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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3 회)
제1장
3
능수리로 들어온 김정숙동지께서는 상촌사람들이 잘 집을 찾아 흩어지는걸 보고는 자신께서도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서 차응도네 집을 향해 걸으시였다. 그처럼 비참한 일을 겪고 정말 차응도네 딸들이 어떻게 하고있는지를 몰라 부랴부랴 찾아가시는것이였다. 딸들이면 여북 귀하게 기른 딸들인가, 정말 본지도 오래다. 자신께서 능지영으로 올라가기전 어느때인가 한번 집에 찾아가보고는 능지영에 가서 공작하는동안은 내내 상촌에 발길을 안해서 만나보질 못하시였다. 그러니 그동안 무척 몰라보게 자라서 인젠 저들의 앞에 웬만치 험악한 일이 닥쳐도 이겨나갈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없지도 않으시였다. 그러면서도 김정숙동지께서는 무거운 생각에서 헤여나지 못한채 어두운 길을 터벅터벅 걸으시였다. 정말 술기막골에 오자바람으로 이런 일이 앞에 와 부닥칠줄은 꿈에도 모르시였다. 여기에 오면 군중이 안정을 하고 앞으로 적구에 나가 살수 있는 준비도 철저히 갖출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포부가 일조에 부서져나가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어쩐지 그런 포부를 안고온 술기막골이 아니라 어둠이 짓누른 다른곳에 와서 풍덩풍덩 빠지는 땅을 디디며 걸어가는것 같은 느낌만 드시였다. 글쎄 어떻게 되여 차응도같은 사람이 그런 참변을 당할수 있단말인가, 혁명이란것이 물론 너 아니면 나라는 준엄한 판가리싸움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야 차응도가 희생되였다는 말은 믿을수가 없으시였다. 죽음이 거접하지 못할 사람에게 거접한것만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처음 상촌병원에 실려가서 치료를 받을 때 갑자기 이마우에서 큰 목소리가 울리기에 얼른 눈을 뜨고 쳐다보니 얼굴이 두리두리하고 앞가슴이 너부죽한 장정이 앉아서 자신을 진맥하며 웃고있었다. 차응도의 그 첫 인상이 잊혀지지 않으시였다. 그뒤 애들을 모아 합숙을 꾸리고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엔 집이 무슨 집이냐고 발을 탕 굴러치고는 그뒤 이어 목수, 온돌쟁이들을 이끌고와서 자기가 돌보지 못했노라고 그렇게도 따뜻한 말로 사과를 하던 차응도, 아 그리고 샘내 뒤산우에 기송이를 묻을 때 모자를 벗고 서서 목이 메여 설분하던 그 차응도, 기억에 떠오르는 일을 세이려면 끝이 없으시다. 구정부마당에 가도 차응도의 큰 목소리가 울려나와야 마음이 든든해지고 훈훈해지시였다. 무슨 문제를 제기하고싶은 용기도 생기시였다. 꾸짖어도 아프지 않게 꾸짖고 으름장을 놓아도 잔등을 두드려주며 놓았다. 그 부드러움과 드센 손탁과 완강한 전개력을 가지고 앞을 헤쳐나가던 차응도! 그 억센 사람의 어느 구석에 원쑤의 칼끝 박힐 자리가 있었단말인가. 지금 이곳에 차응도가 없다는것이 곧이 들리지 않는 거짓말같은 생각만 드시였다. 죽은게 아니라 지금도 어데 일이 더미로 쌓인 구정부의 들끓는 방같은데서 우렁우렁 떠들며 크게 웃으며 팔을 휘두르고있을것만 같으시였다. 차응도가 죽다니, 그런데 여긴 어떤 놈이 숨어있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가, 여기에도 능지영처럼 반《민생단》투쟁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는건 아닌가. 