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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5 회)
제2장
1
김정숙동지께서는
무거운 생각에 잠기시여 저녁바람에 나무숲이 누웠다일어났다 하는 능수리 앞길을 총총히 걸으시였다. 그런데 길옆 개울가에
웬 녀인이 몸을 또아리 틀듯하고 누워있었다. 발끝은
거의 개울물에 잠기다싶이 했다. 《그게
누구예요?》 소리를
쳐도 대꾸가 없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삐 물가로 달려가시였다. 《여보세요, 왜 이렇게 여기 누워있어요? 아니, 이게 누구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시였다. 뜻밖에도 공청파종대의 대렬속에서 땅을 파던 녀인이였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정신 차려요. 왜 이렇게 누워있어요?》 녀인은
간신히 눈덕을 밀어올린다. 그래도 총기가 있는것 같은 눈망울이 빠끔히 마주 쳐다보았다. 《아주머니, 어데가 아파서 이렇게 누워있어요?》 《혼미해져서…》 타고
타서 새까맣게 된 입술을 간신히 움직이며 대꾸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꼬부린 그의 몸을 돌려 품에 안아올리시였다.
녀인은 머리를 근뎅거리며 김정숙동지의 품에 볼을 대였다. 몸이 갑신하고 목가죽이 얄팍했다. 울근불근 뼈가 마치기도 했다. 《이런
몸으로 땅을 어떻게 파겠어요? 이 몸에 땅과 씨름할 힘이 있겠어요?》 《가만, 나 좀…》 빠끔히
뜬 눈으로 김정숙동지를 올려다보며 무얼 걷잡을듯 허공에 손을 저었다. 《왜
그러세요?》 《나, 나 좀, 놔달라구…》 녀인은
살핏한 손으로 떠밀며 놓아달라고 했다. 아마 들어움직이니 기동할 힘이 생기는 모양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을 풀밭에 내려놓으며 흩어진 머리를 쓸어넘겨 낭자를 틀어주시였다. 녀인은 김정숙동지의 어깨를 짚으며 비척비척
일어섰다. 땅을 디디고 일어서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었다. 《어쩌자고
이러세요?》 《좀
걷겠다니까…》 《넘어지지
않겠어요?》 《넘어지긴…》 녀인은
외따로 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일어서며 한팔로 그의 가는 허리를 안아서 끼시였다. 걸음을 옮겨디디는것이 갓난애들
걸음발 타듯한다. 왜 졸지에 이렇게 되였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몸이 약하니 질그릇 깨지듯 태가 가는지 모른다. 《집은
어데 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끼고 걸으며 물으시였다. 《저기
고개너머에…》 《집엔
누가 있어요?》 《나
혼자라우. 애두 없구…》 녀인은
힘들게 대꾸를 하며 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더 묻지 않으시였다. 마을뒤 고개길로 접어들어선 김정숙동지께서 안고 올라가다싶이 하시였다. 치마가 너무 흘러내려가
자신의 어깨를 붙잡게 하고 말기를 당겨올려 치마끈을 고쳐매주기도 하시였다.
고개너머
삼태기안같이 후미진곳에 집 한채가 있었다. 녀인은 그 집 건넌방에서 산다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 녀인을 부축해가지고
들어가는데 큰방집에서 관지뼈 두드러진 녀인이 내다보며 입을 항 벌린다. 그러더니 왜 부축해가지고 들어오느냐고 물었다. 《어지러워서
걸음을 잘 걷지 못해요. 이 집 주인아주머니예요?》 《그렇다우. 쯧쯧 기를 쓰고 땅파러 다니더니…》 아낙네는
달려나와 같이 부축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녀인을 제 방으로 끌어들여갔다. 큰방집 아낙네는 혀로 자꾸 쯧쯧 소리를
내였다. 방이라는게 그래도 도배는 했던 방인데 스산하길 짝이 없었다. 한쪽벽은 색바랜 신문지가 다 떨어져나가고 다른 한쪽벽도 절반이나 찢어져 너펄너펄
했다. 반자를 안두른 천정은 흙도 못발랐다. 내기를 먹은 시커먼 새잎이 연목새로 거실거실 드리웠다. 방안은 서발막대로 휘저어도 거칠것이 없었다.
