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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피끓어라 청춘아 불타라 심장아 ㅡ 가요에서 ㅡ
( 제 2 회 )
제 1 편
2
《젠장,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는가? 이게 어떻게 된거야? 아직 캄캄해.》 《바쁜가, 광산친구. 춥다고 생각하면 더 견디기 힘든 법이야. 뜨끈한 단고기국으로 땀을 내고 뜨뜻한 아래목에 누워있다고 생각하게나. 그러면 한결 추위가 덜해질거야.》 《단고기국같은 소리는 하지나 말라구. 이거 배안에서 꼬르륵소리가 나는데 무슨 단고기국소리야. 낮에 도중식사를 먹다가 조금 남겨놓았을걸 다 요정냈단 말이야. 대대후방참모만을 믿고 그렇게 한게 잘못이지.》 《후방참모인들 별수 있겠어. 인차 뒤따라온다는 후방차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듣자니 갑문다리를 건너오다가 또 고장이 났다나봐. 그러니 의견을 부리면 안된단 말이야. 불평분자같이.》 《불평은 무슨 불평이야. 배가 고프니까 그러는것이지. 배고픈것하구는 타협을 못한다지 않아. 에이, 사실은 말이야 이놈의 동장군이 너무 기승을 부리니까 어디 일어나겠어. 오줌이 마려운데 추워서 일어나긴 싫단 말이야.》 어둠속에서 두 친구가 주고받는 싱갱이를 들으며 꼬부리고 둘러앉아 추위에 떨던 남자들속에서 키득키득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여, 정철수, 그렇게 참기만 하다가는 밑천 놓고말아. 그게 터지면 어쩔려구 그래?》 한수 더 들어간 롱담으로 정철수를 시까슬러대는 사람은 도수높은 안경을 끼고 자동차우에 앉아오면서 떠들썩하는 오락회판에는 휩쓸리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는 무엇이나를 두고 《히야!》, 《히야!》하고 새삼스럽다고 할만큼 감탄하기만 해서 좀 괴이하거나 모자라는 인간처럼 보이던 광산청년 한시호였다. 그의 우스개소리의 뜻을 인차 깨닫지 못한 처녀들이 잠자코 있을 때 남자들속에서 《와하하》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 소리는 어둠에 잠긴 벌판으로 퍼져갔다. 그제서야 롱말을 깨달은듯 몇몇 처녀들이 키득거리였다. 대다수 처녀들은 웃음을 참느라고 입들을 싸쥐였다. 남자들의 웃음소리는 얼마 못가서 잦아들었다. 밤은 깊어갔다. 멀리 대동강쪽에서 소슬한 바람이 불어왔다. 청년들은 추위를 어떻게 해서나 막아보려고 솜옷속으로 몸을 옹송그렸지만 형체없는 찬 기운은 어느 짬으로든지 새여들어와 살을 물어뜯었다. 모두들 빨리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날이 밝으면 해가 뜰것이고 해빛이 비치면 동장군이라는 놈도 얼마간은 기운이 진해버릴것이였다. 그들 신암군의 300명 청년돌격대원들은 두시간전에 여기로 왔다. 그때는 벌써 캄캄하게 어두웠을 때였다. 그들이 군내일군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자동차우에 올라 신암읍을 떠난것은 오전 10시경이였다. 계획대로 되였으면 해지기 전에 자기들이 맡은 공사구역에 도착하여 천막도 쳐서 림시잠자리도 마련하고 또 식당도 전개했을것이였다. 그런데 앞서오던 후방차가 사고를 쳤다. 그것은 전혀 뜻밖의 사고였다. 은률읍을 못미쳐 고개길을 오르다가 운전사가 측면경사를 이룬 얼음강판우에서 방향을 유지할수 없어 미끄러진것이였다. 자동차는 다행히 경사지아래 절벽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으나 빙그르르 돌면서 길옆의 바위에 이마를 들이받았다. 그바람에 랭각관이 터져나가고 발동기가 힘을 받아 일부 도관들이 파손되였다. 그 일은 뒤차에 타고오던 사람들의 눈앞을 아찔하게 했다. 자동차가 바위에 걸렸으니망정이지 절벽아래로 굴러떨어졌으면 어쩔번 했는가. 운전사와 그 안에 함께 타고오던 후방참모는 살아남지 못했을것이고 대대의 300명 전투원들을 위해 싣고오던 후방물자들은 박산나는 차와 함께 짓뭉개져서 날아나버렸을것이였다. 《여, 후방참모! 동무가 앉아온다는게 차를 이 꼴로 만든단 말이요? 전투를 시작하기도전에 대대를 무얼로 만들자는거요?》 