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40 회)

  

 

제 12 장

 

 2

 

김정숙동지께서는 군복짓는 일을 더 짜고드시였다. 이때까지는 동네아낙네들의 힘을 비는것도 짜고들지 못해서 그저 모여와 웅성대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어떤 아낙네는 해종일 처마밑 그늘에 와앉아 업고온 애를 뚝덕뚝덕 두드리며 젖을 빨리다가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가위에 농사철이 되여서 어떤 날은 몇명 나오지도 못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동네일을 틀어쥐고나가는 구장 허인걸이에게 바느질솜씨가 있는 아낙네들 이름을 알아서 명단을 만들어 알려주고 이 아낙네들은 될수록 매일 나와서 일을 돕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하시였다. 그리고 바쁜 농사철인데 동원되는 아낙네들 집안일은 동네의 딴 아낙네들이 짜고들어 돕도록 조직해달라고 이르시였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재봉대일은 꽉 째여 매일 일자리를 푹푹 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날 금실이를 데리고 바깥마당 버드나무밑으로 나오시였다.

《금실언니, 놀라지 마세요. 내가 꿈같은 소식을 알려드리겠어요.》

그이께서는 버드나무밑에 앉으며 말을 꺼내시였다.

《무슨 꿈같은 소식이예요?》

《희섭선생이 살아있어요.》

《아니 …》

금실이는 눈이 둥그래서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그게 정말이예요?》

《정말 아니구, 무엇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요. 총에 맞아 능지영 벼랑밑 깊은 소에 떨어졌댔는데 물에서 헤여나와 저 북만쪽으로 기여갔댔대요. 그래서 어느 동네에 들려 치료를 하다가 장군님도 만나뵙구 이번 동강회의에도 왔댔어요. 나두 만나보았어요.》

《정숙동무, 거짓말 안예요?》

금실이는 너무도 꿈같은 소리를 들어서 그러는지 그저 멍해서 숨만 급하게 헐썩거렸다.

《금실언니, 일이 이렇게 되였으니 얼마나 행복해요. 언니도 아무 일 없었던듯 희섭선생을 만나보구…》

그래도 금실이는 그저 멍해 앉아있다. 낯빛이 점점 변해갔다.

이러는데 허인걸네 집쪽 큰길로 분임이가 달려오며 김정숙동지를 불렀다.

《왜 그래요?》

김정숙동지께서 일어서며 물으시였다.

《글쎄 이리 와요. 이리루.》

분임이는 금실이가 앉아있는걸 보더니 저쪽 길가운데 서서 빨리 오라고 한손으로 끌어잡아당기는 시늉을 하며 웨치였다.

《어서 들어가세요. 금옥언니에게도 천천히 이야길 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에게 한마디 당부를 하고 급히 분임에게로 걸어가셨다.

《왜 그렇게 떠들어요?》

《이봐 글쎄… 아니 내가 이거 꿈은 아닐가? 그런데 금실언닌 왜 저기 나와앉아있어요?》

《바람 좀 쐬려구 나왔지뭐.》

《그럼 저기 좀 가요! 내가 이거 잘못 보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어요.》

분임이는 땀을 철철 흘리며 김정숙동지를 이끌고 우물로 올라가는 길옆 풀밭에 가서 앉았다. 그는 실성한듯 사방을 빙빙 돌아보기도 했다.

《뭘 어쨌게 그래요?》

《글쎄 내가 마안산 애들 합숙에 갔다오다가 저 다리목에서 비서처동지들 오는걸 띠여보지 않았겠어요. 말파리랑 몰구… 그런데 거기 희섭선생이 있었어요! 정말 희섭선생이였어요. 희섭선생은 날 보지 못하구 굵은 단장을 내휘두르며 뭐라고 떠들며 지나갔지만 난 봤어요. 희섭선생이 분명하잖겠어요… 난 꿈이 아닌가 해서 살도 꼬집어봤어요. 꿈은 아니였어요. 글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예요?》

분임이는 입을 벌리고 김정숙동지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시무룩이 웃으시였다.

