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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23 회)
제7장
2
내도산 곰골엔 해빛이 비쳐내렸다. 오래간만에 보는 눈부신 해빛이였다. 산이고 동네고 온통 눈속에 파묻혔다. 나무란 나무는 죄다 눈을 떠이고 섰다. 숱한 나무가지들이 부러져내리고 찢어져내리고 했다. 우르르 메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기도 한다. 사람들이 떨쳐나와 길에 덮인 눈을 친다, 나무낟가리, 곡초낟가리의 눈을 밀어내린다 했다. 어떤 집에선 집재목이 약한데 눈이 너무 실렸다고 지붕우에 올라가 눈을 밀어내리기도 한다. 애들까지도 짝장그르르 끓는다. 웃말 사는 오포수가 말파리를 몰고 아래마을에 들이닿았다. 말파리우엔 오소리가죽, 너구리가죽, 개가죽, 족제비가죽따위 퉁구리가 가뜩 실렸다. 활을 해뻗친 범의 가죽, 곰의 가죽도 있다. 《아니 이 눈구뎅이에 그 먼길을 가내겠기에 이렇게 떠났단말요?》 동네사람들이 오포수에게 물었다. 《갔다와야겠소. 물건을 해드린지가 오래기두 하고 지금 피물시세가 오른것 같다기도 하오. 이런 때 나가서 제꺽 넘겨줘야겠소.》 《가만있자, 그럼 주문들을 받아가지고 떠나시오. 뭐 성냥이 떨어졌다, 석유가 떨어졌다 하며 오포수령감이 언제 떠나는지 모르겠다고 들끓었는데…》 한 장정이 이러며 부리나케 뛰여갔다. 동네로 돌아다니며 오포수령감이 하동거리로 떠난다고 알리려는것이였다. 도시뿐만아니라 일체 사람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있는 이 오지에서는 유일하게 오포수의 말파리가 바깥세상과 련계를 지으며 곰골사람들이 사는데 필요한 온갖 물건을 사들여오기도 하고 오포수자신이 잡는 짐승들 가죽은 물론 이곳 토산물들을 실어내다 팔아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오포수의 말파리는 떠날 때도 법석을 이루고 들이닿을 때도 온 동네가 들썽들썽 끓는다. 오포수는 말파리를 세우고 수염이 부르르한 길쭉한 턱을 내려 쓸며 곰방대에 담배를 붙여물었다. 얼마 안있어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숱한 아낙네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달려나왔다. 삽시에 오포수의 말파리가 서있는 마당엔 사람사태가 났다. 서로 저마끔 물건 사다달라는 청탁이 일어났다. 소금 사다달라는 아낙네, 약재를 사달라는 아낙네, 광목을 몇마 사다달라는 아낙네, 별 청탁이 다 있다. 《가만 좀 있소. 한 아주머니씩 차근차근히 불러주오. 적어가지고 가야지 무슨 총기에 그걸 다 기억해두겠소.》 오포수는 마고자주머니에서 목책과 연필을 꺼냈다. 《우린 양재물 한근하구 광목 열자만 사다주.》 《어이구 양재물은 해서 뭘 한담? 재물을 밭아서도 얼마든지 빨래를 할텐데.》 《숯구이하던 옷이 너무 더러워져 양재물에 삶아서 빨아야겠수. 곁가마는 끓지 마우.》 《곁가마가 왜 끓지 않겠소. 사다달랄만한 물건을 사다달래야지… 어서 우리 물건부터 적어요. 우린 광목 다섯자하구 애들 고무신을 두컬레 사다주.》 오포수는 목책을 두드리며 광목, 성냥, 소금, 석유는 동네앞으로 아주 얼마씩 가져오는 수자가 있으니까 그건 가져온 다음에 나누고 다른 물건만 부르라고 했다. 한창 법석을 하는데 동네 리수인 기골이 큰 정대환이 어흠어흠 기침을 깇으며 걸어나왔다. 아직 머리우에 엄지손가락같은 상투가 있고 그 상투머리에 다섯뿔난 관을 썼다. 아낙네들이고 장정들이고 모두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오포수도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대설이 졌는데 그 먼길을 가냄즉한가?》 정대환이 오포수에게 물었다. 《가내다뿐이겠습니까? 말파리는 도리여 눈길이 더 좋습니다.》 《음 그렇다면 몰라두. 