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피끓어라 청춘아 불타라 심장아

                  ㅡ 가요에서 ㅡ

 

( 제 4 회 )

 

제 1 편

 

4

 

김성순은 군인민병원 간호원으로 들어간지 반년도 못되여 고속도로건설장으로 탄원하여나왔다는 어린 처녀 독고봉희를 품안에 안고 잠이 들었다가 깨여났다. 추위에 떨다가 가까스로 잠들었댔는데 따뜻한 불기운에 깨여난것이였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고있는데 모닥불은 방금전까지 탔는지 이글거리는 잉걸불만 남아 후끈하게 열을 풍기였다. 가만 보니 누군가 장작을 가져다 덧불을 피운것 같았다. 아마도 남자들이 그랬겠지 하고 생각하며 다시 기분좋게 잠들어보려다가 자기들이 누군가의 솜옷을 덥고있다는것을 알았다. 결국 자기들이 따뜻함을 느끼며 잠들수 있었던것은 모닥불기운때문만이 아니였다.

김성순이 얼른 생각되는바가 있어 잉걸불빛에 그 솜옷을 비쳐보니 아닐세라 서길산의것이 분명했다. 팔소매에 구멍이 하나 뚫어진것이 첫눈에 띄였는데 서해갑문을 건너오기 전에 서길산이 점심을 먹기 위해 모여앉은 동무들을 위해 불을 피우다가 불티가 떨어진것도 모르고있는 통에 타버린 콩알만 한 구멍이였다. 김성순이 마침 그 자리에 있다가 주의해야지 새 솜옷이 그게 뭐냐고 퉁을 주었었다.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미욱할가. 제 솜옷을 벗어주면 자기는 어떻게 한다는것이람!)

김성순은 속으로 그렇게 토달거리면서도 가슴은 뭉클해왔다. 사나이의 따뜻한 정이 가슴에 슴배여드는것이였다.

성순은 솜옷을 돌려주려고 서길산이 있던 곳을 눈더듬했다.

엊저녁에 서길산이 분명 정철수와 함께 붙어있으면서 우스개소리랑 했는데 그 자리가 비여있었다. 어디 갔을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나타나겠지 하며 주위를 다시금 둘러보았다.

주위는 아직 어둠속에 잠겨있는데 하늘에선 별들이 반짝이였다. 그것들은 대지를 내려다보며 상냥하게 웃는것 같았다.

또글또글 여물은 별들을 보느라니 저 별들을 집에 계시는 부모님들도 보고계시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순은 인차 자기가 허망한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깨닫고 웃음이 나갔다. 부모님들은 지금쯤 잠을 자고계실것이였다. 더우기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하는 어머니는 군내살림살이때문에 바삐 돌아가다가 늦어들어와서는 잠자리에 들기 바쁘게 깊은 잠에 들군 하는것이다.

성순은 별스레 부모님들이 눈앞에 어려왔다. 《성순아, 너 꽤 견디여내겠니? 거기 가면 어려운게 한두가지가 아닐게다.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안돼!》하던 아버지의 걱정어린 다심한 말이며 《원, 아버지들이란 다 그런가? 얘, 성순아, 너 가서 남들의 짐이 되여선 안돼! 넌 대학공부까지 했구 인젠 다 자라지 않았느냐. 어렵고 힘들수록 남들보다 흙 한삽이라도 더 뜨고 아침에도 남먼저 일어나 정돈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알겠니?》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전에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딸을 위하는 아버지의 사랑은 걱정과 우려와 어떤 경우에도 성을 낼줄 모르는 너그러움과 그리고 세심한 손길에 있다면 어머니의 사랑은 엄격한 요구와 타협이나 융화를 모르는 원칙적인 교양에 있었다.

