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피끓어라 청춘아 불타라 심장아

                  ㅡ 가요에서 ㅡ

 

( 제 6 회 )

 

제 1 편

 

6

 

《얘, 그날밤에 말이야. 모닥불은 다 사그라져버렸지, 한지에서 자자니 어디 추워서 잘수가 있어야지. 그래 꼬부리고 누워서 정신만 말똥말똥해있는데 그 사내가 슬그머니 김성순이한테 다가가질 않겠니.》

잠자리우에 화장도구를 펴놓고앉아 열심히 얼굴에 분칠을 한다, 입술연지를 바른다 하면서 서영옥이 곁의 동무에게 소곤거리였다. 티 한점 없는 맑은 살결의 갸름한 얼굴을 손거울에 비쳐보며 입술연지를 바르고있던 민옥숙이 잔뜩 호기심이 돋치여 《그 사내라니? 누구?》하고 물었다.

서영옥이 다른 처녀들이 들을가봐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 말했다.

《그 사람 있잖니, 광산꺽다리. 싱검둥이말이야.》

《오, 서길산이라는 사람보고 그러는구나. 그 사람은 칭찬만 받더구나. 집단과 동지들을 위할줄 안다고말이야. 그런데 그가 밤에 김성순이한테는 왜 갔다는거냐?》

《김성순이한테 제 솜옷을 벗어 슬그머니 씌워주더구나야. 그저 그러는가부다 했는데 그 사내가 나타나니 김성순인 또 제 빵을 꺼내주더구나. 둘사이가 보통사이가 아니더라.》

《어마나! 그랬구나. 너 정말 봤니?》《보지 않구. 아무렴 못보구 말하겠니.》

천막의 반대쪽 구석에 앉아 궐기모임에 입고갈 옷을 꺼내입느라고 부산을 피우던 독고봉희가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있다가 눈이 동그래가지고 서영옥을 빤히 건너다보았다.

《언닌 밤새 자지 않고 그런것만 봤어요?》

천진한 놀라움이 비껴있는가 하면 어딘가 깔끔한데가 있는 말이였다.

서영옥이 조금 멋적어졌지만 아무렇지도 않은듯 봉희를 마주 건너다보았다.

《야, 넌 왜 언니들 말에 끼여들며 그러니?》

《남의 소리를 하니까 그러지요뭐. 솜옷을 벗어 동무를 씌워준게 뭐가 나빠요. 성순언니가 빵을 꺼내준것도 그렇지요뭐. 더구나 그 사람들은 밤에 대대를 위해서 자지 않구 기발대를 세우지 않았는가 말이예요.》

《됐다 됐어. 누가 뭐 나쁘다는 말을 했니. 그저 그렇다는 소린데. 언니들 말에 끼여들지 말아.》

《동무들, 아직 뭘하고있어요. 다 모였는데 동무들만 안나온다고 소대장동무가 야단이예요.》

마침 김성순이 천막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까만 주름치마에 청색솜옷을 입고 요즘 처녀들속에서 류행되기 시작하는 연한 하늘색모자가 달린 목수건을 두른 성순은 몸매도 쭉 빠졌지만 맑은 살결이며 이목구비가 하나같이 맺히게 들어앉아 얼굴이 더욱 고왔다. 그는 화장도 오래 하지 않는것 같은데 잘 다듬어세운 부채살같은 속눈섭이며 하얀 살색에 어울리게 한 연한 화장이며가 세련된 감을 주었다. 처녀들이라면 누구나 그의 아름다움에 시샘이 날 지경이였다.

김성순이 천막안에 들어서자 별스레 신선한 기운이 풍기였는데 그것은 바깥의 공기를 달고들어온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천성일수도 있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모두에게 베푸는 친절성때문이였다.

천막안에 있던 세 처녀는 언제 김성순에 대한 소리를 했던가 싶게 스스럼 없어졌다.

《에ㅡ난 정말 왜 이렇게 못생겼을가? 생긴게 이러니 나한텐 짝이 찾아들지도 않는구나!ㅡ》

서영옥이 손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쳐보며 일부러스럽게 장탄식을 하는 바람에 민옥숙이와 독고봉희가 키득키득 웃었다. 김성순이 바쁜 일이 있어 들어왔던지라 웃을 경황이 없이 나가자 뒤따라 화장도구들을 걷어넣고 민옥숙이도 천막안에서 나갔다. 두 처녀가 남았을 때 독고봉희가 새물거리며 말했다.

