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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 제 19 회 )
제 2 편
4
서길산은 벌써 한주일째 집안에 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날자를 보내고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의 얼굴에는 고민기가 짙게 어리였다. 밥도 먹는둥마는둥 했다. 그러다나니 그사이에 눈이 쑥 들어가 버렸다. 이런 난처한 일이 또 어데 있겠는가. 그는 고향사람들한테 자기가 공사장에서 영 떠나왔노라고 내놓고 말할수 없는 처지가 되여버렸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디 앓는데가 있거나 아니면 고향에 무슨 볼일이 있어 와가지고 당분간 묵어있는줄로 생각하고있었다. 서길산은 자기가 대대를 떠나 고향으로 오던 한주일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달아올라 죽을지경이였다. 그때 서길산은 얼어붙은 대동강을 건너 온밤을 걸어가다가 다행히도 새벽녘에 이르러 신암쪽으로 량곡접수를 위해 간다는 어느 기관의 화물자동차를 얻어탔다. 옹색한 처지는 그때부터 시작되였다. 자동차운전칸에는 운전사외에 그 기관 경리과 부원이라는 기껏해서 서른살을 갓 넘겼을 젊은 나이에 얼굴이 희여멀쑥한 젊은이가 타고있었는데 그는 첫 인상에 푸접이 대단히 좋아보이고 또 말을 많이 했다. 서길산이 평양ㅡ남포고속도로건설에 나가 일하는 청년이라는것을 알고서는 《그런가?! 내가 그러지 않아도 동무 그 차림새를 보고 고속도로건설장에서 일하는 친구구나 하고 제꺽 생각했다니까. 그래 이렇게 밤중에 떠나서 집으로 가는걸 보니 집에 무슨 일이 있는거로구만. 동무 얼굴색도 그러고보니 말이 아니요. 무슨 불상사라도 난게 아니요?》했다. 생각지도 않던 《불상사》라는 소리에 서길산은 《예. 홀로 계시는 아버지가 급히 앓는다는 기별이 왔지요.》했다. 자기도 어쩔새없이 불쑥 나온 말이였다. 서길산은 그렇게 멀쩡해가지고 거짓말을 하기는 태여나 처음이여서 얼굴이 화끈했다. 빨개지는 자기 얼굴색을 상대방이 알아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찌나 했는데 경리과 부원이라는 사람은 다행히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 눈치를 채기는커녕 오히려 《여, 거 안됐구만. 홀로 계시는 아버님이 앓아누웠다니 빨리 가봐야지 뭐. 동무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겠어.》하고 동정을 했다. 그다음엔 위로의 말을 했다. 《친구,너무 걱정말라구. 아무렴 고향에도 가까운 이웃이나 친척들도 있구 동무들도 있겠는데 앓아누운 동무 아버지를 보구 가만 있겠는가. 더구나 동무야 고속도로건설장에 가있는 동무가 아니요. 얼마전에 신문에 고속도로건설자들에 대하여 소개한걸 보니 굉장하더구만. 지금은 온 나라의 관심이 고속도로건설장에 쏠리고있지 않소. 그러니 고속도로건설장에 나가있는 동무를 생각해서라도 고향에서 앓고있는 동무 아버지를 잘 돌봐줄게거든. 안그런가, 친구.》 서길산은 《그렇겠지요.》하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자기도 고속도로건설장에 탄원하여나가 본때있게 일해보고싶었더랬는데 자기 직장에서 경리과사업도 중요하다, 꼭 고속도로건설장에 나가야만 큰일을 할수 있는것도 아니지 않는가, 경리과사업을 잘해서 종업원들모두가 마음놓고 일을 더 잘하게 하는것도 고속도로건설장에 나가 일하는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설복을 하는 바람에 나가지 못했노라고 했다. 그는 못내 부러워하며 말했다. 《그러니 동무는 얼마나 행복한가. 온 나라가 떠드는 그 거창한 전투장에 누구나 마음같아서는 다 참가하고싶지만 그렇다고 온 나라 청년들이 다 참가하는것은 아니거든. 부러운걸. 동무는 아직 청년동맹원인가?》 《예.》 《지금 아마 공사장이 굉장히 끓겠지?》 《부글부글 끓지요 뭐, 불도가니처럼.》 《불도가니처럼 끓는단 말이지. 야! 정말 대단한 모양이군. 그런데 힘은 들거야.》 《힘이야 들지요 뭐. 지금이야 어려운 때가 아닙니까. 게다가 미국놈들은 우리 나라를 기어이 먹어보겠다고 더 미쳐날뛰지. 자연재해까지 겹치여 식량사정도 긴장해졌지. 그런데 고속도로공사장이라구 특별공급을 하는것은 아니거든요.》 《그렇지, 그래. 그럴거야. 여, 동무 밤중에 급히 떠나온것 같은데 식사도 변변히 못하지 않았는가?》 그 사람은 운전실뒤에 얹어놓았던 종이꾸레미를 터치더니 먹음직스럽게 구운 커다란 빵을 두개나 꺼내주며 어서 요기나 하라고 했다. 서길산은 갑자기 창피감을 느끼였다. 그의 말에 끌려들어 서길산이 자신이 마치 자기는 도망군이 아니며 혁신과 기적으로 끓어번지는 고속도로건설장의 대표자나 되는듯이 말하고있는것이였다. 끊임없이 물어보고 말하고 하는 그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대답하자니 서길산은 더욱 난처하고 옹색해지는것이였다. 