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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39 회)
제 12 장
1
지금 강촌 재봉대실에선 재봉기 세대가 달달 소리를 내며 부산스럽게 돌아갔다. 토방과 마당에선 물들인 광목을 재단도 하고 재단한것을 시침도 했다. 녀대원들만 아니고 김정숙동지께서 분임이를 통해서 일러주신대로 동네 아낙네들도 동원시켜서 여러명의 아낙네들이 모여들었다. 그들도 녀대원들의 지휘밑에 군복짓는 일에 한몫 단단히 했다. 바늘로 꿰맬것은 꿰매고 다림질할것은 다림질하고 가위질할것은 가위질하며 별일을 다했다. 그러는가 하면 산에 올라가 나무껍질을 벗겨다 새 광목에 물을 들이기도 했다. 오늘아침에도 또 광목 두퉁구리를 물들여 바깥마당에 한마당 내걸었다. 《우리 녀성들이 뭉쳐두 단단히 뭉쳐야 해요. 걸써 뭉쳐가지군 안돼요. 나무단을 보세요. 매끼를 걸써 죄인 나무단은 나무눞이 슬슬 흘러내려서 그게 나무단구실을 해요?》 분임이는 재봉기를 돌리며 곁에서 단추를 다는 덩지 큰 녀인에게 선전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 녀성들 깨우치는 일도 함께 하라고 해서 재봉대가 이젠 녀성들 혁명화하는 학교로도 되였다. 분임이는 여기 오는 길로 확실이와 손을 바꿔서 아동단아이들 시중드는 일은 확실이에게 전부 떠맡기고 재봉대일에 달라붙었다. 《나무단만 그래요? 아무것두 매끼가 헐렁하면 다 빠져나가서 제구실을 못해요. 애를 업는것도 띠를 걸써 죄여매봐요. 흘러내리지 않는가…》 분임이의 말끝에 저편에서 재봉기를 돌리는 금실이가 제꺽 받았다. 《그럼요. 매끼가 단단해서 철통같이 뭉쳐야 해요. 철통이라는게 뭔지 알겠어요? 야장간에서 쇠붙이를 시뻘겋게 달궈가지고 자꾸자꾸 두드려 둥그렇게 만들어낸 통을 말하는거예요. 그런 통은 굴려도 메쳐두 퉁탕 챙그렁하며 야무진 소리를 내면 냈지 깨지진 않아요.》 《그렇게 뭉치기만 한다면야 우리 녀성들이 무슨 일인들 못해내겠어요? 크고큰 산이라도 들어옮길수 있지 않겠어요.》 《산만 들어옮길가? 바다도 들어옮기지…》 금실이와 분임이는 불고 치고 했다. 시련이란 시련은 다 겪고났으니 인젠 저들도 한몫 메고들어 남을 가르치고 이끌수가 있다는것이였다. 분임이의 이쪽옆에 앉아서 재봉기를 돌리는 금옥이는 빙그레 웃었다. 동생이 서슬사발을 부둥켜당기며 죽겠다고 할 때 같아서야 언제 저렇게 꽃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서 남을 가르치리라고 생각할수 있었겠는가. 금옥이도 인젠 단발을 했다. 시부모 몽상을 벗기전엔 머리를 안자르려고 했댔으나 부대생활이 몸에 배고 그런것이 다 허식이라는데 눈을 뜨게 되니 마음속 몽상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잘라던졌다. 단발을 하니 한결 젊어도 지고 이뻐도 졌다. 그는 여전히 개다리소반을 뒤집어놓아 만든 앉은뱅이재봉기를 달달 굴리였다. 마당과 토방에서도 녀대원들의 해설이 벌어졌다. 아낙네들은 그저 얼굴들이 불그레해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그들은 낯이 불그레해질 사건도 하나 있었다. 리범진중대가 온 이튿날 이곳 색시 하나는 혁명군들이 어려워 길을 에돌다가 방아찧어가지고 오던 떡가루함지를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창에 뒤집어엎었다. 그바람에 대원들은 이곳 녀자들이 아직 봉건의 누데기속에서 잠자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들이라고 떠들었다. 그래서 더욱 선전이 심각하게 되고 아낙네들의 낯이 붉어지게 되였다. 녀대원들은 아낙네들한테 그 이야기부터 들이댔다. 우리 혁명군대원들이 여기 아낙네들을 뭐라고 하는지를 아느냐, 아직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으로 사는 녀자들이라고 한다. 