그런데 이번 하동거리에 가면 저… 저 계림시의 형편두 살피구 왜놈군대의 움직임을 좀 렴탐해가지고 오게.》 《렴탐하다뿐이겠습니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저놈들이 이 내두산 오지로도 밀려들 우려가 있다네.》 《그건 뜬소문이올시다. 여기가 어디라고 그놈들이 기여듭니까?》 《그래도 몰라. 잘 렴탐해보고 오게.》 《알겠습니다.》 정대환은 이런 부탁을 해놓고 또 어흠어흠 기침을 깇으며 돌아서 걸었다. 어느 독립군단체의 두령을 했다는데 아직도 기운이 정정해보이였다. 정대환이 간 다음 오포수는 또 한참 물건이름을 받아적었다. 얼마후에야 그는 말파리의 마부대우에 올라앉아 채찍을 후렸다. 《쩌! 쩌!》 말은 내두산 앞고개를 향해 눈구뎅이로 줄달음을 놓았다. 사람들이 잘 다녀오라고 소리쳐주었다. 《잘 다녀오다마다…》 오포수는 말채찍을 허공에 빙글빙글 돌리며 화답해주었다. 그는 이런 때처럼 가슴이 부푸는 때는 없었다. 내 식솔 내 겨레를 위해서 하동거리와 곰골사이를 하루 백번 더 달려도 좋을것 같았다. 왜놈군대가 이곳으로 밀려들다니 될번이나 한 말인가? 《쩌! 쩌!》 바로 이런 때 곰골 웃말로는 리범진중대가 들이닿았다. 간고한 행군길에 모두 행색이 험해졌다. 불 한번 못피우고 걸어서 얼굴들이 푸릿푸릿 얼고 그 철색얼굴들우로 비지땀이 철철 흘러내린다. 옷이 찢어진 대원들도 많다. 대원들이 닿는바람에 온 동네가 떨쳐났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령솔하시는 혁명군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독립군을 하던 로인들이 앞을 다투어 마중을 나왔다. 사실 이 곰골의 아래웃말엔 거의 독립군을 하던 사람들이 살고있었다. 조국을 독립해보자고 온갖 풍상고초를 겪으며 싸우다가 죄다 망하고 흩어지는 시기에 피눈물을 뿌리며 이 오지로 들어와 정착을 했다. 왜놈의 꼴을 안보는 곳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보자고 오두막을 짓고 살림이라고 시작한것이 오늘의 굳건한 곰골 상하촌을 이루어놓았다. 독립군로인들은 혁명군들을 누구네 집에 안내를 하라고 젊은 사람들에게 소리치기도 했다. 모두 감격해서 끓는다. 어떻게 되여 김일성장군님께서 령솔하시는 혁명군이 여기로 왔단말인가. 민족의 정기를 한몸에 지니시고 싸움을 이끄신다는 장군님! 축지법을 쓰시며 하루밤에 수천리도 가신다는 장군님! 왜놈의 사단과 련대를 삼밭 쓸어눕히듯하신다는 장군님! 그 명성 높으신 장군님의 혁명군이 어떻게 이 오지로 찾아들었단말인가! 독립군로인들은 웅성거리며 배낭을 받아내리기도 하고 번쩍거리는 보총들을 추썩추썩 들어보기도 한다. 《그래 이건 얼마씩이나 주고 사들인 총인가?》 로인들이 물었다. 《그건 그저 얻은겁니다.》 《그저 얻다니?》 그들은 모두 눈이 둥그래서 쳐다보았다. 《왜놈군대 한놈 죽이면 한자루씩 생기거던요.》 혁명군들은 씽긋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혁명군들이 멘게 죄다 왜놈의 무기를 빼앗아낸거란말인가?》 《그럼요. 그따위 보총만 빼앗나요? 기관총도 빼앗아가지고 꽝꽝 쏩니다.》 《허허허, 그러니 돈도 안주고 무기를 거저 얻네그려. 참 그럴듯한 일이로군. 우리는 독립군을 하면서 무기가 없어 자꾸 군자금 얻으려만 돌아다녔네. 그래가지곤 무기를 사들이려고 사람을 상해로 보낸다, 로령으로 보낸다, 안보낸데가 없네그려. 상해에서 무기를 사가지고 밀선에 싣고 오다간 오랑캐를 만나서 파선은 얼마나 당했게 그러나? 그런데 이건 오랑캐를 때려잡고 번쩍번쩍하는 오랑캐장비로 무장을 해? 과시 김일성장군님 전술답네.》 《독립군때 쓰던 무기가 더러 있습니까?》 《있긴 있네만 그까짓걸 뭣에 쓰겠나? 어 내 나이 십년만 젊었어도 장군님의 혁명군이 되여 자네들속에 섞여 탄알을 한 둬섬 더 쏴보다가 죽고싶네.》 독립군로인들은 흰수염을 쓸어내리며 긴 탄식을 했다 우물가엔 아낙네들이 가뜩 모여서서 떠들었다. 