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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32 회)
제9장
3
내도산에 달려들었던 적이 녹아난 뒤엔 곰골사람들도 기세가 올랐다. 집집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일어났다. 모두 힘이 나서 씽씽 걸어다녔다. 애들도 소리치며 뛰였다. 여기 애들도 호리구찌 찔러죽이고 쏴죽이는 놀음을 벌리였다. 웃마을과 아래마을 두사이에 있는 전나무 선 등성이에 가득 엎드려있다간 누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우야 소리치고 일어나 나무로 깎은 총을 들고 냅다 달리였다. 호리구찌 족치는것을 보라는거다. 오늘도 중대의 지휘성원들이 숙소를 정했던 사랑채 달린 큰 집엔 숱한 농민들이 모여들어 떠들었다. 모두 독립군전호에서 한몫 메고 싸우던 사람들이다. 다들 얼굴들이 시뻘겋고 눈에서도 그전날 곰골사람들 같지 않은 빛이 번쩍거렸다. 그들은 앞으로 동네를 새롭게 꾸릴 일에 꿈이 부풀기도 했다. 농민협회, 부녀회가 철통같이 짜고들어 혁명군을 돕게 해야 되겠다느니 소선대도 내오고 아동단도 내와야 되겠다느니 학교도 세워야겠다느니 별소리들을 다 주고받았다. 《다 좋지만 난 우선 기와가마를 만들고 기와를 구워내야 되겠다고 생각하우.》 《아니 별안간에 기와는 해서 뭘하게?》 《기와가 왜 쓸데 없단말요. 초가집에 매년 짚을 인다, 새를 베서 덮는다 하는 신역을 없애고 살잔말야.》 《원 생각이 저렇게 짧다고야. 그래 이 곰골에서 대를 물려가며 살테야, 조국이 광복되여 남은 다 춤을 덩실덩실 추며 두만강을 건너가겠는데…》 《그래그래 참 춤만 출테야, 북치고 꽹과리 치며 색시 맥시 새맥시 춤도 앞세우고 건너가지…》 웃음이 터졌다. 모두 유쾌해서 어쩔줄 물라한다. 인젠 누구에게나 다 조국광복이란 말이 새말 새뜻으로 울리기도 했다. 정말 이 곰골에서 이사짐을 이고지고 국경계선으로 떠나갈 날이 래일 아니면 모레라도 불쑥 올것 같은 예감이 드는것이였다. 《이 오라질놈들같으니라구 또 올려밀질 않나? 한바탕 송장더미를 또 쌓게…》 《참말일세, 난 또 한번 쌈이 벌어지면 혁명군들한테서 그걸 달래서 쏘아보고싶네.》 《그게 무언가?》 《대가리에 두다리를 뻗쳐세운것 있지 않나?》 《아니 두다리를 뻗쳐세우다니?》 《넨장 뚜루룩 따루룩 하며 왜놈군대를 혀 긴 낫가락으로 풀밭 깎아눕히듯하는것 있잖아?》 《하하하, 기관총을 몰라서 두다리를 뻗쳤다느니 뚜루룩 따루룩이니 한단말야?》 또 폭소가 터졌다. 모두 눈물이 질끔거리게 웃었다. 바로 이런 때 정대환네 사랑방에선 정대환이 조세근을 불러다 앉히고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놈, 이 빨쥐같은놈, 쥐가 됐다 새가 됐다 무슨 변신이 그렇게도 심하냐? 이놈, 네놈두 내 휘하에서 구학을 배워가지고 사람이 된놈인데 인제 학교를 세우고 서당은 깨먹겠어?》 《제 제가 한마디 실언을 했소이다.》 조세근은 두손바닥으로 구들을 짚고 몸을 들썩하며 절까지 했다. 《이놈, 실언이 무슨 실언이야? 네가 제일 팔을 빼들면서 주장을 세웠다는데 그게 한마디 내뱉은 실언이야? 그래 구학을 배워가지고 혁명군을 돕지 못해서 서당을 깨먹는단말이냐? 이놈, 네가 이때까지 숱한 사람들 물볼기를 쳤는데 오늘은 네가 물볼기를 좀 맞아야겠다. 이 괘씸한놈, 이놈.》 정대환은 곁에 있는 목침을 쥐고 구들바닥을 울리였다. 조세근은 몸을 사시나무떨듯하며 또 한번 절을 굽석했다. 정대환은 잔주름투성이 눈확안의 회색빛 눈망울에 불찌를 펄펄 날리며 조세근을 그 무서운 눈빛으로 끄슬궈낼듯 쏘아본다. 