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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38 회)
제 11 장
3
그 이튿날 밤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계시는 작식대실로는 조덕하가 찾아왔다. 그는 달빛 흐르는 숲속에 김정숙동지와 마주 앉자마자 두눈을 슴벅거리며 인젠 김정숙동지께서 장군님으로부터 말씀도 들었다고 하기에 가슴에서 내려가지 않는 이야기를 하려 찾아왔노라고 했다. 《난 정말 이번 정숙동무를 만나서 반가운 이야기도 못나누었소. 태봉시에서 어느날 저녁때 복녀동무와 함께 신개동으로 나가는 정숙동무를 바래주던 생각이 잊혀지지 않으면서도… 난 여태 내가 팔구대표라는것을 정숙동무가 알가봐 겁이 나 했댔소. 팔구대표라는것을 알면 오빠의 소식을 물을것 같기도 해서…》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중 찾아와 말을 꺼내는바람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가 해서 침착히 앉아서 조덕하의 얼굴을 살펴보시였다. 어제밤부터 오늘 하루를 지낸 그이의 몸은 반쪽이 되시였다. 장군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내색이 없이 살자고 결심도 하고 또한 그렇게 하루해를 보내시긴 했으나 가슴을 쪼개놓은것 같은 슬픔은 사람을 은근히 녹이였다. 《정숙동무의 오빠는 정말 내가 일을 바로했더면 능히 구해낼수도 있었소. 그런걸 내가 일을 떨떨하게 하다나니 그만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나게 하였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무서운 자책감으로 가슴이 쓰려서 못견디겠소. 나는 정말 정숙동무앞에서라도 내 잘못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게 된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오.》 《무슨 잘못이 있기에 그러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갑자기 가슴이 후두두 뛰는것을 느끼며 이렇게 물으셨다. 조덕하는 뼈마디가 우굴부굴한 큰 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뻑 씻었다. 그러더니 팔구광산의 잊을수 없는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우리 팔구광산 범골일대는 개살구꽃이 한창이였소. 산기슭에도 피고 초가지붕, 함석지붕들이 다닥다닥한 개울역 작은 거리에도 피구, 꽃이 어찌도 무너지게 피였는지 구름봉우리 부풀듯했었지요. 그 좋은 시절에 그런 비운이 닥칠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조덕하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더듬는듯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계속하였다. 《그날 한낮때쯤 막바지 갱속에서 나온 나는 밥곽보자기를 들고 실개천을 따라 신바람이 나서 걸어내려갔소. 나는 그때 노상 두어깨가 들썩해서 지냈다우. 그저 왜놈의 세상을 단숨에 쓸어눕힐것 같은게 기운이 우쩍우쩍 솟더란말이요. 정숙동무 오빠가 팔구광산으로 온건 얼마 되지 않지만 그때부터 온 광산이 혁명을 하겠다고 도가니 끓듯했으니까말요. 조직이 안나온 갱이 없었다오. 광부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기세가 오르니까 광주와 덕대가 겁을 집어먹게 됐단말이요. 