《글쎄 어쩜 우리 군대가 저렇게 번쩍거리는 총들을 메고왔을가? 어이구 끌끌도 해라.》 《참말 남자군대는 남자군대래서 그렇겠지만 색시군대도 남자군대 찜쪄먹게 끌끌하지들 않소! 어쩜 저렇게 머리까지 자르고 모자를 썼을가, 저것 보라지, 깡뚱한 치마에 모자까지 쓰고 보긴들 얼마나 좋소?》 한 아낙네는 저편쪽에서 눈치는 녀대원을 손가락질하며 떠들었다. 혁명군들은 도착하자바람으로 남대원이고 녀대원이고 할것없이 가래며 비자루를 들고 나서서 눈을 치느라고 법석했다. 회좁게 열어논 길을 활짝 넓게 쳐내기도 하고 집집의 뜨락눈도 죄다 밀어냈다. 《하기야 군대가 모자를 쓰지 않구 맨머리바람으로 총메고 다니겠수?》 《어이구 말마우. 옛날에 독립군들은 모자는커녕 상투바람으로 총메고 다니며 싸웁데다. 우리 시아버지두 독립군할 땐 호랑이라고 했는데 수건을 쓰지 않으면 상투바람으로 별델 다 갑데다.》 이러는데 녀대원 둘이 우물가로 걸어왔다. 아낙네들은 아닌보살을 하며 옆구리들을 찔렀다. 물길러 나온 아낙네는 물을 긷고 삶은 빨래를 이고 나온 아낙네는 넙적돌에 빨래를 문댔다. 아무것도 안가지고 입방아만 찧으러 나온 아낙네들은 걸어오는 녀대원들을 흘끔흘끔 보면서 이 우물이 물맛은 제일이라는둥 사슴페 샘물보다 낫다는둥 하고 딴전을 떨었다. 《아주머니들, 수고하세요. 이 깊은 산골에서 얼마나 고생들하세요.》 앞에 걸어오는 얼굴 환한 녀자군대가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아이구 세상에… 고생이 무슨 고생이겠소. 고생이야 혁명군이 하지비.》 《혁명군도 고생이야 하지만 이 산골에 사시며 고생이 왜 없겠어요. 드레박을 이리 주세요. 제가 좀 길어드리죠.》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다가서며 물푸는 아낙네의 손에서 드레박을 앗아내시였다. 《녀자대장인것 같수.》 《그러게말이요. 인품이 저렇게 잘났으니 대장인들 못하겠소.》 아낙네들은 서로들 소곤거렸다. 국금이는 빨래하는 아낙네를 들어일구고 제가 빨래를 하겠다고 넙적돌앞에 다가앉았다. 《세상에…》 《군대같은데라곤 하나 없지비?》 《그렇소꼬마…》 김정숙동지께서와 국금이는 웃었다. 이러는데 복녀가 또 왔다. 《복녀동무, 가래를 좀 얻어가지구 나와요. 우물가의 눈을 활짝 밀어내게…》 물을 다 긷고난 김정숙동지께서는 물동이를 들어서 이우며 말씀하시였다. 복녀가 도로 뛰여들어가더니 삽가래와 도끼를 얻어들고 나왔다. 그는 눈도 쳐내고 아예 미끄러운 우물길의 얼음도 까내려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삽가래로 눈을 쳐내고 복녀는 도끼로 얼음을 까기 시작했다. 《정숙동무, 끼니준비는 어떻게 해요?》 《이게 끼니준비 아니예요. 우물부터 손질해놓고 가마를 걸어야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복녀의 묻는 말에 대꾸하시였다. 아낙네들은 그제야 우물가에다 판을 크게 차리려든다는것을 알았다. 그들은 모두 입을 함지박같이 벌렸다. 아낙네들이 흩어지자 애들이 또 몰려왔다. 《얘 저 색시군대 봐라.》 《별달린 모자 봐라.》 《모자두 쓰구 총두 찼다.》 애들은 엎어지며 자빠지며 야단법석을 했다. 《여긴 아동단이 없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에게 물으시였다. 《아동단이 뭐야요?》 《애들이 모여서 훈련도 하고 공부도 하는 그런것말이예요.》 《그런건 없구 서당만 있어요. 관 쓴 독립군이 앉아서 애미산월가를 가르쳐요.》 《애미산월가가 뭐예요?》 《련주시책에 나오는 글이예요.》 《그래 다들 거기 다녀요?》 《그따윗데 다닐게 뭐야요? 거기 다니는 애는 몇명 안돼요.》 애들은 김정숙동지의 곁에 다가가 허리에 찬 권총을 살살 만져보기도 했다. 서로 눈들을 끔벅거리며 허공에 대고 땅땅 쏘는 흉내도 냈다. 지금 중대장 리범진은 이 곰골의 구장 조세근네 집에서 소대장들을 모여앉히고 부대가 당분간 이 지대를 견지하고있어야 되겠다고 설명했다. 《여기가 로흑산이요. 