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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 제 28 회 )
제 3 편
3
《여, 려찬호,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뭘 말이야?》 온몸이 감탕투성이가 되여 두부자루처럼 철떠럭거리는 감탕마대를 메고 경사받이를 힘들게 올라가던 려찬호가 뒤따라오는 허광식을 귀찮아하며 돌아보았다. 허광식은 역시 감탕마대를 메고 올라오면서 히죽거리였다. 노상 반죽이 좋고 쾌활한 허광식이였다. 《그거말이야. 어떻게 석축을 뽑아왔는가 말이야. 아무리 철없어두 애써 쌓아놓은 석축의 돌을 뽑아올 때 속이 편했어?》 《말 자꾸 시키겠어? 그게 이제 우리 고속도로의 완성과 함께 없어질거라구 생각했지. 아무래도 다시 쌓아야 할걸 에라, 먼저 돌 몇개 뽑아쓴다구 큰일나겠나 하고 한 노릇이 넨장, 깨깨 망신했어.》 무릎까지 푹푹 빠져들어가는 감탕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려찬호가 툴툴거리였다. 허광식이 킬킬거리며 계속 시까슬렀다. 《려찬호, 넌 입당을 하기는 다 틀렸구나. 이제 아무리 감탕마대를 메여날라도 석축돌까지 뽑아온 네가 어떻게 당원이 되겠어. 어제 중대장동지한테 신소하러 찾아왔던 그 사람 봤지? 보통 성나지 않았더라. 아마 너를 단단히 혼내우라고 말했을거야.》 《너 정말 자꾸 약을 올리겠어? 남은 그때문에 속타죽겠는데 말이야. 아까 정치지도원동지가 나한테 말했단 말이야. 이제 다시 그런 량심없는 행동을 했다간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이야. 미래의 주인들인 우리 청년들이 똑바로 사는가 못사는가 하는건 사회주의의 운명과 관련되는 문제라는거야. 그런데 난 똑바로 살지 못했거든. 석축돌을 뽑아온것만이 아니야. 어제 저녁두 채석장에 나가 돌을 지고오다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남의 집 울바자너머에 있는 마늘을 뽑아먹을가 하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게 결국 마늘을 뽑아먹은거나 같지 뭐야. 난 정말 너절한 자식이란 말이야.》 《오, 너 그래서 고민하고있었구나. 려찬호를 새롭게 알게 되는데. 어쨌든 너 그 일때문에 단단히 애를 먹게 됐다. 대대에 보고되면 크게 문제를 세우자고 할수 있어.》 《여, 허광식이 그만하라구.》 뒤에서 감탕마대를 메고 올라오던 서길산이 퉁명스레 말했다. 허광식이 그 말투가 별스러워 돌아보았다. 서길산은 누구보다도 무거운 감탕마대를 멨다. 긴 다리가 다 빠져들어가는 감탕속에서 커다란 마대를 잡아끌다싶이 하며 올라오는데 왜서인지 얼굴표정이 밝지 못했다. 《길산동지, 왜 그래요?》 허광식이 이상해서 물었다. 서길산은 응대가 없었다. 허광식을 보지도 않았다. 허광식은 왜 기분이 언짢아서 그러는가고 물으려다가 아무래도 서길산의 기분상태가 심상치 않은것이여서 그만두었다. 더 캐물었다간 정말로 버럭 화를 낼것 같았기때문이였다. 《에이, 벌써 배가 고프구나야. 이놈의 감탕판이 언제면 끝장날가. 영 죽여준단 말이야.》 허광식은 제혼자 두두벌거리며 감탕속에서 벗어나려고 안깐힘을 썼다. 배꼽까지 거의 빠져들어가자 이번에는 어깨에 멨던 감탕마대를 내려놓고 질질 끌었다. 벌써 한주일째 대대는 농도다리기초공사를 위한 감탕쳐내기에 동원되였다. 그곳은 주변이 논판인데다가 구조물기초를 들이앉혀야 할 곳은 늪지대여서 깊이를 알수 없는 감탕층이였다. 수백명의 전투원들이 오구작작 붐비면서 감탕마대를 메여올렸는데 도무지 자리가 나지 않았다. 감탕은 멀건 죽같은 물감탕인데 전투원들이 죽을 힘을 다 써서 끌고올라가 쏟아놓으면 그만한 량이 또 바닥으로 흘러내리였다. 허광식은 감탕마대를 끌고 끝까지 올라가 언덕너머로 쏟아버리면서 려찬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방금 허광식이한테서 대대에 보고되면 크게 문제를 세울거라고 한 말까지 들은지라 자기 과오를 놓고 더욱 의기소침해졌던 려찬호가 《왜?》하며 돌아보았다. 허광식이 감탕마대를 끌고 올라오는 서길산의 우울해하는 얼굴을 눈짓해보이며 《왜 그래?》하고 속살거렸다. 려찬호가 보기에도 서길산의 얼굴색은 정상이 아니였다. 사실 서길산은 지금 머리가 복잡했다. 사흘전에 고향에서 편지가 온것이였다. 옹진누이한테서 온 편지였다. 그 편지가 서길산을 번거로운 생각에 빠져들게 한것이였다. 지금도 서길산의 눈에는 편지의 글줄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것이였다. 《길산아, 네가 집에 왔다가 대대로 돌아간 다음 일을 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때 아버지를 만나보려 집에 갔다가 중학교동창생인 리선명동무를 만났댔다. 후방물자를 날라가려고 잠간 군에 왔댔다더구나. 그 동무가 너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대대로 돌아가면서 굴착기랑 수리해가지고 갔다더구나. 