《언니가 왜 못생겼다고 그래요? 그만하면 언닌 생긴것때문에 고민할것은 없다고 봐요.》

《야야, 그만해라. 봉희나 저 성순이처럼만 곱게 생겼으면 걱정도 안하겠다.》

《마음이 기본이야요. 생긴것보다두 마음이 고우면 사랑도 찾아들고 행복이 깃드는것이야요.》

《어마나! 이것봐라!》

서영옥이 그러지 않아도 커다란 두눈을 동그라니 치뜨며 독고봉희를 세세히 바라보았다.

《너 아직 스무살도 안되는게 벌써 나한테 가르치려 드는구나! 그건 인생철학이냐 사랑철학이냐? 너 쬐꼬만게 벌써 좋아하는 총각이 있는게 아니냐?》

《언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정말 그런 소리하겠어요?》

《됐다, 됐어. 그저 그래보는 소리다. 그런데 너 그건 뭐냐? 꽃나무화분이 아니냐?》

손거울에 비치는 독고봉희를 보면서 서영옥이 물었다. 봉희는 옷을 들춰내면서 배낭속에서 꺼내놓은 보자기에 정히 싼것을 조심스럽게 머리맡에 옮겨놓고있었는데 화분이라는게 알리는것이였다.

《그래요. 동백꽃화분이예요.》

《에그머니나! 넌 여기가 뭐 고향집 아래목같은줄 알고 그런걸 다 가져왔니. 봐라. 오늘 아침두 밥이 잘 끓지 않아 선밥을 먹지 않았니. 물도 없구 땔감도 변변치 않은데서 맨날 떨면서 살아야겠는데 꽃나무를 어떻게 살린단 말이냐? 더구나 동백이란 더운데서 자라는것인가분데 이제 그게 얼어죽지 않나 봐라.》

《그래도 난 꽃을 피우고야말테야요.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을 피운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1소대장동지도 물과 불이 있으면 사람은 살수 있고 창조할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중앙지휘부에서 내려왔던 간부동지도 그게 좋은 말이라고 했지요. 보라요. 첫날은 우리가 한지에서 떨었지만 벌써 이런 천막안에서 살게 되지 않았어요. 이제 우리가 고생을 하면서 더 노력하면 따뜻한 병실에서 생활하며 일하게 될거예요. 대대장동지나 정치부지도원동지두 그러지 않았나요.》

《넌 정말 마음도 편하구나. 모든게 말처럼 됐으면 얼마나 좋겠니.》

천막자락이 들리면서 이번에는 김정옥소대장이 나타났다.

《동무네는 어째서 태평이예요. 빨리 나오라는 소리 못들었어요?》

얼굴이 까뭇하고 코언저리에 깨알같은 주근깨들이 박힌 정옥소대장의 입에서 맵짠 소리가 튀여나오는 바람에 독고봉희는 깜짝 놀라 자라목이 되였고 서영옥은 《음ㅡ》하는 토라진 소리를 내며 입을 삐죽해보이더니 별로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화장도구들을 거두었다. 김정옥은 그러거나말거나 휙 밖으로 사라졌다.

서영옥은 분발이 뽀얀 풍만한 얼굴을 손거울에 한번 더 비쳐보는것을 잊지 않았다.

천막에서 나오던 두 처녀는 저도 모르게 《어마나!》하고 놀랐다.

김정옥이 화를 낼만도 했다.

대대가 궐기모임장소로 떠나기 위해 정말로 모두 정렬한것이였다.

청산리로 간다는 생각에 옷들도 모두 화려하게 차려입고나와 대렬에 서서도 기분들이 둥 떠서 흥성거리던 수백의 눈길들이 뒤늦게야 나타나는 두 처녀에게로 쏠리였다.

그러지 않아도 기분들이 좋아서 무엇이든지 걸치지 못해 안달아하던 남자들이 얼굴들이 숯불처럼 빨개서 고개를 들지 못한채 달려오는 두 처녀를 향해 멋있다느니 그렇게 화장을 하니 소복단장만 하면 첫날색시같겠다느니 하며 시까슬러댔다. 와하하 터져오르는 웃음소리에 두 처녀는 대렬에 들어서서도 몸둘바를 몰라했다.

《보라요. 동무넨 가만 둬두면 한나절을 몸치장하겠어요? 저녁총화때 좀 보자요.》

김정옥소대장이 온곱지 않게 한마디 했다. 그러자 서영옥이 항의하듯 말했다.

《소대장동무, 좋게 말하면 안되겠어요? 누가 뭐 한나절동안 화장을 하겠대요.》

《그만하오, 동무들, 됐소.》

녀성소대에 생겨난 어정쩡한 분위기를 느낀 림철중대장이 대렬앞에 서있다가 말했다.

