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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피끓어라 청춘아 불타라 심장아 ㅡ 가요에서 ㅡ
( 제 12 회 )
제 1 편
12
정철수는 한잠 푹 자고 깨여났다. 따뜻하고 포근한 안정감을 느끼면서 눈을 떠보니 에크! 여기가 도대체 어디인가? 푸른 학무늬가 새겨진 깨끗한 도배지를 바른 벽이며 천정이며가 안겨오지 않는가. 정철수는 의아해서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안에는 소박한 장식을 한 이불장이며 윤기가 흐르는 경대며 옷걸이며 앉은 책상이며 하는것들이 질서있게 갖추어져있었다. 안정감은 자기가 덮고있는 깨끗한 이불에서 풍겨오는 신선한 냄새와 자리를 덥혀주는 따뜻한 온기때문인듯 했다.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어?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챠, 이것 봐라. 서길산이랑 성순동무랑 온 대대가 추위에 떨면서 경쟁에서 기어코 1등을 하자고 돌격전을 벌리고있을텐데 이 정철수는 안일하게스리 남의 집 따뜻한 구들우에 그것도 깨끗한 새 이불까지 덮고 늘어져있단 말이야? 그런데 대관절 어떻게 된거야? 정말이지 내가 어떻게 되여 여기에 누워있는거야? 이건 누구네 집이야?… 차츰 정신이 들자 간밤의 일들이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맨먼저 운전실시창을 두드리는 눈가루며 윙윙거리는 바람소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장작무지속에 들어박혀 와들와들 떨며 사람이 이렇게 얼어죽는 모양이구나 하고 한심한 생각을 하던것이며 몸을 놀려야 얼어죽지 않는다는것을 알면서도 꼼짝하기 싫어지던 일이 생각났다. 이어 자기가 정신을 잃고있는데 (정철수는 그때 자기가 분명 정신을 잃고있었던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되여 나타났는지 알수 없는 리선명후방참모와 또 누군가가 안타까이 자기들을 잡아흔들며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치던 일이며 자기들을 어느 차안에 태우고 달리던 일이며 또 달리는 차우에서 리선명이 뭐라고 자꾸만 말하며 화를 내던 일이 생각났다. 정철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허광식이 걱정되였다. 자기 정철수도 죽을 고비에서 겨우 살아났는데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고 단련도 부족한 그가 과연 무사하겠는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것이였다. 그래서 옆을 돌아보니 허광식이 자기처럼 깨끗한 이불속에 누워있었다. 잠을 자고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내배였는데 머리카락이 마구 헝클어져 달라붙어있었다. 숨결이 고르로운걸 보니 속은 자기처럼 편안한 모양이였다. 《여, 광식동무, 그만 자구 깨여나라구. 응, 어서 깨여나란 말이야.》 정철수는 그랬으나 자기 역시 꼼짝하기 싫었다. 허광식은 《으응ㅡ》하더니 그냥 잤다. 《챠, 이런, 깨여나라는데. 대대는 지금 불도 못땐 방에서 추위에 떨고있겠는데 우린 이게 뭐야! 량심없이.》 그제서야 허광식이 《엉?》하며 눈을 떴다. 그러다가 아늑한 방안을 둘러보며 눈이 둥그래졌다. 《여기가 어데야? 철수동지, 어떻게 된거야요? 우리가 이거 남의 집에 와서 잠을 자고있었구만요.》 《글쎄말이야. 나도 대관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머리가 뗑하단 말이야.》 