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13 회)

  

 

제4장

 

 3

 

《이놈, 이놈! 찢어서 매밥을 할 이놈, 네가 그래 차회장을 죽여놓고는 식량부장이 차회장 죽였다고 뜬소문을 돌려? 에끼 이 이놈!》

양기훈은 분이 머리꼭뒤까지 치달아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는 전신을 와들와들 떨었다. 어떻게 원쑤를 이처럼 쉽게 잡아낼수 있었을가. 그 똑똑한 정숙동무가 허튼수작질한놈이 어느놈인가 하는것을 알아내자고 애쓴다고 하더니 이렇게 공청원들을 내세워 손쉽게 잡아낼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게 온 근거지군중이 눈을 크게 뜨고 껑충 놀라 일어날 일 아닌가. 양기훈은 차회장을 죽인 원쑤가 눈앞에 붙잡혀왔다고 생각하니 그저 두눈이 뒤집히고 심장이 터지는것 같았다.

《이… 이놈, 이놈, 목을 분질러놓아도 시원치 않을 이놈, 네 네가…》

그는 목이 타서 말도 제대로 톺아내질 못했다.

《아바이, 이놈을 가둬넣지 않겠어요?》

원쑤를 결박해가지고 온 공청원들이 물었다.

《가 가만 있거라. 내가 이놈을 똑똑히 보기라두 하구 가둬넣든지 해야겠다. 어떻게 이놈을 면바로 짚어가지고 붙잡아냈구나. 이 나쁜놈, 그래 병기창에서 만들어낸 칼을 가지고 네놈이 차회장을… 에끼 이…》

양기훈은 또 한번 훌쩍 뛰여오르며 책상을 두드렸다.

《흥, 마음대로 말해보슈.》

키가 작고 몸집이 다부진놈은 띠끔도 않고 피빛이 얽힌 눈으로 양기훈을 흘겨보며 뱉었다.

《야, 이놈아, 네가 그럼 차회장을 해치지 않았단말이냐? 네가 해쳐놓군 한기천이가 뭐 어쨌다고 안했단말이냐? 이자식 말해라!》

이번엔 청년들이 대들었다. 놈은 청년들한텐 움쩍을 못했다.

하긴 방금 산속에서 청년들한테 골이 깨지게 매를 맞으며 묶인것이였다. 지금 놈의 뒤통수로는 피가 흘러내렸다. 이놈은 병기창에서 작탄을 만드는 일에 한몫 한답시고 숨어있던 조택구란놈이였다.

사실 그동안 김정숙동지께서는 공청원들을 동원시켜 말의 출처를 알아내려고 을손에미한테 쑥덕거렸다는 큰벌 오동근이부터 캐들어가기 시작하시였다. 오동근이는 되골 조치국이란 사람한테서 들었다 했고 되골 조치국이는 능수리의 장일순령감한테서 들었다 했고 장일순령감은 또 누구한테서 들었다고 했다. 어쨌든 이렇게 밟아가다가 조택구한테 걸렸다. 조택구는 또 얼마전 세상을 떠나간 박치호란 사람한테서 들었다고 했다. 결국 죽은 사람한테서 들었다니 더 캘수 없게 되고 일은 안개속에 파묻히게 되였다.

《괘씸한것 그런 말을 퍼뜨리고 왜 죽어? 가만있자 박치호 그놈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구정부 간부를 또 하나 잡자고 허튼수작을 떠벌이고 죽지 않았어?》

《정말 그게 비슷한 소리요. 그놈도 과거에 밥술이나 먹고 그놈의 사촌은 큰 부자였다우. 종을 여러명 두고 부렸다는 말도 있소. 틀림없이 그놈이 진범인이야.》