그렇다고 자기를 고속도로건설장의 요란한 혁신자이기나 하듯이 부러워하며 말하는 그에게 이 서길산이 동무들의 비판을 받고 도망쳐오는 놈이요 하고 까놓고 말할수도 없는것이였다. 생각같아서는 무슨 핑게든지 대고 차에서 당장 내리여 옹색한 처지에서 벗어나고싶지만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아직 100리도 넘는 길을 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걸어서 간단말인가. 그러자니 서길산은 옹색함과 수치감을 참을수밖에 없었다. 해뜰무렵이 다 되여서야 서길산은 읍거리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였다. 경리과 부원이라는 사람은 앓는 아버지를 잘 위안해드리라는 말을 해주고 자동차에 앉아 떠나가버렸다. 서길산은 누구도 모르게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마을어구에서 공교롭게도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권필녀라는 그 녀자는 서길산을 만나자마자 《에이구머니, 길산아저씨구먼. 어떻게 왔어요? 그새 공사장에 나가있더니 얼굴이 타구 많이 축갔네. 우리 여기서도 텔레비죤에 나오는 고속도로건설소식을 듣는다우. 굉장하더구먼. 얼마전엔 대발파라는걸 하더구먼. 아저씨도 거기 있었던게 아니요? 인젠 큼직한 훈장도 타구 입당도 하지 않았소?》하며 수선을 떨었다. 수다스러운 그 녀자를 통해 서길산이 집에 왔다는 소문이 인차 온 동네에 퍼져갔다. 그 녀자는 서길산이 공사장에서 큰일을 하고 집에 잠간 다녀가기 위해 왔을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과장하여 소문을 냈다. 집에 들어서니 아버지는 아침일찍 직장으로 나갔는지 비여있었다. 빈집에 들어가 어쩐지 아침밥을 찾아먹고싶은 생각도 나지 않아 싸늘한 장판방에 누워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고있는데 가까운 이웃집들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중에는 간혹 고속도로건설장에 나가있는 자식들이나 형제들의 소식을 알아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온 나라의 이목이 집중되고있는 공사장의 소식을 직접 듣고싶어서 오는 늙은이들과 아주머니들이였다. 그들은 찾아와서는 공사장의 형편이며 돌격대생활에 대하여 알고싶어했는데 서길산은 그들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하면서도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 되여 진땀을 뺐다. 더 바쁜 일은 저녁에 있었다. 아침에 처음으로 만났던 권필녀아주머니며 그밖에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집 녀인들이 공사장에서 온 서길산을 위해 삶은 고구마며 닭알이며 그밖의 찬거리들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서길산의 어머니가 살아있을적부터 자주 도와주던 녀인들이였다. 마음이 헤픈 녀인들은 얼굴이 축가고 까맣게 탄 서길산을 보면서 에그, 공사장일이 힘들었던게지 하면서 혀들을 찼다. 서길산은 그러는 그들앞에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렇듯 소박하고 진실하고 마음들이 그지없이 아름다운 그네들한테 죄를 지은것 같은 심정이였다. 서길산은 자기 처지를 생각하고 눈물이 나왔다. 아, 이 서길산이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와서 다시 대대로 돌아갈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이제 어떻게 동무들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다시 나타나면 동무들이 뭐라고 할것인가? 서길산은 괴롭게 하루낮을 보냈다. 아버지는 어두워서야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마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왔다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였다. 불을 켜지 않은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길산이 왔니?》하고 반가움에 젖은 소리로 물었다. 서길산은 지금까지는 아버지한테 뭐라고 말할것인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아뜩하기만 했는데 그런 생각은 지금에 와서 순간에 가뭇없이 사라져버리였다. 서길산은 동무들속에 있을 때면 롱질도 곧잘하고 성미가 드세차서 어떤때는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로 되여있지만 아버지앞에서는 늘 감정이 여리였다. 