그 업수이보는 소리를 떡먹듯 듣고있어서야 무슨 사람값에 가느냐. 옛날에 량반이요, 쌍놈이요 하던 때에 딸 시집보내는 어머니가 딸더러 시집가서 남편이 말을 해도 못들은척하고 시부모가 말을 해도 못들은척하라고 했다. 그리고 제가 말하고싶으면 입에 자갈이 물렸거니 생각하고 말을 말고 웃지도 말고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눈덕을 깔고 다니라고 했다. 더는 못그래도 3년은 그렇게 살아야 시집살이를 하고난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여기 아낙네들이 그렇게 살고있지 않는가. 3년이 아니라 한뉘를 그런 멍텅구리들로 살지 않느냐, 글쎄 떡가루함지를 이고 길을 에돌건 뭐냐, 혁명군대원들이 아낙네들 떡가루함지 이고 다닌다고 흉보길 하느냐, 남녀가 평등인데 얼굴을 훨썩 쳐들고 걸어다니면 어떠냐, 남들은 같은 녀자로서 나라를 찾겠다고 남자들과 같이 총을 메고 나서기도 하는데 총은 못멜망정 이고가던 떡가루함지야 뒤집어엎지 말아야 할것 아니냐. 수준이 밭은 녀대원들이라 말을 조리가 있게 잘할 때엔 잘하다가도 어떤 때는 흥분해서 듣는 아낙네를 마치 떡가루함지나 뒤집어엎은 아낙네같이 꾸짖어대기도 했다. 지금 국금이도 토방에서 재단해놓은 천을 시침하며 한 아낙네에게 해설을 들이대는데 그렇게 흥분이 앞섰다. 아낙네를 꾸짖는건 아니지만 보름달같은 둥근 얼굴에 피빛이 올라 숨이 차서 이야길 했다. 그는 지금 내도산으로 기여오르던 왜놈들이 내도산앞 야산속에서 불벼락을 맞고 깡그리 녹아나던 이야기를 했다. 《글쎄 저놈들이 그날밤 눈보라가 쌩쌩 치는데 그래도 기름진걸 먹구 배에 빌기를 세우겠다고 소를 잡고있지 않겠어요? 동원시켜 가지고온 인민들의 소를말예요. 소란게 정말 맥을 못쓰긴 못쓰는것 같애요.》 《아니 소가 왜 맥을 못써? 가대기도 끌고 달구지도 끄는데 맥을 못써?》 선전을 듣는 아낙네는 단추구멍을 감치며 점잖게 앉아있는데 곁에서 썩둑썩둑 가위질하던 복녀가 우둔스럽게 말을 가로챘다. 《아이참, 복녀동문 좀 가만히 있으라구요.》 《응, 그럼 어서 선전을 하라구…》 《소가 물론 일하는덴 힘장수예요. 그렇지만 도끼뿔로 두번 치니까 털썩하고 나가군드러지지 않겠어요. 으응 소리를 치면서말예요. 그러니까 왜놈들이 선지피를 받아먹겠다구 무슨 생철그릇 같은걸 들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 않아요. 더운 선지피를 받아먹구 기운을 올리겠다고말예요.》 《국금동무, 이야기가 어째 산너머로 달아나지 않아?》 복녀가 또 가로챘다. 저도 선전에 한몫 하느라는것이 이랬다. 나이 지긋한 아낙네는 바늘대를 놀리며 낯이 불그레해서 웃었다. 《이야기가 산너머로 넘어가겠는지 골짜기로 들어가겠는지 어떻게 알아요. 복녀동문 메밀밭에 가서 국수를 달래겠네. 왜놈들이 그따위짓을 하는걸 우리 녀대원들이 달려들어 쏴죽이구 찔러죽이구 했다는 이야길 할 참이예요.》 《응, 어서 얘기하라구…》 《그러는데 중대장동지가 신호총을 땅 하고 쏘지 않겠어요. 그 신호총소리가 가슴을 쩔러덩 울렸어요. 그담엔 우리가 방아쇠를 와드득와드득 당겼어요.》 《방아쇠야 어떻게 와드득와드득 당겨?》 《총소리가 와드득와드득 났다는거라니까…》 《그럼 총소리가 와드득거렸다고 해야지.》 《아이참, 복녀동무 시비질바람에 아무 말두 못하겠네.》 이야기를 듣는 아낙네는 낯을 붉히며 웃었다. 그래도 자기더러 들으라고 성심성의를 다해서 하는 이야기인데 소 잡아먹는 이야기는 무엇때문에 그렇게 늘어놓고 또 곁가마는 왜 이렇게 끓을가 싶었다. 국금이는 은근히 부아가 동해올라 씨근덕거렸다. 《그럼 내 벙어리매미처럼 밈소리도 안낼게 계속하라구.》 《아이참…》 《어서 이야길 해요.》 두사이에 앉아있는 아낙네도 권고를 했다. 그러나 국금이는 동한 낯빛으로 시침 다한 천을 탁탁 털었다. 바깥마당에서 물들인 광목을 말리던 아낙네들이 광목을 한아름씩 걷어안고 들어왔다. 그들은 멍석 깔아놓은 마당에 들어앉아 축축한 광목을 맞당기며 폈다. 