이끼 엉켜붙은 바위들이 마지막요동을 친다고 할가, 그동안 사세막부득해서 혁명군들이 하겠다는 일을 어서 하겠으면 해라 내버려두기도 했고 또 이번 독립군들을 휘동해가지고 내도산전호로 나가 벼락같이 소리치며 왜적을 때려잡기도 했는데 속에 도사리고있던것은 그대로 있다가 바로 서당 깨먹는다는 소리에 용을 쓰며 들고일어난것이다. 그는 방금 내도산을 다녀와서 남바위도 쓴채 앉아있었댔는데 인제야 귀가 후끈후끈 더운 생각이 들어 벗어던졌다. 목에 감았던 수건도 풀어던지고 팔목에 낀 양털 댄 토시도 뽑아던졌다. 너무 속이 후련해서 어제도 나가본, 적의 송장이 득시글거리는 내도산일대를 오늘도 나가 돌아보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자 뜻밖의 일로 그 후련하던 가슴에 거먹구름이 끼여들었다. 《네 이놈, 서당은 내가 소일을 하기 위해서도 깨먹을수가 없어. 그리구 그건 오륜과 인의례지를 배우고 사람사는 법도를 배우고 익히는데야. 이 무도한놈, 이놈 뼈가 부러지게 볼기를 맞아볼테냐?》 정대환이 다시 고함쳤다. 조세근은 어째 정대환이 좀 기세를 늦추는가 생각했다가 또 우뚤 놀래였다. 《리수님, 제발 참아주시오. 에헴… 귀신은 경에 막히고 사람은 사정에 막힌다 하지 않소이까. 지금 안방에 내인들까지 가뜩 모여들었는데…》 《이놈 볼기짝 내놓고 달초를 맞는게 부끄러운줄은 아느냐?》 정대환이 다시 목침을 두드렸다. 지금 안채엔 부녀회원들이 가뜩 모여들어 끓었다. 그들은 이번 전투를 하느라고 수고한 혁명군들에게 메밀국수라도 눌러서 한끼 대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공론이 벌어졌다. 수월이가 조그만 개다리소반에 공책을 올려놓고 앉아서 무얼 적기까지 했다. 중대식솔이 얼마고 동네사람 수요가 얼마인데 다 함께 먹이자면 메밀을 매 집 얼마씩이나 거두어야 되겠는가고 계산을 해보는것이였다. 《메밀 서너되씩은 거두어야 되겠어요.》 《어이구, 서되가 무슨 큰게요? 서말을 내래도 텅텅 이여다 바치지 않으리. 곰골백성을 무찔러죽이자고 기여들던 오랑캐를 내도산너머에서 죄다 쏴죽인 생각을 하면 메밀이 많다고 시비질하는 집이 있겠기에 그래요?》 《그럼요. 그 생각하면 서말이 다 뭐야요. 석섬인들 아깝다 하겠소.》 수월이의 소리에 아낙네들이 떠들었다. 혁명군들이 그저 청청 맑은 하늘이라도 들어다 안겨준것 같아 그 은혜를 무얼로 갚아야 좋을지 모를 심정들이였다. 아낙네들이 한창 떠드는데 영애가 달려들어왔다. 그는 숨이 차서 김정숙동지께서 적이 득실거리는 하동거리로 날아들어가 아낙네 셋을 붙안고 돌아오시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웬 아낙네를 셋이나 붙안구 돌아와요?》 아낙네들이 물었다. 《아니 둘만 하동거리에 들어가 빼오구 하나는 길에서 주어가지고 왔대요.》 《호호호, 무슨 조약돌이라고 길에서 주어가지고 와?》 아낙네들이 와그르르 웃었다. 그래도 영애는 낯이 새빨개서 한참 설명했다. 안방이 떠들썩할 때 사랑방으로는 오포수가 찾아왔다. 그는 사랑퇴마루우에 젖은 신발을 쿵 올려짚으며 정대환을 찾았다. 정대환은 조세근을 죽일놈 살릴놈 몰아대다가 게 누구냐고 소리를 지르며 미닫이를 드르르 열었다. 《리수님, 빨리 기동을 해주어야 되겠소이다.》 오포수는 마루우에 오금을 꺾고 앉으며 숨이 찬 소리로 말했다. 길쭉한 얼굴이 온통 땀투성이 되였다. 《무슨 소린가, 어데로 기동을 한단말인가?》 정대환은 조세근의 일로 기가 돋은판이라 피대가 뻗쳐서 물었다. 《저, 저 병영으로 좀 나가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병영에 내인들 셋이 당도했는데 둘은 목숨이 경각에 있소이다.》 