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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 제 17 회 )
제 2 편
2
《여ㅡ 어ㅡ 신암! 기운들을 내라구! 왜 그렇게 풀자루들이 됐나?》 가까이에서 작업을 하다가 휴식하느라고 모여앉아있는 운성대대 전투원들속에서 누군가가 신암대대쪽에 대고 소리쳤다. 정철수가 보니 언제인가 신암대대에서 표식말뚝을 옮겨놓지 않았는가고 물어보던 비위살좋게 생긴 노랑머리였다. 개털모자를 푹 눌러써서 노랑머리칼은 보이지 않았다. 그 개털모자가 표식말뚝사건으로 온 려단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지여 경쟁에서는 등외로 떨어졌으며 사기들이 저락될대로 저락된 신암대대 사람들의 사정을 두고 롱말을 걸어오는것이였다. 경망스러운데가 있는 상대의 그 말에 묵묵히 앉아있던 신암대대 전투원들이 그만 화가 났다. 정철수도 바짝 약이 올랐다. 저 친구들이 우리 신암을 조롱하는구나! 우리 신암을 어떻게 보구 그러는거야! 《여, 개털모자! 너 다야? 그 말 다시 해보라구!》 《왜 그래? 말이야 사실대로 한거지 뭐, 의견이 있나?》 여전히 이죽거리는 소리였다. 《풀자루가 뭐야, 풀자루가! 우리 신암을 함부로 모욕하겠어?》 《어랍쇼. 그래도 자존심은 살아있군. 그런데 모욕이구 뭐구 할게 있는가. 동무네들 시르죽은 상들을 해가지고 앉아 한숨만 푹푹 쉬고있는 모습을 보니 풀자루란 말이 저절로 나온단말이야.》 《와하하…》 개털모자의 비위살좋은 소리에 운성에서 좋다고들 웃어댔다. 정철수는 더 화가 났다. 《여, 개털모자! 너 정말 약오르게 풀자루 풀자루하겠어? 나서라구. 오륙이 근질거리면 나하구 한번 뚜꺼보잔 말이야!》 정철수는 정말로 당장 맞붙어보려는듯 푸르딩딩해서 주먹을 흔들었다. 《철수동무, 그만하라구.》 오응세소대장이 진짜로 싸움이 일어날가봐 바빠하며 정철수의 팔소매를 잡아당겨 앉혔다. 운성의 야료에 허광식이는 분기를 삭이지 못하면서 《철수동지, 됐어요. 저치들이 뭐라고 백마디를 하건 우리야 할 소리가 없지 않아요.》했다. 사실 표식말뚝을 옮겨놓은 후과는 신암대대에만 미친것이 아니였다. 신암과 린접한 구간을 맡고있는 운성대대에서도 시공에서 원래의 총설계도면과 편차가 생겨 혼란이 일어난것이였다. 허광식의 말에서 그런 의미를 느끼자 정철수는 더 할말을 못했다. 자리에 털썩 앉아 분해서 황소숨만 쉬였다. 《그 자식때문이야!》 박정수가 느닷없이 화가 나서 투덜거리였다. 서길산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복잡한 심리들이 생겨났다. 이웃대대앞에서 면목없게 되였다는 미안함, 운성의 개털모자한테 야료를 당하고서도 어쩔수 없이 참기만 해야 한다는 원망비슷한 감정, 대대에 수치를 가져온 서길산에 대한 분노의 감정으로 하여 모두들 우울해졌다. 남자들과 동떨어져 모여앉은 처녀들은 애당초 누구든지 말이 없었다. 여느때 같으면 속에 있는 감정을 묻어둘줄 모르는 서영옥이 대대에 수치를 가져온 서길산이에 대하여 좋지 않은 말을 한마디라도 했을것인데 그도 침묵했다. 서길산을 비판하던 날 정철수한테서 뜻밖의 모욕적인 말을 들은 다음부터 그 녀자는 새파래가지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더우기 서길산이 대대를 떠나가버리여 그를 비판한 자신을 두고 생각이 깊어진데다가 가까왔던 동무들까지도 자기를 두려워하며 멀리하는 눈치를 보이는것이여서 약이 오르는것이였다. 그는 자기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그 모든것들이 정철수때문에 생겨난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보기만 하면 랭기를 풍기였다. 《여ㅡ 신암친구!》 운성의 개털모자가 방금 자리에 앉아버린 정철수를 찾았다. 정말 소힘줄같이 질기기도 한 친구였다. 