공청원들은 수군수군 끓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신중히 생각을 더듬으시였다. 죽은 사람한테서 말을 들었다니 그저 그 사람이 죄다 일을 저지르고 허튼 소문도 퍼뜨리고 간것이라고 믿고싶지 않으시였다. 더우기 죽은 사람을 놓고 시비질하는게 사람의 도리도 아닌것 같으시였다. 그것보다도 하필이면 말의 출처가 왜 죽은 사람한테 가닿는가 하는데 더욱 의심스러운 생각이 드시였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고 여기에 사건을 오리무중으로 파묻어버리려는 계략이 있지 않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조택구에게 더 의심이 가시였다. 그래서 공청원들에게 조택구를 불러다놓고 죽은 사람한테 넘겨씌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버쩍 다그치게 했다. 그러나 하루밤 조택구를 불러다 문초하고난 공청원들은 조택구가 죽은 사람한테서 들었다고 벋대기도 하거니와 또한 사실이 그런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아니예요. 더 버쩍 파고드세요. 그렇게 쉽게 보아선 안돼요. 아무러면 제 죽을 소리를 헐하게 불겠어요? 밑창이 드러나도록 다그쳐야 해요. 이것저것 찔러가며 물어두 보구 표정도 살피구 말이 막히면 어째서 막히는가고 연구도 해가며…》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뽐도 드티지 않는 침착한 표정으로 공청원들에게 불을 지르시였다.

《여, 정말 책임자동문 보통이 아니우…》

《그러게 근거지누나라는 소문이 났지.》

공청원들은 사리밝은 김정숙동지의 말에 감탄했다. 그들은 또 조택구를 불러다놓고 바로 대라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조택구는 공청원들앞에서 또 이틀밤 땀을 뺐다.

놈도 인젠 되게 걸려들었다는걸 알게 되였다. 그래서 오늘아침 검산을 넘으려고 산중으로 내빼다가 공청원들에게 붙잡히였다.

양기훈은 놈한테 손은 붙여내지 못하고 한참동안 훌쩍훌쩍 뛰였다. 주먹으로 책상을 치다간 제 가슴을 탕탕 치며 몸부림을 했다.

《내, 내가 이놈을 어떻게 해야 내 혁명동지의 원쑤를 갚는단말이냐? 이 못박힌 가슴을 활짝 열테란말이냐?》

양기훈은 앉아서 부르짖다간 또 불쑥 일어섰다. 불이 이는 눈에선 눈물이 둘둘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이런 때 바깥마당에선 을손에미가 몸부림을 치며 땅을 두드렸다.

《애구, 글쎄 저놈이 원쑤란말야? 그런걸 난 한베락이 그랬다고 허튼수작을 했지. 어허이구, 근거지누나가 날 뭐라고 할가?》

그는 눈물이 그렁해서 부르짖었다. 방금 물을 긷다가 공청원들이 조택구를 차회장 죽인놈이라고 떠들며 묶어가지고 오는걸 보고 뒤따라왔는데 한 절반 정신이 나가서 물긷던 또아리까지 들고 왔다. 그래서 그 부들로 만든 알룩달룩한 또아리를 마당가운데 내굴리고앉아 땅을 두드렸다. 그 총명한 누나가 하나 건너 스물을 넘겨짚어 바로 저 조택구란놈이 원쑤라는걸 알아내가지고 공청을 동원시켜 잡아낼줄은 몰랐다. 그러니 그 근거지누나가 자기를 욕하면 얼마나 욕할가, 원쑤의 장단에 춤추는 년이라고. 내가 정숙이 같아도 원쑤와 한동아리된년이라는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애구, 이년이 무슨 주둥아리질을 못해서 한기천이 사람죽였다고 허튼 수작을 했댔을가. 뭐 사람 똑똑한 동근이한테서 들었다고 우겨대면서…》

그는 제 무르팍을 쳤다.

《아니 아주머닌 여기 와 앉아 뭘 하우?》

을손에미가 혼자 이러고있는데 토지부장이 행길쪽으로 급하게 걸어들어오며 말을 건늬였다. 그바람에 을손에미는 굴러간 또아리를 따라가 걷잡아쥐며 일어섰다.