겁을 집어먹게도 됐지요. 화약이 뽑혀나가고 혁명군으로 가는 청년들이 수십명씩 대봉산 뒤산줄기를 타고 사라지군 했다우. 기준동무는 광산만 이렇게 들어일군게 아니요. 태봉시에서 하던식으로 광산주변 숱한 농촌들에도 줄을 박기 시작했소. 나도 이런 거창한 싸움속에서 오빠의 손발이 되여 일을 밀고나갔소. 그날도 갱속에서 덕대를 속여넘기며 광부들을 움직여 딴 갱에 련락을 띄운다, 화약을 빼내서 돌린다 하다가 나오는 길이였소. 그래 흥이 나서 시내가에 드리운 개살구꽃을 꺾어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오.》 조덕하는 입을 다물고 푸른 달빛 흘러내리는 숲속을 바라보며 한동안 절절하게 사무쳐오는 회상의 갈피를 다잡는듯하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범골개울가를 빠져나온 조덕하는 팔구거리로 들어섰다. 팔구거리에도 간데라나 밥곽꾸레미를 든 광부들이 저쪽 대봉산옆 작은골 광굴에서 밀려나왔다. 역시 낮대거리에 나가서 땀을 뺀 사람들이였다. 이 거리는 본시 광산이 개척되기전부터 있던 거리인데 광산이 개척되면서 더욱 번창해졌다. 농촌을 뜯어먹고 광산을 뜯어먹는 숱한 장사치들이 점포를 펴고 관공서가 생기고 수비대병영이 들어앉았다. 놈들이 거리주위로 성을 쌓는다 어쩐다 하더니 아직 그건 착수하지 않았다. 저편 큰길 입구에 구멍 숭숭한 포대만 하나 높다랗게 세워놓았다. 조덕하는 바삐 뒤골목에 있는 밥집으로 걸어갔다. 밥집엔 벌써 숱한 광부들이 와있었다. 큰 밥집이여서 범골과 대봉산 옆갱에서는 물론 장산리쪽 갱에서도 여기 와서 숙식을 하며 다니는 광부들이 있었다. 모두 벗어붙이고 밥집옆 개울에서 몸들을 씻었다. 여긴 한적한곳이여서 저녁이면 벗고 돌가루와 흙먼지를 씻어내느라고 법석을 했다. 어느새 김기준동지도 와서 목물을 얹었다. 《엑 치거 엑 치거…》 김기준동지는 물속에 있는 돌을 짚고 엎드려 잔등에 끼얹는 물이 차다고 으스레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흐흐흐, 가만 좀 계시라구요.》 《계시구 뭐구간에 물을 조 조금씩 끼얹게…》 김기준동지는 물 끼얹는 청년을 지청구했다. 《거, 물을 팍팍 끼얹게. 지금 무슨 물이 차다고 그 야단인가?》 조덕하가 개가에 가서 웃동을 벗어던지며 소리쳤다. 물 끼얹는 청년에게 눈도 끔뻑해뵈였다. 《그럼요. 지금 무슨 물이 차갔습니까?》 청년은 연방 바가지로 물을 끼얹었다. 떡함지 얹어놓은것 같은 잔등으로 물이 둘둘 미끄러져내리며 입으로 턱으로 쏟아져내린다. 《기준동무!》 《엉, 뭐, 뭘 말인가?》 김기준동지는 물이 입으로 흘러들어 반벙어리소리를 했다. 《거 양놈 같은 덕대네 갱에 판군 있잖아?》 《이 있지.》 《그치가 기준동무하구 한판 들어봤으면 좋갔다는거요.》 《씨름을 말인가?》 《그렇네.》 《허허허, 드 들어보지. 인젠 그만 그만…》 《좀더 붓습시다레.》 《아니. 이 이건…》 청년도 헉헉거리며 웃어댔다. 어떻게 들부었는지 로동복바지괴춤도 다 젖었다. 그래도 김정숙동지 비슷한 웃음세가 입가에 어린 김기준동지는 그저 툭툭 털며 어 시원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물이 차서 그 법석이요? 기삼동무, 나한테도 좀 끼얹어주. 첨엔 살살 부으란말야.》 《살살 붓긴, 첨에 많이 들부어야 하오.》 조덕하가 목물을 얹겠다고 엎드리는바람에 이번엔 김기준동지가 눈을 끔뻑하며 청년에게 소리쳐주었다. 청년은 물을 바가지로 들부었다. 조덕하도 물이 차다고 골안이 들썩하게 소리를 질렀다. 곁에서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참으로 유쾌한 생활이였다. 삼엄한 태봉시에서 싸우던 때와는 달랐다. 둘이 다 여기 와서는 가슴이 탁 터진 랑만속에서 살았다. 