대대장 최진혁이 얼굴이 뻘개서 소리질렀으나 후방참모 리선명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낯이 꺼멓게 질려 와들와들 떨기만 했다. 그에게는 《대대를 무얼로 만들자는거요.》하는 말이 머리속에 들어갈 겨를이 없었다. 자동차가 얼음에 미끄러져 모로 돌아가던 순간에 아찔한 낭떠러지가 내려다보이던 그때의 공포에서 깨여나지 못한것이였다. 원래는 얼음강판이 나타났을 때 시간을 얼마간 지체하더라도 도끼로 까내여 길을 열던가 모래나 흙이라도 날라다 뿌리고 안전하게 통과했어야 했다. 그런데 운전사가 요행수를 바라고 지나가다가 끝내 일을 친것이였다. 리선명후방참모가 지휘관으로서 제때에 결심채택을 하고 안전대책을 세운 다음 통과하게 했더라면 사고는 미리 막았을수 있는것이였다. 대대는 그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을 그곳에서 지체했다. 남자들이 달라붙어 겨우 자동차를 바로잡아놓았으나 고장난 부분을 수리하기 전에는 후방차가 움직일수 없게 되여 결국은 화목을 싣고가던 정남철의 뜨락또르와 인원을 태우고 가던 자동차들에 식량이며 화식기재들을 조금씩 덜어싣고 먼저 떠났다. 운전사에게 인원을 한명 떼주어 고장퇴치를 한 다음 빨리 뒤따라오라는 지시를 주고 후방참모 리선명은 정남철의 뜨락또르에 옮겨탔다. 그가 먼저 가서 식당을 전개해야 다음날 아침부터 식사보장을 할수 있는것이였다. 대대가 그렇게 시간을 지체한통에 남포시내에 들어섰을 때에는 벌써 사위가 어둑시근해졌다. 거기서 간선도로를 타고 한참이나 달리였는데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완전히 캄캄해졌다. 청년들은 고향의 읍거리를 떠나올 때까지만 하여도 당장 세상을 깜짝 놀래울 굉장한 위훈을 세울듯 비상한 각오와 끓어오르는 열정을 안고 노래를 부르고 시도 읊으면서 떠들썩했는데 도중에 고생을 하여 지쳐버린데다가 황량한 벌 한가운데 내리자 주눅이 들어버린듯 했다. 모두들 오늘밤은 영낙없이 한지에서 떨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으쓱해했다. 천막들을 실은 후방차가 인차 고장퇴치를 하고 따라선다고 했지만 그게 말대로는 되지 않을것이며 어쩌면 가량없이 늦어질수도 있다는것을 누구도 모르지 않는것이였다. 《여기가 어데야?》 《캄캄나라로군.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걸 보니 무인지경이야.》 《오늘 저녁은 굶었구나!》 《무슨 굶는 타령이야. 이 한지에서 동태귀신이 되겠는데.》 《그래두 서길산이 저 친구한테는 이 추위속에서 떨 걱정보다는 저녁 굶을 걱정이 더 클거야. 낮에 저녁것까지 다 먹어치운데다가 저 친구 위주머니는 자루만 하거던. 그런데 정말이지 야단은 야단이군. 가까이에 마을이라도 있었으면 하루반쯤 신세지자고 할수 있잖아.》 《여, 박정수, 무슨 소리야. 떠나올 때 군당책임비서동지가 강조하던거 잊었어? 지금은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있는 시기이다, 어느 집에서나 다 어려움이 크다, 그러니 동무들은 거기 가서 인민들에게 사소한 페라도 끼쳐서는 안된다, 이러지 않았어.》 《그 말이 옳아. 우린 호강하러 온게 아니지.》 《조용하라구, 쉬! 이게 무슨 소리야?》 누군가의 말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귀를 강구었다. 어디선가 휘이ㅡ 휘이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두려운 눈길로 두릿거리였으나 어둠때문에 한치의 앞도 내다보이지 않았다. 어둠속 어딘가에서 야생말떼들이 내달리는 소리같기도 하고 무슨 비명소리같기도 한 무시무시한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승냥이떼가 지나가는게 아니야? 구월산의 복작노루가 대동강을 건너왔다가 그것들한테 덮치우고있는지도 몰라.》 《승냥이떼는 무슨 승냥이떼구 복작노루는 무슨 복작노루야. 저건 겨울귀신이 시샘이 나서 그러는 소리야. 우릴 어째볼가 해서 위협해보는 소리일수도 있지.》 《겨울귀신이란건 뭐구 겨울귀신이 시샘을 한다는건 무슨 소리야요?》 《어랍쇼, 처녀동무… 아, 난 또 누구라구. 군인민병원 간호원 독고봉희로구나. 맞지? 