영예군인어머니와 함께 살아오며 가정의 궂은일, 마른일 다 맡아하면서도 언제나 불만의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지내온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한생 고스란히 정성을 다해온 아버지를 생각하면 서길산은 고맙고 또 눈물이 나오도록 존경심을 품게 되는것이였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혼자의 몸으로 동자질도 하면서 직장에 다니느라 고생이 많은것이였다. 년세로 보면 벌써 집에 들어왔어야 했을테지만 철도공사장 생활을 끝마친 다음에도 여직껏 선로원으로 일하고있는 아버지였다. 서길산은 《길산이 왔니?》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부터 아버지의 변함없는 정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가슴이 저릿해왔다. 《아버지예요?》 서길산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맞이했다. 《불을 켜렴. 등잔에 기름이 조금 남아있을게다. 요즘은 더 자주 정전이 되는걸 보니 나라의 전기사정이 말이 아닌게로구나.》 서문혁은 어둠속에서 더듬질하여 앉은책상우에 있는 등잔을 찾아 불을 켰다. 불빛에 드러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공사장을 떠나기 전보다 더 늙어보였다. 《춥겠구나. 원, 집에 왔으면 불을 좀 땔게지.》하고는 아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힘들었겠구나. 근데 무슨 일로 갑작스레 왔느냐?》 《그저 좀 일이 있어서요.》 서길산은 어물어물 대답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더 캐묻지 않았다. 원래 서문혁은 그런 사람이였다. 《저녁을 지어먹어야지.》 아버지는 싱긋 웃으며 부엌으로 내려갈 기색을 보이였다. 그제서야 서길산은 여태껏 불땔 생각을 하지 않고있은 자책감을 느끼며 황황히 일어났다. 《아버지, 앉아계세요. 저녁을 제가 할게요.》 《공사장에 나가 고생했겠는데 그냥 앉아 쉬려무나.》 《제가 하겠다니까요.》 《허허, 그럼 같이 저녁을 짓자꾸나. 추운 방에 우두커니 앉아있을수야 없지.》 서길산은 더 말리지 못했다. 부엌으로 내려가던 서문혁이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삶은 고구마며 찬거리들을 보고 웬거냐고 물었다. 《이웃들에서 가져온거예요. 제가 온줄 알구요.》 《고마운 이웃들이구나. 그러지 않아도 네가 없는 사이에 이웃들이 많이 돌봐주었다. 그저께는 성순이 어머니가 들려 찬거리랑 쌀이랑 놓고가더라. 이 아버지는 그들한테서 늘 신세만 지는구나. 참, 성순이는 거기 일이 힘들겠는데 앓지는 않느냐?》 《예. 잘 있어요.》 《그래, 보고싶구나.》 《아버지, 그만 앉아계시라니까요. 제가 불두 때구 저녁두 짓겠어요.》 《글쎄 함께 하자는데 그러는구나.》 서문혁은 굳이 부엌으로 내려갔다. 뒤따라 내려가며 아버지의 뒤모습을 보니 여느때없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에 등이 더 굽어든것 같이 보이는것이였다. 가슴이 저리고 두눈에 물기가 부옇게 돌았다. 매일 저렇게 늦어 들어와서는 혼자서 동자질도 하였으리라.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저녁을 지었다. 저녁이라야 강냉이쌀에 흰쌀 한줌을 섞어서 지은 잡곡밥인데 두그릇에 나누어 담으니 밥그릇이 골숨했다. 아버지는 이웃에서 가져온 삶은 고구마도 있는데 밥은 무엇하러 많이 하겠느냐고 했는데 실은 어려운 식량사정을 생각해서 그랬을것이였다. 하여 서길산이 아버지 몰래 슬그머니 쌀뒤주를 들여다보니 강냉이쌀 반되가량에 흰쌀 한되박정도가 전부였다. 흰쌀 한되박은 성순이 어머니가 가져온것이리라. 도대체 아버지가 점심밥이나 싸가지고 일을 나가는것인가 해서 방금전에 내려놓은 선로순시할 때 메고다니는 가방을 열어보니 밥곽은 보이지 않고 수지물병 하나가 들어있었다. 눈물이 나왔다. 점심을 굶고 일을 하는게 아닌가. 수지물병안에 허연것이 발려있기에 뭔가 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죽을 넣었던 흔적이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그 수지물병에 죽을 넣어가지고 나가 점심을 굼때는게 틀림없었다. 군에서 식량사정이 어렵다고 하던 말이 사실이구나. 공사장에선 아무리 식량사정이 긴장하다고 해도 아직 이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군에서 긴장한 식량사정으로 죽물을 먹으면서도 대대에 지원물자를 보내준다고 하던 류종수부장의 말이 생각났다. 아버지와 아들은 삶은 고구마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나서 자리에 누웠다. 왜서인지 아버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공사에 대해서도 알고싶고 생활이 어떠한가에 대해서도 알고싶은것이 많을테지만 묻지 않았다. 서길산은 식량사정이 그렇게 긴장한가고 물으려다가 너무나도 뻔한것 같아 묻지 않았다. 강냉이쌀 반되박과 쌀 한되박이 눈앞에서 얼른거리고 수지병생각이 나서 가슴만 아리였다. 《아버지, 이렇게 매일 늦어들어오시군 해요?》 