그가 또 무슨 자존심상하게 하는 말을 걸어오려는가 해서 신암쪽에서는 신경들이 곤두섰다. 정철수가 이번에는 정말로 한번 본때를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운성의 개털모자가 푸접좋게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잘못했다구. 사실은 내가 나쁜 마음을 먹구 그런건 아닌데 그 말이 동무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리해하라구. 그러니 뚜꺼볼것까지야 있는가. 그대신 정 붙어보겠으면 우리 운성하구 동무네 대대하구 축구경기를 한번 해보잔말이요, 어때?》 축구경기라는 소리에 모두들 귀가 열리였다. 《여, 운성친구, 그게 좋기는 한데 축구를 할만한 운동장이 어디 있는가?》 운성의 개털모자가 또 싱긋이 웃었다. 《운동장이 따로 있어야만 하는가. 동무네도 텔레비에 나오는거 봤지? 일부러 모래판에서 하는 축구도 있는데 논판에서 축구를 못할게 뭐가 있겠는가 말이요. 자신없으면 그만두고 생각이 있으면 점심먹구 저 논판에서 한번 정식으로 붙어보잔말이요.》 《논판축구라구? 야, 거 듣고보니 그렇구나! 여, 우리 신암이 자신이 없기는 왜 없단말이야, 붙자구! 점심먹구 붙잔말이야. 여, 동무들 어때?》 정철수가 동무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논판에서 축구를 한단말이지. 운동장이 따로 필요가 없단말이지. 이거야말로 빨찌산식이요. 여 운성! 해봅세나!》 오응세소대장이 《빨찌산식이요.》하는 소리에 모두들 좋아라 웃었다. 량쪽은 점심식사를 오후 한시까지 끝내고 작업장옆에 있는 넓은 논판에서 축구경기를 하기로 락착지었다. 경기소리가 나오면서 작업장은 활기를 띠였다. 남자들은 함마질을 하고 언 흙덩이들을 메여나르면서 축구소리로 열을 올리였다. 정철수가 자진 주장격이 되여 팀에 망라시킬 선수들을 추렸다. 중학교때부터 뽈을 찼다고 자진해서 나서는 동무들을 다 꼽아보니 그만하면 괜찮은 팀이 구성될것 같은데 공격수가 좀 문제였다. 2소대장 최남영이와 허광식이, 그리고 정철수 자기가 있기는 한데 최남영이나 허광식이한테는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허광식이 자기 말로는 학교때 중앙공격수로 도적인 경기에까지 학교팀선수로 나갔댔다고 하는데 누구도 그가 뽈차는것을 본적이 없다고 하고 또 정철수보기에도 다리가 짧고 목대도 가는 그가 도대체 뽈을 차낼것 같지 못하였다. 하지만 본인이 하도 우기여 그를 공격수명단에 올려놓았는데 그래놓고서도 미타한 생각만 들었다. 《에이, 서〈대장〉만 있었더라면 멋있게 되는것인데.》 《아니, 서길산이 소리는 왜 하는거야?》 정철수의 생각을 알리 없는 박정수가 물었다. 《그 친구 학교때 중앙공격수였다구. 한번은 도체육단 감독이란 사람이 학교에 들렸댔는데 서길산이 뽈차는걸 보구 담화까지 했다니까. 그 친구 있었더라면 운성팀을 납작하게 만들었을거요.》 박정수는 아쉬워하는것 같기도 하고 또 별로 서길산에 대하여 내세워주고싶어하는듯한 정철수를 약간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서길산이 그런 활량인가?》 정철수가 자진하여 짜놓은 팀의 명단은 공고한것이 못되였다. 점심을 먹는 사이에 대대참모장 정덕성이 나서서 뒤집어놓은것이였다. 대대의 명예를 걸고 나가는 경기인데 대대참모장을 제껴놓고 일이 될것 같은가고 하면서 제잡담 나서서 선수구성을 다시 한것이였다. 그 바람에 정철수는 중앙공격수로부터 중간방어수로 옮겨앉게 되였고 정철수의 자리에는 림철중대장이 들어갔다. 림철중대장 자신이 군대때 사단축구팀의 주장을 했다고 나서는 바람에 정덕성참모장이 이게 웬 보배덩이냐며 그렇게 짜버린것이였다. 