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18 회)

  

 

제6장

 

 2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어 열이 내리고 맘이 단단해져서 작식대일을 밀고나가시였다. 밥을 짓고 전방으로 밥임을 이여내가고 찬감을 구해들이고 하는 숱한 일을 지휘해나가며 아낙네들 몇명은 또 전방에 나가서 돌을 나르라고 내보내기도 하시였다.

그런데 어느날엔 분임이가 리억겸이한테서 아동단지도원을 그만두고 시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아동단합숙 뒤방 찬구들에 쓰러져 울고있다는 소식이 들려나왔다. 회의를 하던 날밤 양기훈이 그만치 눌러놓았는데 리억겸은 기어코 문제를 들고일어나 갈개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가 울고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에 예린것이 와닿는것 같은 아픔이 왔다. 그러지 않아도 음전이네 집에 불러다놓고 가슴에 맺힐 이야기를 해주고 저도 또한 제 잘못을 뉘우치기도 했는데 그 해파리같은 녀자에게 시집으로 도로 가라는 말을 했다니 치가 떨리게 분하시였다.

도대체 리억겸이 무얼 어쩌자고 저렇게 기를 쓰며 날치는건가.

차응도의 살해사건이 또 얼른 머리속에 떠오르기도 하시였다. 제 맘대로 안될 경우엔 정말 제스스로 칼을 쥐고 나서서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인간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각일각 머리우에 짙은 구름이 내려덮여오는것을 느끼시였다.

그런데 바로 분임이의 소식을 들은 날 저녁때였다. 검산에 나갔다 오는듯한 리억겸이 안경을 번쩍거리며 작식대 일판으로 들어섰다. 관자노리가 칼등같고 눈빛이 무서웠다. 그는 아낙네들이 웅성거리는 풀밭에 와서 한참 독한 눈빛으로 아낙네들을 쏘아보더니 김정숙동지께 시비를 걸었다.

《동무는 무엇때문에 여기 또 나왔소? 작식대일이고 공청일이고 다 그만두라고 했는데 여기에 왜 나왔소?》

《그건 무슨 소리예요? 누가 나한테 일을 그만두라 어쩌라 해요. 설사 그만두라고 했대도 나는 내 신념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마에 쌀을 안치며 리억겸의 낯짝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하시였다.

《그래 그 신념이라는게 무어요? 우경투항주의요? 부르죠아보따리를 이고다니며 혁명하는거요? 아니면 그 무슨 의식적인… 응? 아직도 정신이 못들었소? 제 겨드랑밑에서 적진으로 날아간 녀성이 둘이나 있는데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진단말이요? 응? 지나가던 황아장수가 그 책임을 져? 아무리 뻔뻔해도 그 책임을 모면할수가 없을거요.》

《책임을 지고 안지는것은 딴 문제예요. 함부로 소리를 치지 않는게 좋겠어요. 소리를 친다고 혁명성이 높아지는것은 아니예요.》

《뭐 뭐라고?…》

김정숙동지께서는 훌 일어서 비탈로 나무를 가지러 올라가시였다.

《아주머니들, 저 동무의 말은 절대로 듣지 마오. 저 동무는 이 작식대에 상관이 없는 동무요. 작식대뿐만아니라 우리 근거지사업에 일체 상관을 안시키기로 한 동무요. 불원간 보따리를 싸가지고 떠나게 될거요.》

《어이구, 누가 근거지누나를 보따리 싸게 해요? 근거지누나는 우리 작식대의 맏동서라우.》

《뭐, 뭐 맏동서?》

을손에미의 소리에 리억겸은 눈이 커져서 물었다.

《어이구 아주머니두, 맏동서만 되겠소?》

《그럼요. 벌떼라 하면 왕벌이지 우린 새끼벌들이구. 그러게 우리가 둘둘 말아가지고 날아가야 한다니까…》

을손에미는 입을 꾹 다물고 밥가마만 휘젓고 다른 아낙네들이 떠들어올렸다.

