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3 장

 

5

원동 바쯔꼬예훈련기지

1945년 3월

 

원동의 눈석이계절이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무지들이 땀을 흘리듯이 번쩍이고있었다.

어디서나 눈석이물이 흘러내렸다.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했다. 그러나 해가 서쪽의 수림너머로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눈무지도 땅도 도랑물도 쇠덩이같이 얼어붙고만다. 이렇게 녹아내리고 얼어붙고 하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겨울을 쫓아버리고 봄이 오는것이다.

저녁무렵.

하바롭스크에서 바쯔꼬예훈련기지로 가는 도로를 따라 사람을 태운 개썰매가 살같이 빠르게 미끄러져가고있었다. 다섯마리의 개들이 끄는 썰매였다.

휘- 휘익!-

두손에 개끈을 갈라쥔 나나이대원이 긴 휘파람소리를 내였다. 그러자 다섯마리의 개들은 마치 구령을 받은 병사들마냥 한층 더 속도를 높이였다. 개썰매는 물먹은 눈탕을 마구 헤가르며 질풍같이 내달렸다.

허, 개들이 참 신통하군.

사령부전령병과 함께 뒤좌석에 앉은 김일성동지께서는 속으로 탄복하시였다.

개썰매는 국제련합군 나나이중대의 전용품이였다. 오늘 하바롭스크에 있는 원동전선군사령부를 다녀오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심한 눈석이때문에 자동차대신 개썰매를 리용하신것이다. 이 근방의 나나이사람들은 먼 옛적부터 자기나름의 독특한 운수수단을 가지고있었다고 한다. 겨울에는 이렇게 개썰매를 썼고 여름이면 《아무로츠까》라고 하는 통나무배로 사람이나 짐을 싣고다니였다. 간편하면서도 재빠른 이 개썰매는 요즘같이 눈석이때문에 자동차가 못 다니는 길도 끄떡없이 달리는것이다. 사람이란 의지할 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자기식의 생존방식을 창조할수 있는 법이다. 원동의 수림지대에서 사는 나나이사람들은 말할것도 없고 여기보다 더 엄혹한 자연의 재난이 덮씌워지는 영구동토대의 에스키모사람들마저 얼음집에서 살아가는 묘리를 터득하고있었다. 그러나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조선사람들은 자기의 터를 잃다보니 죽음보다 어려운 삶을 간신히 이어가고있지 않는가.

하루빨리 조국을 찾아야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큰숨을 지으시였다.

우중충한 전나무숲사이로 뻗어간 길은 말이 아니였다. 며칠전에 내린 큰눈이 물기를 잔뜩 그러모은 눈탕으로 변했다. 자동차바퀴에 다져진 도로의 홈타기로는 누런 탕물이 흐르고 때없이 겉물에 부풀어난 보쿠판들이 번들번들 나타나군 했다. 그러나 썰매는 그쯤한 장애따위는 어렵지 않게 타고넘으며 여전히 기세좋게 내달렸다.

결국 우리의 최후결전준비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셈이다!

달리는 썰매우에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리없이 뇌이시였다.

지금 그이께서는 원동전선군사령관 뿌르까예브대장과 면담을 하고 돌아가시는 길이였다. 매개 나라 군대별로 국제련합군을 재편성할데 대한 문제를 두고 진행한 면담결과는 아주 훌륭했다.

《나는 매개 나라 군대별로 국제련합군을 재편성하고 그에 따라 작전분담까지 명백히 그어놓은 다음 싸움준비를 완성하자는 김일성동지의 제안에 전적으로 찬동합니다.》

이것은 면담때 한 뿌르까예브대장의 말이였다. 김일성동지의 제안이야말로 대일작전준비를 보다 완벽하게 다그칠수 있게 하는 신통한 방안이라는 찬사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뿌르까예브대장은 이번 대일작전에서 조선인민혁명군부대는 쏘련의 우스찐스크집단군과 협력하게 된다는것도 조용히 귀띔해주었다. 우스찐스크집단군이란 연해주일대에 주둔하고있는 쏘련군부대로서 워로쉴로브에 그 사령부를 두고있었다. 바로 그 부대가 쏘련의 제1원동전선군이라는것은 대일작전이 개시되기 직전에야 알려진 사실이다. 내막이 어떠하든 뿌르까예브대장의 귀띔은 오래지 않아 대일작전이 진행된다는 예고나 다름없었다. 보다 중요한것은 국제련합군의 재편성문제가 우리의 의도대로 락착된 일이다. 인제는 우리 인원들을 다 모아다 지역별로 부대를 재조직하고 그에 맞게 실속있는 군정훈련을 벌릴수 있는 길이 열린셈이다.