《아, 화목차! 화목차가 어떻게 되였을가요? 강선일운전사가 피대를 가지러 가구 우린 장작을 지키고있지 않았어요.》 《운전사는 피대가지구 왔댔어. 리선명후방참모도 함께 왔댔구. 후방참모가 강선일이를 욕하며 빨리 따라오라고 했고 우린…》 《그럼 화목차가 떠났단 말이예요? 우린 어떻게 되였다는거예요?》 《에이, 자꾸 말시키지 말라구. 나도 무슨 판인지 잘 모르겠어.》 정철수는 화를 내였다. 아무리 생각해봐야 그이상 더 생각해낼수가 없었다. 정철수는 혼탁된 사고의 실마리를 찾아쥐려고 모지름을 썼다. 그러는 가운데 대대에 생각이 미치였다. 화목차가 대대에 도착했을가? 내가 리선명후방참모의 목소리를 들은건 꿈에서가 아닐가? 꿈이였던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했다. 문제는 대대에 화목차가 도착했는가 하는게 중요한것이였다. 자기들이 어떻게 정신을 잃었으며 어디에서 깨여났는가가 중요한것이 아니였다. 온 대대가 기다리는 화목이 아닌가. 그게 도착하지 않았으면 지금도 모두들 떨고있을것이였다. 《여, 광식동무. 당장 일어나라! 빨리!》 정철수는 따뜻해진 이불을 와락 밀어제끼고 일어나며 부르짖듯이 말했다. 허광식이 의아해서 올려다보았다. 《왜 그래요?》 《왜 그래가 뭐야. 대대는 지금 땔감이 없어 떨고있는데 우린 량심없이 알지도 못하는 남의 집 아래목에 편안히 누워있으니 어디 됐냐 말이야. 빨리 대대에 가서 알아보자구.》 《여기가 어딘줄 알구요?》 《어딘가가 무슨 상관이야. 어쨌던 대대를 찾아가야 할게 아니야. 우린 대대의 전투원이란 말이야.》 《하긴 그래요. 가자요.》 허광식이 그래도 일어나기 아쉬운지 길게 기지개를 켜고나서 와닥닥 일어났다. 그는 이불을 개여얹을 생각은 못하고 솜옷부터 찾았다. 《챠,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한다? 광식동무.》 솜옷을 입고 토끼털모자를 귀덮개까지 내리여 푹 눌러쓴 정철수가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춰섰다. 《왜 그래요? 철수동지.》 《집주인들한테 간다는 말이라도 하고 떠나야 하잖아.》 《하긴 그렇군요. 그런데 정말 주인들이 다 어디 갔을가요?》 《아마 일나갔겠지.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구 가야 할텐데. 할수 없이 그냥 가야겠군.》 《그럼 이 집을 똑똑히 알아두었다가 후에 찾아와 인사하지요 뭐.》 《좋아, 그렇게 하자구.》 둘이 밖으로 나오는데 마침 마당 한쪽에서 《두두두.》하는 녀인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나이 60이 다 되여보이는 한 녀인이 우리밖으로 나와 돌아치는 여라문마리나 되여보이는 포동포동한 새끼돼지들을 몰아넣느라고 애를 먹고있었다. 녀인은 《자유주의분자》들인 새끼돼지들을 욕하다가 방안에서 나오는 두 청년을 보자 얼굴에 환한 웃음을 실었다. 《깨여들 났나?》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그런데 어디를 가자고 벌써 나왔나?》 정철수네들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해있는데 녀인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또 입을 열었다. 《음ㅡ 대대에 가자구 그러나? 안돼!》 조금전의 환하던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녀인은 짐짓 엄하게 말했다. 두 젊은이는 그 소리에 아마도 자기들이 이 녀인의 집에서 아래목을 차지하고 포근한 이불속에서 잠을 잔것은 무슨 커다란 과오와 관련되는 일인가부다 하는 어렴풋한 생각을 하며 당황하여 얼굴들이 뻘개졌다. (이것 참 잘못 걸려들었는데. 