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제2부

 

 

      

천 세 봉

  

 

 (제 1 회)

  

 

제1장

 

 1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진눈까비가 뿌린다. 바람도 거세게 불어온다. 눈비에 젖은 나무숲이 이리 뒤채고 저리 뒤채며 몸부림친다. 휘유휘유 온 산, 온 수풀에 요란한 음향이 차고 하늘땅이 뒤설레는것 같다. 봄이라지만 한겨울보다도 더 음산하고 소란한 날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나무숲을 헤치며 산비탈을 톺아올라가시였다. 가파로운 비탈이였다. 미끄러워 발을 붙이기 힘드시였다. 그런가 하면 등에 진 배낭이 돌짐처럼 처져내리고 이 나무 저 나무에 걸리기도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숨이 차서 잠간씩 멈춰섰다간 또 이어 손을 내밀어 휘늘어진 싸리와 새초를 걷잡아쥐며 바위턱을 톺아오르군 하시였다. 숱한 눈송이가 날아와 홧홧 단 볼을 갈기였다. 철썩 붙어 떨어지지 않는 진눈이였다. 쏴- 휘유- 눈발이 새떼 날아오는것 같은 소리를 내였다.

드디여 높은 산등에 올라서시였다. 웅기중기 솟아오른 산마루들이 눈아래에 펼쳐졌다. 한절반 검은 구름속에 들어간 산봉우리들도 보인다. 그저 뽀얗다. 눈발이 바람과 한덩어리가 되여 타래를 지으며 날아간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께서 지름길을 타며 산을 넘는다는것이 너무 올라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드시였다. 이 산마루만 올라서면 먼저 떠나간 사람들의 대렬이 보일줄 알았는데 어느 산밑, 어느 골짜기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월평, 태봉 그리고 먼 지대로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내느라고 너무 늦어지신것 같다. 그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손목을 붙잡고 어데 가서든 고생을 극복하며 잘 싸워달라고 부탁한 시간이 너무도 길어진것 같다.

산마루에 올라서시였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줄창 산마루로 달리다간 사람들을 못만날것 같기도 해서 산을 내리기 시작하시였다. 밑에 훤히 터져있는 골짜기길로 내려가 달릴 차비시였다.

산은 내리기도 힘드시였다. 새가 우거진 비탈인데 얼그러진 칡줄이 목을 휘감았다. 다래넝쿨속에서 배낭을 뽑느라고 한참씩 신고를 하기도 하시였다.

골짜기로 내려서니 물소리가 요란했다.

바위돌을 때리는 개울물이 길길이 일어섰다. 흰 거품에 얻어맞는 버들가지들이 철썩철씩 물에 장단을 치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골짜기길을 바삐 달리시였다. 군중을 빨리 따라잡으려고 땀이 나게 뛰시였다.

5리가까이 달려서야 아낙네들을 만나시였다. 개안촌 아낙네들 댓명이 개가의 큰 바위돌앞에 앉아서 한 아낙네의 가슴을 문지르고 손발을 주무르고 하며 법석을 하고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세요?》

《속이 올려밀어서 이러지 않슴메…》

설상가상이라더니 가뜩이나 음산한 날 먼길을 떠났는데 도중에 이런 병까지 만났으니 어쩌면 좋단말인가. 속이 치민 아낙네는 얼굴빛이 새파래서 이발을 떡떡 쪼았다.

《아이구… 나 죽겠어요.》

아낙네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배낭을 내려놓고 아낙네의 곁에 앉으시였다.

그리고는 딴 아낙네들을 밀어내며 자신의 품에 신음하는 아낙네를 얼싸 붙안으시였다.

《쯧쯧 공청누나 하는 법세가 다름메.》

《아주머니들, 손발도 따뜻한 손으로 주물러주세요. 찬 눈비를 맞으며 와서 몸이 고드름처럼 됐으니 속인들 치밀지 않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의 손을 입김으로 녹이고 비비신 다음 그 따뜻해진 손으로 아낙네의 가슴을 문지르시였다. 딴 아낙네들도 그이께서 시켜주시는대로 손발을 품에 넣고 주물렀다.

