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 회)
제 1 장. 총성
3
그런데 바로 이때였다.
쿵우응-우르륵-쏴-
둔중한 폭발음같기도 하고 먼곳에서 울려오는 뢰성같기도 한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뒤따라 지진이 일 때의 진동같은것도 느껴졌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던 방안에서 갑자기 이것을 감촉하는 순간 충혁은 몸도 정신도 긴장해졌다. 그는 손에 그때까지 들고있던 편지를 도로 봉투에 넣지도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벗겨놓았던 목단추를 채우고 늦춰놓았던 혁띠고리를 조여매였다.
그러는데 대기실의 빨간 신호등이 다급하다는듯 깜빡거리고 3소대장 유철룡의 목소리가 실내전화기의 수화기에서 울려나왔다.
《중대장동지! 중대장동지!…》
《듣고있소. 나 충혁이요. 말하시오.》
《중대장동지, 정황이 발생한것 같습니다. 7호잠복초에서 신호입니다.》
《7호잠복초?》
《그렇습니다.》
《부분대장 허영걸동무네 조가 아니요?》
《그렇습니다. 그 좁니다.》
《알겠소. 내 곧 가겠소.》
충혁은 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언제 멎었는지 비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손을 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바닥이나 얼굴에 비방울이 감촉되지 않았다. 흩어지는 구름장사이로 가물가물하는 별들이 보였다.
7호잠복초, 허영걸이네 조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가. 그 우측에는 신입병사 차영남이랑 함께 나간 중대정치지도원동무네 조가 있고 좌측에는 독고선동이네 조가 있다.
며칠째 내리던 비가 멎은 이밤에 무슨 정황이 생긴것인가.
적들의 준동인가? 급한 환자가 생겼는가? 방금전의 둔중한 소리와 진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순간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착잡한 생각을 안고 충혁은 근무지휘실에 들어섰다.
유철룡이 긴장한 눈길로 근무조들과 련결된 신호기재들을 살피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는것을 충혁이가 어깨를 꾹 눌러 도로 앉혔다.
《지금은 무슨 신호요?》
《별다른것이 없습니다. 신호로 보아 적초소에서 무슨 일이 생긴것 같습니다.》
《소대장동무도 방금전의 소리를 들었지?》
《들었습니다.》
《진동은?》
《감촉했습니다.》
《생각되는게 없소?》
《신호도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온것으로 보아 필경 련관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렇다-》
충혁은 꼼짝않고 서서 이따금 가는 전신음을 발산하는 신호기재들을 주시하였다. 두손을 허리에 올려 혁띠를 꽉 움켜잡았다.
잠시후에 소대장의 어깨를 툭 쳤다.
《교대합시다.》
《아니…》
《시간이 된것 같소. 동무도 좀 휴식해야 되잖소. 새 정황이 생겨 필요하면 찾겠소.》
유철룡은 더 어쩌지 못하고 중대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렇지만 인차 근무지휘실을 나서지는 못하였다.
충혁은 유철룡과 자리를 바꾸어앉자 긴장한 시선으로 신호기재들을 살폈다.
그렇게 그들은 한밤을 지샜다.
밤중에 있은 징후는 새벽에 전투근무성원들이 철수해들어와서 다시 보고되였고 날이 밝은 다음에 확증되였다.
적초소에서 사태가 났던것이다.
엄청난 토량이 무섭게 산아래로 무너져내려왔다. 그러지 않아도 번대머리처럼 나무 한대 변변한것이 없어 꼴불견이던 적초소가 사태로 더 험상해졌다. 산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내리쏠리기 시작한 시뻘건 흙층이 경사면의것들을 반반히 쓸어버렸다. 거기서는 아직도 걸쭉한 흙탕물이 화농된 상처자리에서 흐르는 피고름처럼 흘러내렸다.
《에익 쌍- 더러운것들… 저 죽일 놈들이 산에서 나무를 얼마나 찍고 벌등지로 만들어놓았으면 이런 끔찍한 일이 생겼겠나.》
근무에 나갔던 부분대장 허영걸이 방금 무기소제를 끝내고 잠간 휴식하는 참에 어제 밤 당했던 일을 펼쳐놓았다. 왕벌주위에 로동벌들이 오구구 모인것처럼 허영걸을 가운데 놓고 군인들이 서기도 하고 앉기도 했다.
