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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19 회)
제6장
3
지금
병기창은 들끓었다. 우등불을 두세곳 질러서 병기창안도 병기창바깥도 대낮같이 밝았다. 모두 기세가 충천해서 일을 죄였다.
아직 기둥만 세우고 이영을 입힌 집인데 웬만한 작업은 다 밖에서 해냈다. 양기훈은
맘먹은대로 다리를 상한 병기창 책임자 최득환을 업어올려다 놓고 일을 지휘하게 했다. 그가 올라온뒤 벌써 숱한 작탄을
만들어냈다. 그는 지금 한쪽 구석에 자리를 하고 누워서 시누런 눈망울을 빙빙 굴리며 생철을 어느만큼 잘라라, 납은 어떻게 녹여라, 화약은 얼마쯤
밀어넣어라 하며 작업을 지휘했다. 양기훈은
모루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원쑤의 이마빼기라도 까는 심정으로 단 쇠를 두드렸다. 노란수염이 담숭담숭 난 턱에선 줄창
땀이 뚝뚝 떨어진다. 딴 야장쟁이 두 령감은 모루우에 철판을 놓고 메질군에게 메질을 시켰다. 한기천은
줄로 쇠를 쓸기도 하고 가위로 생철을 잘라내기도 했다. 리억겸이와 토지부장은 무엇에 쓸것인지 병기창밖에서 큰 나무통을
쓱싹쓱싹 톱질했다. 장수봉기슭은
법석 끓었다. 그런데 새벽녘이 거의 되여올무렵이였다. 군사부장 리범진이 강호를 데리고 병기창으로 들어섰다. 뒤엔
무장인원 십여명이 따라섰다. 술기막골형편을 일정하게 료해해쥐고 사고가 일어난 현장으로 찾아오는것이였다. 《회장동지,
김일성장군님께서 파견하신 공작원동지입니다.》 리범진이
양기훈에게 강호를 소개했다. 《아니
장군님께서…》 양기훈은
얼른 벗어놨던 웃저고리를 입으며 일어섰다. 딴 사람들도 모두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공작원이라는바람에 일손들을 놓고
일어섰다. 《전
강호라고 부릅니다.》 《네, 전…》 양기훈은
미처 말도 채 못하고 격정에 넘친 악수를 했다. 그는
눈구석에 눈물까지 내뱄다. 이 어려운 싸움판에 장군님께서 여기 먼곳에까지 공작원을 파견하시다니! 자신이 일을 잘못했다는
자책도 크거니와 그저 당장 만사를 죄다 말씀드리고싶은 생각도 북받치였다. 키가 큰 강호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돌아가며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최득환이도
거적우에서 비틀비틀하며 외다리로 일어설 차비를 했다. 《병기창
책임자입니다.》 리범진이
알려주었다. 《아, 그렇습니까? 상처를 잘 치료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호는
일어서려는 최득환을 붙들어 친절히 눕히기까지 했다. 최득환은
울음을 삼키며 눈물을 이리저리 씻었다. 《이거
공작원동지를 사무실에서 맞지도 못하고 이렇게 복잡한 일판에서…》 《복잡한
일판이 어떻습니까? 원쑤와의 싸움이 치렬한 때 앉을 장소를 가리겠습니까?》 강호는
양기훈의 말에 대꾸하며 일동을 주의깊게 돌아보았다. 그러거나말거나
양기훈은 사무실로 내려갈 차비를 하며 일하던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작업지시를 주었다. 《회장동무, 어서 작업을 계속하십시오. 그런데 여기 부회장 리억겸이란 어느 사람입니까?》 《네, 저… 제가 리억겸이올시다.》 강호는
병기창앞 우등불옆에서 나서는 리억겸을 한참 쏘아보았다. 엄숙한 눈길이였다. 그러더니 무장인원들을 돌아보며 가볍게
턱질을 했다. 무장인원들이 씽 달려들더니 리억겸을 묶기 시작했다. 《아니
이거 왜 이러십니까?》 리억겸은
안경을 번쩍거리며 웨쳤다. 그러나 강호는 대답을 안했다. 리억겸은 반항도 못하고 순식간에 두팔을 묶이였다. 사람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서 와들와들 떠는 리억겸을 지켜보았다. 다들 일이 잘못되는것 같아서 가슴들이 후둑거렸다. 《날