이 로흑산에서 한바탕 섬멸전을 하시고는 로야령 높은 령을 넘으시여 녕안현에서 눈부신 군사정치활동을 벌리시였소.》 리범진은 방안에 펴놓은 지도를 짚어나가며 장군님께서 또다시 북만에 가시여 활동하시는 정형을 설명해나갔다. 《그래서 적들이 북만으로 쏠리기 시작했는데 장군님께선 이 적의 력량을 분산시켜 박멸하시기 위하여 새로운 작전계획을 세우시였소. 원정부대를 수개의 부대로 나누시여 한 부대는 왕청, 훈춘방면으로 진출시키시고 다른 한 부대는 녕안일대에서 계속 싸우게 하시고 자신께선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액목방향으로 진격해가시였소. 그래서 여기서도 치고 저기서도 치는,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투가 벌어졌소. 우리가 내두산일대를 견지하고있다가 답새긴다는것도 이 혼란작전의 일환이란걸 알아야 하오. 요영구회의에서 좁은 근거지를 지키는데 집착되여있지 말고 광활한 지대에로 흩어져나가 군사활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시였는데 그게 바로 이렇게 쫙 퍼져나가 남북만주가 들썩들썩하게 싸워야 한다는것을 말하는것이요.》 모두 신중히 듣고있었다. 대걸이는 관자노리가 두드러진 얼굴로 지도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리용수 그리고 또 한사람 소대장 최억이는 담배물부리를 닦으며 씩 큰 숨들을 내쉬였다. 《숱한 전투가 벌어져 대승리를 거두고있소. 여기 청자구전투, 남천문전투, 말리거우전투, 류차구전투, 장군님께서 친솔하신 부대는 이렇게 도처에서 적을 답새겨대고있소. 그런가 하면 다른 부대는 여기 돈화, 교하, 화전일대에서 섬멸전을 벌리고있소. 그러니까 우리 중대도 여기에 발을 맞춰야겠소. 우리가 술기막골을 지켜낸것도 여기에 발을 맞춘 전투이지만 이 내두산계선을 지키고있다가 답새기는것도 장군님의 전략전술에 발을 맞추는 전투요. 사령부에서 이 계선을 든든히 견제하고있으라는 련락을 다시 띄웠을 때에야 적의 움직임을 정확히 손아귀에 넣었기에 그러는게 아니겠소. 그러니까 모두 동원태세로 훈련을 강화하도록 하는게 좋겠소.》 사실 사령부의 명령을 행군도중에 또 한번 받은것이였다. 리범진은 지도를 접어서 자기의 멜가방속에 밀어넣었다. 소대장들이 그제야 담배를 한대씩들 피웠다. 구장 조세근이 들어왔다. 상고머리를 한 키가 작달막한 사람인데 어데로 쏘다니다가 왔는지 얼굴이 빨갛게 상혈해있었다. 《내 인제 우리 동네 리수령감과도 협의를 하고왔습니다. 리수령감두 내도산기슭에다 귀틀집 짓는다는 말을 듣고는 천판 뛰여오르며 놀랐습니다. 김일성장군님의 혁명군이 내 마을에 와서 거처할곳이 없어서 이 엄동설한에 한지에다 집을 짓게 하겠는가구요. 아예 귀틀집 지을 생각은 말고 아래웃동네로 부대를 나누어 들게 합시다.》 《고맙습니다. 그럼 병실을 짓는동안만 인민들의 신세를 지도록 하겠습니다.》 《신세가 무슨 신세입니까? 구들에 불때는거야 혁명군이 안들어도 때는것 아닙니까?》 《어쨌든 그렇게 결정하기로 하고 동무들이 나가서 조직하도록 하오.》 리범진은 소대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렇게 하여 부대는 아래웃마을로 나뉘여 집집에 들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밥을 지으려고 우물가에 가마를 걸고 한쪽으로는 불을 일구다가 아래마을로 가라는 지시를 받으시였다. 모두 배낭우에 가마, 식기 같은것을 올려놓아 지고 아래마을로 내려갔다. 우물가에 덮어쳤던 애들이 죄다 울레줄레 따라섰다. 《색시군대, 내가 배낭우에걸 들어다주겠어요.》 《색시군대라면 못써. 혁명군누나라고 불러야지.》 《참, 그게 부르기도 좋네.》 《너희들 소원이 그렇다면 어서 좀 가져다주렴.》 녀대원들은 모두 배낭을 내려놓고 배낭우에 덧진 짐들을 떼내여 하나씩 주었다. 소랭이, 함지, 별게 다 있는데 그걸 받아든 애들은 너무 좋아서 바람개비같이 달렸다. 큰 가마를 메고 씽씽 걸어가는 애도 있다. 