김정숙동지의 오빠도 여기 와선 태봉시에서처럼 숙소를 따로 정하지 않고 광부들이 득시글거리는 밥집에서 살았다. 그리고는 갱속에 들어가 로동자들과 함께 일도 했다. 몇달 안해서 한다하는 남포군이 되였는데 지금은 큰바위광굴 《에하라남포군》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김기준동지는 가끔 에하라 노하라 하는 타령으로 사람들을 웃겨서 《에하라남포군》이란 별명까지도 하나 얻었다. 말하자면 밑층에 몸을 잠그고 입김을 불어넣어 들어일구는 생활이 펼쳐진것이였다. 조덕하도 시원히 목물을 얹고 나왔다. 《시원한김에 좀 걷질 않겠소?》 두사람은 해가 기울고 황혼이 내리는 산기슭길을 걸었다. 가끔 둘이 산보를 하는척하며 지하공작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오솔길이였다. 이 구불구불 에돈 수풀길에서 둘의 사이엔 숱한 문제가 토론되고 불씨가 이 갱, 저 갱 그리고 농촌으로 날아갔다. 말하자면 정든 오솔길아지트였다. 그들은 굽이도는 오솔길을 걸어올라가며 장차 지하조직이 해야 할 일을 한참 이야기했다. 《우린 어떻게 하든지 지금 큰싸움에 어깨를 더 부쩍 들이밀고 뒤받침을 잘해야겠소. 그래서 그 일을 밀고나가는데 지장이 없도록 광산지구를 더 튼튼히 본격적으로 꾸려야겠소.》 조덕하는 잠자코 들으면서 뒤를 따랐다. 《내가 왕청에서 떠나올 때 장군님께선 물날은 군복에 헌 지하족을 신고계셨소. 그 지하족이 언제나 내 눈앞에서 사라지질 않소. 내가 그래서 물자수송을 강력히 주장하고있는거요. 인젠 화약만 아니라 일체 전투대오에서 필요한 물자도 사들여 사람도 띄우고 부대가 가까운곳에 왔을 때엔 달구지로도 날라가야겠소.》 《보냅시다. 그까짓 이 거리에 들어오는 물품이야 거의 단들 못 뽑아보내겠소.》 조덕하도 통이 큰 소리로 대꾸했다. 《식량, 군복감, 신발 뭐든지 다 사들여 혁명군으로 선발된 청년들이 들어갈 때에도 한짐씩 골박아지고 들어가게 하고 따로 사람들이 지고 들어가게도 하고 어쨌든 물자를 뒤줄이 끊어지지 않게 대야겠소. 그리고 내 생각에는 청골로 가는 화약이 화약채 또 다른 병기창으로 옮겨진다는 말도 있는데 화약 뽑아가는 량도 좀더 늘궈야 할것 같소. 한 병기창이 아니고 숱한 병기창이라면 지금 보내는 그까짓것이나 가지고야 무얼 얼마씩 만들어내겠소?》 《다른곳에서 뽑혀들어가는 화약도 있겠지요.》 《우린 그 타산을 하지 말잔말요. 우리가 뒤를 다 댄다 이런 담보로 밀고나가자는거요. 이 팔구의 혁명력량을 바로만 이끌고 조직해나가면 그런 일쯤이야 해내질 못하겠소? 지금 화약 뽑아내는 일은 장산리 갱들에서 맥을 못쓰고있소. 이걸 조동무가 좀 더 틀어쥐고 조직해주었으면 좋겠소.》 《조직해보지요. 그런데 그까짓 갱들에서 덕대를 속여가며 개미역사나 해가지고야 무슨 큰 량을 보장해내겠소? 내 생각엔 아예 화약고로 줄을 뻗쳤으면 좋겠소.》 《그게 글쎄 잘 안되우.》 그들은 굽이돌아간 산비탈길을 걸어올라갔다. 김기준동지는 혁명군으로 청년들을 뽑아보내는 문제도 한참 이야기하며 인제부터는 농촌진지의 공청사업에 모를 박아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뽑아보낸 청년들이 가서 제 한몫을 하기나 하는지 모르겠소.》 조덕하의 말이였다. 《그러게말이요. 교양을 잘해서 보내노라고 하긴 했으나 가서 장군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나 않는지 모르겠소.》 둘이는 묵묵히 걸어서 올라갔다. 《아, 장군님께선 지금 어떤 혈전을 지휘하고계시는지 모르겠소.》 김기준동지는 걸어올라가다 말고 그리운 정이 절절해서 한마디 중얼거리며 나무에 기대섰다. 그는 별이 하나, 둘 나뜨기 시작한 하늘가를 한참 올려다보았다. 조덕하가 쳐다보니 나무에 기대선 그의 눈엔 이슬이 맺혀있었다. 조덕하도 가슴이 찡해오며 장군님에 대한 그립고 절절한 정이 안겨들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밤중이였다. 