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 제 21 회 )

 

제 2 편

 

6

 

김성순은 남포에서 반나절을 기다려서야 신암쪽으로 가는 차를 얻어타다나니 해질무렵이 다 되여서야 읍거리에 들어섰다. 몇달만에 다시 와보는 읍거리는 별로 한적해보였다. 고속도로건설장의 들끓는 소음에 습관되였다가 왔기때문에 그럴것이였다.

먼저 읍중학교옆에 있는 자기 집으로 찾아들어갔다. 보나마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을것이고 중학교졸업반에 다니는 동생 명순이가 혼자 있겠지 했는데 뜻밖에도 어머니가 있었다.

《아니, 성순이가 왔구나!》

무슨 일이 있는지 목수건을 두르며 밖으로 나오던 현이순이 마당으로 들어서는 딸을 보자 반가와하며 소리쳤다.

《아이! 어머니 계셨댔군요. 난 아직도 퇴근하지 않은줄 알았지요.》

《그러지 않아두 부서에 나가는 길이다. 비료공장에 출장을 갔다가 방금 집에 들려 가방을 내려놓았다.》

현이순이 집안에 대고 《얘, 명순아, 언니가 왔다.》하고 소리쳤다.

인차 문이 활 열리면서 꽁지머리를 한 귀여운 동생 명순이 뜨개옷바람으로 덤벼치며 달려나왔다.

《야, 언니 왔네!어떻게 갑자기 왔어요? 언니 보고싶어 죽을번했네. 어마나, 그새 많이 축갔네. 앓지 않았어요? 손이 온통 텄네. 일이 세게나 힘든가부지요?》

명순은 언니손을 잡고 끝없을상싶게 재잘거리였다.

《얘얘, 명순아, 그만하려무나. 언니를 바깥에 세워놓구 언제까지 그럴테냐? 저건 그저.》

현이순이 혀를 끌끌 찼다.

《어마나! 참, 언니 춥겠네. 빨리 들어가자요.》

명순이 그제서야 호들갑을 떨며 성순을 방안으로 잡아끌었다.

세사람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따스한 온기가 돌았다. 어머니가 출장지에서 돌아왔다고 명순이가 탄불을 열어놓은 모양이였다.

성순은 살림도구들이 언제나와 같이 정리되여있으며 먼지 한점 앉을세라 알른알른하게 닦아놓은 집안을 둘러보니 지금까지 여기로 오면서 침울했던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리여 안정감을 느끼였다.

《너 배고프겠구나. 명순아, 남겨놓은 밥이 있으면 들여오렴.》

《어머니, 좀 있다 먹겠어요. 아버진 아직 좀 있다가 들어오시겠지요?》

《그럴거다. 그래 무슨 일로 왔니? 정말 네 곱던 손이 이렇게 된걸 보니 일이 힘든게로구나.》

현이순이 딸의 손을 잡아보며 정을 담아 말했다.

성순은 눈굽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대학공부를 하느라고 다년간 집을 나가 살았던적도 있었지만 오늘처럼 어머니의 따뜻한 정에 눈물이 나와보기는 처음이였다.

《어머니!》

자기의 손을 쓰다듬어보는 어머니의 따스한 정을 느끼며 왜서인지 자꾸만 목이 메여와서 성순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집에 들어오면 명랑한 기분으로 집안에 비타민처럼 필요한 밝은 기운을 가득 채워주던 성순이여서 현이순은 딸의 눈에 고이는 물기를 감촉하자 느닷없이 가슴이 찌릇해왔다.

《얘, 너 무슨 일이 있었니?》

현이순이 걱정하며 물었다.

성순은 애써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일은 무슨 일이예요. 어머니, 부서에 나가봐야 한다고 그랬지요? 이제 있다가 들어오시면 말씀드릴게요.》

《그러렴. 그럼 난 나가봐야겠다. 늦어 들어올수 있으니 그전에 서문혁아버님이랑 찾아가 인사를 올려야 하질 않겠니? 참, 길산이 그 사람은 잘 있니?》

《예.》

성순은 애매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억지로 대답했다. 밥을 차려가지고 들어오던 명순이가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있다가 입을 비쭉 내밀었다.

어머니가 나가자 명순이가 밥을 먹는둥마는둥하는 언니를 지켜보다가 《언니, 난 언니가 왜 왔는지 알아.》하고 종알거렸다.

《얘, 그건 무슨 소리니?》

《언닌 길산오빠때문에 왔지?》

《너 그건 어떻게 아니?》

《해해해!》

명순이 좋아라 웃어댔다.

