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 제 25 회 )
제 2 편
10
대대는 그렇게도 말썽많던 사고계선을 넘어섰다. 《우리로반》은 날이 갈수록 자기 면모를 번듯하게 드러냈다. 이제는 전진해야 할 구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리영국이 희생된 후 작업능률이 날에 날마다 뛰여올라 2단계경쟁기간인 4월중순까지는 표식말뚝이 서있는 관통지점까지 가닿고도 남을 전망이 확고히 내다보였다. 이제는 누구도 1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들 관통에 대해서만 신경들을 썼다. 중앙지휘부적인 관통은 100여리 청춘로반을 열어가는 모든 전투원들의 목표로 되였다. 그리하여 신암대대에서는 제일 나이어린 려찬호나 독고봉희까지도 자기네 대대의 속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이웃대대의 전진속도에 대해서까지 관심사가 되여 신경들을 썼는데 린접한 운성대대에서는 비록 예상외의 방대한 토량정리가 제기되였지만 기계수단들이 동원되여 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기였다. 위대한 장군님께 100여리 청춘로반의 관통에 대한 보고를 드릴 4월의 명절을 기다리며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있을 때 림철중대에서는 전투원들이 하나의 서운한 생각을 하고있었다.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간 오경실이 보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것이였다. 어느날 작업시간이 되여 녀성소대의 운반조 처녀들과 오응세네 소대원들이 널려앉아 쉬고있는데 독고봉희가《에ㅡ 선아 어머니는 오겠다구 하구선 왜 안오니ㅡ》하고 혼자소리로 속상하다는듯 종알거리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전투원들은 저마다 생각은 하면서도 선아 어머니에 대한 말을 입에 올리지는 않고있었다. 《오겠지 뭐.》 그닥 믿음이 없이 말하는 민옥숙이를 공연히 찔 흘겨보며 박정수가 두덜거리였다. 《오긴 뭘 와? 보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녀자가 이제 온단 말이야? 올것 같으면 벌써 왔지. 신암에서 여기까지 뭐 천리길이라도 된다구.》 《그 아주머니가 영국동지의 장례식에 왔을 때 대대지휘부에 들어가 했다는 말은 참 찡한 말이지. 자기가 나른 흙이 대통로를 다지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아버지장군님을 모시는 완공의 기쁜날 대대와 함께 영국동지도 그자리에 있는것으로 될게 아니냐고 했다는 소리말이지.》 《그때는 그랬지만 집에 돌아가서 마음이 달라졌겠지. 여긴 사실 힘든 곳이니까.》 《오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지 어떻게 알아요? 정수동지,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그렇게 말하면 되나요 뭐.》 《야, 봉희. 넌 왜 이 박정수를 가시눈으로 쏘아보면서 그러는거야?》 《그 아주머니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니까 그러지요 뭐.》 《됐어요. 봉희동무, 그만해요.》 김정옥이 핀잔조로 말해서야 봉희는 입을 다물어버리였다. 서길산은 갑자기 눈굽이 확 달아올랐다. 여직껏 말하지 않고있었지만 모두들 선아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지 않았는가. 사실 오경실은 대대에 나타나서야 전투원들에게 알려진 존재였다. 그저 희생된 리영국의 안해라는것으로 해서 모두 관심을 가지게 되였고 친근감을 느꼈을뿐이였다. 