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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편 소 설
최성진, 최광일
피끓어라 청춘아 불타라 심장아 ㅡ 가요에서 ㅡ
( 제 1 회 )
제 1 편
그때 우리는 명예를 위해 오지 않았다
1
해빛은 눈부시였다. 평양의 거리들은 환희와 희망을 안겨주는 그 빛에 싸여 고르롭게 숨쉬고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무궤도전차들과 승용차들의 소리, 인도로우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발자국소리… 그것은 수도의 안정된 숨결이였다. 어찌보면 거창한 사변들로 충만된 력사를 창조해가는 우리 조국의 심장인 평양이라고 볼 때 거리들이 너무나도 단조롭고 조용하기만 한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상 례사로운 평온만이 깃들어있는 평양이 아니였다. 사람들은 무궤도전차에 앉아가면서도 그리고 보도우를 조용히 걸어가면서도 거대한 날개의 힘찬 퍼덕임같은 힘이 태동하고 하늘땅을 진감하는 뢰성이라도 터져오를것 같은 무엇인가를 가슴뿌듯하게, 긍지롭게 느끼고있었다. 주체94(2005)년, 이해의 뜻깊은 2월명절을 맞으며 평양에서는 우리 당 력사에 특기할 선군혁명총진군대회가 열리였다. 이해로 말하면 조국해방 60돐, 우리 당 창건 60돐이 되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이 더더욱 기쁨과 흥분속에 맞이한 해였다. 대회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따라 선군조선의 기상을 다시한번 온 세상에 떨쳐갈 우리 인민의 투쟁의지가 맹세의 구호가 되여 터져오른것으로 하여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평양의 거리들을 오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거대한 힘의 충만감은 바로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진 대회소식에서 받아안은 감정이기도 했다. 대회참가자들을 위한 참관사업이며 방송모임이며 하는 대회끝의 일정계획들까지도 성과리에 끝나고 총화사업이 있은 이날 한낮때였다. 평양제1백화점옆에서는 보기에도 폭신한감을 주는 새 솜옷들을 입은 세명의 젊은 남녀가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있었다. 세사람은 다같이 인생의 화려한 계절이라고 할수 있는 30대초의 젊은이들이였다. 그들중 두명의 녀성은 사람들의 눈길과 마주칠 때마다 딱한 일에 부딪친듯 괜히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면서 그러지 않아도 흥분으로 발그레하니 달아오른 얼굴들을 더더욱 짙은 장미빛으로 물들였다. 다만 젊은이들중에서 허우대가 크고 늘씬한 청년만은 몸가짐이 당당해서 자기들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주 향해 친근한 미소를 보내주기까지 했다. 그의 이름은 서길산, 나이는 새해에 들어와 서른두살이 되였다. 국토의 면모를 일신시키게 될 또 하나의 자연흐름식물길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거기에 나가있다. 그의 비취색의 폭신한 솜동복자락을 헤치면 영웅메달과 함께 훈장들이 번쩍일것이였다. 결단성있고 승벽이 강하며 사나운 파도와도 같은 성격과 기질이 엿보이는 청년이였다. 이마에 약간한 허물이 나있는 기름한 얼굴에 검실검실한 살색이며 재능있는 몰골화가가 단붓질로 뿍 그어놓은것 같은 숱진 눈섭아래 번쩍이는 커다란 눈이 처녀들의 애간장을 태울만큼 매혹적인데 례의 그 눈에는 아직도 위훈에 대한 어쩔수 없는 열망이 어려있었다. 그는 자기의 성격때문에 한때는 집단에 애를 먹여 비판도 적지 않게 받았으며 그 자신의 말을 빌면 《인생의 진통기》도 겪었다. 그리고 한때 청년영웅도로건설에 함께 참가했던 사랑하는 처녀의 애도 무던히 태웠다. 