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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피끓어라 청춘아 불타라 심장아 ㅡ 가요에서 ㅡ
( 제 7 회 )
제 1 편
7
웃음과 랑만을 가득 실은 자동차들이 떠나가버리자 주위는 별스레 고적에 싸인듯 했다. 서길산은 그제서야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청산리엔 각 려단의 전투원들이 다 모인다니 굉장할것이다. 기발들이 날리고 구호들이 나붙고 중요한 궐기모임이니까 중앙에서 간부들도 많이 내려올것이다. 젠장, 정철수랑 모두 시뜩해서 궐기모임에 참가할거야. 이제야 자꾸 생각이나 하면 뭘해. 일이나 해야지. 나는 집단을 위해서 떨어진 몸이 아닌가.… 궐기모임에 간 대대가 점심때엔 돌아올수 있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점심밥을 다 지어놓게 하자면 화구손질을 빨리 해주어야 했다. 서길산이 소대천막에 들어가서 작업복을 갈아입고 나와 식당쪽으로 걸어가는데 대대지휘부천막쪽에서 얼굴이 걀쑥하고 코날이 날카롭게 생긴 김명식이 곡괭이자루를 손질하다가 《여, 친구. 왜 따라가지 않았나?》하고 무랍없이 물었다. 김명식은 식료공장에서 왔고 서길산은 광산에서 오다나니 두사람은 별로 이야기를 나누어볼 사이가 없었다. 《떨어져서 식당화구를 고쳐쌓으라더군.》 《동문 첫날부터 칭찬받을 일만 하더니 지휘관들의 믿음을 단단히 샀구만.》 서길산은 히죽이 웃었다. 《그런데 경비분대장인 동무가 곡괭이는 왜 가지고 그러오? 동무두 무슨 특별임무를 따로 받았는가?》 《특별임무는 무슨 특별임무.》 김명식은 가쯘한 흰 이발들이 드러나도록 인상좋게 웃었다. 《하긴 특별임무는 특별임무이지. 동무네 중대 녀성소대장이 공구들을 좀 손질해달라더구만. 처녀들이 써야 할 공구들이니 자루도 매끈하고 또 길이도 맞춤해야 한다면서 말이지. 이제 려단적인 경쟁이 붙으면 대대는 대대대로 경쟁을 조직하겠는데 공구준비부터 잘해야 한다나.》 아닌게 아니라 천막옆에는 한개 소대가 쓸만 한 공구들이 쌓여있었는데 한번도 써보지 않은 새것들이라 자루들이 투박했다. 김명식은 처녀들의 고운 손들이 상하지 않게 하려고 우둘투둘한 자루들을 매끈하게 다듬고 건성 맞추어진 자루들은 빠지지 않게 뽑아서 다시 단단히 맞추는것이였다. 《동문 정말 좋은 일을 하는군. 거 녀성소대 소대장이 새침해두 괜찮은 녀잔데. 조직사업을 예견성있게 하는걸 보니말이요.》 서길산은 조금전에 대렬이 다 모인 다음에야 나타나는 대원들을 야멸차게 비판하던 김정옥소대장의 얼굴을 눈앞에 떠올리다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어 눈을 껌벅거리였다. 《아니 우리 중대에두 남자들이 많은데 정옥소대장이 어떻게 동무한테 그 일을 부탁했어? 그 깔끔한 처녀와 잘 아는 사이인가?》 《그저 그러루하게 좀 아는 사이이지. 그런데 그 녀성소대장이 그렇게 깔끔한 동무인가? 나쁜 녀자인게군.》 《뭐 나쁜 녀자이기야 하겠나. 원칙도 있구 책임성도 강해보이더구만. 그런데 대원들을 다그어대는것을 보니 좀 차겁고 매정한데도 있는것 같더군. 녀자야 부드러워야 하잖나.》 《음ㅡ 그렇구만!》 김명식은 이상하게 머리를 끄덕끄덕하며 빙그레 웃었다. 서길산은 자기가 잘못 말하여 김정옥이 애매하게 나쁜 녀자로 오해를 받는것만 같아 황급히 정정하는 소리를 했다. 《그 녀자를 나쁘게 보진 말게. 소대장을 하자면 그런데도 있어야지 인정이 물러가지고는 소대를 바로 끌어나갈수 없지.》 서길산은 여전히 싱글싱글 웃기만 하는 김명식을 두고 이 친구 좀 이상한 친구로군 하고 생각하며 그 자리를 떴다. 그가 식당으로 가니 후방참모 리선명이 취사원들속에 싸여 밥가마를 들어낸 화구를 들여다보고있었다. 대대후방사업을 맡아보았으나 부뚜막수리같은 지저분하면서도 묘리를 알아야 하는 일은 전혀 해보지 않아 제가 직접 손을 대기는 끔찍해하는것 같았다. 삽이며 미장칼이며 흙손이며를 준비해놓은걸 보니 동원시켜달라고 제기한 로력이 오기만을 기다리는듯 했다. 《1중대치들이 쌓았다는게 장작만 많이 들구 가마는 잘 끓지 않는단말이야. 그러니 동무가 머리를 써서 불이 잘 들게 다시 쌓아보라구. 