그들의 모든 꿈을 짓밟아놓은것 같은 불의의 사건이 일어날줄이야! 장산동아지트로 올라갔던 김정숙동지의 오빠는 한밤중 큰거리로 내려오다가 범골개가에서 불시에 달려든 적들한테 체포되였다. 조덕하는 새벽에 그 소식을 듣고 눈앞이 아뜩해졌다. 김기준동지는 묶이우면서도 그저 묶이우질 않았다는것이였다. 경찰 두놈과 개 한마리를 쏘아넘기고 저도 총에 맞고야 묶였다고 했다. 후에 알아낸데 의하면 특무놈은 바로 한때 태봉시에 날아들어 《헤게모니》요 《프로혁명》이요 하고 행세하던 《긴머리주의자》 백상진이란놈이였다. 그놈은 적의 특무로 변절하여 은밀히 팔구로 기여들었다가 이날저녁 우연히 김기준동지를 띄여보고 뒤를 밟았다는것이다. 조덕하는 두주먹을 쥐고 우르르 떨었다. 밥집에 있는 숱한 광부들이 눈에 불을 번쩍거리며 일어나앉았다. 《치잔말야, 들이치잔말야.》 이구석 저구석에서 웨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씽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가만히 앉아있소. 떠들지들 마오.》 조덕하가 달래였다. 《저놈들이 용마루를 무너뜨렸는데 가만히 있어요?》 《글쎄 떠들지 말래두.》 그제야 모두 잠잠해졌다. 우둑우둑 앉아있는 기상들이 무서웠다. 한마디 치자는 소리만 내던지면 날아일어나 경찰서로 달려갈것 같았다. 모두 경황없이 조반을 먹었다. 조덕하도 밥을 두어숟갈 뜨다가 말았다. 경상도내기 광부 하나는 숟갈 들 생각은 안하고 구석에 있는 남포망치를 들고앉아 흐느끼며 울었다. 모두 밥보자기를 들고 일간으로 떠났다. 경찰을 못칠바에는 갱이라도 무너뜨려보자는것 같은 기세였다. 그들은 밀려올라가다가 조직책임자 김기준동지가 체포되였다는 범골개울가에 이르렀다. 정말 밀정 한놈이 나가너부러졌다. 경찰 두놈은 놈들이 인차 처리를 했는지 보이질 않고 주의자대가리의 밀정 한놈만 개울창에 나가너부러져있는데 물이 출출 씻으며 흘러간다. 조덕하는 백상진의 시체를 보고 몸을 떨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개의 시체를 들여다보았다. 조덕하는 두어깨를 부들부들 낮추며 불같은 입김을 내뿜었다. 이놈이 진작 개인줄 알았더면 이야기를 들은 날 밤 당장 쥐도새도 모르게 없애치웠을 일인데 그저 무슨 행세군주의자로만 알았다가 이 랑패를 당했다. 조덕하는 송장이 된놈이라도 또 한번 끌어내다놓고 쳐죽이고싶었다. 그저 주먹이 돌같이 뭉그러져 떨렸다. 조직책임자가 체포되였다는 소식은 삽시에 온 광구에 퍼졌다. 광구뿐만아니라 주변농촌들에도 소식이 전해졌다. 광구와 농촌 넓은 지역이 심상치 않은 공기를 배태해갔다. 갱속 광부들은 눈빛이 날카로와져 하루 몇시간 일도 안했다. 범골 큰 갱에선 그 무슨 하찮은 일때문에 덕대를 갱바닥에 때려눕혔다. 농촌에서도 청년들이 부리나케 큰거리 아지트로 들어왔다. 들어와선 책임자동지가 잡혔다는데 밖에선 꿀먹은 벙어리로 있느냐고 물었다. 조덕하는 어느날밤 아지트로 쓰는 대봉산 옆골짜기 고갱속으로 각 갱 대표들을 불러왔다. 드디여 그도 타산이 선것이였다. 잡힌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총파업을 들어일구고 놈들의 주의가 총파업에 쏠린 사이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서 류치장을 기습하려는것이였다. 간데라불이 둘이나 켜진 고갱속에 갱대표들이 우둑우둑 들어앉고 땀이 번질거리는 조덕하가 불앞에 서서 열변을 토했다. 《파업을 일궈야 합니다. 놈들을 때려부시는 기세로 온 광구가 들고일어나 일을 제껴야 합니다. 임금을 올려달라, 밀린 임금도 내라, 동발을 안들인 갱속으로 사람을 들이몰지 말라, 숱한 요구조건을 들이대며 일을 제껴야 합니다. 