아무것도 차례가 못진 애들은 뒤따라오는 남대원들한테로 달려갔다. 남대원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저들의 배낭을 벗어내려 지웠다. 《야 이거 돌짐같네, 헤헤.》 《이녀석들, 그걸 메때리기만 하면 속에것이 다 깨진다.》 《누가 메때려요? 이까짓걸…》 애들은 무거운 배낭을 진데다 멜끈도 길어서 땅을 쌀쌀 핥으며 걷는다. 거기에다 익살군 오택진은 한번 혼나보라고 총까지 메웠다. 《이자식들, 오늘밤엔 잠자리에 오줌을 싸겠다.》 《오줌이 다 뭐야요 헹…》 대원들은 껄껄대며 웃었다. 아래마을에 다달은 애들은 동네방네에 대고 혁명군 온다고 고함을 질렀다. 자기들도 짐을 골박아지고 들어가니 혁명군이 된것 같기도 해서 우쭐해졌다. 아래마을에서도 소동이 일어났다. 아래마을은 웃마을보다 더 큰 동네다. 당장 동네한판에 사람사태가 났다. 여기서도 숱한 독립군들이 밀려나왔다. 모두 허리가 꼬부라져 지팽이를 짚었는데 어떤 로인은 기다란 수염을 휘전휘전 저으며 눈물을 머금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는 물같아서 저들의 허리가 꼬부라들긴 했지만 흐르는 그사이 세월은 또 이렇게 끌끌한 후대를 길러내기도 했다. 이만하면 삼천리에 피를 뿌린 선대가 저승에 가서도 발편잠을 잘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심정이 골수에 젖어들기도 하는것이였다 얼마후에야 대원들이 모두 집집으로 안내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저녁때가 다 되여 녀대원들을 데리고 바로 리수인 정대환네 집으로 가시였다. 집이 초가이긴 했으나 사랑채도 달린 들썩하게 큰 집이였다. 녀대원들이 안마당으로 들어서자 부엌문이 열리며 안식구들이 우르르 밀려나왔다. 정대환의 마누라 오씨는 얼굴이 주글주글한 할머니인데 녀대원들을 보자 두 눈가죽이 한뽐이나 벗겨져 올라가며 놀랐다. 녀자군대래서 그러는것이였다. 《세상에 맙시사! 색시군대 색시군대 하니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정말 우리 손주며느리또래가 아니냐! 얼마나 수고들 했나?》 오씨는 녀대원들의 잔등을 쓸어내리며 어서들 들어가자고 했다. 그는 임진란때 녀장부들 이야기가 옛말같지 않다고도 했다. 오씨의 며느리도 어서 들어가자고 하며 잔등을 밀었다. 이 집에선 안채의 사이방을 녀대원들에게 아주 내주었다. 방안으로 들어서니 한창 저녁을 끓이는지 열어놓은 새문으로 뜬김이 꾸역꾸역 올려밀었다. 오씨의 며느리인 중년부인이 사이방으로 들락날락하며 홰대에 걸린 옷들을 벗겨내간다 구석에 놓여있는 매돌을 들어내간다 했다. 《혁명군언니들, 우리 집은 가풍이 엄해요.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어도 참아줘요.》 손자며느리라고 하는 이쁘장하고 애티있는 색시가 사이방으로 올라와 소곤소곤 일러준다. 《할아버진 사랑방에 계셔요?》 김정숙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사랑방에서 애들한테 글을 가르치고있어요. 우리 집에선 그 할아버지가 가장이예요. 할아버지 말만 한마디 떨어지면 온 식구가 설설 기지 않아요.》 색시는 소곤거려주곤 발씬 웃으며 정지방으로 내려간다. 《우리 사랑방으로 나가서 할아버지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글쎄말예요.》 김정숙동지의 말에 국금이가 대꾸했다. 《모두 절할줄 알아요?》 《그까짓걸 못하겠어…》 복녀가 선뜻 대답했다. 《가풍이 엄하다는데 실수를 해선 안돼요. 나가서 인사를 해야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단단히 주의를 시켜가지고 복녀와 국금이를 데리고 사랑방으로 나가시였다. 사랑문앞에 가서 인기척을 내니 애들이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할아버님 계시냐?》 