작식대에 와서 흥야라 붕야라 하는놈이 나타나면 끓는 물 미역을 감기겠다고 벼르던 장보배는 낯빛이 새파래서 리억겸이 서있는 근방에다 구정물을 활활 퍼내던진다.

《미친것들 같군…》

리억겸은 구정물이 튄 지하족을 털며 얼른 돌아서 달아났다. 아낙네들은 허리를 꼬부리고 와그르르 웃었다.

그러나 이날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을 붙이지 못하시였다. 자꾸만 근심스러운 생각이 안겨드시였다. 음전이가 인젠 돌아올 때도 되였는데 왜 아직 돌아오지 않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가다가 어떻게 잘못된것은 아닌가? 험난한 세월에 무슨 일인들 없을가. 왜놈한테 붙잡힐수도 있고 불줄기 어지러운 때 불에 맞을수도 있고… 사람의 몸에 덮치는 재앙을 어떻게 이루 다 헤아릴수 있을가. 아니, 도중에 잘못되지 않았으면 능지영에 가서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공작원을 만나지 못한건 아닌가. 공작원이 벌써 거기의 일처리를 다하고 떠나갔기때문에 만날 사람이 없어 갈팡질팡 헤매고있지 않는가. 만약 도중에 무슨 사고라도 있었거나 공작원을 못만났거나 어느 한가지 일이라도 있어서 공작원이 못오게 된다면 여기 벌어진 이 험악한 싸움의 종말은 어떻게 되겠는가. 리억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더러 보따리를 싸가지고 떠나가게 만들겠지. 분임이도 떠나가게 만들고. 아니 내가 어떻게 이 근거지를 떠난단말인가. 여기 군중을 내버리고 내가 어데로 간단말인가. 장군님께서 주신 첫 과업을 받아안고 군중을 이끌고 이 근거지로 들어온 내가 군중을 내버리고 어디로 간단말인가? 그런데 리억겸이 진정 나를 내쫓고싶어하는 목적은 무언가. 나를 우경이라고, 지어는 의식적이라고… 그런 험구를 하는걸 보면 사람잡이하는 능지영의 김기도, 오상묵이들 비슷도 한데 여길 또 능지영같이 피비린내가 나게 만들자는건 아닌가. 분명히 조택구와도 손을 쥔놈이고 조택구에게 지령을 주어 차응도를 죽이게도 만든놈같은데 능지영보다 더 스산한 일이 벌어지게 하지는 않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치가 떨리여 자리에서 일어나 허둥지둥 개울가를 걸으시였다. 풀밭에 앉았다 일어섰다 안절부절 못해하시였다.

(아, 장군님! 장군님!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이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건질수 있습니까? 힘겨운 이 싸움을 어떻게 해야 이길수 있습니까? 제가 보건댄 저 리억겸이 능지영의 김기도, 오상묵이 같은데도 있고 그것보다 더 무서운 사람같기도 합니다. 조택구와 손을 잡고 차응도를 살해한것도 틀림이 없는것 같습니다. 저놈의 정체를 발가놓아야 이 근거지가 자리잡히고 인민들도 안착되겠는데 저놈은 점점 더 혁명적인 말을 휘두르면서 사람들의 눈을 홀리고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장군님, 장군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계시는데만 알면 천리만리라도 달려가 만나뵈옵고 가르치심을 받고싶습니다.

장군님, 장군님!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이 물방울같은 하나의 전사는 여기서 이렇게 가냘프게 반짝이며 장군님의 큰 빛을 바라옵니다. 아, 장군님! 장군님!)

김정숙동지께서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간절한 빛이 어린 눈길로 먼 산발너머를 바라보시였다.