그 미친 반혁명의 물멀기가 여기에 밀려들지 않으리라고 누가 담보하겠는가, 그 숱한 희생이 벌어진 능지영, 아무 죄 없고 심장엔 혁명을 하겠다는 결곡한 마음과 뜨거움밖에 없는 드센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희생된 능지영의 그 참극이 여기에서도 벌어지려는건 아닌가, 여기에선 어느놈이 김기도패들인가, 어느놈이 기여들어와서 반《민생단》투쟁을 내놓고 선포하진 못하고 박여앉아서 근거지의 기둥을 베여넘기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쩐지 능지영같은 준엄한 고개턱이 앞에 와 막히는것 같아 치가 떨리고 두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하시였다. 《바로 저기 저 집입니다. 애들이 무얼 끓여먹기나 했는지 벌써 불을 껐군요.》 개안마을사람들을 데리고 걸어오던 동네사람이 김정숙동지께 차응도네 집을 가리켜주었다. 울바자밖으로 무슨 나무숲이 우거져있었다. 그 숲속으로 컴컴한 오두막의 창문이 희끄무레 들여다 보인다. 《고마와요. 그럼 모두들 따라가서 하루밤 푹 피곤을 푸세요. 그리고 래일아침 일찌기들 구정부마당으로 나오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개안마을사람들에게 이르시였다. 그리고는 총총히 차응도네 집으로 찾아들어가시였다. 오두막엔 그래도 사립문이란것도 있고 울바자안에 안마당도 있었다. 사립문은 열어던진채 있고 그저 온 집안이 쥐죽은듯 고요했다. 《국금동무!》 김정숙동지께서는 문앞으로 가서 차응도의 큰딸을 부르시였다. 어쩐지 등골로 찬물이 주르르 흘러드는것 같은 느낌도 드시였다. 방안에선 대꾸가 없었다. 이 집안에 다른 불상사가 또 있을것 같은 섬찍한 생각이 드시였다. 《국금동무!》 그래도 대꾸가 없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다음엔 작은딸을 불러보시였다. 《영금아!》 그제야 대꾸는 없고 정지방문이 방긋이 열렸다. 《누구야요?》 영금이가 물었다. 《영금아, 잘 있었니? 왜 이렇게 초저녁에 불도 안켜구있니?》 그제야 영금이가 문을 열어던지며 뛰여나왔다. 그는 토방에서 떨어져내리며 배낭을 진 김정숙동지를 와락 덮치였다. 《언니! 언니!》 영금이는 발을 굴러쳤다. 《어떻게 고생을 하고있니?》 《고생은 무슨 고생? 언닌 능지영에서 여길 어떻게 왔어요?》 그래도 그 방울 울리는것 같은 목소리가 그대로 울려나왔다. 《능지영에서 상촌에 도루 내려갔다가 여기로 왔단다.》 《나두 상촌사람들 왔다는 소리는 아까 들었어.》 《그래 언니는 어디 나갔니?》 《방안에 있어요. 정숙언닌 우리 집 소식을 듣고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선뜻 대답할 말을 못찾으시여 고개만 끄덕이시며 영금이의 어깨를 쓰다듬으시였다. 《글쎄, 글쎄, 우리 아버진…》 영금이는 김정숙동지의 품에 얼굴을 꾸겨박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두 여기 와서 그 소식을 처음 듣고는 믿어지질 않더라. 그러니 너희들 형제야 오죽하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영금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달래시였다. 그제야 영금이는 헉헉 흐느끼며 물러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토방우에 배낭을 벗어놓으시였다. 벗어놓기 바쁘게 영금이가 얼른 눈물을 씻으며 방안으로 안아들여갔다. 슬픔에 빠져있어도 바람개비같이 빠른건 역시 그대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방안으로 들어가시니 국금이도 구석쪽에 일어나 앉아있었다. 방안으로 들어서시는 김정숙동지를 보자 그도 얼굴을 싸고 울었다. 누구를 알아보지도 못할만큼 절망의 구렁에 빠져있는것 같았다. 《얘 영금아, 등잔이 있으면 불이라도 좀 켜려무나.》 