정덕성이 축구팀을 다시 조직한데 이어 안경쟁이 한시호가 마치 축구에 남다른 조예라도 있는듯이 자진 전술구성안을 짜는데 끼여드는 바람에 신암팀의 감독은 두 사람이 된셈이였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신암구간 옆에 있는 논판에서는 드디여 두 팀사이의 경기가 시작되였다. 량쪽 대대에서 모두 떨쳐나와 응원진을 쳤다. 심판은 공정하게 해야 한다면서 마침 신암대대에 내려와있던 려단시공참모가 주심을 섰다. 날씨는 좋았다. 소한이 갓 지난지라 쌀쌀했지만 그대신 해가 뜨고 잠풍했다. 논판에는 눈이 한뽐정도 깔려있었고 그우로 지난해에 가을한 벼그루터기들이 비죽비죽 드러나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에 개의치 않고 달렸다. 상대편 문전에서 혼전이 일어나고 뽈이 꼴문을 위협하며 날아갈 때마다 응원진이 통채로 들썩이며 와와 기세를 올렸다. 신암대대에서는 누군가 커다란 비닐버치를 들고나와 탕탕 두드려대며 응원했다. 소리 잘 나는 놋양푼같은것이 없으니 그렇게라도 하는 모양인데 취사원모자를 쓴 강세호가 어느새 알고 황황히 달려나와 버치를 깨버리고싶어 그러는가고 화를 내며 빼앗아갔다. 비닐버치를 빼앗긴 친구는 이번에는 정남철이 뜨락또르를 세워놓는데로 가서 빈도람통 하나를 굴려가지고 왔다. 도람통을 두드려대는 소리가 자못 요란했다. 신암대대가 먼저 한꼴을 넣었다. 중간방어수자리를 지키고있던 정철수가 몰고들어가다가 넘겨준 공을 맞춤한 위치에 있던 최남영이가 별로 신통치도 못하게 차넣었는데 운성대대의 문지기가 서투르다보니 데굴데굴 굴러서 가까스로 들어간것이였다. 그 바람에 응원진에서는 신암대대이건 운성대대이건 할것없이 모두가 배를 그러안고 웃어댔다. 신암대대의 사기가 올랐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상대편 공격수가 단독으로 몰고들어와 보기좋게 한꼴을 넣었다. 운성대대의 개털모자가 축구로 겨루어보자고 걸어올만도 했다. 신암에 한꼴을 넣은 빼몰기선수가 다름아닌 그 개털모자였다. 신암팀에서는 그 개털모자때문에 드문히 위기를 겪어야 했다. 잘못하다가는 운성대대한테 질수 있었다. 정덕성이 얼굴이 뻘개서 달리는 선수들을 향해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소리소리 질렀다. 한시호는 최남영이며 박정수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편의 개털모자를 견제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기에 급급했다. 신암팀은 방어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공격력량이 역시 문제였다. 학교때 괜찮은 축구선수였노라고 자칭 우겨대여 공격수로 들어간 허광식은 욕망뿐이지 요령은 아예 없었다. 그한테 간 공은 인차 상대편 선수에게 떼우군 했으며 상대편 문에 한꼴 넣을수 있는 결정적인 대목에 가서는 헛발질을 하여 숱한 구경군들을 웃기였다. 신암대대에서는 저 개다리 허광식을 당장 교체해야 한다고 왁왁 했다. 결국 정덕성참모장이 직접 들어갔는데 그 역시 허광식이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보기에도 둔하게 생긴 정덕성이 제 위치를 지킬 생각은 못하고 무턱대고 뽈을 따라가면서 좌충우돌하는 바람에 량쪽 응원단에서 다같이 폭소가 터져올랐다. 신암팀에서는 경기장에 들어가 달리는 선수들까지도 저 참모장을 당장 뽑아내가라고 야단이였다. 신암팀이 그러다가는 몇꼴 더 보기좋게 먹을것 같았는데 다행히 경기는 일대 일 무승부로 끝났다. 사실 신암팀으로서는 비긴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인데 그래도 경기에 나갔던 당사자들은 이기지 못한것을 몹시 아쉽게 생각했다. 《에이, 서길산이는 왜 달아나가지구그래. 그 친구만 있었더라면 저 운성에 몇꼴 더 먹이는건데.》 《여, 철수동무, 도망간 자식소리 자꾸 하지 말라구. 그까짓 자식!》 박정수가 화를 냈다. 