좀 보우.》 얼마후에야
강호는 리억겸을 바라보며 말했다. 리억겸이 강호를 쳐다보았다. 벌써 얼굴빛이 시꺼멓게 질렸다. 《당신은
일제의 주구로서 졸개 두놈을 데리고 이 근거지에 잠입해있다는것이 능지영에 숨어있던 김기도잔당의 진술을 통해서 밝혀졌소.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위임에 의해서 당신에게 가차없이 철추를 내리오. 당신의
졸개 조택구는 이미 이곳 혁명동지들의 손에 의해서 잡혔고 또 한놈의 졸개 바로 이 병기창에 폭발물을 던진 권일표는 방금 잡아가두고 올라왔소. 이
근거지에서의 모든 피해는 당신의 지령밑에서 저질러졌다는것이 확증되였소.》 《아,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건 마른 하늘의 벼락이 아닙니까?》 리억겸은
훌쩍훌쩍 뛰였다. 주위사람들은 일이 너무도 엄청나서 입을 헝 벌리고 말도 못했다. 그러나 양기훈이와 한기천은 낯빛이
점점 변해갔다. 양기훈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기도 요새 와서는 대충 의심의 눈초리를 박기 시작은 했지만 설마 그러랴싶어 저쯤 세워놓고
보기만 했댔는데 정말 진짜 원쑤라니 당장 칼을 들고일어나 각을 떠던지고싶었다. 저놈이
글쎄 그 숱한 일을 해제끼고있는 정숙동무까지 모함하자고 했지. 제앞에 장애가 된다고… 그리고 저놈이 조택구의 입에서
제 이름이 터져나올가봐 무서워 기어코 내놓아 작탄을 만들게 하자고 졸랐지. 내놓기만하면 등을 밀어 달아나게 만들려고… 양기훈은
달싹 주저앉아 담배를 말았다. 《에끼
이놈, 내가 이미 의심을 가지고있었댔다. 승냥이가 양가죽을 쓰고 구정부에 들어와있었어? 이 죽일놈!》 한기천이
껑충 뛰여오르며 웨쳐댔다. 그는
손에 쇠메를 거머쥐고 리억겸의 정수리를 넘겨치자고 달려들었다. 그제야 군중이 분노를 일으키며 쳐죽이라고 와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쇠메 쥔 손은 이어 혁명군들의 손에 붙잡혔다. 쇠메로 못치게 되자 그담엔 군중이 마구 덤벼들었다. 몽둥이를 들고
달려드는 사람, 집게나 망치를 들고 달려드는 사람, 누워있던 최득환은 긴 철근대 하나를 거머쥐고 외다리로 일어섰다. 군중은 종시 리억겸을 뭇매에
몰아넣었다. 그저 마구 찌르고 치고 법석이 일어났다. 얼마후에야 혁명군들이 군중을 뜯어말리고 혀가 흘러나온 리억겸을 풀밭에서 들어일궜다. 놈은
바로 가누어서질 못했다. 《빨리
끌고 내려가오.》 강호가
엄하게 소리쳤다. 혁명군들이 놈을 앞세우고 산을 내려갔다. 강호는 비틀거리며 내려가는놈을 한참 서서 쏘아보았다. 《빨리들
일을 시작하시오.》 얼마후에야
강호는 이러며 돌아섰다. 그는 병기창안의 도구들을 이것저것 죄다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또 병기창 주위도 한참이나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이 중요한 작업현장에 다시 무슨 불상사라도 일어날가봐 저어해서 그러는것 같았다. 사람들은
일을 시작했다. 풍구를
불고 망치를 두드리고 쇠메질을 했다. 쇠메질군들이 윽윽 소리를 질렀다. 양기훈은 굴러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다시
저고리를 벗어던졌다. 그는 소탕의 화염속에 쇠를 쑤셔박으며 목이 메여 헉헉 소리를 질렀다. 이튿날아침엔
구정부회의실에서 간부회의가 열렸다. 마침 적들의 공세도 좀 뜸해졌다. 놈들이 병력을 더욱 증강해오며 전술을 변경시킬것 같은 기도가 엿보인다고도 전해지였다. 어쨌든 전화가 멎은 조용한 분위기속에
구정부회의실엔 사람들이 가득 모여앉았다. 모두 원쑤의 뿌리를 송두리채 뽑아낸 시원한 쾌감속에서 강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속에 와 앉아있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뛰기도 하고 눈물이 글썽거려지기도 하시였다. 리억겸이, 그 가증스러운놈을 능지영에 련락하듯마듯 강호가 와서 잡아가두고 일을 바로잡아준것이 꿈만같기도 하시였다. 꼭 그리운 오빠가