최현동무도 돌아오겠군.

문득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난해초 하바롭스크에 새로 편성되는 국제련합군의 자동총대대로 파견되여가던 최현의 모습이 생각나시였다.

그때의 최현은 좀처럼 찌뿌둥한 얼굴표정을 풀지 못하고있었다.

《헛참, 팔자두… 이거 어쩌다 모처럼 장군님곁에서 마음편히 지내보는구나 했더니만 이번엔 또 코큰 사람들의 부대로 떠밀려갈줄이야… 하여튼 이 최현이 마음만은 송두리채 장군님께 두고가니 그런줄 아시우다.》

《안해는 끝내 떨궈놓구 가겠소?》

《나대신 그 사람이라도 장군님곁에 두고가야 마음놓을것 같습니다.》

이렇게 떠나간 최현이였다. 이제 그가 부대로 돌아오게 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표정이겠는가를 생각하느라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시였다.

개썰매는 날이 아주 어두워져서야 훈련기지에 가닿았다.

병영앞에서는 김책이 기다리고있었다.

《길이 험해서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눈석이가 굉장합니다. 낮에는 길이 온통 물탕이더니 해질녘부터는 그게 온통 얼음판으로 변하더군요. 그래도 개썰매는 끄떡없는데… 참 김책동무, 갔던 일은 다 잘됐습니다.》

《그럼 인젠 모든게 우리의 뜻대로 되겠군요.》

김책은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아마 그 말을 듣고싶어 내처 어둠속에서 기다린듯 했다.

《어서 댁으로 가십시다.》

《우리 집으로요?》

《예, 우리 동무들이 댁에서 사령관동지를 기다리고있습니다.》

《사람들도 참, 그럼 가봅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발길을 돌리시였다. 댁에 이르러 출입문을 여시니 뽀얀 뜬김이 고기삶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소용돌이치고있었다.

뜬김속에서 군복상의를 벗어내치고 두팔을 걷어올린 안길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모두들 사령관동지께서 오시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중입니다.》

안길은 마치 손님을 맞아들이는 주인이기나 한것처럼 김일성동지와 김책을 방안으로 안내하였다.

부엌간에서 김정숙동지와 김철호, 황순희 등 녀대원들의 모습이 뜬김사이로 얼핏얼핏 보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안길을 돌아다보시였다.

《허, 이거 무슨 대사라도 치르는것 같구만.》

《물론입니다. 오래간만에 곰순대추렴을 하게 됐거던요.》

안길은 흥겹게 변죽을 치며 엉너리를 부렸다.

방안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섰다. 최석천이와 강신태며 최춘국이네들이였다.

성미급한 최석천이 참지 못하고 덤벼쳤다.

《사령관동지, 재편성문제는 합의를 보셨습니까?》

《예, 다 제대로 됐습니다.》

《사실 사령관동지께서 주동적으로 우리 동무들을 별동대나 중국부대에 보내셨는데 이제 다시 소환해오는거야 응당하지요.》

김책은 그렇지 않느냐는듯 좌중을 둘러보며 벗어지기 시작한 이마를 쓸어넘겼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명백히 찍어 말씀하셨다.

《쏘련측에서도 우리의 제안에 지지를 표시했습니다. 뿌르까예브대장이 꼭 김책동무처럼 말하더군요.》

《히야!-》하고 일시에 탄성이 터져오르는 가운데 안길은 얼씨구 좋다 하고 걱실걱실 춤까지 추며 돌아갔다. 국제련합군이나 별동대들에서 조선부대성원들이 큰 역할을 하는 조건에서 그들을 다 데려오는것이 조련치 않을것이라 은근히 가슴을 죄이던 사람들이고보면 그럴만도 했다. 사방으로 흩어져갔던 우리 대원들을 다 모아다놓고 최후결전준비를 보다 실속있게 해나가자는것은 여기 모인 지휘성원들의 하나같은 소원이였다.

