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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35 회)
제 10 장
3
온 밀림이 고요해졌다. 새도 울지 않는다. 날으는 새도 없다. 큰나무 우듬지에서 이따금 큰 수리부엉이가 넓은 날개를 부드러이 부치며 날아일어나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앉는다. 해빛이 재질재질 비쳐내린다. 나무들사이로 금물을 쏟아붙는것 같기도 하다. 풀밭우에도 해빛이 아니라 비단이 깔린다. 총꼬느기의 함성은 어데로 갔는지 그저 아릿해지는 정적이다. 녀대원들은 산에 흩어져 나물을 뜯었다. 아침에 순옥이가 다래순 뜯은걸 무쳐왔기에 그런것밖엔 나물이 없는줄 알았는데 여기에도 벌써 삽주, 참나물, 쏙쇠따위가 내밀었다. 총꼬느기에 열이 올랐던 녀대원들은 무언지 모르게 행복한 생각에 젖어서 나물을 뜯었다. 복녀는 얼굴이 발깃해서 다래순을 뜯었다. 그는 대걸이를 골탕먹인것도 같아 가슴이 후련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총대에 쥐여박히울가봐 질끔 놀래여 물러서던 대걸이의 시뻘건 얼굴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아 괜히 그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녀대원들의 가슴속에선 모두 장군님 그리운 정이 솟아올랐다. 이 마안산에 와계신다니 마안산 어느쯤에 와계실가. 여기에도 무슨 인가가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산중 어디에 병영이라도 지어놓은게 있는가. 김정숙동지를 내놓고는 다들 장군님을 뵈온 일 없는 녀성들이다. 그러니만치 그들은 장군님을 뵈옵고싶은 마음이 널뛰듯해진다. 《금옥동무, 거수경례를 해낼것 같애요?》 《해내잖구. 어제밤새 련습을 했는데…》 확실이가 묻는 말에 금옥이가 대답했다. 장군님께서 오시면 렬을 지어서서 거수경례를 올려야 한다고 어제밤 김정숙동지께서 련습을 시키시였다. 《그럼 한번 해봐요.》 확실이가 금옥이더러 한번 해보라고 부추겼다. 금옥이는 나물을 뜯다 말고 앉은채 한손을 귀밑에 올려붙였다. 《손길을 쭉 펴야 해요.》 《일에 다지운 손인데 어떻게 펴지겠어요?》 《쯧쯧 나두 그렇다니까. 이것보라구 손가락마디가 불거져 굼벵이 같대두. 글쎄 국금이, 영애는 쫄 펴지다 못해 해뜩 제껴지기도 하는데…》 둘이는 웃었다. 한세상 살아온 고생살이 생각이 목을 메게도 만든다. 이러는데 어데서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녀대원들이 모두 놀래서 일어섰다. 《이게 무슨 소리야요?》 《글쎄…》 《장군님께서 오시는것 안야요?》 녀대원들은 가슴이 훌쩍 솟구치는것 같았다. 만세소리는 총꼬느기가 벌어졌던 이깔나무가 듬성듬성 들어선 버덩에서 울린다. 《빨리들 가보자요. 장군님께서 오신게 분명해요. 나물은 여기다 모두 모아놓아요.》 김정숙동지께서 먼저 뜯은 나물을 풀밭에 쏟아놓고 버덩쪽을 향해 달리시였다. 녀대원들도 모두 나물을 쏟아놓고 뛰였다. 아 장군님! 장군님께서 이처럼 아무 예고도 없이 불쑥 오실줄이야! 녀대원들은 벌써부터 눈물이 글썽거려졌다. 총꼬느기하던 장소에 다달으니 벌써 대원들이 버덩에 꽉 메워섰다. 장군님께서는 회색빛 코트를 날리시며 사람들이 둘레를 친 속에 서계시였다. 리범진이 거수경례를 붙이고 서서 무어라고 보고를 올리고있다. 장군님의 주위엔 데리고오신것 같은 애들이 가뜩 둘러서있다. 《동무들이 잘 싸웠습니다. 김봉석동무네 중대도 잘 싸우고 리범진동무네 중대도 잘 싸웠습니다. 리범진동무네가 술기막골근거지를 잘 지켜냈습니다. 강호동무한테서 소식을 듣고 동무들이 간고한 혈전을 했다는걸 알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옆에 서있는 강호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 저희들은 변변히 싸우지 못했습니다.》 리범진이 차렷자세를 하며 말씀을 올린다. 《아닙니다. 놈들이 그쪽에서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호된 싸움을 해제꼈습니다. 북만, 동만, 남만에서 기세를 올렸습니다. 우리 혁명은 인제 새로운 앙양기에로 넘어가게 되였습니다. 아, 김정숙동무 수고했습니다.》 장군님께서 리범진의 뒤에 와서 단정히 서계시는 김정숙동지의 눈물이 그렁한 얼굴을 띠여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여 악수를 하시였다. 《술기막골에서 아주 잘 싸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동무가 아니였다면 술기막골의 구정부 일군들이 다 녹았을것입니다. 