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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31 회)
제9장
2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받아안은 가슴속 가벼운 파동을 밀어제끼며 또 금실이를 어떻게 해야 무사히 뽑아내가지고 돌아갈수 있을가 하는 생각을 하시였다. 전투가 끝나자 이어 달려왔는데 인젠 하동거리에 다 오셨다. 어쩐지 안절부절할수 없이 맘이 뛰놀기도 하시였다. 금실이는 지금 어떻게 되였을가, 그냥 집에 있기나 한가, 몸져 누워서 앓지는 않는지, 아니면 다시 잡혀들어가 고문을 받고있지나 않는가… 금실이의 비명소리가 귀전으로 휙휙 날아오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이 있는 계림시의 지하조직과 련락을 가지고 올걸 그랬다는 생각도 드시였다. 리범진중대장은 바로 그렇게 하는게 좋겠다는걸 언제 그런 련락을 맺고 어찌고 하며 날자를 보내겠는가고, 그러다간 금실이를 아주 잃어버릴수 있다고 부랴부랴 오포수의 말파리를 동원해가지고 오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화토불이 타는것 같은 가슴을 다잡으며 침착히 주위를 살피시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호리구찌부대가 내도산에서 두드려맞고 퇴각해내려오기 시작한 뒤엔 이 일대에 둥지를 튼 왜놈들이 모두 기를 죽이고있는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만 않은것 같으시였다. 웬놈들이 골목골목을 으쓸거리며 쏘다니는것이 보이였다. 올망졸망한 집들이 박여앉아있는 거리가 온통 그놈들 압력에 짓눌려 숨을 가쁘게 쉬고있는것만 같으시였다. 《아직 멀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오포수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으시였다. 조참봉댁이라고 하는 금실이언니의 시집을 물으시는것이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조참봉은 룡정에서 장사를 하다가 망해서 몇해전에 이리로 왔는데 금실이는 지금 그 집에 얹혀있었다. 《아직 좀 더 가야 되지요. 그 령감이 여기 와 살면서 세번씩이나 옮겨앉다나니 거리변죽으로 밀려났지요. 망해가니까 집간도 순차로 기와집이 초가집 되고 초가집이 오두막으로 되였지요. 저기 저 골목을 꺾어들면 됩니다.》 오포수는 채찍을 후리며 길다랗게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그 골목앞까지 다 왔다. 《말파리를 잠간 세우세요.》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오포수는 말파리를 세웠다. 《아까 약속한대로 난 여기 어디서 기다리겠어요. 이 근방에도 기다릴만 한 집이 있지요?》 《내가 아는 집이야 아무데나 있지요. 그럼 피물상네 집엘 갑시다. 전치근령감네 집엘 갔으면 좋겠는데 그 집은 여기서 좀 멀지요.》 《피물상네 집에 조참봉의 며느리를 데리고와도 수상하게 보지는 않을가요?》 《수상하게 보다니요? 온 거리 사람이 다 나드는 집인데… 그 집에 마침 그럼직한 방이 있지요.》 오포수는 말파리를 돌려세웠다. 피물상네 집에 오니 텁석부리 피물상령감이 가게안에서 오포수를 내다보더니 반색했다. 《허 뻔질나게 다닌다. 또 피물을 가지고 왔단말요?》 《무슨놈의 피물을 또 가지고 왔겠소. 그새엔 짐승잡이를 못했소. 오랑캐잡이를 하느라구…》 《아참, 나두 지금 춤을 덩실덩실 추고있는중이요. 요샌 이 가게안에 앉아서 피투성이 된 호리구찌병정놈들 구경할내기에 딴 여념이 없소. 글쎄 어제는 대갈 터진놈이 한놈 가게안에 달려들지 않겠소. 담배 달라구 흐흐흐…》 수다쟁이령감이 법석 떠든다. 오포수가 대꾸할 새도 없이 또 늘어놓는다. 《그래 장군님군대가 몇천명이나 와서 그런 승전고를 울렸소?》 《쉿, 떠들지 마오. 혁명군에서 손님이 왔소.》 오포수는 말파리에서 내리는 김정숙동지를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뭐 혁명군에서?》 피물상은 입을 쩍 벌리며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왜놈 한부대같은건 순식간에 해제끼우.》 《아니 녀잔데두?…》 《녀자혁명군이 더 호랭이같이 싸운다우.》 그제야 피물상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가게안으로 들어서시는 김정숙동지를 흘끔흘끔 살펴보았다. 《수고하세요. 가게에 들어와서 미안해요.》 《네, 뭐 미안할것이 있습니까.》 피물상령감은 두손을 합장하며 대꾸했다. 《그럼 아저씨, 빨리 좀 갔다와주세요. 그리구 피물상아저씨, 전 댁에서 누구를 좀 기다리겠어요.》 《네네, 그럼 저…》 피물상령감은 손바닥만 한 유리가 붙어있는 방문을 드르르 열었다. 그리고는 어서 들어가라고 두손길로 받드는 시늉을 했다. 《가게방으로 오랑캐가 거접을 못하게 하라구.》 김정숙동지께서 방안으로 들어가시자 오포수는 피물상령감에게 또 한대 침을 놓았다. 《그러다뿐이요.》 