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2 장
5
라진
1943년 8월
어둠깊은 밤이였다. 누가 귀쌈을 쳐도 알아볼수 없으리만큼 캄캄하다. 밤하늘에는 별빛 한점 찾아볼수 없고 실오리마냥 가느다란 비가 내리고있었다. 이런 밤에 길을 걷는 사람이란 영낙없이 앞을 못보는 소경시늉을 하기마련이다. 허나 이런 밤길에 적응된 사람들도 있는것이다.
라진시내의 동북방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파출소로 몇명의 검은 그림자들이 다가가고있었다. 그들은 여유있게 파출소로 들어가는 울바자의 삽짝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파출소의 불켜진 창문으로는 방안이 잘 들여다보였다. 걸상에 앉은 당직경관이 책상우에다 포개여얹은 두팔을 베개삼아 코를 골며 자고있었다. 저렇게 앉은잠을 자는 꼴이 술잔깨나 건사했던 모양이다.
시꺼먼 비옷을 입은 검은 그림자들중 하나가 파출소의 출입문을 요란스럽게 두드렸다.
《순사나리, 순사나리.》
《뭐야?》
굳잠을 자던 당직경관이 벌떡 일어났다. 이 아근에서 《악귀》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악질순사였다.
《웬놈들인가?》
《순사나리, 사고가 났습니다. 댁에서 아주머니가 목을 매고…》
《뭣이?》
그놈은 다급히 출입문쪽으로 달려와 문고리를 벗기였다. 벌컥 문을 열어제끼는 순간 그놈은 벼락을 맞은것처럼 굳어지고말았다. 자기의 앞가슴에 들이댄 권총과 검정고무비옷을 입은 사나이들의 눈총에 아주 얼이 빠져버린것이다.
그림자같은 사나이들이 그놈의 가슴을 총구로 떠박지르며 안으로 들어섰다.
《무기고의 열쇠를 내놔.》
사나이들은 열쇠를 빼앗아 무기고를 열었다. 자그마한 무기고에는 다섯자루의 보총과 탄알 그리고 다섯자루의 일본도가 있었다. 그들은 당직놈의 보총과 일본도까지 모조리 거두었다. 책상안들을 뒤져 필요되는 문건들도 골라냈다. 모든 일이 신속하고 소리없이 진행되였다.
할일을 다 끝낸 그들은 악질경관마저 처단해버리고 시체우에 경고장을 놓아두었다. 인민에게 악행을 일삼는자의 운명은 오직 죽음뿐이라는 경고장이였다.
이윽고 사나이들은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남아 망을 보던 사람이 다가와서 말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럼 갑시다.》
그들은 곧 비내리는 어둠속으로 걸어갔다. 동남부의 바다쪽이였다. 얼마후 안주동근처까지 급행한 그들은 바다가 바위틈사이에 숨겨놓았던 거루배를 타고 유유히 바다로 나갔다. 그들로 말하면 안길의 인솔하에 첫 습격전에 나선 라진인민무장대의 성원들이였다. 배는 지금 비밀아지트가 있는 유현동쪽으로 가고있었다.
배우에 앉아있는 안길은 마음이 흐뭇했다. 라진지구로 와서 얼마안되는 사이에 그는 무장대를 세개나 꾸려놓았다. 유현과 신해, 관곡에 각각 인민무장대를 하나씩 내오고 총대장으로 유현동의 조직책임자 차호림을 임명했다. 각 무장대는 차호림의 지휘밑에 각기 독자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안길은 인민무장대들의 활동방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나서 각 무장대의 대장들과 총대장을 망라한 시범적인 습격전투도 조직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이 시범전투성원들속에 끼여들었다. 전투계획과 준비는 사전에 면밀히 해놓았기때문에 그는 전투의 전과정에 말한마디없이 구경군노릇만을 했다. 잘 짜고든 일이라 습격전은 그의 예상대로 아주 훌륭한 결실을 보게 되였다. 무장대의 지휘성원들이 직접 겪어봤으니 적배후교란작전을 어떻게 벌리겠는가 하는 리치도 환히 터득했을것이다.
매생이는 밤바다우에서 춤추듯이 흔들거렸다. 한치의 앞도 가려볼수 없는 어둠속이였지만 힘찬 노젓는 소리와 함께 거침없이 바다를 헤가르며 나가는 매생이였다. 노젓는 사람이 그만큼 능숙하다는것을 의미했다. 배는 조금도 에누리없이 목적지에 가닿게 될것이다.