《네, 계셔요. 지금 무슨 글 쓰구있어요.》 《우리 좀 들어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방안으로 들어서시였다. 뒤따라 국금이와 복녀도 들어섰다. 방안에는 서당애들이 삥 둘러앉아있는데 저쯤 아래목에 정말 기골이 장대한 정대환이 돋보기를 걸고 앉아서 글을 쓰고있다. 정대환은 무얼 쓰는지 열중해서 쓰며 머리에 쓴 관을 휘전휘전 저었다. 그옆에도 관을 쓴 청년이 한명 앉아서 정대환이처럼 무슨 글인가를 쓰고있다. 《선생님, 혁명군이 왔어요. 글 좀 있다가 써요. 그리구 접장형두말예요.》 《엉?》 애들의 소리에 글쓰던 정대환이 놀라며 얼굴을 들었다. 그는 처진 돋보기너머로 푸르끼레한 눈망울을 굴리며 방웃목을 바라보았다. 그곁에 앉아있는 관쓴 청년도 얼굴을 들었다. 이 젊은 관쟁이가 바로 방금 안방에서 만난 그 이쁘장한 색시의 남편인 정대환의 손자였다. 녀대원들은 제잡담하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살며시 들어앉으며 정대환에게 절을 했다. 그런데 실수는 제일먼저 절할줄 아노라던 복녀가 저질렀다. 그는 이마에 두손을 펴붙이고 죽은 망녕앞에서 절하듯 절을 세번씩이나 했다. 《엉 이게 웬 녀인들이냐?》 정대환은 절도 안받고 두눈이 커져서 물었다. 녀자군대래서 안방의 오씨만큼이나 놀란다. 《색시군대야요.》 애들이 싱긋벙긋 웃으며 알려주었다. 《색시군대라니?》 《혁명군 몰라요?》 《아니 혁명군에 녀자군대도 있단말이냐?》 《있잖구요.》 애들이 입술을 나불거리며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은 벌써 동내로 빠져나가 한바탕 구경을 하고 들어온것이였다. 《그래 색시들이 다 김일성장군님 군대란말인가?》 《네 그래요.》 《그래 총들은 쏠줄 아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묻는 말이 너무도 뜻밖이여서 얼굴이 붉어져 대답을 못하시였다. 군대를 보고 총을 쏠줄 아느냐고 묻다니… 녀자를 얕보는 봉건이래도 보통 봉건인것 같질 않았다. 《할아버지, 군대가 총을 쏠줄 모르겠기에 그런걸 묻습니까?》 곁에 앉아있는 그의 손자가 말했다. 《음, 그 말은 옳다. 그래 왜놈은 얼마씩이나 잡았나?》 《할아버지, 쌈두 숱한 쌈을 치르었는데 그런걸 어떻게 다 세세히 말씀드리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집게 웃으며 대답하시였다. 정대환은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앉아서 녀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 집 안방에 혁명군이 든다고 하니 그전날 독립군비슷한 사내들 군대가 드는줄 알았지 이렇게 새파란 녀자군대가 들줄은 몰랐다. 도대체 이런 녀자군대가 세상에 어디 있고 또 녀자란것이 총을 메고 나서서 과연 왜놈을 잡아내기나 할수 있겠는가, 정대환으로선 정말 꿈에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였다. 《할아버지, 저희들은 지금 할아버지네 안방에 들었어요.》 《음, 들어야지, 내 아까 구장이 와서 혁명군들이 이 엄동설한에 집을 짓는다고 하기에 아예 그러질 못하게 막았네. 백성들 집이 그득한데 그 집에 들지 무슨 집을 지을텐가?》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정대환은 흔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할아버지, 미안해서 그러지 않아요.》 《미안하긴 무어가 미안할텐가. 나두 김일성장군님 부대가 동네에 왔다는 소리를 듣고는 오금이 들썽거리기도 했네. 이 늙은것두 선비이긴 하지만 젊은 날엔 케케묵게 책만 들여다보고 앉아있질 않았어. 팔도강산에 피를 뿌리며 탄알두 몇섬 잘 쏴봤네.》 로인은 이러며 어서들 들어가 저녁을 먹으라고 했다. 