구정부가 녹으면 근거지가 어떻게 되였겠습니까? 동무는 그것을 구원해냈습니다. 그런 간고한 투쟁을 내도산에서도 치렀습니다. 이렇게 잘 싸운 동무들을 만나니 정말 반갑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자꾸 목이 메여와서 얼굴을 바로 들고 장군님을 우러러뵈올수도 없으시였다. 그 험난한 싸움속에서도 빛을 주시고 힘을 주시고 꿈을 주셨던 장군님! 그 장군님을 또 이렇게 지척에서 만나뵈옵지 않는가! 곁에 계시지 않았으나 늘 곁에 계시는것 같이 느껴졌던 그리운 장군님을 오늘은 이처럼 환히 밝은 날에 꿈이 아니게 곁에 모시지 않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마후에야 눈에 어리는 맑은 이슬기를 닦으며 다소곳했던 얼굴을 조용히 쳐드시였다. 《음… 그리고 이 동무들은… 어느 중대의 녀성대오입니까?》 장군님께선 김정숙동지의 옆으로 와서 주르르 렬지어 서는 녀대원들을 놀라시는 눈으로 바라보시며 물으시였다. 《저의 중대의 녀성동무들입니다.》 리범진이 대답을 올리였다. 《음, 정숙동무가 힘을 기울인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장군님께선 몹시 대견해하시며 녀대원들앞으로 걸어오시였다. 녀대원들이 더러는 거수경례를 붙이고 더러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리였다. 방금전까지 장군님께 거수경례를 올릴 작정을 했댔는데 너무도 큰 감격때문에 확실이, 금옥이는 물론 수월이까지도 깜빡 잊고 습관대로 절을 올리였다. 《수고했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조선녀성의 새 모습을 보는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니 누가 천대와 멸시속에 살던 녀성들이라 하겠습니까? 내가 삼도만에서 정숙동무한테도 이야길 했지만 녀성들이 떨쳐일어나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밀어야 합니다. 지금 다른 부대들에도 녀성대원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름름히 렬을 지어설 형편은 못됩니다. 아주 좋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총들은 모두 어데다 두었습니까?》 《천막안에 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 대답을 올리시였다. 어쩐지 자꾸 눈물이 글썽거려지기도 하고 가슴이 쿵덩거리며 뛰기도 하시였다. 삼도만에서 그렇게도 간곡히 일러주시던 말씀을 이만치라도 실천에 옮겨 크지 않은 대렬이라도 만들어가지고 와서 장군님 앞에 렬지어세우고 인사를 올리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술기막골에서, 내도산에서, 하동거리에서 온갖 간난신고를 다 겪으며 과연 그렇게 해서 녀성무장대를 꾸려낼수 있을가고 가슴 한귀퉁이엔 실망의 검은 구름조차 끼여들기도 하면서 꾸려낸, 아직은 그 싹에 불과한 조선녀성의 앞장에 선 무장대! 그래도 장군님께서 이 작은 대렬을 보시고 그렇게도 대견해하시고 칭찬해주시니 얼마나 뛰던 보람, 애쓴 보람이 있는가! 《그래 먼길을 달려왔는데 발들이 상하지는 않았습니까?》 《아무 일도 없습니다.》 녀대원들이 목소리를 합쳐서 대답을 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녀대원들의 이 얼굴 저 얼굴을 또 한참 주의깊게 살펴보시였다. 서로 다르게 제 길을 걸어온 녀성들이라는것이 이모저모에서 드러났다. 총을 잡기 위해서 곡절 많은 길을 걸어온 그 피눈물의 사연도 엿보이는것 같으시였다. 낭자머리에 군모를 쓴것이 더욱 가슴에 뭉클한 정을 느끼시게 하시였다. 결국은 조선녀성이 다 일어날수 있다는 싹을 보시는것 같으시여 그게 그렇게도 만족하시고 그렇게도 기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간고한 행군길에서 작성하신 인제 동강회의에 내놓으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녀성문제를 뚜렷이 박아넣으신 일을 생각하시며 가슴에 뿌듯한 기쁨을 느끼시기도 하시였다. 《좋습니다. 대단히 기쁩니다. 