정철수는 그래도 서길산이 있었더라면 비기지는 않았을거라고 말하려다가 녀성소대처녀들속에 있는 김성순이와 우연히 눈길이 마주치자 입이 굳어졌다. 처녀의 두눈에 원망의 물기가 차오르는것이였다. 박정수가 도망군에 대해 또 뭐라고 험담을 이어가려 하자 정철수가 급히 막아치웠다. 《박동무, 그만하라구!》 그 소리가 너무나도 매몰찬것이여서 박정수는 뗑해졌다. 그러다가 김성순이 가까이에 있는것을 발견하고는 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성순은 빨갛게 된 얼굴을 홱 돌려버리였다. 정철수는 화가 났다. 누구때문에 화가 나는것인지 자신도 알수 없었다. 마침 정덕성이 가까이 다가와서 주변이 떠들썩해지는 바람에 숨가쁜 순간을 모면할수 있었다. 입가진 사람들은 누구든지 경기장에서 씩씩거리며 나오는 정덕성에게 그렇게 사람웃길바에는 들어가지나 말것이지 그게 뭐냐고 시까슬러댔다. 학교때 도경기에까지 나갔댔노라고 하던 허광식은 《개다리허광식》이라고 아예 놀림가마리가 되였다. 경기는 이기지 못한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진것도 아니여서 대대의 분위기는 다소 밝아졌다. 모두들 침침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경기화제로 유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헤쳐들갈 때 뜻밖에도 경기장에서 모두의 인기를 독차지하다싶이 하며 재치있게 공을 다루던 운성의 개털모자가 정철수를 찾아왔다. 《여, 신암친구. 오전에 동무를 노엽힌데 대해서 다시한번 정식으로 사과하네. 난 사실 동무네가 오작시공한것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못한것 같아서 일부러 그런 롱말을 한거네. 축구경기도 그래서 제기한것이라구.》 《아니, 그러지 마오. 오히려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야 우리 신암동무들이지. 이 정철수도 그렇구말이요. 이제 보니 동문 참 좋은 친구요. 동무의 그 심정을 모르고 나라는 사람은 공연히 화를 냈단 말이요.》 정철수는 진심을 말했다. 두 사람은 가까운 친구가 되자고 약속하며 자기들을 소개했다. 알고보니 리성철이라는 그 친구는 운성대대에서도 손꼽히는 일잘하는 소대의 부소대장이며 청년동맹초급단체비서였다. 정철수는 그와 정식으로 사귀게 되여 기분이 어느 정도 좋았는데 인차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것이 들어앉아있는것을 느끼였다. 두눈에 물기가 가랑가랑 고여있던 김성순의 얼굴이 눈앞에서 얼른거리였다. 그가 서길산의 일로 요즘 누구보다 괴로와하고있으리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찔렀다. 난 정말 한심한 놈이야. 여태껏 동무의 괴로움에 대한 생각은 잊고있었으니 내가 무슨 친구란 말인가. 그날 저녁 정철수는 녀성소대숙소뒤의 언덕에서 김성순을 조용히 만났다. 이상한 일이였다. 함께 기발대를 세우고 휘날리는 기발을 바라보며 맹세를 다진 다음부터 소꿉시절의 세 친구는 만날 일이 있으면 약속이나 한듯이 이 언덕으로 올라오는것이였다. 《성순동무, 솔직히 말해보오.》 《뭘 말해보라는거예요?》 《내 묻는 말뜻을 제발 모르는척 하지 마오. 서길산인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고 더더구나 동무네 둘은 남다른 사이가 아니요. 동문 서길산이 달아난것때문에 동무들 보기가 괴로와하는거지? 서길산이 그 친구를 저주하는건 아니요?》 《그래요. 그 비렬한 도망군을 저주해요! 저주해요!나한테 수치를 들씌웠으니까요. 인젠 됐어요?》김성순은 눈살이 꼿꼿해서 독을 내뿜었다. 김성순이 그렇게 분별을 잃어버리기는 드문 일이였다. 정철수는 뜻밖의 반발에 한순간 얼떠름해졌다. 《그러지 마오. 