《군중대렬은 어느쯤에나 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낙네들에게 물으시였다.

《인젠 10리는 더 갔을거야요.》

《어이구, 10리가 멈메? 20리 30리는 더 가지 않았으리…》

아낙네들은 싱갱이를 하며 한숨을 지었다.

《길을 이렇게 떨어져가지구 어떻게 앞대렬을 찾아가내겠어요?》

《못찾아가면 도로 돌아가면 되지 않겠슴메.》

북도사투리하는 아낙네가 이렇게 대꾸했다. 키가 들썩하게 크고 목도 쑥 뽑힌 아낙네였다. 딴 아낙네들은 그저 또 한숨을 내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하시였다. 누구나 다 상촌 떠나길 싫어하는걸 떠나야 살고 혁명도 이길수 있다고 타이르고 달래며 이끌고 떠났는데 아낙네들 입에서 그런 말이 튀여나오기가 십상이였다.

어쨌든 모두 아낙네의 속이 치미는걸 문질러주는 일보다도 도로 돌아설 생각들만 하고 앉아있는것 같다.

품에 안긴 아낙네가 몸을 비튼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의 가슴에 고통이 치닿는것 같은 느낌도 드시였다. 아낙네는 속앓이때문에 그런지 몸도 굳건치 못했다. 뼈가 앙상한 가슴을 문질러주시려니 마음이 아프시였다.

그래도 한참 신고를 하고나니 아낙네는 앉음새를 바로잡았다.

《내려감메?》

키큰 아낙네가 그만해도 마음이 좀 놓이는지 화색을 띠고 물었다.

아낙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이구 참 도깨비병이지, 손발만 차면 치미니 그걸 어떻게 한담?》

둘러앉은 아낙네들이 민망한 눈으로들 바라보았다. 한 아낙네는 앓는 아낙네가 벗어던진 흙투성이 고무신을 개울로 들고가서 씻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기의 배낭을 뒤져 기운 양말 한컬레를 꺼내 아낙네의 살핏한 발에 신겨주시였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를 돌밭에서 받들어 일구시였다. 아낙네는 감차게 이발을 사려물며 비척비척 일어섰다. 딴 아낙네들은 두어깨를 낮추며 또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이제는 그들이 도리여 일어설념을 안했다.

《자, 이제는 우리도 떠나야 하지 않겠어요. 일어들 나자요.》

누구도 대꾸가 없다. 얼굴을 돌리며 눈물을 씻는 아낙네도 있다. 내버리고온 집과 파묻고온 세간기물들, 정들었던 그 모든것이 목이 메게 매달리는것이였다. 그런가 하면 이제 찾아가는 술기막골로 숱한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는데 그 깊은 산골에 가야 집은 무슨 집이 있고 먹을건 무슨 먹을게 있을가 하는 불안감도 자욱한 안개처럼 눈앞을 가리는것이였다.

《짐을 이워드릴가요? 힘들더라도 이제는 떠나보자요.》

《먼저 갑세.》

《제가 왜 먼저 가겠어요. 다 함께 가야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돌아가며 아낙네들의 머리우에 임을 들어이우시였다. 그제야 모두 마지못해 임을 받아이고 일어섰다. 다들 후줄근히 젖은 치마를 걷어올려 중둥매끼를 동이였다.

아낙네들 일행은 김정숙동지를 따라서 깊은 산골짜기길로 들어갔다.

요영구회의의 근거지해산방침을 받들고 모두가 적후 사방 넓은 지대로 들어갔으나 당장 의거할만한곳이 없거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곧장 적구로 나갈수 없는 무의무탁한 로약자들과 부녀자들, 아이들을 비롯한 일부 혁명군중은 일단 술기막골로 옮겨앉게 되였다. 술기막골은 바로 해산되는 여러 근거지들에서 이러한 사정으로 남게 되는 혁명군중들을 위하여 안도오지대에 유지하기로 된 유일한 근거지였다.