《자실게 없어서 그러우?》

을손에미는 씽해서 정부사무실 아래모퉁이로 피했다. 토지부장은 지금 량곡이 와서 그 기별을 가지고 뛰여올라오는참인데 혹시나 식량이 없어서 눈물을 쥐여짠다면 반가운 소리라도 한마디 해주자고 했던것이다.

《흥, 별 내인을 다 보는군…》

토지부장은 재빨리 사무실로 가서 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회장동지, 왔습니다. 량곡이 왔습니다.》,

《엉? 량곡이? 와 와야지. 량곡이 와야지.》

양기훈은 원쑤를 족치다가 차회장 생각으로 흐느끼며 경황없이 말을 받았다.

《아니 이건?》

《공청원들이 원쑤를 잡았네. 이 이놈이 차회장을 해쳤네.》

토지부장은 낯빛이 새파랗게 되여 불쑥 들어섰다. 그도 온몸을 우르르 떨었다.

지금 검산너머 능수리 앞골짜기로는 대걸이의 소대원들과 적구의 숱한 인민들이 량곡을 한짐씩 골박아지고 줄을 지어 들어온다. 한기천은 자기를 모해하려던 원쑤를 잡아낸줄도 모르고 량곡짐을 받아지고 울기가 뻗친 낯빛을 하고 걸어들어왔다. 타격을 받은 그 일이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 쇠몽둥이같은걸 건너질렀다. 그대신 리억겸은 한짐 지고 앞장서 걸어들어오며 기분이 좋아서 떠들어댔다.

《어쨌든 우리 근거지에서 이악스럽게 해내긴 했지요. 식량 한톨 없어가지고 그래도 거의 다 살아났구 땅두 다 갈아엎구 씨를 박아넣었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벌써 조가 새파랗게 대가릴 내밀었습니다.》

리억겸은 씨앗 나누어먹자고 날치던 일은 가맣게 잊어버린듯 뻔뻔스럽게도 적구인민들에게 선전을 했다. 정말 골짜기 량옆으로 퍼져올라간 비탈밭들이 새파랗다. 조만 나온게 아니라 드문드문 간작으로 심어놓은 콩들도 다 솟아올라 큰 잎사귀들을 너풀거렸다. 비탈을 스쳐나간 그 저쪽 벌판도 온통 파랗다.

《하하, 대단합니다. 이건 우리 사는데보다 농사를 한절기 더 앞당겨오지 않았습니까? 우리 지방엔 아직 곡식이 이렇게 내밀질 못했습니다.》

《그러게 근거지가 아니겠소. 근거지란 우리네 자유천지란말입니다.》

모두들 웃었다. 리억겸이도 껄껄거리며 웃었다. 리억겸이 한기천이들을 내놓고는 모두 물주머니가 됐다. 입은채 고동하를 건너서 웃저고리에서까지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어떻게 량곡짐은 적시질 않았다.

사실 소대와 인민은 고동하를 건느는것도 그렇지만 고동하 건너편에서부터 큰 욕을 보았다. 고동하 건너편엔 검산너머로 불집을 열 왜놈군대가 솔밭에 가뜩 박여있었다. 대걸이와 리범진은 놈들을 어데든 이끌어가지 않고는 량곡을 고동하건너로 옮길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대의 일부 력량으로 유인전을 조직했다. 정말 놈들은 총 몇방 쏘자 온 솔밭이 발끈 뒤집혀 일어났다. 항상 유격대의 배후타격을 경계해오던 놈들이였다. 리범진은 전투원들을 지휘하면서 놈들을 고동하 저쪽 20여리나 떨어진곳에까지 이끌고나갔다. 그러는동안 대걸이는 량곡운반을 지휘했다. 량곡은 전부 배로 나르고 사람들은 물을 건느게 했다. 무섭게 다그쳐대는 싸움이였다. 적구인민들도 소대와 같이 펄펄 날았다.