아버지의 요구에 의하여 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공부를 한 딸을 두고 어머니 현이순이로서는 하나 마음에 걸리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 딸한테 군사복무를 시키지 못한것이였다. 자신이 인민군대 녀성지휘관으로 복무한 현이순은 사람이란 반드시 군대생활을 해봐야 어렵고 힘든 고비에 부딪쳐도 제 힘으로 뚫고나갈줄 아는 강의성과 생활에 적응하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미국놈들이 우리 나라를 먹어보겠다고 그 어느때보다도 기승을 부리고있는 때가 아닌가. 저애들 세대는 그놈들과 결판을 내야 할 싸움에 나서야 하겠는데 온실의 화초처럼 그저 곱게만 자란다면 어디에다 쓸것이며 도대체 저애들 앞날의 운명은 어찌될것인가.

성순은 그러한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안다. 딸에 대한 엄격한 요구에 바로 어머니의 깊고도 뜨거운 사랑이 있다는것을,

성순은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어머니와 속삭이였다.

(어머니, 걱정말아요. 이 딸은 온실안의 화초가 되지는 않을거예요. 이 고속도로건설장에서 남부끄럽지 않게 일할게요. 이 딸이 영웅이 될지 알겠어요.)

성순은 《에구, 어디 두고보자꾸나!》하며 웃는 어머니의 해볕에 까맣게 탄 커다란 얼굴을 그려보며 생긋이 웃었다.

잉걸불이 사그라져가면서 또다시 주위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독고봉희는 허리를 꼬부리며 성순이쪽으로 파고들었다. 뭐라고 옹알옹알 잠꼬대를 했는데 《엄마》라는 한마디만이 알리였다. 봉희는 아마도 잠결에 자기가 엄마품에 안겨있는줄 아는 모양이였다. 성순은 웃음이 나오려는것을 참으며 그를 꼭 안았다.

어찌된 일인지 서길산은 나타날줄 몰랐다. 솜옷은 벗어서 우리한테 씌워주고 이 추운데 어디 가서 무얼하고있담. 한식경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정철수동무를 깨워서 함께 찾아봐야 하지 않을가.

김성순이 그렇게 생각하고있을 때 가까이에서 발자국소리가 났다. 살그머니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서길산이 반아름쯤 되는 장작을 안고 걸어왔다.

서길산은 사그라져가는 불우에 장작가치를 올려놓으려다가 자기를 말끄러미 바라보는 성순을 보았다.

《왜 자지 않아, 춥지?》

따뜻한 관심이 목소리에 어려있었다.

《어디 갔댔어요, 솜옷도 입지 않고, 그 장작은 뭐예요?》

《타왔지. 대대장동지가 불무지들을 돌아보다가 나를 보더니 매 소대들에 장작을 한아름씩 더 나누어주라고 그러지 않겠어. 그래서 우리 소대몫으로 가져온거요.》

《어마나! 그 장작이야 식당용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성순은 믿어지지 않는다는듯 말하다가 서길산한테서 이상한 냄새를 느끼고 눈이 뎅그래졌다.

《그런데 동문 어디 가서 술을 마시지 않았어요?》

《쉬, 조용조용 말하라구. 동무들이 깨여나겠소.》

《술마셨지요?》

《술은 무슨 술을 마셨다구그래. 박정수라는 친구가 관절염에 쓰겠다구 가져온 약물을 조금 주지 않아. 그게 알콜이 들어간것인데 딱 한모금만 마셨더니 추운걸 모르겠어.》

김성순은 그가 어디 가서 동무들과 모여앉아 술을 마신게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으나 그래도 알콜이 들어있는 약물을 마셨다는게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딱히 단정할수가 없어 애매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덮고있던 그의 솜옷을 내주었다.

《입어요.》

《난 춥지 않다고 하지 않소. 성순이나 감기들지 말라구.》

성순은 그러는 서길산에게 억지로 솜옷을 입게 하고 배낭속을 뒤지여 밀빵 한개를 꺼내주었다.

《이거 빵이군!》

서길산이 기분이 좋아서 대뜸 한입 베여넣고 우물거리다가 중얼거리였다.