지금 상촌에서 남은 혁명군중들 역시 이러한 사정으로 술기막골을 향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고있었다. 그들은 이 걸음이 혁명의 더욱 넓은 길을 열어나가는 걸음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으나 그래도 때묻고 정들고 피땀이 스민 상촌을 잊지 못하여 걸음걸음 뒤를 돌아보았다.

새떼같은 눈발이 또 쏴 아우성치며 날아온다. 먼저 걸어간 군중대렬은 지금 산 하나를 넘느라고 떠들썩 끓었다. 등짐을 한짐씩 골박아진 사람들이 밀려올라가고 소짐바리가 치달아올라간다. 호송할 임무를 받은 대걸이네 소대도 그들과 함께 올라가고있었다. 송아지들이 뛰기도 했다. 애들, 아낙네들, 숱한 사람이 들끓는다. 그래도 이 큰 대렬은 기세가 충천했다.

《이놈의 소새끼 워랴워랴.》

소를 모는 농민은 고삐를 거머쥐고 소가 미끄러져내린다고 소궁둥이를 떠밀었다.

산을 넘어서니 또 골짜기길이 나졌다. 아동단원들이 먼저 달려나가며 렬을 지어서서 걸었다. 나팔소리가 울렸다. 리상녀는 애들이 그래도 상촌에서 오금이 들썩해져서 이 란리속을 씩씩히 걸어간다고 생각하며 입이 벙죽 벌어졌다. 그도 후줄근히 젖은 치마를 걷어올려 중둥매끼를 동였다. 그리고 머리우엔 망함지에 무얼 한임 담아 이였다.

해질무렵이 되자 진눈까비는 졸지에 멎었다. 검은 구름이 흩어지며 듬성듬성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먼 밀림우로 눈이 신 금빛해가 기울어지고있다.

넘어가는 해빛이 온 하늘에 붉은 노을을 뿜어던졌다. 노을빛이 뭉게뭉게 흩어지는 검은 구름에 가락지를 둘렀다.

바람도 조용해졌다. 어쩌면 이렇게 하늘땅이 잠들듯 조용해졌을가.

상촌사람들은 이깔이 우중충 서있는 후미진 산버덩안에서 짐들을 내려놓았다.

산버덩안도 인젠 그렇게 음산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들끓으며 여기서 하루밤 묵어갈 차비를 시작했다. 온 산에 흩어져 우등불 피울 나무를 해들이고 깔고 잘 새를 베들이고 했다. 사처에서 우등불을 질렀다. 불이 잘 달리지 않아 애를 먹었다. 고깔처럼 무져세운 나무밑에 엎드려 푸푸 불어대기도 하고 삭정이를 더 꺾어오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소를 몰고온 농민 하나는 소짐바리를 부리우다가 짐바리속에 찔러넣어가지고온 배추씨, 무우씨, 호박씨주머니가 없어졌다고 소동을 일구었다.

《아니 술기막골에 가면 그까짓 씨앗이 없겠게 그래요? 저러게 밭 갈다가 밭가운데 내버리고온 가대기와 멍에채 걱정을 하지…》

한 농민이 씨앗주머니 잃은 농민을 나무란다.

《아니, 그럼 그게 걱정이 아니란말여? 술기막골에 가서도 당장 농사일을 시작해야 할텐데… 그리구 그 가대기 멍에채는 아깝질 않단말야?》

농민들은 쌈싸우듯 떠든다. 땅과 씨름하는 농민들이니 농사이야기, 농쟁기이야기, 씨앗이야기로 끓을밖에 없다.

산버덩 한옆으로는 개울물이 흘러가는데 거기선 아낙네들이 밥을 하느라고 부산을 피웠다. 벌써 돌가마를 걸고 연기를 피워올리기도 한다.

아동단원들도 리상녀, 분임이들을 도와 돌을 메나르고 삭정이를 꺾어들이고 하며 법석을 했다.