《정숙동문 동강에 가서 회의를 하고 왔으니 그게 정말 희섭선생인지 희섭선생이 아닌지를 알게 아니예요. 비서처가 동강에 있다가 온다질 않아요?》

《떠들지 말아요, 희섭선생 아니구 누구겠어요. 희섭선생은 능지영낭밑에서 김기도 졸개들을 때려죽이고 장군님을 찾아서 북만쪽으로 기여갔댔대요. 그래서 그처럼 그리던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저렇게 펄펄 살아서 돌아오질 않았어요?》

《아이참 세상에 그런 거짓말같은 참말두 있을가? 금실언니가 이 소리를 들으면 너무 기뻐서 기절하지 않겠어요?》

《그럴것 같애서 인제 조용히 불러내다가 이야길 했어요…》

《동문 어쩜 속이 그렇게도 깊어요?》

분임이는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 김정숙동지의 손을 끌어다가 제 무릎우에 탁탁 메쳤다. 그는 여기 와서 인젠 언독빛도 거의다 가셔지고 그 옛날 갸름하던 예쁜 얼굴이 도로 살아나기도 했는데 그 예쁜 얼굴로 감격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정숙동무, 세상일이 어쩜 이렇게 즐거워질가? 장군님의 해발속에서 이 세상 모습이 온통 달라져가는것 같아요. 죽어서 황천으로 갔다던 사람도 다시 살아오고 다 없어진줄 알았던 사람들도 그대로 있구 나도 이렇게 새로 태여난것 같구…》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또 웃으시였다.

《난 정말 우리 아버지가 내도산에 왔다가 다시 살아나 돌아가고 하동거리에 어머니며 동생들도 다 살아있다고 하니 지금 어쩔바를 모르겠어요. 살아생전엔 못보리라고 생각했댔는데 인젠 그리운 얼굴들을 다 보지 않겠어.》

《보기만 할가? 조국이 광복되는 날 다 함께 춤을 추며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진 않을테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대꾸해주며 얼굴에 흐르는 땀을 씻으시였다. 분임이가 자기 운명의 수없는 곡절을 겪고나서 인제 정말 제 행복을 느끼는것 같은 소리를 해주니 몹시도 기쁘시였다. 아, 그러나 그런 행복이 얼마나 쓰라린 값을 치르고 얻어지는가를 이 분임이가 아무렴 자기만치야 알수 있을가. 이 애가 지금 흔연하게 웃는 내 가슴속에 또 다른 나자신이 들어앉아있는줄이야 알기나 할가. 나를 앞에 놓고 앉으셔서 그렇게도 피우실줄 모르시는 담배를 피워가시며 하실 말씀을 찾으시지 못하시던 장군님의 그 절통한 마음이 한사람의 슬픔만이 아닌 수없는 사람들의 슬픔으로 하여 끝없이 반복된다는것을 알기나 할가!

