자기를 향해 헤염쳐오는것이였다. 정황에 어울리지 않는 익살은 온몸을 엄습해오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대원들은 지금 물속에 뛰여든것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는것인지 알면서도 누구든지 물러서려 하지 않는것이였다. 물속에서 돌기둥이 되여 굳어져서라도 다리를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서길산은 힘들게 헤염쳐들어오는 그들의 꺼멓게 얼어든 얼굴에서 그리고 눈빛에서 마음을 읽었다. 한순간 그는 동무들앞에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대원들도 폭우속을 뚫고 위험한 강뚝우를 달려오면서 대대의 땀에 절어 일떠선 다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며 수만명 청년돌격대원들의 한치도 어길수 없는 맹세가 얹혀있는 10월 10일에 대하여 생각한것이였다. 바로 그것이 자기 서길산을 포함한 분대원들의 가슴속에 끊을수 없는 뉴대처럼 이어져있을것이였다. 그런데 자기 서길산은 동무들의 존재에 대해서, 그들의 생각에 대해서, 그들의 가슴속에서 끓고있는 뜨겁고 소중한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은것이였다. 서길산은 자기만이 누구보다도 대대의 창조물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하고있으며 그리고 자기만이 다리를 구원할수 있다고 생각한것이였다.

서길산은 동무들이 고마왔다. 나이로 보면 자기의 동생벌이 되는 그들에 대한 친근감과 혈육의 정을 느꼈으며 자기는 그들을 떠나 살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동무들, 주의하라구.… 여긴 위험한데야.…》

서길산은 어린 대원들이 지내 겁먹지 않게 하려고 히쭉 웃어보이며 소리쳤다.

《하지만 떨 필요는 없어. 정신을 차리면 돼. 이렇게 하자구. 우선 이 뽀뿌라나무에 달라붙으라구. 좋아.… 려찬호… 다리를 부지런히 놀려서 몸을 유지해야지. 자… 나무를 끌어내자구… 아니… 내 구령에 맞춰서… 그래… 하나… 둘…》

모두들 물우에 떠서 버둥거리며 나무를 잡아당기였다. 나무는 조금씩 용케 끌려왔다. 그러다가 멎어버리였는데 더는 끌어낼수 없게 되였다. 나무밑둥쪽에 있는 가지 하나가 공교롭게도 휘틀을 받쳐놓은 각목에 걸린것이였다.

《에이, 야… 야단인데!》

려찬호가 덜덜 떨며 떠듬거리였다. 그가 그럴만도 했다. 각목에 걸린 나무가지를 벗겨내자면 누군가 네댓m는 헤염쳐가야 했는데 그곳까지는 물살이 제일 세고 또 깊이도 가늠할수 없는 곳이였다. 거기서는 벌건 물이 조금 열린 틈새로 맹렬히 빠져나가면서 스산한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조금전에 말하던 《염라국》이 그곳일수 있었다.

모두들 두려운 눈길로 그쪽을 바라보고있는 찰나에 허광식이 그곳으로 헤염쳐가려고 나무에서 떨어졌다. 서길산이 황급히 소리쳤다.

《여, 어쩌자구 그래?》손을 뻗쳐 그를 붙들었다.

허광식이 걱정말라는듯 웃어보인다는것이 몸이 떨리고 맥이 진하여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소대장동지… 학교때… 내… 내가 수… 수영선수였다구요… 도…도 수영경기에…》

《체… 거짓말입니다. 소… 소대장동지… 개다리 허광식이같은게… 언젠… 도 축구경기에… 나… 나갔댔다고 하지 않았어. 소… 소대장동지… 제가… 가겠습니다.》

려찬호였다. 그런데 그는 나이도 제일 어리고 서길산이 보기에 수영도 제일 서툴었다.

서길산이 그를 떼놓으려고 하고 려찬호는 려찬호대로 제가 가겠다고 하는 사이에 2분대장과 그밖의 두명이 나무가 걸린쪽으로 헤염쳐갔다.

《서라구, 서! 돌아오지 못하겠는가?》

서길산은 벽력같이 소리치다가 에ㅡ 하고 화를 내며 다우쳐 그들을 따라갔다. 그는 앞에서 헤염쳐가는 2분대장을 겨우 따라잡았다.

《2분대장… 내… 내…》

서길산은 겨우 숨을 돌리며 떠듬거리였다. 《내가… 새… 생각이… 있…다니까… 도… 동무넨… 여… 여기서… 당기기만… 하… 하라구.》

2분대장과 두명의 뒤따르던 대원들은 서길산이 생각이 있다고 하는 소리에 주춤했다. 그 사이에 서길산이 걸린 나무가지를 향하여 헤염쳐갔다. 그것은 짧은 순간의 일이였다. 서길산은 점점 헤염치기가 힘들어졌다. 물살에 휘말려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썼다. 눈앞에선 검부레기들이 거품과 어울려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소름끼치게 하는 쭈룩소리와 함께 빨려들어가군 했다. 넨장, 몸이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거야. 이러다가 죽겠구나. 아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맹랑하게 죽으면 이 서길산이 무슨 꼴이 되겠어. 저기까지 가야 해! 저기까지! 그는 그곳을 향해 가고있었다. 검부레기들과 거품들이 빨려들어가는 그곳으로, 위험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최후의 기력을 짜내며 아득바득 가고있었다. 하여 기어이 그곳에 가닿았다. 사나운 물살에 떠내려가는 몸을 겨우 유지하며 모지름을 써서 각목에 걸린 나무가지를 벗겨냈다.