오포수는 풋의술이나 있는 정대환을 빨리 들어일구느라고 가슴뜨끔한 소리를 했다. 《아니 웬 내인들이 목숨이 경각에 있단말이냐?》 정대환은 여전히 볼부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는사이 조세근은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문을 향해 앉은 정대환의 뒤통수를 흘끔흘끔 보면서 발끝걸음으로 새문턱을 넘어 아래방으로 내려왔다. 《엥히 빌어먹을 두상 같으니라구. 땀을 한참 뺐네. 혁명군들앞에선 꼼짝 못하면서 제삼자와 해낸단말야.》 조세근은 두덜거리며 얼른 안채쪽으로 난 문을 열고 꼬리를 사렸다. 오포수는 도끼눈을 하고 앉아있는 정대환이에게 김정숙동지께서 하동거리로 들어가 금실이를 빼내가지고 오던 이야기를 한참 했다. 《리수님, 내 세상에 났다가 그런 녀인은 첨 보았소이다. 지금 내도산에서 송장을 면하고 내려간놈들이 하동거리와 계림시에 널려 탕탕 분풀이를 하고있는데 글쎄 그 범의 아가리로 뛰여들어가 사람을 안아들고 나왔습니다. 한손엔 권총을 들고… 놈들이 추격해오자 말파리우에 앉아서 냅다 갈겨 말 둘과 원쑤놈들을 쭐 늘어뜨리기도 했습니다. 그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용맹을 어찌 녀자라 이르겠습니까.》 정대환은 벗어놨던 토시를 도로 끼며 어흠어흠 기침을 했다. 곁에 앉았던 조세근이 내뺐으나 다시 이놈 어데 갔느냐고 소리지르진 않았다. 조세근이 앉았던 자리에 호박물부리가 떨어져있는걸 보더니 방웃목으로 훌 집어내던진다. 《글쎄 용맹두 용맹이지만 죽을 곳에 들어가서 제 사람 찾아오는 그 일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옛날 독립군때에야…》 《인젠 그만해라.》 《네 네. 너무 감동이 극해서…》 정대환이 소리치는바람에 오포수는 질끔 놀라서 허리를 굽적했다. 그는 이 심사바르지 않은 옹고집이 딴 벼락이라도 내리며 기동을 안할가봐 겁이 났다. 이러는데 영애가 시할아버지의 두루마기를 들고 달려나왔다. 동정을 고쳐 다느라고 들여갔던 두루마기다. 오포수는 두루마기를 받아들고 얼른 방안으로 들어갔다. 낯가죽이 펴지게 오포수가 제손으로 입히려는것이다. 정대환은 침통과 의서책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남바위를 뒤집어썼다. 오포수가 두루마기를 펴들고 다가가자 휙 제껴던지며 벽에 걸려있는, 바로 오씨가 돋보기를 걸고 앉아 깁던 그 마고자를 벗겨내려 팔을 끼였다. 《빌어먹을… 이 령감때문에 내가 당대 오금을 까등기고 산다니까…》 오포수는 장미가 뻗친 정대환의 옆얼굴을 흘겨보며 속으로 중얼댔다. 어쨌든 겨우 앞세워가지고 밖으로 나섰다. 벌써 안방에 있던 부녀회원들이 마을앞으로 길이 메게 밀려나간다. 사경에 처한 녀자들 먹이겠다고 심씨는 유지에 싼 꿀단지를 안고 뛰였다. 정대환은 인제야 조세근을 두드려팰것 같던 분통이 좀 가셔지며 제 옹고집밖에서 펼쳐지는 세상일을 빠금히 내다보는것 같은 기분이 되였다. 오포수의 떠들던 소리가 머리속으로 고쳐 들어오고 내인들 둘이 지금 죽음을 경각에 놓고 자기의 풋내기침통과 의술을 기다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자기를 기다리는 생명들이 있다니 속이 좀 누글누글해지는것 같았다. 내도산밑 작식대실앞으로 오니 혁명군들이 웅성거리며 끓고있었다. 모두 정대환을 반갑게 맞았다. 리범진이 껄껄 웃으며 리수할아버지가 또 수고를 하시게 됐다고 했다. 