그런데도 모두들 그 녀자가 오기를 말없이 기다려온것이였다. 그 녀자가 대대에 있으면 리영국이 늘쌍 함께 있는듯이 느끼게 되기라도 할듯이. 《차라리 오겠다는 약속이라도 하지 말고 갈게지.》 《에이, 영국동지가 그때 혼자 떨어져서 바위밑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하는것인데.》 《우리가 정말 잘못했지뭐. 영국동지가 그렇게도 로동안전에 대해 강조하구 안타까와 했는데 우린 일만 일이라고 하면서 규정을 망탕 위반했단 말이야.》 《영국동무야 사실 우리를 위해서 희생되였지.》 《정말 괜찮은 사람이였어. 인정이 많구 아는것도 많았구. 일할 땐 몸을 아끼지도 않았어. 책임성두 강했구. 게다가 성격두 좋았지. 그런데 그 좋은 영국동지가 우릴 위해 희생됐단 말이야. 그가 진심으로 우릴 위해 그러는것도 모르고 규정규정한다고 해서 그저 규정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거든. 참 훌륭한 사람인데말이야.》 《영국동지의 안해라는 그 녀자야 사실 영국동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영국동지에 비하면야 그 녀자야 뭐 잘 생기기라도 했나. 게다가 목엔 보기 흉한 상처자리까지 있지. 멋쟁이인 우리 영국동지가 어떻게 그런 녀자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만하지 못하겠소?》 서길산은 듣다 못해 자기도 모르게 벌컥 화를 냈다. 하지만 인차 후회했다. 목이 꽉 메여왔다. 동무들은 대대의 안전참모였던 리영국은 인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중의 참인간이며 자기 사업에서 누구보다 책임성도 있으며 또 용모조차도 누구보다 잘 생긴 최고의 미남자이고 인격자였던듯이 말하고있지 않는가. 그리고 모든 인간적인 장점을 겸비한 리영국에 비하면 그의 안해라는 녀자는 아주 보잘것없는 녀자인듯이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동무들을 탓할것이 못되였다. 동무들은 훌륭한 인간이였던 리영국에 대한 애정을 그런 말로 표현했을뿐이였다. 그렇다. 서길산은 그것을 느꼈다. 그런데 오경실의 목에 난 상처자리에 대하여 누군가 말하는것을 들었을 때에는 사실 화를 내지 않을수 없었다. 저들이 알기나 하랴. 그 녀자의 상처자리에 대한 래력을 리영국은 아마도 서길산이외에는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은것 같았다. 그 녀자의 화상자리는 인간에 대한 참된 사랑을 말해주는 지워지지 않는 표식이기도 한것이며 그 화상자리때문에 리영국이 더더욱 그 녀자를 사랑하게 되였다는것을 저 박정수가 알았더라면 어떻게 그런 말을 했으랴. 《동무들, 리영국동무가 좋은 동무였고 우리들의 잘못으로 그 동무를 잃었다는 말은 옳소. 그런데 잘못으로 말하면 누구보다도 이 서길산이 잘못한게 많소. 물론 표식말뚝을 자의로 옮겨놓아 대대의 명예를 말아먹고 오작시공을 내게 해서 공사에 난관을 조성한것도 말할수없이 엄중한 과오요. 그런데 보다 더 한심한것은 저 하나의 자존심만을 내세우면서 동무들의 비판에 대하여 좋지 않게 생각한 나머지 전투장을 버리고 달아나기까지 한것이요. 도대체 이 서길산이 하나의 자존심이란게 뭐겠소. 그 하찮은 자존심때문에 집단과 동무들의 곁을 떠나 도망칠 때엔 자기를 정당화해보기도 했고 또 고향에 돌아가서 뒤를 돌아다보지만 않으면 수치도 잊게 되고 평온이 찾아들게 될거라는 자체위안도 했댔소. 그건 참 시시하고 어리석은 생각이였소. 집단과 동무들의 곁을 떠나 고향의 집구석에 박혀있으면서 사람이 집단의 떳떳한 한 성원으로 사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에 대하여 뼈저리게 느끼게 되였소. 