《응, 이제 켜요…》 영금이가 등잔에 불을 켜댔다. 바늘귀만한 불꽃이 방안을 밝게 해주기는커녕 더 어둡게 만드는것 같았다. 《국금동무, 이제는 진정해요. 강심을 먹고 이 슬픔을 이겨나가자요.》 《언니! 난 아버지두 없이 세상이 캄캄해서 어떻게 살아요.》 국금이는 얼굴도 들지 않고 부르짖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국금이의 곁에 다가앉아 그의 들먹이는 어깨우에 손을 얹으시였다. 인젠 울음도 울고울다가 지쳐서 강울음을 우는것 같았다. 《언니, 난 정말 인젠 눈물도 다 쏟아놨어요. 울지도 못하겠어요. 그래도 언니를 보니 이렇게 또 눈물이 솟구치는군요. 언니도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죠?》 《…》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을 못하시였다. 《난 정말 정말…》 《그만둬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국금이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달래시였다. 《너무 분해서 그래요. 그 좋던 아버지를, 그 무던하던 아버지를 어느놈이 글쎄 열군데도 더…》 국금이는 엎어져서 구들을 두드리며 목메여 울었다. 이렇게 되니 김정숙동지께서도 말려내지 못하시였다. 자신께서도 눈물이 솟아올라 얼른 저고리고름으로 눈구석을 찍으시였다. 영금이도 벽을 붙안고 서서 울었다. 그는 벽을 종주먹으로 쾅쾅 때리기도 했다. 코구멍만한 오두막안에 설음이 빼곡 찼다. 그 설음을 헤치고 옮겨디딜 자리도 없을것 같다. 《난 정말 우리 아버지의 원쑤를 갚을테야. 칼질한놈이 어느놈인지 인제 알아내가지구 기어이 죽이고말테야.》 영금이의 소리에 국금이는 더 섧게섧게 울었다. 세상에 제일 불쌍한것이 영금이고 자기인것 같은 생각이 가슴을 두드리는것이였다. 《제발 그만들 두라구요. 난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나서 그립던 이야기도 하고 술기막골이야기, 상촌이야기, 가슴 그득한 이야기를 다 하자구 여기 닿는길로 찾아왔는데 이렇게 밤새 울기만 하겠어요? 동무들이 정 이러면 난 가겠어요.》 김정숙동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벽을 두드리며 울던 영금이가 눈물을 씻으며 냉큼 돌아섰다. 그는 다짜고짜 배낭을 씽 들어 무슨 옷꾸레미같은것이 그득 쌓여있는 시렁우에 꿍꿍 밀어넣는다. 《아니 그건 어째서 그러니?》 《언니, 우리 아버지처럼 으름장 놓는 소리죠? 정말 갈테야요, 여기 있을테야요?》 영금이는 김정숙동지의 무르팍앞에 다가앉아 두손목을 잡아흔들며 물었다. 《글쎄 영금이형제가 이렇게 울지만 않으면 나도 영금이와 같이 있는게 여북 좋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의 눈굽에 괴여오르는 눈물을 몰래 훔치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언니, 안울테야. 우린 정말 안울테야.》 영금이는 제 언니도 울지 말라고 김정숙동지께서 못보게 팔굽질을 했다. 어째 두 형제가 다 고생을 해서 그런지 더 자라고 피여난것 같은 모습이라군 없고 상촌에 있을 때보다도 오히려 더 축들어뵈였다. 얼마후에야 국금이도 울음을 그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일어서 부엌으로 내려가시였다. 아무래도 끼니를 건늬고 누워만 있는것 같아 알아보시려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찬장도 없이 부엌시렁에 마구 겹쳐놓여있는 그릇들을 뒤져보시였다. 정말 풀기가 묻혀진것 같은 그릇이란 하나도 없다. 사발 하나엔 못먹게 된 김치가 담겨져있었다. 