지금 평양제1백화점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있는 이 젊은이들중에서 사실은 그 용모의 아름다움으로 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제일 많이 받고있는 처녀 김성순이 바로 이 서길산의 애인이다. 원래는 서길산이 개천ㅡ태성호자연흐름식물길공사를 끝낸 다음 김성순이와 결혼을 하기로 했었는데 새 자연흐름식물길공사가 인차 시작되는바람에 미루었다. 김성순이 웃으면서 그러다가는 늙은이가 된 다음에 결혼식을 해야겠군요라고 했지만 그 역시 기꺼이 응했다. 김성순은 옷공장 청년동맹비서로 있으면서 이번 대회에 올라와 서길산을 만났다. 김성순은 지금도 서길산의 그 성격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있는데 신암군에서 함께 올라온 김정옥이 막 시샘이 날 지경이였다. 지금 이 시각도 김성순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거지를 두고 마음쓰는것이 헨둥하여 김정옥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없이 새물새물 웃었다. 김정옥이 기분이 좋아서 웃을 때에는 코언저리에 다문다문 박혀있는 깨알같은 주근깨들이 발깃해지군 한다. 《언니, 왜 그래요?》 김정옥의 눈이며 입가에 물든 웃음의 색조를 본 김성순이 바빠하는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내가 뭐라니?》 김정옥이 놀려주고싶은 심기가 동한듯 그를 빤히 마주보며 물었다. 그 바람에 김성순은 얼굴이 더욱 꽈리빛이 되며 먼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언니두!》 성순은 누가 들을세라 나직이 뇌이였다. 자기를 감출줄 모르는 김성순이 어쩔수 없이 김정옥이앞에서 속을 말짱 헤집어보인것이였다. 그러는 성순을 보기가 재미있어 김정옥은 끝내 깔깔 소리내여 웃어댔다. 가느다란 몸에 바지런하고 말이 적으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첫 인상에는 깔끔하고 차거워보이지만 알고보면 사려깊은 김정옥, 나이로 보면 김성순이보다 네살이나 우인 그는 몇해전에 결혼하여 벌써 엄마소리를 하는 아들애가 있다. 청년영웅도로를 건설할 때 김정옥은 녀성소대장이였고 김성순은 그의 소대 대원이였다. 그런 관계로 둘은 서로 상대방을 자기처럼 잘 아는것이였다. 《이거 어떻게 된거야?》 서길산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최진혁이 어째서 나타나지 않는가고 초조해서 두덜거리였다. 그때 마침 인민대학습당의 시계종소리가 떼엥ㅡ떼엥ㅡ하고 울리였다. 오후 2시였다. 세사람은 최진혁이 나타날 만수대예술극장 앞도로쪽을 바라보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쪽에서 달려오는 최진혁의 실한 몸이 금시 보일것만 같은데 나타나지 않았다. 군청년동맹일군인 최진혁은 평양에 올라온 기회에 청년영웅도로에 꼭 함께 나가보자고 하는 서길산이네의 청을 받아들여 오후 한시반쯤에 평양제1백화점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해놓은것이였다. 원래는 대회와 관련한 총화사업과 그밖의 미진된 일들이 끝나자바람으로 청년영웅도로에 나가보자고 했던것인데 최진혁이 청년동맹중앙위원회에 꼭 들려야 할 일이 있다면서 오후시간으로 미루었다. 그런데 정말 어찌된 일인지 그가 지금까지도 나타나지 않는것이였다. 급한 성격에 일단 불이 달리기만 하면 자기를 걷잡지 못하는 서길산을 알아도 잘 아는 김정옥이 《너무 초조해서 그러지 말아요.》하고 웃으며 말했다. 《시간약속은 제가 먼저 해놓구선.》 서길산은 녀성들쪽은 돌아보지도 않으며 또 잔뜩 볼이 부은 소리를 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해를 보았다. 짧은 겨울해는 벌써 인민대학습당지붕우로 내려앉고있었다. 자기들의 땀이 슴배여있는 청년영웅도로를 빨리 보고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시간을 더 늦잡다간 리영국의 묘에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설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초조해지는것이였다. 