이제 다시 생쌀을 먹였다간 〈폭동〉이 일어날거야. 젠장, 밥선게 이 리선명의 탓인가. 잡아먹을 놈은 돼지라고 이 후방참모한테만 대고 야단들이지. 땔나무가 푼푼한가, 밥해먹을 물이라도 있나. 게다가 이렇게 한지에 엉성하게 가마를 걸어놓았으니 그런거지. 하지만 밥 설었다구 비판을 하는거야 사실 응당하지. 내 요건너 립석마을에 좀 갔다올 일이 있어 그러는데 그동안 좀 수고하라구. 그대신 조력으로 고운 체네들을 두명 붙여주지. 상금동무, 영실동무, 동무넨 이 동무한테 붙어서 조력하라구. 서둘러야겠어. 점심밥이 늦으면 안되니까.》 리선명이 그러고나서 립석리에 가야 할 일이 무척 바쁜 일인듯 서둘러 자리를 떴다. 서길산은 그제서야 자기가 비위살이 두터운 그한테 얼려넘어가 진일을 도맡아안았다는것을 알았다. 얼굴이 넙죽하고 이마가 반들거리는 리선명을 눈앞에 떠올리며 서길산은 참 재미있는 사람인데하고 생각했다. 서길산이 씩 웃고있는데 조력임무를 받은 두 처녀가 다가와 《뭘 하랍니까?》했다. 서길산은 부뚜막문제에도 영 깜깜은 아니다. 아버지가 철도건설로동자로 늘쌍 집을 떠나있는 통에 서길산이 집에 불이 잘 들지 않을 때면 몸이 불편해하는 어머니를 위해 부뚜막이나 개자리도 고치고 구들수리도 해본것이였다. 서길산은 먼저 화구를 어떻게 쌓을것인가를 가마의 크기며 바람방향을 보아가며 생각해보았다. 그러고나서 처녀들을 데리고나가 얼지 않은 마른 흙을 긁어온다, 물을 길어오고 맞춤한 돌들을 수집해온다 하고 준비작업부터 했다. 《어마! 꽤나 들볶네. 좀 천천히 하자요.》 서길산이 보드라운 마른 흙에 물을 한바께쯔 붓고 삽질을 걸싸게 하며 이길 때 물바께쯔를 들고오다가 하마트면 미끄러져 넘어질번한 상금이라는 예쁘장한 처녀가 종알거렸다. 서길산은 《동문 목소리가 아주 고운데!》하고 왕청같은 소리를 해서 처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게 했다. 《어마나, 그런데 어쨌다는거예요?》 《일은 내가 할테니 동문 힘들면 그저 노래나 불러달라구. 난 고운 처녀들의 노래만 들으면 열배는 더 일을 한다구.》 《정말이예요?》하고 이번에는 영실이라는 처녀가 복스럽게 생긴 통통한 얼굴에 방실방실 웃음을 피워올리며 물었다. 서길산은 삽질을 멈추지 않으며 눈을 끔뻑했다. 《정말아니문.》 《하지만 우리 상금언닌 어느 누구의 취미나 만족시켜주기 위해 노래를 부르지는 않을거예요. 상금언니의 노래는 그만큼 비싸단 말이예요.》 《그렇다면 그건 잘못 생각하는거요. 집단을 위하는 일에 노래를 아낀다는건 량심없는 행동이니까.》 《호호, 동진 사람 웃기네. 동지 한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게 어떻게 집단을 위하는 일로 돼요?》 《하, 이 동무들이 셈판을 모르누만. 내가 이자 말하지 않았소. 난 아름다운 처녀들의 노래만 들으면 열배는 더 일을 한다구 말이요. 내가 이렇게 일해서 화구에 불이 잘 들고 귀중한 우리 동무들이 선밥을 먹지 않게 되면 그게 집단을 위하는 일이구 고속도로건설을 다그쳐 끝내는 일이 그래 아니란 말이요?》 《어야나!》 영실이란 처녀가 탄성을 지르며 손벽을 짝 쳤다. 상금이란 처녀는 생글생글 소리없이 웃기만 했다. 《듣고보니 그렇기도 한것 같아요. 상금언니, 어서 한마디 불러요. 언니야 명창이 아니예요.》 《얘얘, 그만 해.》 상금이 바빠맞아 얼굴을 활딱 붉히며 자기를 난처한 처지에로 몰아가는 영실이란 귀염둥이처녀에게 악의없이 눈을 빨았다. 영실이 좋다고 깔깔거리고 덩달아 서길산이까지 재미있어하며 하하 웃어댔다. 《좋아, 상금동무의 그 비싼 노래는 이담에 듣자구. 그 대신 동무네한테 하나 약속을 받아낼게 있소.》 《뭐예요?》 영실이 호기심이 돋쳐 물었다. 《난 말이요, 허리가 남보다 1.5배는 길거던. 따라서 위주머니도 남달리 크단 말이요. 그때문에 남들보다 먼저 배가 고프단 말이지. 사람이 다른건 다 참고 이겨낼수 있어도 배고픈것 하군 어쩌지 못하지 않소. 그러니 내가 바빠할 땐 동무들이 특별히 생각해달란 말이요.》 《곱배기를 미리 신청하자는거예요?》 《말하자면 〈사업〉을 하잔 말이요.》 《호호. 엉터리! 어쨌던 동진 재미있는 동지예요. 그리고…》 《그리고 또 뭐요? 영실동무.》 《좋은 사람 같애요.》 《그건 사실이지. 이 서길산이 인민군대 장령감이니까.》 