한끼만이 아니라 몇끼를 건늬였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여 얼른 도로 방안으로 올라와 시렁우에 있는 자신의 배낭을 들어내리시였다. 영금이가 눈이 둥그래서 그건 왜 내리는가고 소리쳤다. 《가만히 있어라. 누가 내빼자고 그러는줄 아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배낭속에 있는 쌀자루를 꺼내시였다. 상촌에서 좁쌀을 반말가량 넣어가지고 떠났는데 오는동안 소비를 하고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남은 쌀을 절반가량 쏟아내시였다. 《언니, 우리가 저녁을 짓겠어요. 우리두 쌀이 있어요.》 국금이가 김정숙동지의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는 맥을 놓고 누워있다가 이런 변을 당한다고 얼른 동생더러 부엌으로 내려가 밥지을 차비를 하라고 눈짓을 했다. 《쌀이야 있겠지요. 그렇지만 오늘밤엔 내가 가지고 온 쌀로 밥을 짓자구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쌀 담은 그릇을 들고 일어서시였다. 영금이가 뒤따라 부엌으로 내려왔다. 국금이도 벽을 붙들며 일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아픈 심정으로 쌀을 이시였다. 《얘 영금아, 불을 좀 때라. 빨리 밥을 지어먹자. 나두 배가 고프구나.》 그렇게 달랑거리던 영금이는 대꾸가 없이 얼른 아궁앞에 쭈그리고앉아 나무를 밀어넣는다. 그도 김정숙동지의 눈에서 속깊이 생각하며 우는 눈물을 보는것이였다. 울면서 쌀을 이는 언니에게 무슨 말을 할가, 영금이는 인젠 제가 정말 울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쌀을 가마에 안치며 국금이형제를 돌아보시였다. 애끊고 가련하다는 생각은 한정이 없었으나 둘의 손목을 잡고 함께 울어주어서야 무슨 소용일가싶으시였다. 《이젠 마음을 굳게 가져야 해요. 그래야 돌아가신 아버지도 편안히 눈을 감지 않겠어요. 어째서 끼니도 안끓이고 누워만 있어요. 국금동무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아요? 아버지가 동무들을 앉혀놓고 뭐라고 말씀했어요. 혁명을 잘해야 내 딸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상촌에 있을 때 나두 동무네 집엘 갔다가 동무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는걸 여러번 들었어요. 한번은 찾아가니까 무슨 일을 잘못했다고 꾸짖는지 동무들을 꾸짖으며 내가 너희들을 딸자식으로 생각하는줄 아느냐, 열 아들 맞잡이로 알고있다, 이런 아버지의 심정을 알고 좀 착실한 사람이 되여주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혁명을 해도 남보다 몇갑절 더 잘하구 세간살이를 해도 남보다 몇갑절 알뜰히 하고 뭐든지 출중하게 잘해서 야, 차응도네 딸들이 열남 싸긴 하구나 하는 칭찬을 듣는다면 이 애비의 가슴이 얼마나 시원해지겠니, 하지 않았어요? 이런 이야기를 어제 들은것 같애요. 내가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데 동무들은 벌써 잊었어요? 동무들이 기운을 못차리고있는걸 아버지가 땅속에서 아신다면 얼마나 눈물짓고있겠어요?》 영금이는 불붙는 아궁에 나무를 와짝와짝 꺾어서 밀어넣었다. 국금이는 동이의 물을 작은 가마에 퍼넘겼다. 그는 넘어질것 같아 내내 부엌벽을 짚으며 돌아갔다. 김정숙동지께서 화들거리는 국금이의 팔을 붙들어주시였다. 《넘어지겠어요.》 《일없어요. 난 그저 언니의 말이 고맙기만 해요…》 고맙다니 기쁘시였다. 기운을 차리게 하느라고 자신의 눈물을 힘겹게 누르시며 좀 아픈 말을 해주셨는데 국금이 고맙게 받아들인다니 마음이 가벼워지셨다. 《찬을 만들 감이 있어요?》 