희생된 영국동무에 대하여 동무들이 그토록 못잊어하는것을 보면서 난 또 생각하게 되오. 우리 사회에서 집단의 한 성원으로 사는것보다 더 큰 긍지는 없으며 설사 인생길에 그 어떤 예상치 않던 풍파나 곡절을 겪는다해도 집단과 동무들의 품을 떠나 안게 되는 고독감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것을 말이요. 집단과 동무들곁을 떠나 외톨배기가 되니 궁지를 모면해보려고 가까운 이웃들과 지어 혈육들과 제 아버지앞에서까지 거짓말을 하는 위선자가 되더라니까.》 《하, 서길산이 굉장한데…》 오선호정치지도원이 느슨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한마디 했다. 그 바람에 서길산은 얼굴이 뻘개서 더 말을 못했다. 《정치지도원동지.》 오응세소대장이 서길산을 대신하여 신중한 기색을 하고 말했다. 《서길산동무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교훈이 되는 말을 하고있습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생활과정에 결함도 범할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집단과 동무들앞에서 마음속 한점의 티까지도 말끔히 털어놓는다는건 헐치 않은 일이거든요. 그래서 인간이 한생을 산다는것은 바로 한생을 두고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 투쟁하는것이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서길산동무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있던 그 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공연히 나타나서 서동무의 좋은 이야기를 동강냈구만. 오응세동무는 참 옳은 말을 했소. 사람이 결함을 범할수 있지만 사람들앞에서 마음속 한점의 티까지 다 털어놓기란 쉽지 않은것이지. 인간이 한생을 산다는게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 투쟁하는것이라는 말도 옳소. 그러고보면 청춘로반을 완성하기 위한 투쟁이 간고하고 어려운 투쟁이지만 우리들 청춘들의 성장과 인간적인 완성의 견지에서 보면 얼마나 중요한 계기이겠소. 안그렇소, 서길산동무, 계속 말하오. 교훈이 되는 이야기란 누구나 들으면 좋은것이지.》 서길산은 당치 않은 칭찬을 받은 아이처럼 얼굴이 더더욱 뻘개졌다. 《정치지도원동지, 사실 전 제자신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던것은 아닙니다. 전 그저 리영국동무와 그의 안해에 대한 말을 하자고 했던것인데…》 《리영국동무와 그의 안해에 대한 이야기라.》 《그렇습니다. 여, 박정수동무, 난 동무가 나쁘다는 말을 하자고 그러는건 아니요. 그런데 동무가 오경실아주머니의 목에 난 상처자리에 대해 말을 할 때엔 사실 기분이 좋지 않았소. 내 영국동무가 희생되던 날 그한테서 들은 소리를 하나 말해주겠소.》 서길산은 그 이야기를 하자니 눈굽부터 쩌릿해왔다. 그는 리영국이 희생되던 날 그가 자기 안해에 대해 들려주던 이야기를 조용조용 말했다. 리영국이 결혼하던 이야기를 다 듣고난 동무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들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두고 생각하는것이였다. 서길산은 눈가녁이 축축해왔다. 《동무들, 리영국동무는 그렇게 좋은 동무였고 그 안해 역시 훌륭한 녀성입니다. 이 서길산이는 곁에 가지도 못할 그런 훌륭한 동무들이란말입니다. 난 오경실아주머니가 대대와 한 약속을 꼭 지키리라고 믿습니다.》 《서동무의 말이 옳소. 량심이 깨끗한 인간들은 기만이라는것을 모르지. 내 동무들한테 좋은 소식을 하나 알려주겠습니다. 