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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 제 22 회 )
제 2 편
7
서길산은 혼자서 구월산줄기를 찾아들어가고있었다. 어렸을 때 《야생생활》을 해본다고 동무들과 함께 구월산줄기에 들어갔던적이 있는 정철수가 공사장에 와서 함마자루가 자꾸만 부러져나가는것때문에 애를 먹자 거기 가면 물푸레나무가 많겠는데 하고 말했던것이였다. 서길산은 함마자루감으로 쓸 물푸레나무를 한짐 해가지고 대대로 갈 작정이였다. 정철수가 자기를 데려가자고 먼길을 걸어서 신암에 왔다간다음 서길산은 괴로움에 싸여 오랜 시간 방뚝우에 앉아 고민을 했다. 정철수앞에서는 다시는 대대에 가지 않겠노라고 했지만 그것은 사실 한푼의 가치도 없게 된 자존심을 지켜보려는 어리석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것이였다. 그는 정철수한테서 자기 서길산을 걱정해주는 진심을 보았고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따뜻한 애정을 느낀것이였다. 하여 하찮은 자존심때문에 성큼 따라서지 못한 자신이 역겨워지는것이였다. 아, 난 정말 시시한놈이로구나! 하지만 이제와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대대에 다시 나타난단 말인가. 서길산은 새벽이 가까와오는 무렵에야 일어나 집으로 들어갔다. 아직 잠을 잘거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어찌된 일인지 일어나 앉아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컴컴한 방안이였다. 괴로와하고있다는것이 알리였다. 누가 왔댔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하지만 모든것을 다 알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이미전에 스스로 알았거나 아니면 누이가 왔다가면서 사연을 말해주었을수도 있었다. 《얘야.》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공사장으로 돌아가거라. 젊었을적엔 생각을 잘못할수도 있는거다. 문제는 자신을 다잡고 바른 길에 들어서는거다.》 아버지는 긴 말을 하지 않는 성미였다. 서길산은 가슴이 저리였다. 이 서길산이 불효막심한 자식이구나! 못난 나때문에 아버지가 온밤 잠 못들고 괴로와하지 않는가. 서길산은 아버지앞에서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회오의 눈물이 볼을 지지며 흘러내리였다. 서길산은 그 순간에 절감했다. 자기가 다시 대대로 가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가슴에 영영 뽑히지 않을 대못을 쾅쾅 박아놓는것으로 되리라는것을. 그리하여 서길산은 이튿날 아침 집을 떠나온것이였다. 구월산줄기에 들어서니 아닌게아니라 함마자루로 쓰기에 맞춤한 물푸레나무들이 많았다. 서길산은 거기서 한나절을 지체하며 자루감들을 한짐 찍어가지고 남포로 향했다. 너무 욕심스럽게 찍다나니 혼자서 지고가기에는 바쁜 짐이였다. 그래도 공사장에서 함마자루가 부러져 애먹던 일을 생각하고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차잡이도 하고 자동차신세를 질수 없는 곳에서는 힘에 부치는 짐을 지고 먼길을 걷기도 하다나니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야 남포시내에 도착했다. 거기서 공사장으로 가는 자동차를 알아보느라 려관앞에서 돌아가던 서길산은 뜻밖에도 리선명후방참모를 만났다. 《이게 누구야? 엉? 2중대 서〈대장〉이 아닌가! 어떻게 된거야?》 먼발치에서 서길산을 먼저 알아본 리선명이 달려와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무등 반가와했다. 리선명이 하도 좋아하며 떠들썩하게 말하니 서길산은 멋적어할사이도 없었다. 서길산이 대대로 간다는것을 알고 리선명은 그가 대대에서 달아났던것이 별치 않은 일이기라도 한듯 벙글벙글 웃으며 태연스레 고향소식까지 물었다. 《모두들 수고한단 말이지. 식량들도 떨어졌겠는데 고생들 할거야. 그런데 서동문 언제 집에서 떠났나? 아니, 사흘전에 떠났다구? 그럼 성순동무를 만나지 못했겠구만?》 《성순동무라니? 그건…》 《동무네 중대 손풍금수 성순동무말이요. 어제 저녁에 군에 갔다온다면서 떠났다구.》 서길산은 그 동무가 군에는 무슨 일로 갔느냐고 물으려다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단념했다. 김성순이 왜 군에 갔겠는가. 물어보나마나 자기 서길산이때문에 갔을것이다. 대대를 떠나간 이 서길산이때문에 누구보다도 속을 썩였을 그가 아닌가. 서길산은 풀이 죽어버렸다. 언제봐야 술 한잔을 걸친 사람처럼 얼굴이 불깃불깃한 리선명이 사람좋은 쾌활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서길산의 어깨를 철썩 쳤다. 《됐다구, 서동무. 동무가 스스로 온것으로 되니 차라리 일은 잘된셈이지. 안그런가? 가만, 그런데 서동무 아침밥은 먹었나?》 조금전에 빵을 사먹었노라고 하자 리선명은 《그럼 나하구 이제 김명식동무한테 들려보자구.》했다. 서길산은 의아해졌다. 리선명은 그제서야 《아하, 서동무는 모르고있겠구만.》하며 김명식이 오작시공을 퇴치하는 일을 돕다가 허리를 상하여 남포병원에 입원해있다는데 대하여 말해주었다. 