가슴만 미여지게 하는 식량문제는 뒤켠에 밀어놓고 다른것을 물었다. 《일찍 들어오게 되지 않는구나. 한뉘를 일로 늙어오는 때문이겠지.》 괴로움을 속깊이 묻어두고 하는 말이였다. 서길산은 생각했다. 집에 들어와야 반겨주는 사람 한명 없는 아버지였다. 아침에 조금 불을 땐 너렁청한 방은 저녁이면 다 식어 싸늘해질것이다. 사람의 온기가 없는 방은 죽은 방이나 같다. 아버지는 온종일 추운 밖에서 일을 하다가 늦어 들어와 불이 없는 방에 등잔불을 켜놓고 써늘한 부엌에 내려가 군불을 조금 때고는 아침에 조금 남겨놓은것으로 끼니를 에우고는 혼자 잠자리에 들것이다. 어머니가 살아있고 서길산이 집에 있을 때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는 풍족한 살림은 못되지만 그러나 기쁨과 웃음이 있었다. 《아버지, 그래도 퇴근은 제시간에 하군 해요. 이제야 년세도 많지 않아요.》 서길산은 축축히 젖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길산은 왜서인지 아버지가 자기의 불안한 심기를 빤히 들여다보는것 같이 생각되였다. 《그래 무슨 일로 왔느냐?》 이윽해서 아버지가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긴요. 뭐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예요. 뭐 좀 해결해오라고 해서요. 그저 그런거예요.》 아버지가 더 캐묻지 말기를 바라며 하는 소리였다. 《자자꾸나.》 아버지가 별생각 없는듯 나직이 말했다. 불은 이미전에 껐다. 등잔기름을 아껴야 했다. 방안은 캄캄했다. 서길산은 인차 잠든척 했다. 잠들수가 없었다. 그는 괴로왔다. 아버지에 대한 측은한 생각, 그 아버지에게 자기 처지에 대하여 솔직히 말할수 없는것으로 하여 오는 괴로움이였다. 차라리 아버지에게만은 솔직히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가? 아니, 그러면 아버지가 얼마나 괴로와하시랴. 아, 하다면 이제 서길산은 어떻게 해야 한단말이냐. 아버지는 이튿날 아침일찍 일하러 나갔다. 색날은 털모자를 눌러쓰고 문밖을 나서던 아버지가 아들을 돌아보며 《오늘 어데 가야 하니?》하고 물었다. 《예.》서길산은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직장으로 나가자 서길산은 공연히 안절부절 못하고있다가 앉은책상을 마주하고앉았다. 밖에서는 세찬 바람이 일고있었다. 바람은 마당을 휩쓸며 불어와 문짝을 두드려댔다. 부엌문짝이 잘 닫기지 않았는지 덜컹거리였다. 창고앞에 세워놓았던 무엇인가 넘어지는 와당탕소리가 났다. 서길산은 문득 공사장이 눈앞에 떠올랐다. 거기도 지금 눈보라가 세차게 일고있을것이다. 그속에서 정철수며 박정수며 허광식이며 려찬호며가 함마질을 하고있을것이다. 성순이며 녀대원들은 얼어드는 손을 호호 불어녹이며 토량운반작업을 할것이다. 지금 이 서길산을 욕하겠구나. 《서길산이 그 자식때문이야! 그 자식이 표식말뚝을 옮겨놓지만 않았어도 오작시공은 하지 않았을것이고 우리가 이 고생을 하지 않을거란 말이야.》,《그 자식때문에 우린 1등을 할것도 못했지.》,《량심없는 자식이지 뭐야. 도망까지 하다니!》 지탄의 목소리들이 창날처럼 날아와 뇌수를 아프게 찔러댔다. 서길산은 그들을 원망했다. 그리고 자신을 저주했다. 안갈테다! 다시 어떻게 낯을 들고 그 친구들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이 서길산이 어디서든지 자기를 다 바쳐 일하면 될것이 아니냐. 이 서길산이 자기 하나만을 위해 사는 리기주의자도 명예주의자도 아니라는것을, 이 서길산이도 량심이 있는 인간이며 괜찮은 사내라는것을 보여주면 될게 아니냐! 그렇게 한주일이 지나갔다. 날이 갈수록 그는 초조했다. 서길산이 고향으로 돌아온 첫날 굉장한 영웅이라도 맞이한듯 찾아와 추어주고 부러워하며 음식가지들까지 두고가던 이웃들도 어찌된 일인지 발길이 떠졌다. 이제는 서길산이 왜 왔는지를 다 알고있는것 같았다. 《서길산이가 도망쳐왔다누만!》,《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게지? 하긴 일이 힘들어서 달아뺐는지도 모르지. 거긴 굉장히 춥고 일이 몹시 힘들테니까.》, 《고향을 떠날 땐 굉장한 영웅이라도 될것처럼 으시대며 떠나더니 벌써 도망쳐오다니, 비겁쟁이로군!》하는 비난의 목소리들이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오늘도 서길산은 아버지가 일나가고 없는 빈방에 혼자 누워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있었다. 사람들이 고향의 기대를 저버린 비겁하고 너절한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하는것만 같아 차마 밖에 얼굴을 내밀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직장에 나가지 않을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 난처한 일이였다. 서길산이 괴로운 한숨만 푹푹 쉬고있을 때 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마당으로 걸어들어오는 모양이였다. 