《어머니, 술기막골에 가면 학교가 있나요?》

애들이 끙끙 가마 걸 돌을 박아세우며 리상녀에게 물었다.

《있잖구, 상촌학교보다 더 큰 학교가 있다지 않니? 학교가 없으면 우리가 달라붙어 지어두 되지.》

《정말야. 상촌에서 집짓듯하면 그까짓 학교를 못질가?》

애들도 어머니도 인젠 속들이 왕벌의 집 같아졌다. 그들은 1년전 술기막골로 조동되여간 차응도회장 이야기를 꺼냈다.

《인제 술기막골에 가면 차회장이 너희들을 하나씩 안아들고 잔등판을 뚝떡뚝떡 두드려줄게다.》

《어머니, 국금누나 영금누나두 더 컸겠지?》

《컸기만 했을테냐? 인젠 그것들두 든다난다하는 혁명가들이 됐을테지, 누구의 딸들이라구…》

차응도의 딸들 이야기를 하는것이다. 어쨌든 상촌을 떠나는 아픔이 이런 새생활의 동경속에서 씻은듯 가셔지기도 했다. 아동단지도원을 하는 분임이는 저편에 가마를 또 하나 거느라고 희섭의 처 금실이와 함께 땀을 흘렸다.

그들도 인젠 다들 단발을 하고 혁명의 풍파속에서 그럴듯이 닦이운 녀성들 같아보였다.

《언닌 정말 지난해 가을 희섭선생과 함께 능지영으로 갈걸 그랬어요. 지금 언니가 얼마나 보고싶겠어요?》

《어이구 참 기가 막혀서… 내가 절 따라가겠다고 할가봐 도끼눈질이나 안하고 갔어두… 그리고 거긴 해산을 안하겠기에? 어서 빨리 가마를 올려놓아요.》

금실이는 분임이의 소리에 이렇게 대꾸했다. 그는 돌 하나를 박아놓고 일어서며 가마 있는데로 갔다. 동글납작한 이쁜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분임이도 가마 있는데로 다가갔다. 아동단합숙에서 쓰던 국가마를 둘이 맞들어다가 박아세운 돌우에 올려놓았다.

《금실언닌 정말 호추알이예요. 이 무거운 가마를 이고 달음박질해왔으니…》

《목이 좀 꼿꼿하고 지금두 머리는 남의 머리를 떼다 올려놓은것 같애…》

둘이는 소리내여 웃었다. 분임이는 제가 이고 올 가마를 금실이가 이여다준 일이 고마와 속으로 눈물이 찔끔해지는 생각도 있었다. 얼마후 그들은 리상녀가 건 가마까지 가마 둘에 밥과 국을 안치고 불을 일궜다. 국은 그만두자고 했으나 리상녀가 애들의 배집이 늘어나게 먹여야 한다고 우겨서 상촌에서 뜯어말려가지고 온 산나물로 국을 끓였다.

한쪽가마에선 리상녀가 애들속에 섞여앉아 푸푸 불을 불고 다른 한쪽에선 분임이와 금실이가 연방 가마밑에 엎드리며 젖은 삭정이에 불이 달리지 않아 입바람을 내불었다. 온통 재티를 둘러썼다. 한창 연기를 피워올리는데 개울가로 정부회장 리범진이 활개를 치며 대렬을 인솔해가지고 걸어왔다.

목이 쑥 뽑힌 큰 키에 둥근 얼굴인데 이 복새판에서도 입가엔 노방 웃음이 벙글벙글했다.

《상녀어머니, 저리 좀 비켜앉으시오. 그렇게나 불어가지고야 그 젖은 나무에 불을 붙여내겠소?》

리범진은 리상녀를 밀어내고 끓어대는 애들가운데 들어앉아 돌가마밑에 입바람을 내쏘았다. 볼을 둥그렇게 해가지고 몇번 푸푸 내불자 당장 불이 꼬리를 치며 일어섰다.