《넨장 이래서 유격대쌈이 신바람난다구 했군.》

《그렇죠. 젊은 사람들이 왜 혁명군에 못가서 몸부림을 치는줄 아오?》

《좌우간 장군님의 전술중에서도 놈들의 뒤골치는 전술이 유명하다니까…》

강을 건늰 적구인민들은 강가에서 젖은 옷을 쥐여짜입으며 법석 떠들었다.

결국 이런 싸움을 거쳐 지금 량곡이 능수리 한판으로 들어오고있는것이였다. 벌써 량곡 온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은 길이 메게 달려나왔다. 애들, 어른들, 아낙네들 온 능수리가 다 떨쳐났다. 온다온다 하더니 인제 정말 량곡이 온다고 눈물을 머금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아낙네는 죽은 식구를 생각하고 풀밭에 퍼더버리고앉아 풀을 쥐여뜯으며 울기도 했다. 모두 기쁨과 설음이 뒤섞여 어쩔줄 몰라했다.

《비키시오. 비키시오. 개선장군들이 그 짐을 누구의 잔등에 지우겠소.》

리억겸은 짐을 받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비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숱한 사람들이 달려들어 적구인민들의 젖은 잔등에서 짐을 받아내려서 졌다. 짐을 안내려놓겠다느니 내려놓으라느니 하며 쌈싸우듯 떠들기도 했다. 구정부마당에서 땅을 두드리며 울던 을손에미도 량곡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나왔다. 그는 아직도 자기 뉘우침으로 하여 눈물이 둘둘 굴러떨어졌다. 그는 달려나오는길로 한기천이 지고들어오는 짐을 받아이겠다고 달려들었다.

《아니 이건 어쩌자구 이러우. 받아이겠으면 딴 짐을 받아이오. 나두 검산등에서 받아지고 들어오는길이요.》

《글쎄 내려놓수, 이 무거운걸 지구 두어깨가 얼마나 아플가?》

을손에미는 눈물을 굴리며 부르짖었다. 내가 동근이의 수작질에 동떠서 근거지누나를 보고도 이 한벼락이를 당장 어쩌라고 했지, 한벼락이 아니고야 어느놈이 그런 끔찍한 일을 해낼수 있었겠느냐고… 이 도깨비같은년 무얼 채 알지도 못하고 쌀 달라고 갔을 때 좀 웩웩했다고 사람을 잡아. 이 큰 일군을 잡아… 을손에미는 몽둥이로 자기를 짓모는 심정으로, 아니 한기천의 앞에 엎어져 아주버니 날 살려주 하는 심정으로 종시 한기천의 짐을 빼앗아이였다.

《아니 울기는 왜 울며 이 야단이요?》

《량곡이 와서 기뻐 그러우.》

한기천은 그제야 껄껄 웃었다. 제사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이렇게 기뻐서 우는 량곡을 이제야 가져다주다니. 내가 이 녀인과도 쌀때문에 여러번 웩덱했지. 감때사나운 아낙네라고 주먹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지, 이처럼 쌀 오는걸 보고 기뻐서 물구지알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는 녀인과말야. 빌어먹을놈, 괘씸한놈, 그게 무슨 사업작풍이야.

한기천은 두눈을 슴벅슴벅하며 목이 부러지게 쌀을 받아이고 달아나는 을손에미의 뒤모습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양기훈이도 달려나와 짐을 받아지려 하다가 벗어주지 않아 그냥 물러서며 두눈을 슴벅거렸다. 고인에 대한 절절한 아픔, 원쑤에 대한 분노, 거기에  또 이렇게 량곡이 들어오는 환희, 이 모든 감정이 한물결되여 무엇을 어찌했으면 좋을지 모르게도 만든다. 그는 그래도 활개를 치며 먼저 구정부마당으로 걸어들어갔다. 벌써 토지부장이 조택구를 개 끌듯 끌어다 가두고나온 공청원들을 지휘해가며 토방에 있는 널장들을 끌어내려 마당에 깔았다. 량곡을 받아서 쌓을 자리를 만드는것이였다.