그리고 어정이라는것을 까내는 일에서 다른 동무들보다 함마질을 두배, 세배로 해서 함마명수라고 속보에도 났다더구나. 길산아, 일을 남보다 많이 하는것은 좋지만 조심해야 한다. 듣자니 밤에도 자지 않고 함마질을 하다가 하마트면 손을 크게 상할번 했다더구나. 사고를 내지 않게 각별히 주의해라. 네 성미를 잘 아는 이 누이는 그게 걱정이다. 누이의 일은 다 잘돼간다. 걱정이 하나 있는데 그건 아버지문제이다. 지금은 식량사정이 어려운 때가 아니냐. 그런데 아버님은 여전히 하루도 번지지 않고 일을 나가신다. 아마도 때식을 건느시고 일을 나가시는 때도 드문할거다. 그게 걱정돼서 가보니 정말 낟알예비가 없지 않겠니. 내가 절약해두었던것을 조금 가져가기는 했는데 그게 며칠이나 가겠니. 아버님이 일터에서 쓰러질가봐 걱정이다. 인젠 년세도 많은 몸이 아니냐. 여기 옹진에 있는 그 어머니라도 새 어머니가 되여 아버님곁에 가있으면 좋으련만 그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 어머니가 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는구나. 그러니 내가 강요할수야 없지 않느냐. 그런데다가 아버님까지도 새 어머니소리만 하면 그런 생각 말라고 하니 더더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다. 내가 동생한테 공연히 이런 소리 다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말아라. 온 나라가 모두 어려움을 이겨내고있는데 우리 집안이라고 례외가 되겠니. 어려움을 이겨내느라면 좋은 날이 오겠지. 시간이 있으면 내가 자주 아버님을 찾아보군 하겠다. 그러니 너는 거기 일만 잘해라. 거기야 온 나라가 지켜보는데가 아니냐. 나는 네가 고향사람들과 아버지와 이 누이를 생각해서라도 일을 더 잘하리라고 믿는다. 네가 일을 많이 해서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집단의 사랑을 받으면 누구보다도 아버님이 좋아하실거다. 아무쪼록 앓지 말고 일을 잘하여라.…》 누이는 편지에서 아버지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말라고 썼지만 서길산은 편지를 받고나서 오히려 더 걱정이 되였다. 때식도 변변히 치르지 못한채 일하러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서 얼른거리였다. 년세가 많아지면서부터 건강도 좋지 못한 아버지였다. 뭐니뭐니 해도 곁에 사람이 있어야 했다. 새 어머니라도 곁에 있었으면 좋으련만 누이의 편지를 보면 그 일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였다. 그래도 일을 잘해서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집단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라고 한 편지의 구절이 서길산을 분발케 했다. 그러지 않아도 말뚝사건을 일으키고 도망까지 쳤던 이 아들의 일로 하여 지금도 아버지는 마음을 놓지 못할게 아닌가. 서길산은 아버지가 자기한테서 무엇을 바라는지 안다. 그것은 남들처럼 일을 잘해서 당원이 되는것이였다. 그런데 자기는 지난 시기 아버지의 그 소원을 풀어드리기는커녕 사고를 일으키고 도망까지 쳐서 그 마음을 괴롭힌것이였다. 이 서길산이 다시는 그런 오유를 범하지 말자,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이의 편지가 아버지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를 무겁게 해주는것이였다. 서길산은 눈앞에서 얼른거리는 편지의 글줄들을 잊어버리려고 애쓰며 감탕마대를 끌었다. 100㎏이나 될 감탕마대를 끌고 허리까지 빠지는 감탕을 헤치며 둔덕으로 올라가기가 조련치 않았다. 그가 그렇게 감탕과 싸우고있을 때 최진혁대대장이 기초공사장으로 나왔다. 최진혁이 보기에도 작업장형편이 말이 아니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감탕을 걷어낸다고 하지만 감탕속에서 허우적거리기만할뿐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는 감탕속에 뛰여들어 전투원들과 휩쓸려 몇번 마대를 끌어보다가 《안되겠소. 소대장동무들은 다 모이시오!》하고 지시했다. 소대장들이 언덕우에 모이였다. 모두들 온몸에 감탕매닥질을 하였고 지칠대로 지치였다. 《이렇게 하기요. 지금처럼 한데 몰켜다니니 마대로 끌어올리는 감탕보다도 도로 흘러내리는 량이 더 많은것 같단 말이요. 그러니 소대별로 한줄로 늘어서서 마대를 넘겨주고 넘겨받는 식으로 끌어올려보잔말이요.》 《그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허리치는 감탕속에서 늪에 빠진 곰새끼들처럼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늪에 빠진 곰새끼들을 련상해보며 모두가 웃는 가운데 여럿이 그게 좋겠다고 지지해나섰다. 