이번 기회에 꼭 희생된 리영국의 묘를 찾아봐야겠다고 신암군을 떠나올 때부터 생각해온 서길산이였다. 아니, 그것은 서길산이 혼자의 심정만이 아니였다. 김성순이나 김정옥도 같은 심정이였다. 더우기 김성순은 이번 대회에 올라오면서 리영국의 안해 오경실을 만나 평양가면 애아버지의 묘를 꼭 찾아보겠노라는 말까지 한것이였다. 서길산이 세번째로 손목시계를 보며 안절부절을 못하고있을 때 까만 승용차 한대가 세사람이 서있는 앞에 바투 다가와섰다. 승용차의 뒤문이 열리면서 뜻밖에도 최진혁의 벌깃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가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던 세사람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는데 최진혁이 벙글벙글 웃으며 누가 왔나 보라고 승용차문쪽을 가리켰다. 세 젊은이가 의아해하는데 승용차앞문이 열리면서 《운전사》가 내리였다. 보기 좋은 중키에 다부진 체구며 굽실굽실하게 넘어간 머리며 둥그런 얼굴을 보는 순간 서길산이네들은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부장동지》하고 반가움에 차서 소리쳤다. 승용차를 직접 몰고온 《운전사》란 류종수가 아닌가! 뜻밖의 반가운 일이였다. 청년영웅도로를 건설할 때 류종수는 군당위원회 부장으로 신암군대대 전투원들과 공사장에서 고락을 함께 하였다. 그런 연고로 하여 서길산이네들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에 소환되여 올라간지도 1년이 넘는 그를 예전그대로 《부장동지》라고 스스럼없이 부르는것이였다. 《그새 모두들 많이 달라졌구만! 하긴 20대시절이였던 동무들이 인젠 모두들 30대에 들어섰으니까. 길산동무랑 성순동무랑 정옥동무랑 대회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지 않아도 한번 보고싶었는데 최진혁동무가 찾아오질 않았겠소.》 알고보니 최진혁은 청년동맹중앙위원회에 들려 일을 본 차제로 류종수를 만났다. 그를 통해 승용차를 하나 《사업》해볼 타산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류종수와 함께 청년영웅도로를 보러 가고싶었던것이였다. 《글쎄 이렇게 승용차까지 척 타고 부장동지와 함께 오는줄은 모르고 우린 목이 빠지게 기다리며 대대장동지를 욕했다니까요. 에이!》 서길산의 말에 류종수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되게 두덜대는군! 서길산의 그 성미야 어디 갈데 있을라구.》 류종수는 그러면서도 두눈에 물기를 담았다. 얼마나 반가운 동무들인가! 《그것 보라요, 길산동무, 글쎄 내가 뭐랬어요.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승용차까지 척 타고 부장동지와 함께 〈우리 로반〉을 찾아가게 되지 않았어요. 공연히 대대장동지를 욕했지요.》 《챠챠, 이 동무가! 내가 정말로 대대장동지를 욕한줄 알겠소.》 얼굴이 벌개지며 바빠하는 서길산을 보며 모두들 즐겁게 웃었다. 《자, 시간이 없소. 동무들, 빨리 차에 오릅시다.》 최진혁이 독촉해서야 모두는 서둘러 차에 올라앉았다. 차는 움씰 자리를 떴다. 누구보다도 서길산의 기분이 좋았다. 《챠! 이거 부장동지덕분에 호강하며 〈우리 로반〉을 찾아가게 됐는데요!》 《서길산동무가 제일 좋아하는군.》 《아니, 진혁동진 뭐 좋지 않습니까? 부장동지, 이렇게 옛 신암대대 전투원들을 잊지 않고있어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 소리 마오. 동무들이야 누구보다도 꽃방석에 앉아 영웅도로를 달릴 자격이 있지. 동무들은 우리 조국이 가장 어려울 때 위대한 장군님의 믿음을 받아안고 맨몸으로 돌과 흙을 날라 이렇게 희한한 대통로를 세상이 보란듯이 열어놓지 않았는가말이요. 내 그래서 〈우리 로반〉에 나가보고싶어하는 동무들을 위해 이렇게 시간을 좀 냈소. 말하자면 〈자유주의〉를 좀 했단말이요. 하하…》 류종수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은 최진혁을 향해 슬그머니 눈을 끔뻑해보였다. 