오포수는 얼른 밖으로 나가 말파리를 골목에 들여다세우고는 줄달음을 놓았다. 피물상령감은 당장 수다가 꾸무러들고 어험어험 기침을 하며 가게안을 거닐었다. 녀자혁명군이라니 륙혈포도 차고 왔겠지. 아니 륙혈포만 차고 왔을가. 김일성장군님부대는 온갖 신출귀몰한 전술을 다 쓴다는데 무슨 무긴들 없을가. 별별 희한한 무기를 죄다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고 왔을수도 있지 않은가. 그는 얼른 등을 굽히고 창문유리쪼각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디 앉아있는지 녀자혁명군이 뵈질 않았다. 기웃거리다간 눈이 마주칠것 같아 얼른 일어섰다. 그러면서 무슨 안개가 되였거나 보이지 않는 도술을 썼을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두눈을 부릅뜨고 또 기침을 했다. 왜놈이라도 달려들면 답새길듯 한 자세로 가게안을 왔다갔다했다. 방안으로 들어가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앉아서 금실이의 언니가 오기를 기다리시였다. 다행히 방안엔 아무도 없어서 비밀이야기를 하기에도 좋을것 같으시였다. 얼마후 정말 오포수가 사람을 데리고왔다. 키가 후리후리한 녀인이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녀인을 맞으시였다. 《미안해요. 딴집에 와앉아 이렇게 찾아서…》 《누구신지요?》 《어서 안목으로 들어오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을 안목으로 끌어들이시였다. 녀인은 의아해하며 김정숙동지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금실이보다 기골은 큰데 눈매와 입새는 금실이를 신통히 닮았다. 《전 산에서 왔어요. 금실언니와 함께 지냈어요.》 《네?…》 그제야 녀인은 눈을 흡뜨며 김정숙동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래 금실언니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우선 궁금한 소식부터 물으시였다. 녀인은 우들우들 떨며 얼른 대꾸하지 않았다. 《혹시 다시 붙들려 들어가지나 않았어요?》 《집에 있어요…》 녀인은 낮은 음성으로 대꾸하며 한숨을 지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은근히 안도의 숨을 내쉬시였다. 다시 붙잡히지 않았다니 마음먹고온 걸음이 헛걸음이 되지는 않을상싶으시였다. 《그새 얼마나 고생을 했어요? 금실언니가 산에서 내려와 그렇게 욕을 보았다니 언니되시는분이야 속을 썩이면 여북 썩였겠어요. 산에서 금실언니의 기별을 듣구 모두들 가슴을 떨었어요. 그래서 소식을 듣자 한시바삐 내려와본다는것이 오늘에야 내려왔어요.》 녀인은 대꾸가 없이 헉하고 한마디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소리를 죽여가며 자꾸 울었다. 틀어올린 낭자엔 시아버지의 몽상인지 남편의 몽상인지 베헝겊오리의 상댕기도 드려져있다. 큰 키에 비해선 목이 가긍할 정도로 헐끔해졌다. 《우지 마세요.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언니가 설음을 참아주셔야 해요.》 《산이라니 어느 산에서 오셨나요?》 녀인은 아무래도 믿기가 어려운지 눈물 흐르는 얼굴을 쳐들고 고쳐 묻는다. 《이번 쌈이 벌어졌던 내도산에서 왔어요.》 《그 앤 거기 있진 않았다는데요.》 《금실언니가 떠난 다음에 내도산으로 이동해왔어요.》 녀인은 그제야 또 얼굴을 숙이며 울었다. 《그래 금실언니가 상처는 크게 입지 않았어요?》 《왜 상처를 크게 입지 않았겠어요. 지금 사람몰골이 돼서 누워있는줄 알아요? 말로는 옮길수 없는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몸이 채독처럼 부어 놓여나오지 않았겠어요.》 녀인은 눈물을 이리저리 씻으며 꺽꺽 목에 걸리는 소리로 이야길 했다. 《치료를 하세요?》 《치료를 어떻게 하겠어요? 오랑캐들이 내내 밖에서 어실거리고있는데 어데 나다닐수가 있어요. 요새는 손톱눈이 쏜다고 장 부둥켜안고 울지 않아요.》 《손톱눈은 어째서요?》 《그놈들이 손톱눈밑에다 돗바늘을 박으며 별걸 다 묻더라지 않아요. 어데 있다가 왔느냐? 무슨 임무를 맡고 하동거리로 기여들었느냐? 장군님은 어데 계시냐? 너 있던데 군대는 얼마나 있느냐? 여기 지하조직원은 누구누구냐? 남편은 어데 있느냐? 별걸 다 물으며 대지 않으니까 손톱눈밑을 돗바늘로 꽉꽉 찌르더라질 않아요. 지난 초겨울에 붙잡혀들어간것이 한달나마 그 졸경을 당했으니 어떻게 됐겠어요.》 《그래 붙잡히긴 어떻게 돼서 붙잡혔어요?》 《여기 와서 두어달 가까이 있는동안 어느 년놈이 밀고를 한것 같아요. 여기 오기전에도 여름에 떠났다는것이 죽은 남편 생각을 하면서 능지영에도 가고 또 숱한 곳을 휘돌아치다가 와서 몸이 말이 아니였어요. 그런걸 붙잡아들여다놓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은근히 긴숨을 내쉬시였다. 