슬그머니 가버렸으면 좋았을걸 공교롭게 주인어머니의 눈에 띄였단 말이야.) 정철수가 그렇게 생각하고있을 때 주인녀인이 무리에서 기어이 빠져나와 도망치려는 새끼돼지를 따라가며 욕을 했다. 《두두두! 요놈아, 돌아서지 못하겠니?》 《철수동지, 도망치자요!》 허광식이 바로 이때다 하고 생각했던지 정철수의 한쪽팔을 슬쩍 건드리며 재빨리 속삭이였다. 이때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주인녀인이 얼른 돌아보며 소리쳤다. 《뭣들 그러고 있나. 빨리 와서 조놈의 돼지를 좀 몰아달라구.》 젖살이 올라 토실토실해진 새끼돼지는 동작이 어찌나도 빠른지 주인녀인이 나이많아 둔해졌다고 조롱이라도 하는듯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정철수는 허광식이와 함께 새끼돼지를 따라가 우리안으로 몰아넣었다. 한참 돌아치고나니 정철수는 눈앞이 어질어질해왔다. 심한 열병이라도 앓고난뒤 같았다. 주인녀인은 《수고들 했네. 어서 들어들 가자구.》하며 무작정 젊은이들을 방안으로 밀어넣다싶이 했다. 녀인의 표정을 보면 꼭 무슨 욕이라도 할상싶은데 그러지는 않았다. 솜옷들을 벗어 말코지에 걸어놓게 하고는 《좀 더 누워들 있으라구. 내가 일어나라고 할 때까지는 누워있어야 하네!》하고 명령하듯했다. 《어머니, 저희들은…》 《글쎄 누워있으라니까.》 주인녀인은 기어코 젊은이들을 자리에 눕히고 이불까지 다시 내리워주고서는 《도망칠 생각은 아예 말라구.》하고 단단히 오금을 박았다. 그러더니 부엌으로 내려갔다. 정철수는 일도 참 우습게는 되였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감투끈인지 물어라도 봐야겠는데 녀인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도망을 칠수도 없게 되였다. 그들이 별수 없이 자리에 누워 천정만 바라보며 눈을 뚜부럭거리고있는데 주인녀인이 뜻밖에도 소반에 김이 문문 나는 삶은 호박을 한양푼이나 되게 받쳐들고 들어왔다. 《뭣들 보구 있나? 일어나 앉으라구.》 녀인은 언제 엄했던가싶게 얼굴에 환하게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젊은이들은 녀인의 정에 못이겨 소반을 마주하고 앉았다. 《떡호박이야. 내손으로 농사지은건데 어서 들라구. 생각같아서는 이 추운 겨울에 공사장에 와서 수고하는 임자들에게 찰떡이라도 쳐놓고 대접하고싶은데 집에 뭐가 있어야지. 그래두 이런 겨울엔 떡호박맛이 별맛이야.》 《어머니!》 정철수는 녀인의 진정에 갑자기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뭐라구 이렇게…》 《무슨 소릴 하나. 임자들이야 이 추운 겨울에 집을 떠나 여기 와서 고생하는 젊은이들이 아닌가. 내 어제밤 리선명이 그 사람한테서 다 들었네. 동무들이 추위에 떨 일을 생각해서 얼어죽을 고생을 하면서두 싣고오던 장작을 한가치두 태우지 않았다더군. 원, 사람들두! 그러다가 정말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아니, 그럼 어머닌 우리 리선명후방참모동지를 아십니까?》 허광식이 의아해서 물었다. 녀인은 눈가에 선한 미소를 띄여올렸다. 《알지, 아네.》 《친척이야요?》 《아들이지. 리선명이 그 사람두 임자들두 다 내 아들이나 같지.》 알고보니 리선명은 대대후방사업때문에 뛰여다니면서 립석마을의 윤명녀어머니를 알게 되였다. 윤명녀는 전쟁직후 남편이 전연지구에서 군관으로 복무하다가 잘못된 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군대에 내보냈는데 그 아들마저 두해전에 혁명사적지주변에 난 산불을 끄고 희생되였다. 그래서 혼자 살고있었다. 오늘 새벽 누구들인가 울바자문을 요란스럽게 두드리기에 무슨 일인가 해서 나가보니 바로 신암대대의 리선명이 자동차에 싣고온 꽁꽁 얼어서 의식마저 없는 두 젊은이를 업고 들어오며 다짜고짜로 《어머니, 빨리 불을 때서 구들을 덥혀주어요. 