《대대장동지, 그런데 한가지 제기합시다.》 3중대의 한 소대장이였다. 《뭐요? 말하오.》 《녀자들은 감탕나르기에서 뺍시다. 돌채취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것은 남자들모두의 의사를 대변하는 제의이기도 했다. 사실 연약한 녀자들이 허리치는 감탕속에 들어가 안깐힘을 써가며 감탕마대를 끌어내는것을 남자들로서는 보기 딱한것이였다. 《그렇단 말이지.》 대대장이 생각해보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리고있는데 김정옥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건 안됩니다. 남자들만 힘든 일을 하고 녀자들은 변두리에서 쉬운 일만 하라는건데 우린 그런 대접이나 받자구 여기로 온게 아니예요!》 《정옥소대장동무, 사실은 이 대대장도 동무네 처녀들 보기가 딱하오. 하루종일 무거운 감탕마대를 끌고나서 저녁에는 또 채석장에 돌을 나르러 가야 하지 않소. 그러니 처녀들이 견디여내겠소? 동무처럼 군대에서 단련된 처녀들도 아닌데.》 《글쎄 녀자들 걱정은 마십시오. 쓰러지는 동무들은 없을테니 말이예요.》 《무슨 녀자가 그렇게 독하오? 할수 없구만. 정옥동무가 그렇게 나올 땐 이 대대장도 어쩌지 못하니까. 동무들, 더 제기할게 없소?》 《대대장동지.》 최남영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러오? 어서 말하오.》 입을 열고서도 왜서인지 선듯 더 말하지 못하는 최남영을 다소 의아한 눈으로 보며 최진혁이 재촉했다. 《식량전망이 어떻습니까?》 《…》 최진혁은 낯색이 컴컴해졌다. 그는 한참만에야 무거운 한숨을 쉬고나서 입을 열었다. 《소대장동무들한테야 말못할게 뭐가 있겠소. 대대에 식량예비가 한주일분도 되나마나하다는건 동무들자신부터가 다 잘 아는것이고 식량배가 언제 다시 들어오겠는지는 려단에서도 모르오. 한달이 지나서 들어오겠는지 반년을 있다 들어오겠는지 말이요.》 《넨장, 기름이야 없으면 등짐으로 날라서라도 공사를 할수 있겠지만 사람이 먹지 않고서야 어떻게 일을 합니까.》 《후방참모동무는 뭘하는 사람이야. 그때 어떻게 해서나 식량을 받아왔어야지. 지도서를 가지고 가서도 못받아오다니!》 닷새전에 정남철의 뜨락또르를 가지고 남포에 식량실러 갔던 리선명은 얼굴이 새까매서 빈차로 돌아왔다. 다른 단위들에서 식량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이미 식량받으러 간 차들이 5리나 되게 늘어섰는데 지도서를 가지고 간 단위들에 절반도 공급하지 못한채 동이 났던것이였다. 그래서 식량을 못받게 된 드살군들이 도대체 식량을 다 주지도 못하면서 지도서는 왜 떼주어 기름만 랑비하게 했는가, 지도서를 떼주었을 때에야 들어온 식량의 량을 가지고서도 다 공급할수 있겠다는 타산이 있어 떼주었을게 아닌가 하고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는데 식량을 내주는데서는 그들대로 없는 식량을 어데서 가져다 내놓으라 그러는가, 어디 제눈으로 창고안을 보란 말이요 하며 화를 냈다. 결국 대외사업에서 수완이 있다는 리선명이조차도 빈 뜨락또르를 타고 돌아왔는데 그때문에 림철중대장이 그것 보라, 식량을 받아올수 있겠는지 똑바로 알아보기나 하고 갈것이지 귀중한 디젤유만 랑비하지 않았는가고 야단을 했다. 그 일은 지금 대대장의 주위에 모여선 소대장들도 다 아는것이였다. 대대장은 식량소리가 나오자 속이 좋지 않았지만 인차 낯색을 펴며 흔연스레 말했다. 《동무들, 어찌겠소. 극복하기요. 우선 소대장동무들이 정치사업을 잘해서 대원들이 모두 견디여내게 해야겠소. 그만합시다. 오응세동무는 좀 남소.》 모두 헤쳐가고 오응세만이 남았을 때 대대장이 말했다. 《오응세동무, 대대에서 초보적으로 론의가 있었는데 동무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하오. 서길산동무를 오동무의 후임으로 임명하자고 하는데 어떻소?》 《그건 무슨 소립니까?》 오응세가 의아해서 물었다. 《달리 생각할건 없소. 동무는 이제 소대장자리를 인계하고 정치지도원사업을 맡게 될거요. 오선호동무는 려단지휘부에 올라가 일을 보게 되오. 그래서 동무를 대신할 새 소대장을 선출해야겠기에 서길산동무가 어떨가 해서 의향을 묻는거요.》 오응세는 덤덤해있었다. 한참후에야 《서길산동무가 그런 과오까지 범했던 동무인데 소대장을 시키겠다는겁니까?》하고 주저주저하며 물었다. 대대장은 그의 속마음을 알고싶은듯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니 동무생각엔 그때문에 안된다는거요?》 《제 말은 그런게 아닙니다. 제 의견을 말한다면 찬성입니다. 알고보면 일하는데 몸을 아끼지 않는 동무이고 또 사실 동무들을 불러일으킬줄도 압니다. 제가 말하는건 대대에서 과오있는 그 동무를 소대장으로…》 《됐소, 됐소.》 대대장이 그의 말허리를 자르며 손을 내저었다. 《동무두 찬성이란 말이지. 