바로 이렇게 총들을 메고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조선녀성답게 잘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 남호두에서 큰 회의를 열고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하였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우리 혁명은 우리의 힘으로 해내야 하며 하루빨리 우리의 모든 애국력량을 총동원하여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광복하자는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녀성동무들도 이 방침을 알고 우리 혁명대오에 한자리 굳건히 지키고 서서 전체 조선녀성의 귀감이 되도록 잘 싸워야 하겠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장군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 자세를 바로잡으시며 말씀을 올리시였다. 《그럼 우선 푹 쉬도록 하십시오. 행군해오느라고 얼마나 수고들 했습니까?》 《이제는 많이 쉬였습니다.》 녀대원들이 또 목소리를 합쳐서 대답을 올리였다. 장군님께선 그제야 물러서시며 그래도 안심이 안되시는듯 행군길의 피로가 풀어지게 푹 쉬라는 말씀을 재삼 하시였다. 녀대원들은 모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이때 아이들 한패가 김정숙동지와 확실이에게로 우르르 달려들었다. 《누나!》 《확실어머니!》 애들은 부르짖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만 눈이 둥그래지시였다. 이게 웬일인가. 눈보라속에서 갈라져 어데 갔는지를 모른다던 철이네 패가 아닌가. 그저 웬 아이들이 장군님 주위에 둘러서있다고만 생각하며 눈여겨보지도 못했는데 쑥바치에서 잃은 애들이 이렇게 달려들줄이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떨리는 손으로 이 애 저 애 어깨를 어루만져주시였다. 확실이도 놀래여 팔싹 주저앉고싶은 충격을 누르며 애들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음, 저 애들이 저러자고 술기막골중대가 있는곳으로 가자고 나를 졸랐군.》 장군님께서 중대장들에게 말씀하시였다. 《하마트면 정숙동무가 상촌에서부터 애정을 기울여 길러온 애들을 이 마안산에서 다 잃을번했습니다. 지금 이 마안산엔 수많은 고아들이 널려있는데 그 어린것들까지 죄다 <민생단>이란 혐의를 받고 나쁜놈들의 박해를 받고있었습니다. 저 애들도 그 나쁜놈들이 <민생단>혐의를 씌우고 긴긴 겨울동안 먹이지도 입히지도 않고 벌거숭이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내도산에서 온 태호네 패는 언제 또 철이네 패와 섞였댔는지 그 애들은 지금 장군님의 곁에서 싱글벙글 웃는다. 인젠 저들도 장군님의 품에 안겼다는거다. 《내가 처음 저 애들 있는데 가보니 저 어린것들이 차마 눈뜨고 볼수 없을 지경이였습니다. 입을것이 없어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애들까지 있었습니다. 그놈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구박했던지 애들의 입에서까지 자기들이 <민생단>원이라는 말이 나올 때는 정말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 분하던 생각을 아마 조선의 혁명가들은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일을 바로잡고 애들에게 새옷을 해입히려고 무송에 가서 천을 사들여왔습니다. 애들에게 이렇게 새옷을 갈아입혀놓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마안산이 다 환해졌습니다.》 장군님께선 마음이 후련하시여 큰 목소리로 웃으시였다. 리범진은 눈굽으로 뜨거운 눈물이 솟아올랐다. 수많은 고아들이 이 마안산에서 고생한다는것도 놀라왔지만 그 애들속에 술기막골 애들이 섞여있었다니 꿈같은 생각만 들었다. 애들의 한패거리가 내도산으로 달려들어 다른 한패거리는 산을 넘어 어데로 갔는지 모르겠다기에 그저 비장한 생각으로 인젠 그 애들은 잊을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마안산에 와서 장군님의 품에 안겨 살아났을줄이야! 《저 애들이 인제 오다가 눈보라속에서 갈라져 잃어버렸다던 이 애들도 만났습니다. 저 너머골짜기에서 두패가 서로 붙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나쁜놈들, 우리가 그런놈들을 제거해버렸기때문에 우리의 어린것들까지도 인젠 해를 쳐다보며 마음대로 뜀박질하게 되였습니다. 참으로 이제는 조선사람이 제 나라에 맞는 혁명을 할수 있게 우리 힘의 굵은 줄기가 섰습니다. 