《사령관동지.》

맵시나게 춤가락을 날리던 안길이 김일성동지앞에 멎어섰다.

《오늘은 새벽부터 반가운 일만 련속 생깁니다. 아침에 글쎄 저 하바롭스크의 자동총대대에 가있는 최현이 말입니다. 갸가 이 형님한테 진상을 하느라구 사릅잡이 소만 한 곰과 말사슴을 대형 <지쓰>에 실어보내지 않았겠습니까. 자동총대대의 주먹코대대장을 구슬려 사냥을 했다는데 아마 소득이 굉장한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소? 최현동무가 마음만은 여기다 송두리채 두고간다고 하더니 그른 말은 아니였구만.》

김일성동지께서도 밝게 웃으시였다.

《그래 대원들한테도 고기맛을 보여줬겠지?》

《거야 어련하겠습니까. 중국부대, 쏘련부대들에도 다 나눠주고 이 안길이한테 남은거란 곰밸뿐입니다.》

《결국은 오늘 안길동무의 덕분에 곰순대를 먹어보는셈이구만. 그런데 하나 묻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의미있는 웃음을 지으시였다.

《도대체 언제부터 최현동무가 동무의 동생으로 되였소? 난 그가 형인줄만 알고있었는데…》

《예에?…》

안길은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같은 얼굴을 해보였다. 진짜로 놀란것인지 아니면 놀라는척 꾸며낸 표정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니, 온 부대가 다 아는 사실을 사령관동지께서 여직껏 모르고계시다니 난 도무지…》

《허참, 동무가 말해주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소?》

《당장 설명해드리지요.》

안길은 방안에 빙 둘러앉아 시물시물 웃고있는 사람들한테는 아랑곳 않고 자기의 장기의 하나인 구수한 입담을 열어놓기 시작했다.

《이건 39년도에 있은 일인데 그때 3방면군에 속해있던 우리 14련대와 최현의 13련대는 련합작전을 벌리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싸움군으로 유명짜하게 소문난 최현이도 처음 만나봤습니다. 그런데 첫인상은 아주 개차반이였지요. 키랑 몸집이랑 별로 크지도 못한 사람이 어찌나 맵짜고 맞갖잖게 구는지 다신 마주서고싶지 않더란 말입니다. 대신 전투지휘만은 딱소리나게 하는데 참 기막혔습니다. 몇차례 련합작전을 거듭 하노라니 그 맞갖잖아보이던 사람한테 점점 마음이 끌리구 나중엔 아주 반해버렸습니다. 총각이 처녀한테 반하듯이 말입니다. 저는 일부러 그한테 말도 걸어보고 통성도 해보았는데 글쎄 동향에 동갑이 아니겠습니까. 최현인 훈춘태생이라 하지만 조상대대로 온성토배기이고 나역시 온성과 이웃인 경원이 고향이니 이게 동향친구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또 우리 두사람은 꼭같은 정미년(1907년)에 태여난 동갑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생일도 내가 2월 24일이라고 하니 최현인 2월 23일이라 했습니다. 같은날 태여난 쌍둥이도 형과 동생이 엄격히 구별되여있는데 옹근 하루차이야 더 말할게 있습니까.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하며 최현을 깍듯이 형님으로 모셨지요. 최현은 형님대접을 받게 되자 배부른 수사자처럼 흐뭇해하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후 내내 그렇게 형님으로 섬겨왔지요.

아, 그런데 지난해 초봄 사령관동지의 지시대로 나는 대렬명단을 다시 작성하면서 엉큼하기짝이 없는 최현이 나보다 백날이나 뒤늦게 태여났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였습니다. 어찌나 분통이 터져오르던지… 온몸의 피가 거꾸로 끓어번지는것 같았습니다. 마침 최현인 아직 자동총대대로 가기 전이여서 집에 들이배겨있었습니다.

난 그길로 최현을 찾아갔습니다. 한밤중이였지만 어디 그런걸 생각할 경황이 됩니까. 뜨락에서 장작개비 하나를 집어들고 문을 쾅쾅 두드려댔습니다. 무슨짓을 하고있었는지 퍼그나 꾸물거리다가 불을 켜고 문을 열어주더군요.