그래서 놈들이 그 압력에 눌려 갇힌 사람을 내놓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 귀중한 혁명동지를 철창의 찬 구들우에 들어가앉게 만들고 우리가 밖에서 가만히 앉아있을수 있겠습니까?》 조덕하는 제 가슴을 쾅쾅 쳤다. 그는 놈들의 주의가 총파업에 쏠린 틈을 타서 경찰서를 기습하겠다는 그 계획까지는 갱대표들 앞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건 딴 핵심들을 가지고 짜고들려는것이였다. 모두 심각한 표정들을 하고 앉아 조덕하의 이야기를 들었다. 《각 갱들에서 면밀하게 계획을 짜고 일을 제껴야 합니다. 우리의 요구도 명백해야 합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경우엔 석삼년이 돼도 광굴로 안들어간다, 우리는 목숨을 내걸고 너희들 한통으로 된 광주, 경찰들과 대항한다, 이걸 명백히 하고 들고일어나 일을 제껴야 합니다. 그리고 한명도 락오자가 없이 꽉 어깨를 겨루고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조덕하는 두팔을 휘여안으며 꽉 짜고드는 시늉도 해보이였다. 조덕하의 불을 뿜는것 같은 이야기가 한창일 때 고갱입구에서 망보던 광부 하나가 등을 굽히고 뜀박질해 들어왔다. 《뭐요?》 《류치장에서 쪽지가 나왔습니다.》 《뭐, 쪽지?》 조덕하는 떨리는 손으로 얼른 쪽지를 받았다. 《류치장에서 놓여나오는 도박군 털보가 책임자동지와 함께 있다가 써주는걸 품에 찌르고 나왔답니다.》 쪽지를 전한 광부가 설명했다. 도박군 털보란 큰거리에서 도박을 놀며 자주 경찰에 잡혀들어가 매를 맞군 하는 사람이였다. 조덕하는 땀투성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쪽지를 펴들고 서서 읽었다. 휴지같은 종이에 연필로 휘갈겨썼다.
움직이지 말것, 로출시키지 말것, 큰 승리에 발을 맞추는것이 우리 팔구의 승리다. 지하로 더 깊이 숨어들어가라! 김.
조덕하는 쪽지 쥔 손을 떨며 두번세번 고쳐읽었다. 그는 씩 큰 숨을 내쉬며 저편으로 걸어가 돌을 짚고 엎드려 굴속에 괴여있는 지하수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목이 타는것이였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조덕하는 물이 흐르는 입술을 손바닥으로 씻으며 돌우에 털썩 앉았다. 큰 승리에 발을 맞출것, 가히 알만한 말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큰 싸움에 어깨를 더 부쩍 들이밀고 뒤받침을 잘해야 하겠다고 하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바로 그 큰 싸움에 발을 맞추는것이 팔구의 승리라고 한 말도 옳은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쪽지에 무어라고 썼습니까?》 갱바닥에 앉았던 사람들이 우둑우둑 일어서며 물었다. 《회의를 그만둡시다. 우리 생각이 잘못된것 같소.》 《아니 그럼 갇힌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둔단말입니까? 힘을 가지고있으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어야 한단말입니까?》 모두 분노가 충천했다. 갇혀있는 사람이 지시를 써보낸다고 그 지시대로 하겠는가, 갇힌 사람이야 제몸 하나로 지하세력의 땀을 빼는 싸움을 막자고 그런 지시를 써내보낼수 있겠지만 밖에서야 어떻게 가만히 앉아있을수 있겠는가. 모두 기가 뻗쳐서 떠들어댔다. 조덕하가 떠들지 말라고 소리치며 씽 일어섰다. 모두 조덕하의 사나운 기상을 보고야 입을 다물었다. 조덕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펴들고 읽어주었다. 