발자국소리는 토방앞에 이르러 멎어버리더니 이어 《누가 없어요?》했다. 서길산이 황급히 일어나는데 문이 열리였다. 뜻밖에도 찬 기운에 잔뜩 절은 옹진누이 서길녀가 들어섰다. 《아니, 너 길산이 아니냐?》 《누이가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왔어요?》 《응, 일이 좀 있어서 자동차편으로 왔다. 넌 고속도로건설장에 나가 있다더니 어떻게 왔냐?》 《나두 그저 좀 일이 있어서요. 누이, 오래간만이예요. 매부랑 다 잘 있어요? 아이들은요?》 《다 잘 있다. 공사장에 가서 수고하겠구나. 우리도 텔레비죤을 통해 거기 소식을 매일 보고 듣는다. 이 어려운 때 너희들 청년들이 큰 일을 하더구나. 사람들이 고속도로건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난 내 남동생 하나가 거기 있다는걸 큰 자랑으로 생각한다. 그래 넌 언제 왔니?》 《한주일 됐어요. 누이, 여기 아래목이 아직 따스해요. 어서 여기 와서 앉으라요.》 《그래.》 오누이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만났다. 군관인 남편따라 옹진에 가서 살면서 부대가족녀맹조직을 책임지고있는 누이였다. 그래서 더우기 짬을 낼수 없어 편지로만 드문히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오며 제가 직접 찾아오기는 1년에 한번이나 되나마나 했다. 누이는 그사이에 보기 좋게 몸이 났던것이 퍼그나 깠다. 풍만해서 보기 좋던 얼굴은 수척해지고 새까맣게 탔다. 어려운 시기에 남편 뒤바라지를 하고 아이들도 키우면서 녀맹사업까지 보자니 몹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모양이였다. 《아버지는 벌써 일나가셨니?》 《일찍 나가신걸요.》 《네가 왔으니 마침 됐다. 의논할게 있다.》 《뭔데요?》 《뜨뜻하구나!》 서길녀는 구들에 손을 대여보며 인차 대답할념을 하지 않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휑뎅그렁한 집안에 값나가는 재산은 별로 갖추어놓은것이 없다.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 쓰던 경대며 텔레비죤 하나, 이불장, 옷장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녀자의 알뜰한 손길이 미쳐본지 오래되여 때가 끼고 옷가지들은 정돈되여있지 않았다. 궁색해진 살림형편을 보는 서길녀의 눈가에 물기가 핑그르르 돌았다. 어머니가 살아있을적에는 소박한 살림살이지만 윤기가 흐르고 정돈되여있어 동네사람들도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세상 떠난 어머니가 더더욱 생각나고 또 혼자서 때식을 끓여자시며 직장출근을 하는 아버지의 일로 하여 가슴이 저려드는것이였다. 서길녀는 한참만에야 눈굽을 찍어내며 옹진을 급작스레 떠나온 사연을 말했다. 《길산아, 실은 내가 너의 매부하고 먼저 의논을 하고 한달전부터 여기 와서 아버지의 의향을 듣는다는게 이래저래 바쁜 일에 쫓기다나니 오늘에야 이렇게 짬을 내여 떠나왔구나. 너하고 의논을 하자는건 다른게 아니다. 아버지의 문제를 락착지어보자는거다. 너도 생각이 있겠지만 지금 아버지 나이가 몇이냐. 직장에서 들어올 나이도 이미 지났다. 아버지는 젊었을적에 철도공사장에서 일하느라 오래동안 가정을 떠나있어 가족들과 단란한 생활을 변변히 못해보셨다. 그런데 지금은 어머님까지 안계시는데도 혼자 때식을 끓여자시며 여전히 그 나이에 직장일을 나가지 않느냐. 내가 일전에 아버지직장사람을 우연히 만난적이 있는데 그 사람 하는 말이 인젠 직장일이 힘들텐데 집에 들어가 편히 지내라고 하는걸 아버지가 집에 들어가선 뭘하겠는가, 일로 늙어오는 사람인데 자기는 일을 해야 마음도 편하다고 하셨다누나. 그게 어디 일떠나 못사시겠다는 말로만 리해해야 할 일이니? 아버님이라고 왜 힘들지 않고 또 말년을 가정에 묻혀 편안히 보내고싶은 생각이 없겠니. 그런데 집에 들어와야 아무도 없으니 빈집에서 무슨 사는 재미가 있겠니. 아마 아버지가 그 년세에 직장일을 놓지 못하는건 그때문일거다. 그래서 아버지께 잘 말씀드려서 새 어머니를 한분 모셔오자는거다. 새 어머니될 사람은 일전에 한번 말이 있어 너도 대체적으로는 알고있는 녀자다. 김분녀라고 남편은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되구 이미 가정을 이룬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전연부대에서 복무하는 군관이다. 김분녀어머닌 옹진의 우리 집 근처에서 사는데 무척 무던하고 깨끗한 어머니이다. 아들따라 가서 살라고 옆에서도 말하고 그 아들네 내외도 와서 모셔가겠다고 하는걸 그 어머니가 따라가지 않았다. 군관으로 복무를 하는 아들한테 짐이나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그 아들도 만나보고 또 당사자한테도 심중하게 말했다. 그 어머님은 자기가 이 집에 와서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하더라만 그래도 딱히 거절은 하는것 같지 않더라. 우리 아버님 의향이 어떠한가고 묻는걸 보니 말이다. 문제는 우리 아버지다. 