속옷만 걸친 최현은 장작개비를 틀어쥐고 노려보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영문을 몰라했습니다.

나는 장작개비를 겨눠들고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최현이 이놈, 네 생일이 그래 어느날이라구? 똑똑히 말해봐라.>

그제야 사태를 알아차린 최현은 눈이 없어지게 헤시시 바보웃음을 짓더니만 갑자기 돌변해지며 도리여 제편에서 삿대질을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야 안길이, 네가 자꾸 동생노릇을 하고싶어하길래 소원을 풀어줬으면 고맙다구 해야지 아닌밤중에 이 무슨 짓거리냐?>

도적이 매를 드는 격이였지요.

그쯤되고보니 나의 분노가 어떠했겠습니까?

내가 말했습니다.

<좋다, 그럼 네가 나더러 동생노릇을 시켜준 값을 물어주지. 사등뼈가 부러지면 네가 얼마나 장한 일을 했는지 알게 될게다.>

나는 천천히 장작개비를 높이 쳐들었습니다. 이때 뭔가 뭉클하는것이 내 팔에 무겁게 매달리더군요. 고개를 돌려보니 글쎄 김철호란 녀자가 속치마바람으로 팔에 딱 매달려서는 우리 스나이 사등뼈만은 제발 다치지 말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

《에그마, 내가 언제 그런…》

부엌으로 통하는 문지방너머에서 동자질에 여념이 없는것처럼 별로 바쁘게 돌아치던 김철호가 질겁한 소리를 질렀다.

방안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안길은 폭소에 한수 더 떴다. 그는 부엌간의 김철호에게 호통치듯 말했다.

《제수, 그래 내가 없는 소릴 지어냈단 말이요?》

《아니, 안길동지의 말씀이 다 옳습니다.》

김철호의 바빠맞은 대답이였다.

또다시 웃음이 터지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웃으며 한마디 하시였다.

《철호동무까지 인정하는걸 보니 안길동무의 말을 믿지 않을수 없구만. 최현동무부부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빈거랑…》

《물론이지요. 제까짓게 그러지 않으면 별수 있습니까? 하, 이거 신선놀음에 곰순대가 다 흐지겠군.》

지어낸 호기를 부리던 안길은 갑자기 부엌으로 씽 나가더니 녀대원들을 독촉했다.

《자, 남의 말에 헛눈들을 팔지 말구 어서 서둘러야겠소.》

《이젠 됐습니다.》

김정숙동지의 대답이시였다.

《곧 들여가겠습니다.》

그날 저녁은 실로 명절날같았다. 곰순대도 곰순대려니와 이제부터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다 모여오게 되였다는 기쁨이 방안의 분위기를 한껏 채워놓고있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지휘성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난 래일 아침 워로쉴로브쪽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 일대에 있는 별동대동무들도 만나보고 연해주주둔 쏘련군부대사령부에도 들려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여기 일들은 안길동무가 책임지고 해야 하겠습니다. 걸린 문제들이 있으면 김책동무랑 최석천동무랑 같이 의논해서 풀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할일이 많습니다. 부대의 재편성 다시말하여 우리 동무들을 데려오고 부대안의 다른 나라 대원들을 보내는 일이나 지역별부대를 내오고 새로운 군정훈련강령을 만드는 일이 헐친 않을겝니다.

이와 함께 최근 백두산지구에 다시 나간 박덕산동무와의 련계밑에 국내정황을 늘 장악하고있어야 합니다. 요즘 국내형편이 착잡합니다. 적의 대군이 밀려든 오늘 혁명조직들과 인민들에 대한 폭압소동도 반드시 뒤따르게 될것입니다. 난 사실 그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있습니다. 국내의 소부대들과 혁명조직들에 있을수 있는 최악의 경우에 대처할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는 떨구었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수 없습니다. 동무들도 이 점을 명심하고 한시도 마음의 탕개를 늦추지 말아야겠습니다.》

그제야 지휘성원들은 긴장한 낯빛을 지었다. 오늘 비록 기쁜 소식을 접했지만 결코 명절같은 기분으로 지내서는 안된다는것을 깨달은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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