성순동무, 내가 지나친 억측을 했다면 용서하오. 동무야 나라는 인간을 잘 알지 않소. 난 원래 어리석은 생각을 잘하는 놈이지만 그대신 속은 터놓고 사는 놈이요. 솔직히 말하겠소. 아마 내 생각이 시시한것일수도 있소. 내가 이자 그렇게 물어본건 말이요. 성순동무가 이번 일로 해서 뿔난 못된 송아지같은 그 친구를 영영 잊어버리자고 할가봐서 그런거요. 난 우리 세 소꿉친구가 갈라지는것을 바라지 않소. 어디 말 좀 해보오.》 성순은 괴로움에 싸여 기발대로 다가가 그 우를 올려다보았다. 기발은 장대우에서 나붓기고있을것인데 보이지는 않았다. 어둠의 가없는 심연뿐이였다. 성순은 소리없이 흐느끼고있었다. 그는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우린 이 기발대를 세우던 날 맹세했어요. 청춘의 삶을 빛내이기 위해 남부끄럽지 않게 일하자고요.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고향의 부모님들앞으로 돌아가자고요. 그런데 우리 셋중에서 서길산동무는 비판을 받고 그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여 대대를 떠나갔어요. 난 그 동무가 이 기발앞에서 다진 우리들의 맹세를 잊어버렸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난 그 동무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요. 그리고 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동무는 나쁜 동무가 아니예요. 누구든지 잘못을 저지를수도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서영옥동무는 뭐라고 했어요? 철수동무도 들었지요? 서길산동무에 대해서 그가 하는 소리를, 그가 지금껏 대대에 와서 열심히 많은 일을 한것도 집단과 동지를 위해 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난 그게 가슴아프고 분해요. 그 동무가 그런 소리를 듣는게 분하단 말이예요. 그런데 그 동문 왜 달아나기까지 했단말이예요. 그러니 이제 뒤에서 동무들이 무슨 말을 또 하겠는지…》 김성순은 이 며칠동안 동무들앞에서는 강잉히 마음속괴로움을 내색하지 않고 평소의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있었다. 성순은 명랑한 웃음뒤에 애써 숨겨온 괴로움을, 서리서리 엉켜붙은 설분을 이 순간 토설해놓는것이였다. 정철수는 충분히 처녀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그의 괴로움의 덩어리들에 슴배여있는 동무들에 대한 좋지 않은 불만의 씨앗들을 느끼며 은연중 마음이 언짢았다. 말해주어야 한다. 저 성순동무가 지금 눈물을 흘리며 괴로와하고있지만 말해주어야 한다. 불만의 씨앗이 싹트고 자라기 전에 말해주어야 한다. 우리야 가까운 친구들이 아닌가 하고 정철수는 생각했다. 《성순동무, 난 동무의 괴로와하는 마음을 리해하오. 물론 서영옥동무가 회의장에서 서길산에 대해 한 비판은 지나친데가 있소. 동무들사이에 그런 감정은 없어야 하오. 하지만 전반적으로 동무들이 그때 한 비판들은 옳은거요. 리영국동무가 한마디 날카로운 말을 했지만 그도 틀리는 말을 한것은 아니란 말이요. 난 영국동무한테서 진정으로 동지의 과오를 두고 가슴아파하는 마음을 보았소. 그래 동문 그 영국동무가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한 그 격한 말들이 동무 하나를 구렁텅이에 떠밀자고 해서 한 비판이였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요? 잘 모르기는 하겠지만 서길산동무도 그런 식으로 동무들의 비판을 접수했기때문에 더더욱 수치심을 삭이지 못하고 떠나갔을수 있는거요. 