아버지가 세상떠나신 어머니생각에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가본데 너랑나랑 우리 자식들이 이번 기회에 설복해보자꾸나. 난 김분녀어머니를 꼭 여기에 데려오고싶다. 사실은 이번에 아예 데리고 오자했는데 그 어머닌 펄쩍 뛰더라. 우리 아버님 의향도 딱히 모르면서 어떻게 경망스럽게 우리 집 문턱을 넘어서겠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듣고보니 서길산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맞춤한 대상같고 또 김분녀라는 그 어머니도 이 집에 들어오는것을 굳이 마다할것 같지는 않았다. 《누이, 내 보기에도 참 좋은 어머니같아요. 더구나 아들 하나 있는것을 최전연에 내보내고 혼자 외로이 사는 어머님이 아니예요. 여기 오면 제가 친어머니나 다름없이 모시겠어요. 그러면 아버지도 좋아하실거예요. 일을 놓을수 없어 직장에 계속 나간다 해도 지금처럼 궁색한 생활은 안할게 아니예요. 난 사실 혼자 계시는 아버지 보기가 딱해요. 그 어머님을 데려오면 누님도 아버지걱정 안할거구요.》 오누이는 그날 저녁중으로 아버지를 설복하기로 했다. 기다리던 아버지는 그날도 날이 다 어두워서야 돌아왔다. 보고싶었던 딸까지 뜻밖에 와있으니 아버지는 몹시 반가와했다. 아버지는 과묵한 성미여서 말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자식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기뻐하는것이 알리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세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였다. 서길녀가 아버지를 위해서 가져온 서해어물이며 미역과 김으로 만든 음식들을 상에 올리고 아버지를 아래목에 모시였다. 아버지 서문혁은 상우에 챙겨놓은 음식가지들을 보고 바른 때에 무얼 이렇게 들고왔느냐고 하더니 어물이나 미역 좀 남겨놓은게 없는가고 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서길녀가 말했다. 《아버님, 옆집들에 인사차림을 다 했어요.》 《잘 생각했구나. 그리구 성순이네 집에두 찾아볼걸 그랬다.》 《원, 아버님두. 그러다간 얼마 되지두 않는걸 가지구 온 읍거리에 인사차림 해야겠군요.》 서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 그러지 않아두 성순이 어머니 보구싶어서 저녁녘에 찾아갔댔어요. 현이순어머닌 비료공장에 출장가구 그집 아버지는 사흘째 일이 있어 직장에서 들어오지 못한다더군요. 그래서 가지고간걸 옆집에 맡겼어요. 주인들이 들어오면 전해달라구요.》 그제서야 서문혁은 기분이 좋아서 자식들이 부어주는 술까지 달게 들었다. 서길녀가 드디여 본론에 들어갔다. 서문혁은 딸의 말을 잠자코 다 듣고나서도 한동안 돌미륵처럼 굳어진채 말이 없었다. 아들은 그러는 아버지를 초조해서 바라보았다. 가슴이 느닷없이 저릿했다. 아버지의 주름가고 거칠어진 꺼먼 얼굴에 고뇌가 짙게 비껴있는것이였다. 《그렇게 하자요, 아버지.》 서길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희들이 나때문에 마음써오는것을 내가 모르는바가 아니다. 이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너희들도 다 안다고 본다.》 《아버지, 누이나 저도 아버지가 세상 떠난 어머니를 못 잊어 선뜻 결심을 못 내리는줄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언젠가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제와서 새 어머니를 모셔오는것이 세상 떠나신 어머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이예요. 그러니 자식들의 의견을 따라주십시오. 아버지가 혼자 동자질도 하며 일나가는걸 저도 차마 못보겠습니다.》 아들과 딸은 오래동안 아버지를 설복했다. 서문혁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세상떠난 너희들의 어머니도 그러하지만 옹진에 산다는 그 녀자도 그렇다. 이 나이에 그 녀자를 데려다 공연히 고생만 시킬것 같구나. 그럴바에야 무엇때문에 안착되여 사는 그 녀자를 데려오겠니. 잘 자라는 나무를 떠옮길거야 있겠느냐. 내 철도공사장에 한뉘 나가살다보니 너희들 어머니를 데려다놓고 이렇다하게 도와주지는 못하고 그 사람 고생만 시키다가 먼저 보낸것을 생각만해도 내려가지 않는데 이제 와서 또 다른 녀자를 데려다 고생시키겠느냐. 실은 그래서 선뜻 응해나서지 못하는것도 있다. 너희들이야 이 애비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않느냐. 너희들의 마음이 정 그러하다면 생각은 해보자꾸나. 하지만 당장 그 녀자를 데려올 생각은 하지 말아라. 밤이 깊었는데 자자꾸나.》 번거로운 일에서 빨리 벗어나고싶어 하는 말이였다. 아들과 딸은 그 이야기를 더는 꺼내지 않았다. 세사람은 자리에 누웠다. 서길녀는 웅심깊은 녀자였다. 