녀대원들은 소심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안채로 들어오니 방안엔 벌써 둥글상이 놓여있었다. 그 이쁜 손자며느리가 둥글상우에 김이 물물 나는 밥함지까지 올려다놓았다. 그는 구석에 기대세운 총을 하나 들어서 겨누어보다가 어마지두 아닌보살을 하며 도로 갖다 세웠다. 그걸 띠여 보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어서 만져보아요.》 《애개 제가 무슨…》 색시는 낯을 붉히며 얼른 정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는 또 이어 국그릇들을 날라올렸다. 다른 반찬도 여러 그릇 올려왔다. 모두 밥상에 마주앉았다. 그러나 누구도 얼른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국금이는 재빨리 새문쪽으로 얼굴을 내대고 정지방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이어 얼굴을 움츠리고 두어깨를 낮추며 가느다랗게 한숨을 지었다. 《정지방에선 뭘 자시고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 소곤소곤 물으시였다. 《죽들을 자시지 않아요. 수수죽인것 같아요. 글쎄 자기넨 죽을 자시면서 우린 이렇게 밥을 지어 함지채 올려다주는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찌르르해지시였다. 아무리 땅이 좋고 곡식이 잘된다 해도 많은 식구가 량식걱정이 없이 살수는 없는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정성이 지극하면 밥을 따로 지어줄수 있을가. 대원들은 할수없이 숟가락들을 들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함지의 밥을 알로 세여 떠갔다. 아래웃방이 조용했다. 웃방에서야 미안스런 끼니를 먹고있으니 조용할테지만 아래방에서야 왜 아무런 이야기조차 없을가? 녀대원들은 함지의 밥을 절반도 못먹고 숟가락들을 놓았다. 《저녁설겆이는 우리가 내려가서 하자요.》 김정숙동지께서 이러며 밥함지를 들고 일어서시였다. 다들 뒤따라 국그릇, 찬그릇들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우르르 부엌으로 밀려내려갔다. 그러자 중년며느리가 밥함지며 빈 그릇들을 받아놓으며 어서들 올라가라고 했다. 《설겆이는 저희들이 하겠어요. 어서 올라가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를 떠미며 가시물에 빈 그릇을 부셔내기 시작하시였다. 그러자 이번엔 손자며느리가 달려내려와 떠밀었다. 《무얼 자시지도 않고 자신 값을 하느라고 이래요? 어서 올라가요.》 《우리 혁명군엔 규률이 있어서 그래요. 저녁설겆이는 우리가 다 할테니 어서 올라가세요. 복녀동무, 물드무에 물이 있는가 보아요.》 《애개… 물드무에 물이 없겠게 그래요? 이건 뭐 남의 살림살이를 다 빼앗지 않아요. 호호호.》 손자며느리는 복녀한테로 달려가서 들고나가려는 물동이를 빼앗으려고 했다. 그러나 복녀는 물동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국금이는 콩나물시루를 띄여보고 물을 한바가지 떠들고 가서 살랑살랑 끼얹어주었다. 정말 중년며느리와 손자며느리는 할일이 없어서 쫓겨올라갔다. 정대환의 마누라 오씨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장죽으로 담배를 피우며 허허 웃었다. 녀대원들이 한바탕 뒤설겆이를 하고 올라간 뒤 중년며느리는 부엌으로 내려가 가마뚜껑도 열어보고 빈 그릇들도 살펴보고 하며 혀를 끌끌 찼다. 모두 거울알같이 만들어놓았다. 물드무에도 물이 한 절반밖엔 없었는데 찰랑찰랑 채워놓고 올라갔다. 손자며느리는 괜히 낯이 붉어져 어쩔줄을 몰라했다. 