혁명은 반혁명을 갈겨눕히는 투쟁을 통해서 더 억세여지고 더 다듬어지고 더 능숙해졌습니다. 인젠 무서울것이 없습니다. 종횡무진 내달릴 광야도 열려지고있습니다. 참으로 장한 일을 하나 해제꼈습니다. 앞으로 모두가 넓어진 가슴으로 일을 해제껴야 하겠습니다.》 《사령관동지,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중대장들이 대답을 올리였다. 《자, 그럼 동무들의 천막들이나 가서 돌아봅시다. 산중에서 불편하게 살지나 않는가 해서 올라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이깔나무밑으로 걸어가시였다. 중대장 소대장들이 뒤따랐다. 태호네 패 아이들도 싱글벙글 웃으며 따라나갔다. 태호는 푸들쩍거리는 재빛토끼도 한마리 쥐였다. 너머골짜기에서 몰이를 해서 붙들어낸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철이네 패 아이들한테 둘러싸여 앉아 그들이 쑥바치로 돌아온다는것이 눈보라속에 길을 잃고 점점 험해지는 골짜기로 들어가며 방황하다가 요행 분임이를 만나 구사일생 마안산에 당도한 이야기를 들으시였다. 확실이는 이야기를 채 들어내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싸고 울었다. 그는 속으로 상녀어머니를 부르기도 했다. 불현듯 상녀어머니의 둥그런 무덤이 눈앞에 뵈기도 했다. 이번에 중대는 행군해오다가 상녀어머니의 무덤을 발견했다. 무덤이랄수도 없는, 곰사냥하던 사람들이 대충 신역을 해주고간 흙더미밑에 상녀어머니의 시신이 한귀퉁이 내놓여있었다. 그런걸 온 중대 대원들이 달라붙어 무덤을 크게 만들고 망망한 바다같은 밀림을 향해 조총도 쏘고 중대장 리범진이 고이 잠들라고 명복도 빌었다. 쏴쏴 바람소리만이 울리던 밀림, 수림과 하늘밖에는 뵈는게 없던 그 광막한 밀림속에 홀로 누워있는 그 어머니, 그 어머니가 지금 여기에 와있다면 살아온 이 애들을 둥둥 안아들고 춤인들 얼마나 출가. 확실이는 상녀어머니의 그 마지막 고함소리가 들리는것 같아 목이 메여 꺽꺽 흐느끼였다. 《우린 정말 만날 울며 지냈어요.》 《장군님께서 오신 날두 울지 않안? 모두 벌거숭이가 되여 바깥에 나가지두 못하구.》 《참말 옷이란게 걸레쪼박같이 된걸 입구…》 애들은 저마끔 나쁜놈들한테 천대받으며 살던 때 이야기를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너무도 경황없는 표정을 하고 앉아있으시니까 이야기를 듣느냐고 무르팍을 흔들기도 하고 손을 잡아흔들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 소리에 가슴이 조이고 굳어지고 채찍이 등어리를 쫙쫙 갈기는것 같기도 해서 뉘우침으로만 줄달음치시였다. 내도산 곰골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자신의 실책을 놓고 모대기였는데 그 실책의 엄청난 후과가 바로 장군님을 만나뵈옵는 이 감격의 순간에 이렇게 산같이 부풀어오를줄은 모르시였다. 애들 한패는 제발로 곰골로 걸어들어오고 또 한패는 이렇게 장군님 품으로까지 굴러가서 살아나고, 아, 내 몰골이 이게 무어란말인가, 결국 내가 《상촌신보》의 그 믿음에 찬 글줄들을 무얼로 만들었단말인가. 내가 근거지누나는 무슨 근거지누나며 상촌강가에 굴러다니는 애들을 모여들여 눈물과 사랑으로 길렀다 한들 그게 오늘에 와서 무슨 보람이란말인가. 끝까지 길러내지 못하고 불쌍한 어린것들이 죽을 고비를 넘고넘다가 드디여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품속에 안기여서야 이렇게 살아나게 되였으니 내가 무슨 면목으로 장군님을 다시 뵈옵는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이 곰골로 달려들었을 때의 뉘우침에다 오늘의 뉘우침이 겹쳐 아무 경황이 없고 온몸에서 맥이 빠져나가는것만 같으시였다. 《누나, 누나! 글쎄 오늘아침엔 장군님께서 귀틀집마다 다니시며 애들의 새옷을 보아주셨어요. 그러시곤 둥둥 안아 들어도 보시구… 우리 귀틀막에 오셔선 새옷을 다 입히시고 저 홍갑이를 씽안아 들어보시지 않아요.》 《참말야, 그러시고는 또 근거지누나앞에 가서 깍듯이 경례를 붙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아요. 너희들을 이렇게 키워주느라고 수고한 누나인데 앞으로 총을 메고 싸워도 그 누나를 잊어선 안된다고말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자코 들으시였다. 점점 더 가슴이 조이시였다. 《그래 분임누나는 어디 있니?》 확실이가 눈물을 씻으며 물었다. 《분임누나는 후방밀영에서 애들을 치료해주고있어요. 병난 애가 둘이나 있어요.》 《그래 분임누나는 앓진 않구?》 《앓다가 좀 나아요. 