문득 안길은 얼마전 묘령에서 만났던 초모정자부대장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 부대의 일은 말그대로 순풍에 돛단 배처럼 다 잘되고있습니다. 이상할 정도입니다.》
초모정자부대장의 말은 사실이였다. 초모정자부대는 묘령의 본영에 50여명의 소부대성원들만을 두고 사방의 넓은 지역에 10여개의 소부대들로 분산되여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군률이 강하고 질서가 째였는지 안길이조차 깜짝 놀랄 지경이였다. 매 소부대성원들의 복장에도 흠잡을데가 없고 걸음걸이도 정규군처럼 절도가 있었다. 본영에는 몇달분의 식량과 피복, 의약품예비도 그득했다. 본영만이 아니라 주변의 몇개 소부대들을 돌아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체의 군정훈련과 함께 지방조직의 무장대를 훈련시키는 체계도 정연하게 세워놓고있었다. 또한 활동지역의 모든 주민지대를 지하조직망으로 뒤덮어놓아서 적정도 손금같이 꿰뚫고있었다. 때가 되면 부대를 사단무력쯤 확대시키는것을 별로 어렵지 않게 여기고있었다.
《부대장동무, 정말 수고 많았소. 난 초모정자부대의 전투력이 이렇게 강한줄을 몰랐소. 부대장동무의 능력에 시샘까지 날 지경이요.》
《아, 이러지 마십시오. 우리 부대의 오늘이야 다 사령관동지께서 숱한 로고를 바치신 덕에 마련된것이 아닙니까? 정말 사령관동지가 아니시였더라면 우리 부대는 아마 41년도에 아주 쓰러지고말았을겁니다.》
《나도 사령관동지로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들었소.》
《그땐 정말 눈앞이 막막했습니다. 노조에의 <토벌>대한테 몰리여 이태째나 밀영에 꼼짝 못하고 갇혀있었지요. 가족들까지 걷어안구서 말입니다. 식량고생을 하다못해 사람들이 하나, 둘 넘어져도 어떻게 할 도리가 있어야지요? 놈들과 마지막결사전을 벌리자 해도 탄알조차 없었으니, 참… 바로 이런 때 장군님께서 소부대를 거느리고 우리한테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기진한 사람들도 구완해주고 소부대활동방략을 가르쳐주며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친히 습격전투도 조직하여 수많은 식량과 무기, 탄약 그리고 가족들이 주민지대에 나가 살수 있는 자금까지 다 마련해주셨습니다. 유능한 지휘성원들도 떨궈주시고…》
본시 입이 무겁다는 부대장은 안길의 앞에서 신이 나서 달변을 펼쳐놓았다.
《소부대활동이란게 해보니 정말 신통합니다. 놈들이 아무리 그물처럼 포위진을 쳐놓는다 해도 소부대로는 얼마든지 그 그물코사이로 빠져나가 제 할일을 다 할수 있거던요. 인원이 적다보니 식량고생, 피복고생 같은것도 모르구요. 더구나 우리 부대에서 제일 골치거리로 되던 가족문제도 단번에 풀렸습니다. 가족들을 적구에 내보내여 정착시킨 다음 그들을 중심으로 지하조직을 내오니 실로 꿩먹고 알먹고 둥지 털어 불때기나 다름없단 말입니다. 지금 우리 소부대들의 활동지역은 지하조직망으로 뒤덮여있어서 놈들의 사소한 움직임도 손금같이 알수 있고 끊임없이 들어오는 원군물자들로 창고들이 꽉 차있지요.》
《정말 대단하구만.》
안길은 그밖에 다른 말을 할수 없었다.
《대단해!》
《하지만 우리 부대의 오늘을 위해 해마다 바쳐오신 장군님의 로고를 생각하면…》
부대장은 두눈을 슴뻑거리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받은 안길의 충격은 얼마나 컸던가. 초모정자부대를 통하여 국내와 만주의 수많은 소부대들이 다 김일성동지의 크나큰 혼신의 힘으로 키워졌으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던것이다.
그것이 어찌 소부대들만이겠는가.
안길이 라진지구에 와서 며칠 안되는 사이에 인민무장대를 세개씩이나 꾸릴수 있은것도 김일성동지께서 이미 믿음직한 혁명조직을 마련해놓으셨기때문이다. 다른 지역에도 마찬가지일것이다.
드디여 매생이는 목적지에 정확히 가닿았다. 유현동근처였다.