한 대원은 정대환이 들고오는, 한지를 부해서 가위한 큰 의서책을 받아들며 절을 굽석했다. 《자, 모두들 비키란말요. 이렇게 문통에 죄여서서 길을 막아놓으면 어떻게 해요. 넨장 앓는 내인들 구경을 못해서 이렇게 병풍을 쳤단말요?》 의서책을 들고 들어가는 대원이 법석 떠들며 문앞에 막아선 부녀회원들과 혁명군들을 밀어제꼈다. 《자 왜 이렇게 갈개?》 《할아버지가 병보러 나왔단말야.》 《엉…》 모두들 눈들이 커져서 비켜섰다. 대원들은 다들 허리를 굽석굽석했다. 사실 그들은 이때까지 정대환을 동네에서 제일 땅고집같은 늙은이라고 보아왔는데 이번 내도산에서 싸우는걸 보고는 모두 인식이 달라졌다. 땅을 탕탕 굴러치며 벼락같이 소리치는 그 호랑이같은 용맹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인젠 다 늙어서 저승길이 눈앞에 있는 늙은이가 망국의 설음이 얼마나 절통하면 저러랴 하는 눈물겨운 생각들도 들게 했다. 그래서 모두 진심으로들 존경했다. 문앞이 열리자 정대환은 기침을 하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선 지금 아낙네들이 떠들썩 끓었다. 부엌에서 불을 때고 한쪽으로는 미음을 쑤고 소래에 물을 떠들고 올라와 눕혀놓은 금실이와 확실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국금이는 추긴 행주로 호박같이 부은 얼굴들을 닦아주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금실이와 확실이는 얼굴을 씻어주는대로 내맡기고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할아버지, 수고하셨어요. 어서 좀 진맥을 해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송구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정대환에게 말씀하시였다. 《웬 내인들을 이렇게 구해왔나?》 《중대를 떠나 여기저기서 고생하던 아주머니들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대꾸를 하시며 자리에 앉아 금실이의 한쪽 들린 이불귀를 눌러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복녀에게 얼른 부엌으로 내려가 미음가마를 보라고 이르시였다. 정대환은 남바위를 벗고 상투머리를 후들후들 저으며 자리에 들어앉았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아직 선떡 먹은것 같은, 휘여들지 않은 기운이 등등해있는것 같다. 《할아버지, 이 아주머니는말야요…》 영애가 한마디하며 제 시할아버지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일껏 들어일궈내가지고 나왔는데 어째 이렇게 범의 기상을 풀지 않을가싶어 그리고 그 기상을 풀지 않고야 무슨 성심성의를 다해서 치료를 해줄가싶어 자세히 알려드리자는거다. 《이 아주머니는말야요. 저 쑥바치에서 왜놈들 <토벌>을 맞고 눈보라속으로 고생하며 왔대요. 그리구 저 아주머니는 술기막골에서 혁명하다가 혁명 못하겠다고 하동거리에 갔던 아주머니구요. 하동거리에 가서…》 영애가 나불대며 알려주자 정대환은 당장 듣기가 역한지 밸이 뒤집혀오르는것 같은 소리로 담을 돋구었다. 《애개…》 영애는 어마지두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만만이걸음을 해서 아낙네들속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나 정대환은 혁명 못하겠다고 하동거리로 간 녀자를 데려왔다는 소리에 귀문이 황 열렸다. 