얼굴이 홀쪽 좁아졌어요.》 애들은 제 량볼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홀쪽 좁아진 시늉까지 해보인다. 확실이는 혀를 끝끌 차며 또 눈물을 씻었다. 《얘, 장군님께서 오신다.》 애 하나가 소리치며 일어선다. 딴 애들도 일어섰다. 정말 장군님께서 맞은편 천막앞으로 걸어나오시였다. 뒤엔 따라갔던 태호네 패 애들이 따랐다. 애들은 모두 장군님께서 걸어오시는곳으로 마주 달려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얼른 일어서 애들을 뒤따르시였다. 애 하나가 떨어진 단추를 들고 장군님 앞으로 나갔다. 그바람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애의 단추쥔 손을 잡아쥐시였다. 《단추는 제손으로 달아입어야 해요. 어떻게 했게 새옷 단추를 벌써 뗐어요?》 아이는 낯이 붉어져 대꾸를 못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자신의 군복주머니에서 바늘 꽂힌 자그만 실패를 꺼내시였다. 그리고는 실을 끊어서 귀에 꿰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참고참으시던 눈물이 인제야 쏟아져내리시였다. 그이께서는 흐느끼며 단추를 다시였다. 《정숙동무, 왜 울고있습니까?》 장군님께서 놀라시며 물으시였다. 《장군님! 저는 너무나도 일을 잘못했습니다. 글쎄 이 어린것들이…》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을 씻지도 못하고 흐느끼시였다. 《정숙동무, 우지 마시오. 이건 정숙동무가 잘못해서 아이들이 고생속에 빠졌던건 아닙니다.》 《장군님, 그렇지만 아이들이 흩어지지 않게 잘 거두었더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흐느끼며 말씀을 올리시였다. 주위사람들이 모두 충격을 받았다. 리범진을 비롯한 술기막골, 내도산에서 싸워온 사람들이 더욱 그랬다. 정말 이 놀랍게 싸워온 동무가 장군님 앞에서 목이 메여 아이들 일을 제 잘못이라고 그렇게도 절절히 뉘우칠줄은 몰랐다. 얼마나 깨끗한 충성의 한마음인가. 모두 눈물 고이는 눈들을 슴벅슴벅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늘대 쥔 손을 떨며 단추구멍을 몇번이고 헛찌르시였다. 마주선 애도 눈물을 훔쳤다. 장군님께선 모자채양을 넘겨미시며 땀을 닦으시였다. 말이 너무도 절절하니 자신께서도 가슴이 아프시였다. 저렇게 진심으로 모든 일을 받아안고 나간다면 세상에 못해낼 일이 있겠는가. 장군님께서는 흐느끼며 실을 끊는 김정숙동지를 한번 쳐다보시고는 이슬이 고이시는 눈을 안보이시려고 이깔나무사이로 펼쳐진 흰구름 둥둥 뜬 하늘에 시선을 보내시였다. 《자, 인젠 그만하고 헤여집시다. 내가 잠간 왔다간다는것이 좀 지체되였습니다. 바쁜 일이 기다리고있습니다. 정숙동무, 동무도 멀지 않아 열리게 될 동강회의에 참가해야 하겠습니다. 회의엔 동무의 오빠가 개척해놓은 팔구광산조직에서도 사람이 올것입니다. 내가 동무에게 전하지 못한 말도 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을 못하시였다. 그저 단정히 머리를 숙이며 작별인사를 올리시였다. 무슨 말씀인지 리해하기도 어렵고 그저 오빠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바람에 가슴이 뭉클했을뿐이였다. 얼마후 장군님께서는 또 데리고 오셨던 아이들한테 둘러싸이시여 밀림속을 걸어나가시였다. 내도산에서 온 애들도 따라나갔다. 애들은 너무 좋아서 껑충껑충 뛰며 빽 입호각을 불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또 새롭게 가슴이 뭉클하시여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결국은 가슴아픈 곡절을 수없이 겪으며 키우던 아이들모두가 인젠 장군님의 품에 안기였구나 하는 뜨거운 생각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만세소리가 일어났다. 장군님께서는 돌아서시여 손을 흔드시였다. 철이네 패 태호네 패 애들까지도 함께 돌아서 잘들 있으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게 더욱 눈물 빚는 광경이였다. 장군님의 그 뜨거운 어버이사랑에 목이 메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사람들은 다시금 젖어내리는 눈굽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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