최진혁은 소리없이 벙글벙글 웃었다. 서길산이 그냥 엉치를 들썩이며 좋아했다. 《역시 부장동진 우리하고 배짱이 맞는단말입니다. 그렇긴하지만 이거 우리때문에 비판은 받지 말아야겠는데…》 《동문 어리석기두 하네. 부장동지가 자유주의를 했을게 뭐예요. 그렇지요, 부장동지?》 《옳소. 성순동무가 역시 생각은 바로 한다니까. 류동진 지방에 출장을 나가던 길에 이렇게 바쁜 시간을 내서 나왔소. 글쎄 부장동지가 부서에 우리들의 사정을 말했더니 청년영웅도로를 건설한 동무들이라면야 큰일을 한 동무들인데 어서 함께 나가보라고 해서 이렇게 나왔단말이요.》 최진혁이 류종수대신 말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부장동지,》 서길산이 언제 퉁을 맞았던가싶게 환한 얼굴로 물었다. 류종수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소. 그런데 시간은 많지 못하오. 세시간후에는 들어가야 하오.》 《됐습니다. 부장동지, 우리 영웅도로건설자들을 생각해서 차까지 내주었다니까 조금 늦어지더라도 비판은 하지 않을거란말입니다. 그러니 너무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이렇다니까요. 류동지,》 최진혁이 악의없는 힐난의 눈길을 서길산이쪽에 보내고나서 말했다. 《이 서길산이 그때 그 본새의 사고를 털어버리지 못하고있는게 분명합니다. 안되겠습니다. 듣자니 그래서 지금도 이 성순동무한테서 드문히 초달을 당하는 모양입니다.》 차안에는 웃음이 일렁이였다. 김성순이 그 바람에 얼굴이 발깃해져서 고개를 숙이였다. 부끄러움의 색조로 물든 그 녀자의 얼굴은 더욱 아름다웠다. 《그때 그 본새란말이지. 하긴 그게 없으면 서길산이가 아니지.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자기한테 있는것을 말짱 드러내놓아서 서길산이 좋은 사내란말이요. 안그렇소. 성순동무, 참 그런데 동무들은 언제 결혼식을 할 작정이요? 누구보다도 길산동무의 아버님이 그걸 바라실텐데. 이제는 년세도 많아 불편해하실거요.》 《그래도 새 어머니가 들어온 다음부터 아버님의 일도 퍽 순편해졌습니다.》 《오, 그렇겠지. 참 좋은 어머니요. 공사장에 찾아왔던 그 어머니가 지금도 눈에 선하오. 친어머니의 묘소에는 자주 가보오?》 《예, 추석(한가위)때마다…》 서길산의 목소리는 갑자기 축축해졌다. 류종수는 그의 심중이 리해되여 일부러 밝은 낯색을 지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래 아버님은 지금 무얼 하시오?》 《년세가 많아 이태전에 집에 들어왔습니다. 돼지도 기르고 농사도 짓습니다. 작년에 로병작업반을 뭇고 새땅을 한정보나 되게 일구어 강냉이를 심었는데 어찌나 잘되였는지 여섯t이나 수확을 해서 나라에 보탬을 주었습니다. 아버님은 그렇게 일하시면서 자주 말합니다. 사람은 젊었을 때 나라를 위해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말입니다.》 《참 좋은 아버님이요. 그래서 동무네는 결혼식을 미루고있는가? 하지만 사랑도 하고 결혼식도 해야지.》 류종수는 여기서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기였다. 이윽해서야 혼자소리로 말하듯 조용히 이었다. 《젊었을 때 나라를 위해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하셨단말이지. 얼마나 뜻깊은 말이요. 옳소. 우리 젊은 세대들이 참으로 일을 많이 해야 하오. 선군시대가 아니요. 동무들도 이번 대회에 참가해서 많은것을 느꼈을거요. 새로운 전환의 력사가 시작되였소. 우리 젊은 세대들은 앞으로 더 바쁘게 살아야 할거요. 아, 정철수동무가 대회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훌륭한 토론을 했다더구만! 그 동무는 왜 보이지 않소?》 최진혁이 말했다. 《정철수동무는 3대혁명붉은기판정때문에 대회가 끝나자마자 먼저 내려갔습니다. 3대혁명붉은기판정을 앞두고 운반갱을 현대화했는데 그 동무가 있어야 설비들의 시운전을 할수 있다나 봅니다.》 《정철수가 발전했는걸. 광산에 돌아가서 한몫 단단히 하는 모양이구만. 보고싶소. 아니 그때 동무들을 다 보고싶소. 