그런데 성순동무까지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요? 그러지 마오. 동무야 그래도 선동원이 아니요. 그러지 않아도 많은 동무들이 동무의 얼굴을 보는데 고작 그런 생각이나 하고있단 말이요?》 정철수는 자기가 격해지고있다는것을 느끼자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가까스로 자신을 다잡고있다가 말없이 돌아서서 언덕을 내려갔다. 김성순의 원망에 찬 흐느낌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았다. 아니, 그것은 그저 그렇게 느껴지는것이였다. 눈앞에는 기발대를 부여잡고 눈물에 젖어있는 김성순의 모습이 얼른거리였다. 내가 지나치게 말했는가? 아니, 내가 지금 그렇게 말해준것을 두고 후회하고있는가? 그는 자신에 대고 화를 냈다. 그러다가 자연히 서길산에 대해 분격이 치밀어올랐다. 그가 표식말뚝을 옮겨놓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게 아닌가. 그런데 도망은 또 왜 친단 말인가! 왜 그래가지고 성순을 괴롭힌단 말인가. 에이, 덜돼먹은 자식! 내 당장 가서 그 자식 뒤덜미를 잡아끌고라도 와야겠다 하고 정철수는 생각했다. 김성순이와 정철수가 제나름의 괴로움과 번민에 싸여 저마끔 잠자리에 들어가서도 잠들지 못하고있을 때 대대지휘부에서 500m쯤 떨어져있는 개울에선 김명식이 도끼로 얼음구멍을 내고있었다. 김명식이 온 대대에 소문을 내면서 김정옥이와 함께 파놓은 우물은 은을 내서 식당의 먹는 물과 세면장의 세면물을 보장하는데는 충분하지만 아직 빨래를 할 정도까지는 못되였다. 그래서 될수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날씨를 봐가며 이 개울에 나와 얼음구멍을 까고 빨래들을 하는것이였다. 김명식은 사금파리처럼 날이 선 얼음쪼각들을 피하느라 눈을 질끈 감기도 하면서 도끼질을 했다. 날씨가 어떻게나 찬지 하루전에 빨래하느라고 냈던 얼음구멍들이 모두 두텁게 얼어버린것이였다. 한참 도끼질을 해대니 몸에서 열이 났다. 그런데 허리가 띠끔거리였다. 그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군대때 훈련을 하다가 다친 허리가 제대되여오면서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원하려고 철다리우에서 떨어져내리면서 두번다시 타격을 받았는데 그게 병원치료를 받아 회복되였다고는 하지만 일이 힘들 때마다 뜨끔거리는 증상이 나타나군 하는것이였다. 김명식을 치료해준 군병원의 나이많은 담당의사는 이제 다시 무리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한생을 불구자로 고통스럽게 살수 있다고 주의를 주었었다. 김정옥이 의사한테서 그 말을 직접 들은것이여서 김명식이 무리할 때면 몹시 마음을 썼다. 그래서 김명식자신은 어떻게 해서든지 김정옥이 보는데서는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가 조금이라도 아파하는 기색을 보이면 김정옥은 불안해서 도무지 어쩔바를 몰라하는것이였다. 더우기 그러지 않아도 요즘 오작시공으로 작업량이 불어난데다가 경쟁에서 등외로 밀려난것때문에 대원들이 어쩌면 맥을 놓고 주저앉을수 있어 마음을 쓰며 남보다 더 뛰여다니느라 입술에 조갈이 들고 얼굴이 온통 꺼칠해진 안해였다. 바로 그러한 안해에게 자신의 일로 하여 부담을 덧씌우고싶지 않았다. 김명식은 그래서 오늘도 안해의 눈에 띄우지 않게 자기 빨래감들을 걷어안고 여기로 나온것이였다. 김명식은 허리의 진통이 사라질 때까지 꼼짝 않고있다가 동그랗게 까냈던 구멍의 얼음을 까고 그 쪼각들을 손으로 건져냈다. 하늘엔 어느새 상현달이 떠올랐다. 물속에 잠근 손은 못견디게 시리였다. 그는 빨래할 속옷들을 얼음구멍에 잠그었다가 꺼내서 비누칠을 벅벅 했다.