《야, 병기창풍구같네.》

애들이 떠들었다.

《이놈의 자식들…》

리범진은 일어서며 다부진 손으로 애들의 목덜미를 쥐여 휘둘렀다.

《그저 우리 쇠돌회장 같은 사람은 없다니까…》

리상녀의 소리에 리범진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는 차응도회장이 술기막골로 조동되여간 뒤 상촌정부 회장으로 배치되여온 광산내기였다. 딴 근거지에서 유격대소대장을 하다가 부상을 당해서 후방사업을 했댔는데 상촌으로 배치되여왔다. 사람이 단단도 하고 락천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촌사람들은 그를《쇠돌회장》,《쇠돌회장》 하며 별칭을 지어불렀다. 별칭엔 광산남포군이란 의미도 있고 단단해서 어데 굴려도 깨지지 않을 사람이란 의미도 있었다.

《자, 빨리 저녁들을 끝내고 축축한 잠자리이긴 하지만 로독들을 푸시오. 그래야 래일 또 한 백리 걸어내질 않겠소.》

리범진이 개울가로 올라가며 소리친다.

이럴 때 김정숙동지께서 뒤떨어졌던 아낙네들을 데리고 들어서시였다. 모두 죽지부러진 날새같은 행색이였다. 상촌으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고 앉아있다가 김정숙동지에게 이끌려온 아낙네들이니 눈살이 곱게 펴졌을리 없다. 분임이와 금실이가 달려가 아낙네들의 임을 받아내리며 수고들했다고 했다.

《쯧쯧 이 진땅에서 어떻게 밤을 샘메?》

《무얼 못샐게 있어요? 마른 풀이라도 베여다 깔면 잠자리가 좀 좋겠기에 그러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혀를 갈기는 키 큰 아낙네의 임을 받아내리며 타이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낙네들을 지휘해가며 저녁밥 지을 준비를 하시였다.

밤이 깊었다. 어둠이 짙게 내리고 사처에서 우등불이 타올랐다. 온 땅우에 눈물겨운 안식이 펼쳐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람들이 널려있는곳으로 돌아다니며 잠자리나 제대로 하고 자는가 해서 살펴보시였다. 그래도 모두다 새를 베다 깐 잠자리우에서 잤다. 한바퀴 휘돌아 개울가에 오시니 거기에도 새를 깐 자리우에 아낙네들이 여기저기 허리를 꼬부리고 누웠다. 애들은 온통 갈개며 딩굴러났다. 새를 깐데는 몇이 없고 물기 축축한 풀밭에 흩어져 달팽이 같이 옹송그리고 자기도 하고 네활개를 벌리고 코를 골아대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굴러난 애들을 안아다가 다시 새를 깐 자리에 눕히시였다. 애 하나를 안아들자 나팔이 뎅그렁 달려일어났다. 나팔을 목에 걸고 잤다.

《누나!》

태호였다.

《아니 너 나팔은 왜 목에 걸구 자니?》

《철이곁에 있는걸 내 목에 살짝 걸었어…》

《또 나팔싸움을 했니?》

《히히 그저 몰래 했지, 인젠 내가 나팔수가 될테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나팔이 뎅그렁거리는 태호를 들어다가 잠자리에 고쳐눕히시였다. 불시에 또 가슴속의 딱지앉은 상처가 할퀴운것 같으시였다. 기송이가 죽은 뒤 그 땜질한 나팔을 놓고 숱한 애들이 서로 빼앗아 불며 나팔수가 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철이가 나팔수로 뽑혔는데 태호는 지금도 제가 나팔수로 되겠다는것이다. 아, 기송이! 넌 지금 샘내 뒤릉선우에 누워서 네 누나, 네 동무들이 이렇게 떠나가는걸 알기나 하고있느냐. 개안촌 뒤산우에 올라서서 쏟아지는 진눈을 맞으며 한참 서서 바라보던 샘내 뒤산마루가 다시 눈앞에 떠오르신다. 칙칙한 검은 구름이 날아넘어가던 그 슬픔의 산마루, 그것이 오늘에 남은 잊을수 없는 기송이의 모든것이란말인가!