삼도만에서 첫 과업을 주실 때의 장군님의 영상이 눈앞에 떠오르기도 하고 그때 주신 말씀이 우렁우렁 들려오기도 하시였다. 혁명에 애를 먹이는 반혁명도당에 대해선 가차없는 철추를 내리고 혁명대렬을 깨끗이 만들어야 한다고 흥분이 섞인듯도 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던 그 음성이 방불히도 들려오신다. 당장 다시 만나뵙고싶은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뜨거운 눈물을 밀어올려 눈굽을 적시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한창 이런 시련을 겪고있을 때였다. 그렇게도 기다리고기다리던 음전이가 날아들었다. 작식대가 밤이 깊어 설겆이를 하고있는데 맞은편 산비탈로 음전이가 덧저고리 꾸레미를 옆에 끼고 달려내려오며 김정숙동지를 불렀다.

《아니 아주머니가…》

《얼마나 기다렸수? 빨리 돌아온다는것이… 저기 공작원동지가 와요.》

정말 산비탈로 군복차림을 한 지휘관인듯싶은 사람이 걱실걱실 걸어내려왔다. 아낙네들이 모두 일손을 놓고 눈이 둥그래서 쳐다보았다. 그들은 인제야 김정숙동지께서 음전이를 사람 데리러 보냈다는것을 알고 모두 《어쩜》《어쩜》 하고 소리를 질렀다. 등신같은 저희들이 그것도 모르고 수군수군 떠들었다는것이다.

을손에미는 여러번 입천정에 두터운 혀바닥을 붙였다뗐다 하며 떡떡소리를 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개울가로 걸어나가 공작원과 악수를 하시였다.

《공작원동지, 이 동무가 바로 김정숙동무입니다.》

《아 그렇소? 내 이름은 강호입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강호라는 소리에 더욱 가슴이 두근거렸다.

강호라니, 태봉시할머니의 아들이 강호라 하지 않았는가. 그 강호라면 이런 기쁜 일이 또 어데 있을가싶었다.

《참, 이렇게 만나볼줄은 몰랐소. 동무의 오빠를 통해서 내 여러번 이야기도 들었소.》

《저도 할머님한테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정말 반가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다소곳하며 대꾸하시였다.

그 강호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당장 눈물이 쏟아질것 같은 격정이 굽이치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와 악수를 하고난 강호는 우등불앞으로 걸어와 다른 아낙네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했다. 아낙네들은 모두 송구해서 강호의 손을 두손으로 그러쥐였다.

음전이는 그립던 작식대로 다시 돌아와 너무 기뻐서 걸어놓은 가마들의 뚜껑을 열어본다, 개울가로 달려가 버주기를 여겨본다 하며 돌아쳤다. 이슬내린 풀밭을 헤치고 와서 그랬는지 치마아래도리는 죄다 젖었다. 그 먼데를 다녀와서도 오히려 떠날 때보다 기운이 더 펄펄해진것 같기도 했다. 그는 이번 능지영에 가서 아이를 눕혀놓고 온 장동마을이 왜놈의 《토벌》을 맞고 무인지경되였다는 말을 듣고는 떠나오는 안날밤 남편의 무덤에 찾아가 하루밤 내내 피눈물을 쏟으며 울었다.

그리고는 동가촌 옛집 추녀밑에서 시아우가 부락경비를 설 때 만들어둔 고양목 칼집을 한 단도를 뽑아서 괴춤에 찌르고 돌아왔다. 피의 복수를 앞에 두었다는걸 독한 심정으로 자각하는것이였다.

《정숙동무, 저쪽으로 가서 이야길 좀 합시다.》

얼마후 강호는 김정숙동지께 이렇게 말했다.

한시를 지체할수 없는것이였다.

그의 가슴에도 이 불길이 휩싸인 땅에 와서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겠다는 불같은 생각이 타고있는것이였다. 강호는 목갑총 찬 긴 허리를 휘청거리며 산비탈로 올라갔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따라 올라가시였다.

어쩐지 눈물이 자꾸 쏟아져내릴것도 같으시였다. 앞뒤 사정이 점점 복잡해져서 안타깝게 몸부림을 치는 때 어떻게 이처럼 공작원이 날아들었단말인가. 그 공작원이 어쩜 또 이렇게 태봉시할머니의 아들이란말인가.