《무는 얘김둥?》 《재미있는 얘기라우, 끓지들 말아요.》 정작 선전을 하던 국금이는 부아가 나서 시침을 뚝 따고 선전을 듣던 아낙네가 대꾸해주었다. 《그래서 마구 총을 쐈어요. 기관총으로도 갈기구. 그러니까 숱한 놈들이 피를 콸콸 쏟으며 소송장곁에 쓰러졌어요. 그담엔 정숙언니두 뛰구 나두 뛰구 마구 뛰였어요.》 국금이가 또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째 우들우들하며 말을 하려니 말이 잘되여지지도 않고 또 이야기를 어데로 끌고갈것인지 막연해지기도 했다. 《뛰긴 어데로 뛰였어요?》 선전을 듣는 아낙네가 물었다. 《윈쑤들 있는데로 뛰였지요. 원쑤가 소잡는 한곳에만 있겠어요? 온 산에 널려 우글우글하는데 그걸 다 잡아야 이기질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 녀대원들은 원쑤들한테로 마구 달려갔어요.》 그는 인제야 둥글둥글한 큰 얼굴에서 피빛이 가셔지며 말도 좀 순조로와졌다. 《달려가서는 원쑤들을 총창으로 찌르고 총탁으로 갈기고 했어요. 그까짓놈들을 찔러죽이지 못할게 뭐겠어요. 그놈들을 찔러죽이지 못하면 그놈들이 우리를 찔러죽일텐데. 그렇게 되면 그 쌈이 어떻게 되겠어요? 혁명이란건 너 아니면 나구 나 아니면 너구 하는 싸움이예요. 이렇게 해서 우리 녀대원들이 숱한 왜놈을 잡았어요. 그래서 온 산에 오랑캐송장이 오뉴월볕에 구데기 너부러지듯 했어요.》 《쯧쯧…》 아낙네 하나가 혀를 찼다. 그제야 복녀도 국금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오랑캐 잡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는걸 깨닫고 얼른 낌새에 뛰여들며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혀를 차선 안돼요. 물론 우리 조선녀자들이 벌레 한마리 죽이는것도 끔찍스러워 손을 움츠리지만 원쑤와는 그렇게 해선 안돼요. 옛날 임진란때에도 녀자들이 오랑캐장수의 목에 칼을 박아 죽였어요. 그래서 임진란을 이겼어요. 옛날에두 그랬는데 지금에야 녀자들이 왜 못싸우겠어요? 여기 아주머니들두 얼마든지 싸울수 있어요.》 《싸울수 있잖구요. 뭣때문에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하는 업신받는 소리를 듣겠어요.》 인제야 둘이 연방 먹이고 찧고 하며 선전이 제격으로 되였다. 하마트면 파탄되고말번한 선전이 도리여 힘을 가지고 아낙네들의 가슴을 쿵덩쿵덩 뛰게 만들었다. 어쨌든 이래서 동네에서는 이 재봉대가 일하는데를 재봉대학교라고 부르기도 했다. 수준이 낮은 녀대원들의 말이라 더러는 허허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 열정, 그 진심 그리고 그들이 가진 그 신념에 가슴들이 훗훗 더워져서 무언지 모를 깊은 생각들을 좇지 않을수가 없게 하였다. 녀자가 사람값을 하고 산다는 문제, 힘을 가지고 싸움에로 일어서야 한다는 문제, 동네 아낙네들은 너나없이 이 새로운 문제들을 놓고 깊이 생각하기도 하고 한숨을 짓기도 했다. 바로 이렇게 재봉대가 흥성거릴 때 조국광복회 회장으로 추대되신 장군님께서 동강회의를 끝내시고 강촌으로 오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경위중대와 함께 장군님을 모시고 강촌으로 오시였다. 온 동네가 떨쳐나 장군님을 맞아들였다. 이 동네 구장 허인걸은 저녁때 련락을 받고 농민들 여러명과 함께 십리나 되는 곳에까지 홰불을 매들고 나가 장군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그는 불꼬리가 한발씩 늘어나는 홰불을 높이 쳐들고 들어오며 장군님께 《여기는 물창입니다.》, 《여기는 땅이 우묵 들어갔습니다.》 하고 알려드리였다. 재봉대 녀대원들도 모두 달려나가 장군님을 맞이했다. 그들은 장군님께서 허인걸네 집으로 들어가시는것을 보고는 와아 김정숙동지를 둘러쌌다. 