《언니, 도라지도 있구, 밖에 갓김치도 있어요.》 국금이가 대꾸를 하며 사발을 들고 부엌문을 열고 나간다. 《언니, 이제 정말 말을 잘해줬어요. 난 섧은 생각날 때마다 한바탕씩 울고나면 그래도 좀 시원해지는데 언닌 울지도 않고 장 누워서 노전가시만 빡빡 쥐여뜯지 않아? 내가 배고프다면 얘 넌 배고픈 생각이 다 나니, 배고픈 생각이… 하며 욕하구…》 영금이는 불을 때며 제 언니에 대한 불평을 한바탕 늘어놓는다. 《모르겠다. 네가 자꾸 울어서 언니까지도 기운을 못차리게 만들고는 그런 소릴 하지 않니?》 《애개, 까치보구 까마귀라네.》 김정숙동지께서는 시무룩이 웃으시였다. 상촌에 있을 때부터 영금이는 자기 언니를 까마귀라 했고 자기는 까치라고 했다. 그래서 언니는 묻는것도 이야기하는것도 까욱까욱 하고 자기는 웃는것도 이야기하는것도 깩깩깩 한다고 했다. 차응도는 막내딸의 이런 익살에 큰 얼굴이 환해져서 껄껄 웃었다. 이날밤 김정숙동지께서는 둘을 붙들고앉아 밥 한그릇씩을 먹이시였다. 숟가락을 놓으면 자기도 숟가락을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시였다. 국금이는 눈물이 그렁해서 입에 밥을 떠넣군했다. 아버지의 생각때문에도 그렁해지는 눈물이지만 자기의 슬픈 가슴속으로 날아들어 힘을 부추겨주는 언니가 고마와 그렁해지는 눈물이기도 했다. 밤이 깊어 자리에 누우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국금이의 손목을 잡고 타이르시였다. 《국금동무, 동무도 인젠 자신을 조그맣게 생각지 말고 김일성장군님을 따라 대를 이어 혁명을 해야 할 처지에 있다는 큰 생각을 해야 돼요. 그리고 녀성이니까 응당 조선녀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두 하구… 언니인 동무부터 이런 큰 생각을 해야 영금이도 동무의 뒤를 따를것 아니예요.》 국금이는 말이 없었다. 아까는 두손이 고드름 같았는데 인젠 손목도 손도 따끈따끈해졌다. 쌔근쌔근 자던 영금이의 숨소리가 멎었다. 잠을 깨는가 했는데 또 이어 두손길을 김정숙동지의 가슴우에 철썩 내던지며 코를 골았다. 그저 만단시름이 다 풀려 맘껏 자는것 같았다. 《동무야 정말 혁명이 파도치는 속에서 자라나기도 했고 또 훌륭한 아버지한테서 교양도 받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혁명을 하지 않고는 못견딜, 아버지를 잃은 원한도 받아보지 않았어요. 그렇기때문에 인젠 철든 생각을 가지고 제길로 들어서야 해요. 더구나 국금동무는 동생의 교양문제도 생각해야 돼요. 언니도 되고 아버지도 된 심정으로 동무가 먼저 머리를 들고 일어나 동생을 타이르며 이끌어야 해요. 끼니도 끓여놓고 동생이 안먹겠다 해도 붙들어앉히고 먹이구 눈물을 그만 흘리라고 책망두 하고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동생두 빨리 혁명의 길에 나서도록 가르쳐야 해요. 혁명의 길에 나서지 않고야 국금동무도 그렇고 영금이도 그렇고 무슨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지가 말하듯 열아들 맞잡이가 될수 있겠어요? 아버지가 열아들 맞잡이로 생각한다는건 딸들이 모두 훌륭한 녀성혁명가로 되여달라고 하신 말씀이예요.》 《…》 《인젠 자요. 내가 그러지 않아 생각이 많을 국금동무에게 너무 오래 이야기를 하는것 같애요.》 《아니예요. 난 정말 언니가 오니까 설음만 빼곡 차있던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어지는것 같애요.》 국금이는 마주 돌아누우며 김정숙동지의 손목을 꼭 잡아쥐였다. 국금이의 한쪽 손목은 김정숙동지께서 잡으시였다. 밖에선 바람소리가 요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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