그제야 모두 오금을 꺾고 들어앉으며 긴숨을 내쉬였다. 누구나 다 쪽지의 내용이 무얼 말한다는것을 아는것이였다. 결국 이렇게 되여 당장 터질것 같던 파업투쟁은 움츠러들었다. 조덕하는 파업으로 놈들의 주의를 딴곳으로 집중시키려던 계획은 틀려졌지만 경찰서기습은 기습대로 내밀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야 그것도 승산이 보이지 않는 무모한 행동일것 같아 그만두고 다른 방법으로 해보자고 했다. 그는 틀림없이 놈들이 갇힌 사람을 다른 큰 경찰서로 넘기리라고 보았다. 지하조직책임자라는건 어떻게 되였든간에 경찰 두놈과 밀정 한놈을 쏘아죽였으니 그 사건도 크거니와 또 그렇게 행동한 리면에 큰 비밀이 있다는걸 감촉하고 간단히 이곳 경찰에서 즉결로 처리하진 않으리라고 보았다. 그래서 틀림없이 다른데로 이송될테니 그 이송도중에 달려들어 사람을 빼앗아내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면밀히 계획을 짜고 그 기회를 노렸다. 경찰서주변, 정거장일대엔 내내 사람들이 숨어서서 지키였다. 한달이 지나갔다. 조덕하는 몹시 초조해지였다. 그 한달동안 조덕하는 갇힌 사람이 당하고있을 지독한 고문을 자기의 오장륙부에 와닿는 아픔으로 체감하면서 초조한 날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때였다. 조덕하는 범골갱의 광부들과 함께 큰거리로 돌아오다가 너무도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벌어지는바람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이거 어떻게 된 셈이야 엉?》 광부들도 모두 걸음을 멈추며 부르짖었다. 바로 휑 넓은 거리 한판으로 조직책임자가 무거운 족쇄를 절럭절럭 이끌며 걸어올라온다. 총을 멘 경찰놈이 십여놈 따랐다. 거리로 오고가던 행인이란 행인은 모두 골목으로 쫓겨들어갔다. 숱한 사람이 골목골목을 꽉 메우고 서서 내다보았다. 낮대거리와 밤대거리가 바뀌는 시간이 되여 대봉산 옆골짜기 광부들도 거리로 들어오다가 한쪽 골목에 가뜩 늘어섰다. 김기준동지는 살핏해진 얼굴을 쳐들고 여유작작하게 주위를 돌아보기도 하면서 걷는다. 고통을 받고 살이 빠지긴 했으나 개선장군같은 기개가 얼굴에 드러나보이기도 했다. 한쪽다리는 간신히 옮겨디딘다. 아마 붙잡힐 때 총에 맞았던 다리인것 같다. 《저, 저놈들이 사형하러 가는것 아닙니까?》 광부들이 조덕하에게 수군거리며 물었다. 조덕하는 몸을 사시나무떨듯하며 대꾸를 못했다. 자기가 너무도 소극적으로 일을 재고재다가 랑패하게 만든것 같아 가슴을 치며 통곡이라도 터뜨리고싶었다. 그도 놈들이 사형장으로 끌고간다는걸 알았다. 김기준동지는 절그럭절그럭 무거운 족쇄를 이끌며 조덕하들이 서있는 앞으로 온다. 곁에 온걸 보니 몸이 아주 뼈만 남았다. 그래도 눈엔 광채가 있고 그 광채우에 너그러운 미소가 비껴있기도 했다. 그 눈길이 한번 주르르 광부들의 얼굴을 훑어보다가 조덕하의 얼굴우에 와닿자 눈에만 있던 웃음이 온 얼굴에 활짝 피여난다. 얼른 고개도 약간 끄덕거린다. 《잘 싸우라구, 난 마음놓고 떠나가우, 웃으며 가는 길이니 슬퍼하지 말라구. 눈에 눈물을 담지 말라구…》 눈빛이 이런 말을 던지는것 같기도 했다. 눈빛뒤에 아무런 짙은 그늘도 보이지 않는데 왜 그렇게 구슬픈 여운을 던지는지 알수 없다. 보는 사람, 당하는 사람, 제 마음탓인지 모른다. 모두 속으로 울었다. 족쇄를 이끄는 발도 맨발이다. 그 맨발이 정든 혁명의 땅을 마지막으로 힘주어 밟으며 눈길이 또 한번 광부들의 얼굴을 훑으며 지나간다.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길이 수없는 가슴가슴에 지울수 없는 흔적, 영원의 표상을 남기며 마지막 영리별을 고하고있다. 