물이 차니 거품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빨래감을 막 비벼대다가 얼음구멍에 넣어 헹구려고하는데 자박자박하고 발자국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 밤중에 누군가 또 빨래를 하러 나오는 모양이였다. 돌아보니 안해 김정옥이였다. 그 역시 빨래감이 든 비닐소랭이를 안고있었다. 들켰는걸, 초달을 당하게 됐군! 김명식은 바빠맞았지만 일부러 속이 평온한체 벙싯 웃어보이며 밤중에 빨래는 무슨 빨래를 하러 나오느냐고 했다. 김정옥은 말없이 얼음판우에 빨래감을 내려놓고앉더니 김명식의 빨래감부터 빼앗아냈다. 《뭐예요, 궁색스럽게.》 성이 나서 토달거릴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조용히 핀잔의 말을 했다. 《궁색스럽긴, 돌격대생활을 하는 사람이 제손으로 빨래하는데 뭐가 궁색스러울게 있단 말이요. 더구나 나야 제대군인이 아니요. 아무리 그래두 정옥이보다 빨래솜씨두 내가 나을걸, 보겠소?》 《됐어요, 됐어요. 동문 영예군인이 아니예요. 그렇게 몸을 돌보지 않다가 어쩔려구 그래요? 낮에는 작업장에 나와 어정을 까내느라구 함마질까지 했지요? 그런데 빨래까지 제손으로 해야겠어요? 제가 있어가지구 동무손으로 빨래까지 하게 하는걸 보면 옆에서들 뭐라고 하겠어요? 그래 제가 누구예요?》 김정옥은 조용조용 말했는데 왜서인지 오늘따라 기분이 썩 좋지 않은것 같았다. 도간도간 울려나오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시름기가 느껴졌다. 《정옥이, 무슨 일이 있었소?》 김정옥은 말없이 빨래를 활활 헹구어내서 비틀어짰다. 《일은 무슨 일이 있겠어요.》 《걱정돼서 묻는건데 이건 뭐요? 밤중에 나와서 남의 빨래감을 빼앗으며 한숨섞인 소리나 하면 다요? 동문 지금 기분이 정상이 아니요. 다른 때의 김정옥이 아니란 말이요. 깔끔하면서도 주눅들줄 모르고 진심이 가득찬 말만 하는 김정옥이답지 않단 말이요. 말해보오.》 《참, 동무두!》 김정옥이 물이 흐르는 빨래감을 손에 든채 김명식을 빤히 마주 보았다. 그의 갸름한 얼굴에 어리였던 수심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방긋이 피여나는 웃음이 알리였다. 물기에 젖어가지고 드러나는 가지런한 이발의 반짝임, 눈언저리며 코언저리에 다문다문 박힌 주근깨는 기분이 상하거나 피곤이 겹쌓이면 까맣게 살아난다. 지금도 알릴듯말듯 한 주근깨와 까칠한 량볼이 발그레하니 타는것이 보이는듯싶었다. 입가에는 따뜻한 정이 어려있을것이다. 정옥이는 깨끗하고 정으로 빚어진 녀자이다. 이 김명식이만이 정옥이를 다 안다. 그지없이 마음이 곱고 이악하며 정이 가득찬 녀자! 이 정옥이를 일생토록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정옥이에 대한 믿음과 정옥이에 대한 사랑을 조금이라도 허위의 보자기로 감싸보는 순간이 있다면 이 김명식이 사람이 아니지. 그래 인간이란 그렇게 변함이 없고 순결해야 하는것이지. 《뭘 그렇게 생각해요?》 김명식의 지꿎은 눈길에 당황해하며 김정옥이 두려움이 실린 목소리로 속살거리였다. 《정옥이에 대해서 생각하지.》 《어마!》 《손이 시리지?》 《일없어요.》 사나이의 커다란 손에 녀자의 자그마한 손이 꼭 쥐여진다. 《이것 보라구, 얼음덩이같군.》 《빨래하는 손이니까 그렇지요 뭐.》 《내 품안에 넣어 녹여주지.》 《정신나가지 않았어요. 누가 보면 어쩔려구.》 《보기는 누가 봐? 저 달만이 보겠지. 달은 말이 없지.》 동쪽하늘에 떠있는 상현달이 눈을 째긋이 뜨고 시샘에 차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것 같다. 달은 정말 웃기만 하고 말이 없다. 삼라만상이 고요속에 젖어든 밤, 그들은 얼음판우에 나란히 앉아 사랑의 행복에 취해본다. 《힘들지? 요즘 정옥이가 힘에 부칠수 있다는걸 알아.》 