《여, 여기다들 내려놓으라구…》

양기훈은 밭은 활개를 한아름 벌려보이며 널을 깐 마당에 량곡짐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눈가장엔 눈물자욱이 번돌번들했다. 사람들은 널판자우에 등짐을 탕탕 내려놓았다. 을손에미는 벌써 이고온 쌀포대를 내려놓고 손부채질을 하며 낯빛이 환해져서 웃는다. 파란곡절뒤에야 날고싶은 하늘이 펼쳐지는가, 어쩜 이렇게 원쑤를 잡아내자 량곡이 달려드는가. 그는 안절부절못해하며 또 힝 달려가 사람들의 등짐을 받아내렸다. 그리곤 벌써 낟가리가 되기 시작한 량곡더미우에 척척 올려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늘도 영동으로 떠나가다가 량곡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 놀라와 당장 가슴이 뻐긋해지고 숨이 차오르시였다. 이렇게 들이닿는 량곡을 빨리 오지 않는다고 그렇게도 안타까와하시였다. 소대원들이 이걸 공작해오느라고 얼마나 욕을 보았을가.

벌써 량곡낟가리를 높다랗게 올려쌓았다. 온통 수수와 황조미이다. 왜놈의 공사판들을 쳤다는데 마대도 금방 마대공장에서 뽑아낸것 같은 새것이였다. 쌀을 너무 다져넣어서 포대가 터지기도 했다. 그런걸 토지부장이 돗바늘로 꿰매며 인젠 쌀이 너무 많아서 줄줄 흘린다고 떠들었다. 모두들 껄껄 웃었다.

옷이 젖은 소대원들과 적구인민들은 모두 저편 산기슭으로 나가 우등불을 질렀다. 그리고는 옷들을 말리느라고 법석했다. 소나무들엔 술한 소대원들이 올라갔다. 우등불 지를 삭정이를 꺾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을 찾으시였다. 낟알빛을 보기 바쁘게 손을 내미는것 같은 생각은 들었으나 아무래도 쌀을 좀 달래가지고 가서 굶어 누워있는 영금이에게 미음이라도 쒀먹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마침 한기천이 뒤창고에 갔댔는지 아래모퉁이로 돌아나온다.

《정숙동무가 수고를 했소. 저놈을 잡아내느라구…》

한기천이 중얼거렸다. 창고안에 들어가서 조택구를 보고 나온것이였다.

《너무 떠들지 마세요. 한놈뿐 아닐지도 몰라요. 마저 잡아내야 하겠어요.》

《그러니 저놈이 원쑤인줄 뉘 알았겠소 응?》

한기천은 눈망울에 불이 펄펄 일었다.

《참으세요. 그리구 여기다 쌀을 좀 주세요. 한홉만 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영동에 가느라고 또아리를 만들어쥐고 왔던 수건을 펴서 내밀며 말씀하시였다.

《갑자기 쌀은 한홉해서 뭘하오?》

《응석받이가 여러날동안 먹지 않고 사람의 땀을 빼지 않아요. 저렇게 내버려두었다간 손에서 놓을것도 같아요.》

《아니 그 애가 아직도 일어나질 않았소?》

《안일어났어요. 벋나가기 시작하니까 어째내질 못하겠어요. 입을 옥물고 먹지도 않고 장 누워있질 않겠어요. 오늘은 미음이라도 한술 쒀먹이면서 살살 달래야겠어요.》

그제야 한기천은 껄껄 웃었다. 그는 얼른 수건을 받아들고 가더니 토지부장이 꿰매고있는 황조미포대구멍에서 시누런 황조미를 둬홉가량 받아들고 왔다.