대대에는 뭐 생각이 협소한 사람들만 앉아있는줄 아오? 사람이 살아가다가 과오를 저지를수도 있는것이지. 문제는 그 과오를 어떻게 인정하고 새출발을 하는가에 달려있는게 아니겠소. 이제 지시가 떨어지면 소대장사업을 인계할 생각이나 하오.》 두 사람은 그렇게 하고 헤여졌다. 대대장이 감탕마대를 나르려고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아래로 내려가는데 마주 올라오던 정철수가 소리쳤다. 《대대장동지, 이거 이렇게 일하잡니까? 힘들게 말입니다.》 《왜? 정철수가 맥이 빠진게구만.》 최진혁이 가까이에서 이를 악물고 감탕마대를 끌고있는 독고봉희를 가리켰다. 《보라구. 어린 독고봉희까지도 힘들다는 소리 안하고 일하는걸 말이요. 동문 남자라는게 체대나 컸지 안되겠소.》 《대대장동지, 하 이거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오해? 무슨 오해를 한다는거요?》 《노래는 생활과 투쟁의 윤활유라고 하더구만요. 그런데 우리한텐 노래가 없단 말입니다. 저 김성순동무는 감탕마대를 끌지 말고 노래나 부르게 해주십시오. 성순동무의 몫은 우리 남자들이 세배, 네배로 할테니까요. 여, 친구들, 어떻소?》 《그게 좋겠소!》 《찬성이요! 대대장동지, 그렇게 합시다. 성순동무, 어서 손풍금을 가져오라구.》 《동무들, 그건 안됩니다.》 뜻밖에도 김정옥이 나서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남자들속에서 불만을 샀다. 《녀성소대장동무, 거 너무 비싸게 굴지 마오. 우리가 성순동무의 몫을 두배, 세배로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말이요.》 《성순동무야 선동원이 아닌가!》 《그래, 우리모두의 손풍금수지. 성순동무, 노래를 부르라구!》 《하긴 청춘들의 일터에 노래가 없구 춤이 없으면 안되지. 성순동무, 안그렇소?》 대대장이 남자들의 편에 서서 김성순을 불러내려 했다. 김정옥은 왜서인지 울상이 되였다. 《동무들, 그러지들 마십시오. 성순동무는 지금 노래를 부를 형편이 못됩니다. 대대장동지, 성순동무는 어제부터 사실 열이 나서 감탕속에 들어갈 형편이 못되지만 일하러 나온것입니다.》 《뭐요? 그럼 누워있게 할것이지 왜 데리고 나왔소?》 《본인이 어디 떨어지려고 합니까? 기어코 나오는걸 어떻게 합니까?》 《정옥소대장동무, 뭘 그래요? 별치 않게 열이나 좀 나는걸 가지구, 난 일없어요. 동무들, 미안해요. 제가 목이 좀 쉬여서 그런답니다. 그대신 손풍금을 타겠어요.》 김성순이 발씬발씬 웃으며 말했다. 그 얼굴표정을 보면 앓는 사람같지 않았다. 성순은 온몸에 게발린 감탕을 대충 씻고 손풍금을 멨다. 둔덕우에 서서 재치있게 손풍금을 탔다. 혁명가요의 힘찬 선률이 전투원들의 가슴에 불을 달아주었다. 모두들 힘든줄 모르고 일했다. 하지만 김성순이 어떤 의지의 힘으로 버티고 서서 손풍금을 타고있으며 어떻게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려고 애를 쓰고있는지 많은 동무들이 다는 알수 없었다. 다만 김정옥소대장이며 그리고 김성순이와 한잠자리에서 자는 독고봉희며 하는 몇몇 처녀들만이 그것을 알고 눈물이 글썽해하는것이였다. 그중에서도 독고봉희가 제일 안타까와했다. 봉희는 지난밤 채석장에 가서 돌을 날라오는 늦작업을 하고나서 자리에 누워 온밤 고열에 오돌오돌 떠는 김성순을 간호하면서 속상해서 울었던것이였다. 그런 김성순이 낮에는 또 차디찬 감탕속에 들어가 무거운 감탕마대를 끌고있는데 그런줄도 모르는 남자들은 노래까지 부르라고 하는것이였다. 독고봉희는 누구보다도 정철수가 밉광스러웠다. 성순언니가 그렇게 아파하는것도 모르고 미욱스레 나서서 노래를 부르라고 하다니! 미욱쟁이 오빠같은거! 하고 봉희는 생각했다. 독고봉희는 마침 커다란 두부자루같은 감탕마대를 끌고 허우적거리며 올라오는 정철수를 기다리다가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오빤 뭐예요!》하고 맵짜게 내쏘았다. 《에크! 따벌이구나!》정철수는 일부러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싱글싱글 웃었다. 《왜 그래? 봉희.》 《성순언닌 지금 몹시 앓아요. 그 몸으로 감탕마대를 끌고있는데 그 사정을 모르고 노래까지 부르라고 하니 미욱쟁이가 아니면 뭐예요!》 봉희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랑가랑 고이였다. 정철수는 웃음을 거두었다. 《봉희, 사실은 그래서 일부러 성순동무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자고 제기한거야. 그러지 않으면 성순동문 이악쟁이니까 아파두 감탕속에서 나오지 않는단 말이야.》 《어마나! 그런걸 난 철수오빠만 욕했네. 난 뭐람.》 《뭐긴 뭐겠어. 고것도 모르는 맹추지. 하하.》 《호호…》 봉희는 웃으면서도 가슴이 찡해왔다. 정철수가 고마왔고 남자들의 깊은 속을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앙갚음이나 하듯이 뾰족한 말을 내쏜 자신이 참 한심하게 생각되였다. 