《힘들어요. 하지만 육체적으로 힘든건 견딜수 있어요. 소대동무들이 사기가 떨어진것때문에 야단이예요. 경쟁총화에선 등수밖으로 밀려났지, 오작시공때문에 작업량은 탁없이 많아지지 않았어요. 듣자니 2단계경쟁을 인차 시작한다는데 동무들이 일어나지 못하면 야단이 아니예요. 그러지 않아도 지쳐서 말들이 아닌데. 독고봉희같은 처녀는 밥맛을 다 잃구 잠자리에 누우면 앓음소리를 해요.》 김정옥은 호ㅡ한숨을 내그었다. 오늘밤 그가 안고나온 빨래감도 실은 독고봉희의것이였다. 단련이 부족해서 일이 고되면 누구보다도 꼼짝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남들한테 어떻게 하나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봉희였다. 그래서 오늘도 봉희가 잠든 사이에 그의 머리맡에 개여놓은 묵은 빨래감을 몰래 걷어가지고 나온것이였다. 《정옥이, 그래도 동무만은 쓰러지거나 주저앉지 말아야 돼. 우린 제대군인들이구 당원이 아니야. 단련이 부족한 동무들을 우리같은 병사출신들이 도와주고 이끌어주어야지. 그렇지 않소?》 《알겠어요. 그런데 우리 처녀들은 처녀들이구 남동무들을 정말 보기가 딱해요. 온종일 어정을 까내느라고 고생들을 하는데 일자리는 나지 않지. 게다가 오작시공을 퇴치하자면 지금 방법대로 해가지구선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오늘 낮에는 한바탕 언쟁을 했는데 모두들 신경질을 부리더군요. 작업능률이 나지 않으니 신경들이 살아나게도 된거지요 뭐.》 《작업방법도 문제는 문제요. 한시호동무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게 있는것 같은데 나도 좀 생각해봐야겠소. 지금은 어정을 빨리 제거해야 일자리를 내겠는데.》 김명식은 자기로서도 답답하여 한숨을 그었다. 어정이란 땅의 동결층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누군가 처음 썼는지는 모르나 그게 이제는 온 공사장에 통하는 말로 되였다. 100여리 청춘로반을 쌓아가는 온 공사장이 동결층때문에 애를 먹다나니 어디 가서나 어정소리를 듣게 된다. 신암대대에서도 어정을 제거하는게 난문제로 제기되고있었다. 수백명의 전투원들이 토량운반을 할수 있게 절토작업을 선행시키자면 어정부터 제거해야겠는데 힘깨나 쓰는 남자들로 무어진 함마조가 맥을 뽑으며 함마질을 해대야 정날끝에서는 부스럭지같은 언 쪼각들이 떨어져나갈뿐이였다. 함마조에 속한 남자들의 벙어리장갑이 한나절도 못가서 판이 나고 손들은 물집투성이가 되였으며 저녁이면 녹초가 되여 꼼짝을 못했다. 리선명후방참모가 작업장에 나와서 어정때문에 고생하는 동무들을 보고 감동되여 뜨끈한 콩국을 끓여내온다, 강냉이빵을 공급한다 했지만 그것도 한동안이였다. 식량공급이 빠듯하게 진행되는데다가 그것마저도 끊어질 형편이여서 지금 보유하고있는 식량을 최대한으로 절약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였다. 김명식은 어떻게 하면 어정을 쉬운 방법으로 제거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안은채 김정옥과 헤여졌다. 김정옥은 무겁던 마음이 어느정도 가라앉아가지고 병실로 향했다. 김명식을 만나고나면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것이였다. 그러면서도 김정옥의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돌 하나가 들어앉아있었으니 그것은 김명식의 건강때문에 오는 걱정이였다. 그가 자기를 아끼지 않고 일하다가 어느때 가서든지 쓰러질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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