《저놈때문에 내가 응석받이한테서까지 골탕을 먹는다니까… 그러나 어쨌든 내 오늘은 하늘을 둥둥 나는것 같소. 원쑤도 잡아냈겠다, 량곡도 왔겠다…》

한기천은 떠들며 황조미 싼 수건을 죄여매서 내밀어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걸 받아들고 종종걸음을 치시였다. 오늘에야말로 몸이 날으는 제비같이 가벼우셨다. 온 땅 구석구석에 정말 기쁨의 이슬비를 뿌리며 뛰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집에 돌아오시니 영금이는 여전히 누워있었다.

아버지의 무덤에서 돌아오자바람으로 자리에 누운것이 이날 이때까지 머리를 들지 않는다. 몇번 일궈앉혀가지고 아버지의 원쑤를 갚으려면 먹어야 한다고 간신히 몇숟가락씩 먹이군 했었는데 어제저녁부터는 무섭게 쌀쌀한 표정으로 그것마저도 밀어냈다.

《난 안먹어두 좋아요. 어서 언니들이나 먹어요.》

《얘, 안먹어야 네가 배고프구 네가 속았지 어디 딴사람이 배고프구 딴 사람이 속을테냐?》

《난 내가 배고프구 내가 속자는거예요.》

《그건 어째서…》

《그러고싶으니까 그러지.》

어제저녁엔 국금이가 끼니를 먹이려다가 한참 싱갱이를 하였다.

그래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제저녁 처음으로 된매를 안기는것 같은 꾸지람을 해주시였다.

《네가 이렇게 하고 누워서 어쩔 작정이냐? 무슨 억하심정으로 네가 배고프고 네가 죽겠다는거냐? 사람이 엇나가도 엇나갈만치 나가야지 이렇게 내내 오돌차게 입을 감쳐물고 누워서 독을 쓰니 곁사람인들 살겠느냐?》

《흥…》

영금이는 더 앵돌아지며 코소리를 했다.

《왜 코소리냐? 네 언니가 미워서 코소리냐? 내가 보기엔 네 언니가 미움받을 일은 하나도 하질 않더구나. 네가 인젠 나이 몇살이냐? 혁명을 하겠다고 떨치고 일어나 물불을 모르고 뛸 나이야. 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각을 하며 눈물을 짠다는것도 다 거짓말 아니냐? 아버지 생각을 하는 애가 그래 잔뜩 도사리고 누워서 언니를 구박해? 너의 아버지야 널 보고 늘 혁명을 잘하라고 했지 이렇게 키가 들썩해지도록 응석이나 부리라고 했더냐? 아버지가 네 가슴속에 심어주고 간 그 뜻을 꽃피우지 못한다면 네가 무슨 아버지의 딸이겠니? 딸답게 살아야 딸이지, 딸답게 못사는것도 딸일테냐? 네가 오해를 하고있는 일은 그렇지 않다고 그만치나 타일렀으니 인젠 알아들었을게 아니냐? 얘, 날 좀 보렴. 왜 그렇게 자꾸 달팽이처럼 옹크리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오그리고 돌아누운 영금이를 흔드시였다. 그러나 애는 그담엔 아무 대꾸가 없었다. 속에 들어간것이 없으니 누구와 다툴 기운이나 있으랴싶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꾸짖어놓은 일이 가슴저려 밤에 자다가 손목을 만져보기도 하시였다. 그래도 애들 기운이 돼서 그런지 맥박은 팔딱거리며 뛰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지난밤 생각을 하며 얼른 쌀을 씻어서 미음을 만들어 안치시였다.

국금이를 큰벌 공청원들한테 심부름을 보냈는데 그 국금이가 돌아오기전에 무얼 만들어 얼른 먹여보자는 생각을 하시였다. 아무래도 욱박지르던 제 언니를 곁에 놓고는 먹여낼수 없을것 같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랴부랴 미음을 쒀들고 영금이의 곁으로 올라가시였다.

《얘 영금아, 일어나서 미움을 한숟갈 먹자. 쌀로 쑨 미음이야.》

김정숙동지께서는 영금이의 가늘어진 목아래에 팔을 넣어서 들어일궈앉히시였다.