《사실대로 말하면야 봉희야 맹추가 아니지, 훌륭한 처녀지.》 처녀는 눈이 동그래졌다. 《어마! 그건 무슨 말이야요?》 《봉희는 어린 처녀이지만 남자들도 힘들어 하는 일을 감당해내고있으니 말이지. 힘들지?》 《힘들지요 뭐. 그래도 견디여낼수는 있어요.》 《그 감탕마대 이리 달라구. 내가 도와주지.》 정철수는 한손으로 자기 마대를 끌고 다른 손으로는 독고봉희의것을 함께 끌었다. 《힘들지 않아요? 철수오빠.》 《힘들긴. 우리야 남자가 아니야. 녀자들이 힘들거야. 이렇게 하루종일 감탕마대를 끌고 저녁에는 또 채석장에 가서 돌을 날라와야 하지 않아. 그걸 보면 녀자들이 참 용탄 말이야.》 《철수오빠, 한가지 말하라요?》 《뭔데?》 《서영옥언니말이예요. 한번 만나서 좋은 말 해주라요.》 정철수는 뜻밖의 소리에 의아해졌다. 봉희는 놀리듯 생긋이 웃었다. 《봉희, 그건 어떻게 하는 말이야?》 《서영옥언닌 알고보면 좋은 언니예요. 요즘 언닌 많이 달라졌어요. 어찌보면 후회하구 고민하는것 같기두 해요. 철수오빠가 좋은 말 해주면 그 언닌 좋아할거예요.》 정철수는 말이 없었다. 후회로 말하면 먼저 그 자신이 자기가 너무했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는 자기를 새파란 얼굴로 대하며 말 한마디 못하게 외면하는 서영옥을 생각하며 까닭모를 한숨을 긋군했다. 《좋은 처녀라는건 나도 알아. 일도 누구보다 많이 하고… 생긴것도 곱고… 사실 그 동무와의 관계를 놓고보면 잘못이 나한테 더 많지. 많은 동무들이 보는데서 그 동무를 딱하게 해놓았거든. 에이, 봉희, 이 정철수는 참 싱겁구 덜퉁한 놈이지? 안그래?》 《아니예요. 에ㅡ좀 그렇긴 하지만… 에ㅡ철수오빤 어쨌든 좋아요.》 《좋긴 뭐가 좋아. 그런데 얼굴이 가려워두 손을 가져가지 말라구. 그게 뭐야? 봉희의 고운 얼굴이 말이야. 감탕속에서 딩굴다 나온 강아지같이 됐단 말이야.》 《어마나! 제가요? 호호…》 《하하하…》 해는 인차 서산말기우에 내려앉아 어설프게 대지를 비치였다. 《작업 그만!ㅡ》 림철중대장의 구령이 내리였다. 전투원들은 기슭으로 나와 젖은 땅에 아무렇게나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감탕속에서 온종일 허우적거리다나니 지치고 허기진것이였다. 《여, 길산동무, 배고프지 않나? 키가 150밖에 안되는 이 박정수도 배가 등가죽에 가붙은것 같은데 서〈대장〉같은 긴 어른께서야 오죽하겠어.》 기슭에 별스레 외따로 떨어져앉아있던 서길산은 시답지 않은듯 퉁명스레 한마디 던졌다. 《말시키지 말라구. 제 배 고프면 고팠지.》 《우리 서〈대장〉이 오늘은 왜 저기압이야?》 《왠 왜겠어. 박정수말마따나 배고프니까 화가 나서 저러는거겠지. 듣자니 쌀 실러 갔던 후방참모가 오늘 저녁부터 급식량을 규정량에서 3분의 1은 자른다고 했다누만.》 《그게 정말이야?》 《아니 밥량을 그렇게 줄이면 어떻게 한다는거야? 그러지 않아두 배가 고픈데 말이야.》 《할수 있는가. 나라사정이 그러한데 어쩌면 한동안 식량공급이 완전히 중지될수도 있다더군.》 《야단났구나!》 《그렇게 되면 후방참모가 날고 뛰여도 용을 못쓰지.》 《자자, 그렇게 맥을 놓고 앉아있겠는가. 빨리 일어나 몸들을 씻으란 말이요. 인차 모이겠소. 저녁에는 또 채석장에 가야 할게 아닌가.》 림철중대장이 대원들을 일으켜세웠다. 그날 저녁 아닌게아니라 밥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리선명은 전투원들의 불만이 비발처럼 날아들것이 두려워서 그랬는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애꿎은 식당취사원들만 바빠서 쩔쩔맸다. 식량사정이 어떻다는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정작 낮아진 밥그릇을 보고서는 생각이 짧은 몇몇 대원들이 식당에 대고 한마디씩 투덜댄것이였다. 오경실은 얼마전부터 식당취사원으로 돌아앉았는데 그 녀자는 남자들의 밥그릇이 낮아진게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기나 한듯이 눈물이 그렁해졌다. 림철중대에서는 하나의 일이 있었다. 식사는 중대별로 밥을 타가지고 배식을 해서 먹었는데 배식근무에 나갔던 김정옥이네 녀성소대 처녀들이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남자들의 밥그릇이 낮아지는것을 볼수가 없어 자기들의 몫을 거의 절반씩이나 덜어서 배식했던것이였다. 식당직일관이 그 사실을 알고 림철중대장에게 말했다. 림철은 자기들의 밥그릇을 덜어낸 녀성소대의 배식당번처녀들을 불러서 다시 한번 그런 일을 했다가는 작업에서 떼겠노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 사실이 남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밥그릇이 낮아졌다고 투정질을 한 자신들을 두고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날 저녁도 중대는 야간작업에 들어갔다. 