두사람은 서길산이 지고온 함마자루짐을 가까이에 있는 짐보관소에 맡겨놓고 병원으로 향했다. 리선명이 그 먼데서 대대를 위해 함마자루까지 한짐 지고왔다고 요란한 공로라도 세운듯이 치사의 말을 했지만 서길산은 마음이 무겁고 더없이 죄스럽기만 했다. 명식동무도 결국 이 못난놈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하고 서길산은 생각했다. 두사람이 입원실에 들어서니 김명식이 인차 서길산을 알아보고 반색의 미소를 띄여올리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동통이 오는지 가느다란 비명을 질렀다. 그러지 않아도 하얗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길산동무구만!》그는 동통을 참으면서도 얼굴에 인차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이였다. 《명식동무, 이자 후방참모동무를 통해 다 들었네. 이제야 오는 이 덜된 놈을 용서하오. 아니, 뺨이라도 치오.》 서길산은 여기로 오면서 김명식이를 만나면 진심으로 용서를 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많은 말을 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김명식의 눈에 어리는 깨끗한 미소를 보는 순간 자기가 금시 한 그 말까지도 유치하고 어리석게 생각되였다. 《길산동무, 용서를 하라는것은 뭐구 뺨을 치라는건 무슨 소린가? 난 길산동무가 꼭 다시 오리라고 믿었네. 온 대대가 동무를 얼마나 기다렸다구. 대대장동지가 그러는데 동무가 대대를 떠난 다음날이 동무의 생일이라더구만. 이 후방참모동무랑 서동무의 생일상을 차려주자구 그랬댔는데 대대를 떠나갔다면서 얼마나 서운해했는지 모른다구.》 리선명이 얼굴이 벌개서 싱글거리였다. 《넨장, 이젠 서길산이 왔으니 그때 못차린 생일상을 차려야겠군. 이거 이 후방대장을 피곤하게 만든다니까. 가재미를 손님접대하느라고 다 써버렸으니 다시 구해와야겠군.》 김명식이 느슨한 미소를 지었다. 《후방참모동무가 말은 그렇게 해도 가재미를 손님접대용으로 쓰지 않았을거요. 아마 일일창고에 그대로 고스란히 보관되여있을거야.》 그 소리에 리선명이도 웃고 서길산이도 웃었다. 세 사람이 김명식의 치료형편에 대하여서도 말하고 대대에서 2단계경쟁에 참가하여 실적을 올리는 이야기도 하면서 퍼그나 지체하다나니 회진시간이 되였다. 서길산은 빨리 완쾌되여 대대로 돌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리선명이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있었다. 맵짠 바람이 불었다. 《길산동무, 동문 빨리 대대에 가야 하겠지만 먼저 나와 함께 어디에 좀 들렸다가자구.》 리선명이 그렇게 말하며 서길산의 팔을 잡아끌었다. 서길산이 의아해서 어디로 가자는가고 물으니 이 근방 어느 기업소에 굴착기 한대를 세워놓고 쓰지 않는걸 봐둔게 있는데 같이 가서 한번 사업해보자는것이였다. 대대에서 기계수단이 결정적으로 걸리여 애먹는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해볼가 하고 리선명이 무던히도 신경을 써온 모양이였다. 서길산은 남의 기관의 굴착기를 사업해서 끌고간다는게 선뜻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좋은 일이 있을지 알랴 하며 따라갔다. 그런데 그 기관에 찾아들어가보니 그것은 이미전에 수명이 다 되여 페기시킨것이였다. 도색한것이 벗겨져 군데군데 벌겋게 녹이 쓸었으며 기관은 그나마도 일부 부속들을 뜯어냈다. 《안되겠구만!》 리선명이 한심한 기관꼴을 들여다보고나서 실망했다. 서길산은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기관실과 동력전달장치를 돌아보고나서 말했다. 《후방참모동무, 내 보기에는 낡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살려쓸수 있을것 같습니다. 주행목에 용접을 좀 해야겠고 문제는 기관을 살리는것인데 아직 똑똑한건 모르겠지만 부속 몇개만 얻어다가 조립하면 돌아갈것 같습니다.》 굴착기를 살려낼수 있다는 소리에 리선명이 대번에 증기가마처럼 달아올랐다. 《그게 정말인가?! 까짓거 용접같은건 문제가 없소. 여기 기업소에도 용접기같은건 있을테니까. 잘하면 선반기같은것도 신세질수 있을거요. 서동무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기관수리도 크게 힘들건 아닌것 같소. 정남철의 뜨락또르가 당분간 서있어야 하는 조건에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붙이면 될테니까말이요. 그런데 서동무는 기계문세도 아주 잘 아는것 같구만.》 그게 크게 틀리는 말은 아니였다. 서길산은 광산에서 일하며 용접기나 선반기같은것쯤은 더러 다루어보았으며 한때는 자동차운전사가 되여보겠다고 운전사양성소에도 몇개월간 다녀본것이였다. 리선명은 과연 사업가였다. 그는 당장 그곳 기관책임자를 만나 쌍방에 다 리로운 계약을 맺어놓았다. 소형굴착기를 원상대로 살려서 쓰다가 공사가 끝나는 즉시로 되돌려주는 조건에서 기관에 있는 용접기나 전기설비도 리용하게 하고 게다가 선반공까지 한명 붙여주기로 한것이였다. 《후방참모동무, 그럼 저까지 대대에 갔다오느라고 시간을 보낼건 없을것 같구만요. 오늘 당장 수리를 시작합시다. 용접은 이제라도 제가 할수 있으니까요.》 《소뿔은 단김에 뽑아야 한다는거구만! 