《놔요.》

《놓긴 왜 놓을테냐? 어서 한숟갈먹자. 인젠 원쑤도 잡아내고 식량도 왔단다. 그래서 영동으로 더덕이 캐러 가다가 그만두고 이렇게 쌀을 달래가지고 와서 미음을 쑤지 않았니…》

《날 속이지 말아요.》

《속이긴 누가 속일테냐? 자 이것 보려마. 이게 쌀죽이 아니냐?》

김정숙동지께서는 김이 물물 나는 미음을 한숟갈 떠서 주르르 흘려보이시였다. 영금이는 되알지게 흘기는 눈으로 미음그릇을 쏴보았다.

《그래 원쑨 누구예요?》

《병기창 조택구놈이란다.》

《뭐 조택구?!》,

영금이는 두눈을 흡뜨며 김정숙동지를 치떠보았다. 그렇게 먹지 않은 애인데 눈에서 번개불이 이는것 같았다.

《그놈 한놈뿐인지 그놈 말고도 또 딴놈이 있는지 모른단다. 그러니까 원쑤를 잡아내는것두 소동을 피우지 말구 잡아내야 해. 살금살금 뒤를 캐가지구 그놈들 모가지에 죄다 올가미를 걸어야 한단다.》

《그 자라목 조택구가 정말 원쑤예요?》

《그렇단다. 뭘 짚이는데가 있니?》

《짚이긴…》

《그런데 왜 이러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다가앉으며 영금이를 품에 끌어안으시였다.

몸이 얼마나 축을 보았는지 살이란 다 빠지고 찬 돌멩이같은 애가 바들바들 떨어댄다.

《글쎄 왜 갑자기 이렇게 떠니?》

《원쑤를 잡았다니까 그러지.》

《그래?… 그럼 자 어서 한숟갈 들자.》

그러나 영금이는 미음숟갈을 받지 않고 입술을 꼭꼭 깨물었다. 조택구 그놈이 제가 원쑤이면서 산으로 나물캐러 가는 자기를 붙들어앉히고 뭐라고 했던가.

《얘 영금아, 너만 알고있거라. 지금 동네에서 무슨 말이 수군수군 돌고있는고 하니 구정부에 있는 한벼락이가 너의 아버지를 해쳤다고 한단다.》

《아니…》

《야, 놀라지 말어. 나두 너무 엄청나서 그런 말 하는 사람을 되게 나무라주긴 했다. 그렇지만 세상일을 어떻게 아니? 한벼락이가 너의 아버지를 죽이고야 헤게모니를 쥘수 있다고 그따위짓을 했단다. 말 내지 말고 혼자 가슴에 새겨둬라.》

그리고는 달아나버렸는데 지금도 그 조가의 입김이 귀가에서 풍기는것 같다. 영금이는 자꾸 몸이 떨렸다.

《자, 어서 입을 벌리래두.》

영금이는 입을 벌렸다. 미음숟갈을 밀어넣자 그걸 받아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제정신을 가지고 받아먹질 못했다. 눈빛이 무서웠다. 더 세찬 푸른 번개가 날았다. 그 눈에서 짜고 독한 눈물이 주르르 쏟아져내리기도 했다. 회오의 소낙비가 퍼붓는것이였다. 내가 글쎄 맹추면 얼마나 찢어죽일 맹출가, 그놈한테 그렇게 속아가지군 그날저녁 돌아오는길로 불집을 터뜨려 아무 죄없는 우리 언니를 마구 탕탕 천대했으니 내따위가 무슨 사람이야. 그 통에 이 언니는 그새 또 얼마나 울었는가. 내가 아버지 무덤에 찾아갔을 때도 이 언니가 따라와 수풀속에 앉아서 울었지. 그리고 내가 집에 와서 누워있는동안에도 안타깝고 안타까와 몰래 눈물을 짓군 했지. 내가 왜 그걸 모를테야. 어느날 밤엔 내가 머리를 들고 밖에 나가니 이 언니가 달 비친 토방에 서서 눈물을 씻고있었지. 어제저녁엔 얼마나 애가 탔으면 그렇게 짠 꾸지람을 해주었을가. 아버지의 뜻을 꽃피우지 못한다면 무슨 딸이겠느냐고 했지. 참답게 살아야 딸이 된다고 했지. 내가 그 말뜻을 왜 모를테야. 아이 분해. 요 맹추야.