허영걸은 밤에 고생해서 그런지 얼굴이 헐끔해보이고 그러지 않아도 긴 목이 더 건덩건덩하는것 같았다.
《한밤중이 되자 쏟아지던 비도 멎고 날씨가 건건해지는게 여간 기분이 좋지 않더란 말이요. 그런 때에 옆에 나란히 엎드려있던 우리 서명국이 날 슬쩍 건드리지 않겠나.》
저쯤 좀 떨어진 곳에서 모표를 열심히 닦던 서명국이 부분대장의 입에서 자기 이름이 나오자 무슨 일인가 해서 눈을 뜨부럭거리며 건너다보았다. 그는 한날한시에 입대한 차영남이보다 날렵한 맛은 없고 동작은 좀 느리지만 그대신 말과 행동이 듬직하였다. 전투근무에 나갔던 인원들중에서 군복에 흙탕물이 제일 많이 묻어있었다.
《얼굴을 돌려보니 명국동무가 머리로 하늘을 가리키지 않겠소. 말은 할수 없는거구. 그래서 그가 하는대로 나도 하늘을 쳐다봤지. 아, 그랬더니 글쎄 구름장사이로 별들이 하나둘 반짝이며 우리를 보고 웃지 않겠소.
역시 밤을 밝히며 조국을 지키는 초병들과 제일 가깝고 제일 반겨주는건 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요. 그래서 명국동무에게 〈명국동무, 나도 동무와 같은 심정이요.〉하는 속대사를 담아 머리를 끄덕끄덕해보였지.》
《챠- 부분대장동지 엉터립니다, 엉터리…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는 걸 참느라고 입을 꼭 막고 하늘을 쳐다본건데… 별을 보라구 했다구요? 하참, 전투근무에 나가 하늘의 별을 보며 딴생각할새가 있습니까, 경각성없이…》
부분대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가 하는 의도를 미처 간파하지 못한 서명국은 혹시 근무를 잘못 선다는 말이라도 나올가봐선지 공연히 안절부절 못하였다.
《여- 명국이, 동무가 이 허영걸의 전투담의 신빙성을 깨뜨리자구 드누만. 동무 말이야 재채기가 나오면 입을 꼭 막고 엎드리든가 소금을 넣어 녹이든가 해야지 하늘을 쳐다보는가. 그러면 영낙없이 재채기를 한다는걸 몰라?》
《하긴 그 말도 맞는데…》
둘러앉은 동무들은 허영걸의 다음말을 듣고싶은지 제법 부채질한다.
《걱정 꽉 놓구있으라구. 내 동무칭찬도 좀 해야겠지만 저 군사분계선너머 나쁜놈족속들을 먼저 욕하자는거야…》
허영걸은 서명국을 건너다보며 한쪽눈을 끔쩍하였다. 서명국은 좀 멋적어하며 닦던 모표에 손을 대고 모른척 하였다.
《별도 웃고 나와 서명국이도 웃고… 이밤도 조국의 최전연초소는 철벽입니다.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 이 아들 허영걸이 집에 있을 때는 갈대처럼 키만 꺽두룩하고 속은 비였다고 했는데 인민군대에 나와 이젠 속을 단단히 다졌고 1선초소에 서있단 말입니다. 아무 사람에게나 이런 중한 일을 막 맡기는줄 아십니까.
동생들아, 좋은 꿈을 꾸면서 아무 걱정말고 네활개를 쭉 펴고 자거라. 그리구 빨리 커서 이 형님처럼 손에 총을 잡고 조국을 지키는 전초병이 되거라.
이러루한 생각이 드니 어째선지 가슴이 벅차지구 눈은 더욱 초롱초롱 밝아지더란 말이요. 그런데 처음에는 와지끈- 툭 하고 무엇이 끊어져나가는 소리가 나더니 우르릉- 퉁탕하며 우뢰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땅크발동기소리도 아닌 소리가 고요하던 정적을 깨친단 말이요.
아뿔싸- 사달이 났구나.