한증탕처럼말이예요.》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리선명은 대대에 들어가야 당장은 불을 땐 더운 방이 없으니 립석마을의 윤명녀네 집으로 곧장 자동차를 끌고온것이였다. 두 젊은이는 그때 방에 들여다 눕힐 때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있었다. 그래서 살아온 경험이 있는 윤명녀가 리선명이네와 함께 콩자루에 그들의 손발을 잠가본다, 알콜을 얻어다가 비벼주고 꿀물을 먹인다 하고 한동안 언독을 뽑아내느라 볶아쳤다. 리선명은 한시간후에야 불을 좀 더 때달라는 부탁을 하고 대대로 갔다. 자초지종 사연을 다 듣고난 정철수는 지금 대대에서 큰일이라도 난것처럼 소동이 일어났겠구나 생각하니 미안했다. 그리고 윤명녀어머니가 고마왔다. 참 무던한 어머니였다. 정철수와 허광식이 사연을 알고 눈물이 글썽해서 고맙다고 하니 윤명녀는 오히려 노여워하며 《무슨 그런 소리를 다하나. 자네들이야 다 나라에서 귀하게 여기고 내세워주는 젊은이들이 아닌가. 그런 젊은이들을 위해주는건 우리 어머니들의 기쁨인데 요즘 살림이 좀 어렵다나니 떡호박밖에 대접 못하는게 한스럽네.》하고 말했다. 녀인과 젊은이들은 서로 인차 정이 통했다. 윤명녀는 나이가 많아 농장일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와있으면서 돼지를 길러 해마다 아들이 희생된 부대에 보내준다는 이야기를 했고 젊은이들은 고속도로건설장에 나와서 있었던 가지가지 인상깊고 고생스럽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허광식이가 지난밤에 화물자동차에 실은 장작무지속에서 덜덜 떨며 인젠 고향의 부모님들과 대대의 친구들도 다시 못보고 영낙없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해서 마음어지고 정이 헤픈 녀인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정철수는 눈가녁이 축축히 젖어들면서도 웃었다. 간밤의 그 일이 고통스러웠지만 지나가버리니 긍지롭게 생각되는것이였다. 세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펴고있을 때 밖에서 《어머니, 계십니까?》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윤명녀가 일어나 문을 열어주기 바쁘게 최진혁대대장과 류종수부장이며 그리고 오응세소대장이며 서길산이와 김성순이, 한시호네들이 들어왔다. 《야! 이것 봐라! 다 죽었다던 사람들이 떡호박만 맛있게 먹고있었구나.》 신신펀펀해서 일어나 앉아있는 두 젊은이를 보고 류종수가 마음놓여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야, 철수. 너 살아났구나! 너네들이 동태처럼 얼어서 꽛꽛해지고 성에투성이가 되였다는 말을 듣고 우린 여기까지 오면서두 속이 한줌만 해졌댔다. 그런데 이렇게 호강하고있었구나.》 서길산이 좋아서 떠들썩하게 고아대는데 정철수가 어이없어 눈을 껌뻑거리였다. 《여, 길산이, 우리가 동태처럼 꽛꽛해졌다는건 무슨 소리야? 동태처럼 그렇게 되였으면 우리가 어떻게 산단 말이야?》 《리선명후방참모가 소대에 와서 그러더란 말이야. 그 소리를 듣고 녀성소대 처녀들은 소리내여 울기까지 했다. 성순동무, 정말이지? 우리 소대에선 당장 모두들 여기로 오겠다는걸 소대장동지가 겨우 진정을 시켜서 대표격으로 우리만 왔단말이야.》 리선명후방참모가 아마도 중대에 들려 사실을 굉장스레 과장해서 말했던 모양이였다. 그들은 한참동안 웃고 떠들다가 집주인에게 생각이 미치여 저저마다 윤명녀의 손을 붙잡고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윤명녀어머니, 우리 이 친구들이 참 얼마나 한심한가 보십시오. 