그는 옹진에 두고온 어린것들이 떠나올 때 할아버지한테 함께 가겠다고 따라나서는것을 겨우 떼놓고왔다는 소리, 부대에서 애아버지네가 훈련판정에서 1등을 했다는 소리 그리고 녀맹사업을 하면서 있었던 이런 저런 즐겁고 또 마음을 써야 했던 일들에 대한 소리를 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었다. 서길산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무거운 돌덩이가 들어앉아있는것이였다. 밤에 누군가 문밖에 와서 그를 찾았다. 《길산형님 있어요?》 하는 퍼그나 애된 목소리에 서길산은 번거로운 생각에서 벗어나며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달빛에 훤하게 드러나는 마당 한가운데 솜옷을 입고 모자까지 푹 내려써서 누군지 알수 없는 작달막한 소년이 서있었다. 《너 누구냐?》 《저예요. 철삼이예요.》 철삼이란 정철수의 사촌동생이다. 《왜 왔냐?》 《누가 길산형님을 만나재요. 서호천기슭으로 좀 나오래요.》 《도대체 누구냐? 만나자는게.》 철삼은 딱히 찍어 말하기 주저하며 머뭇거리다가 《글쎄 모르겠어요. 나오면 알게 될거예요.》하고는 돌아서서 총총히 걸어갔다. 서길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가 만나자는지 짐작이 갔다. 정철수다. 서호천기슭이라면 서길산이와 정철수와 김성순이 소시적부터 자주 나가 놀던 곳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청년들에게 평양ㅡ남포고속도로건설을 맡겨주셨다는 격동적인 소식을 전해듣고 탄원모임을 가졌던 그날도 세사람은 밤늦도록 서호천기슭을 걸으며 흥분에 떠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들은 그때 고속도로건설장에 나가 일을 잘해서 고향의 자랑이 되여 돌아오자는 약속도 했다. 그러니 정철수나 김성순이 아닌 다른 누구일수 없는데 정철수의 동생이 나타난것을 보면 철수가 틀림없었다. 서길산은 한순간 생각이 복잡했다. 왜 왔는지는 뻔했다. 자기 서길산이때문에 왔을것이다. 서길산의 눈앞에는 《야, 이자식아, 네손으로 이 기발대를 세우고 이 기발앞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맹세를 다졌으니 이 기발앞에서 어디 말해봐라!》고 하던 정철수의 성난 모습이 그리고 대대의 비판모임때 일어나 자기 서길산의 량심을 거들며 열변을 토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길산은 지금 자기가 서호천기슭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대대로 머리들고 찾아갈수는 없다고 해도 자기는 정철수를 만나야 하며 만나지 않는것은 사내다운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방안으로 다시 들어와 어둠속에서 손더듬하여 벽에 걸어놓았던 옷을 찾아입었다. 솜옷까지 껴입고 밖을 나서려는데 잠든줄 알았던 아버지가 《어디 가느냐?》하고 물었다. 어쩐지 수심에 잠긴 목소리같았다. 서길산은 그저 아는 동무가 찾아서 나가는데 인차 들어오겠노라고 아버지를 안심시키는 말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천공사를 하면서 새로 생겨난 제방우에 한 사나이가 서서 서길산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달빛이 비치는 방뚝우에 서있는 모습은 멀찌감치에서 보아도 정철수라는것이 알리였다. 《뭣하러 왔니?》 꼿꼿이 서서 자기를 바라보는 정철수에게로 다가간 서길산이 태연해지려고 애쓰며 물었다. 정철수는 한본새로 굳어져서 굳게 다문 입을 쉽사리 열려고 하지 않았다. 서길산은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왜 왔느냐고 묻지 않아. 왜 나를 찾았는가 말이야!》 《태연의 보자기로 자기를 감싸지 말아. 그건 위선이다.》 가까스로 자신을 억제하며 정철수는 조용히 말했다. 《긴 말을 하지 않겠다. 당장 나와 함께 대대로 가자. 이제 당장 말이다. 그래 어찌겠니?》 《안가겠다!》 서길산은 고집스럽고 매몰차게 내뱉았다. 정철수는 굳어진 자세를 여전히 흐트리지 않았다. 이제 움직이기만 하면 당장 달려들어 서길산을 한대 후려갈기지 않고 견딜수 없게 된다는 자세이기도 했다. 《왜 안가겠다는거냐?》 《몰라서 물어? 이 서길산은 자기 하나의 공명을 위해 표식말뚝을 옮겨놓았구 대대의 명예를 팔아먹은 애군이다. 그러니 대대에서 나같은거야 필요없는 존재지. 그걸 몰라서 다시 가자는거냐? 이 서길산을 온 대대가 보는 앞에서 타매한 철수 네가 말이다.》 《이죽거리지 말아! 그래, 정말 못 가겠니?》 《그렇다.》 《틀려먹었다. 사내자식이 그게 뭐야? 동무들의 비판이 천백번 옳았어. 자기는 반드시 남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그게 정말로 자기 하나의 명예만을 우선시하는 공명주의란 말이야. 그따위 찌꺼기가 너의 그 머리속에 들어차서 집단과 동지들의 비판도 속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거란 말이야.》 《마음대로 다 말해라. 그렇다. 