《속았지. 그건 내가 언니 속을 뽑아내자고 해본 소리야. 언니가 기분없어하는걸 보니 꼭 길산오빠일때문에 그러는것 같단 말이야.》

《요건 그저!》

《언니야.》

해죽거리던 명순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왜 그러니?》

《난 막 기분없어 죽겠어. 그 서길산오빠때문에말이야.》

《너 무슨 소리 들었니?》

《돌아가는 소문을 들었어. 길산오빠가 집에 와있는데 그게 공사장일때문에 온게 아니구 배가 고프고 일이 힘드니까 도망쳐왔다는거야. 언니, 그게 정말이야?》

《얘얘, 그런 헛소문에 귀가 벌쭉해서 그러지 말아.》

《그럼 그건 다 헛소문이야?》

《됐다. 그만 말시키렴. 언닌 배고파 죽겠다.》

성순은 정말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동생이 꼬치꼬치 캐물을것이 두렵고 성가시여서 얼른 밀막아버렸다.

날이 어둑어둑해졌을 때 아버지가 들어오고 이어 어머니도 퇴근해왔다.

성순은 아침에 서길산을 만날 생각이였다. 동생한테서 서길산에 대한 소문이 돌아간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더욱 기분이 언짢았다.

동작이 빠르고 바지런한 명순이 먼길을 온 어머니와 언니에게 부엌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행주치마를 두르고 내려가 흥얼거리며 저녁밥을 다 지어놓았다. 오래간만에 식구가 다 모여앉아 즐거운 분위기속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그날 밤 성순은 이불속에서 어머니에게 자기가 오게 된 자초지종 사연을 말해주었다.

현이순은 다 듣고나서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래일 아침일찍 찾아가봐라.》하고 말했다.

현이순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녀자는 자기가 공연히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하지 않아도 딸이 어련히 제할 일을 알고 처신하리라 믿는것이였다. 그는 딸이 하는 일을 믿었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인제는 다 성장한 딸이 아닌가. 군의 큰 살림을 책임지고 일하면서 자기 사업에서 무슨 풀기 힘든 문제가 제기될 때에는 오히려 큰딸 성순이한테 네 생각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하고 의논까지 하려들군 했다.

그런데 현이순은 아침에 직장으로 나가며 평시의 그답지 않게 로파심이 생겼다.

《성순아, 가서 사내의 자존심을 건드려놓는 일은 하지 말아라.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말해야지. 그 사람이 생각을 바로 가지게 도와주어라. 공연히 사내 자존심만 상하게 해서 욱하게 하면 안돼! 엇나가게 해서 사람 못쓰게 만들면 되겠니.》

《자존심은 무슨 놈의 자존심, 도망쳐온 주제에. 정신이 번쩍 들게 말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데려가야 해.》

출근준비를 하던 아버지가 짐짓 화를 내며 한마디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말속에는 친자식의 운명을 걱정하듯 하는 웅심깊은 애정이 풍기는것이였다. 아버지는 밤에 모녀가 이불속에서 하는 말들을 다 들었으며 비록 이야기에 끼여들지는 않았지만 많은 생각을 한것이였다.

남편의 그 마음을 리해하고 현이순이 빙긋이 웃었다.

《원, 당신두!》

그는 악의없는 소리를 하고나서 딸을 돌아보았다.

《언제 가겠니? 하루밤 집에서 자고 래일에나 가려무나.》

《또또. 래일은 무슨 래일이요. 공사장에선 동무들이 지금도 추위에 떨면서 일을 하겠는데 제 하나만 편안할 생각을 하면 안돼. 오늘중으로 가거라. 당신은 간부라는게 말 잘하오.》

《너의 아버지가 저럴 땐 정이 뚝 떨어진다. 간부는 뭐 제 딸 생각하면 안된다우?》

《아이들앞에서 한다는 소리가.》

《호호호… 어머니, 아버지말씀이 옳아요.》

김성순은 오래간만에 다시 젖어보는 자기 집안특유의 싱갱이에 가슴이 누긋해졌다. 그전에도 그랬다. 어머니는 딸들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꼼짝을 못하고 다심한 정을 쏟아부었으며 아버지는 그러는 어머니에게 딸들의 버릇을 잘못 굳힌다고 비판하군 했다. 그래도 가정에는 언제나 평온과 화목이 깃들군 했다. 성순은 그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좋았다.

《얘, 성순아, 부뚜막우에 뭘 좀 싸놓은게 있다.》현이순이 직장으로 나가며 말했다.

성순이 뭔가해서 보니 올감자며 절군 오이며 새우젓이며 하는 얼마 안되는 찬거리를 꽃보자기로 싸놓았다. 남자들끼리 살며 동자질도 해야 하는 서길산이네 살림살이를 두고 항상 그렇게 관심을 돌리군 하는 어머니였다.

성순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직장으로 나간 다음 조금 있다가 집을 나섰다.

서길산이네 집은 성순이네 집에서 몇호 안되는 단층동네 하나를 사이에 두고있다.