강호는 산비탈 나무밑에 새를 휘여깔고 앉으며 김정숙동지더러도 앉으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싸리무데기옆에 조심히 앉으시였다.

《내가 동무의 오빠와 한동안 일을 같이 했소.》

《저도 알고있어요. 전 만나뵙기는 처음이지만 어머님과는 친어머니처럼 지냈기때문에…》

《허허허, 어머니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 그래 오빠에 대한 소식은 알고있소?》

《잘 몰라요.》

《음…》

강호는 웅심깊은 소리를 내며 얼굴빛이 어두워져서 잠간 풀잎을 뜯었다. 그러나 이어 다른 말을 꺼냈다.

《우리 어머니한테 가있는 조카애는 잘 자라는지 모르겠구만.》

《잘 자라고있을거예요. 어머니가 그렇게 애쓰시며 거두어주시는데…》

《그 애 이야기도 여러번 들었소.》

강호는 담배를 붙여물며 말했다.

《전 어머니가 아이를 너무도 사랑해주시기때문에 늘 친어머니같은 생각도 들고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가고 생각해요.》

《허허허, 은혜가 무슨 은혜겠소. 우리 어머니는 나 하나를 낳아서 독수리날리듯했기때문에 늘 슬하가 비여 적적하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그 어린것이 가서 적적한 품을 그득하게 만들어드렸는데 무슨 은혜란말이요?》

《그래도 전 늘…》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강호 못보게 눈굽에 넘치는 눈물을 닦으시였다.

인남이를 건드린 이야기때문에도 그렇지만 강호의 소박한 인품이 마음속깊이를 울리시였다.

《자, 그건 그렇고 우리 딴 이야기를 좀 합시다. 정숙동무는 능지영에 있을 때에도 잘 싸웠소. 그 위험한 정황속에서 <민생단>혐의로 갇힌 사람들한테 먹을걸 넣어주며 투쟁한다는건 간단한 일이 아니요. 이번 그곳 일을 바로잡아놓고 왔는데 거기 사람들이 모두 그 이야길 하며 울었소. 그때 그 근거지누나가 지금 어데 가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이 사실에 대해선 장군님께서도 여러번 말씀하시면서 정숙동무는 보통심장으로는 해낼수 없는 일을 해내는 동무라고 치하를 하셨소. 그런데 동무는 또 여기 와서도 아주 놀랍게 싸우고있소. 내 음전아주머니한테서 죄다 들었소. 그리고 동무가 사람을 급히 띄운 문제는 이 술기막골을 깨끗이 만들 단서를 열어놓았소. 내가 그 자료를 가지고 저 김기도의 잔당들을 심문했는데 바로 정숙동무가 점찍은 그놈이 자기들의 졸개라는걸 확인했소.》

그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얼굴을 쳐드시였다. 달빛받은 유순한 얼굴에 당장 세찬 불빛같은 날카로운 빛이 나타났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내가 그놈을 놓고 한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마트면 이 근거지가 정말 피에 잠길번 하지 않았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마후에야 얼굴에 드러났던 날카로운 빛을 서서히 가셔내며 얼굴을 도로 수그리시였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저고리앞섶을 잡아당기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내가 떠날 때 능지영일을 바로잡고는 술기막골까지도 가보라는 말씀을 하셨소. 적구로 들어가지 못하는 숱한 군중이 거기 몰려들어갔는데 식량문제도 근심이 되시고 농사를 짓고있는지도 모르시겠다고 하시며… 내 그래서 이리로 오려던참이였는데 동무의 련락이 날아들었소. 잘 싸웠소. 아주 잘 싸웠소. 결국은 동무의 악전고투가 여기 모여든 군중을 지켜냈소.》

《저야 마음뿐이지 한 일이 뭐 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떨구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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