분임이가 달려와서 왜 아직 저녁을 먹지 않느냐고 하면서 소매자락을 이끌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끌려 우등불앞으로 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분임이가 가져온 밥그릇뚜껑을 열어놓고는 별이 총총한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시였다.

《얘 무슨 생각을 하고있니?》

《생각은 무슨…》

《생각을 안하는게 왜 하늘을 쳐다보고있니?》

《그저 그러지.》

《얘, 얘, 그런 생각은 싹 거둬라. 애자식들 나팔은 왜 가지고 그 법석일가?》

분임이도 김정숙동지께서 태호의 가슴팍우에 나팔을 올려놓아주며 어서 자라고 달래시는것을 본것이였다. 그래서 먼 하늘가를 쳐다보며 기송이의 생각으로 괴로와한다는것을 알았다. 나팔을 보면 분임이자신도 옛 상처가 아릿해지는 때가 있는데 정숙이야 어째 안그러랴싶었다. 더구나 오늘 같은 날…

《이런 밤엔 달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딴말을 꺼내시였다.

《달대신 우등불이 있잖니?》

김정숙동지께서가 아니라 분임이가 얼른 김정숙동지 못보게 눈구석의 눈물을 씻었다. 기송이에 대한 추억때문에 우는게 아니라 그전과도 다른 정숙이가 그 큰 가슴으로도 제 슬픔을 이겨내지 못해하는것 같아 눈물이 솟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저녁을 들고나서도 자지 않으시였다. 사그라지는 불더미마다 돌아다니며 나무를 놓고 불을 일구시였다.

그이께서는 나무밑으로 걸어가시다가 금실이가 자지 않고 일어나 앉아있는걸 발견하시였다. 무얼 생각하는지 나무우듬지우로 펼쳐진 별무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언니, 왜 아직 자지 않아요?》

《그저 잠이 안와서…》

《무슨 잠이 안올 일이 있어요?》

《어쩐지 자꾸 그러찮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담엔 묻질 않으시였다. 능지영으로 간 남편생각이 나서 그러는가부다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지난해 가을 희섭이가 능지영으로 떠나갈 때에도 함께 간다고 말썽이 있었다. 그런것을 희섭이가 눈을 붉히며 소리쳐서 따라가지 못했다. 희섭이는 안해가 태봉에서 상촌으로 뛰여오듯 능지영으로 뒤따라오면 다리를 꺾어놓겠다고 을러메였다. 그래서 결국 그때는 주저앉아버렸는데 지금 온 근거지가 해산되여 한번 가본 일도 없는 술기막골이란곳으로 떠나게 되고보니 부쩍 또 능지영생각이 나는 모양이였다.

《정숙동무, 능지영에서도 해산을 할가요?》

정말 금실이는 능지영이야기를 꺼낸다.

《온 근거지가 다 해산되는데 능지영이라고 가만히 있겠어요?》

《거기선 모두 어데로 갈가?》

《거기서야 현조직들이 모여있는데 준비사업을 잘해가지고 모두가 광활한 지역으로 나가 군중을 묶어세우겠지요.》

금실이는 호 한숨을 지었다. 앞이 막막하고 남편을 영원히 잃어버리는것 같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언니, 나와 함께 누워서 자요. 자고야 또 래일 걸을것 아니예요?》

김정숙동지께선 금실이를 달래시였다. 남편에 대한 생각이 끔찍하다는것을 느끼시자 가엾은 생각도 드시였다. 금실이는 자꾸 나무꼬챙이를 꺾어던지였다.