역시 능지영에 갔댔고나, 그런걸 인편으로 부탁을 했으니 아무 소식도 모르고 왔댔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정말 가슴이 아파서 못듣겠군요. 그러나 그렇게 꿋꿋이 뻗쳤다니 얼마나 장해요. 그게 우리 녀성들의 절개가 아니겠어요.》 《하긴 그 절개를 지키노라고 제 륙신을 그 몰골로 만들어가지고 나왔지요. 아무렴 그런 소리야 숨이 끊어진들 그놈들한테 대겠어요? 그러게 어제밤에는 아무래도 또 잡혀들어갈것 같은데 이번에 들어가면 그 행패를 이겨낼것 같지 못하다고 서슬을 먹으려 하지 않았겠어요. 그놈들한테 무슨 소리를 대느니 차라리 제손으로 제 목숨을 끊는게 낫겠다고… 그래서 내가 서슬사발을 빼앗아던지고 함께 붙안고 앉아 목놓아 울었어요.》 들을수록 가슴저린 소리였다. 남편을 못 잊어 남편이 죽은 곳에 달려갔다가 그담엔 대오로 되돌아올수도 없어서 이곳저곳 헤매며 돌아다닌끝에 제 언니를 찾아오긴 했으나 자기를 지켜내려는 정신이 얼마나 무섭게 살아있는가! 이 칼날같기도 하고 백옥같기도 한 정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무얼 소중히 여길가. 피물상주인령감이 유리쪼각 붙은 방문을 툭툭 치며 지나간다. 어험어험 기침을 깇기도 했다. 거리에든 가게방에든 왜놈이 나타났다고 신호를 하는것 같았다. 둘이는 잠간 이야기를 끊었다. 《저 제가 온건 다른게 아니예요. 금실언니를 산으로 데리고 가자고 왔어요. 이 함정같은데 어떻게 그냥 있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윽해서 또 소곤소곤 이야기를 꺼내시였다. 《물론 언니 되시는이가 더 잘 아껴도 주고 보살펴도 주겠지만 범의 아가리같은데 앉아서 어떻게 견디겠어요. 정말 저놈들이 또 끌어다가 행패를 할수도 있지 않아요. 그것도 그것이지만 한번 혁명의 길에 나선이상 그길에서 락오되지 않도록 우리모두가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저두 그걸 알구있어요. 혁명은 몰라두 동생이 혁명에서 떨어져선 안된다는걸 알구있어요. 그러니 저 애를 어떻게 산으로 데리고 가겠어요? 지금 걷지도 못하는걸… 그리고 저놈들이 장 울태밖에 지키고있는 모양인데 빠져나오긴들 하겠어요?》 녀인은 눈물을 씻으며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그러게 이렇게 하세요. 인제 갔던 할아버지가 말파리를 가지고 왔어요. 그러니까 그 말파리를 가지고 가서 큰 병원으로 실어보낸다 하고 태워보내세요. 계림시보다 더 큰 룡정의 큰 병원에라도 치료를 보낸다고말이예요. 놈들이 달려들어 못가게 하면 사람을 죽게 만들고 치료도 못받게 하느냐고 들이대세요. 그리고 룡정친정에서 사람을 태워보내라고 말파리까지 보내왔다구… 좀 대바르게 맞서세요.》 《룡정친정은 어데 그대로 있어요? 다 망해서 저 어디 북만으론가 떠나갔다는데…》 《그놈들이 그걸 알겠어요? 그저 친정이 룡정에 있다고 우기기만 하면 되지 않겠어요?》 녀인은 두어깨를 낮추며 우들우들 떨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그럼직하긴 하지만 저놈들이 그까짓 소리는 모르노라고 따귀라도 후려치면 맞았지 맞서길 어떻게 맞설텐가. 들키기만 하면 십상 사람도 뽑아보내지 못하고 욕만 볼것 같았다. 《그놈들 단련을 너무 받아서 가슴이 떨리는 모양이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의 손을 따뜻이 잡아쥐여주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렇게 겁을 낼것까지는 없어요.》 《글쎄 그놈들을 어떻게 당해내겠어요?》 《그놈들은 겉만 우락부락했지 실상 속으로는 더 벌벌 떠는 겁쟁이들이예요. 이렇게 하세요. 그놈들이 정 시비를 하고 나서면 룡정경찰에 전보를 치라고 하세요. 이러한 사람이 치료를 가니까 감시속에서 치료받게 하라고말이예요. 그리고 또 놈들이 장 지켜서있지야 않겠지요?》 《…》 《지켜서있지 않는 틈을 타서 말파리에 태워보낼수도 있지 않아요. 말파리를 멀찌감치 딴집앞에 갖다세웠다가 그런 기회를 노려도 되지 않겠어요.》 녀인은 여전히 말이 없이 떨리는 손으로 치마끈을 죄여맸다. 《꽤 해낼수 있을것 같애요?》 《해보겠어요.》 《마음만 든든히 먹으면 돼요. 제가 여기서 지키고있겠으니 마음 푹 놓고 동생을 위해서 한번 용기를 내보세요. 할아버지는 든든한분이예요. 그러니 마음 푹 놓아도 돼요.》 김정숙동지의 차분하면서도 담찬 말씀과 뒤에서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에 녀인은 금시 낯빛이 달라져 일어섰다. 굵은 은가락지 낀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겨 낭자도 고쳐 틀었다. 단단히 마음을 먹는것 같았다. 그러나 녀인을 내보내고나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안정치 못하고 서성거리시였다. 아무리 녀인이 해내겠다는 강심을 먹고 간다 한들 정말 저놈들이 달려들어 때리고 차고 하는 소동이라도 벌린다면 사람을 어떻게 빼내여보낼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금실이의 속도 모르지 않는가. 혁명대오에서 떨어져나왔는데 인제 죽게 된 몰골을 하고 산으로 다시 들어가겠다고 나설수는 있겠는가. 