일행은 곧장 비밀아지트로 갔다.
비밀아지트에서는 체소한 몸집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라진지구 당책임자 리경준이였다. 그는 번쩍거리는 보총들을 메고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오늘 밤 습격작전이 성공했다는것을 알아차린듯 했다.
《빨리 돌아오셨군요.》
《예, 일이 예견했던대로 다 잘됐습니다.》
안길이 비로소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이 동무들이 제법 할줄을 알더군요. 그래서 난 구경군노릇이나 했습니다. 》
《첫 습격전에서 총을 여섯자루나 벌었습니다. 악질순사도 처단해버리고…》
차호림이도 웃음이 넘실넘실 넘어나는 얼굴로 말했다.
《이런 식으로라면 무장대의 힘을 얼마든지 자체로 키울것 같습니다.》
《당치않은 소리…》
리경준은 단번에 차호림에게 퉁을 주었다. 차호림은 그의 외조카였다.
《무장대를 훈련시킬 소부대성원들을 꼭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 각 무장대에 한명씩은 보내주겠습니다. 그러니 빨리 비밀거점들을 꾸려야 합니다. 그건 그렇구, 오늘 밤 습격전투에 대한 소감부터 나누어봅시다. 그만하면 습격전이 깨끗하게 결속된것 같은데 한번 해보니 어떻습니까?》
《이런 습격전이라면 날마다 해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관곡인민무장대의 한인섭대장이 신명나서 말했다.
《총 한방 쏴보지 못해서 좀 싱겁긴 하지만…》
《총소리를 냈다면 그건 실패한 습격전이나 다름없소.》
차호림이 한인섭의 말을 밀막으며 나섰다.
《이번 습격전은 사전에 정찰을 잘했기때문에 쉽게 성공을 할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옳소. 미리 정찰을 잘해서 파출소의 경비정형뿐만아니라 악질순사의 경비날자까지 알아냈기때문에 일거량득을 한셈이요.》
《정찰도 잘했지만 작전계획도 잘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안길의 말에 관해인민무장대 대장이 말했다.
《이곳 유현과는 정반대켠의 라진시내의 동쪽파출소를 치고 배길로 돌아온건 놈들이 흔적을 찾지 못하게 하는 묘술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도 맞소. 정찰도 잘하고 작전계획도 잘 세웠으며 습격전에 참가하는 동무들의 각오도 아주 좋았소. 동무들은 다 무장대의 지휘성원들인것만큼 이제부터는 소부대성원들의 방조밑에 대원들을 잘 훈련시키고 실전을 통하여 무장대의 전투력을 높여야겠소.》
안길은 재삼 당부하였다.
《이미 토론도 했지만 라진지구는 놈들이 제일 첫째로 손꼽는 요새구역이요. 때문에 이놈들을 제끼자면 무장대의 힘을 특별히 잘 키워야 하는거요. 또 라진지구에 간도에서 모략을 꾸미며 돌아치던 놈들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구 경각성을 높이는것이 중요하오. 그래서 라진지구의 무장대는 철두철미 조직들에서 검열된 사람들로 꾸려야겠소. 여느 지역에서처럼 산에 숨어있는 사람들이라 해서 마구 받아들여선 안되오. 그런 청년들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두번, 세번 검토를 거쳐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요.
끝으로 타격대상에 대한 정찰은 상시적으로 계속해야 한다는걸 다시 상기시키오. 그럼 이번 라진지구에 와서 내가 할일은 다 끝난셈이니 이젠 떠나겠소.》
《아니, 이렇게 가시다니…》
《산에서 우리 동무들이 기다리고있소. 후에 다시 만납시다.》
안길은 서둘러 아지트에서 나왔다. 소부대성원들이 기다리는 보로지산림시비밀근거지로 가기 전에 그한테는 또 하나의 할일이 있었다. 처남인 강만수를 만나야 했던것이다.
*
일본군장교로 가장한 안길이 불쑥 나타난 순간 강만수는 된주먹에 동가슴을 얻어맞은것처럼 화뜰 놀라 어쩔바를 몰라했다. 이전보다 훨씬 늙어버리고 초췌해진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였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강만수는 인차 태연한 기색을 되찾았다.
《흠, 이제사 왔구만.》
모든것을 각오하고있었다는 소리같았다.
《아무때건 한번은 이렇게 만나야 할 일인데 좀더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걸 그랬소. 난 이날을 기다리느라 아주 지쳐버렸소.》
《기다렸단 말이지.》
안길은 강만수의 앞에 마주앉으며 사나운 눈찌로 쏘아보았다.