난말이야, 정철수라고 하지. 이제부터는 나를 정철수오빠라고 부르란 말이야. 그건 그렇구. 겨울귀신에 대한 말 못들었어? 그런 이야기가 있지. 그놈은 추위를 몰고다니면서 별 못된짓을 다하지. 세상이 모두 자기때문에 벌벌 떨기를 바란다니까. 그놈은 심보가 고약한데다가 둘레가 십리나 되는 굉장히 큰 입으로 추위를 내뿜어 세상을 얼음천지로 만든단말이야.》 《어마나! 꽝포쟁이!》 처녀는 어둠속에서 도툼한 입을 벌리며 깔깔 좋아라 웃어댔다. 《쳇 꽝포가 아니야. 봉희도 주의하라구. 그놈과 맞설 잡도리를 단단히 하지 않았다간 랭동사람 되기 십상이야.》 《여, 처녀를 작작 놀래우라구. 우린 랭동사람이 되자구 여기 온게 아니라 생의 리정표를 세우러 왔단 말이야. 우리들의 한생의 목표를 가리켜줄 리정표를 말이야.》 《여, 서길산의 머리에 어떻게 그런 좋은 말이 다 떠올랐어? 어느 책에서 외워둔거야? 그 참 좋은 말인데. 생의 리정표라…》 가까이에 있던 리영국이 그 말을 기억속에 새겨넣으려는듯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외워보았다. 이때 어둠속에서 《소대장동무들, 모이시오!》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림철중대장의 목소리였다. 10분쯤 지나서 모임에 참가했던 오응세소대장이 돌아와서 소대를 모엿시켰다. 《동무들, 오늘밤은 야외에서 자야겠소. 후방차는 고장을 퇴치하고 출발했댔는데 갑문쪽에서 랭각관이 얼어터졌다오. 다른 대대사람들이 오다가 발견하고 련락해준거요. 그러니 천막이 언제 도착할런지 알수 없소. 배낭속에 얼마간씩 남겨둔것이 있을테니 불을 피우고 요기들을 해야겠소. 장작은 뜨락또르에다 싣고온게 있다고 하지만 많이 피울건 없소. 절약해야 하오. 아침밥을 해먹어야 하니까. 자, 그리 알고 극복합시다.》 모두들 으쓸해서 헤여졌다. 《천막도 없고 저녁밥도 없다? 이거야 관료주의가 아니야?》 《자자, 려찬호, 무슨 불만이야? 동무들, 극복합시다.》 처녀들이 헤여질념을 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수군거리고있을 때 누군가 려찬호란 애숭이청년에게 퉁을 주며 방금전에 한 소대장의 말을 외워댔는데 실상 그것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밤으로 하여 으쓸해지는 자신을 달래여보려고 하는 말이였다. 그런데 그 말에 처녀들은 무거운 기분을 얼마간 날려버리였다. 《자, 극복합시다.》 서영옥이라는 말괄랭이같은 처녀가 그 말을 또 노래부르듯이 길게 받아외워서 이번에는 정말로 짝짜그르 웃음이 터졌다. 저마다 《자, 극복합시다.》를 한마디씩 외워대며 헤쳐갔는데 오응세소대장이 《넨장!》하고 한마디 두덜댔다. 소대장인 자기를 놀림가마리로 만들었다는 소리인데 그러면서도 어둠때문에 누가 볼수 없는지라 소리없이 싱긋 웃었다. 어드랬든 사람들이 움직이고있으며 분위기도 밝아지지 않았는가. 자기가 놀림가마리로 된게 아니라 자기의 그 말이 전투원들의 심장에 불을 달아주었다는것을 그는 확신하는것이였다. 《뭐니뭐니 해두 서길산형님이 야단은 야단이구만요.》 《내가 왜 야단이야?》 《배는 벌써 사흘굶은 승냥이배가 되였겠는데 고간은 텅텅 비여버렸으니 말이야요.》 낮에 로상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배낭속의 도중식사꾸레미를 들장내여버린 서길산을 두고 허광식이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여, 허광식이. 걱정할게 뭐가 있어? 곁에 혁명동지들이 수두룩한데 아무려문 이 길산형님이 저녁 굶을 걱정하겠어?》 《렴치두 곰의 발바닥이구나. 벌써부터 동무들 신세질 생각부터 하는가. 여, 허광식동무, 저 서〈대장〉이 혼나보게 밥을 나눠주지 말라구.》 서길산의 비위살좋은 말을 시까스르는 정철수의 말이였다. 정철수가 그러면서 장작을 부리워놓은 곳으로 슬렁슬렁 걸어가는데 김명식이라고 낮에 차우에서 통성한 제대군인출신의 청년이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는 가까이에서 걸어가는 서길산을 가리켰다. 《여, 서〈대장〉이라는건 무슨 소리요? 저 친구 무슨 대장이요?》 정철수는 피씩 웃었다. 《대장은 무슨 대장이겠소. 서꺽다리지. 광산에서 서꺽다리라면 모르는 사람이 있는줄 아오. 대장이야 자칭 대장이지. 