《호호호…》 처녀들은 이야기바람에 을씨년스럽던것도 힘들어 휴식하자던것도 다 잊어버린듯 했다. 화구를 다시 쌓는 서길산에게 찰떡같이 잘 이겨진 진흙이며 돌들을 신이 나서 섬겨주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멀리 평양쪽 하늘가로 둥근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해볕이 비쳐지자 두드리면 바스라질듯 얼어붙었던 대기가 한결 푸근해졌다. 청산리에서는 지금쯤 모두 정렬하여 궐기모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있을가? 아니, 이미 시작되였을지도 모른다. 성순이랑 정철수랑 연단에 나선 토론자들의 열띤 토론들을 들으며 한껏 흥분해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서길산은 여기에 떨어져 처녀들을 웃기며 진흙매질을 하고있구나. 하지만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긍지감을 느낀다. 기쁨을 느낀다. 보람을 느낀다. 집단을 위해 자기를 바친다는게 얼마나 좋은가! 이제 동무들이 궐기모임에서 돌아오면 선밥을 먹지 않게 되지 않았는가. 저 상금동무나 영실동무가 끓지 않는 가마때문에 속상해서 눈물을 짜지 않아도 될것이다. 이 서길산에게 화구쌓는 일을 떠맡기고 사라진 리선명이도 선밥때문에 비판을 더는 받지 않아도 될것이다. 서길산이 다시 쌓은 화구에 진흙미장까지 하고 불을 살려보니 슬슬 잘도 들었다. 가마를 올려놓고 물을 붓기 바쁘게 절렁절렁 소리내며 끓었다. 취사원처녀들이 눈물이 글썽해서 좋아했다. 립석마을에 일이 있어 간다면서 자리를 떴던 리선명은 《화입식》을 한 화구에 세멘트미장까지 끝낸 다음에야 나타났다. 리선명이 사업가는 사업가이다. 그는 농장의 소달구지 한대를 얻어 거기에 도람통을 세개나 싣고 흡족해서 나타났다. 물탕크로 쓰기 위해 림시로 빌려온것이였다. 리선명의 말에 의하면 군대때 독립중대 사관장을 하면서 그래본것인데 도람통에 피치를 바르면 쇠비린내도 나지 않아 김치독대용으로 쓰거나 물탕크로 쓰면 좋다는것이였다. 거의 5리나 되는 개울에서 물을 길어다 써야 하는 조건에서 물탕크부터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였다. 리선명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화구안을 들여다보며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서동무는 재간이 있구만! 동무가 이 리선명을 살려주었어. 인젠 선밥을 먹이지 않아도 되겠단 말이야, 하하.》 해는 중천에 떠올랐다. 식당에는 서길산이 더 도와줄 일이 없었다. 궐기모임에 간 대대는 점심때가 되여서야 돌아올수 있을것이다. 그는 다 읽어보지 못한 소설책이라도 마저 볼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누구도 없는 썰렁한 천막속에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문득 대대가 맡아 수행해야 할 작업구간에나 나가볼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제 최진혁대대장이 모두 모인데서 1단계전투로 276m의 로반에 대한 성토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작업대상인지 보고싶은것이였다. 대대장은 이제 곧 려단적인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대대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헐치 않은 량이라고 했다. 서길산은 식당처녀들을 도와 화구에 불을 지펴주고나서 더 할 일이 없게 되자 대대의 작업구간을 찾아나갔다. 대대가 전개한 곳에서 조금 올라가니 작업구간을 표시한 말뚝들이 보이였다. 서길산은 신암대대의 작업구간을 찾아보았다. 알아보니 대대의 작업구간은 논밭이 절반쯤 되고 나머지는 강냉이밭인데 그곳은 나지막한 구릉지대였다. 