나타나 자신의 가슴을 쑥 열어준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태봉시의 인연이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시였다. 강호는
혁명의 전반적정세를 한참 설명했다. 그리고는
반《민생단》투쟁의 좌경적오유가 혁명에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입혔는가 하는것을 또 한참 이야기했다. 그는
이 심각한 피해를 씻기 위해서 금년봄 북만에서 왕청으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 이어 그 난국을 타개하는 투쟁의 진두에 나서시였다고 했다. 틀이
큰 그는 한마디 한마디를 심장에서 퍼올리는것 같이 이야기했다. 《바로
이것을 바로잡으시기 위해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금년 이른봄 두차례의 회의를 여시였습니다. 다홍왜에서 십여일간
회의를 하시고는 다시 요영구에서 회의를 여시였습니다. 그 결과 이 반혁명집단의 우두머리들은 곧 처단되였습니다. 그러나 잔당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기때문에
그것을 뿌리뽑기 위한 단호한 조치와 방침을 세우시고 각지로 공작원들을 파견하시였습니다. 우리가 능지영으로 온것도 바로 장군님의 명령에 의해서 그
반혁명집단의 여독을 깨끗이 가셔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참으로
장군님의 현명하신 령도가 없었다면 우리 혁명이 어찌 될번했습니까? 우리는 능지영에 와서 몸서리치는 일을 알게 됐습니다.
능지영에서는 일제의 주구 김기도와 과거에 엠엘파족속이였던 종파사대주의자 오상묵이 한패거리가 되여 사람잡이를 했습니다. 종파사대주의자 오상묵은 출세에
눈이 멀어서 김기도가 일제의 개인줄도 모르고 서로 붙안고 미치광이춤을 췄습니다.》 강호는
김기도, 오상묵이들이 《민생단》혐의를 들씌워 가둬넣었던 사람의 수효, 죽은 수효를 다 이야기했다. 《바로
여기 기여들었던 리억겸, 조택구, 권일표 이놈들도 그런짓을 하기 위해 김기도가 박아넣은놈들입니다. 참말 위험천만한
일이였습니다. 여기 동지들이 누구나 다 경각성을 가지고있었기때문에 기여든놈들이 저 능지영놈들같이 표면에 나서서 활개를 칠수도 없었고 또 조택구 같은놈을 잡아낼수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잘 싸웠습니다. 인젠 이 술기막골도 마음이 놓입니다. 참으로 조선혁명은 위기에서 구원되였습니다. 이건 능지영이나
술기막골에서만 있은 국부적인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혁명의 광범한 전선에 뿌리가 뻗어서 피해를 입힌 엄중한 사건이였습니다. 정말 장군님의 령도가
아니였다면 어찌될번했습니까? 능지영은
물론 여기서도 아직 리억겸, 권일표를 잡아내지 못하고 저놈들이 고동하 건너편의 적들과 내통하면서 또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뉘 알겠습니까. 장군님께서 대책을 세워주셨기때문에 능지영도 깨끗이 되고 여기도 깨끗이 되고 또 다른곳도, 혁명의 넓은 전선이 깨끗이 정돈되였습니다.》 강호는
땀을 씻었다. 체구 큰 사람이 허기증이라도 오는지 몰랐다. 얼굴과 목으로 땀이 흘러내린다. 강호는 근거지해산문제를
놓고도 한참 이야기했다. 근거지해산은 여기 모여온 군중이 어려운 환경속에서 단련도 잘하고 농사도 잘 지어 가을에 가서 식량을 한짐씩 지고 적구로
흩어져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여기 동지들이 잘 싸웠습니다. 기아를 극복하면서 농사도 시절을 놓치지 않았고 대내에 기여든 원쑤도 발을 못붙이게