《내 분쇄기때문에 성순동무가 야단이겠군.》

《그건 무슨 소리예요? 내가 왜 야단나요?》

《내 분쇄기는 아무리 많이 먹어두 반나절이나 되면 다 분쇄해치워서 창자가 텅빈 고간이 되여버리니까. 그러니 성순인 이담에 나때문에 늘쌍 굶어야 할거야.》

《누가 듣겠어요. 실없는 소릴 아무데서나. 어서 이걸 더 들기나 해요.》

《됐어. 그건 넣어두라구. 그러다간 성순이 빵이 나때문에 들장나겠어. 모닥불이나 좀 살리라구. 모두들 얼지 않게스리.》

서길산은 비여있는 자기 자리로 갔다. 눈을 좀 붙이려는가 했는데 잘 생각은 하지 않고 정철수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정철수는 깨여났으나 일어날념은 하지 않으면서 왜 그러는가고 잠내 풍기는 목소리로 불만스럽게 물었다. 그러는 정철수의 귀에 입을 바투 가져다대고 서길산이 뭐라고 불어넣었다. 정철수는 뭐라고 설깬 소리로 웅얼거리며 일어났다.

두사람은 인차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성순은 의혹이 잔뜩 실린 눈으로 그들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다가 따라가볼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밤중에 곁의 동무들 모르게 사라지는것을 보니 그들의 행동이 어딘가 떳떳치 못한것 같은 생각이 드는것이였다.하지만 남자들이 무슨 일을 보는줄 알고 처녀가 무작정 따라간단 말인가. 하여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가 모닥불을 되살려놓아 시뻘건 불길이 너울거리며 주위를 훤하게 밝힐 때까지도 두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온 대대가 추위속에서 잠을 자고있는 때에 잠잘 생각은 하지 않고 도깨비들처럼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수상하기만 했다.

성순은 끝내 더 기다려내지 못하고 살그머니 일어났다. 그는 독고봉희가 추워하지 않게 솜옷자락을 꼼꼼히 여며주고나서 두사람이 사라진 쪽을 방향잡아 어둠속을 걸어갔다. 논두렁이 가로질러간줄을 모르고 걸어가다가 그만 언땅우에 엎어지기도 했다. 손바닥이며 무릎마디가 얼얼해오는것을 참으며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데 마침 가까운 곳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데 분명 서길산과 정철수의 목소리였다. 무엇을 하는지 조금 지나서 떵떵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김성순은 그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곳은 주변에서는 제일 높아보이는 언덕우였다.

두사람은 가까이로 김성순이 다가오는것도 느끼지 못하고 땅을 파고있었다. 정철수가 지켜보고 서길산이 곡괭이질을 했다. 김성순이 아무리 생각해봐야 어쩌자고 그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나쁜 일을 하자고 그러는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의 행동이 어찌보면 감춰놓은 보물이라도 찾는 사람들처럼 보이여 성순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내여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두 사나이가 돌아보았다.

《성순동무 아니요? 난 또 누구라구. 아니 어떻게 왔어?》

정철수가 먼저 알아보고 물었다.

그러는데 곡괭이질을 하던 서길산이 《됐어. 성순동무두 함께 하자구.》하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선 무얼 한다는거예요?》

《기발대를 세우자고 그래.》

《기발대요?》

《돌격대가 왔는데 기발이 날려야 할게 아니요.》

의아해하는 김성순을 향해 씩 웃어보이며 정철수가 껴들었다.

《어마나!》

김성순은 그제서야 깨도가 되여 환성을 올렸다.

정말 그렇다. 아직은 병실도 없어 한지에서 첫 밤을 보내지만 어쨌든 돌격대가 배낭을 풀지 않았는가, 휘날리는 기발이 없다면 어찌 돌격대라 하랴.

《그런데 어떻게 동무들끼리 기발대 세울 생각을 다 했어요? 아침이면 대대에서 다 조직사업을 할게 아니예요.》

《그건 이 서〈대장〉이 생각해낸거라구. 아침에 동무들이 깨여나 휘날리는 대대기발을 보면 좋아할거라고 생각해서말이지.》

정철수의 말은 사실이였다.

엊저녁에 최진혁대대장이 오응세소대장을 만나 대대병실이 전개될 자리를 말해주며 아침에 일어나면 대대기발을 띄우라고 지시했다. 그때 그 말을 가까이에 있던 서길산이 들었다. 그는 밤에 일어나 장작을 사업해가지고 오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꼬부리고 잠을 자고싶은 생각도 없는데 까짓거 운동이나 해보자, 아침에 기발대를 세울거야 있나 하고 서길산은 생각했다. 하여 그는 성순이에게는 잠을 더 자라고 하고는 정철수만 깨워가지고 나왔던것이였다.