좋아, 내가 이제 대대에 가서 보고하겠으니 길산동무는 아예 떨어지라구. 가만, 짐보관소에 맡겨놓은 함마자루가 문제구만. 어떻게 한다? 내가 찾아서 가져가지. 함마자루가 풀렸다고 좋아들 하겠군.》 리선명의 말을 듣고 대대에서는 정말 좋아했다. 기계수단이 긴장한 때에 굴착기 한대가 생길수 있다니 그게 어덴가. 그것만 끌어다놓으면 절토구간의 토량처리는 먹어놓은 당상인것이다. 이튿날로 정남철이 기관수리에 동원되여왔다. 그들은 현장에서 침식을 해가며 굴착기수리에 달라붙었다. 서길산은 용접을 하면서 용접불빛을 보는 바람에 눈이 찌르듯 아파나고 눈물이 나와서 고생을 했다. 그때 김성순이 수리조성원들의 식사보장을 위해 왔다. 《성순이, 나를 욕하라구. 난 정말 유치하고 못된 놈이요.》 《됐어요!》 성순은 그가 더 말을 못하게 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두사람은 서로가 상대방이 자기를 리해하고있다는것을 아는것이였다. 성순은 눈앓이하는 서길산을 치료해주었다. 찬물찜질을 해주어 하루만에 아픔이 가시여졌다. 리선명이 어디 가서 연유도관이며 용접봉이며 또 기관수리에 쓸 연유뽐프며 하는것들을 용케도 구해왔다. 며칠 안걸려 기관이 살아났다. 굴착기팔을 움직이는 유압계통이 말썽을 부리여 어지간히 애를 먹었는데 종당에는 그것도 수리해놓았다. 굴착기운전수는 그곳 기업소의 공무반에 배속되여 다른 일을 하는것을 공사가 끝날 때까지 붙여주기로 했다. 온 나라가 관심하는 고속도로건설인데 운전수 한명 붙여주지 못하겠는가, 더구나 못쓰겠다고 내버렸던 기계를 살려놓은 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그곳 일군들이 마음을 쓴것이였다. 시운전을 해보았는데 비교적 성공적이였다. 대대로 운반해가기 전에 녹이 쓴 부분들을 연마지로 닦아내고 도색까지 했는데 완전히 새 기계처럼 보이였다. 그곳 기업소일군들이 장가가는 신랑처럼 멀끔해진 굴착기를 보면서 고속도로건설에 탄원하여 달려온 젊은이들의 일본새가 확실히 다르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굴착기를 대형화물차에 싣고 공사장에 도착하는 날은 온 대대가 법석 끓었다. 《서길산인 서길산이다! 대대를 영 떠나간줄 알았더니 멋쟁이굴착기를 척 타고왔단 말이야!》 《그뿐인가. 함마자루감도 한짐 가져오지 않았어.》 《그러게나말이야. 저 굴착기두 파철이나 다름없는걸 서길산이가 살릴 생각을 했다더군!》 리선명이 대대에다가 굴착기를 살려서 끌어오는데 서길산이가 공로를 세웠다고 요란스레 소문을 낸 모양이였다. 사실은 리선명이 크게 기여하고 기관수리는 정남철이 도맡아했는데 모두들 서길산이, 서길산이 하니 서길산은 멋적기 그지없었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위해주고싶어하는 동무들의 그 마음이 헤아려져서 눈굽이 시큰해왔다. 최진혁대대장과 류종수부장이며 오선호정치지도원까지 달려나와 굴착기와 함께 온 서길산을 반갑게 맞아주며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굴착기가 대대에 오자마자 눈에 띄게 일자리가 났다. 인제는 오작시공을 퇴치하고 려단의 전진속도에 따라서는것은 물론이고 2차경쟁에서 확고히 1등을 내다볼수 있게 되였다. 하여 전투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이 높아졌을 때 대대지휘부에서는 지휘관들이 모여앉아 하나의 문제를 놓고 신중히 토론했다. 수리해온 굴착기를 이웃인 운성대대에 넘기자는 문제를 최진혁이 제기한것이였다. 운성대대에서는 많은 량의 토량을 처리해야 하는 절토구간때문에 전진이 더디였다. 운성대대로서는 애를 먹을만도 했다. 대대의 기본작업구간이 주변에서 제일 높은 등성이여서 다른 대대보다 처리해야 할 토량이 많은것이였다. 운성대대의 전진속도가 떨어지는것은 려단적인 관심사가 아닐수 없었다. 중앙지휘부에서는 오는 4월중순까지 로반형성을 전부 끝낼 목표를 내걸고 각 려단별로 경쟁을 조직해놓았는데 만약 어느 한 단위라도 전진속도가 굼떠져서 100여리 청춘로반의 관통이 늦어진다면 위대한 장군님께 제날자에 완공의 보고를 올릴수 없는것이였다. 신암대대에서는 사실 그동안 오작시공까지 해서 일감이 불어나는 바람에 더더욱 전투원들이 지쳐버린데다가 후방보장조건도 어려워지고 연유사정도 더 긴장해져서 다른 대대를 지원할 형편이 못된다고 볼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웃의 어려운 형편을 뻔히 눈으로 보면서 자기 사정만 사정이라고 내세울수는 없는것이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대대의 전진속도를 떨구지 않으면서 이웃을 도와주어야겠는데 당장은 그 방도가 나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지휘관모임이 결실없이 끝나가려고 하는 때에 최진혁이 굴착기소리를 꺼내놓은것이였다. 그는 서길산이네가 수리해온 굴착기뿐만이 아니라 이미 보유하고있던 불도젤 한대까지도 운성에 넘겨주자고 했다. 회의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은 뜻밖의 제의에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 마주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이 그럴만도 했다. 현재 공사에 참가하고있는 기계수단이란 그 불도젤 한대와 새로 고쳐서 쓰는 굴착기 한대가 전부였다. 