최남영이, 한시호동무랑 정옥동무네 녀성소대동무들이랑 다 한번씩 만나보고싶소. 그럴 기회가 있을가?》 류종수는 그리움의 빛을 눈에 담으며 긴숨을 쉬였다. 그는 늘 바쁜 몸이였다. 평양에 올라와서 중요한 사업을 맡아안고있는 일군이 아닌가. 그리운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즐거운 회포의 한때를 보낼 시간이 그에게는 없는것이였다. 《류동지.》 최진혁이 하나 떠오르는것이 있는듯 빙그레 웃었다. 《그 서영옥동무가 생각나십니까?》 《서영옥동무라니? 아하, 생각나지 않구. 자기한테는 짝패될 사내가 찾아들지 않는다고 내놓고 〈불평〉을 부리여 동무들을 웃기던 그 일잘하던 처녀말이지? 아직도 처녀로 있다면 인제는 〈처녀환갑〉이 되였겠는걸.》 《〈처녀환갑〉은 무슨 〈처녀환갑〉입니까. 부인님이 되였는데요. 그 서영옥동무와 정철수동무가 이 청년영웅도로가 완공된 후 돌아가서 1년후에 결혼식을 했습니다. 돌격대에 있을 때 눈이 맞았거던요.》 《아니, 그 두사람이야 서로 앙숙이 아니였소. 그런데 눈이 맞아 부부가 되였단말이요? 거 희한한 소식이군! 그 정철수나 서영옥이 엉큼한데. 아니, 그들이 착실한 부부가 되였다면 좋은 일이지. 동무들은 모두 그 동무들의 결혼식에 참가했겠군. 부럽소. 그런데 정옥동문 요즘 어떻게 지내오? 명식동문 몸이 일없소? 지금 뭘하오?》 《그때 남포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후 한동안은 후유증때문에 고생을 좀 하군 했는데 지금은 퍽 나아졌습니다. 작년에 그 동무네 영예군인일용품공장이 인민군대원호를 잘해서 장군님의 감사를 받았습니다.》 《그렇소?! 명식동문 여전하구만. 동무넨 참 행복한 부부지. 정말이지 동무들이 보고싶소. 한명국이, 박정수, 려찬호, 독고봉희랑… 그때 동무네를 진심으로 많이 도와준 립석마을 윤명녀어머니랑 다 보고싶소.》 《부장동지.》 조용히 앉아 무슨 생각엔가 잠겨있던 김성순이 끼였다. 《이번에 평양에 올라오기 전에 오경실언니를 만났습니다. 그 언니의 말이 윤명녀어머니가 영국동지의 묘를 잘 봐준다고 합니다. 추석(한가위)때마다 경실언니가 가면 집에 잡아끌어서 하루밤 재워보내기도 하고…》 잔잔하게 흐르던 추억의 내물소리는 갑자기 끊어졌다. 김성순은 불시에 솟구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듯 고개를 푹 숙이더니 끝내 흐느낌소리를 냈다. 리영국의 소리를 하자니 그때 일들이 눈앞에 어려오는것이였다. 아, 선군혁명총진군대회까지 끝나고 이제 더 좋은 미래를 내다보게 되였다고 기뻐들 하는 이때 리영국동지랑 다 같이 우리들의 청춘의 땀과 열정으로 다져놓은 《우리 로반》을 찾아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영국동지와 함께 지금 이 대통로를 달리며 힘들고 배고프고 춥고 무덥던 그때를,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내며 이 대통로를 열어가던 그때를 추억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차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깃들었다. 고르로운 발동기소리만이 차안에 가볍게 떠돌았다. 2월의 거리가 흘러가고있었다. 뜻깊은 명절을 맞으며 내건 축등들, 선군혁명총진군대회와 관련한 선전화들, 거리를 물결쳐흐르는 사람들의 환희에 넘친 얼굴들, 달려오고 달려가는 뻐스, 승용차들… 《부장동지.》 서길산이 침묵을 깨뜨렸다. 《이제 가면 윤명녀어머니를 만나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합시다.》 《그러기요.》 류종수도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그는 서길산의 심중이 리해되였다. 리영국을 생각하면 누구보다도 마음이 괴로울 서길산이 아닌가. 승용차는 보통강역앞을 지나 넓게 트인 광복거리를 달리더니 인차 청년영웅도로에 들어섰다. 아, 해빛은 눈부시다! 눈부시다! 아득히 뻗어간 대통로우로는 승용차들이 해빛에 번쩍이며 미끄러지듯 쾌속으로 달려간다. 이것이 우리들의 로력으로 다져놓은 청년영웅도로란말인가! 