눈을 부릅뜨고 뚫어져라 쏘아보았지요. 헌데 다시 구름이 짙어지면서 먹물을 풀어놓은것처럼 캄캄해서 앞을 가려볼수 있나. 밤에 매눈같다는 말을 듣던 2. 0짜리 이 허영걸이 눈도 맥을 못 춘단 말이요. 옆에 엎드린 우리 서명국이도 눈이 화등잔이 되여 앞을 살폈지만 그 역시 영문을 알수 없었지요.
땅이 드르릉드르릉 울리고 와지끈- 퉁탕하는 소리가 더욱 커지는데, 하하-》
둘러앉고 서고 한 군인들은 시큰등한 허영걸의 말에 처음에는 히죽버죽 웃다가 급한 대목에 이르렀을 때에는 같이 정색해지며 귀를 강구고 은근히 다음말을 기다렸다.
《쏴- 하고 뭐가 내리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우지끈 뚝딱 뭐가 부러져나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또 우르릉 퉁탕하며 뭐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단 말이요.
근무조장인 이 허영걸이 정황을 미처 판단하지 못하여 당황해하는 판이니 저 서명국동무나 다른 동무들이야 말해 뭘하겠소. 여- 명국동무, 달리 생각말라구. 과소평가하거나 나를 내세우느라고 한 말이 아니구 정황이 복잡하다는걸 말하자는거니까 리해하라구.…
그래서 에라 뭐든지 달려들기만 해봐라, 뼈도 추리지 못하게 만들테다 하고 총잡은 손에 잔뜩 힘을 주는 판이요.
그 순간에 바로 코앞에서 무언가 쿵- 철썩- 하는 소리가 나고 뒤따라 칙칙한것이 얼굴에 쫙 끼얹어지질 않겠소. 얼결에 왼손으로 얼굴을 쓸어봤지요. 흙탕물이지요.
그런데 이건 또 웬 요지경속이요?
방금전에 울리던 그 모든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한순간에 딱 멎어버렸소. 너무도 급작스러운 정적에 귀안에서 웅- 하는 소리가 나고 한참후에야 저 뒤계선에서 흐르는 역곡천의 물소리가 간간이 들린단 말이요.
무슨 꿈을 꾸는것 같기도 하고 도깨비한테 홀린것 같기도 해서 서명국이와 눈을 뜨부럭거리며 마주보았소. 영문을 알수 없었소.
동무들도 알다싶이 우리야 꿈을 꿔도 안되고 도깨비한테 홀려도 안되는 초병이 아니요? 도대체 무슨 감투끈이겠는가.
1선초병의 자세에서 곰곰히 생각해봤지요. 그러느라니 짐작이 가며 머리속에서 선명해지더란 말이요.
틀림없이 적들이 차지한 산에서 사태가 났다. 쏴- 하던 소리는 물먹은 흙이 아래로 내리밀리는 소리고 우지끈- 뚝딱 한건 나무가 꺾어져나가거나 뿌리가 뽑혀져 자빠질 때 난 소리며 우르릉 퉁탕 한건 돌이 굴러내리면서 다른것들을 들부신 소리다. 코앞에서 쿵- 철썩- 하고 난 소리는 집채같은 큰 돌이 굴러내리다가 힘이 진한데도 있지만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총을 내대고있는게 무서우니까 넙적 엎드릴 때 난 소리고 얼굴에 덮친 칙칙한것은 그때 튕겨난 흙탕물이다.
얼마나 정확한 추리고 판단이요? 날이 밝은 다음 확인한데 의하면 한가지도 틀리지 않았단 말이요. 우리 저 서명국동무도 입을 항- 벌리며 감탄했소!》
서명국이도 다른 군인들도 허영걸의 이 말을 들으면서 벌씬벌씬 웃었다.
그렇지만 허영걸이만은 시치미를 뻑 따고 계속했다. 그의 얼굴색은 오히려 푸르딩딩 사나와졌다.
《에익- 펄펄 끓는 물에 처넣어도 씨원치 않을 저놈들. 아, 글쎄 그 집채같은 돌이 한번만 더 굴러가지고 쿵 했더라면 이 허영걸이와 저 서명국이 어쩔번 했소? 에익-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기분나쁘단 말이요!》
허영걸은 말을 끝내면서 몸까지 으스레를 쳤다. 그 모습을 보고 둘러서있던 군인들은 이번에는 소리까지 내서 흐아흐아 웃었다.