만들었고 또 일심동체가 되여 지금 고동하건너편의 적도 잘 막아내고있습니다. 저는 인제 다른 보고와 함께 장군님께 여기 형편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곧 련락을 띄우겠습니다. 이 보고를
받으시면 장군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기쁨이 만연하시여 술기막골 동지들을 생각하실게 아닙니까? 우리 혁명가들은
언제나 장군님께서 기뻐하실 그 감격을 머리속에 그리며 어떤 난관이고 돌파해나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조선혁명가들이 가지는 정신의 원동력으로 되여야
합니다.》 모두
자세를 바로잡으며 우실거렸다. 양기훈이, 한기천이들은 어험어험 큰기침을 하며 손수건을 눈으로들 가져갔다. 강호는
땀을 씻으며 고동하 건너편의 적을 어떻게 막아내야 하겠다는것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전투조직문제, 군중동원문제,
군중조직의 강화문제, 농작물 보호문제, 로약자들의 대피문제, 그는 숱한 문제를 이야기했다. 벌써 해내야 하겠다는 일의 규모도 그렇고 담보도 보통
일군이 아니라는걸 느끼게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거의 한낮이 되여서야 구정부에서 나오시였다. 두어깨가 가벼워져 해빛이 화창한 들판으로 걸어나가시였다. 그 어데서
오는 가느다란 바람이 귀가에 무엇인가를 속삭이며 지나가는것 같기도 하다. 안도감! 커다란 안도감이 가슴속에 큰독을 가지고 들어앉는듯싶으시였다. 강호의
이야기가 다시 절절히 펼쳐져 떠오르신다. 혁명의 전 국면이 큰 시련을 겪고있었다는것, 이 시련에 찼던 전선이 장군님의
정력이 넘치신 령도에 의하여서만 정돈될수 있었다는것이 자신의 체험과 겹치면서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김정숙동지의 눈앞엔 위대하신 장군님의 모습이
우렷이 그려졌다. 장군님을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 거리에서 우러러뵙는듯도싶으시였다. 생활속에 계시는, 투쟁속에 계시는, 그러시기때문에 더욱 곁에
계시는 친근하신 장군님의 거룩하신 영상이 우렷이 떠오르신다. 삼도만에
오셨을 때에도 사람들을 어데로 보내느냐, 아이들은 어데로 옮겨가느냐, 옮겨가도 여기서 꾸린 생활을 그대로 가지고가서
맘대로 뛰며 노래부르며 살게 해야 할것 아니냐고 열가지 백가지 무거운 시름을 다 한가슴에 붙안으시고 말씀한마디 하시고는 땀을 씻으시던 장군님,
우러러뵙기에도 송구스럽던 우리 장군님, 아, 오늘의 이 안도감! 넓은 전선이 깨끗이 정돈되고있다는 이 커다란 안도감은 오로지 친근하고 위대하신
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닌가! 고마우셨다. 너무도
가슴이 넓어지고 절절해지시는 고마움이였다. 장군님의 해발을 받아안고 혁명하는 참된 보람을 오늘처럼 가슴벅차게 느껴보기는
처음이시였다. 이 우주의 영원한 광원인 태양을 떠나서 빛나는 별을 상상할수 없듯이 장군님의 찬란한 해발을 떠나서 혁명전사의 참된 삶을 생각할수
없다는 신념을 이 시련의 술기막골 땅에서 배우셨다고 생각하니 나무 하나, 풀 한포기까지도 다 정다와보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미풍이 살랑거리는 들길을 한참 걸으시였다. 산기슭에 들어서니 여적 피여보지 못했던것 같은 붉은 나리꽃들이 여기도
피고 저기도 피였다. 그 아름다운
꽃들, 그 무슨 정열에 불타듯 진하게도 붉게 핀 꽃들, 이것들도 행복한 순간에 이렇게 활짝 피여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보내는것이 아니냐. 김정숙동지께서는
작식대 있는 골짜기로 가지 않고 산마루턱 하나를 넘어서시였다. 오래간만에 농사형편이 어떻게 됐는지를 보고싶으시였다.