금실이가 안간다고 버티기만 하면 일은 튀는게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쩐지 되지도 않을 억지놀음을 펼쳐놓고 앉아 사람이 빠져나오길 기다리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안절부절 못해 하시며 문에 붙인 쪽유리로 가게안을 내다보시였다. 오포수가 어떻게 단속해놨는지 피물상령감은 그냥 가게문앞에 붙어서있다. 왜놈들이 나타나지 않는가 해서 열심히 감시를 하는것 같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앉아계시다가 얼른 도로 일어서시였다. 아무리 생각해야 자신께서 여기 앉아서 기다리는게 잘못된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불더미속에서 타는 사람을 구해내려고 왔다면 불더미속으로 뛰여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우쩍 자기 가책이 느껴지기도 해서 문을 열고 가게방으로 나오시였다. 《아니, 어디로 가시려고 이럽니까?》 피물상령감이 송구해하며 물었다. 《저 잠간 나갔다 오겠어요.》 《이제 그 아주머니네 집에 가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리론 못갑니다. 오랑캐지킴이 장 버티고 서있습니다.》 《오랑캐가 저야 어쩌겠어요? 걱정해주셔서 정말 고마와요. 갔다가 올 때 또 들릴지 모르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밖으로 나서시였다. 검은 치마저고리에 회색목도리를 휘감은 그이께서는 거리로 종종걸음을 치시였다. 어데서 또 애들이 끓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한발 먼저 집으로 돌아온 금실이의 언니 금옥이는 집주위를 살펴보고나서 얼른 방안으로 들어갔다. 늘 개털모자 쓴놈이 어슬렁댔는데 그런놈이 보이지 않기에 이런 틈에 제꺽 업어내다가 실어보낼 생각을 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였다. 《얘, 금실아, 어서 일어나라. 죽을수에 부닥치면 살수가 곁묻어온다더니 산에서 널 데리러 왔구나. 빨리 나가서 말파리를 타고 떠나라. 말파리까지 가지고왔구나.》 금옥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동생을 흔들었다. 《언니, 무슨 말이예요?》 금실이는 이불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눈이 커져서 물었다. 《산에서 널 데리러 왔어. 내도산에서… 너와 함께 지냈다는 동무가 널 태워가지고가겠다고 말파리까지 가지고왔어. 빨리 일어나 차비를 해라.》 그래도 금실이는 그저 한참 언니의 얼굴을 쳐다만 보았다. 모습이 무서웠다. 부은 얼굴에 푸릿푸릿 반점이 내돋고 머리도 한절반 빠져나갔다. 쏜다는 손톱들엔 약을 바르고 손가락마다 헝겊으로 동여맸다. 《아니 내도산에서 웬 사람이 날 데리러 와요? 내가 내도산에 있었다구요?》 《얘, 술기막골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리로 왔단다. 어서 일어나라. 이 이불은 아마 가지고 가야겠지…》 금옥이는 금실이가 덮은 이불을 힝 벗겨서 꾸둥쳐안고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먼저 말파리에 내다가 실으려는것이였다. 담배가게로 나가는 골목길로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실이는 언니의 소리가 아직도 무슨 소린지를 몰라 얼떨떨한 정신으로 일어나앉아있었다. 술기막골에 있던 사람들이 내도산에 와서 자기를 데리러 오다니? 아무리 생각해야 그런 일은 있을상싶지도 않았다. 도망쳐나온 자기를 그 누가 찾으러 왔을테란말인가. 내도산에서 여기까지 그 먼길을 말파리까지 가지고 달려올 사람이 누구인가? 정숙이? 아니 정숙동무인들 나를 그렇게까지 구해가자고 할 까닭이 있는가. 무엇때문에 그렇게 애쓰며 여기까지 찾아올텐가. 모를 말이였다. 그 누가 무중 달려들어 속이는것 같기도 하였다. 함정으로 곤두박질치는 자기를 더 지옥같은 함정으로 몰아가느라고… 담배가게 옆골목에서 또 달음박질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말파리우에 자리를 해놓고 달려들어오는 모양이였다. 정말 언니는 숨이 턱에 닿아서 방안으로 들어섰다. 《얘가 왜 이러고 앉아있니? 옷매무새랑 좀 고치려무나.》 《언니, 어떻게 생긴 녀자가 왔어요?》 《아니 네가 산에서 왔다는 소리를 곧듣지 않는 모양이구나. 너와 함께 있었노라고 하는 녀자인데 눈이 번쩍 떠지게 잘 났더구나.》 금실이는 정숙동무가 분명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기야 정숙이 아니고 그 누가 자기를 찾아올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암, 상촌에서부터 자기를 이끌어준 정숙이, 저야 나를 이끈다고 하며 이끌어주었을가. 그저 따뜻한 정, 따뜻한 목소리로 언니 언니 하고 부르며 웃음을 담고 이 언니더러 보라고 제 먼저 어려운 일에 뛰여들며 눈이 시도록 보여준 그 높디높은 정신적인 표상! 