《괜찮아, 그쯤한 각오를 가지고 목숨을 붙잡고 지낸다는것도 쉽잖은 일이니까.》
《어서 결판을 내오.》
강만수는 시끄럽다는듯 짜증을 냈다.
《총살을 하든지 목을 매달든지, 나도 사는게 다 귀찮소.》
《흠!》
안길은 검은 수염이 더부룩한 강만수의 훌쭉해진 상통을 어이없이 건너다보았다. 같지도 않은 강만수에게 이만한 배심이 있다는것을 선뜻 믿기 어려웠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사람이 이렇게 배포유한 자세를 유지한다는것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좋아.》
안길은 꽁무니에 찬 권총을 꺼내여 절컥 격철을 올린 다음 구들바닥에 척 내려놓았다.
《죽을 죄를 졌으면 응당 그렇게 벌을 받아들일줄도 알아야지. 하지만 죽기 전에 한가지 할일이 있다. 네가 혁명앞에 저지른 죄과들을 낱낱이 뱉아놓아야 한다.》
《난 아무것도 죄되는짓을 한적이 없소.》
강만수는 발끈하는 옛 성미를 그대로 되살렸다.
《내 혁명을 포기한건 사실이요. 그땐 몸도 좀 말째구 두루두루 앞날이 내다보이지도 않기에 물러섰던거요. 죄가 있다면 그 한가지뿐이요.》
《뭐가 어째?》
안길은 저도 모르게 강만수의 수염이 더부룩한 볼통을 불이 번쩍나게 후려갈겼다. 가뜩이나 작은 키가 더 작아진듯 한 강만수여서 마치 죄꼬만 아이를 때린것처럼 멋적었다. 그래도 호령만은 늦추지 않았다.
《관절이요, 눈이 잘 보이지 않소 하면서 입대를 포기하고 혁명의 길에서 물러선것만 해도 네놈은 큰죄를 지은셈이야. 게다가 온 세상이 다 알게 밀정노릇을 하고도 발뺌을 해보자는건가?》
《난 밀정질을 하지 않았소.》
강만수는 주먹으로 노전바닥을 쾅 내리치며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더니 이어 자포자기와도 같은 넉두리를 늘어놓았다.
《엥이, 됐소. 좋을대루 생각하오. 이 강만수가 밀정이구 매부까지 잡아먹은 놈이라구… 난 입이 백개라도 할말이 없소. 그래서 오늘까지 모가지를 늘어뜨리구 벌받을 날을 기다렸으니 어서 실컷 목숨을 걷어가오.》
억울하다는 항변같았다. 하지만 진심을 가리우는 요술처럼 의심스럽기도 했다. 금방 저질러놓은 일도 아니라고 생억지를 부리는것은 강만수에게 붙어있는 고약한 습벽의 하나였다. 혹시 이 시각에조차 요행을 바라고 이렇듯 오그랑수를 쓰는것이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놈은 십분 그럴수 있다. 뻔뻔스럽기란… 안길은 혐오감을 누를길 없었다. 그는 애초부터 이 강만수란 인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됨이 경망하고 좀상스럽기도 했지만 한때 안길의 가슴에 도저히 지워버릴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혀놓은 개자식이였다. 때문에 지금 강만수와 마주앉은 안길에게는 이 편협하고 소갈머리가 밭은 인간이 곱게 보일리 만무했다. 더구나 1941년도에 만났을 때 식량을 구해오마고 갔다가 경찰들을 끌고 나타났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닭의 살이 돋아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김일성동지의 만류만 아니였어두 그때 벌써 네놈은…
《강만수!》
안길은 법정에 선 검사처럼 준엄하게 말했다.
《한때 늘 초혁명적인 언사로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던 너같은 인물들의 운명이 례외없이 배신과 타락의 종착점에 이르게 된다는것은 하나의 법칙과도 같은 일이다. 이런 인물짝들은 백해무익하다. 백번 다 사람들한테 해로운 작태만 빚어낸단 말이다.》
《…》
《그래 아직도 41년 가을에 네놈이 저지른 죄행을 실토하지 않겠는가?》
《엉?…》
강만수는 총창에 찔린 사람처럼 우뜰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길묵하게 가로 째진 두눈에 컴컴한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그는 쳐들었던 고개를 힘없이 떨구며 웅얼거렸다.