분임이는 김정숙동지의 손목을 꼭 잡은채 그리운 꿈을 바라보듯 해빛이 재질재질 끓는 풀밭을 바라보고있었다. 풀밭엔 무슨 꽃인지 노랑꽃이 여기도 피고 저기도 피였다. 꿀벌이 붕붕거리고 나비가 날았다. 분임이는 문득 리범진의 얼굴을 눈앞에 둥그렇게 그려보기도 했다. 동강밀영에 들리던 날 저녁 정숙동무를 만나러 등성이를 넘어가다가 불시에 마주친 리범진이… 어쩜 그렇게도 반가와하며 손을 그러쥐고 《살아왔으니 내가 기쁘오, 내가 기쁘오.》 하고 부르짖었을가. 자기는 또 어쩌자고 수태를 머금으며 《저도 기뻐요.》 하고 대답을 했을가. 무엇이든 다 이렇게 새로운 행복의 언덕에서 새롭게 시작되는건 아닌가. 술기막골에서 그렇게 자기를 억누르기도 하고 남한테서 무슨 말을 들을가봐 부끄럽기도 하던 그 일이 오늘엔 어쩜 이렇게도 심장한복판을 기탄없이 울렁거리게도 만들고 아무 주저도 없이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훨훨 날고싶은 마음도 들게 만들가. 아, 장군님께선 어쩜 이렇게도 이 세상 구석구석에까지 찬란한 해발을 펼치시고 나같은것도 말쑥하게 만들어 어서 고이, 어서 굳세게 나가보라고 등을 밀어주실가! 이 새로운 지점, 이 행복한 지점에서 내 운명은 지금 고쳐 눈부신 출발을 시작하지 않는가! 분임이는 꿀벌이 들어앉은 꽃송이에 미소를 보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웠다. 그저 애들처럼 풀밭을 뛰여돌아가고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지금 비서처와 출판소가 도착한 산중은 떠들썩 끓었다. 마침 산가운데서 강호련대의 두개 중대가 훈련을 벌리고있다가 비서처성원들과 출판소성원들을 맞이했다. 두 중대의 대원들이 달려들어 천막들을 삽시간에 쳤다. 그리고 당장 일할수 있게 천막안에 긴 사무탁들을 들여다놓는다, 등사할 대를 만든다 하며 법석했다. 이러는데 사령관동지께서 나오시였다.

《이 나무그루를 아주 바싹 내려베시오. 그리고 사무탁들은 모두 한쪽가로 잇대여놓으시오. 그래야 가운데가 넓어져서 다니기가 편할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몸소 팔을 걷어올리시고 일을 거들어주시였다.

《동네에 적당한 집이 있으면 비서처나 출판소가 아래로 내려갔으면 좋겠는데 지금 동네엔 이런 일을 벌려놓을만 한 집이 없습니다. 톱을 이리 주시오.》

《사령관동지,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대원들은 송구해서 쩔쩔매며 장군님께서 일손을 못잡으시게 막아나섰다.

지금 희섭이는 말파리에 싣고온 큰 백로지퉁구리들을 새로 친 출판소천막앞에 메다놓고 종이를 자르느라고 법석했다. 동강에서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선언문을 수만매 찍어서 각 지역으로 발송하느라고 며칠 늦게 당도했는데 여기 와서도 인차 그 인쇄작업을 계속해야 할 판이였다. 그는 동강에 와있는동안 다리도 거의 나았다. 거기에서 떠날무렵 십여일간은 나무와 나무새에 줄을 매고 그 줄을 뛰여넘는 놀음도 했다. 발목을 깐닥깐닥하다간 냅다 뛰여오르며 뽈차는 흉내도 내였다.

《됐어, 이만하면 무쇠기둥이야. 다리 하나만 가지고도 왜놈 댓놈은 문제가 없어.》

그는 흡족해서 혼자 중얼댔다. 동강에서 이곳으로 오는것도 절반은 걸어서 오고 절반은 말파리우에 앉아서 왔다. 다 걸어서 댈수 있는데 함께 오는 대원들이 도로 삐여지면 앉은뱅이가 될테냐고 떠밀어올려서 말파리를 타고왔다.

그는 지금 대원들에게 긴 자막대기를 누르라 하고는 시퍼렇게 간 서도칼로 주르르 내려긋군 했다. 수백매되는 백로지가 단꺼번에 베여져나갔다.

《빌어먹을것, 왜놈도 이렇게 묶어놓고 서도치듯했으면 좋겠어.》

그 소리에 자막대기를 누르던 대원들이 모두 얼굴을 제끼며 웃었다. 희섭이도 껄껄거리며 웃었다. 서도칼에다 어떻게 힘을 쓰는지 관자노리로 땀이 쭈룩쭈룩 흘러내린다. 한창 종이를 베내는데 사령관동지께서 희섭이 일하는 천막앞으로 걸어오시였다.

《희섭동무, 발은 어떻습니까?》

《사령관동지! 동강에서 여기까지 내내 걸어왔습니다.》

희섭이 일어서며 대답을 올리였다.