온종일 무거운 감탕마대를 끌어내느라 기운을 뽑을대로 뽑았으며 변변히 먹지도 못한 몸들이지만 누구 한사람 떨어지지 않았다. 대렬앞에서는 림철중대장이 직접 붉은기를 들고 걸어갔다. 그뒤로 중대가 걸어갔다. 거의 10리나 되는 채석장에까지 가서 마대에 돌들을 담아가지고 돌아섰을 때에는 벌써 한치의 앞도 분간하기 어렵게 캄캄해졌다. 《에이, 채석장은 왜 이렇게 멀어가지구 이 고생이야.》 《그러게말이야. 원래 이 고장이라는게 미운 놈 때릴 돌도 줏기 힘든 고장이라나. 그러니 할수 없지. 이렇게 먼데다가 채석장을 만들수밖에말이야.》 《〈우리 로반〉가까이에다가 이 채석장을 옮겨놓을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럼 이렇게 고생을 안해도 될게 아니야.》 서길산은 돌마대를 메고 걸어가는 대오속에서 려찬호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만 들어보니 려찬호에게 말시키는게 그와 동갑또래인 양명철이였다. 얼굴이 매끈하고 눈알이 돌아가는 꾀바른 친구였다. 양명철은 무료감을 덜어보려는듯 이야기가 동강날세라 계속 이어갔다. 그런데 서길산에게는 그들의 말이 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로반가까이로 채석장을 옮겨갈수는 없을가 하던 려찬호의 말만이 귀에 박힌듯 떨어지지 않는것이였다. 조금전에 최남영이 마대에 돌들을 잡아넣으며 이놈의 채석장은 왜 여기에 잡았어, 로반쪽 코숭이에는 돌이 없나? 하던 소리가 생각났다. 최남영이 그렇게 말할만도 했다. 그 산으로 말하면 립석마을 옆에서부터 고속도로건설장쪽으로 길게 삐여져나온 산인데 채석장은 공사장에서 보면 립석마을쪽인 안쪽에 있는것이였다. 그래서 거의 10리나 되는 먼 거리에서 돌을 져나르지 않으면 안되는것이였다. 서길산의 머리속에는 그놈의 삐여져나온 산을 죄다 탐색해보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피뜩 들었다. 쇠돌이란건 맥이 있는데 막돌이라는것도 일정하게 맥이 있을게 아닌가. 돌맥이 혹시 공사장방향으로 뻗어나간 산코숭이에까지 뻗어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걸어가는데 누군가 앞에서 몹시 힘들게 걸어가는것이 보이였다. 가만 보니 김성순이였다. 낮에 아픈 몸으로 감탕마대를 끌고 또 동무들앞에서 손풍금을 타서 전투사기를 올려주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나쁜 자식이로구나! 성순이가 견디기 힘들어하고있는데 내 생각만 하고있지 않았는가. 서길산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성순이, 어쩌자고 그래? 고열이 난다는데 아프면 떨어질게지.》 그는 캄캄한 어둠속이고 또 앞뒤에서 걸어가는 동무들과 사이가 얼마간 있는지라 마음놓고 김성순의 손을 잡아보다가 늬큼 놀랐다. 《에크! 이거 보라구. 손이 불덩어리같애. 돌마대를 인달라구.》 《그만해요. 큰일 난것처럼 그러지 말아요.》 김성순이 누가 보기라도 하는것처럼 황황히 속살거리였다. 《에이, 고집쟁이같은거! 내가 메고 간다는데 그러누만. 그렇게 왕고집을 부리다가는 아예 쓰러진단 말이야.》 《아, 일없다는데.》 《좋아, 마대를 달라고 하지 않을게. 그걸 고집스레 메고가다가 쓰러져두 난 모르겠어. 도와주지 않겠단 말이야. 아참, 그런데 거 마대를 좀 수리하구 가야겠어. 구멍이 나서 돌이 떨어지겠어.》 그 소리에 김성순은 《정말이예요? 어쩌나?》하며 마대를 내려놓았다. 김성순은 채석장을 떠나올 때 구멍이 난 마대를 노끈으로 대충 꿰매였는데 서길산의 말을 들으니 그게 또 돌모서리에 쓸리여 터져나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마대를 내려놓고보니 아닌게아니라 기운자리가 터져나가 크게 구멍이 나있었다. 김성순이 끈같은것을 주변에서 얻어볼수도 없어 속상해하는데 서길산이 주머니를 뒤지여 손수건을 꺼냈다. 그것으로 구멍난 곳을 잡아매고서는 김성순이 어쩔사이없이 제일 큰 돌 하나를 꺼내여 자기 마대안에 잡아넣었다. 생각같아서는 마대채로 다 메고가고싶었는데 그러면 성순이 따라오며 야단법석을 할것이였다. 《에이, 곰같은거!》 훌렁해진 마대를 메고 따라오며 김성순이 토달거리였다. 서길산은 마대가 무거워졌지만 기분은 그만큼 더 즐거웠다. 《성순이 말이 맞아. 이 서길산이야 곰같은 미욱쟁이지. 그런데 성순인 아이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게 없는 고집쟁이지. 이악쟁이구.》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생각나지 않아? 어렸을 때 철수랑 성순이랑 우리 셋이서 내가에 고기잡이 나갔던 일말이야. 그때 우린 한뽐반이나 되는 쏘가리를 잡았지. 그놈한테 쏘여서 성순이의 고운 손에 피가 나오던 일 생각안나?》 그런 일이 있었다. 그것은 아득히 흘러간 소시적의 일이였다. 철부지들의 반두에 운수사나운 쏘가리란 놈이 걸려들어 요동을 쳤다. 