결국 혁명을 못하겠다면 벌써 맘과 정신이 병먹은 녀자인데 그런걸 다 사지에 가서 걷어안고 온단말야. 나같으면 당장 목을 분질러 버리자고 할텐데 그걸 가서 걷어안고 와? 괘씸한지고… 그러나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내인까지도 걷어들이는 그 통이 보통 통인가, 온 세상을 다 휘여안아일으킬 하늘같은 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대환은 경황없이 확실이의 진맥부터 했다. 손목이 퉁퉁 부어서 맥이 얼른 알려지지도 않는다. 한참 진맥하고난 정대환은 옮겨앉아 금실이의 손목도 쥐였다. 그는 보리알같은 눈물이 줄끔줄끔 삐여져오르는 금실이의 얼굴을 엄한 눈빛으로 마주보았다. 이게 혁명 못하겠다고 하동거리에 내뺐던 녀자야? 《음… 어데가 아픈가?》 정대환은 도끼눈을 한채 한마디 물었다. 《할아버지, 온데가 다 아파요.》 그는 또 《음…》 소리를 내였다. 속으로는 점점 더 쾌씸한지고 하는 생각이 괴여올랐다. 그는 마치 옛날 독립군대렬에서 도망쳐갔던 대상을 놓고 앉아 다스리는듯 한 심정이였다. 지금 구석쪽에 앉아있는 아낙네들은 총알구멍이 숭숭 뚫어진 김정숙동지의 목도리를 서로 채다가 보며 혀를 쯧쯧 갈기기도 하고 한숨을 짓기도 했다. 《어이구 목도리에 구멍이 숭숭 나게 총을 쏘아대는 속에 어떻게 들어가 사람을 구해내가지고 달려왔을가?》 《그러게말이요. 목도리에 맞으면서 총알이 제 피해주었기에 말이지 어쩔번했소?》 《정말 어쩜 이렇게도 번번이 사람을 울리오? 내도산에 더운물을 날라갈 때에도 사람의 마음을 꽉 쥐였다 놓는것 같더니 이번 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고쳐 쳐다보게 만드는군요.》 아낙네들 소리에 정대환은 또 뜨끔뜨끔하는 충격을 받아안았다. 결국 사람찾으러 쉽게 갔다오지 않았다는 말인데 그 말이 왜 이렇게 가슴한복판에 도끼질을 하는지 몰랐다. 진맥을 다 하고난 정대환은 내인들에게 몇군데 침도 놓았다. 그리고는 한지에 반초로 휘갈겨쓴 의서책도 한참 들여다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미음그릇을 들고 올라오셨다. 심씨는 확실이를 받들어일구고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를 받들어일구시였다. 《어서 들어요. 낟알물이 들어가야 기맥을 추지 않겠소.》 《그럼요, 아픈것도 기맥을 추고 못추기가 다르지 않겠어요. 빨리들 드세요.》 심씨의 말을 김정숙동지께서 받으시였다. 확실이는 사시나무 떨듯하는 손에 숟가락을 쥐고 미음을 떠날라갔다. 그러나 금실이는 손가락마다 굼벵이 몸피같이 헝겊을 둘러감기도 하고 또 그 손가락들이 풍풍 쑤시기도 해서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제 형 금옥이가 다가앉으며 퍼먹이겠다는걸 밀어내고 김정숙동지께서 한숟갈 두숟갈 후후 불어가며 입에 떠넣어주시였다. 《세상에…》 아낙네들은 눈물이 글썽해서 또 혀들을 찼다. 밖에서 웅성거리던 혁명군들도 문앞으로 와서 들여다보았다. 리범진이도 와서 들여다보며 인제 미음이 들어가니 곧 대순 뻗쳐오르듯 힘이 솟을거라고 했다. 지금 마당에선 오포수가 새로 모여든 혁명군들을 붙잡고 하동거리에 갔다가 빠져나오던 이야기를 또 한바탕 퍼냈다. 그저 보는 사람마다 붙들어앉히곤 그 이야기였다. 벌써 이 마당에서도 그 소릴 몇번 옮겼는지 모른다. 《좌우간 대담하긴 대담합디다. 