《모를 말입니다. 인제 와서 들으니 절반은 말파리를 타고왔다던네… 발목을 좀 놀려보시오.》

희섭이는 상했던 발을 쳐들고 끄덕거리며 놀렸다.

《그렇게 절만 시키지 말고 좌우로 저어보시오.》

자막대기를 대던 대원들이 모두 돌아서서 웃었다. 희섭이는 얼굴이 시뻘개서 입을 꾹 다물고 또 발목을 좌우로 놀렸다.

《음, 아직 씨원치 않은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희섭이 당황하여 대답을 드렸다.

《장군님! 다 나았습니다. 인제 며칠만 있으면 뜀박질이라도 할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어쨌든 치료를 잘해가며 출판소일을 해야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장군님께선 잠간 말씀을 끊으시며 생각을 더듬으시였다.

《동강에서 가지고온 종이가 얼마나 있습니까?》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동강에서 세퉁구리 남은걸 싣고왔습니다.》

《음…》

《강령과 선언문을 더 많이 찍어야 하겠습니까?》

《더 찍다뿐입니까. 지방대표들이 떠나가면서 다들 한짐씩 지고갔으면 좋겠다는걸 못주어보냈습니다.》

《사령관동지, 서두르겠습니다.》

《서둘러주십시오. 지금 지방조직들이 등사기를 못가지고있는 조직이 많습니다. 그런곳엔 출판소가 찍어서 사람들이 뛰도록 조직해야겠습니다. 국내는 국내자체가 하겠지만 여기선 적잖게 우리가 해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방대한 일입니다. 비서처나 출판소가 단단히 해제껴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선 한참 말씀을 하시고는 경위대원들을 데리시고 맞은편 천막쪽으로 걸어나가시였다.

희섭이는 대원들과 함께 또 종이를 썰었다. 사령관동지 앞에선 공손한 태도로 서있었댔는데 또 이어 윽윽하며 칼질을 했다.

저녁때가 거의 되여 비서처와 출판소 천막들에서는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였다. 한쪽 천막에선 문서와 도서더미속에 싸여앉아 여러명이 선전문원고를 쓰고 다른 천막에선 등사가 벌어졌다. 희섭이는 연방 원지에 10대강령을 써서 넘겼다. 원지 한장이 몇백매를 찍어내지 못해서 등사기 3대가 찍는 뒤를 대려니 내내 붙박혀앉아 강필을 달려야 했다.

바로 이런 때 천막아래쪽 나무숲이 칙칙한 산굽이길로는 김정숙동지께서 금실이를 데리고 올라오셨다.

《언니, 이젠 다 왔어요. 저 산굽이만 돌아서면 천막이 보일거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금실이의 낯빛을 살피시였다.

금실이는 대꾸가 없이 따라올라왔다.

하루종일 낯빛이 새파래서 바르르 떨기도 했는데 쇠통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수가 없으시였다.

《나 좀 앉았다 가겠어요.》

따라오던 금실이는 풀밭에 들어앉으며 땀을 씻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풀밭에 앉으시였다.

《언니, 맘을 진정해요. 그러다가 희섭선생앞에서 무슨 몸부림이라도 하지 않겠어요…》

《내가 무슨 몸부림을… 인젠 술기막골에 있을 때 내가 아니예요. 그저 난 너무도 별안간에 거짓말같은 일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린것 같기도 하고 또 내 허물이 정말 커보이기도 해서…》

정말 김정숙동지께서 생각하신것처럼 그전날의 금실이는 아니였다. 앞에 와 부닥친 엄청난 기쁨보다 먼저 자기를 돌이켜볼줄 알았다.

《무슨 옛말이 된 허물을 자꾸 이야기해요? 희섭선생앞에선 정말 그 말은 입에 올리지 마세요.》

《알겠어요. 정숙동무, 고마와요. 나같은걸 이렇게까지…》

말을 맺지 못한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한손을 꼭 그러쥐고 쳐다보기만 하였다. 눈굽에 이슬이 글썽하게 고이더니 두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언니, 왜 이러세요. 이러면 안돼요. 어서 눈물을 닦고 가서 만나보세요. 난 이 길로 다리건너 마안산아이들이 있는데 가보고 오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의 눈굽을 닦아주며 달래시였다.