김기준동지는 저편 골목에 서있는 대봉산 옆골짜기 광부들에게도 그렇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며 걸어간다. 거기선 우는 사람이 눈에 띄자 잠간 걸음을 주춤하며 얼굴에 정중한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얼마후 김기준동지는 거리를 벗어나 대봉산기슭을 향해 걸었다. 경찰놈들이 무어라고 째지는것 같은 소리를 지른다. 빨리 걸으라는 수작인지 모른다. 광부들은 가슴터지는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골목골목 메워 서있는 사람들도 피눈물을 훔쳤다. 누런 석양이 젖어내리는 거리우엔 슬픔과 분노가 꽉 찼다. 《기준동무는 바로 이렇게 떠나갔지요. 밤에 숱한 광부들이 밀려올라가 숲이 울울한 대봉산꼭대기에 안장하고 모두 땅을 치며 울었소. 글쎄 내가 왜 일을 그렇게 재고재고 했단말이요. 류치장에서 쪽지를 내보냈다고 하더라도 그건 개의치 말고 파업투쟁을 내민다든가 아니면 다른 투쟁을 급속히 조직했어야 할것 아니요. 아니 마지막 대봉산으로 끌려올라갈 때에라도 당장 소리치고 일어나 광부들을 대봉산으로 올려밀었더면 사람을 빼앗아올수도 있지 않았겠소. 글쎄 산이라도 들어엎을 력량을 지하에 숨겨두고…》 조덕하는 터져나오는 흐느낌을 죽여가며 어깨를 들먹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숙연히 얼굴을 들고 달빛 흐르는 숲속을 바라보시였다. 달빛은 나무가지사이로 갈래갈래 흩어지며 금물이 쏟아지듯 자욱히 새여들고있었다. 그이의 눈굽으로 홍건히 배여나오는 이슬에도 달빛이 어리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눈굽을 닦으시였다. 《오빠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정말 고마와요.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아픈 자책감을 가지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일을 옳게 처리하시지 않았어요?》 《옳게 처리한게 무엇이요? 내가 잘했다면 일이 이렇게 될수 있었겠소?》 조덕하는 크나큰 슬픔을 속깊이 감추고 하시는 부드럽고 간곡한 말씀에 더욱 가슴이 죄여 고개를 수그렸다. 《조직을 로출시킬 모험을 해서 오빠를 빼낸다 하더라도 그건 아무에게도 기쁨을 주지 못했을거예요. 그러기에 오빠가 쪽지를 써내보내며 당부한게 아니겠어요. 비록 오빠는 갔지만 조동무가 일을 맡아가지고 옳게 처리해주었기때문에 팔구광산의 혁명조직이 더 억세게 살아서 오빠가 다하지 못한 투쟁을 이어나가고있지 않아요. 이걸 생각했기에 오빠도 사형장으로 끌려나가며 웃는 얼굴로 갈수 있은게 아니겠어요.》 김정숙동지의 맘속엔 이미 아픈 고비를 넘어선 잔잔한 바다가 깔린것 같기도 하고 인젠 눈굽에 그저 약간 이슬이 비낀듯 반짝일뿐이였다. 온 얼굴에 부드러운 빛이 어린 그 단정한 모습은 끝없이 숭엄해보이였다. 《정숙동무, 속이 크게 이야기를 받아주니 내가 마음이 놓이오. 내 잘못도 가벼워지는것 같소.》 조덕하는 격한 심정을 걷잡지 못하는듯 큰 손으로 무르팍을 그러쥐고 앉아 후둘후둘하며 몸둘바를 몰라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덕하를 숙소로 가는 길까지 바래주시였다. 달빛 흐르는 먼 하늘을 쳐다보시는 김정숙동지의 눈앞에는 팔구의 석양거리를 웃으면서 걸어가는 오빠의 얼굴이 우렷이 떠올랐다. 그 얼굴이 인젠 오빠의 영원한 표상으로 가슴에 꽉 굳어지는것 같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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