오경실아주머니가 집에서 떠났다는 전화가 조금전에 왔습니다.》 류종수의 말이였다. 그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였다. 모두들 기뻐서 환성을 올리였다. 남자들은 당장 남포에 가서 선아 어머니를 마중하자고 했다. 그런데 남포에 언제 도착하겠는지 그리고 무슨 차편으로 오겠는지도 알수 없는것이여서 마중을 간다는것은 아무래도 막연한것이였다. 마중을 못나가는대신 그 녀자를 맞을 준비를 잘하기로 했다. 남자들은 리영국의 귀여운 딸애만은 자기들이 전적으로 맡아 돌봐주겠노라고 했다. 그러자 녀자들이 항의했다. 오경실아주머니가 녀성소대에서 생활해야겠는데 남자들이 무슨 권리로 애어머니한테서 선아를 뺏어갈수 있느냐는것이였다. 듣고보니 정말 그렇기도 한것이여서 모두들 한바탕 즐겁게 웃었다. 유쾌한 싱갱이가 웃음으로 끝나갈 때 작업구령이 울리였다. 《동무들, 오늘은 선아가 오는 날이예요. 그러니 우리가 선아를 어떻게 맞아들여야 하겠어요. 꽃다발도 좋고 맛있는 특식도 좋을거예요. 하지만 그보다도 오늘 전투계획을 수행하는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안그런가요? 동무들.》 김성순의 말이였다. 그 녀자는 선동사업을 할줄 알았다. 대번에 모두가 호응해나섰다. 오응세가 그의 말을 받았다. 《성순동무의 말이 옳소. 오늘은 선아를 위해서 계획을 하기전에는 들어가지 말기요. 계획을 하지 못한 동무들은 선아를 안아볼 자격이 없단말이요. 자, 냅다 밀어보기요.》 오응세는 악성감기의 후과가 말끔히 가셔지지 않아 목이 헐끔해보이고 목소리도 원래소리가 아니였다. 전투원들은 150%를 하자고 와와 기세를 올리였다. 기다리던 오경실은 해질녘이 다 되여서야 후방물자를 가득 실은 화물자동차를 타고 나타났다. 군에서는 고속도로건설장에 나가 수고하는 자기의 젊은이들을 위하여 통돼지며 수산물이며 절약해오던 식량이며를 적지 않게 보내준것이였다. 온 대대가 적재함에 가득 실은 그것들을 보며 좋아했다. 오경실은 혼자서 왔다. 그를 맞이하던 대원들이 선아를 어떻게 하고 혼자 왔느냐며 몹시 서운해했다. 오경실은 모두가 선아를 보고싶어 한다는것을 알고 눈물이 글썽해졌다. 《고마와요. 다들 선아생각을 해주어서 말이예요. 사실은 선아를 데려오자고 했댔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선아가 여기 오면 대대에 부담이 될것 같기도 하고 또 홀로 계실 시어머님이 적적해 하실것 같아 떼놓고왔어요.》 그 녀자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시어머니자신이 선아를 데리고가면 이런저런 일로 옆의 동무들한테 부담을 끼치지 않겠느냐고 해서 두고온것이였다. 오경실이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 돌격대에 나갈 의향을 비쳤을 때 시어머니는 예상외로 선뜻 응했다. 《가려무나.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선아 에미야, 네가 선아 애비의 뒤를 이어 우리 장군님의 뜻을 받드는 일에 나설 생각을 했다니 이 에미는 참 고맙구나!》 좋은 시어머니였다. 오경실이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모두들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선아가 오지 못한것때문에 못내 서운해했다. 오경실이 그러는 전투원들의 마음을 리해하며 《동무들, 선아는 오지 못했지만 그대신 제가 무엇을 가져왔나 보세요.》하고 말했다. 오경실은 방긋이 웃더니 차에서 가지고 내려온 보퉁이를 풀었다. 전투원들은 도대체 그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가 하고 잔뜩 호기심이 동해서 지켜보았다. 보퉁이에서는 수백통이나 될 편지들이 나왔다. 