뜨락또르는 한대 살아있기는 하지만 후방사업이나 하는데 써야 할 형편이여서 그 불도젤과 굴착기까지 내놓으면 대대는 순전히 인력으로 공사를 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것이였다. 《안됩니다. 더구나 굴착기야 우에서 배정받은것도 아니고 페기된것을 우리자체의 힘으로 살려쓰는것인데 그것까지 내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더구나 이번 경쟁에서는 기어코 1등을 해서 대대의 명예를 되찾자고 모두들 윽윽하는데 기계수단들을 말짱 내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리선명이 화독같이 달아올라 부르짖었다. 정덕성참모장이 그의 말에 공감했다. 《대대가 이번까지 경쟁총화에서 밀려나면 우린 모두 지휘관자격을 내놔야지요. 그런데 기계수단들을 넘겨주어 대원들의 사기를 떨구어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지 않아도 전번 경쟁총화에서 밀려난것때문에 사기가 저락될대로 저락되였던 대원들인데.》 《그럼 이렇게 합시다.》 오선호정치지도원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운성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대대의 욕심만을 차릴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대전투원들의 사기를 떨구어서도 안됩니다. 그러니 대원들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그러되 정치사업을 잘해서 그들이 스스로 응해나서도록 해야 합니다. 난 우리 대원들을 믿습니다.》 지휘관모임에서는 결국 대원들속에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자는것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오선호는 오응세소대에 내려갔다. 《동무들, 지금 우리 대대의 형편은 아주 락관적입니다. 그동안 오작시공을 퇴치하고 중앙지휘부적인 전진속도에 따라서기 위해 모든 동무들이 이악하게 일한 결과 이제는 2차경쟁에서 1등을 내다볼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난관과 시련이 하나도 없는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려움은 우리에게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웃인 운성대대를 보십시오. 운성에서는 예견치 않았던 막대한 량의 토량처리때문에 중앙지휘부적인 전진속도에 따라서지 못할 형편에 처해있습니다. 만약 운성대대가 뒤떨어지게 되면 결의다진대로 4월중순까지 100여리 청춘로반을 관통시킬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대지휘부에서는 우리가 순수 인력으로 로반공사를 하더라도 운성대대에 불도젤과 굴착기를 넘겨주자는것입니다. 동무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오선호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오응세소대장이 일어났다. 《어떻게 하고말고 할게 있습니까. 4월 중순까지 청춘로반을 관통시키는가 못시키는가 하는 문제인데요. 기계수단을 넘겨줍시다. 그대신 우리가 좀 더 고생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동무들!》 모두가 기계수단들을 넘겨주자고 호응해나섰다. 박정수가 한마디 했다. 《굴착기를 넘겨주면 서길산이가 서운해하겠는데. 서〈대장〉이 눈앓이까지 하면서 수리해온게 아니야. 여, 길산동무, 안그래?》 《박정수, 너 이 서길산이를 그렇게만 보겠어?》 《챠, 이것 봐라. 서길산이 다 죽은게 아닌걸.》 《이 서길산이 죽기는 왜 죽어? 정치지도원동지, 기계수단들을 아까와하지 말고 운성친구들한테 넘겨줍시다. 동무들, 이 서길산이 대대앞에 잘못한게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겠습니다. 난 우리가 열어가는 이 길이 강성대국에로 가는 대통로이며 오늘의 시대를 빛내이기 위한 길임을 명심하고 이제부터는 여기에 깨끗한 량심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동무들한테 제기합니다. 동무들, 우린 운성에 기계수단들을 넘겨주는 대신 흙짐을 지고 하루 150리를 달리던것을 300리를 달리고 함마질을 열시간 하던것을 스무시간으로 늘이잔 말입니다.》 모두들 박수로 그의 제의에 응해나섰다. 다른 중대와 소대들에서도 꼭 같은 반향이 일어났다. 대대지휘부에서는 드디여 대원들의 요구대로 기계수단들을 운성대대에 넘겨줄것을 결정했다. 그날로 신암대대의 작업장에 있던 불도젤과 굴착기가 운성대대 작업장으로 옮겨갔다. 신암대대에서는 모두들 떨쳐나서서 시집장가가는 자식들을 치장하여 내세우듯 불도젤과 굴착기를 잘 정비하고 꽃치레까지 해서 떠나보냈다. 운성대대 전투원들은 기쁨속에 맞이하면서도 한편 미안해했다. 《여, 신암동무들! 이거 고맙구만! 그런데 동무넨 기계 하나 없이 등짐으로 흙을 날라야 하지 않아. 우리가 미안해서 어떻게 한다?》 기계수단들을 맞이하던 운성대대에서 한 친구가 건너다보며 말을 걸었다. 언젠가 축구경기를 하자고 제기해오던 《개털모자》였다. 그가 미안하다고 하는 말속에는 묵은 빚을 갚는다는 의미도 들어있었다. 언젠가 그가 바로 신암에서 표식말뚝을 옮기지 않았는가고 해서 하마트면 두 집단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겨날번 했던것이였다. 