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 제 16 회 )

 

제 2 편

 

1

 

수만의 피끓는 청춘들이 돌덩이같이 무거운 흙마대를 메고 다투어 내달리며 기세를 올리던 그날의 바람사납고 파헤쳐져 황량하던 땅으로는 눈뿌리 모자라게 아득한 대통로가 시원스레 열려져있고 서길산은 지금 승용차의 폭신한 등받이에 기분좋게 몸을 싣고 그 길우를 달리고있다.

생각은 추억의 언덕으로 거슬러오르고있다. 해빛을 받아 빨갛게 타며 돌격대기발이 세찬 바람에 퍼덕이던 언덕, 때없이 황토먼지가 날리군 하던 그 언덕아래 규모있게 들어앉아있던 돌격대건물들… 서길산은 귀전에 울려오는 격한 목소리를 듣고있다.

《동무들, 우리는 달리는 살수 없는 김일성, 김정일조선의 청년들이란 말이요. 우리는 풀뿌리를 캐여먹고 맹물을 삼키면서도 가장 깨끗한 량심을 바쳐 여기에 세상이 보란듯이 대통로를 닦아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것이 바로 우리의 사회주의를 무너뜨려보려는 미국놈들에게 조선청년들의 의지와 결심이 어떤것인지를 보여주는 길이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서길산동무는 뭔가! 정말이지 옳지 않단 말이요!》

그렇다, 그것은 추억의 먼 언덕너머에서 울려오는 목소리이다.

연재탄난로가 벌겋게 달아올라 훈훈한 기운이 도는 숙소, 끊임없이 불어치는 바람에 천막지붕이 날려갈듯 풀떡이고 젊은이들의 땀냄새, 습기많은 잠자리들에서 풍기는 뜬냄새, 흙냄새가 어울려 떠도는 중대침실안에서 울리던 오응세소대장의 준절한 목소리이다.

승용차는 여전히 쾌속으로 달린다. 하얀 뻐스들과 승용차들이 아득한 대통로의 한끝에서 나타나 해빛에 번쩍이며 살같이 마주 달려와서는 옆으로 휙휙 지나쳐버린다. 그렇다, 지금은 추억만이 남았다. 누가 말했던가? 추억은 지나간 력사가 간고하고 시련에 찬것일수록 아름답고 긍지로운것이라고. 그런데 서길산은 가슴이 저려들고 숨쉬기가 뻐근해진다. 어째서 눈물이 나오려는것인가? 이 서길산이도 이제는 성격이 변하여 녀자들처럼 눈물이 헤퍼졌단 말인가? 과연 추억이란 아름답고 즐겁기만 한것인가?

서길산은 갑자기 초조해졌다. 이제 조금 있으면 승용차는 《우리 로반》에 가닿게 될것이다. 서길산은 《우리 로반》을 빨리 보고싶었다. 그러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귀전에 울려왔다.

《여, 서길산이! 말뚝을 뽑은 자리를 돌로 덮어놓았다는게 사실이야? 비렬하단 말이야!》

그것은 누군가의 비판토론끝에 리영국이 참지 못하고 두번째로 일어나 웨치던 목소리이다. 멋없이 키가 커보이고 주걱턱에 항상 수염발이 꺼칠하게 돋아있어 아바이같던, 알고보면 고지식하고 순진하기만 하던 사나이가 터쳐놓던 울분이다.

아, 내가 그때 왜 리영국을 고깝게 생각했단 말인가? 그것은 뼈를 에이는 후회였다.

서길산은 그때 자기는 여느 동무들과 다름없이 고속도로건설장에 자진하여 탄원해왔고 추위와 배고픔과 그밖의 참기 어려운 악조건하에서도 누구보다 일을 많이 했는데, 그리고 표식말뚝도 결과는 어떻게 되였든 본심은 대대를 위해서 옮겨놓은것인데 모두들 자기를 야비하게 비판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길산은 자기라는 인간이 만신창이 되였다고 생각했으며 수치와 창피감에 머리를 들수 없었다. 하여 대대에 더 남아있을수 없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였으며 김명식의 결혼식을 치른 그날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사품들을 되는대로 구겨넣은 배낭 하나를 메고 몰래 침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한치의 앞도 가려볼수 없는 어둠속에서 갈아엎은 논판을 허둥지둥 걸어갔다.

얼어붙은 대동강을 걸어서 건너갈 때 그는 김성순에 대해서 생각했다. 김성순이 동무들앞에서 자기 서길산을 비판한것은 그때 형편에서 그로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였을수도 있다고 좋게 생각했다.