김성순은 사기가 났다.

《그러니 아침에 동무들이 깨여나면 이 언덕에서 휘날리는 대대기발을 볼수 있겠군요. 정말 좋은 생각을 했어요!》

《그건 서〈대장〉을 추어올리는 소린가?》

《아니, 동문 정말, 다예요?》

김성순이 어둠속에서 악의없는 말을 내쏘는 바람에 정철수는 좋아라고 웃어댔다.

그들 세사람은 어려서부터 읍거리의 한동네에서 살며 소꿉놀이도 함께 하던 사이였다. 그래서 정철수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서길산네와 김성순네 두집의 류다른 관계를 잘 아는것이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 세사람은 각기 자기 초소로 헤여져갔지만 한동네에서 사는터에 자주 만나군 했으며 소시적이나 다름없이 깨끗한 우정관계를 유지하고있었다. 김성순이와 서길산의 관계는 두집의 부모들대에서부터 맺어진 친척보다 더 밭은 관계로 하여 소꿉시절부터 《오빠》,《동생》하는 사이였다면 서길산이와 정철수의 관계는 개구쟁이시절부터 인민학교(당시)시절은 물론 중학교 전기간에도 떨어지지 않고 늘 붙어다닌 딱친구의 관계였다. 그들 둘은 남의 집 울타리안에 새여들어가 몰래 앵두나 추리같은것을 따내오는것과 같은 나쁜 장난도 함께 했으며 그런가 하면 길을 가는 알지 못하는 할머니를 도와 착실히 길을 안내해주든가 혼자 사는 녀인네 염소를 찾아주는것 같은 좋은 일도 같이했다.

소시적에 그들 두사람의 관계에서는 서길산이 항용 대장격이 되였었다. 체격을 봐도 그래 힘내기를 해봐도 그래 두사람중 누구도 뒤지지 않아 승부를 잘 가려내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봐야 모든 일에서는 서길산이 주동이 되고 정철수는 그의 결심을 따르는 《부하》격이 되였다.

그렇다고 해서 정철수는 자존심도 없는 물렁탕은 결코 아니였다. 정철수는 천성적으로 너그러운 아이였다. 그는 서길산의 우정에 충실하고 친구들을 위해 자기를 아낄줄 모르는 기질을 좋아했다. 그래서 승벽이 남달리 센 서길산의 주장을 따르군 했는데 실은 그를 두고 서《대장》이라고 한것도 서길산이 먼저 한 말이 아니라 정철수가 붙여준것이였다.

물론 그 모든것은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일들이였다. 지금은 모두 어엿한 청년들로 성장하여 자기나름대로의 리상을 안고 인생길을 걸어가고있는것이였다.

그들은 곡괭이질을 하고 정대로 뚫고 하면서 한시간은 남짓하게 언땅과 씨름을 하고서야 기발대를 든든히 박아넣을만 한 구뎅이를 팠다. 거기에 정치부대대장이 오응세소대장에게 맡겨두었던 스뎅으로 멋있게 만든 기발대를 세우고 《신암대대》라고 새겨넣은 붉은 기발을 게양했다.

좋은 일이란 그것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것을 한 주인들의 마음을 깨끗하고 즐겁게 해주며 긍지와 보람을 가슴뿌듯이 느끼게 해주는 법이다.

젊은이들은 례의 그런 감정으로 하여 눈가녁들이 축축히 젖어들어가지고 오래도록 기발을 올려다보면서 그 자리에 굳어져 서있었다. 조금 있으면 날이 밝을것이였다. 아직은 컴컴한 하늘을 배경으로 기발은 펄펄 날리였다.

그들은 서로서로 여기 보람찬 전투장에 청춘의 힘과 열정과 땀을 아낌없이 바쳐 자기들을 바래준 고향의 품으로 떳떳이 돌아가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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