그런데 사실대로 말하면 빚은 신암이 진것이였다. 신암에서 표식말뚝을 옮겨놓은것은 사실이였던것이였다. 그러한 일로 해서 서길산은 얼굴이 뻘개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있는데 그래도 정철수가 질세라 운성쪽에 대고 소리쳤다. 《여, 〈개털모자〉. 우리가 보내는 그 〈신랑신부〉를 잘 모시라구. 망탕 다루어서 고장을 내면 안되겠단 말이요. 중앙지휘부적인 로반관통이 동무네때문에 늦어지면 가만두지 않겠소.》 《챠, 동문 무슨 큰 간부가 지시하듯이 말하누만. 걱정말라구. 우리때문에 관통이 늦어지지는 않을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한가지 제기할게 있네.》 《또 뭔가?》 《다른게 아니구 오는 2월명절날에 축구경기를 해보자구. 전번엔 비겼는데 이번엔 아예 결판을 내보잔 말이야.》 《그런 제의라면 좋네. 물어보자구.》 정철수가 쾌히 응했다. 저 친구들이 우리 신암의 중앙공격수 서길산이가 돌아온걸 알탁이 없지 하고 그는 깨고소해서 생각하는것이였다. 공사장이 들썩하게 와르릉거리던 불도젤과 굴착기가 떠나가자 모두들 한동안은 어쩔수없이 허전한 감을 느끼였다. 활기를 띠는 운성대대쪽을 부러워서 바라보는 동무들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하고 난 뒤에는 의례히 자신에 대한 긍지감이 생겨나는 법이다. 전투원들의 가슴속에는 은연중 자기네들이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힘들어 하는 이웃을 량심껏 도와주었다는 긍지감이 자리잡는것이였다. 《야, 독고봉희, 뭘 봐? 떠나간 굴착기만 보지 말구 흙을 한번이라도 더 나를 생각을 하란 말이야.》 중대에서 키가 제일 작고 나이도 어린 려찬호가 운성쪽에서 왕왕 돌아가는 굴착기를 부러워서 바라보는 처녀를 해죽해죽 웃으며 시까슬러댔다. 봉희는 얼굴이 익은 가재처럼 새빨개지며 입을 비쭉해보였다. 《보지도 못해요 뭐. 저 굴착기팔이 꼭 사람팔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흙을 파올리는게 신기해서 그래요.》 어린 처녀의 귀여운 변명에 여럿이 좋아라고 웃어댔다. 더더욱 바빠하는 처녀를 바라보며 느물거리던 허광식이 함마질을 멈추고 말했다. 《저게 바로 생물모방공학의 덕택으로 생겨난 기계란게야. 봉희, 말하자면 생물모방공학이라는게 살아 움직이는 생물들을 모방하여 인간의 창조적로동을 대신하는 수단들을 만들어내는거란 말이야. 로보트 있지? 그것도 사람의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원리를 기계공학에 도입한게거든. 지능로보트라는것도 결국은 사람의 두뇌활동을 모방한거지. 저 굴착기도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거란 말이야. 인젠 알겠어?》 허광식이가 힘들어하는 봉희를 위해 《생물모방공학》에 대한 재미나는 강의를 하고있을 때 함마질을 해서 떨군 커다란 어정을 날라가기 좋게 쪼각을 내던 정철수가 《서영옥동무, 여기로 오우.》했다. 방금 깨여놓은 덩이들을 그의 질통에 담아주려는것이였다. 서영옥은 분명 자기를 부르는 정철수의 목소리를 들었을것인데 그쪽으로는 돌아보지도 않고 박정수네 함마조한테로 가서 질통을 돌려댔다. 그러는 서영옥의 얼굴에는 차거운 기운이 서리였다. 《더 담으라요.》 적당한 크기의 언흙덩이 하나를 질통에 담아준 박정수에게 서영옥이 떠날념을 않으면서 말했다. 그는 남자들도 힘들어할만큼 무거운 언흙덩이들을 지고 정철수네 앞을 억척같이 걸어지나갔다. 《야, 저 서영옥동무 보라구! 센데!》 누군가 서영옥이 걸어가는 뒤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누구도 그때의 서영옥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듯 했다. 다만 정철수만이 그의 행동거지에서 내풍기는 싸늘한 기운이 자기에게 향해진 가시라는것을 느끼고있었다. 정철수는 다른 동무들이 자기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가봐 아무렇지도 않은듯 한 표정을 지었다. 위장책은 썼으나 심기는 좋지 않았다. 서영옥의 가시가 무엇때문에 생겨난것인지를 정철수는 안다. 그것은 서길산을 비판하던 날 생겨난것이였다. 비판모임이 끝나고 헤쳐들갈 때 정철수가 분개한 나머지 많은 동무들이 듣는데서 서영옥을 내놓고 비난하여 그가 모욕감을 느끼게 했던것이였다. 서영옥은 그때의 일을 가슴에 새겨두고 오늘까지도 정철수를 멀리하는것이였다. 사실 서영옥은 감정을 앞세우다나니 생활의 많은 모퉁이에서 동무들의 결함을 제나름대로 과장하여 말하는 성격적인 약점이 있는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대신 일은 량심적으로 하는 처녀였다. 늘 봐야 남보다 흙을 더 무겁게 지고 달렸으며 언제 한번 몸을 돌보면서 요령을 부려본적이 없었다. 그렇다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정철수는 그때 많은 동무들이 보는 앞에서 서영옥을 타매한 자신의 행동이 지나친것이였다는 후회가 갔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존심이 있지 않는가. 누구든지 그것을 존중해줄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을 때에는 그 어떤 원칙적인 비판도 먹어들어가지 않는 법이다. 