한창 이러고있는데 저쪽에서 독고선동이 달려오며 조용히 불렀다.
《부분대장동지, 부분대장동지- 》
《나?》
《언제 거기 앉아 이야기판을 펼 겨를이 됩니까? 중대부에서 찾는데…》
《나? 이 허영걸이를 찾는단 말이요?》
《빨리 오랍니다.》
《무슨 일이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문제가 생긴것 같습니다.》
《문제? 전투근무수행정형을 보고할 때까지는 아무 일 없었는데…독고동무도 아까 같이 듣지 않았소?》
《그렇긴 한데…》
허영걸은 헤쳐놓은 군복앞섶단추를 채우며 벌떡 일어섰다. 방금까지 흐아흐아하던 군인들도 웃음을 거두고 서로 마주보았다. 서명국이도 모표닦던것을 그만두고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적들쪽에서 난 사태가 군사분계선표말과 철조망을 우리쪽으로 쭉 밀고내려왔답니다. 순찰통로두 막히구요.》
《어두울 때 철수하다보니 그것까진 미처 몰랐는데…》
《그 기회를 타서 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것 같습니다.》
《적들이 꿍꿍이를 꾸민다구?!》
독고선동이네도 어제 밤 전투근무에 나가 허영걸이네 조 좌측에서 같은 일을 당했다. 좀 후미진 곳이다보니 허영걸이네보다는 뒤라고 할수 있었다.
한데도 선동원이 역시 달랐다. 적들쪽에서 일어난 산사태를 그저 이번에 비가 많이 내려 그럴수 있겠다고만 보지 않고 여러가지 각도에서 분석하고있는것 아닌가.
허영걸은 좀전과는 달리 얼굴이 검컴해가지고 중대부로 뛰여갔다.
적들쪽에서 난 산사태로 군사분계선표말과 철조망이 우리쪽으로 밀려내려오고 순찰통로까지 막혀버렸다는 정황은 강철봉초소에 한층 긴장감을 더해주었다. 감시근무인원들이 증강되고 중대군관들이 허리에 찬 권총과 전투가방을 한손으로 눌러잡고 감시소로 뛰여올라갔다.
중대에서는 날이 활짝 밝은 다음 이 사실을 다시금 확정하였으며 확인된 즉시로 사단참모부에 보고하였다. 사단참모부에서는 경계근무와 특히 사태가 난 곳에 대한 감시근무를 강화하며 적들의 사소한 움직임도 놓치지 말데 대한 지시를 주었다.
산사태가 난 적들쪽에서는 그날 정오가 지날 때까지 어느 한놈도 얼씬하지 않았다. 다른 때는 오늘처럼 비오다 개이면 젖은 군복이며 침구 같은것을 내다말리우느라 부산을 피우던 놈들이 매를 본 꿩처럼 어데다 대가리를 틀어박았는지 꼼짝하지 않았다. 그것이 의문을 한결 더해주었다
×
한편 인민군측지역의 강철봉과 마주서있는 저들의 초소에서 산사태가 났다는것을 안 국방부 민덕규대령은 처음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 지역은 자기가 담당한 사단관하 1선초소의 하나였던것이다.
지난 기간 뜨문히 선불질을 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얻어맞기만 한 초소다. 그래서 련대장의 목을 떼고 국방부에 사단장을 불러올려다 되게 다불리기도 했는데 이번엔 산사태가 나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부대관리는 어떻게 하고 진지를 얼마나 허재비로 만들어놓았게 인민군대의 면전에서 그따위 망신을 또 당한단 말인가.
민덕규는 앞으로 쑥 삐여져나온 주걱턱을 신경질적으로 쓸어만지며 오만상을 찌프렸다. 이제 있게 될 국방부 장관이나 상관들의 추궁을 생각하니 등골이 다 오싹해났다.
그는 급히 초소에 전화를 걸어 피해상황을 알아보려 했다.