그것은 고속도로건설장에 탄원하여나간 아들딸들과 애인들과 남편들에게 보내온 고향의 편지였다. 군에서 군당책임비서가 직접 조직사업을 하여 그 편지들을 쓰게 한것이였다. 고향에서 온 편지라는 소리에 모두들 자기한테 오는 편지를 찾겠다고 모여드는것을 어느새 보자기를 가로챈 정철수가 히쭉 웃으며 제지시켰다. 《여여, 동무들, 내 말을 좀 들어보라구. 이렇게 하는게 어떤가? 편지는 누구의것이라고 할것없이 모두 이 자리에서 공개하잔말이요.》 저마끔 제 편지를 달라고 손을 내밀던 동무들이 그게 좋겠다고 일제히 호응해나섰다. 정철수는 《의견이 없단말이지.》하며 손에 잡히는대로 편지 하나를 꺼내들고 겉봉에 씌여있는 주소를 읽었다. 《송이 아버지 앞, 공혜순 올림》 정철수는 다 읽고나서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이건 뭐야? 송이 아버지가 누구야?》 처녀총각 할것없이 모두 눈이 둥그래졌고 그들은 저마끔 마주보며 중얼거리였다. 《송이 아버지가 누구야?》 《글쎄말이야. 누가 장가를 가 가지구 총각행세를 하는게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건 량심없는 행동인데.》 《동무들, 그럴것 있는가. 읽어보면 알게 아닌가. 여, 정철수, 온 대대가 다 듣게 큰소리로 읽으라구.》 《여여, 정철수, 당장 편지를 가져와! 서신은 비밀이란말이야!》 자동차에 실려있는 물자들을 부리는 일을 주관하던 정남철이 《송이 아버지》란 말을 들었는지 바빠하며 소리쳤다. 그러는 정남철을 보며 젊은이들은 좋아라 하하 호호 웃었다. 《야, 송이 아버지가 누군가 했더니 아바이로군요.》 대대에서 유일한 농근맹원이며 나이가 서른일곱살인 정남철을 대대젊은이들은 모두 《아바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친근감을 더해주는 부름이였다. 정남철이 편지에 정말 무슨 비밀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해서 무작정 비집고 들어와 뺏으려고 했다. 그러는 그를 막아서며 남자들이 한마디씩 했다. 《아바이, 안됩니다. 집체적결정인데 례외가 없단 말입니다.》 《야, 아바이, 안된다니까요.》 《여, 정철수 뭘해? 빨리 읽으란 말이야.》 더 그랬다간 어떤 익살이 터져나올지 모르는지라 정남철은 편지를 가로챌 생각을 그만두고 얼굴이 뻘개서 뒤더수기를 벅벅 긁었다. 《〈여보!〉》하고 정철수가 읽기 시작했다. 《〈날씨가 찬데 당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겠나요. 여기서두 매일매일 텔레비루 당신 가있는 공사장을 봐요. 당신의 얼굴도 나오지 않는가 해서…〉》 《〈당신〉, 〈당신〉하면서 녀편네라는게.》 정남철이 좋아하면서도 쑥스러운듯 혼자 중얼거리는바람에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정철수가 계속 읽었다. 《〈당신이 그런데서 일한다고 생각하니 난 막 기뻐요. 여기 남아서 농장일도 나가고 또 당신이 집에 계실 때 돼지도 기르고 닭모이도 주고 또 집오래를 손질하던것이랑 내가 다 하면서도 힘든줄을 모르겠어요.…〉》 《남철아바이가 집에 있을 때 아주머니를 잘 도와준게지?》 《돼지도 기르고 닭모이도 주고 또 집오래를 거두는 일도 했다지 않아.》 《하하하, 그런 남편 둔 아주머니는 좋겠다. 호강할게 아니야.》 《아주머니가 고운게지?》 《쟈쟈… 좀 조용하라구. 들어보란말이야. 〈당신은 당신이 집에 있을 때 하던 일들을 내가 다 한다고 혹시 내가 힘들어하지 않나하고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이 추운 때 고속도로건설장에 나가 일한다고 옆집 순정이네랑 뒤집 명철이네랑 많이 도와주어요. 한번은 불이 잘 들지 않아서 고생하는것을 알고 영수분조장아저씨가 청년동맹원들과 함께 와서 개자리를 고쳐주었는데 불이 막 잘 들어요. 