그래도 금실이는 한참 울었다.

얼마후에야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의 등을 밀어올려보내시였다. 그리고는 산비탈에서 갈라진 길로 바삐 걸으시였다.

금실이는 입을 감쳐물었다. 자기의 마음을 다잡는것이였다. 그는 자작나무 들어선 오솔길을 굽이돌아 올라갔다. 석양에 숲이 금빛으로 물들고 아름다운 산새들이 푸륵푸륵 날았다.

금실이는 이어 산등성이 천막앞에 이르렀다. 마침 대원 하나가 무슨 책꾸레미를 끼고 저편쪽 천막으로 가기에 주춤거리다가 그에게 물었다.

《여기가 비서처예요?》

《네, 그렇습니다. 어디서?…》

《저 마을재봉실에서요… 여기 장희섭이라구…》

《계십니다. 가만 그럼 희섭동지의…》

《잠간 만나보았으면 해서…》

《아 참… 그럼 잠간 계십시오.》

대원은 책꾸레미를 낀채 부리나케 저편쪽 천막으로 달려갔다. 금실이는 가슴이 후둑후둑 뛰고 다리가 떨렸다. 울지 말자고 강심을 먹는데 울음이 터질것 같아 두주먹을 쥐고 힘을 쓰기도 했다.

얼마 안있어서 정말 군복입은 사나이가 천막앞에 나타났다. 남편이였다. 그래도 남편이 아닌가 해서 고쳐 두눈을 흡뜨며 쳐다보았다. 틀림없는 남편이였다. 그는 떨리던 몸이 온통 굳어지는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이악하게 자기를 부축여세웠다.

《음, 그새 고생을 했겠소.》

남편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한발 앞에서 울렸다.

《전 고생이 없었어요. 어쩜 그렇게 능지영에서…》

금실이는 제 정신으로 말하는것 같지 않았다.

《허허허, 혁명이라는게 어떤 어려운 고빈들 안겪겠소. 인젠 그렇게 군복을 입으니 내 맘에도 드오.》

《………》

금실이는 고개를 숙이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래 입대는 어데서 했소?》

《내도산에서 했어요.》

《왜놈두 더러 잡아보았소?》

《잡아보잖구요.》

《음…》

말끝마다 양은쟁개비니 땡땡이니 했는데 군복입은 모습을 보아서 그런지 흐뭇해져서 우선우선한 시선으로 뚫어질듯이 보고있다. 금실이는 불시에 눈에 눈물이 괴여 남편의 얼굴을 마주쳐다보았다. 남편의 그 다정한 얼굴에서, 그 다정한 눈길에서 그립고 그립던 사무친 정이 가슴에 쏟아져 넘어오는것 같았다. 금실이는 그 정에 휘여넘어가듯 조용히 아무 내색없이 만나자던 생각도 잊고 바로 안하려던 말이 터져나왔다.

《전 정말…》

사무친 죄의식이 심장을 잡아비트는것 같았다.

《무얼말이요?》

《전 사람이 아니였어요.》

금실이의 눈에선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희섭이는 입술을 꾹 다물고 오래도록 금실이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부릅뜬것 같아보이는 그의 큰눈에는 차츰 측은해하는것 같은 빛이 흐르더니 이슬기가 축축히 젖어들었다. 얼마후에야 그는 안해더러 울지 말라고 달래였다.

《우, 울지 않을테야요.》

《나도 동강에서 이야기를 다 듣고 왔소. 그러나 그런 풍파가 오늘 더욱 당신의 모습에서 의의있는것으로 느껴지기도 하오.》

《고마와요. 저도 인젠 혁명이라는걸 고쳐 인식하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걸 고쳐 깨닫고있어요.》

《내려가보우.》

《이 비서처에서 계속 일하게 되였어요?》

《그렇게 될것 같소.》

희섭이의 말은 내내 따뜻하게 울렸다. 금실이는 눈물로 가셔낸 맑은 눈동자로 남편의 얼굴을 정겹게 쳐다보았다. 모두 엄격하고 따뜻한, 그리고 그 어떤 감정의 뒤흔들림도 건전한 리성으로 몰아나가는 달라진 부부였다.