영금이는 정신없이 또 미음을 받아먹었다.

이러는데 바깥 사립문안으로 한기천이 쌀을 한짐 지고 들어섰다.

《우리 응석받이가 어떻게 미음을 쒀서 먹니? 내가 쌀을 더 지고 왔다.》

한기천은 토방에 쌀짐을 벗어놓으며 휘유 회파람을 내불었다.

《영금이 밥지어먹으라고 쌀을 더 가지고 왔어요?》

《그럼, 우리 응석받이가 골병이 들어 누웠다기에 떡을 쳐서 먹이든 밥을 해먹이든 배집이 좀 들썩하게 해먹이라고말이요. 응석받이는 이 한벼락이를 놓고 어쩌고저쩌고 한다지만…》

한기천은 김정숙동지의 말에 대꾸하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한기천에게 눈짓을 해보이시였다. 지금 깨진 질그릇 다루듯해서 한숟갈씩 먹이는걸 또 튀게 만들지 말라는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짓이냐? 그 꿀맛같은 미음을 제손으로 푹푹 퍼먹지 못하고 언니가 떠먹여줘? 당장 네 손으로 퍼먹지 못할테냐? 네가 그러게 어제밤 차형님이 와서 날 보고 응석받이를 잔등만 두드려주지 말고 달초를 꽝꽝 치라고 하지…》

《놔두세요. 지금 영금인 몹시 아파서 그래요. 그 아버지가 꿈이니 달초를 치라고 했지 생시같다면 달초를 치라고 했겠어요.》

《아니 되게 으릅디다. 아무리 혁명의 품이라도 애들을 종아리를 치며 바로 길러야 한다고 눈코를 못뜨게 몰아세웁디다.》

영금이가 갑자기 얼굴을 싸며 울었다.

《아니 왜 그러느냐 엉?》

한기천이는 측은한 빛으로 영금이를 굽어보았다.

《정말 나를 때리라요. 왜 때려주지 못해요? 한 절반 죽게 때려주지 못해요. 내가 아저씨한테 죄지은 일을 생각하면 아저씨한테서 숨덩지가 없어지게 맞아도 난 정말, 정말 할 말이 없겠어요.글쎄 내가 어쩜 아저씨를 두고 그따위 생각을 했겠어요. 아저씨, 아저씨, 날 응석받이라고만 말고 팍팍 때려줘요.》

영금이는 벽에 머리를 짓쪼으며 울었다.

《영금아, 우지 말아!》

김정숙동지께서 다가가 안아일으키며 달래시였다.

《언닌 나때문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어요. 이따위것때문에 언니도 아저씨도… 글쎄 내따위가 뭐야요? 정말 우리 아버지가 이걸 안다면 날 막 달초를 치고 뼈라도 분지르자고 할거야요. 아버지, 아버지, 나를 용서해줘요. 내가 정말 잘못했어요.》

영금이는 벽을 때리며 목놓아울었다.

《옳지, 인제 우리 응석받이가 철이 든다. 넨장 저승에 있는 차형님도 입이 벌어지겠다.》

한기천은 여전히 롱을 했다. 하지만 그의 검실검실한 눈구석에도 눈물이 괴였다. 차응도 생각으로 목이 메는것이였다. 정말 꿈에라도 만나 생시처럼 이야기할수 있다면 이런 우여곡절을 죄다 이야기하고 한바탕 크게 웃기라도 하지 않겠는가!

영금이의 설분이 너무도 절절해서 미음그릇을 걷는 김정숙동지께서도 가슴속으로 뜨거운것이 치밀어오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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