이 서길산이는 집단도 동무들도 모르고 저 하나를 위해 사는 공명주의자, 명예주의자다, 시대의 락오자다. 그래 이젠 속이 시원하니?》 《야, 길산아!》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무슨 일을 칠듯 정철수는 천둥같이 소리쳤다. 하지만 갑자기 주눅이 들어버린듯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러지 말아. 그건 공연한 엇드레질이다. 지금 대대에선 오작시공을 퇴치하고 전반적인 공사속도에 따라서자고 힘겨운 전투를 하고있다. 잃어버린 대대의 명예를 되찾고 2단계경쟁에선 기어코 1등을 하자고 떨쳐나섰단 말이다. 그래서 대대에선 모임두 가졌고 명식동무는 불편한 몸이지만 현장에 나와 함마질도 하면서 리영국동무와 함께 어정을 제거하는 새 방법도 찾아냈어. 한시호동무두 오작시공을 퇴치하기 위한 새로운 시공방법을 연구해냈구 말이다. 온 대대가 분발해서 일하고있어. 추위에 떨며 변변히 먹지도 못하면서 일하지만 참고 견디여내고있어. 성순동무랑 녀성동무들은 몸들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아. 그런데 네가 이러고있으면 되겠어? 네가 그 모양을 해가지고 어떻게 고향사람들앞에 나타난단 말이냐? 넌 아마 괴로울거다. 나도 네가 공사장에서 도망쳐왔다는것이 직장사람들과 가깝게는 너의 아버지와 이웃들한테 알려지는걸 바라지 않아. 우리야 개구쟁이시절부터 이 서호천기슭에서 함께 뛰놀며 자라지 않았니. 우린 친구야.》 《친구? 나한테 그런 친구는 없어.》 《뭐라구? 하하하.》 정철수는 갑자기 소리내여 웃었다. 《됐다. 그게 서길산이지 뭐겠니. 고집불통! 한번 아니라고 하면 소힘줄보다도 질긴 고집불통! 하지만 잘 생각해봐라. 너를 기다리겠다. 대대장동지랑 온 대대가 그래도 네가 다시 오리라고 믿고있다. 너때문에 성순이가 얼마나 괴로워하겠는가를 생각해봐라. 더 말할 시간도 없다. 아침 작업시간까지는 대대에 가닿아야 한다.》 정철수는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인차 그의 모습이 뿌연 달빛속으로 녹아버리듯 사라졌다. 서길산은 못박힌듯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이 쩌릿해왔다. 서길산은 정철수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정직하고 마음이 깨끗하며 우정에 충실한 좋은 친구다. 이 서길산이 대대의 많은 동무들의 비난을 사고있는것이 가슴에 걸리여 찾아왔을것이다. 아침까지는 작업장에 가닿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서길산을 위하여, 이 부실한 친구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도 않고 200리가 넘는 그 먼길을 달려왔을것이다. 그리고 집에는 들리지도 않고 오던 길에 사촌동생을 불러내여 나에게 보냈을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곧장 대대로 갈것이다. 이 서길산이는 시시한 자식이다. 친구를 위해 먼길을 달려온 그에게 매정한 소리만 하지 않았는가. 이제라도 따라갈가? 아니, 무슨 낯으로 이제 다시 대대에 나타나겠는가. 이제 다시 대대에 나타나면 동무들이 어떤 눈으로 나를 보겠는가. 량심없는 자식! 비판을 받고 도망친건 언제인데 다시 어정어정 찾아들어? 그게 시라소니가 아니면 량심없는 자식이지. 대대를 고생시키고 저혼자 도망을 쳤다가 무슨 생각이 들어서 다시 왔어 할것이다. 아니, 이 서길산은 죽으면 죽었지 그런 비난의 눈총을 받고싶지는 않다. 그런 수치를 두번다시 당하고싶지는 않아! 그러면 서길산아, 너는 정말이지 이제 어떻게 할셈이냐? 대대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하자. 젊은 놈이니 직장에야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나가겠는가. 어차피 이 서길산이 도망군이라는것을 다 알게 될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알면 얼마나 가슴아파할것인가. 서길산은 정직하고 고정한 아버지가 괴로와할것이 제일 가슴에 걸리였다. 서길산은 찬바람을 맞으며 거의 한식경이나 방뚝우에 서서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있다가 집으로 향했다. 바람이 태질하며 온몸에 먼지를 들씌웠다. 그는 고독감을 느끼였다. 그는 막 흐느끼고싶었다. 조직과 집단을 떠난 존재란 이러한것인가? 쓰라린 고뇌에 온몸이, 온넋이 갈가리 찢기여 넝마처럼 되는것 같았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본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인간은 사회의 한 성원으로 사는것이며 집단과 동지들속에서만 자기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된다는 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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