글쎄 화목을 한 자동차나 실어놓은게 있는데두 불피울 생각을 안하구 얼어죽을 지경이 되였단 말입니다.》 류종수의 말이였다. 류종수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말속에는 훌륭한 청년들에 대하여 자랑하고싶어하는 심정이 어려있었다. 그들은 윤명녀에게 재삼 고맙다는 인사들을 한 다음 정철수와 허광식을 개선장군들처럼 앞세우고 립석마을을 나섰다. 정철수와 허광식은 자기들이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찬사에 떠받들리우고있는것만 같아 옹색할 지경인데 대대에 돌아오니 속보판에는 《불보다 뜨거운 심장들》이라는 제목을 큼직하게 단 속보가 새로 나붙어있었다. 속보는 집단과 동지들을 위하여 모진 추위속에서도 화목을 고스란히 지켜낸 정철수와 허광식의 소행을 소개하는것이였다. 소대에 들어서기 바쁘게 대원들모두가 마치 굉장한 위훈이라도 세우고 돌아오는 영웅들을 맞이하듯 두사람을 뜨겁게 맞이했다.
정철수와 허광식이 땔나무를 실러 갔다오는 사이에 대대에서는 좋은 일들이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평양ㅡ남포고속도로건설에 참가한 청년들이 땔감이 부족하여 추위에 떨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평양화력발전련합기업소의 연재탄을 집중수송하여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취해주신것이였다. 며칠후에 신암대대에도 연재탄을 가득 실은 자동차들이 들이닥쳤다. 이제는 돌격대원들이 랭방에서 잠 못들며 추위에 떨지 않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사랑에 고무되여 전투원들은 힘든줄 모르고 일했다. 무거운 질통들을 지고 달리고 또 달리였는데 어떤 청년들은 질통 하나만 지고 달리는것도 성차지 않아 맞들이까지 들고 달리였다. 누군가 그렇게 달린 거리를 계산해보니 하루에 평균 150리를 달린셈이였다. 한달전까지만 해도 눈가루가 날리는 땅땅 얼어붙은 논판들이였던 곳에 로반이 생겨나 형태를 드러내게 되였다. 대대의 전투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한치한치 피나게 쌓아올린 로반을 《우리 로반》이라고들 불렀다. 《우리 로반》이라는 그 말속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시대를 빛내이며 뻗어가는 100여리 청춘로반에 자기들의 땀과 노력도 슴배여있다는 자랑과 긍지가 어려있는것이였다. 하여 어깨에 피멍이 들고 살이 벗겨지고 입술들은 조갈이 들고 지칠대로 지치였으나 누구 한사람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먼저 휴식하려 하지 않는것이였다. 어느날 려단에서 진행되는 단위책임자들의 모임에 갔던 최진혁대대장이 기쁜 소식을 또 안고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려단적으로 4등자리에 머물러있던 대대가 단연 첫 자리로 껑충 도약한것이였다. 첫 자리를 차지하고있던 운성대대는 신암에 자리를 내주고 2등으로 내려갔다. 《운성친구들이 약이 오르게 됐군.》 《그럴거야. 저 친구들 우리가 내내 4등에만 머물러있을줄 알았지.》 《그렇다고 자만해서는 안되지. 우리가 1등을 하자고 그러는것처럼 저 친구들도 1등을 하자고 그럴거란 말이야.》 《그렇구말구. 바싹 긴장해야 해!》 1등소식이 작업장에 전해지자 저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리선명이 역시 비록 후방사업을 책임지고있지만 대대가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는데는 다른 전투원들과 같은 심정이였다. 