어째 혁명군녀자들이 자기를 납작 눌러놓고 올라간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날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대원들을 데리고 따뜻한 잠자리에 드시였다. 오래간만에 너무도 오래간만에 제집구들에 돌아온듯 한 후끈한 기분으로 다리를 펴고 누우시였다. 술기막골을 떠나서 고난에 찬 길을 멀리도 오셨다. 인젠 그 잊혀지지 않는 술기막골이 어느 구석에 가 붙어있는지 아득한 생각도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아득한곳으로 또 마음이 날아가기도 하시였다. 그동안 모두 어떻게 되였을가, 적구로들 흩어져 내려갔을가, 내려갔다면 그 피땀으로 지은 곡식들은 죄다 가지고 내려갔을가, 내려가다가 왜놈들 손에 잡힌 사람은 없을가. 양기훈이, 한기천, 음전이들은 공작지로 무사히 박여들어갔을가. 그리고 리상녀, 분임이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무사히 쑥바치에 도착해서 다리 펴고 잠잘자리를 얻었을가. 왜 이렇게 아이들의 모습이 또릿또릿 떠오를가. 배가 고파 독초를 뜯어먹고 숨기를 잃었던 어린것들, 사람을 삥 둘러싸고 서서는 우린 언제 상촌에서처럼 글도 배우고 노래부르며 행진도 해요? 하고 묻던 그 눈동자 눈동자들, 너무도 아프게 새겨진 그 모습들을 어느 하늘가에 가선들 잊을수 있을가. 아, 잊을수 없는 술기막골! 술기막골에 발을 붙였던 사람들은 모두 그 험난한 생활을 헤치며 꿋꿋이 살아온것처럼 어데 가서든 힘이 꺾이지 말고 억세게 살아달라. 혁명과 함께 불타고 숨쉬라. 술기막골을 잊지 말라. 아니 그 누가 술기막골을 잊겠다고 내가 이렇게 기원을 할가. 술기막골, 술기막골, 그 땅을 어찌 잊는단말인가. 거기엔 혁명의 시련이 가져다 안긴 진폭이 큰 랑만의 노래가 있고 정열을 불태운 영광의 력사가 있다. 나의 경우에도 부암이나 상촌은 아득히 흘러간 너무나 작은 마루턱, 술기막골은 그에 비기면 높디높은 준엄한 고개, 넘고나니 후련도 하고 벅차기도 하다. 인제 혁명앞에 그것보다 더 높은 고개가 있을가 더 험한 고개가 있을가. 어찌 없으랴. 그에 몇갑절 갚음할 조국광복이라는 찬란한 무지개가 다가오는데 그만 정도의 고개만이 있을가. 더 높고 준엄한 고개인들 없으랴. 하나 오라 고개여, 내 인제 웃으면서 오르고 웃으면서 넘어보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달아오르며 뜨거운 밀물같은것이 가슴속에 밀려드는것을 느끼시였다. 《언니!》 자는줄 알았던 국금이가 곁에서 조용히 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간 대답을 안하시였다. 《언니!》 국금이는 김정숙동지의 손을 끌어다쥐며 또 불렀다. 《왜 아직두 자질 않아요?》 《언니, 이 집 손자며느리가 어쩌면 꼭 우리 영금이같애요? 생긴것두 그렇구 행동하는것두 그렇구…》 《난 아까 그가 살그머니 총 겨누어보는걸 띠여보구 그만 막 부둥켜안구싶었어요.》 《어서 자요.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말구…》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달래시였다. 하긴 김정숙동지께서도 영금이 비숫한데가 있구나 하고 느끼긴 하시였다. 그러나 아무리 딴 사람을 영금이같다고 견주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말인가. 불행한 영금이는 이미 돌아오지 못할 저세상으로 가지 않았는가. 《글쎄, 아까 물어보니까 나이두 저보다 한살 아래예요. 이름두 한자는 같아요. 글쎄 영애라지 않아요.》 《국금이, 인젠 마음을 좀 다잡아요. 자꾸 그런 생각을 해서 아픈 가슴을 허벼낼건 뭐예요…》 국금이는 그담엔 말이 없었다. 한참후 김정숙동지께서는 국금이의 뺨을 조용히 어루만져보시였다. 다행히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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