우리들이 그때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면서 어깨살이 벗겨져 피가 나오도록 자갈마대며 돌마대며 흙마대를 메고달리던 그 땅이란말인가! 이 대통로에 우리들이 잊지 못하는 가지가지 사연들이 깔려있단말인가! 저 길길이 자라오른 뽀뿌라나무들이 그때 우리가 개통식을 앞두고 심었던 그 애어린 나무들이란말인가! 정작 대통로에 들어서자 모두들 이상하게도 말이 없었다. 대통로다! 하고 환성을 지를것 같던 서길산이조차도 말이 없었다. 인간은 추억하며 생을 산다. 한것은 흘러간 시절이 오늘과 끊을수 없게 이어져있기때문이다. 흘러간 세월이 반석이 되여 오늘이 있기때문이다. 한데 인간은 결코 기쁨과 웃음, 랑만속에서만 추억을 하는것이 아니다. 누구나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즐겁기도 하지만 때로는 깊은 회오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번민에 싸이고 죄책감에 모대기기도 하는것이다. 하여 한생의 귀중한 밑천으로 되는 교훈이란것을 찾게도 되는것이다. 서길산의 심중이 바로 지금 그 비슷한것이였다. 김성순이나 김정옥, 최진혁도 그들나름대로 생각이 깊어졌다. 류종수는 그네들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이 좋은 날에 어찌 생각이 깊어지지 않으랴. 그 간고했던 나날들의 의미를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이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류종수는 생각하였다. 《참, 겨울도 사나운 겨울이였지. 그때는.》 류종수는 무슨 말을 하고싶어 입을 열었으나 눈뿌리가 뜨끔하고 목구멍이 꽉 메여 말이 더 나가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일이 불쑥 떠올랐다. 사람의 기억이란 도대체 어떻게 된것인가? 원, 생뚱같이 그놈의 개구리가 떠오르다니! 남자들이 함마질을 하여 까낸 커다란 흙덩이를 들어내다가 동면하는 개구리를 보고 어마나!하고 기겁을 하던 애어린 돌격대원처녀의 새된 목소리! 그 소리 뒤끝에 와 하고 터져오르던 젊은이들의 웃음소리! 어느 익살군사내가 《개구리님, 잠을 깨워서 안됐수다ㅡ》하며 넌떡 절을 하는바람에 웃음은 더 크게 번져지고 그 뒤엔 금시 봄물이 오른 버들가지마냥 연연하고 귀여운 처녀에게 《개구리처녀》라는 별호가 붙고… 그래 어째서 그 일이 생각나는것인가. 그런데 그 처녀의 이름이… 그래 그가 바로 독고봉희였지. 그래, 그 처녀였어. 류종수는 또 눈가녁이 뜨겁게 젖어들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왔다. 이건 무슨 일인가? 그게 눈물이 날 일도 아닌데 어째서 눈물이 나오려는것인가. 류종수는 이윽해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댔는가를 생각해냈다. 《동무들, 내 동무들에게 한가지 사실을 말해주지. 몇해전에 말이요. 왜나라에서 어느 한 청년대표단이 왔댔소. 내가 그 청년대표단을 데리고 서해갑문으로 나가면서 이 청년영웅도로를 통과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대통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있었소. 청년대표단 단장이 이 대통로를 청년영웅도로라고 부른다는것을 알고 어떻게 되여 영웅도로인가고 묻지 않겠소. 난 이렇게 말해주었소. 이 청년영웅도로라는 이름에는 우리 청년들을 사회의 가장 활력있는 부대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깃들어있다, 우리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수호전의 진두에 서시여 가장 엄혹한 시련을 맞받아 헤쳐나가시던 시기에 우리 청년들에게 이 고속도로건설을 통채로 맡겨주시였고 건설의 나날에는 친부모도 줄수 없는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우리 청년들은 장군님의 그 믿음, 그 사랑을 받아안고 산악같이 일떠섰다, 당신들도 일본의 출판물들을 통해서 알고들 있었겠지만 그때 미국놈들은 우리 공화국을 먹어보겠다고 기고만장해서 날뛰였고 