원래 그는 수완이 좋고 또 집단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였다. 그가 수완이 좋기로 인정되는것은 어느 정도 그의 떡살같은 비위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마음먹은것은 못해내는 법이 없는데 그것도 아무 대상에나 비위좋게 달라붙는 타고난 성미덕분이였다. 어느날 리선명은 려단에 공급물자 타러 갔다오다가 이웃에 있는 운성대대의 작업구간에서 굴착기가 작업하는것을 보게 되였다. 이틀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굴착기가 없었는데 새로 나타난것을 보니 려단과 사업을 잘해서 한대 지원받은 모양이였다. (하, 이거 우리 대대에도 저런게 한대만 있었으면 능률이 부쩍 올라가겠는데. 우리 진혁대대장은 뭘하고있는거야. 잘못하다가는 1등의 자리를 저 운성동무들한테 다시 떼우고말겠구나.) 리선명은 좋은 궁리가 떠올랐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여 운성대대는 모두 식사하러 들어가고 작업장에선 굴착기만 혼자서 계속 작업을 했다. 리선명은 주변을 살피다가 슬금슬금 굴착기에로 다가갔다. 《동무, 수고하는구만.》 키꼴이 좋고 얼굴이 너부죽하며 몸이 난 둔중한 체격의 리선명이 운전칸으로 대뜸 올라와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말을 걸자 푸수해보이는 젊은 운전수는 좀 어정쩡해하며 《수고야 뭐.》했다. 그는 리선명을 우에서 내려온 간부쯤 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한것이였다. 《동무네 운전수들은 좋은 동무들이구만. 이렇게 점심식사시간이 다 되였는데도 떨어져서 일하는걸 보니. 하긴 동무네가 책임적으로 일해야 전투원들이 등짐을 지는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줄수 있고 공사도 더 앞당길수 있지. 이런 굴착기 한대면 적어도 500명의 로력을 대신할수 있으니까.》 리선명은 제법 굴착기에 대한 아는 소리까지 하며 방금 파제껴놓은 흙무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제나름의 무슨 생각을 하는듯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그러고나서 《동무, 수고스러운대로 신암대대에 가서 몇시간 좀 도와주기요.》하고 말했다. 운전수는 그만 작업하고 식사하러 들어가려던 참이였는데 말하는투로 봐서 우에서 내려온 간부같은 사람이 신암대대를 도와주자고 말을 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딱해하였다. 그렇다고 간부풍이 완연한 사람한테 《동지는 누굽니까?》하고 물어볼 용기도 없는것이였다. 《이제 당장말입니까?》 운전수가 물었다. 《그렇소. 동무 점심식사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신암대대에서 섭섭치 않게 대접을 할테니까. 거기 신암대대로 말하면 려단에서 1등으로 내세우자고 계획하고 내미는 단위인데 굴착기신세 한번 지지 못하고 순전히 인력으로 하고있단 말이요. 그러다나니 그곳 동무들이 고생하오. 연약한 처녀들이 무거운 흙짐을 지고 하루에 150리, 200리씩 달린다고 생각해보오. 동무가 휴식을 좀 못하고 몇시간만 가서 도와주어도 신암대대에선 좋아할거요.》 《그럼 가겠습니다.》 운전수는 상대방이 하도 친절하게 말하며 또 그 말속에는 신암대대의 고생하는 처녀들에 대한 동정과 애착심도 깔려있어 거의 감동될 지경이였다. 까짓거 점심참에 가서 잠시 기계를 돌려주면 될게 아닌가. 