바로 그게 자기를 이끌어준 그의 높은 속모습, 표연히 나붓긴 기발이 아니였단말인가. 그런데 나는 그 기발, 그 귀감을 저버리고 왔지. 저버릴 마음으로 저버린건 아니지만 죽은 남편생각을 하며 미친것 같이 뛰여돌아다니다가 대오로 못들어갈 형편이 되였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언니를 찾아오고말았지. 그런데 나를 또 데리러 왔다니 내가 어떻게, 무슨 낯을 들고 그를 또 따라간단말인가. 《언니, 난 산으로 못가요. 내가 인제 이 몰골을 하고 산으로 어떻게 가요? 떠나온 대오속으로 내가 또 어떻게 가느냐말이예요. 난 그저 이러다가 죽어야 할 녀자예요.》 《아니 그건 무슨 소리냐 ? 한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란 말두 있단다. 남이 저렇게 말파리까지 몰고 수백리길을 달려왔는데 얼굴 들고 돌아갈수가 없다고 빈 말파리를 돌려보내겠니? 어서 일어나 내 잔등에 업혀라! 지금 밖에 지키는놈이 없을 때 빨리 빠져나가 말파리를 타자!》 《글쎄 언니, 못간대두요. 난 못가요.》 《왜 못가니 얘, 네가 끝끝내 내 집 구들바닥에 누워서 날 고통받게 만들자고 못가겠다는거냐?》 《언니, 그러게 내가 서슬을 먹고 죽겠다지 않았어요. 서슬단지는 어쨌어요? 난 인제두 서슬단지를 찾았어요.》 《얘, 서슬을 먹어두 네가 내 집 방안에선 서슬을 못먹는다. 난 네 송장을 붙안고 통곡을 터뜨리구싶진 않다.》 금옥이는 제 동생을 윽박지르며 두팔목을 걷잡아 어깨우로 끌어넘겼다. 동생은 팔목을 놓으라고 소리치며 온몸을 엿가락처럼 늘어뜨렸다. 《아니 네가 환장을 했니?》 《환장을 했대도 좋아요.》 《얘, 얘 그럼 이 자리에서 당장 죽어라, 죽어.》 언니는 너무도 안타깝고 분해서 동생을 쥐여박았다. 동생도 엉엉 울며 몸을 뒤틀었다. 그는 그저 제 몸뚱아리를 불에 홀랑 살라버리고싶었다. 바로 이럴 때 김정숙동지께서 문을 두드리며 들어서시였다. 두 형제는 말도 못하고 꺽꺽 흐느껴울었다. 《왜 이러세요. 금실언니, 내가 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들어앉으며 금실이의 두손목을 꽉 잡으시였다. 금실이는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쳐들며 얼른 김정숙동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바라보다 말고 와락 김정숙동지의 품에 엎어지며 울었다. 《언니, 왜 이래요? 급한 정황인데 빨리 나가서 말파리를 타요. 지금 내도산에선 언니가 오기를 눈이 감기도록 기다리고있어요.》 《정숙동무, 내가 글쎄 어떻게 내도산으로 가요? 내가 무슨 면목으로 산에 다시 들어가요? 난 정말 정숙동무두 볼낯이 없어요…》 금실이는 눈물이 쏟아지는 얼굴을 쳐들며 부르짖었다. 정말 그의 얼굴은 다시 쳐다볼수 없게 되였다. 고문당하고 나와서 퉁퉁 부어 서슬을 먹겠다고 몸부림쳤다니 몸이 무섭게 됐으리라고 짐작은 했으나 이처럼 끔찍스레 됐을줄은 모르시였다. 그전날 금실이 비슷한 모습이란 하나 없다. 서슬을 먹고 죽겠다고 했다니, 아니 지금은 어디 살아있는 얼굴이란말인가. 이 얼굴을 그 어디 산 사람의 모습이라고 보겠기에 제 언니와 서슬먹겠다는 싸움을 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으시였다. 《언니, 왜 산으로 못가겠어요. 언니의 낯이 어쨌게요? 그 누가 놈들의 고문에 그렇게 된걸 흉보기라도 하겠기에 그런 말을 하세요?》 《난 글쎄 산으로 못가요. 정숙동무는 무엇때문에 그 먼길에 말파리를 가지고왔어요? 내가 그 무슨 동무의 혈붙이예요? 동무의 친언니라도 되게 그렇게 눈물이 나게 애써요? 이 몹쓸년을, 대오를 저바리고 나온년을… 그리고 내가 인제 산으로 들어가야 정숙동무에게 또 걸음걸음 애나 먹였지 무슨 쓸모가 있겠기에 그래요. 난 이젠 쭉정이예요. 허울만 남았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아니 그건 무슨 말이예요? 난 언니의 가슴속에 있는 보석을 보고 왔어요. 조선녀성만이 가질수 있는 그 보석, 그 절개를 보고 왔어요.》 《아니 보석은 뭐고 절개는 뭐야요?》 《왜놈들 고문에 입을 열지 않고 비밀을 곱다랗게 지켜냈으니 그 맘이 보석 아니예요. 그 절개가 보석 아니예요. 그 보석이 있는데 무슨 조선녀성의 값을 잃었다고 쭉정이니 허울만 남았다느니 하세요?》 《어쩜…》 금실이는 입을 헝 벌리며 김정숙동지를 다시 쳐다보았다. 듣고 보니 정말 자기를 놓고 삽시에 눈이 고쳐 떠지는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정숙이의 마음속깊이의 끝간데, 총명한 눈길의 끝간데를 이리도 알수 없을가! 《그런 소릴 말구 싸움을 이기고 돌아가는 떳떳한 심정으로 산으로 들어가요. 누구도 언니를 놓고 언니가 생각하는것처럼 쭉정이니 허울이니 생각할 사람은 없어요. 자 빨리 일어서요. 걷지 못하겠으면 나한테 업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의 두손목을 잡아 자신의 어깨우로 끌어넘기시였다. 