《뭐, 뭐라구?》
전화를 받는 놈이 코맹맹이인지, 통화감도가 신통치 않아선지 발음이 똑똑치 않아 잘 알아들을수 없다. 거기다가 전화를 내리건 상대가 누구라는걸 모르는것 같다. 말투가 곰상스럽지 못하고 이따금 옆의 놈과 뭐라뭐라 하며 성의없이 전화를 받았다.
꿱- 소리를 지를가 하다가 그래야 가뜩이나 변동이 심한 혈압이 튈것 같아 꾹 참았다.
《그래 무슨 피해가 났어?》
그 물음에 두서없이 한참 주어섬기던 놈이 왕청같이 누구냐고 되묻는다.
《밥통같은 자식-》
민덕규는 주걱턱을 주억거리며 수화기를 귀에서 떼서 그것이 마치 전화를 받는 놈이기나 한것처럼 한참이나 쏘아보며 혼자소리로 욕하다가 다시 귀에 대고 끝내 역정을 터뜨렸다.
《거기 당신 말고 누가 또 있어?》
《사단장님이 내려와계십니다.》
《사단장? 바꾸라. 나? 국방부 민덕규대령이다.》
《알았습니다.》
사단장도 아마 사태가 났다는 보고를 받고 현지에·부리나케 나온 모양이였다. 민덕규보다 륙사 한기 선배고 장성까지 받고있는지라 자기가 아무리 국방부에 있다 해도 반말질은 할수 없었다.
사단장을 바꾸어 알아보니 큰 피해는 없다고 한다. 사병들과 무기, 전투기재는 마침 미리 철수시켰다는것이다. 몇십메터가 잘되는 점호와 참호구간이 뭉청 밀려내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토량이 엄청난것이여서 산아래에 세워져있던 군사분계선표말이 저만치 밀려내려가고 북측 인민군진지쪽의 순찰통로를 막아버렸다는것이다.
《사단장님이 책임이 무서워 피해상황을 숨기는건 아니겠지요?》
《민대령, 자네 선배를 몰라보고 아무 소리나 탕탕 하면 되나?》
《사단장님, 실례했습니다. 피해가 크게 없다면 좋구요. 그런데 사태가 밀려내려간 후 북측 인민군대의 동향은 어떤가요?》
《거야 뭐 어떻구말구있나. 간밤에 방금 있은 일인데. 순찰통로를 막았으니 그걸 지체없이 열자구 할건 뻔한거구.…》
《군사분계선표말은요?》
《거야 제자리에 세워야지.…》
공연한걸 꼬치꼬치 묻는다는듯 사단장은 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밥통같은 자식, 하나를 물으면 열, 스물은 생각 못해도 둘, 셋쯤이야 짐작해야지. 그런 돌대가리를 가지고 어떻게 1선사단장을 하나?)
민덕규는 또 턱을 주억거리며 속으로 욕질했다. 지금 그의 머리속에서는 번개의 섬광과도 같은것이 펀뜩하였다.
절호의 기회같았다. 그렇지만 혼자의 결심으로는 이 엄청난 일을 벌릴수 없었다. 상부나 상전인 미군측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것이다.
현지에 나가있는 사단장에게 초소에서 다른 일이 더 생기지 않도록 움쩍말고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다음일은 다시 인차 전화하겠노라 했다.
민덕규의 머리속에 떠오른 섬광이란 이번 기회에 인민군대를 한번 건드려보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였다.
대국상을 당한 후 북은 지금도 눈물의 바다속에 잠겨있는것 같다. 북의 텔레비죤을 보면 꽃다발과 꽃송이를 들고 만수대언덕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물결이 그치지 않고있었다.
강철봉초소에서도 일체 다른 움직임은 없지만 병사들의 심리는 같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때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가 하는 맥을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그들이 자기들의 수뇌부에 엄청난 공백이 생긴 현상태에서 심리가 어떨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자기도 모르게 몸이 달아올랐다. 그는 시간이 늦으면 한번 단단히 솜씨를 보이자고 했던 일이 틀어질것 같아 몸가짐을 바로하고는 상관인 국방부 장관을 찾아들어갔다.