모두들 당신이 고속도로건설장에 나가 수고한다고 우리 집 일을 도와주지 못해 그러니 난 기쁘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해요. 왜 안그러겠나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도 래년농사를 잘 지어보자고 모두 떨쳐나 돼지거름도 쳐내고 흙깔이도 더 많이 해요. 그러니 당신은 여기 사람들한테 뒤지지 않게 일을 더 열성껏 하세요. 당신이 영웅이 되면 더 좋겠어요. 아무쪼록 건강하세요. 혜순 올림〉이라.》 《야, 거 괜찮은 아주머닌데!》 《고향에서두 수고들 하누만. 이거 우리가 일을 더 잘해야겠소.》 《가만가만. 여기 편지가 또 있소.》 정철수가 봉투안에 함께 넣어 보내온 또 한장의 편지를 펼치였다. 《아하〈아버지 보세요〉라. 송이한테서 온거로군. 〈아버지, 나 송이예요. 나 학교에 잘 가요. 선생님은 내가 공부를 잘하고 또 좋은 일도 잘하는 착한 아이래요. 아버지, 텔레비죤 매일 보는데 아버지는 왜 안나와요? 아버지가 보구파요. 그래도 전 참고 공부를 더 잘하겠어요. 아버지가 돌아오면 5점 맞은거랑 보여줄래요. 아버지는 일 잘해서 텔레비에 꼭 나오세요. 아버지 안녕. 딸 송이 씀〉 남철아바이, 송이를 생각해서라도 텔레비에 빨리 나와야 하겠구만요.》 《텔레비촬영가한테 우리 남철아바이만은 한장면 찍어달라구 부탁을 해봐?》 《여여, 그것두 말이라고 하는가. 문제는 우리가 일을 더 잘해서 〈우리 로반〉우에 하루빨리 승리기발을 꽂는거란말이야. 그러면 텔레비죤촬영가를 초청하지 않아도 제발로 찾아와 찍자고 할거란말이야. 남철아바이, 안그래요?》 《그게 옳은 말이야. 고향사람들을 위해서두 일을 더 잘해야지. 정철수, 다음 편지를 읽게.》 《동무들, 이 편지가 적어두 300통은 되겠는데 다 읽으려다간 래일아침까지두 안될거란 말이요. 그런데 우린 저녁밥을 먹구 야간작업을 나가야 하잖아. 이렇게 하는게 어떤가? 정치지도원한테 말해서 이 편지들을 몽땅 속보판에 내다 붙이게 하잔말이야. 속보판이 자리가 모자라면 침실들에 붙이면 될게 아닌가.》 《그게 좋겠군!》 《그러자구! 자, 남자들은 후방물자들을 창고에 날라가세.》 와하고 헤쳐졌다. 남자들은 후방물자들을 하나씩 둘러메고 창고로 가고 녀자들은 먼길을 온 오경실이를 에워싸고 자기들의 숙소로 향했다. 저녁을 먹은 대대는 작업장으로 나갔다. 오경실이도 녀성소대처녀들과 함께 나갔다. 아직 흙물이 오르지 않은 새 작업복을 갈아입고 나무로 만든 질통을 졌다. 모두들 먼길을 왔는데 오늘만은 푹 쉬라고 했지만 그 녀자는 굳이 마다하고 따라나선것이였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고 흙먼지가 날리는 어슬녘의 언덕으로 대렬은 흘러갔다. 동무들속에서 걸어가던 서길산의 눈에 장대우에서 세차게 나붓기는 돌격대기발이 비쳐들었다. 언젠가 과오를 범한 자기 서길산을 비판하면서 오응세소대장이 터치던 열변이 갑자기 생각났다. 《동무들, 밖을 좀 내다보라구. 저 기발을 좀 보란말이요! 붉은 기발을! 저 기발의 색갈이 왜 저리도 붉은가?》 오응세는 그때 말했다. 혁명선렬들이 추켜들었던 저 기발이 오늘도 변함없이 붉게 타는것은 혁명의 대를 이어오는 매 세대들이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의 사상과 령도를 받드는 길에서 바쳐오는 가장 순결한 량심이 어려있기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생각나자 서길산은 부지불식간에 가슴이 쩌릿해지고 눈앞이 부옇게 흐려왔다. 리영국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그 리영국과 같은 참된 인간들의 가장 깨끗한 량심이 어려있어 우리의 저 기발은 더욱 붉게만 타고있는것이 아닌가! 폭풍이 사나울수록 더더욱 세차게세차게 나붓기고있는것이 아닌가! 서길산은 자기도 모르게 흑ㅡ 하고 흐느끼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