그는 《신암대대》라고 쓴 표식말뚝옆에 서서 생각했다. (이런 표식말뚝들을 따라가느라면 평양에 가닿게 되겠구나. 이제 여기에 현대적인 고속도로가 생겨나게 된단 말이지. 그때엔 승용차들과 뻐스들이 고속으로 질주하게 될것이니 참 멋있을거야. 그런데 지금은 한산하기 짝이 없군. 여기는 사철 이렇게 바람이 세게 부는가? 여기에 고속도로를 건설하자면 성순동무랑 녀성소대 동무들이 누구보다도 고생을 하겠군. 하지만 일없어. 우린 여기에 기어이 대통로를 열어놓게 될것이니까. 고생이 크면 일한 보람도 더 클테지.) 서길산은 여기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대대의 작업구간이 276m라고 했는데 과연 정확한지 한번 재여보고싶은것이였다. 물론 작업구간을 분담한 사람들이 정확히 재여보고 표식말뚝을 꽂았을건 명백하지만 그래도 제눈으로 확인해보고싶었다. 그는 어떻게 되여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자기로서도 알수 없었다. 서길산은 자기의 한뽐이 정확히 20㎝라는것을 안다. 그는 맞춤한 막대기를 하나 얻어 뽐으로 재서 한m짜리 자를 만들어가지고 대대의 작업구간을 재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판인가. 276m가 아니라 11m나 더 많은 287m가 아닌가. (모를 일이군. 표식말뚝을 꽂은 사람들이 구간을 재면서 수자를 삭갈린게 아닐가? 그 사람들은 많은 단위들을 대상해서 작업구간을 재다나니 그럴수도 있을거야. 아니면 내가 잘못 쟀을수도 있지.) 서길산은 자기가 정말로 잘못 재였을가 하고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한번 더 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삭갈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침착하게 다시 재보니 틀림없이 287m였다. 대대장은 분명 대대의 작업구간이 276m라고 했으며 표식말뚝에도 신암대대 276m로 되여있지 않는가. 표식말뚝을 박을 때 착오가 생긴게 분명했다. 서길산은 생각했다. 이제 궐기모임에서 돌아오면 래일부터라도 전투를 시작할것이다. 경쟁이란거야 누구나 1등을 하자고 해서 참가하는것이 아닌가. 이 서길산이 속한 신암대대는 마땅히 1등을 해야 한다. 2등도 안된다. 대대가 1등을 못하고서야 어떻게 모두들 영웅이 되여 돌아오라고 하면서 우리를 바래준 고향사람들의 품으로 돌아가겠는가. 군당책임비서동지도 우리들을 바래주면서 신암대대가 다른 대대보다 조금도 뒤떨어져서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맡은 량보다 11m나 더 많아졌으니 야단이 아닌가. 려단지휘관들도 우리 대대구간을 276m로 알고있을것이다. 하마트면 대대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꼴찌를 할번 했는걸. 이 서길산이 한번 재여보기를 참 잘했는데! 하지만 이제 와서 대대작업구간이 잘못 그어졌다고 려단에 제기하면 문제가 복잡해질것이다. 어떻게 한다? 에라, 누가 보기 전에 내손으로 바로 잡아놔야지. 서길산은 대대의 작업구간을 구획짓는 표식말뚝을 뽑으려고 손을 대려다가 주춤했다. 어쩐지 떳떳치 못한 일을 저지르는것만 같아서였다. 한데 아무리 따져봐야 잘못하는 일같지는 않았다. 표식말뚝이 잘못 꽂혀있는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바로 꽂는게 나 하나를 위하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대대의 명예를 위하는 일이 아닌가. 대대가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모두들 이 서길산이 잘했다고 하지 잘못했다고 하지는 않을것이다. 서길산은 자기가 공연히 복잡하게 생각하는것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말뚝을 뽑았다. 누가 봐도 말뚝뽑은 자리가 알리지 않게 구멍을 돌로 덮어버린 다음 정확히 276m되는 곳에 가져다꽂았다. 땅이 얼어서 쇠붙이로 구멍을 내고서야 표식말뚝을 엉성하게나마 세워놓을수 있었다. 