자기는 군대에 들어가면 못해두 상장이나 대장쯤은 될수 있다는거요. 뭐 키만 크면 대장인가.》 김명식이 싱긋하며 습관적으로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재미있는 친군데!》 《저 친구 승벽이 세구 자존심이 보통아니요. 그렇다구 그 친구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진 마오. 좋은 친구요. 인정이 있고 동무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기를 아낄줄 모르거던.》 김명식이 또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소?》 《자자, 빨리, 빨리들 움직이라구.》 장작을 한아름 날라오며 오응세소대장이 다그어댔다. 오응세네 소대는 바람을 피하느라고 나지막한 둔덕아래 얼어붙은 논판에 모닥불을 피웠다. 불길이 너울거리며 주위에 웅크리고있던 어둠을 조금 밀어냈다. 소대는 모닥불주위에 둘러앉아 낮에 남겨놓은 음식들을 꺼내놓고 나누어먹었다. 스무명이 넘는 소대원들이 모여앉기에는 모닥불은 너무나도 작았다. 그래도 그 불이 젊은이들의 심장을 덥혀주기에는 족했다. 모닥불이 크고작고야 무슨 문제랴. 젊은이들의 가슴속에는 조국이 가장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는 시기에 시대의 부름에 호응하여 강성대국건설의 대통로를 닦기 위해 달려왔다는 크나큰 긍지감과 자부심이 자리잡고있는것이였다. 그리하여 함께 나누는 언밥 한덩이가 그렇게 달고 모닥불열기가 그렇게도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는것이였다. 《동무들, 한가지 제기할것이 있소. 이건 처녀들에 대한 문제요.》 간단히 요기를 하고 모닥불두리에 앉아 웃고 떠들 때 어디론가 자리를 떴던 서길산이 동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처녀들에 대한 문제라는 소리에 모두들 관심이 가서 무슨 제긴가 어서 말하라고 야단하였다. 《이자 보니까말이요. 처녀동무들이 자리잡은 장소란게 바람받이인데다가 모닥불을 피웠다는게 어떻게 했는지 연기만 자욱하고 불길은 보이지 않아 눈물만 짜는것 같더란말이요. 그런데 우린 언덕아래에 자리를 잡은터에 잠풍한데다가 이렇게 불이 잘 일거던.》 《그러니 어쩌자는거야?》누군가 물었다. 《우리야 사내들이 아니야. 그러니 녀성소대와 자리를 바꾸잔말이야.》 《거참 좋은 생각을 했는데. 서꺽다리,》 《모닥불을 바꾸잔말이지. 불을 바꾼다는 소린 첨 듣는데.》 《그렇게 바꾸면 우린 바람받이에서 온밤 덜덜 떨어야 해요?》 《려찬호, 불을 바꾸는데 의견이 있나?》 《누가 의견이 있대요 뭐. 그저 그렇다는건데.》 《좋아, 바꾸자구. 처녀들을 위해주는거야 좋은거지.》 《녀성옹호투사가 나왔구나.》 《사내들 값을 해야 할게 아니야.》 모두들 떠들썩하며 자리에서 일어들났다. 실실 피여오르다가 바람에 향방없이 날리는 연기들을 피하느라 얼굴을 싸쥐며 이리 기울 저리 기울하고있던 녀성소대 처녀들은 우르르 밀려오는 남자들을 보자 웬일인가 해서 눈들이 둥그래졌다. 모닥불을 바꾸자는 소리를 듣고서는 《어마나!》하고 소리질렀다. 그 제의가 고맙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해서 서로 마주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는데 녀성소대장 김정옥이 《고마와요. 남성동지들, 하지만 남성동지들한테 바람받이자리를 내주고 우리 처녀들만 좋은 자리에 내려앉아 춥지 않게 잘수야 없지 않아요.》하고 말했다. 남자들 덕분에 추위를 조금이라도 덜게 되였다고 생각하던 몇몇 처녀들은 김정옥의 말에 실망하는 낯색을 하며 한숨을 쉬는것 같았다. 남자들의 호의를 거절하는 자기네 소대장을 두고 야속하게 생각하는것이였다. 그러는데 한 처녀가 은쟁반을 굴리는것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이렇게 하면 어때요? 소대장동지, 장작도 많지 못한데 모닥불을 저저마다 피울게 뭐 있어요? 모닥불을 한군데다 합치고 두 소대가 함께 모여앉잔말이예요.》 김성순이였다. 옷공장 재단작업반 초급단체비서로 있다가 돌격대에 뽑혀온 그 처녀는 곱게 생긴데다 목소리가 류달리 맑고 손풍금까지 잘 타서 신암군대대가 무어져 여기로 떠나오던 그때부터 남자들의 눈길을 받아온 처녀였다. 