영애와 금실이가 달라붙어 배낭을 벗겨 내렸다. 《아이꾸나, 이게 뭐게 이렇게 무거워요?》 금실이가 배낭을 받아내리며 소리쳤다. 《나한테 지워요. 이 팔을 좀 들어요.》 영애는 금실이의 팔에 끼인 멜끈을 뽑아내고 자기 잔등에 배낭을 졌다. 총은 벌써 복녀가 받아들고 앞장섰다. 재봉대가 든 집엔 지금 일감이 어수선하게 널렸다. 밤중이여서 동네 아낙네들은 한명도 없고 녀대원들끼리 일을 다그치다가 달려나갔다. 물들인 광목이 토방에도 무지무지 쌓여있고 멍석깐 마당에도 널려있다. 한쪽엔 물들인 광목을 말리는 화로도 여러개 놓여있다. 《그새 수고들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일감을 살펴보며 말씀하셨다. 《우린 수고가 없어요. 장군님을 모시고 큰 회의를 하느라고 얼마나 수고했어요.》 금옥이가 대꾸했다. 그는 나인 먹었으나 어쩐지 김정숙동지께서 들어서시는것이 큰집안에 맏동서가 들어서는것 같아서 맘이 즐겁고 든든해지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방안으로 들어가 벌써 천정에 치닿게 쌓아놓은 군복을 어루만져보시였다. 맨 꼭대기 군복 한벌을 들어내려 앞자락이며 등곧이 깃붙인것들을 죄다 살펴보시였다. 단추구멍에 단추를 채워보기도 하시였다. 《언니, 회의에 가서 어디 앓았어요?》 국금이가 물었다. 아무래도 모습이 상한 모습이라는걸 놓칠수가 없는것이였다. 《내가 왜 앓겠어요.》 《어째 볼이 홈쏙해진것 같잖아요.》 《정말 그래.》 모두들 김정숙동지를 쳐다보며 떠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웃으시였다. 아직도 절반은 애써 웃는 웃음이기도 했다. 《그래 이번 회의에서 오빠를 만나보았어요?》 금실이가 또 물었다. 《오빤 회의에 오지 않았어요.》 《아니 어째서 오지 않았어요?》 《지금 가있는데 사정이 복잡한가보아요. 그래서 몸을 빼지 못하고… 참 군복 지을 천은 얼마나 남았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다들 어느때든 그 소식을 알게야 되겠지만 될수 있으면 그 가슴저린 이야기는 입결에도 올리지 말았으면싶었다. 《군복 지을 천이 얼만지 몰라요. 오늘도 두퉁구리 물들여 말리질 않았어요. 그리고 최진련대에서 또 가져온다나봐요.》 금실이가 대꾸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앉아서 지금 가지고있는 광목과 해놓은 군복이 몇벌인가를 물으시였다. 그리고 마을 아주머니들이 매일 몇명씩이나 동원되고 마을에 재봉기는 더 없겠냐고도 물으시였다. 그리고는 또 한참 무슨 생각을 하시였다. 군복을 빨리 지어낼 속구구를 하는것 같으시였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배낭에서 백포에 싼 그릇꾸레미를 들어내 이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내 장군님께서 드신 집엘 좀 갔다오겠어요.》 《그럼 수고하시겠어요.》 금옥이가 되돌아나가시는 김정숙동지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모두 바삐 걸어나가시는 김정숙동지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몸이 무척 축을 받았고나 하는 생각들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 허인걸네 집에 오시니 사랑방에서 떠들썩하게 웃는 소리, 이야기소리가 들려나왔다. 각곳에서 무슨 대표라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와서 장군님을 기다린다고 하더니 지금 그 사람들이 장군님을 모시고 앉아 말씀을 듣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대문앞 대돌로 올라가시였다. 