그러자 울고앉아있던 금옥이가 대들어 동생의 손목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자기 잔등에 업었다. 그는 발길로 문을 탕 차던지며 나갔다. 《언니, 이젠 그만 진정해요. 누가 듣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앞뒤를 살피시며 속삭이시였다. 밖에 나서니 오두막주변 다닥다닥 붙어앉아있는 집들의 처마밑에 이웃 아낙네들이 모여서서 웅성거리며 끓었다. 모두들 경찰이 안뵈니 얼른 빠지라고 소리쳐주었다. 그들도 벌써 사람을 뽑으러 온것을 아는것이였다. 담배가게 옆골목으로 달려나온 김정숙동지와 금옥이는 금실이를 말파리우에 태우고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언니, 언니는 내가 떠난 뒤 놈들 성화를 어떻게 받겠어요?》 이불속에서 금실이가 울며 부르짖었다. 《가만있거라. 생각해보니 나두 떠나야 할것 같구나.》 금옥이는 몸을 사시나무떨듯하며 대꾸했다. 불시에 불같은 결심이 뭉그러지는 모양이였다. 필연코 그렇게밖엔 할수 없는 결심으로… 《언니, 생각을 잘했어요. 여기선 못살아요. 나와 함께 어머니품같은데로 가요. 정숙동무, 정숙동무, 우리 언니도 함께 가게 해줘요.》 《어서 타세요. 그럼 금실언니가 더 좋지 않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등을 떠미시자 금옥이는 집에 잠간 들어갔다 나오겠다면서 골목길로 들이뛰였다. 얼마 안있어서 그는 무언가를 보에 싸이고 목을 휘청거리며 달려나왔다. 《그건 뭐예요?》 《재봉침대가리예요. 재산이라군 오두막과 재봉침 하나밖엔 남은게 없어요. 그래서 오두막은 내버려두 재봉침은 내버릴수가 없어서 대가릴 떼가지고 왔어요.》 키가 큰 금옥이는 임을 내리며 비틀걸음을 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옥이를 꽉 붙안으시였다. 금옥이는 김정숙동지의 품에서 설음이 터져 울었다. 《이러지 말아요. 적이 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옥이를 말파리우에 부축해올리시였다. 산으로 함께 가다뿐일가. 이렇게 매달리는 녀자를 못간다고 할 까닭이 어데 있을가. 이 불쌍한 녀자를 범의 굴속에 그냥 있으라 버려두고 금실이만 뽑아가지고 가자던 일이 뉘우쳐지기도 하시였다. 결국 금실이 하나를 구원하자고 왔다가 또 한 녀자를 더 구원해가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생활이 혁명으로 휘몰아보내는 조선녀성들! 우리야말로 태여날 때부터 혁명할 운명으로 태여나질 않았는가! 말파리우에 오르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옥이를 곁에 앉히고 한팔로 꽉 끼시였다. 저쪽에선 금실이가 제 언니를 얼싸 붙안고 잔등을 쓸어주며 법석했다. 그통에 금옥이는 제가 더욱 정든 옛집으로 돌아가는것 같은 감격에 목메여 울었다. 오포수는 채찍을 후렸다. 그도 신바람이 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옥이의 팔을 쓰다듬으시면서도 뒤를 살피시였다. 피물상집앞에 이르자 피물상령감이 말파리우의 광경을 보더니 입을 쩍 벌리고 놀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싶어 전전긍긍 떨고있었는데 사람을 둘씩이나 뽑아내가지고 달려오지 않는가. 《할아버지, 정말 고마워요. 편안히 계세요.》 말파리우에 앉으신 김정숙동지께서 각근히 인사를 건늬시였다. 오포수도 피물상령감에게 고개를 끄덕해보이며 씽긋 웃었다. 《음, 놀라운 일이군, 범의 아가리에 와서 사람을 뽑아가지고 내빼는군…》 피물상령감은 구레나릇턱을 저으며 감탄했다. 그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날아가는것 같은 말파리를 한참 서서 바라보았다. 바람 한점 없는 저녁이였다. 어둑어둑 땅거미내리는 골목들엔 저녁연기가 흐르고있다. 온 거리가 물안개 낀 개역같기도 한데 그우에 오두막들이 닥지닥지 널려있었다. 말이 세차게 달렸다. 그런데 얼마 달리지 않아 적이 추격해올줄이야. 백양나무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저편 뽀얀 운기속으로 여러놈이 달려올라오고 고함질소리가 일어났다. 《서라! 서라!》 놈들은 덫을 놓고 지키다가 랑패를 보자 기광이 뻗친 모양이다. 호각소리, 고함질소리, 말도 두필이나 따라온다. 어느새 벌써 그렇게 뒤를 밟았는지 모르겠다. 《아저씨, 권총!》 김정숙동지께서는 오포수에게 손을 내미시였다. 오포수는 얼른 마부대에 간수해가지고 온 권총을 꺼내서 김정숙동지께 드리였다. 벌써 이런 일이 있을걸 예견하고 권총도 가지고 오신것이였다. 《서라! 서지 않으면 쏜다!》 뻗닿게 위협소리가 날아온다. 《빨리 모세요. 채찍을 후리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웨치며 권총을 들어 겨누시였다. 정말 놈들의 총알이 날아왔다. 뿅뿅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형제에게 엎디라고 소리치며 권총을 쏘시였다. 어슬어슬해오는 공간으로 총알이 날아가고 날아왔다. 