《그건… 내가 한짓이… 아니요.》
《아니라구?》
안길의 눈길이 강만수의 수그린 이마에 박힌채 움직이지 못했다.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놀랐던것이다.
《발뺌을 하자는건가?》
《아, 그건 정말이요. 그때 난…》
《죄다 실토를 해. 있었던 사실그대로…》
《말하겠소. 내 그걸 말해주지 않구선 죽어두 눈을 감지 못할테니까.》
강만수는 후- 가슴이 내려앉게 한숨을 짓고나서 그때의 내막을 실토했다.
《그날 산에 같이 나무하러 갔던 석구라는 놈이 착한 사람으로 둔갑을 한 독사였소. 난 그런줄도 모르구 석구란 놈의 도움을 받아 쌀짐도 마련하구 누이한테도 기별을 했소.
어슬막에 누이네 집으로 쌀짐을 지고갔는데 조금 있더니 석구란 놈이 일여덟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쌀짐을 지워서 데리고왔소. 다 혁명군을 지원하자고 나선 사람들이라며… 그런데 그들속에 내가 아는 형사놈이 있을줄이야… 놈들은 나를 속여넘기려던 당초의 계획을 바꾸고 우리에게 권총을 들이댔소. 찍소릴 했다간 우리 두집식구들을 몰살시키겠다구… 놈들은 진짜로 두집의 아이들을 다 끌어다 꽁꽁 결박해놓고 방안에 몰아넣은 다음 말을 안들으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을러멨소. 난 누이와 같이 어쩔수없이 끌려나갔소. 누이는 매부를 살리자니까 나선거구… 난 정말 비겁한 놈이였소. 누이가 죽음을 각오하고 오지 말라는 소리를 칠 때 난… 한마디도 입을 열지 못했으니…》
강만수는 꺽꺽 울음을 먹으며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안되여 자기가 매부를 밀고하여 경찰의 총에 맞아죽게 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노라고 했다.
《그때부터 난 얼굴을 쳐들구 다닐수 없었소. 누이는 절교를 하구 애들은 날마다 모두매를 맞구 녀편네는 몸져누워버리구…아, 그건 참… 그래 견디다못해 한밤중에 남몰래 솔가도주를 해서 예까지 왔는데…》
《음-》
안길은 꺼이꺼이 황소울음을 울고있는 강만수를 얼없이 바라보았다. 자기의 예측이 너무나 엄청나게 빗나간 사실앞에 망연자실해졌다. 이런 내막을 모르고 그는 강만수를 처단하려고까지 했으니 김일성동지께서 막아나서지 않으셨더라면 과연 어떤 비극을 빚어낼번 했던가.
아, 사령관동지!
안길은 이 순간 김일성동지이시야말로 정말 천리혜안을 지니신분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동안 어깨를 들먹이던 강만수는 코먹은 소리로 다시 말을 꺼냈다.
《인제는 할말을 다했으니 죽여도 여한은 없소. 옛말에 팔자도망은 못한다구 난 처가편의 먼 친척이 사는 여기로 왔지만 더 된코에 걸리고보니 산다는것자체가 막 진저리나는데 어서 끝장을 내주오.》
《된코라는건 뭐요?》
《그 두억시니같은 석구란 놈이 여기까지 따라와서 못살게 구는데…》
《석구라구?…》
《전에 나하구 같이 산에서 만났던 놈 말이요. 글쎄 그놈이 땅밑에서 솟아난것처럼 내앞에 불쑥 나타나더니…》
강만수의 말에 의하면 석구란 놈은 강만수에게 아무리 자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어림없노라고 을러멨다고 한다. 그놈은 다시 찾을 때까지 꼼짝말고 기다리라는것, 또 도망질을 시도하면 강만수뿐아니라 온 집안식구를 모두 도륙을 내겠다고 오금을 박고는 가버렸다는것이다.