그 사지에 사람을 찾으러 들어가는것도 보통 담보가 아니지만 말파리우에서 경치운 아낙네들을 량 겨드랑이에 끼고 나오며 뒤따르는 기병놈들을 쏘는데 그놈들이 여불없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너부러지질 않겠소. 날이 어슬어슬 어두워오고 물안개까지 뽀얘지기 시작하는 때…》 김정숙동지에 대한 찬사가 터져나오는것이였다. 《그래 포수령감은 한놈도 쏴제끼질 못했소? 중대장이 내주는 부라우닝까지 차고가서…》 《쏘긴 쏘았지요. 허지만 저놈의 별박이를 모느라고 바루 겨냥이 됩데까?》 대원들이 소리내여 웃었다. 별박이란 이마빼기에 흰점이 있는 말을 이르는 소리였다. 침대를 간수해넣은 정대환은 두어깨를 한발 올려솟구며 숨을 들이그었다가 은근히 부들부들 내쉬였다. 그는 미음을 떠먹이는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땀이 함빡 나고 혈조가 물든 아릿다운 얼굴을 한참 뚫어지게 보았다. 그는 지금 별생각이 다 났다. 늘 자기앞에 다소곳이 앉아 묻는 말을 공손히 대답하군 하던 김정숙동지의 그 모습, 그 말소리도 떠오르고 부녀회를 꾸리던 날 밤 곰골에 와서 독립군 사는걸 보니 뉘우침이 절반, 설음이 절반 섞인것도 같아서 할아버지, 아버지생각도 떠올라 가슴이 무겁노라고 하던 그 연하고 부드럽던 말소리도 들려오고, 전호에서 오금이 까드라들었을 때 더운물통을 품에 안고 올라와 김이 물물 나는 물을 부어주며 타는 목 추기고 언 가슴 녹이라고 권하던 그 모습도 떠올랐다. 저 흰 눈결같이 깨끗하고 준수한 얼굴에 만사람을 울리는 호소가 넘쳐나는걸 내 인제야 본단말인가! 어느 하늘아래 저런 딸이 또 있을가. 저런 귀감이 내 나라 내 강산의 치마두른 아낙네들을 다 떨쳐나서겐들 못할가. 그래, 저 인품, 저 총명, 저 지혜 그리고 그 용맹, 그것이 삼강오륜에서 태여났단말인가, 인의례지속에서 태여났단말인가. 내가 오장에 썩은 뿌리가 박혀 사람의 진국을 볼줄도 몰랐고 사람의 아릿다움과 드세참과 그 부드러움이 어데서 태여나는줄도 몰랐구나. 《정숙아 !》 정대환이 격한 음성으로 부르짖는바람에 김정숙동지께서는 물론 딴 아낙네들까지도 다 얼굴을 들었다. 《내가 너를 인제 다 알았다. 네가 진짜 이 나라의 참된 딸이로구나. 장군님품이 아니고야 너같은 녀걸이 생겨날수 있겠니? 장하다, 천하에 고함쳐 자랑하구싶고나!》 《할아버지, 무슨 그런 말씀을…》 《아니다. 어 어서 미음을 대접해라.》 정대환은 푹 가라앉은 음성으로 마지막 말을 던지고는 의서책을 들고 일어섰다. 남바위를 내버리고 일어서기에 아낙네들이 얼른 그걸 집어서 드렸다. 정대환은 와들와들 수전이 난 손으로 남바위를 받아서 머리우에 눌러썼다. 이날밤, 정대환은 밤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지팽이를 이끌고 동네를 휘돌았다. 뿌리를 못들었던 그것을 뽑아던지는 진통이 온것이였다. 뿌리를 못든 그것때문에 혁명군들이 하는 다 옳은 일을 옳은 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울꺽울꺽 역증을 느끼며 쩍하면 피줄이 뻗쳐서 목침을 두드리기도 했던 그 용렬한것, 한생 오장륙부에 절고 엉켜붙어서 그게 가히 참이며 사람이 배워야 할 으뜸이라고 여겼던 그 낡고 용렬한것을 뽑아버리는 진통이 왔다. 그는 허둥지둥 걸었다. 장윤학이라도 만나서 무슨 이야길 나누어보고싶어 웃마을쪽으로 걸어올라가다가 다시 돌아서 내려오기도 했다. 눈우로 굵은 지팽이 끄는 소리가 즈릉즈릉 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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