정철수는 언제든지 그와 한번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리라 생각했다. 어느날 점심참에 작업을 끝내고 식당으로 들어갈 차비들을 하고있을 때 서영옥이 동무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혼자 질통을 수리하고있었다. 정철수가 지나가다보니 그게 녀자의 손으로 해서는 얼마 못갈것 같았다. 그래 아무 생각없이 그한테로 다가가 《이리 주오. 내가 고쳐보기요.》하며 손을 내밀었다. 서영옥은 《됐어요. 내가 해요.》하고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여전히 차겁고 예리한 얼음쪼각들이 박혀있었다. 정철수는 한순간 속이 울컥했다. 속에서 좋지 않은것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겨우 그것을 눌러버리였다. 《그러지 마오. 난 진심으로 도와주자는건데 그러면 되겠소?》 《동문 왜 자꾸 내일에 참견하면서 그래요? 누가 생각해달라고 청이라도 했어요?》 《…》 《정철수, 빨리 가자구.》 박정수가 가까이에서 소리쳤다. 정철수는 그가 다 들은것 같아 멋적어하며 따라섰다. 《그만하라구. 철수, 통하지 않아. 뭘 공연히 가붙어서 그래?》 박정수의 말이였다. 서영옥을 두고 하는 말인데 목소리에는 바르지 않은 심사가 비껴있었다. 《그만하라구. 정수동무, 사람에 대해선 좋은 감정부터 가져야 해. 모욕하면 안된단 말이야.》 《어랍쇼!》 박정수가 놀라며 정철수를 빤히 건너다보았다. 정철수가 정말로 성이 나서 말한다는것을 알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야!) 정철수는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속으로 거듭 뇌이였다. 그는 종잡을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걸어가다가 오던 길로 돌아섰다. 박정수가 뒤에서 뭐라고 말했으나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서영옥에게로 곧장 다가갔다. 《내가 동무한테 기분나쁠 존재여도 좋소. 서영옥동무, 난 누구하고도 감정의 숨박곡질을 할줄 모르는 사람이요. 그러니 동무에 대해서도 솔직히 말하겠소.》 《됐어요!》 서영옥이 발끈해서 소리치며 채 고치지 못한 질통을 들고 돌아서 가려고 했다. 정철수는 처녀의 한쪽 팔을 잡아 홱 돌려놓았다. 두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러지 마오. 남자가 말하는데 그게 뭐요? 동문 어째서 나만 보면 토라진 소리를 못해서 그러는가 말이요. 다시는 달아날 생각을 하지 말고 내 말을 들으란 말이요. 동문 들어야 해. 동무한테는 나쁜게 있소. 물론 결함이란 누구한테나 다 있소. 아무리 훌륭한 사람에게도 한두가지 결함이야 있지 왜 없겠소. 동무한테는 감정을 앞세우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나쁜 습관이 있소. 그러다나니 동무들을 나쁘게만 보고 말한단 말이요. 그렇게 하면 동무들과의 관계가 원활해지지 못하오. 집단과 동떨어져 외톨배기가 될수 있단 말이요. 가만 보니 동무는 휴식시간에조차도 동무들과 동떨어져 앉거나 이야기판에 휩쓸리지 않더구만. 빨래를 하러 가도 혼자 간다고 하더구만. 그건 나쁜거요.》 《난 그렇게 나쁜 녀자예요. 그래서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것이구 그래요. 동문 그걸 나한테 인정시키자는거지요? 인젠 됐어요?》 《동문 왜 자꾸 그러오. 사람이 진심을 터놓고 말하자는것인데 어째서 그렇게 엇나가는 소리만 하는거요. 에이, 녀자들이란 다 그런가? 난 그저 많은 동무들이 서영옥동무에 대하여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멀리하는 그것이 가슴아파 그러는거요. 동문 사실 좋은 측면이 많소. 일을 하는데서는 량심적이고 자기를 아낄줄 모르는 동무요. 자신을 위해서는 사심이 없소. 이게 사람에게 있어서 얼마나 높이 사야 할 품성이요. 그런데 다른 동무들이 육체가 허락치 않아 느리게 걷거나 휴식을 좀 더 할라고 하면 마치 일하기 싫어서 그러는것으로 생각하며 내놓고 비난하지. 그건 옳지 않은거요. 동문 얼굴도 잘 생긴 아름다운 녀자요. 그런 동무가 마음도 아름다와야 하지 않겠소. 내 오늘 동무한테 이걸 말하자고 했소.》 《동문… 동문…》 서영옥은 서러움이 가득찬 눈으로 정철수를 바라보며 뭐라고 항변의 말을 하려 했으나 끝내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처녀의 커다란 검은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이였다. (그렇다. 이 처녀는 자세히 보면 사실 잘 생긴 녀자이다. 저 시원스럽고 은근한 호수같은 눈!) 한순간 당치 않은 생각이 정철수의 머리속에 깃들었다. 그것을 깨닫자 정철수는 그 녀자의 미를 훔쳐내다가 들키기라도 한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서영옥은 홱 돌아서서 재빨리 달려갔다. 그는 흐느끼고있었다. 정철수는 그가 병실쪽으로 사라져버린 다음에야 자기는 결코 그 어떤 리기심이나 저속한 생각을 품고 그런 말을 해준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녀의 아름다운 두눈에 집단과 동무들에 대한 신뢰가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의 아름다움이 깃들기를 바라서 그런 말을 해준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은 좋지 않았다. 