지척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기병놈들이 거의 따라잡았다. 《서라! 서라!》 째지는것 같은 소리가 날아온다. 말파리옆에 총알이 우박처럼 뿌려진다. 그러나 이어 바투 따라오던 말 한필은 호용소리를 지르며 앞다리를 들고 하늘로 날아일어나더니 철싹 태를 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련속 갈기시였다. 오포수도 떠나올 때 권총을 품에 찌르고 왔는데 말을 몰다간 얼른 돌아보며 냅다 갈기군 한다. 어둠속에서 백열전이 붙었다. 말이 또 한필 비명을 지르며 길옆 언덕밑으로 굴러내려간다. 물안개 자욱한 개울물이 나졌다. 말파리는 개울물을 차며 번개같이 날아건넜다. 개울물을 건너 산굽이를 하나 돌아서서야 적의 총성은 좀 뜸해졌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금옥이형제를 이불속에 밀어넣고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뒤를 살피시였다. 한참 달려 산굽이를 또 하나 돌았다. 이불이 훌렁 벗겨지며 금옥이형제가 김정숙동지를 와락 부둥켜안았다. 으으 소리를 내여 울었다. 적이 쫓겨갔다는것을 아는것이였다. 《우지들 마세요.》 《어쩜 우리를 살려내느라고 이 고생을 해요?》 금옥이가 김정숙동지의 어깨팍을 내려쓸며 목이 메여 부르짖는다. 금실이는 제 언니의 잔등을 두드리며 울었다, 말파리는 밤새 달리였다. 봄이 온것 같은 밤이기도 했다. 축축한 기운이 대지를 내려눌렀다. 말도 사람도 온통 축축히 젖었다. 차츰 높은 산이 나타났다. 웅기중기 큰 산봉우리들이 보이고 말파리가 골짜구니를 빠지기도 했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제야 가슴이 후련해오시였다. 하늘에 치닿는 높은 령 하나를 숨이 차게 달려넘어온것 같기도 하시였다. 《이랴 쩌 쩌.》 오포수도 기분이 가벼워지고 어깨바람이 났다. 허공에 휘두르는 채찍이 회파람소리를 냈다. 그런데 어데인지 산굽이를 돌던 오포수가 저게 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말을 세우고 마부대우에서 힝 뛰여내린다. 말이 흐앙흐앙 숨을 토했다. 《여기 경치운 아낙네 또하나 있다아.》 오포수가 제편에서 고함을 질렀다. 《아니 경치운 아낙네라니요? 무슨 소리예요?》 김정숙동지께서 말파리우에서 물으시였다. 《좀 내려와보우. 뭐뭐 내도산이요? 내도산은 왜 찾소?》 아낙네가 내도산을 묻는 모양이다. 오포수는 노느니 정을 섞어 그러긴 하겠으나 웩덱 목소리를 높여 묻는다. 김정숙동지께서 달려가보니 정말 웬 아낙네 하나가 길바닥에 앉아 으응 울음을 삼키면서 눈물을 이리저리 씻는다. 머리에서부터 턱으로 수건을 둘러감았다. 그런가위에 어둠도 채 가셔지질 않아 얼굴이 어떻게 생긴 녀인인지도 알수 없다. 《아주머니, 왜 이렇게 길바닥에 앉아서 울어요?》 김정숙동지께서 곁에 앉으며 물으시였다. 아낙네는 대꾸가 없다. 귀를 싸동여서 듣지 못하는것 같았다. 《아주머니!》 그제야 녀인은 얼굴을 들었다. 《아니 이게… 확실아주머니 아니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정말 초풍이 날만치 놀래시였다. 틀림없는 확실이다. 확실이는 그저 입을 항 벌리고 쳐다만 본다. 《아주머니, 날 모르겠어요? 정숙이예요.》 그제야 확실이는 눈을 흡뜨고 와들거리는 두손을 쳐들었다. 덮치자고 하는 모양이였으나 덮치진 못했다. 《아주머니, 왜 이렇게 됐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확실이를 와락 붙안으시였다. 그제야 확실이는 김정숙동지의 두팔을 마구 거머쥐며 큰 울음보를 터쳤다. 《근거지누나! 근거지누나!》 확실이는 웨치기만 하면서 말을 못했다. 《아주머니, 울지 말고 어서 말파리를 타요. 길바닥에서 이럴 새가 없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확실이를 안아일으키시였다. 그는 무슨 고통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걸음을 떼지 못했다. 오포수까지 달려들어 부축해서 간신히 말파리우에 태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팔로는 금옥이형제를 휘여안고 다른 한팔로는 확실이를 휘여안으시였다. 말이 또 달리기 시작했다. 언 땅에서 말발굽소리가 장단을 치듯 울렸다. 스르륵거리며 미끄러져가는 바퀴소리도 서글픈 음향처럼 울린다. 이 무슨 일인가. 조선녀성의 피눈물로 얼룩진 구슬픈 력사를 이 말파리우에 통채로 걷어싣고 가는건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말편자소리도 아무 의미없이는 들어낼수 없으시였다. 얼마후에야 확실이는 북받치는 설음을 눌러가며 여기까지 굴러오게 된 사연을 저저히 이야기했다. 그는 쑥바치가 인심좋은 고장인데 가자 이어 수색대가 달려들어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였다. 그런데 애들이 적을 꾀여가느라고 나팔을 불며 달아났는데 그 애들이 돌아오지 않아 분임이가 눈보라 아우성치는 밀림속으로 찾아떠났다고 했다. 그러나 찾아떠난 분임이도 돌아오지 않고 애들도 돌아오지 않은채 날이 가고 밤이 갔다. 