희섭이는 안해를 비탈길어구까지 바래주고나서야 돌아서 천막쪽으로 걱실걱실 걸어들어갔다.

다리건너 마안산아이들에게 들리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해가 거의 질녘이 되여서야 재봉대실로 돌아오시였다. 금실이는 이미 재봉대실에 돌아와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재봉대녀대원들이 모두 울고있었다. 토방에 앉아있는 동네아낙네들도 모두 일손들을 놓았다.

《정숙동문 어쩜…》

분임이가 김정숙동지를 보자 눈물에 함빡 젖은 얼굴을 쳐들며 부르짖었다.

《무슨 일이예요?》

《그런 소식을 듣고와서도 동문 어쩜 그렇게 천연스레 뛰여다녀요? 인제 3소대 대원이 와서 오빠의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어쩌면 어쩌면 그 오빠마저…》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못들은척하며 방안으로 들어가서 구들에 널린 일감들을 거두시였다. 분임이는 김정숙동지를 흔들어대며 목이 메여 울었다. 정숙동무의 오빠가 잘못되다니, 그저 온 회령집이 죄다 눈물바다, 피바다로 된것 같았다. 늘 어머니가 사내들같은 큰 목소리로 껄껄 웃던 회령집, 제 집은 더 구차하면서도 남이 구차한것을 먼저 생각하던 인심좋던 회령집, 이젠 그 회령집이 터가 나지 않았는가. 물멀기치는 바다에 떠간것 같은 어린것이야 인제 어데 가서 찾으리란말인가. 어쩌면 온 식구가 그처럼 차례차례로 다 간단말인가. 난 숱한 고생을 겪었다고 하지만 그런 피해는 꼬물만치도 없지 않는가. 내가 박대동네 집에 시집을 가서 목을 맬 때 같아선 나 혼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것 같았는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오늘에 오니 내앞엔 다시 아버지, 어머니의 소식도 날아들고 꽃이 폈는데 저 불쌍한 정숙동무는 설음에 설음이 겹치는 불행속에 파묻히지 않았는가. 남은 다 세상이 즐거워만 가는데 정숙동무는 어째서 그렇게 돼가는가. 지금 어찌 웃으면서 뛴다고만 생각할수 있을가.

분임이는 정숙동무가 울지 않는데 울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입술을 감쳐물며 군복자락으로 눈물을 닦았다.

곁에서 울고있던 복녀는 큰 주먹으로 제 무르팍을 쳤다. 그도 가슴속에 설음이 하나가득해졌다. 그는 그대로 태봉시 생각이 와짝 솟아오르는것이였다. 강호동지의 어머니네 집에 와있으면서 혁명을 지도한 정숙동무의 오빠, 얼굴은 한번도 본 일이 없으나 얼기설기 뻗어진 조직의 줄을 타고 그밑에서 싸웠다. 쪽지를 날라가기도 하고 그의 안해가 옷보통이를 가지고왔을 때 그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그런 혁명동지가 최후를 마쳤다고 하니 큰 아름드리나무가 하나 나가넘어졌다고 하는 말과 같이도 들리였다. 정숙동무가 어떻게 제집안 용마루가 부러져내린 아픔을 참아내며 아무 내색이 없이 뛰는지 알수 없었다. 제일 뼈저리게 우는것이 금실이였다. 자기는 지금 이렇게도 앞이 열려나가는데 정숙동무자신은 왜 저렇게 되는가. 남을 구해주자고 몇백리 말파리도 타고 다니며 뛰던 그가 저는 왜 저렇게도 서러워만지는가. 세상에 어쩜 저런 녀자가 있을가. 속이 얼마나 크고 깊으면 제 피눈물나는 슬픔은 어느 한구석에 꾸겨박고 참아내며 남의 설음은 열가지 백가지 다 걷어안고 좋게만 만들자고 애쓰는가. 저 맘이 하늘인가, 바다인가. 나두 저 마음덕에 내 운명에 꽃동산이 펼쳐졌지.