안구석 낮은 시렁우에 녀인이 이고온듯싶은 보퉁이가 놓여있고 그밖에 물레가 하나 놓여있다. 그리고 등잔, 비자루따위가 있고는 녀인을 눕히려 해도
깔아줄 이부자리도 없고 베개도 없었다. 《여기
눕히라구, 늘 이걸 베고 몸을 오그리고 토끼잠자듯한다우. 어데서 바스락소리만 나두 와뜰와뜰 놀래구…》 《온
아주머니두…》 녀인은
수다가 너무하다고 얼른 큰방집 아낙네한테 한마디 건늬며 아낙네가 내려놓아주는 보퉁이를 베고 눕는다. 무슨 옷가지가
들었는지 보퉁이는 머리를 놓자 푹 우무러져 들어갔다. 녀인은 찬 구들에 눕자 이어 또 몸을 오그라뜨린다. 가엾어 눈물이 났다. 울며 날아온 날새가
또 울며 날아갈듯이 혼돌혼돌하는 나무가지끝에 날아와 조심스러이 앉아있다고 할가, 녀인의 정상은 꼭 그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찬 구들에 불이라도 때주려고 밖으로 나와 마당앞 나무낟가리에서 나무단을 뽑아내려고 하시였다. 그러자 뒤따라나온 큰방집
아낙네가 그건 자기네 낟가리라고 하면서 음전이네 낟가리는 저편에 있는 까치둥지만한거라고 알려주었다. 《음전이가
누구예요?》 《저
아낙의 이름이 음전이라우… 그리구 이보라구 상촌애기.》 아낙네는
언제 알았는지 김정숙동지를 상촌애기라고까지 부른다. 그는 코도 크고 입술도 두터운데 그 두터운 입술을 김정숙동지의
귀에 갖다붙이고 숨소리를 내가며 부르짖었다. 《너무
가까이 다니지 말라구, 말밥에 올라…》 《네?! 어째서요?》 《무슨
소린지 남편이 왜놈의 <민생단>이였다우. 그래서 아낙도 살던곳에서 못살구 여기로 쫓겨왔다오. 애서껀 다 내버리고…》 《살긴
어디서 살았대요?》 《동가촌에서
살았다오.》 《동가촌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쭝해지시였다. 동가촌이라면
능지영에서 15리가량 떨어져있는 곳이다. 그곳 역시 반《민생단》투쟁으로 피가 랑자하게 흐른곳이다. 그럼
저 녀자도 그 피해를 받고 몰골이 저 지경되여 이리로 오지 않았을가. 능지영 본바닥에서도 남편이 《민생단》혐의에
걸려 피를 흘리며 죽은뒤 그 안해가 또 혐의를 받고 걸려드는걸 수태 보시였다. 그 혐의에 걸리지 말자고 들고빼는 녀자도 많았다. 바로 이 음전이라는
녀인도 그렇게 들고빼여 이리로 달려온 녀인이 아닐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남편이 죽었대요?》 《남편두
죽구 시동생도 죽었다우. 온통 <민생단>집안이였다오. 그래서 지금 구정부에서도 그렇구 동네방네가 모두 저 아낙을
좋지 않게 본다우.》 큰방집
아낙네는 눈까지 끔뻑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치떨리는 이야기를 듣고있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불쌍한
녀인이란 생각이 가슴아프게 안겨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큰방집 아낙네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나무무지로 가시였다. 음전이가
해다 가려놓은 나무무지에서 섶나무 한단을 뽑아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가시였다. 큰방의 부엌과 맞붙은 부엌인데 큰방에선
무얼 끓이는지 벌써 큰 가마들에서 실실거리며 김이 올랐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엌에 불을 지피고 미음 쑬 쌀이 있는가 해서 찾아보시였다. 쌀은 없고 큰 옹배기에 산나물을 데쳐서 불궈둔것밖에는
뵈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배낭을 가지러 갈가하다가 드렁구석에 있는 밥바리의 보깨를 열어보시였다.
거기 좁쌀이 골숨하게 담겨져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쌀로 미음을 쑤시였다. 얼마후
뜨끈한 미음을 한그릇 퍼들고 들어가시니 음전이는 까둥겼던 오금을 펴고 눈물이 고인것 같은 눈으로 그이를 쳐다보았다. 구들에 온기가 있어 인차 기를 펴고 무슨 생각에라도 젖어든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을 받들어 일구고 숟가락을 쥐여주시였다. 그러나 녀인은 미음을 두어숟갈 떠먹고는 구역이 나서 못먹겠다고 미음그릇을
밀어내놓았다. 아까보다 더 눈이 개풀리고 손길을 늘어뜨리며 도로 자리에 누웠다. 《정숙동무, 난 동무를 잘 알아!》 자리에
누운 음전이는 파리한 손으로 김정숙동지의 손목을 쥐며 힘겨웁게 말했다. 《절
어떻게 알아요?》 《보진
못했지만 이야길 듣고 너무도 잘 알지…》 음전이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였다. 입을 이그러뜨리며 헉소리도 내였다. 《우지
마세요.》 《어쩐지
자꾸… 울궆어서… 나두 능지영에서 좀 떨어져있는 동가촌에서 살았다우. 내가 오늘아침 국금동무한테서 정숙동무가 이리로
왔다는 말을 듣고는 그저… 눈물이 앞을 가려서…》 《동가촌에서
살다가 무슨 일이 있었게 이리로 왔어요?》 《그
가슴터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다하겠수. 농민협회 회장을 하던 남편과 자위대에 들어서 뛰던 시아우가 한날한시에 능지영물굽이에서 총에 맞아 죽어간 뒤 그래도 이 알량한건 살아서 혁명을 해보겠다구 피를 물고 이리로 달려오질 않았수. 하마트면 나두 잡힐번했다우.
김기도패가 남편을 죽여놓고는 무슨 조사를 하겠다고 부녀회문서보따리를 들고오라고 하는걸 간신히 빠져서 도망쳤다우.》 《부녀회사업을
했어요?》 《일도
똑똑히 못하면서 부녀회책임을 졌댔지요. 글쎄 어쩜 여기서 이렇게 정숙동무를 만나요. 남편과 시아우가 갇혀있다가 왜놈들의
<토벌>바람에 놓여나와서 눈물을 떨구며 정숙동무의 이야기를 하지 않겠수. 그 이야기를 듣고 나두 함께 울었다우. 그 무시무시한 판에서 누가 <민생단>루명을
쓰고 갇혀있는 사람들한테 먹을걸 밀어넣어주거나 펄펄 끓는 죽가마를 이고 산으로 따라올라가 <민생단>혐의자들에게 죽을 먹으라고 숟가락을 들려주며
하겠수.》 《시아우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요?》 《시아우는
마용대라 하구 우리 남편은 마용근이라고 불렀다우.》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한번 가슴이 쭝해져서 은근히 큰숨을 들이그으시였다. 《글쎄
그 원쑤놈들한테 두 형제가 다시 붙잡히지만 않았어두 내 신세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지도 모르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음전이의 눈물을 씻어주시였다. 음전이는 또 한번 헉소리를 내였다. 그는 흐느끼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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