확실이와 리상녀는 눈앞이 아뜩해졌다. 보름이 지났을 때엔 그들도 쑥바치에만 그러고있을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확실이는 아직 상처가 낫지 않은 리상녀더러 팔을 걸메게 하고는 그를 부축하면서 애들을 찾아 떠났다. 밀림속을 걷고걸으며 애들과 분임이를 불렀다. 그러나 분임이도 없고 애들도 없었다. 인젠 두사람도 절해고도에 내던지운 신세가 되였다. 무서운 눈보라속에서 날이 가고 밤이 밝았다. 확실이는 인젠 애들을 찾자는 생각보다도 내도산으로 찾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도산이 어데인지를 알랴. 그저 자꾸자꾸 걸었다. 리상녀를 부축하며 어덴지도 모르고 자꾸 걸었다. 그러다가 리상녀는 몸에 부기가 나서 종시 걷지를 못했다. 확실이는 리상녀를 붙안고 앉아 울었다. 리상녀는 부은 눈가죽도 밀어올리지 못했다. 그는 실신해서 이따금 주먹을 부르쥐고 이놈 이놈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확실이의 품을 와락 떠밀치기도 했다. 그리고는 목이 터지는 소리로 애들의 이름을 불렀다. 태호, 홍갑이, 철이 그 숱한 애들의 이름을 다 내리불렀다. 그애들이 하늘로 날아간다고 두손을 뻗쳐들고 인젠 그만 날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기구한 피눈물의 한생과 리별하는 마지막 고함소리가 광막한 밀림을 울리였다. 확실이는 겨우 붙잡으며 마지막 내뿜는 그 억센 리상녀다운 원한의 몸부림을 달래였다. 리상녀는 불꽃이 꺼지듯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확실이는 눈을 감기고나서 어덴지도 모르고 내도산으로 오고온다는것이 바로 말파리 달리는 이 길바닥우에 와닿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앞이 아뜩해지시였다. 고생이 중첩하다 한들 이렇게 중첩할수야 있을가. 그 귀중한 아이들, 상촌에서부터 눈물과 사랑을 쏟아부으며 인제 좀 오금이 들썩하게 길러낸것들을 어느 밀림속에 가져다 죄다 뿌려던졌단말인가. 리상녀, 분임이, 분임이인들 살아있길 바랄수 있는가. 그리고 리상녀어머니는 그 피눈물이 시내를 이룬것 같은 기구한 한생을 걷고걷다가 결국은 조국광복의 서광도 못보고 어느 밀림속에 가서 무주고혼이 되였단말인가. 그 큰 웃음소리, 아이들의 엉덩판을 갈기던 그 큰 손, 거슬거슬하면서도 눈물이 많던 그 마음, 그게 다 눈보라처럼 사라져갔단말인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뜻밖의 아픔이 또 이렇게 안겨들줄이야! 《그럼 상녀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저린 가슴을 누르며 물으시였다. 《대충 감장을 하느라고는 했어요. 시신을 붙안고 앉아 통곡을 하는데 곰사냥한다는 사람들 둘이 지나가다가 띄워보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그 고마운 사람들이 괭이 하나를 가지고 겨우 언 땅가죽을 테고 묻어주고 갔지요.》 확실이는 대답하면서 헉 하고 흐느낀다. 이야기를 듣고 금실이도 울었다. 금실이와 확실이 두사이에 앉아있는 금옥이도 제 설음에 겨워서 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을 훑는 긴숨을 내쉬시였다. 셋의 울음이 또한 때없이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바람 세찬 이 시대가 너무도 가혹히 잡아흔들어 꽃잎지듯 땅에 떨어져 짓뭉개운 녀성들, 짊어진 짐이 무거워 가고가다가 앞을 헤쳐달라고 애절히도 부르짖는 연약한 녀성들, 그 설음, 그 아픔이 울고운다고 풀려질수 있을가. 부디 힘겹더라도 굳세게 걸어가다오. 이 나라 녀성의 아름다운 이름에 흠이 되게는 살지 말아다오. 그 보석, 그 절개를 굳게굳게 지켜나가며 이 나라의 모든 녀성이 금구슬 은구슬이 되여 장군님의 해발속에서 반짝이며 살도록 그 귀감이 되여다오. 그런데 분임이는 어데 가있을가. 그리고 또 불쌍한 아이들은 죄다 어디로 갔을가. 해는 벌써 한낮이 기울어 말파리가 내도산계선으로 들어섰다. 겨울구름 같지 않은 화려한 흰구름이 내도산너머에 비껴있다. 하긴 이 고개가 어찌 곰골로 가는 내도산고개길이기만 하랴. 숱한 비극과 피눈물을 헤치고 넘어 흰눈결처럼 정화된 김정숙동지의 한없이 부드럽고 강의한 사람됨이 그대로 비단결같은 강보가 되여 시대의 사나운 바람에 태먹은 녀성들을 그 강보에 싸안고 저 화려한 흰구름같은 아름다운 미래에로 실어가는 희망찬 고개길은 아닐가. 길가엔 아직 왜놈들의 시체가 너저분히 널리였다. 더럽고 더러운 몰골들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다. 그걸 타고앉아 쪼아먹던 떼까마귀가 우르르 날아일어난다. 건너편 산허리로도 숱한 까마귀가 까욱까욱 울며 날아간다. 《이랴 쩌! 쩌!》 오포수는 채찍을 공중에 빙글빙글 돌리며 기운차게 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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