《녀자들이 화장이나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거야 좋은것이지. 전국의 청년들이 모이는데 우리 신암군대대 처녀들이 짝져서야 어디 되겠소. 그런데 규률은 지켜야 되겠소. 우린 군대와 같은 규률속에서 살며 일해야 할 돌격대원들이란 말이요.》

림철중대장은 대렬을 출발시키기에 앞서 이제 대대는 영광의 땅 청산리에 가게 된다는것과 가는 도중이나 더우기 모임장소에 가서 규률없는 행동을 하거나 무슨 사고라도 쳐서 대대의 명예를 훼손시켜서는 안되겠다고 강조하였다. 이어 최진혁대대장이 또 전체 대대앞에 나서서 규률있게 행동해야겠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대대장은 출발구령을 내리기에 앞서 대대를 쭉 훑어보았다. 식당근무성원들과 경비성원들을 떨구게 조직사업을 해놓았는데 갑자기 또 한명의 인원을 남겨놓아야 할 일이 제기된것이였다.

대대장은 모두들 청산리에 간다고 좋은 옷들을 갈아입고나와 잔뜩 기분이 들떠있는데 누구를 남으라고 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다가 림철중대의 대렬에서 별로 키가 커서 눈에 띄우는 서길산을 보자 그에게 믿음이 갔다. 그가 밤중에 자진하여 기발대도 세웠으며 그밖에 집단을 위하는 일에 몸을 아낄줄 모른다는데 생각이 미친것이였다. 《2중대 1소대 서길산동무는 떨어져야겠소.》

뜻밖의 소리에 서길산은 《왜 말입니까?》 하고 조금 불만스러운 소리로 물었다. 서길산은 옷차림에서도 유표해지려고 곤색바지에 주름을 세우고 고급구두를 반짝반짝 윤기가 나게 닦아 신었으며 기름을 발라서 잘 벗어넘긴 보기 좋게 굽실굽실한 머리칼이 눌리울가봐 모자도 조심스럽게 썼는데 대렬에서 떨어져야 한다니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대대장이 그러한 서길산의 속을 들여다본듯 부드럽게 달래였다.

《집단을 위해서 좀 희생해야겠소. 식당화구가 불이 잘 들지 않아 고쳐쌓아야겠는데 그러자면 남자로력이 한명 더 있어야겠단말이요. 궐기모임에는 누구나 다 가고싶어하는것이고 그러니 어찌겠소. 서길산동무가 좀 떨어져서 수고를 해야지.》

《집단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소리에 서길산은 제꺽 마음이 누긋해졌다.

집단을 위해 희생한다는거야 좋은 일이 아닌가. 더구나 대대장이 온 대대가 지켜보는가운데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서길산을 믿고 그런 지시를 한다고 생각하니 기꺼이 떨어지고싶어진것이였다.

《알겠습니다. 떨어지겠습니다.》

《여, 서길산이, 수고하게 됐는데.》

《정말 안됐구나야. 우리만 가게 되여서.》

《서길산이가 역시 괜찮아. 나같으면 버티겠는데 선뜻 떨어지겠다고 하거든.》

동무들이 미안해하며 곁에서 한마디씩 해주는 바람에 서길산은 즐겁다 못해 오히려 옹색할 지경이였다. 집단을 위하는 일이란 자그마한것이라도 이렇게 좋은것인가? 마치 내가 정말로 집단을 위해 큰 희생이라도 하는것처럼 그러지 않는가!

《길산동무, 같이 가지 못해 안됐어요.》

대대가 출발하기 위해 차에 오를 때 녀성소대의 김성순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안되긴 뭐. 성순동무, 잘 갔다오라구. 성순동문 청산리에 못가봤지?》

《그래서 동무와 같이 가고싶었는데.》

《누구든 남아서 화구를 쌓아야 할게 아니요. 그러니 내가 떨어져야지.》

응당 자기가 떨어져야 한다는듯이 서길산은 대범한 소리를 했다.

전투원들을 태운 자동차들이 부르릉거리며 출발했다. 달리는 자동차우에서 남자들은 인차 서길산의 존재쯤은 잊어버리고 왁작 떠들며 웃음보라를 날리였다. 녀성소대가 타고가는 자동차우에서 김성순이 해맑은 얼굴에 생긋이 웃음을 지어보이며 서길산을 향해 살그머니 손을 흔들었다. 서길산이 마주 손을 흔들며 잘 갔다오라고 소리쳤다. 많은 처녀들이 차우에 타고있지만 김성순의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두드러져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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