《불을 합친다? 합치는게 바꾸는거보다 훨씬 좋지. 야, 거 녀자들의 머리가 더 잘 도는데!》 《그러게말이야. 서길산이 넌 안되겠어. 옷공장 손풍금수처녀동무한테 절해야겠어.》 《그래두 시작은 서꺽다리가 하지 않았어.》 《자, 불을 합치자구.》 김성순의 제의는 당장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하여 녀자들은 남성소대의 모닥불가로 자리를 옮겨왔는데 한가지 난처한 일이 생기였다. 두개 소대가 함께 둘러앉기에는 모닥불이 너무나도 작은것이였다. 그렇다고 장작을 더 넣어 불땀을 크게 할수도 없었다. 결국 서로 자리를 양보하는 유쾌한 싱갱이가 벌어지는 끝에 처녀들이 모닥불가까이에 둘러앉고 남자들은 녀자들의 원밖에 둘러앉아 밤을 보내기로 했다. 처녀들은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의 열기를 자기들만 다 차지하는게 량심없는 일같아 서슴어졌으나 끝내 그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자존심이 센 남자들이 지려고 하지 않기때문이였다. 처녀들은 될수록 남자들에게 모닥불의 열기가 미치게 하려고 마음들을 썼다. 좋은 밤이였다. 대동강쪽에서는 여전히 동장군이 휘이ㅡ 휘이ㅡ 괴상한 소리를 질러댔으나 젊은이들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불찌를 튕기며 기세좋게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모두들 마음들이 너우룩해졌다. 어깨들을 바싹 붙이고앉아 눈들이 초롱초롱해서 잠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수높은 안경을 걸친 한시호가 그 무슨 신기한것이라도 보는듯이 타오르는 불길을 희한해서 바라보다가 《히야! 불이 좋구나!》하고 느닷없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처녀들이 캐득캐득 조심스럽게 웃는데 바로 그때 오응세가 학자연한 말을 했다. 《인간은 물과 불이 있으면 살수 있고 창조할수 있어. 생명은 물에서부터 기원되였고 인간은 불을 리용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진화를 시작했다고 할수 있지 않아.》 누구에게라 없이 하는 그 말에 젊은이들은 긍지감비슷한것을 느끼였다. 그런데 여직껏 동무들의 이야기판에 끼여들지 않던 리영국이 한숨을 내뱉듯 한마디 무거운 소리를 했다. 《한데 바로 그 물과 불이 당장은 문제야.》 생각을 깊이 하다가 하는 소리였다. 리영국은 대대안전참모여서 원래는 대대지휘부의 모닥불에 가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한직장에서 온 동무들을 따라 오응세소대에 와붙은것이였다. 리영국의 한마디 말은 잔잔한 물우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은 비로소 자기들앞에 닥쳐든 시련과 난관을 실감하는것이였다. 서길산은 문득 여기로 떠나올 때 류종수부장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동무들, 거기 가면 얼어붙은 허허벌판이요. 주변에선 땔나무 한가치 얻을수 없는데다가 먹을 물조차 멀리서 길어다 써야 하오. 우린 바로 그곳에다 대대의 살림을 펴고 세상에서 제일 멋진 대통로를 닦아야 한단 말이요!》 서길산이 무거운 생각에 잠겨있을 때 오응세소대장이 어딘가 결리는데라도 있는듯 쿵쿵 기침소리를 내고나서 말했다. 《자, 동무들. 눈들을 조금이라도 붙이자구. 래일부터는 일을 해야 한단 말이요.》 젊은이들은 그 말을 못들은듯 너울거리는 불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떠나온 고향과 자기들을 바래주던 정다운 사람들에 대하여 그리고 이제 펼쳐질 미지의 생활에 대하여 생각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피곤을 못이겨 하나둘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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