성순은 너무 일찌감치 찾아갔다가 서문혁을 만날가봐 조금 두려웠다. 어머니는 서길산의 아버지를 만나서 인사를 하라고 했지만 이제 그 아버님을 만나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한것이였다. 그런데다가 또 다른 감정도 작용했다. 철모르던 시절에는 자기를 친딸이나 다름없이 사랑해주는 서문혁을 큰아버지라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따랐는데 시집갈 나이가 되고 또 사춘기와 작별을 한 다음 자기를 대하는 서길산의 전과는 다른 눈길을 느끼면서부터 점점 그 집 사람들을 대하기가 어려워지는것이였다. 실상 그 역시 이즈음에 와서 자기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인생의 새장을 예언하는 새로운 노래의 애모쁜 울림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그것은 이성의 감정이였다. 하여 성순은 자기의 마음속의 그 울림을 누가 듣기라도 하는것 같아 공연히 얼굴이 달아오르군 하는것이였다. 바로 그럴 때 서길산이 엄중한 과오를 범하여 비판무대에 오르고 집으로 달아나기까지 하여 그는 더더욱 분하고 가슴이 쓰려오는것이였다.

김성순이 그런 생각을 하며 서길산이네 집앞에 이르러 《계세요?》하고 찾으니 안에서 《누구요?》하는 석쉼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서문혁이였다.

인차 문이 열리면서 그가 나타났다. 솜동복을 입고 낡은 털모자까지 쓰고있는것을 보니 막 출근하려던참인것 같았다.

성순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성순이가 왔구나!》

잔주름이 실린 서문혁의 꺼먼 얼굴이 확 밝아졌다. 황황히 달려나와 성순의 손을 잡아끌며 《춥겠다. 어서 들어가자!》하고 말했다. 서문혁의 목소리에는 오래간만에 만나 반가와하는 감정과 함께 그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자별한 정이 뽀얗게 어려있었다.

김성순의 머리속에서는 큰아버지를 만나면 어쩌나 하던 조금전의 감정은 훌 날아가버렸다. 그 변함없는 후더운 정에 성순은 눈굽이 젖어왔다.

서길산이 문가에 나타날가 하는데 어째서인지 기척이 없었다. 서길산은 방안에도 없었다.

서문혁은 토끼털모자를 앉은책상우에 벗어놓고는 성순이 춥겠다고 아래목으로 끌어다 앉혔다. 공사장에선 언제 왔느냐, 그새 힘들지는 않았느냐, 집에서 아침밥은 먹고 왔느냐 하고 물었다.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왔느냐고 하는 말에도 그전날과 다름없는 따뜻한 정이 풍기였다.

김성순은 심신을 후덥게 해주는 그 정에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길산동무는 어데 갔어요?》하고 물었다.

서문혁은 그 소리에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서 굳어져버렸다. 성순은 왜서인지 심기가 불안했다.

김성순을 의아해서 바라보던 서문혁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나. 그애가 공사장에 가지 않았단 말이냐?》하고 되물었다.

서문혁의 말에 의하면 서길산은 사흘전에 공사장으로 간다면서 집을 나갔다고 했다.

김성순은 대뜸 불안했다. 사흘전에 떠난 사람이라면 대대에 가닿고도 남았을게 아닌가. 여기서 공사장까지 멀면 얼마나 멀다고.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점점 생각이 복잡해졌다. 어쩐지 서길산이 또 왕청같은 일을 저지른것만 같았다. 공사장에서 도망쳐온 처지여서 사람들앞에 나서지조차 못하고 집안에만 붙박혀있다가 끝내는 자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어디론가 또 가버린게 아닐가? 갔다면 어디에 갔을가? 어디 가서 또 무슨 일을 저지르고있는게 아닐가? 김성순은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성순은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강잉히 참으며 일어나 서문혁에게 빨리 가야 한다는 어정쩡한 말을 하기 바쁘게 황황히 집을 나섰다. 서문혁이 밖에까지 따라나와 정신없이 걸어가는 김성순을 오래도록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서문혁아버지가 걱정을 하게 했구나! 하는 후회비슷한 생각이 김성순의 가슴을 쓰리게 했다. 그럴수록 서길산을 원망했다. 나쁜 사람! 동문 뭐예요? 많은 사람들이 저 하나때문에 마음쓰게 해놓구 동문 어디에 가서 뭘하고있어요? 동문 김명식동무가 병원에 입원해있는걸 알기나 해요? 명식동문 동무때문에 그렇게 된거예요. 동무가 표식말뚝을 옮겨놓지만 않았더라도 그 동문 병원에까지 가지는 않았을거예요. 그런데 오작시공을 하루빨리 퇴치하자고 하다가 그랬단말이예요. 지금 온 대대가 오작시공때문에 고생하고있는데 동문… 동문 도대체 뭐예요? 김성순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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