동네에서 곡식이 우거진다, 이랑이 무겁게 실린다 하는 소리를 떠들긴 했으나 바쁜 일에 몰리면서 여적 들판에 나가 보질 못하시였다. 마루턱을 넘어서니
구름릉이 아득히 저쪽으로 보이는 그안 버덩이 정말 시퍼런 바다같았다. 곡식이 힘을 써도 되게 쓰며 우거지기 시작했다. 걸어나가면서 보시니 조고
수수고 벌써 오금을 지나친다. 싸움이 터지는바람에 손이 못가서 인제 겨우 초벌김을 쳐준 곡식인데 당장 장잎이라도 쑥쑥 올려밀것 같으시였다. 어느
밭이고 매한가지다. 감자밭, 콩밭들은 벌써 넝쿨처럼 우거졌다.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괭이로 땅을 파던것이 엊그제같기도 한데 벌써 이런 보람이 나타났다.
나물 무친걸 한줴기씩 끼니로 굼때고나와 씨앗도 없는 땅을 파일구며 지쳐서 눕기도 하고 현훈증이 나서 서로 붙들며 부축도 하던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그르르 돌기도 하신다. 되골과
큰벌 곡식은 이 능수리곡식보다도 더 무던하다고 했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땅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땅에
뿌린 피눈물도 만난고초도 다 이렇게 곡식으로 우거지게 했다. 기쁨으로 우거지게 했다. 장군님께서 주신 땅에 인젠 이렇게 기쁨을 실었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가. 장군님께서 주신 땅이기에 이렇게도 솔곳이 피눈물과 만난고초의 값을 우거지게 실어올리는것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콩밭을 헤치며 걸어나가시였다. 휘이 초여름바람이 곡식밭에 물결을 지으며 불어온다. 《언니이!》 누가
불렀다. 밀이
한길 넘게 우거진 저쪽 밭으로 머리우에 바구니를 인 영금이가 달려온다. 밀이
너무 자라서 달려오는 영금이는 바구니와 얼굴만 알른알른 뵈였다 안뵈였다 한다. 《언니, 이것 봐요.》 《뭘
말이냐?》 《글쎄
감자가 이렇게 컸어요.》 다가온
영금이는 얼른 바구니를 내려서 김정숙동지앞에 내밀었다. 정말
감자가 주먹만큼씩 컸다. 디글디글한걸 한바구니 캐 이고 왔다. 《벌써
쌀을 다 먹었게 감자를 캐니?》 《애개개, 쌀을 언제 다 먹어요? 쌀과 섞어먹으려고 감자를 캤죠. 언니, 인젠 살았죠?》 《언젠, 죽었댔니?》 《호호호.》 영금이는
감자바구니를 놓고 언니한테 매달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넌
너의 아버지 원쑤가 죄다 잡힌걸 알구있니?》 《알잖구, 장군님께서 보내신 공작원아저씨가 와서 한그물에 후려냈지. 난 인젠 노래도 실컷 부를테야!》 영금이는
또 언니를 붙잡고 널뜀을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영금이의 감자바구니를 자신의 머리우에 올려놓으시였다. 《넌
홀개바람으로 가자.》 《언니, 난 그럼 먼저 달릴테야.》 영금이는
팔을 벌리고 밀밭을 마구 달려나갔다. 밭머리에 나가서 펄썩 앉더니 다시 일어서서 팔을 벌리고 수수밭, 조밭으로 내달아갔다.
뭐라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영금이는 수수밭 다음 보리밭에 가서는 정말 숨박곡질하듯 가뭇 없어졌다. 그러더니 어느새 아득히 가서 머리를 솟구며
부르짖었다. 《언니-》 《원
애두…》 김정숙동지께서는
눈구석에 맑은 이슬이 핑그르르해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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