《화를 복으로 만들어보겠다는건데…》
《절호의 기회같아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나?》
《남한의 운명이나 장래를 생각할줄도 알아야지요.》
《허허… 민덕규대령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구만.》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건 심중한 문제야. 그러지 않아도 북조선의 애도기간에 온 세계가 애석해하며 거의 모든 나라 국가, 정부수반들과 인사들이 조전을 보내고 대사관에 찾아가 조의를 표시했는데 한강토에서 살고 한피줄을 가졌다는 우리 남한 김영삼대통령만은 조의는 고사하고 못된짓만 했다고 북의 민심이 폭발직전에 있단 말이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조의를 표시하러 가겠다는 국민들의 앞길을 총칼로 막지 않았나, 비보가 발표되여 30분도 못되여 〈특별경계령〉, 〈갑호비상령〉, 〈비상대기령〉을 내리지 않았나. 사람4촌보다 못한짓을 하기야 했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민덕규는 주걱턱을 주억거리며 또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그것으로 제 주장을 철회하고싶지 않다는것을 보여주려는것 같았다.
《이건 심중한 문제니만큼 나 혼자의 결심으로도 안되지. 대통령각하와도 상론해보고 미국어른들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니…》
《그야 물론이지만… 시간이 촉박합니다. 이제 곧 북쪽 인민군초소에서 순찰통로가 막혔으니 열자고 하고 분계선표말도 제 위치에 세우자고 할텐데…》
《안다니까. 방에 가서 기다리게. 내 곧 조처할테니… 그렇지만 자네도 가만있지는 말고 외교통상부랑 중떠보게. 요즈음 조미회담이 결렬됐다가 다시 열려가지고 우리 남한 같은건 외눈으로도 보지 않고 흡진갑진한다는데…》
《알겠습니다.》
민덕규는 국방부 장관의 방문을 닫고 나오면서 《흥-》 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체통이 아깝구 어깨에 단 장성별이 아깝지. 이 민덕규니 그런 생각이라도 하지 제따위들이야 어디…)
그는 제 방에 돌아와 외교안보비서 우영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즈음 미국어른들의 동향이 어떤가고 물어보았다.
《어떨게 있소? 어차피 북조선과의 핵협상이 타결되는것 같소. 우리 보구는 움쩍 다른 행동이나 싱거운 소리들을 하지 말라구 오금을 자꾸 박으면서 말이요.》
《이런 때 북을 한번 슬쩍 건드려보는게 어떻겠소?》
《건드린다는건 우리가? 자네네 국방부가?》
《거야 뭐 좀 생각해봐야지…》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묻는거요?》
《미국량반들이 어떻게 나오겠나 해서…》
《별걱정을 다… 마주앉아 회담은 하지만 본성이야 어디 가겠소?》
《그렇지요? 그네들의 본심이야 달라지지 않았겠지요.》
《달라지면 미국이 아니게?… 조미회담이 타결되면 그걸 통보해주겠노라며 미국무성 부차관보 제임스 찰슨이 일본이든 남한이든 날아오겠다니까.》
《그럼 한번 북조선을 타진해봐?》
《타진한다는건?…》
《그쯤 알아두오.》 이렇게 한참 횡설수설하고났는데 국방부 장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민대령, 자네 의견이 승인됐데.》
《그렇습니까?》
《김영삼대통령이나 미국어른들두 요즈음 매우 초조해있는게 분명해. 뭘 알아내지 못한다구 안기부사람들더러 한창 신경질을 부리던 참인데 우리 국방부가 그런대로 좋은 안을 제기했다는거요. 그렇지만 일은 실수없이 꾸며야 해.》
《알겠습니다.》
《비밀이 샐수 있으니까 이제부터 일체 전화나 다른것은 다 그만두고 민대령이 직접 현지에 나가 일을 꾸미게.》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되 북한 인민군측 지휘부나 그네들의 사단, 군단 같은데서 눈치 못 채고 손도 못쓰게 와닥닥 해야 하네. 자그마한 실수라도 있으면 안된단 말이요. 우린 여기서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여론전을 펼 준비랑 할테니까.…》
《알았습니다.》
민덕규는 송수화기를 놓고도 한동안 꼼짝않고 서있었다. 주걱턱을 몇번이고 쓸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