소년들이 《야, 쏘가리다! 쏘가리!》하면서 환성을 지르자 고기바구니를 들고 따라오던 성순이 자기가 쏘가리를 건지겠다고 했다. 그러는것을 길산이 막았다. 《안돼! 쏘가리는 쏜단 말이야.》 《안쏘여!》 길산은 안된다거니 소녀애는 안쏘인다거니 싱갱이를 하는데 철수가 히죽히죽 웃으며 《얘, 성순아, 그럼 네가 건져라. 무슨 계집애가 고집이 그렇게 세냐?》했다. 《쏘이면 몰라.》길산이 말했다. 《걱정말어!》성순이가 옹알거리였다. 《어디 혼나봐라.》 《흥!》 소녀는 붕어입을 뾰죽해보이고나서 반두안의 쏘가리를 잡았다. 그찰나 놀란 쏘가리가 푸들쩍거리고 이어 소녀의 입에서 《아야!》하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소녀의 하얗고 자그마한 손에서 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쏘가리한테 쏘인것이였다. 두 장난군소년은 좋아라 깔깔 웃었다. 《그것봐라. 고집쟁이같은거.》 《아프지?》 《안아파!》 소녀는 아픔을 참느라고 애쓰면서도 앙큼하게 내뱉았다. 그런 일이 있었다. 서길산이와 김성순은 그때 일을 생각하며 웃었다. 서길산은 갑자기 우울해졌다. 김성순이와 함께 옛날의 일을 추억하면서 걸어가자니 고향생각이 나면서 불시에 옹진누이가 써보낸 편지의 글줄들이 눈앞에 되살아나는것이였다. 《저… 이봐요.》 김성순이 우울해진 서길산의 기분이 어데서 오는지를 다 아는듯 조심히 물었다. 《신암에 한번 갔다와야 하지 않겠어요?》 서길산이 피뜩 성순을 돌아보았다. 《그건 왜?》 《다 알아요. 고향에서 식량공급이 중단되여서 모두들 힘들게 지낸다는데 거기 아버님이라고 사정이 다르겠어요. 아버님 일이 걱정되여 그러는거지요?》 《…》 《리선명후방참모한테서두 들었어요. 식량난이 말이 아닌데두 아버님은 직장일을 나가신다더군요.》 서길산이 누이한테서 편지받은것은 모르고 하는 말이였다. 한데 서길산은 가슴이 쓰리였다. 허기진 몸으로 선로우를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것이였다. 서길산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누구나 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있지 않소. 성순인 뭐 배불리 먹고 야간작업에 나와 돌마대를 메고가는거야? 아버지는 견디여낼거야. 그리고 이 아들이 배가 고파도 견디여내고 남부끄럽지 않게 일하기를 바랄거야. 난 아버지를 잘 알아. 젊었을적부터 철도공사장에 나가 일하면서 집안일보다 직장일을 더 많이 생각했어. 이제 대통로를 번듯하게 닦아놓고 돌아가 아버지를 잘 모시자구. 그때 며느리구실을 잘해야겠어. 어떤 녀자들은 시집을 가서 시부모박대를 한다는데 성순인 그러면 안되겠어, 알겠어?》 《어마나! 동문 그저 점점 한다는 소리가!》 김성순의 새된 부르짖음에 서길산은 셈평좋게 웃기만 했다. 《왜, 못할 소리를 했어? 성순이 내 안해가 될건 뻔한데 뭘.》 《됐어요. 누가 듣겠어요!》 아닌게아니라 가까이에서 캐득거리는 처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였다. 《어마나! 누구예요?》 몹쓸 일이라도 하다가 들킨듯 김성순이 와뜰 놀라며 부르짖었다. 앞에 누구들인가 앉아있었다. 어둠속을 눈여겨보니 서영옥이와 독고봉희였다. 《동무네는 여기서 뭘하고있소?》 일이 좀 어색하게 된 서길산이 일부러 퉁명스럽게 물었다. 바빠하는줄 다 안다는듯 독고봉희가 해해거리며 말했다. 《길산오빠, 우린 아무말도 못들었어요.》 그게 자기들을 골려대는 말이라는것을 깨닫고 서길산은 성난체했다. 《야! 요건 그저!》 봉희는 그 소리에도 놀라기는커녕 웃기만 했다. 《성순언니랑 먼저 가보라요. 우린 좀 쉬였다가 가겠어요.》 《서영옥동무, 그러다가 떨어지지 않겠어요? 늦잡지 말고 인차 따라서라요. 빨리 가서 다문 얼마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래일 또 일하지요.》 《알겠어요. 먼저 가봐요.》 성순이 걱정하는 소리에 서영옥이 나직이 말했다. 어쩐지 김성순에게는 그 소리가 나른하고 가냘프게 들리였다. 그들은 휴식하는 두 처녀에게 빨리 따라오라는 말을 재삼 하고나서 자리를 떴다. 《이상해요.》 한동안 걸어가던 김성순이 나직이 뇌이였다. 《왜 그러오?》 서길산이 의아해서 돌아보았다. 《서영옥동무의 목소리가 별로 맥이 없는것 같아요. 봉희도 앉아서 해해거리기만 하는게 이상해요. 무슨 일일가요?》 《동문 별난 생각을 하는군. 이상하긴 뭐가 이상할게 있소. 힘드니까 좀 앉아 쉬는걸가지구.》 《남자들이란 다 그런가?》 《아니, 남자들이 어쨌다는건가?》 《빨리 가기나 하자요.》 김성순은 더 말하지 않고 걸음발을 놀리였다. 사실은 더 말할 기운도 없었다. 온몸이 금시 땅속으로 잦아들듯 나른해왔다. 눈앞에선 새노란 점들이 엉켜 돌아갔다. 참아야 해! 쓰러지면 안돼! 내가 이렇게 견디기 힘든데 내 돌까지 메고가는 길산동무는 얼마나 힘들가? 더군다나 난 선동원이 아니야. 선동원이 쓰러지면 어떻게 해. 김성순은 입술을 사려물며 서길산을 따라갔다. 