대문안에 들어서시니 안채에서도 역시 사람들이 들끓고 허인걸이 안채에서 무언가를 들고 사랑채로 나간다. 부리나케 무슨 시중을 드는것 같았다. 안채 토방으로 올라서시는데 키 큰 아낙네 하나가 부엌문을 열고 나오다가 와뜰 놀라며 멈춰섰다. 《이게 누구야요?》 《저…》 《참 아까 전령병이 사령부 작식 맡은 동무가 온다더니…》 《그래요. 수고들하세요.》 《우리야 무슨 수고겠소? 어서 들어가요.》 키 큰 아낙네는 생긴것 같이 사람 대하는 품도 시원시원했다. 그는 허인걸의 처였다. 부엌으로 들어서시니 아낙네들 여럿이 둘러앉아 콩나물을 가리다가 우르르 일어섰다. 《수고들하세요.》 《참 이때껏 끼니책임자가 안온다고 이야기를 하는중인데… 왔구만…》 허인걸의 처가 알려주었다. 아낙네들은 모두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그렇게도 부드러워뵈여 모두 눈웃음들을 띠였다. 그들은 벌써 무슨 음식준비를 많이 해놓았다. 보를 덮은 함지들이 부엌드렁에 주르르 놓여있다. 장군님을 모시고 오는 부대를 기다려 끼니차비를 다 해놓은것 같다. 콩나물도 수태는 길러놓았다. 《어서들 앉아서 가리세요. 저두 돕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도 아낙네들속에 들어앉아 콩나물을 가리시였다. 모두 친근감이 가서 웃는 눈으로들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참 회의를 하고 왔겠구만…》 한 아낙네가 물었다. 《그래요.》 《어이구, 그 큰 회의를 하노라구 얼마나 힘들었을가? 쯧쯧…》 《온 큰 회의가 무슨 횐지 알기나 하구 큰 회의라고 하우?》 허인걸의 처가 끼여들며 말했다. 《형님두 우리같은 무지랭이가 무슨 회읜질 어떻게 알겠소. 그저 조선독립하는 회읜줄이나 알았지…》 《흥, 알긴 아는군, 그렇지만 똑똑히들 알라구. 조국광복회를 뭇는 회의였다우. 인젠 모두 재봉대원들 일하는데 나가서 배우라구. 무산집며느리처럼 혁명군 피해다니다가 떡가루함지를 뒤짚어엎지 말구…》 그 소리에 모두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웃으시였다. 아직 떡가루함지를 뒤집어엎은 이야긴 못들었으나 흥성거리는 아낙네들속에 섞이니 그저 좋고 기쁘시였다. 《아주머니들이 왜 무지랭이겠어요? 모두 장군님을 받들자는 정성이 지극한데…》 《그 정성이야 지극하지요.》 허인걸의 마누라가 큰 버치를 힝 들어옮기며 또 한마디 했다. 콩나물을 다 가리고난 아낙네들은 인젠 떡반죽을 해야 되겠다고 끓었다. 허인걸의 처가 어서들 정지방으로 올라가 떡반죽을 하라면서 부엌드렁에 있는 가루함지들을 힝힝 들어서 가마목우로 넘겨놓았다. 정말 떡도 자그만치 할 잡도리가 아닌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이를 끼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물을 긷는것도 긷는것이지만 역시 우물을 보아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신것이였다. 사랑방앞에는 신발이 그득찼다. 방안에서 우렁우렁 울리는 장군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을사람들과 담소하시는것 같았다. 문득 방안에서 들썩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장군님의 호탕하신 웃음소리도 들렸다. 잠시 걸음을 멈추시였던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시며 얼른 대문간을 지나 바깥마당으로 나오시였다. 《중대장동무, 여기 우물이 어데 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침 경위중대장이 지나가기에 물으시였다. 《아 우물… 이리로 오시오.》 중대장은 앞서서 덜렁덜렁 걸었다. 집옆을 돌아 산기슭으로 동안이 뜨게 올라갔다. 《여기 우물이란것도 꼭 동강 샘터와 같습니다. 