서길산은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그는 소대천막으로 돌아오면서 왜서인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넨장, 무엇때문일가? 눈앞에는 말뚝뽑은 자리가 눈에 띠우지 말라고 자기가 거기 덮어놓은 손바닥만한 돌이 얼른거리였다. 그는 자기자신에게 까닭모를 화를 내며 병실쪽으로 스적스적 걸음을 옮기였다. 때는 벌써 정오가 가까와오고있었다. 마침 멀리 강선쪽에서 전투원들을 가득 태운 자동차들이 돌아오는것이 보이였다. 차우에서 웃고 떠드는 동무들의 모습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모두들 사기났겠는걸!) 서길산은 조금전의 불안하고 언짢던 감정에서 벗어났다. 《길산동무!》 자동차우에서 떠들썩하며 내리던 사람들속에서 정철수가 소리쳤다. 《오, 철수. 갔다오느라고 수고했겠네. 어때? 굉장했겠구만!》 《굉장하다마다. 더 말해 무얼하겠나.》 정철수는 무척 흥분한것이 알리였다. 얼굴이 온통 뻘겋게 상기되여 열정에 넘쳐 말했다. 《아마 만명도 더 되게 모였댔을거야. 중앙청년동맹에서는 물론이고 지휘부간부들도 많이 나왔지. 모임장소는 사람바다를 이루었는데 사방에 구호들과 그림판들이 보이고 방송차가 선동연설을 요란스럽게 내보내지. 그러는 가운데 궐기모임이 시작되였네. 많은 사람들이 달려나가 토론들을 했네. 얼마나 격동적이고 열정에 넘친 멋진 토론들을 했다구. 토론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청년들을 믿으시고 맡겨주신 고속도로건설을 결사옹위,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무조건 앞당겨 끝내자고 호소했는데 그때마다 이 가슴이 쿵쿵 울리더구만! 저절로 구호가 터져나왔네. 그 많은 청춘들이 심장으로 일시에 터치는 구호가 어떠했겠는지 한번 상상해보라구. 난 그때 길산이 너를 생각했어. 아마 그 자리에 네가 있었더라면 당장 연단으로 달려나가 흥분된 김에 고속도로건설장에 청춘의 피와 땀을 바쳐 청년영웅이 되자고 연설을 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말이지 성순동무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자꾸만 울더구만.》 《아니, 모두들 열정에 넘쳐 구호를 웨치는데 울기는 왜 울어?》 《그러게나 말이야. 손수건을 꺼내들고 눈물을 자꾸만 씻더라니까.》 《녀자들이란 모르겠군.》 서길산이 이제 김성순을 만나면 그 까닭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2중대 서길산동무!ㅡ》하고 식당쪽에서 최진혁대대장이 찾았다. 대대장이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식당에부터 찾아간것을 보니 화구를 어떻게 고쳐쌓았는지 직접 확인해보자고 그런 모양이였다. 혹시 일한게 마음들지 않아 그러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서길산은 그리로 달려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대장의 얼굴에는 만족해하는 빛이 실려있었다. 《잘했구만. 서동무 혼자서 이렇게 멋진 화구를 쌓았다면서. 오늘 참 대대를 위해서 많은 수고를 했소!》 리선명이 곁에 서서 싱글거리는것을 보니 그가 대대장에게 좋은 말들을 한 모양이였다. 《수고야 무슨.》 서길산은 생각지 않던 칭찬에 멋적어서 얼굴을 붉히며 씨가 박히지 않은 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 말에서 《저야 대대를 위해 응당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하는 소리가 울리는듯 했다. 어쨌든 대대장의 칭찬이 싫지는 않았다. 앞으로 이 건설장에서 자기의 일이 잘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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