한편 뒤에 남은 서영옥이와 독고봉희는 인차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처음에는 조금만 쉬였다가 가자고 했는데 점점 나른해지면서 둘이 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나니 한적한 곳에 그들만이 떨어진것이였다. 저녁에 배식당번 나갔다가 자기들의 몫으로 남긴 밥들을 남자들의 밥그릇에 절반이나 덜어주다나니 대대를 떠나올 때부터 배가 출출해진 상태였다. 인제는 두사람 다 일어날 기운도 없어했다. 《에이, 영옥언니.》 《왜 그러니?》 《난 막 속상해서 죽겠어요.》 《무슨 일때문에?》 《일은 무슨 일, 글쎄말이예요. 남들은 모두 곤난극복정신이 강한데 난 왜 남들보다 곱절이나 더 힘들어 하는지 모르겠단말이예요. 배도 더 고파하고 힘도 더 들어하지요 뭐. 언니가 막 부러워요.》 《나한테 부러워할게 뭐가 있니.》 《언닌 쎄니까요.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힘든줄 모르는것 같아요.》 《원, 나라고 왜 힘들지 않겠니.》 《아니, 언닌 힘들어하는것 같지 않아요. 난 공연히 여기 와서 다른 사람들의 짐이 되는것만 같아 부끄러워요.》 《너 여기 온걸 후회하니?》 《후회는 무슨. 사실이야 여기 와서 일하는거야 큰 영광이지요 뭐. 공사를 다 끝내고 아버지장군님을 모시게 될 그날을 생각해봐요. 언닌 흥분되지 않아요? 사실 난 말이예요. 음ㅡ 이건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요.》 《응.》 《난 말이예요, 실은 대학에 가고싶었어요. 그것도 꼭 김일성종합대학에 말이예요. 대학추천까지도 다 받게 되여있었지요 뭐. 그래서 입학시험준비를 하고있었는데 고속도로건설장탄원모임이 있었어요. 그렇게 되여 여기 오게 되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조금만 힘들어두 꼼짝 못하지 않아요. 야, 이대루 한잠 푹 잤으면 좋겠네.》 《잠들지 말아라. 가야지.》 《에이, 조금만 더 쉬자요.》 《너 정말 대학에 안간것때문에 후회하지 않니?》 《솔직히 말하면 좀 서운하긴 해요. 하지만 대학에야 이담에 가도 되지요 뭐. 대통로건설에 지금 참가하지 않으면 영영 후회할게 아니나요. 참, 영옥언니.》 독고봉희는 누가 듣기라도 할가봐 저어하는듯 목소리를 낮추어 속살거리였다. 《내가 하나 말해줄게 있어요. 정철수동지말이예요.》 《그 동무가 어쨌다는거냐?》 《철수동지를 너무 나쁘게만 생각지 말아요.》 《그건 무슨 소리니?》 《언니에 대해서 말이예요. 철수동지가 말하더군요. 그건 좋은 말이였어요. 언니는 일도 남들보다 많이 하고 또 용모도 아름다운 처녀라고 했어요. 남자들이 녀자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건 사랑하기때문이래요. 사람은 먼저 마음씨가 고와야 하지만 그건 선뜻 눈에 띄우지 않는대요. 얼굴이 고와서 사랑했다가 차츰 아름다운 속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그 사랑이 더 굳어진대요.》 《얜 속에 구렝이가 들어앉았구나. 스무살도 못된 처녀가 어데서 그런 사랑철학을 다 배웠니?》 독고봉희는 해해거리다가 당돌하게 말했다. 《내가 쬐꼬만 처녀라구 해서 그런 소리 못한다는 법이야 없지 않아요. 어쨌든 서언닌 철수동지를 랭대하면 안돼요.》 《그만하렴!》 서영옥은 왜서인지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내가 왜 이럴가? 왜? 정철수의 잘 생긴 얼굴이 눈앞에서 얄궂게도 얼른거리였다. 그 동무가 정말 그렇게 말했을가? 이 서영옥이 아름다운 처녀라구? 그가 뭘 보고… 나같은 처녀가 어떻게… 어떻… 서영옥은 까닭모를 설음에 갑자기 목이 꽉 메였다. 《봉희, 인젠 갈가?》 《조금만 더 있자요. 야, 왜 이렇게 편안할가? 막 졸려죽겠네.》 나른한 하품을 하며 독고봉희는 꿈속에서처럼 중얼거리였다. 서영옥은 일어나 가자고 말했지만 그 자신도 일어나기 싫었다. 몸이 점점 나른해지면서 꼼짝할수가 없었다. 배안에서는 꼬르륵소리가 나다못해 인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야, 꿀빵이라도 실컷 먹었으면 좋겠네.》 혼자서 옹알거리는 독고봉희의 목소리가 아득한 꿈나라에서 들려오는듯 했다. 《언니, 왜 말이 없어요?》 《좀 가만있으렴!》 《야, 졸리누나!》 독고봉희는 또 기분좋게 하품을 했다. 처녀는 지금 자기가 망각의 낭떠러지로 떨어져내리고있다는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있었다. 심신이 가벼운 깃털이 되여 날아가는 가운데 눈앞에는 바람에 설레이는 꽃바다가 펼쳐졌다. 코스모스, 백일홍, 분꽃… 글라디올라스… 갖가지 꽃들이 피여나는 언덕… 만세소리… 아버지장군님께서 완공된 고속도로를 찾아나오시는 거룩하신 모습이 어리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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