서방의 언론들도 조선이 붕괴되는것은 시간문제라고 떠들어댔다, 사실 그때 우리 형편은 어려웠다, 미국놈들때문에 언제 핵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된데다가 놈들의 제재소동으로 나라의 경제사정도 어려워졌다, 연유가 떨어지고 공장들이 멎어서고 혹심한 자연재해까지 겹쳐들어 식량사정은 말이 아니였다, 더우기 우리 인민은 하늘처럼 믿고 운명을 맡겨오던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직후여서 피눈물을 삼키며 그 모든 고난을 헤쳐나가야 했다, 바로 우리 조선의 청년들은 그 엄혹했던 시기에 모진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면서 기계수단도 변변히 쓰지 못하면서 돌과 흙을 등짐으로 메여날라 이런 대통로를 닦아놓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청년들이 그렇게 건설한 이 대통로에 〈청년영웅도로〉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달아주시였다고 말해주었소. 청년대표단 성원들은 감동되여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우리 청년들이 맨몸으로 돌과 흙을 메여날라 대통로를 건설했다는 말은 잘 믿어지지 않아하더군. 그래 난 이렇게 말해주었소. 당신들이 믿지 못하겠으면 조선혁명박물관에 한번 가보라, 거기 가면 우리 청년들이 청년영웅도로를 건설할 때 사용한 함마와 마대를 보게 될것이다라고 말이요. 며칠후에 그들은 정말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했소. 모서리가 닳고 쭈그러져서 형체조차 함마라고 할수 없는 그 함마와 흙물에 절고 다닥다닥 깁고 덧기운 마대를 보고서야 그들은 우리 조선청년들의 영웅적투쟁에 대하여 잘 알게 되였다고들 말했소.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다 리해할수 있겠소. 그때 우리 청년들이 헤쳐야 했던 시련과 난관이 얼마나 큰것이였고 그 시련과 난관을 무슨 힘으로 헤쳐넘으며 대통로를 열어나갔는지, 우리 나라라면 무작정 악의에 찬 중상만을 일삼는 왜나라에서 살아오는 그들이 어떻게 다 리해할수 있겠소. 그렇게 생각되지 않소, 동무들? 그 마대의 주인이 노래를 사랑했고 목소리조차 제 얼굴처럼 고와서 누구나 예술무대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아름다운 처녀였다는것을 상상이나 해봤을가?》 류종수는 싱긋 웃으며 뒤좌석에 앉은 김성순을 돌아보았다. 김성순은 얼굴이 발그레하니 상기되였다. 그는 소리없이 생글생글 웃었다.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되여있는 그 마대의 주인이란 바로 그였다. 김성순이만이 아니라 모두들 말이 없었다. 생각이 깊어진것이였다. 그중에서도 서길산은 누구보다도 생각이 깊어졌다. 그의 귀전에선 류종수의 말이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들이 그때 정말로 그렇게 세상사람들을 놀래울만 한 기적을 창조했단말인가?) 그때 형편이 보통 어렵지 않았던것만은 사실이였지만 서길산은 그때 자기들이 방금 류종수가 말한것 같은 그런 요란한 위훈을 세운것 같이 생각되지 않았다. 자기들은 그저 누구나 할수 있는 평범한 생각을 했으며 평범하게 일한것 같이 생각되였다. 아무리 비상한 위훈을 창조한 영웅들에게도 세월이 흘러간 다음에는 자기들이 해놓은 일이 그렇게 생각되는것일가? 서길산은 문득 그때 누군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게 누구였던가? 그래, 그건 오응세소대장이 한 말이였어. 대학을 나왔다는 그 소년단지도원이 철학가처럼 말했어. 인간은 물과 불이 있으면 살수 있고 창조할수 있다고 말했어.) 서길산은 갑자기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그때의 일들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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