안길은 그놈이 훈춘쪽에서 라진으로 침투했다는 유령단체의 악당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이 사는데는 아는가?》
《모르오. 딱 한번 라진거리에서 먼빛으로 얼핏 띄여보긴 했는데…》
《강만수!》
안길은 엄한 눈길로 허탈에 빠진것 같은 강만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41년도에 벌써 너를 처단해버리려 했었다. 이제껏 시간을 끌어온건 기회를 얻지 못해서가 아니였다. 어떤 고마운분이 너같은 인간과 너의 처자들의 운명을 걱정하여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기때문이였다. 그분은 네가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구 살도록 일깨워주기 위해 일부러 나를 보내주셨단 말이다.》
《아니, 그럼?…》
《강만수! 그분은 바로 우리 장군님이시다. 이제 오래지 않아 나라도 찾게 되겠는데 네가 반역자의 오명을 쓰는것이 가슴아프구 네 처자가 반역자의 안해, 반역자의 자식이 되는것이 가슴아프다구 하면서 꼭 가서 건져주라고 나를 보내신거다. 네가 어떤 은정을 안고있는지 알겠는가?》
강만수는 대답대신 구들바닥을 주먹으로 때리며 또다시 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사이문너머 정지방에서도 녀자의 걷잡을수 없는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안길이 문을 열었다.
석유등이 그물그물 연기를 말아올리는 어둑시그레한 정지방문턱앞에서 강만수의 안해가 어푸러져서 오열을 터뜨리고있었다. 사이문앞에 앉아 남편이 문초를 당하는 말소리를 엿듣고있다가 예상을 뒤집어놓는 결말에 그만 격정을 참지 못하였다.
《순희 엄마도 여기 들어오우.》
그러자 그 녀자는 무릎걸음으로 정지문턱을 넘어들어오더니 안길의 앞에 쓰러지듯 머리를 조아리며 설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큰아버지, (그 녀자는 아이들이 부르는 식으로 안길을 불렀다.) 이 고마움을 무슨 말로 다 말하겠습니까? 저 등신같은 나그네때문에 온 집안식구가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하루 열두번도 더 애들과 같이 죽어버릴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같은 날을 보게 될줄이야.…》
《그만하오, 순희엄마.》
안길이도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처남댁을 붙잡아일으켰다.
《장군님의 그 깊은 은정이 아니였더라면 이 집안은 이미 풍지박산났을거요. 그 고마움을 생각하면 참… 이제는 보답이 있어야 하잖겠소. 사람답게 살면서 장군님께 보답을 해야 한단 말이요. 알겠소? 처남.》
《매부!》
강만수도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쳐들며 사레들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내 뼈가 부서져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장군님의 은덕에…》
《내 부탁도 그거요. 벽돌공장에서 일한다니 거기서도 마음만 먹으면 나라의 광복을 위해 얼마든지 일을 찾아할수 있을거요. 또 처남이 믿을만 한 사람이라면 조직에서도 손을 내밀게 될거구…》
《이 유현동에도 조직이 있소?》
《조직은 어데나 있소. 그러나 그 조직이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처남이 아직 제정신에 살지 못한다는걸 잊지 말라구.》
《큰아버님.》
강만수를 앞질러 그의 안해가 먼저 말했다.
《우릴 믿어주세요. 이제는 애들이랑 하늘을 쳐다보며 살게 됐는데 목숨을 바칠 일이 생긴대도 마다하지 않으리다.》
《순희엄마의 말을 믿겠소.》
안길은 가지고갔던 보꾸레미를 강만수앞에 내놓았다.
《이걸 우리 집사람에게 전해주게. 어혈을 푼다는 곰열과 옷감 한벌이네.》
《예? 내가 누이한테…》
강만수는 겁질린 눈길을 쳐들었다가 황황히 떨구며 울상을 지었다. 인연을 끊어버렸다는 누이가 그한테는 범보다 더 두려운 존재로 된 모양이였다. 참으로 측은하고도 아픈 마음을 자아내는 정상이였다.
강만수의 안해가 남편을 대신하여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누인 우릴 사람으로 치지도 않구 만나주지도 않을거예요. 그러니 무슨 낯으루 찾아가겠어요. 제가 딴 사람한테 부탁해서 이걸 보내드리지요.》
《그래선 안되오.》
안길은 나직이 타일렀다.
《그래도 혈육간이 아니요. 우리 집사람도 처남네와 남남으로 사는걸 두고 괴로와할거요. 난 처남이 우리 집사람과 다시 옛적의 오랍누이로 되기를 바라오. 또 그렇게 되리라 믿소. 내가 이 집에 들려서 처남을 보내더라고 말하면 그 사람도 달라질거요.》
《알겠수다, 매부. 내 꼭 누이를 찾아가리다.》
강만수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글썽해졌다.
안길이도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사령관동지, 사령관동지께서 펼치시는 그 넓으신 아량과 사랑의 품속에 안겨 우리 처남일가는 끝내 구원되였습니다. 또 이 처남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꼭 구원되고야말것입니다!