더구나 우에서 내려왔을게 뻔한 간부가 도와주라고 해서 가는것이니까 후에도 별일은 없을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굴착기는 가까이에 있는 신암대대의 작업장으로 향했다. 리선명이 흡족한 표정을 하고 굴착기운전수옆에 앉아 건들거리였다. 굴착기가 자기네 작업장에서 떠나가는것을 본 운성대대의 전투원 하나가 이게 무슨 일이야, 굴착기가 왜 떠나가는거야? 하면서 냅다 달려왔다. 《동무, 운전수동무! 굴착기를 어디로 끌고가는거요?》 우르릉거리는 발동기소리때문에 운전수가 듣지 못할가봐 가까이 다가온 그가 크게 소리쳤다. 운전수대신에 리선명이 점잖은 투로 말했다. 《동무, 상부에서 다 토론이 있었소. 동무네보다 더 바쁜 단위가 있어서 그러는데 잠간 가서 도와주고 다시 와서 붙으라고 말이요.》 틀지게 말하는 바람에 상대방은 더 말을 못했다. 상부에서 이미 토론이 있었으며 또 갔다가 다시 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미타한 생각이 들었던지 머리를 기웃거리며 돌아갔다. 리선명이 상부와 다 토론이 있었다고 말하는 바람에 굴착기운전수도 마음을 푹 놓았다. 굴착기는 잠간사이에 신암대대 작업장에 이르러 언땅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리선명은 어떻게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자리를 떴다. 식당에 곧장 들려 한창 배식을 하느라고 바삐 돌아치는 취사원처녀를 시켜 한사람분의 특식을 하게 했다. 일일창고에 비상용으로 저축해놓았던 오리를 한마리 꺼내다 볶게 하고 닭알찜과 가재미튀기도 만들게 했다. 굴착기운전수한테 한끼 푸짐한 식사를 시키려는것이였다. 리선명이 드디여 곱살하게 생긴 취사원처녀에게 굴착기운전수의 점심밥보자기를 들게 하고 작업장으로 나가는데 최진혁이 대대부에서 나와 그를 급히 뒤쫓아왔다. 대대장은 난데없이 굴착기 한대가 자기네 작업장에 와서 흙을 파제끼는것을 멀리서 보고 웬일인가 해서 달려오는것이였다. 《후방참모동무, 저 굴착기는 뭐요? 운성대대에 가있던 굴착기가 아니요?》 리선명은 싱글벙글 웃었다. 《맞습니다. 대대장동지,》 《그런데 어떻게 된거요? 려단에선 아무런 련락도 없었는데 어떻게 되여 우리 작업장에 옮겨왔는가 말이요?》 리선명이 의기양양해서 사연을 말했다. 최진혁은 다 듣고나서 어이없어 껄껄 웃었다. 어디 가서나 《사업》을 잘해온다고 칭찬을 해주었더니 이 리선명이 오늘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벙글거리는 그에게 욕을 할 형편도 못되였다. 그저 웃어버리는수밖에 없었다. 참, 비위가 곰의 발바닥같은 사람이야. 저러니 몸이 날수밖에 없지. 이제 이 사실을 려단에서 알면 대대에 벼락이 떨어질것이다. 신암대대는 그따위 량심없는 놀음을 해서 1등을 하려는가 하고. 《여, 후방참모동무, 동무두 참!》 《아니 왜 그럽니까?》 《왜 그래가 뭐요. 려단에서 운성대대에 굴착기를 붙여주었으면 그래야 하기때문에 그런게 아니겠는가 말이요. 당장 굴착기를 돌려보내오!》 최진혁은 더 말할것도 없다는듯 손을 한번 홱 내젓고나서 돌따서서 걸어갔다. 리선명은 한동안 대대장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랑패스런 표정을 짓고있다가 쩝ㅡ 입을 다시였다. 《후방참모동지, 그럼 이 운반식사는 어떻게 하랍니까?》 운반식사보자기를 들고 따라섰던 취사원처녀가 리선명을 빤히 올려다보며 물었다. 리선명은 화가 동했다.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운전수 점심식사를 시켜야지. 하참, 오리만 한마리 손해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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