《당기ㅡ라ㅡ아ㅡ》

뽀뿌라나무에 주런이 붙어있는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나무가 움직였다. 그러자 걸려있던 나래더미가 내리쏠리면서 물목이 터졌다. 서길산은 사나운 급류에 휘말려들면서 나무를 놓쳐버리였다. 그는 기력이 진해버린 상태에서 나무를 향해 한손을 뻗치였다. 다행히 나무가지의 한끝이 손에 잡히였다. 그가 방금전에 각목에서 벗겨낸 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손에 힘을 줄수 없었다.

사품치는 물살에 휘말려들어가면서 그는 자기를 부르는 동무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거기로 가고싶었다. 그런데 물살의 희롱에 어쩔수 없는 몸이 되여 뒤번져지며 고통의 심연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도 왜서인지 마음은 편안했다. 정말이지 왜 그럴가? 왜 죽음이 무섭지 않을가? 다리가 무사하게 되였다는 생각이 피뜩 머리속에 떠올랐다.

 

서길산은 지금이 어느때인지 그리고 자기가 어디에 누워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안정감을 느끼며 의식을 차리였다.

그는 눈을 뜨고싶지 않았다. 그대로 열흘이고 한달이고 내처 자고싶었다.

그런데 아득한 푸른 골짜기에서 기세차게, 그리고 조용히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반짝임, 해빛이 부서지는 무수한 반짝임… 서길산은 음악을 듣고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무척 조심스럽고 격정에 흐느끼는듯 한 손풍금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서길산은 그 소리에 깨여난것이였다.

 

피끓어라 청춘아

불타라 심장아

 

그것은 마치 자기의 지나온 생애의 잊을수 없는 한토막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 아버지세대의 청춘시절의 노래였다.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며 페허로 된 땅에 오늘을 건설했다!》

아버지는 드문히 그렇게 말하군 했다.

성순이다! 성순이의 손풍금소리다. 성순이만이 저 노래를 저렇게 감정있게 탈수 있어. 성순이만이 내가 아버지세대의 저 노래를 좋아한다는것을 알고있어! 내가 왜 인제야 생각했을가? 왜 인제야 떠올랐을가?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걱정말라요. 성순누이, 이제 정신이 들거예요! 길산동진 깨여난다니까요.》

허광식의 목소리다. 저 친구 왜 여기에 있을가?

손풍금소리가 끊어졌다. 흑ㅡ 하는 소리! 흐느끼누나, 성순이가.

《성순누이, 그때말이예요. 우린 참 눈앞이 아뜩했어요. 다리가 막 무너져 떠내려가는줄 알았지요 뭐. 끝장이구나! 끝장이야!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말이예요. 우린 저 려찬호랑 모두 햇내기들이였으니까요. 그런데 소대장동지가, 서길산소대장동지가 사나운 물살우로 헤염쳐가는게 아니겠어요. 아마 길산동진 그때 죽음도 각오했을거예요. 살 생각만 했으면 헤염쳐갈 엄두나 냈겠어요. 길산동진 위험을 맞받아 헤염쳐갔구 기어코 각목에 걸린 나무가지를 벗겨내고야말았어요. 길산소대장동지가 아니였더라면 아마 다리는 무너져버렸을거예요. 그건 사실이예요.…》

성순은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허광식이 지금껏 그 소리를 몇번이고 반복하는듯 했다.

다시 손풍금소리가 울리였다. 비로소 그때 일이 망각의 두터운 막을 헤집으며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치게 하는 쭈룩소리… 검부레기들이 거품과 함께 황토물우에 떠서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사나운 회오리속으로 휘말려들어가버리군 하던 스산한 광경… 거기를 향해 헤염쳐가던 일들이 그리고 나무가지를 벗겨내고 물속으로 빨려들어가던 그 순간에 동무들의 부름소리를 듣던 그 일이, 그들에게로 가고싶었던 그때의 일들이 생각났다.

어떻게 되여 내가 이렇게 다시 살아났을가? 어떻게 되여 내가 여기에 누워있을가. 넨장, 저 허광식이는 허풍선이야. 이 서길산이 마치 굉장한 위훈이라도 세운것처럼 말한단 말이야. 이 서길산이 무너지는 다리를 한몸으로 막아 구원한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정말 저 허광식인 거짓말쟁이야. 개구리헤염이나 치는 주제에 뭐 학교때 도수영경기에 나갔댔다구? 한심한 친구야.

손풍금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그 소리는 얼마 못가서 끊어졌다. 별안간 거대한 소리가 울린것이였다. 그 소리에 땅이 흔들하고 창문이 쩌ㅡ엉ㅡ 울리였다. 무슨 소릴가? 우뢰소린가? 아니… 아니!… 서길산은 환희에 휩싸였다. 망각의 두터운 막이 산산이 찢겨나가면서 또하나의 생각이 번쩍하고 떠오른것이였다.

여럿이 격동에 찬 웨침을 터치며 밖으로 달려나가는 소리가 들리였다. 그런 속에서 김성순이만이 자리를 뜨지 않고 서길산을 흔들며 애타게 부르짖었다.

《길산동무, 정신을 차려요! 저 소리를 들어요? 발파소리를… 정철수동무랑 지금 새 채석장에서 대발파를… 어서 눈을 뜨라요.… 눈을 뜨란 말이예요.…》

성순은 울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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