《어서 자리에 누워요.》

《정숙동무, 술기막골이란덴 깊은 산골이기도 하고 숱한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기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우리까지 밀려가서 살아낼것 같애요?》

《언니,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아무리 어렵다 해도 거기에도 장군님의 해발이 비치고 우리의 주권이 서있는데 못살긴 왜 못살겠어요. 상촌을 꾸릴 땐 어데 먹을 고생 입을 고생이 없이 꾸렸어요? 그래도 그 난관을 극복하고나니 그렇게 살기 좋은 상촌을 만들지 않았댔어요? 더구나 상촌에 있던 차응도회장도 그곳 정부에 가있지 않아요.》

금실이는 대꾸를 안하고 또 호 한숨을 지었다. 어느 말이고 귀에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언니, 어려운곳에 가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생각만 말고 이게 혁명의 승리를 향해 한걸음한걸음 다가가고 장군님 계신곳으로 한걸음한걸음 다가간다는 신념을 가지고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자요. 사실 혁명전반을 놓고보면 우리의 이동이 그런것 아니겠어요?》

《고마와요. 내가 자꾸 옥생각을 해서 그러지 않아요. 혁명전체를 놓고 내다보기보다도 이 알량한것 하나를 놓고 재보고 따져보고 하다간… 호호호.》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손을 끌어다쥐며 웃었다. 인차 기분을 고쳐주니 고맙고 기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새를 깐 잠자리우에 금실이와 가지런히 누우시였다. 그러나 이어 잠들지 못하고 나무숲우로 펼쳐진 찬란한 별세계를 한없이 올려다보시였다. 금실이도 별을 올려다보았다. 눈들이 다같이 웃기도 했다.

아, 별 별, 운명의 별, 별이 주는 정서라기보다도 무언지 모를 앞에 펼쳐질 운명의 긴 여운이 아름다운 하늘을 누비고 간것 같기도 해서 김정숙동지께서도 잠들수 없으시고 금실이도 잠들수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더 눈이 또록또록해지시였다. 사위가 조용해질수록 몸이 더 들볶이우는것 같은 착각이 드시였다. 어데를 다급히 뛰는것 같기도 하고 군중의 소요속에서 뭐라고 숨이 차게 웨치는것도 같으시였다. 눈앞엔 삼도만의 군중, 상촌의 군중, 또 다른데 군중이 널렸다. 어데로 가는지 모두들 줄레줄레 흩어져간다. 로인들, 아이들, 눈물을 씻는 아낙네들…

보름나마 부푼 가슴을 붙안고 억세게 뛰여돌아간 삼도만과 상촌, 그 물멀기치는 소란한 바다같은 광경우에 해가 솟듯 장군님의 영상이 떠오르시였다. 한순간에 얼른 지나간 꿈같은 일… 하지만 일생을 몇곱절 합친것보다도 더 뜻깊은 일이였다. 사실 생각하면 지금도 장군님을 뵈왔다는것이 꿈만 같기도 하시였다. 생활의 자욱자욱 그리운 정으로 먼 산너머 들너머를 바라보며 사무치게 생각해온 장군님을 그렇게도 문득 삼도만근거지에서 만나뵈올줄이야!

더군다나 친히 자리를 같이하시고 변변치 못한 그간의 사업에 대하여 그처럼 높은 평가를 주시고 또한 혁명의 새로운 전략적방침으로부터 당면한 구체적과업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일깨워주시던 말씀, 그 말씀, 그 음성이 귀전에 두런두런 울려오는듯싶으시였다.

《…이동하는 인민들이 고통이 없이 떠나가도록 조직사업과 보위사업을 잘해야 하겠습니다. 정숙동무가 가게 되면 내가 상촌근거지문제는 마음을 놓겠습니다…》

숲머리우에 흩어진 별무리를 그립게 바라보시던 김정숙동지의 눈굽에 이슬이 글썽하게 괴여올랐다.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다짐하시였다.

술기막골까지 가는 길은 얼마나 험난할지 그리고 술기막골에는 과연 어떠한 사태가 기다리고있을지 알수 없다. 하지만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장군님께서 친히 맡겨주신 첫 과업을 반드시 훌륭하게 해내고야말테다…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