가까운 사이라는것을 고려하여 일부러 호상비판을 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을수도 있는것이였다. 하여 비판은 했지만 그의 마음은 괴로왔을것이였다. 눈앞에는 문득 신혼부부를 축하하여 노래를 부를 때 손풍금을 타며 자기를 바라보던 그의 눈물이 가랑가랑하던 눈동자가 떠올랐다. 이 서길산이 대대를 떠났다는것을 알면 성순의 마음이 어떠하랴! 서길산은 가슴이 아리였다. 떠나오더라도 성순이만은 만나고 떠나왔을걸 하는 후회가 되였다. 그러고보면 정철수의 비판도 리해되였다. 물론 그가 비판할 때 표식말뚝구멍을 덮어놓은 돌문제까지 꺼내놓아 많은 동무들의 분노를 촉발시킨것은 괘씸한것이지만 그것도 이 서길산을 대중앞에서 망신시키자는 본심에서 그런것은 아닐것이다. 그는 정철수를 잘 안다. 그도 김성순이나 다름없이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안타까운 나머지 그런 비판을 했을것이다. 그런데 서영옥이나 리영국에 대해서만은 좋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도 서영옥이만은 녀자이고 또 무엇때문인지 그와는 관계가 애당초 시원치 않아 그가 그런 비판도 할만한것이지만 리영국이만은 여느때 이 서길산이 무슨 영웅감이나 되는듯이 추어주기도 하던 친구가 아닌가. 뜨락또르련결차때문에 충돌이 있었던 다음에도 리영국편에서 먼저 찾아와 친구가 되자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 리영국이 그렇게까지 분개해서 이 서길산이를 타매한단 말인가? 뭐 비렬한 놈이라구? 리영국이, 넌 뭐냐? 이 서길산의 인격이요, 자존심이요 하는것을 여지없이 짓뭉개놓는것으로써 너의 혁명성을 시위하자는거냐? 그렇다면 너야말로 시시한 사나이가 아니고 뭐야?…

달리는 승용차의 시창너머로는 멀리 야산기슭에 새로 일떠서는 아담한 살림집들이 보인다. 그 앞으로 펼쳐진 전야로는 거름을 실은 빨간 뜨락또르 한대가 하얀 연기덩이들을 떠올리며 달려간다.

마을뒤의 연줄연줄 뻗어있는 산발들도 온통 눈속에 묻혀있다. 저 산발을 따라가면 그곳이 있을것이다. 채석장이 있는 립석마을옆의 나지막한 산등성이, 고속도로가 지척에 안겨오는 양지바른 그곳의 나지막한 분묘 하나!

서길산은 가슴이 답답하고 눈굽이 저려들었다.

아, 정말이지 내가 그때 왜 리영국의 진심을 리해하지 못했던가! 내가 왜 가장 아름답고 그지없이 깨끗한 리영국에 대하여 한순간이나마 그렇게 욕되는 생각을 했던가!

《서길산동무, 왜 조용해졌나? 동무성미에 이 희한한 대통로를 보면서 시라도 읊고싶을텐데.》

류종수가 시원스러운 얼굴에 우선우선한 미소를 띄워올리며 뒤좌석에 앉아가는 서길산을 돌아보았다. 류종수는 그때 서길산의 눈에 어려있는 물기를 보았다.

《서길산이 사색파로 전환한게 언제라구요.》

최진혁이 넌지시 말하며 녀자들쪽을 향해 의미있는 웃음을 지어보이였다.

김성순이와 김정옥은 소리없이 웃었다.

서길산은 황황히 생각에서 깨여나며 어줍게 웃었다.

《허허, 그렇단 말이지.》

류종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서길산의 심정을 리해한것이였다.

서길산의 눈가에 어려있는 물기가 다 말해주고있지 않는가. 리영국이를 생각하고있을것이다. 《우리 로반》을 찾아오는 이날에 저 서길산이 어찌 그를 생각하지 않으랴. 리영국의 일로 하여 서길산이 커다란 충격을 받고 사실상 새로운 인생전환을 한것이나 같지 않는가.

류종수는 모두 즐거운 추억을 하며 좋아하는 때에 서길산이 혼자 괴로와하는것을 보기 딱한듯 가볍게 소리내여 웃으며 말했다.

《그때 일이 생각나는군.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댔소. 이 서길산동무의 왕청같은 행동으로 오작시공을 해서 작업량은 엄청나게 불어났지. 게다가 그 일로 해서 대대의 사기는 떨어졌지. 정말 그때 대대는 말이 아니였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이 서길산이 괘씸하지요. 대대를 곤경에 몰아넣고 자기는 도망을 쳤으니까요. 안그렇소? 성순동무, 동무두 서길산이때문에 속깨나 태운 사람이 아니요.》

최진혁이 갑자기 김성순을 꺼들이는 바람에 그 녀자의 얼굴은 당장 발그레해졌다. 하지만 그의 당돌하고 명랑한 성격은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천성이고 매력이기도 했다.

《어마! 대대장동진 난 왜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씀하는거예요? 사실 서동지가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또 대대를 위해 큰일도 했지요 뭐. 그거야 대대가 다 인정한게 아니예요. 안그래요? 정옥언니.》

김성순의 말에 김정옥은 대답대신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코언저리에 박힌 깨알같은 주근깨들이 연해졌다.

류종수와 최진혁은 육중한 몸들을 들썩이며 소리내여 웃었다.

류종수가 부지런히 운전해가며 기분이 좋아서 말했다.

《제 애인이라고 벌써부터 두둔해나서는군. 괜찮아, 역시 김성순인 김성순이야.》

차안에는 밝은 기운이 가득 서리였다. 그 즐거운 웃음의 뒤끝에 침묵이 시작되였다. 낯익은 고장의 산발과 마을과 벌판이 보이기 시작하는것이였다. 모두들 이제 조금 가면 《우리 로반》이 나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젖어들며 별로 초조감을 느끼는것이였다. 《우리 로반》과 함께 있었던 그때의 일들이 떠오르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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