그의 가슴을 자기가 너무나도 모질게 칼질을 해놓은것 같이 생각되는것이였다. 정철수는 그런 사나이였다. 서영옥은 그날 점심식사대렬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후작업시간이 되여서야 작업장에 나타났는데 눈두덩이 약간 부어오르고 얼굴에는 심란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정철수가 그것때문에 마음을 쓰고있을 때 독고봉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봉희는 공사장에 와서 정철수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를 친오빠처럼 따랐다. 《철수동지, 우리 서영옥언니한테 아까 뭐라고 그랬어요?》 《왜 무슨 일이 있었니?》 《음ㅡ》 봉희는 귀여운 입술을 뾰족내밀며 눈을 빨았다. 《모르쇠하겠어요? 점심먹으러 갈 때말이예요. 서영옥언니를 만나지 않았어요. 내가 다 봤는데 뭘 그래요?》 《그래서?》 《그 언니 점심밥두 먹지 않구 병실에 들어가 모포를 뒤집어쓰고 울었어요. 다른 언니들이 왜 그러는가 물어두 말하지 않고요. 그러다가 끝내 점심을 안먹구 일하러 나왔어요.》 《점심밥 굶어야 제 손해지. 나같으면 굶지 않겠는데.》 《정말 그렇게 말하겠어요? 남은 심중히 말하는데.》 《봉희, 그럼 나도 심중히 말하지. 서영옥동문 좋은 동무야. 봉희도 봤지? 일할 때 자기를 아낄줄 모르고 일하는걸 말이야. 서영옥동무한테 말하라구. 이 정철수는 영옥동무의 그 아름다운 두눈에 집단과 동무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만이 가득 비껴있기를 바란다구 말이야.》 《어마나!》 독고봉희는 두눈이 동그래지며 호들갑을 떨었다. 《철수동지, 굉장해요. 그건 시인들이나 할수 있는 말이 아니예요.》 《이 정철수는 뭐 시인이 못된대? 된다면 된단 말이야.》 《정말이예요? 호호…》 도톰한 고운 입에서 발랄한 웃음소리가 날아나왔다. 그날저녁 독고봉희는 연장작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영옥을 만나 조용히 속살거리였다. 《언니, 내 말을 좀 들어요. 이제말이예요. 철수동지를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라요.》 《…》 《언니, 내 말에 성났어요? 성내지 말아요.》 《얘, 너 그건 무슨 소리냐? 그 동무를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는건.》 《철수동진 좋은 사람이야요. 그리고 철수동진 언니에게 말해주라고 했어요. 자기는 서영옥언니의 아름다운 두눈에 집단과 동무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만이 가득 차있기를 바랄뿐이라고요.》 서영옥은 말이 없었다. 생각이 깊어진것이였다. 그는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고 모지름을 썼다. 《영옥언니.》 《얘, 좀 가만 있으렴.》 서영옥은 언짢은 소리로 말하였다. 그리고 회오와 고까움과 고마움 그리고 그밖의 이름할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휘말려들어갔다. 《서영옥동무의 아름다운 두눈에…》라고 말했다는 정철수의 목소리가 귀전에 울려오는것만 같았다. 이 세상 녀자들치고 아름다와지기를 바라지 않는 녀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서영옥은 자기가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정철수한테서 그 말이 나왔다는것을 들은것이였다. 서영옥은 여러 사나이들한테서 자기의 눈이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있다. 그와 관련해서는 생각하기조차 괴로운 추억이 있다. 서영옥은 지금 스물일곱이다. 세해전에 그를 사랑하는 총각이 있었다. 서영옥의 인생길에 처음 나타난 애인이였다. 그때 서영옥은 과수농장에서 일했다. 도시에서 살다가 부모들과 함께 그곳 과수농장으로 진출한것이였다. 서영옥은 남들보다 눈썰미가 있어 인차 과수일을 배웠으며 1년후에는 강습소를 나오고 한다 하는 전문가가 되였다. 그가 자기 일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있을 때 이웃 과수농장에서 기술원을 하는 총각이 찾아와 사랑을 고백했다. 처녀도 총각이 싫지 않았다. 총각은 강습때 알게 된 청년인데 잘 생긴데다가 박식했으며 인정이 많았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휴식날이면 총각은 어김없이 처녀를 찾아왔다. 자전거를 타고와서는 처녀를 불러내군 했다. 두 사람은 과수원을 감돌아흐르는 시내가 버들방천에 나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군 했다. 총각은 열띤 말들로 자기의 희망에 대하여 그리고 과수업에 대하여 , 생활과 철학과 륜리와 그밖의 다박한 지식과 상식들을 펼쳐놓았다. 총각은 많은 책을 읽었고 리해력도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서영옥은 너무나도 아는것이 적었다. 