금실이는 구석에 숨어앉아 흐느꼈다. 그의 곁엔 그의 언니 금옥이가 함께 앉아서 눈물을 씻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마디 말씀이 없으시였다. 이런 일이 벌어질줄은 꿈에도 모르시였다. 우는 동무들이야 얼마나 고마운 동무들인가. 내가 울지 못하는 울음을 이렇게라도 대신해서 울어주니 내 가슴의 무게가 덜리는것도 같고 하늘에 서리고 땅에 서린 슬픔이 안개 사라져가듯하는것 같지 않느냐. 고마운 생각이 가슴에 그득해지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군복을 짓다가 놔둔 재봉기앞에 가서 앉으시였다.

그리고는 군복혼솔을 내려박으며 설음을 억누르는 낮은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시였다.

 

흐르는 내물은 굽이쳐내리고

혁명의 길에는 곡절도 많고나 

 

《어쩜…》

분임이가 돌아보며 한마디 뱉는다. 외면해 서서 눈물을 씻던 국금이도 영애도 김정숙동지를 돌아보았다.

《정말 어쩜…》

그들도 혀를 찬다. 복녀가 얼른 일어서더니 제가 돌리던 재봉틀앞으로 가앉는다. 그도 드르르 재봉기를 돌리며 노래를 불렀다.

 

굶주려 죽은자 총칼에 상한자

묻노라 동무여 그 얼마이던가

때리여라 부시여라

제국주의 그놈들을

무찌르고 건설하자

조선인민의 새 정부를

 

차츰 힘차고 무게있는 합창이 울리였다. 분임이도 재봉틀에 가앉았다. 국금이와 영애는 이 억센 녀성들같이 이어 일손을 잡지 못했다. 국금이는 영애를 그러안으며 웨쳤다.

《얘, 넌 지금 저 언니들 가슴속에 뭐가 있는질 아니?》

《몰라, 내가 어떻게 알어?》

《나두 모른단다. 그렇지만 알구있어, 알구있구말구… 아 얼마나 억척같은 마음이냐? 나두 저런 마음을 가지고싶구나.》

둘이도 눈물을 씻으며 일감을 잡았다.

그들은 단추구멍을 뚫으며 노래를 불렀다.

 

울창한 산림과 눈덮인 벌판은

우리의 피땀에 젖어있는데

풀깔고 눈깔고 앉아서 잘 때에

동지들 생각에 가슴은 불탄다

 

그제야 김정숙동지의 눈가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결국은 이렇게 해서 혁명의 아아한 높은 봉우리우에 올라서는것인가. 부암에서 혁명의 첫걸음마를 뗀 이 작은 하나의 물방울이 장군님의 해빛에 뛰며 반짝이며 수없는 우여곡절을 겪고겪으며 급기야는 오늘에 이르렀다. 이 우여곡절도 오늘에 이르노라고 있는 마지막곡절인가. 죄다 바치는, 깡그리 바치는 그 슬픔, 그 피눈물속에 드는, 덕지를 크게 남길 마지막곡절, 마지막상처인가. 아 영광의 길, 충성의 길이여! 장군님께 바치는 이 가슴속 붉은 마음이 없다면 내 어이 이 숱한 피눈물을 이겨낼수 있을가!

노래소리, 재봉기소리, 흐르는 눈물, 넘치는 마음, 그것이 죄다 하나의 화음으로 된것 같다. 모두들 노래를 부르며 일을 다그치다간 넘쳐흐르는 눈물을 씻는다.

《쯧쯧 녀자들이 아님둥.》

《녀자들이 아니기야 무슨 녀자들이 아니겠소. 저렇게 억척같이 살도록 장군님께서 가르치셨겠지요.》

토방에서 일을 돕는 아낙네들은 혀를 두르며 말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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