역시 물맛도 좋구요.》 《중대장동무는 물맛이 어떤걸 좋다고 하세요?》 《차고 시리고 쩡하면 좋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시였다. 샘물에 와보시니 정말 동강샘터같이 생겼다. 주위를 모두 돌로 쌓고 앞에도 큰 넙적돌을 두개나 놓았다. 그 넙적돌우에 동이를 놓아도 대여섯개는 놓을듯 싶었다. 중대장이 내려간 다음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동안 우물주위를 서성거리며 도시였다. 또 동강에서처럼 우물가에 이곳저곳 표식을 해놓으시였다. 넙적바위우에 내려와앉아 물맛도 보시였다. 정말 동강 물맛이나 비슷하였다. 중대장의 말처림 차고 시리긴 하다. 그러나 좀더 단 샘물은 없을가. 얼마후에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이를 가시고 물을 퍼담으시였다. 먼 벌끝에서 달이 비죽이 올려밀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우에 물동이를 들어올리려다 말고 문뜩 서시였다. 이러지를 말아야 할텐데 또 느닷없이 날카로운것이 심장 깊은데를 찌르르 우벼지나간다. 종시 물동이를 도로 내려놓으시였다. 동강에서 남한테도 준절히 말하고 꿋꿋이 살자고 마음다지고 온 일이라면 이러지를 말려무나, 달이 그 설음과 무슨 상관이 있게 이렇게도 가슴에 불이 와닿는것 같은 충격을 주는가. 이러질 말자, 제발 이러지를 말자, 장군님 모시는 영광속에 사는 내가 내내 이런 괴로움, 이런 서러움과 씨름을 해서야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하고야 내가 과연 장군님을 모시고 혁명의 맨 큰길을 힘있게 걸어나갈수 있겠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넙적바위에서 우물웃턱으로 올라서시였다. 침침한 나무숲을 돌고도시였다. 불현듯 또 인남이 생각까지 겹쳐드신다. 인남이, 인남이! 그 애만이라도 내곁에 있다면 내가 이렇게 속이 쓰리진 않겠지. 인젠 장난꾸러기가 돼서 태봉시에서 애들과 함께 우야 소리치며 뛰여다녔다는 인남이! 그 불쌍한건 지금 어디 가있을가, 아니 가만있자, 내가 이건… 김정숙동지께서는 별안간 굵은 나무를 탁 붙안으며 달을 쳐다보시였다. 너무도 불빛같은 생각이 여기 강촌에 와서 번쩍하실줄이야! 그 애가 인남인 아니였을가, 하동거리로 말파리를 몰아갈 때 우야 소리치며 손을 들고 말파리를 막아서던 아이! 남색조끼에 아래는 무엇을 입었든가, 바지괴춤이 흘러내려가 배꼽이 내놓였던 아이, 어데서 본 아이였던듯싶으시여 가슴에 가벼운 파동이 스쳐가기도 했던 아이, 그 애가 정말 인남이는 아니였던가? 그 눈매, 얼굴모습, 입이 벌어졌던 웃음씨… 지금 생각해보니 어린 때 그 모습같은 생각도 들지 않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땀이 와짝 솟아서 주먹으로 나무를 두드리시였다. 사람의 머리가 그렇게도 캄캄해질수 있었을가. 적이 득시글거리는 속으로 말파리를 달리며 줄곧 금실이의 생각으로 너무 긴장해있었던탓이였을가. 모험을 하는것 같아 장 속이 떨리고 뛰여서 그 엄청난 일이 그렇게도 훌쩍 스쳐지나갔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동안 나무를 붙안고 서서 온몸을 바르르 떠시였다. (아니겠지. 나의 부질없는 환각이겠지. 설마 사람의 운명에 그런 희롱이야 있을수 있을라구…) 얼마후에야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을 달래고 잠재우며 약간 비척이는 걸음으로 우물가로 내려오시였다. 그리고는 이발을 사려물며 머리우에 또아리를 올려놓고 물동이를 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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