처녀는 대체로 자기 집안사람들에 대하여, 자기 작업반 일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작업반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니 자연히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였다. 총각은 처음에는 처녀의 이야기라면 아무 이야기든지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게 들었다. 그런데 차츰 총각은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람들에 대해 너무 야박하게 말하면 안되오. 더구나 함께 일하는 작업반사람들에 대해서는 말이요.》 처녀는 자기가 작업반사람들에 대하여 많은 경우 랭랭하게 말하고있다는것을 깨닫지 못하고있는것이였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총각이 처녀를 찾아가는 회수가 떠졌다. 찾아와서는 여전히 버들방천으로 갔지만 그전처럼 열렬한 사랑에 대하여 속삭이지 않았으며 무척 따분한 이야기만 하다가 떠나가군 했다. 처녀는 달아오른 불덩이가 식어버린 까닭이 무엇인지 리해되지 않았다. 총각이 그렇게 따분한 이야기를 하다가 떠나가버리면 처녀는 온종일 심란해있었다. 총각은 어느날엔가는 인편을 통하여 자그마한 봉투에 넣은 편지 한장을 보내여왔다. 《동무에 대하여 몰랐던 많은것을 알게 되였소. 동무는 아름다운 녀성이지만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나 랭랭하오. 따뜻한 사랑에 기초한 감정을 지니기에 노력하기 바라오. 미안하오.》 《미안하오.》한것은 처녀를 사랑한데 대해 후회한다는것이였으며 절교의 선언이기도 했다. 휴식날이면 처녀의 합숙호실에까지 어김없이 울려오던 자전거종소리를 더는 들을수 없었으며 버들방천에 의례히 나타나군 하던 한쌍의 모습은 사라졌다. 총각은 더는 찾아오지 않았던것이다. 처녀는 그 누군가가 자기들의 사랑을 훼방놓았다고 생각했다. 시기심 많은 작업반의 어느 처녀가 그 총각에게 자기에 대한 좋지 않은 뒤소리를 한것이라고 단정했다. 첫 사랑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그다음에는 어느 총각도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작업반에는 물론이고 과수농장적으로도 끌끌한 총각들이 적지 않았다. 처녀는 그들속에 싱싱하게 솟아오른 한송이의 활짝 핀 아름다운 꽃송이건만 누구도 그 꽃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 처녀는 자기가 사랑에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처녀는 고독했다. 처녀는 이태를 더 합숙에 있다가 읍농장의 과수작업반으로 옮겨앉았다. 그랬다가 여기 고속도로건설장으로 탄원하여왔다. 군에서 대대편성을 하고 결의들을 다지고 기세들이 충천하여 여기로 떠나올 때 그는 자기 옆에 와앉은 청년과 통성을 했다. 청년은 자기를 정철수라고 소개하며 《알고 지냅시다.》하고 아주 친절하게 말했다. 별 희떠운 남자도 다 있구나 하고 서영옥은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차츰 청년에게 관심이 갔다. 체통이 크고 얼굴도 사내답게 생겼는데 말을 참 친절하게 했다. 부리부리한 큰 눈이 자꾸만 서영옥을 주시하군 했다. 그때문에 서영옥은 좀 불편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그때문에 자기한테로 쏠리는것만 같아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철수의 한번의 호의에 서영옥의 가슴속에는 야릇하고도 달콤한 감정이 생겨났다. 자동차가 갑문다리를 건너올 때였다. 바람이 세찼는데 정철수가 추워하는 처녀를 위해 바람을 막아주려고 마음 쓰는것이였다. 정철수는 귀덮개를 내린 털모자를 쓰고 그 우에다가는 모실로 뜬 두툼한 목수건을 감고있었는데 그것을 벗어 처녀의 무릎우에 놓아주며 《이걸로 무릎을 감싸오.》하고 말했다. 아름다운 처녀들이란 총각들의 호의에 습관되여 웬만한 일은 특별한 추억거리로 남지 않는것이지만 서영옥의 경우는 달랐다. 어쩐지 정철수가 고맙게 생각되면서 가슴속에서 재가 되여가던 숯덩이에 빨갛게 불이 살아오르는것 같았다. 그런데 그 정철수가 서길산을 비판하던 날 많은 동무들이 보는 앞에서 서영옥에게 면박을 주어 《모욕》했던것이였다. 그리고 그 정철수가 오늘은 그에게 《동무는 아름다운 녀자요.》하고 말했으며 《그 아름다운 눈에 집단과 동무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하고 말한것이였다. 서영옥은 인제는 추억하기도 싫은 실련당한 첫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에도 그 사람은 정철수와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서영옥은 그때 자기들의 사랑을 훼방놓은것이 작업반의 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서영옥이 자신이였다는것을 알지 못했다. 서영옥은 지금 정철수에 대한 고마움인지 고까움인지 모를 감정에 휘말려들면서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하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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